1 / 2"....선생님은 꽤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오랜만에 얼굴을 본 프라나로부터 들은 첫마디였다.
얼마전 프레나파테스와의 결전 이후 싯딤의 상자로 합류하게 된 프라나가 '자신에게도 색체의 잔재가 남아있을지 모른다'라며 한동안 자가격리를 했던 탓이었다.
그렇다보니 저번의 장난은 아로나만 당했던터라, 프라나도 공평하게 골탕먹여보려 했지만...
"선배가 아니었으면 저도 큰일이었겠습니다."
"흑흑.... 너무했어 아로나...."
"가만히 놔두고 볼리가 없잖아요?!"
아로나가 성대하게 까발린 바람에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정말 재밌는 장난이 떠올랐었는데!"
"전혀 재미있지 않거든요."
"엇...."
얼핏 당황한 기색이 보이는 프라나를 품에 꼭 안은채, 아로나는 와락 소리친다.
"조금은 당하는 학생분들 마음도 생각해 주세요!"
저 말은 사실이긴 하다.
- "선생님. 또 게임에 10만원씩이나 결제하신거예요? 정말이지, 대체 언ㅈ... 아니, 아니예요. 그럴 수도 있죠. 흠흠. 제가 또 괜한 소리를...."
그날 이후 유우카는 무언가 잔소리를 시작하려 할때마다 멈칫하고는, 표정이 굳은채 말을 급히 마무리하는 탓에.
- "선생. 이 정도는 내가 할 테니까 절대 무리하지 마..... 알겠지?"
그날 이후 히나는 내가 뭘 하려고만 해도 과할 정도로 제지하는 탓에.
난 뒷통수를 긁적이며 애써 반박해보았다.
"그... 음... 결국 안 죽었잖아? 그럼 된거 아닐까?"
"선ㅡ생ㅡ님ㅡ!!"
역시나 돌아오는건 아로나의 귀여운 호통.
"저, 선배. 저 귀가..."
"아앗? 프라나짱?!"
- 우웅!
큰소리에 놀라 헤롱거리는 프라나에게 아로나가 서둘러 사과하는동안, 난 갑자기 울린 모모톡을 확인했다.
'지금은 다들 수업하고 있을때 아닌가?'
이 시간대에 울릴 일이 없음에 의아함을 품으며 확인한 메시지의 수신인란에 적힌 이름은 바로 미소노 미카.
메시지의 내용은.....
".....아로나, 준비해. 지금부터 몰래카메라를 하러 갈거야."
"네?! 제 말을 안 들으신건가요?!"
"이번엔 그런 이유가 아냐. 도와줘야 할 학생이 있어."
당황하는 아로나에게 말하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수는 없는 수준이 된것 같아서."
주머니속에 쑤셔넣어진채 아직 켜져있던 핸드폰 화면 속에는, 내가 그녀에게 선물했던 수영복이 갈갈이 찢긴 사진이 비춰지고 있었다.
- 선생님 미안해.
단 한줄의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
사건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미소노 미카. 트리니티의 배신자.
과거의 죄에 의해 불길한 이명으로 불리며 마녀로 몰리는 한 소녀의 왕따, 그것이 내가 오늘 트리니티에 급히 온 이유였다.
그녀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 또한 암암리에 알고있었으나, 이를 강력히 제제할 수단과 명분이 없었기에 지금까지는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었다.
뒤에서 험담을 한다던가, 일부러 들리게 욕을 한다던가, 미카의 말을 무시한다던가.
증거가 남지 않기에, 미카에게 적대적인 트리니티의 분위기상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봤자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을터이다.
물증이 없으니 일단은 '외부인'인 나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고.
과거에 지은 죄가 있으니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나서려하지도 않았다. 그간은.
'하지만 오늘은 선을 넘었어.'
저번에 미카와 함께한 외출에서 사주었던 수영복.
그것이 가위로 난도질을 당한채 발견되었다.
주동자는 아마 항상 미카를 무시해대던 학생들이겠지.
