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글카스 아니니까 쫄지 마셈
보름달이 뜬 날, 한 남자가 길거리를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남자는 빅토리아 하우스키핑의 집사 본 리카온.
그는 한 생각에 잠겨있는 상태였다.
'...무언가 허전하군.'
최근 그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한때 결렬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 싸우고 그와 화해했고, 시장의 일도 수월하게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에겐 알 수 없는 울적함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 울적함속에서 그는 자신도 어디로 걷는지 모른채 천천히 길을 지나다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시간을 끌기엔 내일 그에겐 해야 할 업무가 있었다.
결국 허전함의 정체를 알지 못한채, 그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며칠뒤, 그가 업무를 쉬는 날, 리카온은 조용히 사무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과 선선한 바람은 나가기 딱 좋은 날씨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저 책 내용에만 집중했다.
그가 그렇게도 집중하고 있던 책은 다름아닌 '보살핌'에 대한 책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살피고 키우는지, 그리고 각종 육아 사진이 담겨져 있던 책.
그 책은 분명 리카온에겐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다.
엘렌, 코린이 있다기엔... 그들은 이미 잘 컸고, 무엇보다 리나의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리카온은 그 일생의 어떤 책보다도, 이 책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점점 노을이 지기 시작한 시간.
'띵띵!'
하루종일 잠잠한 리카온의 핸드폰에 녹녹 알림이 울렸다.
그에게 녹녹을 보낸건, 다름아닌 벨.
그녀는 리카온에게 영화 티켓이 생겼는데 오빠가 급한 일을 해결하러 가느라 볼 사람이 없다고 말했고, 같이 영화를 봐줄 수 있냐고 보냈다.
리카온은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며 읽던 책을 덮고, 외출준비를 마친뒤 사무실을 떴다.
잠시 뒤 뉴에리두 광장, 벨과 리카온은 영화관 근처에서 만났다.
리카온은 신사답게 고개를 숙이며 벨을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로프꾼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무론 잘 지냈죠! 리카온님은 어떠셨나요?"
"저도 별탈없이 보냈습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벨은 곧장 티켓을 꺼내 자랑하듯 흔들었다.
"여기 티켓이에요! 혹시 보고 싶은 영화 있으세요?"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로프꾼님의 취향껏 고르시면 됩니다."
그 말에 벨은 로프넷을 둘러보며 영화를 찾던 중 눈에 띄는 영화를 발견했다.
[칼 없이 널 지키는 방법]
일주일전 개봉하여 관객들 사이에서 무난한 평가를 받은 영화였고, 벨은 이거다 싶어 리카온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리카온씨, 이 영화 보실래요?"
리카온은 그녀의 핸드폰을 통해 영화의 정보를 확인했다.
"슬픈 로맨스 영화군요. 이런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리카온씨랑 함께 보려고 골랐어요!"
"그렇군요. 그럼 들어갑시다."
둘은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내용은 특별할게 없는 펑범한 영화였다.
그저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내용, 좋게 말하면 고전이고 나쁘게 말하면 진부한 소재였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꽤나 슬픈 내용이었다.
영화관 내에서 몇몇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리카온은 영화를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남녀간의 '따뜻한' 사랑... 이것은 그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 듯 했다.
한참 영화를 집중하던 도중, 리카온은 자신의 옆에서 한 시선을 느꼈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벨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녀는 금방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가 끝난 뒤, 리카온은 벨에게 말했다.
"로프꾼님, 아까 영화를 보실 때 제 얼굴을 보신 거 같은데요."
"들켰네요. 근데 그걸 알았다는 건 리카온씨도 제 얼굴을 보셨다는 거네요?"
"...네 저도 로프꾼님을 봤습니다."
"영화는 어땠어요?"
"재밌었습니다. 특히 여자가 슬픔에 잠긴 남자를 감싸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더군요."
"신기하네