결국 쌓여온 분노가 폭발한 미카가 그들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했고, 그 결과로 그녀는 자진해서 처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미카는 독방에서 근신하고 있다는겁니까?"
"예에... 그래서 샬레의 선생님이 미카 학생을 인계해주시면....."
"알겠습니다."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 트리니티의 교직원에게서 들은 대략적인 설명과 미카의 메시지를 조합해 적절한 추리를 해낸 후, 난 복도를 걸어가며 싯딤의 상자에 질문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아로나, 프라나."
"불쾌. 여럿이 하나를 괴롭히는건 옳지 못합니다."
그녀의 과거를 모르는 프라나는 인상을 찌그렸고,
"아무리 그래도 조금 심하긴하네요...."
그녀의 과거를 알고있는 아로나조차 그리 대답했다.
"그렇지?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할 행동은 옳은거야."
"네? 뭘 하실 생각이신거예요?"
"말로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걱정 마. 분명 잘 될거거든. 얄팍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민중의 광기란 그런거니까."
그리 말하며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띄운 둘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생각해둔 계획을 위해 미리 주머니 속에 가져온 가짜 피를 만지작거리며.
"일단 나기사에게 도움을 구해야겠어."
******
"미소노 미카님.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경비병이 문을 열어주고 떠나자, 차가운 독방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미카."
그리고 그 한가운데의 나무 의자에, 한 소녀가 쓸쓸히 앉아있다.
"어라... 선생님? 여기는 무슨일이야?"
"모모톡 보고 왔어."
자신을 보고 놀랐다는듯 반응하지만, 그 호박빛 눈동자 속에선 기다렸다는듯 반짝임이 인다.
"아하.... 겨우 사진 하나랑 그 짧은 메시지 하나만 보고 이런 불량학생에게 달려온거야?"
"....겨우 사진이 아니잖아."
분홍빛의 긴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소녀- 미소노 미카는 해맑게 웃으며 천진난만히 대답한다.
"뭐어, 사실 별거 아니었어. 수영복 사진도 일부러 보낸거야. 그럼 선생님이 날 걱정해줄까 하고. 날 생각해줄까- 하고."
"........."
"실망했어? 그치만 알고 있었잖아. 나는 불량학생인걸. 가만히 놔둬도 문제를 일으키는 그런 나쁜 아이니까. 과하게 다정한 선생님이 문제라구."
마치 제 감정을 감추고 싶다는 양, 미카는 끊임없이 말을 이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아무튼, 선생님이 이렇게 와줬다는건 다 해결됐다는 거겠지? 여기까지 폐를 끼쳐버렸으니 이제 나도 슬슬..."
"미카, 괴롭힘 당하고 있지않아?"
"으, 으응?!"
돌직구로 물어보는 선생님의 질문.
"아.... 아니......"
"눈 피하지 말고.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게 솔직하게 말해줘."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것은 예상치 못한 미카는 크게 당황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선생님의 곧은 눈빛을 보곤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선생님이 준 수영복이었는데...."
이후 훌쩍이며 상황을 설명한 미카. 그 내용은 선생이 추측한 것과 같았다.
"당연한 거야. 내가 그동안 너무 나쁜 짓을 해 왔으니까.... 내가 착하게 살아왔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곘지......"
"미카..."
죽은눈을 한채 자책만 하던 미카의 머리에 따스함이 맞닿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호의.
이 순간만큼은 미카도 제 감정을 온전히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노력했는데.... 으웃..... 그랬는데... 잘 되지 않았어......"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하는 미카.
한동안 이를 받아준 선생은 조심스런 말투로 미카에게 묻는다.
"미카.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어?"
"어... 에?"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것만 끝내고 미카랑 같이 갈 곳이 있거든."
"아..... 으, 응! 기다릴게!"
이후 선생은 긴 복도를 지나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마녀를 추방해라!!"
"미소노 미카의 처벌을 가중하라!!!"
잠시 후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될, 아직도 밖에서 미소노 미카의 처벌을 외치는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며.
******
"다들 조용!!!"
한창 혼란으로 가득차있던 시위현장.
시끌벅적한 소음을 가라앉히는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발원지로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어라, 저 사람은?"
"샬레의 선생 아냐? 왜 여기 있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 탓에 저들끼리 수군대는 학생들.
큼큼, 목을 가다듬은 선생은 손을 모아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미소노 미카를 비난하는 집회는 당장 해산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앙?! 갑자기 뭔 소리야?!"
"어이! 선생이나 돌아가라고!"
방금전보다 더욱 큰 소란이 일고, 새로운 얼굴에 대한 군중의 분위기가 적대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거칠게 항의하는 학생들을 향해 선생은 막힘없이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시위는 사전에 허가조차 받지 않았으니 불법행위입니다! 그러니 각 학생들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까보다 더욱 거센 기세로 소리친다.
그 기백에 잠깐이나마 눌린 인파.
"부, 불법까지야...."
"맞아, 우리가 딱히 뭐 하는게 있는것도 아니고....."
주춤하는 그들 중 누군가 선생에게 앙칼진 목소리로 따진다.
"트리니티의 일이니 선생님이 신경 쓸 일 아니거든요!"
"맞아! 그리고 그 여자는 그래도 싸다고!!"
맞아맞아, 우리는 그래도 돼, 미카는 당해도 돼.
우리는 피해자니까. 그녀는 가해자니까. 선과 악이 명확하니까.
사그라들던 열기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도출된 합리화로 재점화되기 시작하고, 그들은 이내 넘실거리는 파도가 되어 철장 문 너머에 있는 선생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지르기 시작한다.
"설마 선생이란 사람이 테러행위를 옹호하는거야??!"
"선생도 아리우스와 한 패다!! 샬레가 트리니티를 음해하는 세력과 손을 잡았다!!!"
"샬레는 트리니티에 대한 내정간섭을 멈춰라!!!"
"자, 잠깐 얘들아...! 과격행위는 멈춰.....!!"
이성을 잃은 집단이 하나의 거대한 군집이 되어, 자신들을 막아서던 커다란 철제 문에 부딫힌다.
"당장 미소노 미카를 끌어내자!!!"
"마녀에게 직접 정의로운 벌을 내리자!!!!!"
그 광기에 철로 만들어졌을 문이 휘어지고, 잠금장치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불똥을 튀긴다.
그리고 끼기긱- 하는 소름끼치는 쇳소리가 마침내 끊어졌을때.
견고하던 자물쇠가 부서지고, 녹슬리 없던 터인 문의 경첩이 떨어져 나갔을 때.
- 콰아아앙ㅡㅡ!!!!!
성대한 먼지바람을 흩날리며 쓰러진 문은, 그대로 선생이 있던 자리를 덮친 후였다.
"어, 자, 잠깐!!!"
"다 멈춰! 멈춰봐!!!"
"뒤로 가! 빨리!!!"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안 학생들.
자욱하게 인 먼지구름이 걷히고난 후 그들은 깨달았다.
때는 너무 늦었다- 라는 것을.
선생이 쇳덩어리에 깔린 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
난 참 못되먹었어.
뭘 새삼스레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긴, 맞아.
내가 마녀란건 트리니티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제와 뭘 하겠어?
그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어.
- 모두 저리 가. 아는 체도 하지 마.
물론 모두가 날 싫어하는것도 이해가 가고.
- 그런 지독한 눈으로 날 보지마. 비웃지 마.
내가 잘못한게 맞는걸. 씻을 수 없을, 돌이킬 수 없을 짓을 저지른건 나니까.
- 괴롭단말야. 저리 떨어져.
적어도 무거운 죗값에 비해서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 모든게 공허해. 의미도 없고. 외로워.
퇴학당하지 않은게 어디야? 혹시 그러기라도 했다간 난 싸늘한 황무지에서 홀로 차가운 바람을 버텨내야 했을테니까. 마치 헬멧단들처럼.
- 너무 추워. 뼈가 얼어붙는 느낌이야.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난 괜찮아. 아직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데.....
"이젠... 어디가 황무지인지 모르겠어...."
꾹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버린 바람에 고장나버린 눈물샘을 슥슥 닦으며, 미카는 홀로 지키고 서 있는 길목을 지긋이 둘러봤다.
"선생님은.. 훌쩍, 언제 오실까....."
먼지로 가득 뒤덮인, 물 한 방울과 그늘 한 줌 조차 없는 황무지와 같은 복도에서 밝게 빛나는 한 남자를 되뇌이며.
허나 한참이 지나도 그의 왕자님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거지...'
답답하지만. 지금 당장 그를 찾으러 가고 싶지만.
"아니... 안 돼...!"
미카는 일부러 소리내며 다짐했다.
순수하게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양심 때문이 아닌,
이미 큰 실망을 안겨준 자신이 이런 사소한 부탁조차 실천하지 않은 순간, 그녀를 바라보는 선생의 눈빛이 어떻게 달라질지 두려웠기 때문에.
미카는 두 눈을 꽉 감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서 있기를 선택했다.
"자, 잠깐!! 모두 정지!!!"
밖에서 아무리 소란이 벌어져도.
"사고다! 사고라고!! 당장 뒤로 가!!!!!"
설령 이 트리니티가 멸망할 수준의 재앙이 찾아온다 할 지라도.
"이런 씹, 선생이 깔렸다고!!!! 당장 이 철판 들어올려!!!!!"
제 아무리........
"뭐?"
깔렸다고? 누가?
미카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귓가에는 밖에서의 소란이 하나도 빠짐없이 담기기 시작한다.
"응급차! 당장 응급차 불러!"
누군가 큰 부상을 당했다. 응큽차를 필요로 할 정도로.
"젠장할, 이거 좀 들어봐! 무거워 죽겠네....!"
피해자는 어딘가 무거운 것에 깔렸다. 학생 여럿이 달라붙어도 쉽게 들 수 없을 정도로.
"어이 선생! 아직 정신 있어?! ......이런 씹, 대답을 안 해!"
피해자는 선생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자신이 언제나 기댈 수 있던, 곁에 있기만 해도 가슴이 뛰던 그 남자와 이름이 같은.
.....소녀의 이성이 날라가기까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던 그림자가 튀어나가기까지는 그리 긴 시작이 걸리지 않았다.
- 콰과과과광ㅡㅡ!!!!!!
"우왁?! 무슨 소리야??!"
"저, 저기 건물이 부서졌는데??"
지척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트리니티 본교에서 자욱한 먼지가 인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부산스레 움직이던 학생들이 모조리 굳은채 그곳만을 주시하고, 마침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인영이 나타났을때,
"선생님이... 뭐라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스산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물었다.
".........."
허나 적막만이 감돈다. 그 누구도 감히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질문한 소녀의 얼굴은 가히...
"대답해... 선생님이.... 어쨌다고....?"
살인귀의 그것과 닮아있었기에.
저벅, 저벅.
한발짝씩 다가오던 미카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는다.
"머, 멈추세요!"
이름모를 경비병 하나.
미카는 오물을 보는듯한 눈빛으로 그것을 지켜보다가, 다시금 선생이 쓰러진 곳으로 발을 옮긴다.
- 꽈아악.
허나 그것을 다시, 미카의 옷가지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아 가로막는다.
"놔."
"나.... 나기사님이 미카님은 이곳에 가까이 하지 마시라고.... 따로 할 말이 있으니 데려오라고 하셨는데...."
"놓으라고."
"으, 으으...... 케헥??!"
달달 떨며 두려워하는 소녀의 가는 목을, 억센 손아귀가 부여잡는다.
"아니면, 네가 그랬어? 네가 선생님을 다치게 해서. 내가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는거야?"
"그, 런..... 케헤에....."
"미, 미카님! 당장 멈추세요!!"
갑작스런 폭력 행위에 잔해를 치우던 경비병 세넷이 우르르 달려와 낑낑대며 말려보지만,
"아, 안 되겠어. 꿈쩍도 안 해....!"
"빠, 빨리! 사람을 더 불러!!"
굳은 두 팔은 소녀의 목숨줄이란 심지에 불을 더욱 거세게 붙일 뿐이었다.
"사, 살려.. 케, 헤겍......"
빨간색을 넘어 이젠 보라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 얼굴.
모두가 질겁하며 허둥대는 바람에 일어난 소란에 미카는 눈살을 찌푸리며 팔에서 힘을 놓았다.
그러자 털썩- 하고 바닥으로 낙하하는 경비병의 신체.
"케흑, 쿨럭! 쿨럭!"
"...그래. 너희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명령만 받는 멍청한 것들이니까. 너희가 선생님을 해친건 아니겠지."
그리곤 기름칠이 벗겨진 기계처럼, 끼기긱- 하며 고개를 뒤튼다.
그 시야 끝에는 경비병 여럿이 선생의 몸을 잔해에서 끌어내어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붉은 피를 흘리며 부축을 받는, 축 늘어진 남자의 모습이.
숨을 쉬지 않는건지 산소마스크를 쓴 채 cpr을 받고 있는 모습이.
그 모습을 눈에 담고야 말자, 미카의 안에 남은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진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다.
안면의 근육이 뒤틀린다.
원초적이고도 제어 불가능한 분노에 휩쓸린 머리가 마비되고, 이성이 날라간다.
미카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그런데, 그런데 너희는."
그 말이 향하는 것은, 압도적인 분위기에 눌려 한 발짝도 떼지 못한채 굳어있던 시위대의 학생들.
"나 하나로 만족하지 못했나봐?"
".................."
애석하게도 그들 중에는 미카가 자숙하게 된 원인이 된 학생들조차 함께 있었다.
"역시, 살려두면 안 됐는데."
미카는 생기 없이 뜬 눈을 그녀들에게 박은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모두가 입을 다문 공간에서 싸늘한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그 순간, 모두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늘 이 곳에서, 누군가 하나는 헤일로가 파괴당할지도 모르겠다고.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든 것은 당연하게도, 미카의 수영복을 찢는데 일조했던 한 학생이었다.
"히이익....!"
그 소녀는 아직 죽음의 공포를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강인하지 못했고,
"으, 으아아아아....!!!"
몸을 돌려 도망친다는 선택또한 당연한 결과였지만.
- 쿠과과과과광ㅡ!!!!
그것이 그다지 좋은 선택지라는 말은 아니었으니.
"어딜 도망 가."
순식간에 접근한 미카의 손이 그녀의 머리통을 붙잡은 채 흙바닥에 내리꽂는다.
안면을 파묻은 바닥 탓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소녀.
"내가 보내줄것 같아? 응? 대답해 봐. 보내줄것 같아? 널 살려 둘 것 같냐고."
- 콰앙ㅡ! 콰앙ㅡ! 콰앙ㅡ!!!
정신이 나간듯 중얼거리며 그 반복적인 행위를 몇 번 더 반복할수록, 소녀의 얼굴은 엉망이 되어간다.
미카의 백색빛 옷에 붉은 물감이 흩뿌려지고, 흙바닥 위로 레드 카펫이 깔린다.
소녀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스며들고, 콧대가 우그러진다.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은, 명백한 범죄의 영역에 들어가는 무자비한 폭력.
그를 모두 감당해내지 못한 소녀의 육체가 추욱 늘어지고, 그것을 무정히 패대기 친 미카가 뒤를 돌아본다.
- 콰앙!!
굉음을 내며 돌벽에 처박힌 소녀는 분명 급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지금 나서면 분명, 자신이 다음 차례일 것이기에.
고요한 적막. 모두가 한 점을 바라본다.
공포에 숨죽인채 옅게 빛나는 수많은 눈들.
그 안에 가득한 것은 공포, 두려움, 혐오감, 그리고 억울함.
이에 미카의 눈매가 파르르 떨린다.
"왜. 왜 너희가 그런 눈을 해? 그럴 자격도 없잖아."
이젠 구더기보다도 역겹게 느껴지는 인간들을 향해, 죄인에게 선고하는 판사와도 같이.
진심을, 숨겨왔던 끔찍한 심정을 담아.
"너희는 감히 선생님을 해쳤어. 응, 찢어죽여도 모자를 죄를 저지른거야.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이해가 안 돼. 수준 이하의 쓰레기들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정도라는게 있지. 저기,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 응?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선생님께 민폐를 끼쳐 귀찮은 여자라 취급당하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아냐고. 너희들이 매일같이 괴롭혀도 조용히 있었어. 내 물건이 사라져도 아무 말 안했어. 집이 불타도 보복하지 않았어. 선생님이 내게 값싼 동정대신 다른 감정을 품을 여유를 만들기 위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데 그걸 다 망쳤어. 너희들이. 그것도 모자라 선생님을 다치게 했어. 용서 못해. 절대 용서 못해."
피눈물이 흐르는것처럼 보일 정도로 뒤틀린 표정을 한 채 눈물을 흘리는 미카.
"전부 뒤져야 해. 살 가치도 없는 쓰레기년들은."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미카의 압도적인 무력이 시위대를 덮치고-
"미, 쿨럭, 미카...!"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한 남자의 목소리가 미카의 귓가에 닿는다.
"서, 선생님...?"
선생이 학생 여럿의 부축을 받으며 미카를 향해 서 있었다.
피 섞인 기침을 하며, 자신을 부르는 선생이.
"쿨럭, 지금, 뭐하는거야...!"
"아, 아니, 난, 난 선생님을 해친 나쁜 녀석들을....."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을 그렇게 때려 패면 어떡하자는거니....!"
시야를 가리는 피를 닦아내며 열변을 토하는 선생.
자신을 부정하는듯한 그의 말에 미카는 변명하듯 절규한다.
"그래도 싸!! 저년은 그래도 싸다고!!! 나를 아프게 하고, 선생님을 아프게 했어! 그러면 자기도 조금 아파도 되는거잖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넌, 넌 대체... 쿨럭!!"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선생.
"선생님!! 선생님!!!"
이에 미카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부축하던 경비병을 밀쳐낸 후 그 자리에 들어가보지만.
"선생님! 죽지 말아줘, 제발...!"
돌아오는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경멸하는 선생의 공격적인 한 마디.
"미카... 당장 독방으로 돌아가서 기다려.... 넌 정말.... 부탁 하나조차 들어주지 않고....."
"..........!!!!!!"
그 말을 끝으로 선생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어이! 빨리 들 것 가져와!"
그러자 더욱 부산스러워진 응급위원들이 들것을 가져와 미카의 품 속으로부터 선생을 빼앗는다.
그것을 얼이 빠진 얼굴을 한 채 힘없이 주고 만 미카는, 응급차가 떠날 때까지 몇분이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왜... 왜 선생님마저 그런 눈빛으로 보는거야?"
시위대의 학생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자리에서 도망쳐도, 시선 하나 던져주지 못하는채로.
"또 내가... 내가 뭔갈 잘못한거야.....?"
자신이 죽일듯이 때려팬 학생이 응급위원들에게 실려가도, 딴지 하나 못 건 채로.
"아, 아아.... 그렇구나... 약속을.... 내가.... 결국 실망을..........."
그저 자리에 엎어져, 초점 나간 눈을 한 채 멍청하게 중얼거릴 뿐.
그녀가 실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이 떠나고 몇 십분이 지난 후 현장을 직접 찾아온 나기사가 그녀를 직접 옮긴 덕분이었다.
그마저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인 그녀를 억지로 잡아끈 것이었지만.
******
계획이 상당히 어그러졌다.
미카만, 그녀만 현장에 난입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는데.
"밖의 상황은 혼란뿐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선생님도 중상자이지만, 미카씨에게 폭행당한 그 소녀도 심각한 상태니까요."
병상에 누운 내 옆에서 홍차를 홀짝이던 나기사가 읊었다.
"하아... 분명 선생님의 계획을 들었을 땐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군요."
"그러게. 음....."
계획은 이러했다.
미카를 공격하는 시위대가 점점 과격해지다가, 결국 선을 넘어 샬레 소속의 나를 해치게 되는것.
이른바 선역과 악역의 역전이다.
악역인 미카를 공격하는, 자신을 '선역'이라 지칭하는 자들을 뒤집어버리는 전략.
애초에 그리 거창한 대의명분조차 없던 시위대는, 내가 다쳤다는 소식이 퍼진 후 전 학원의 비난과 질타를 받게 된다면 결국 자연스레 와해되고 말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기사에게 협력을 구해 시위대를 격화시킬 바람잡이를 배치했고, 대문에도 약간 처리를 해놓은 뒤 가짜 피까지 준비했지만.
'언플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나보다 미카에게 당했던 학생의 상태가 더 심각했으니까.
애초에 난 아예 다치지 않았지만, 그녀는 미카의 분노를 전부 받아내고 말았으니까.
물론 미카가 어느정도 난동을 부릴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정말 사람을 죽일 기세로 팰 줄은 몰랐다.
"상태는 어떻대?"
"미카씨를 막았던 경비병은 현재 심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위대에 있던 학생은..."
나기사는 말하기도 끔찍하다는듯 눈살을 찌푸리며 차를 홀짝였다.
".......코뼈가 부러졌고 두개골에 금이 갔습니다. 앞니도 한 개 부러졌다더군요. 최대한의 치료를 받으면 흉터는 남지 않는다지만... 마음의 흉터가 문제겠지요."
"미카는."
"그날부터 쭈욱, 먹는것조차 거부하며 독방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매일같이 선생님만 애타게 부르며 허공에 대고 사죄하고 있더군요."
나기사는 말하다 말고 째릿 눈치를 주며 날 흘겨봤다.
아무래도 그 날, 다친 연기를 끝까지 하기 위해 미카에게 모질게 대한 후 정신을 잃은 척한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
누가 뭐래도 그녀는 미카를 걱정하는 '친구'였다.
"....응,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게."
"네. 그러셔야죠. 최대한 빨리."
생각이 모자랐던 나의 업보가 돌아오고 있었다.
******
대략 일주일이 지난 후, 난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이것도 최대한 빨리 나온거다. 내 부상 정도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기사가 나온 마당에 하루이틀만에 퇴원하는건 그림이 이상하니까.
아무튼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겨우 떼어내고, 마침내 도착한 트리니티 본교.
".....열겠습니다."
일주일 전에 보았던 경비병이 그때보다 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독방의 문을 열어주고, 그때와 똑같은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미카?"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없었다.
소파에 기대어있지도, 침대에 누워있지도, 의자에 앉아있지도 않다.
"저기, 미카는 어디에...?"
".........."
이에 경비병은 질색하다가 마지못해 앞장섰다.
그녀를 따라 조금 걸어들어가니, 그제야 보이는 침대 뒤의 작은 공간.
그곳에 미카는 있었다.
"미카."
누더기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엉망인 옷을 걸친, 두 팔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웅크려 떨고 있는 미카.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한건지 얼굴에 피로와 어둠이 내려앉아있었고, 그날의 핏자국과 눈물자국이 눌러붙어 보기 안쓰러운 꼴을 하고 있었다.
대체 그녀는 어디까지 망가져버린걸까.
난 입술을 악문 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처드는 미카.
"어, 선, 선, 선생님?"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아, 아아, 우으아아아아.........."
지옥에서 광명을 찾은 죄인이 그러하듯, 환희에 찬 얼굴로 내게 안기려는 미카.
그 어리광을 이번만은 받아주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렸으나, 이내 그녀의 행동이 우뚝 굳고만다.
"......미카?"
제 손에 시선을 꽂은 채 굳어버린 미카.
"아, 안 돼.... 난, 나는.. 손에 피가......"
"미, 미카?"
"마, 만지지 마 선생님!! 더러워!!!"
자신을 만져선 안 되는 불결한 쓰레기 쯤으로 취급하는 건지, 미카는 다가서려는 날 피해 침대 너머로 훌쩍 뛰어 도망쳤다.
"갑자기 왜 그러는거니?"
"난, 내 몸에는 피가, 피가 온몸에 잔뜩 묻었어.... 사람을 해친 증거가... 내가... 내가 저지른 짓들이....!! 모두를 배신했어. 세이아짱을 죽이려했어. 나기짱도 해치려 했어...! 그리고 결국, 결국 선생님을 다치게 했어....!!"
이미 푸석푸석한 머리를 쥐여뜯기 시작하는 미카.
"잠깐만 미카! 선생님은 하나도 안 다쳤....!"
"죄송,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 해 주세요. 제발... 제발.... 뭐라도 할테니까아.... 아, 아아, 맞아. 벌. 벌을 받아야 해.... 벌을 받으면 용서 받을 수 있어... 선생님이.... 선생님이 다시 날 바라봐주는.... 따뜻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어.......!"
눈에 띌 정도로 도지기 시작한 불안증세.
결국 미카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제 손목을 벅벅 긁어댄다.
자세히 보니, 이미 몇번이고 해쳤는지 자상이 가득한 손목을.
"미카!! 정신차려!!!"
생각이 길진 않았다.
그저 그녀가 자신에게 저지르고 있는 가혹한 행위를 멈추기 위해 온몸을 날렸고,
내 몸이 그녀의 위로 떨어지는것도 자연스런 수순이었으며,
"우읍??!"
수준낮은 클리셰덩어리로 이루어진 로맨스 소설이 그러하듯, 나와 미카의 입술이 포개어 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 한순간에 당황했던 미카가-
"우음... 쭈흐읍.... 파하앗...!"
'???!?!'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기는 커녕, 마치 속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 입술을 거칠게 받아들이는 시작했다는 것.
이를 닫을 새도 없이 미카의 혀가 꾸물텅하며 내 안으로 침투한다.
갑작스런 자극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려했지만, 어느샌가 감긴 미카의 두 팔이 내 뒤통수를 단단히 붙잡았고,
피가 뚝뚝 흐르는 그 두 팔이 견고히 버티는 탓에 나는 그녀를 덮치는 듯한 자세 그대로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굳어있는것은 나뿐이지, 눈마저 꼭 감은 채 전력을 다 하고 있는 미카의 혀는 내 안을 바쁘게 유린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아주 필사적으로.
'......이걸로 조금이나마 상태를 안정시키는 편이 낫나.'
여기서 온힘을 다해 거부의사를 밝히기라도 한다면 그녀에게는 분명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것이다.
언젠가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지.
당장 어른의 책임이라던가 인간된 도리와 같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았지만, 결국 난 체념함과 동시에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카는, 아마 그것을 승낙 혹은 그 이상의 의미로 여겼는 듯하다.
입꼬리까지 잔뜩 말아올리며 눈물을 흘리는것을 보면.
몇 분이고 몇 십분이고, 아무도 없던 독방엔 끈적한 액체가 뒤섞이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2 / 2이걸로 공모전 내면 안 되겠지?
댓글 23
피폐도 공모전 되나
되겟냐고.....

ㄹㅇ 나올때마다 홀린듯이 보는데 장르가 아쉽네..

이 똥아로나는 선생 깔릴때 구해주지도 않고 뭐했어
색체<< 불편해서 뒤로가기누름
딥키스를 갈겨버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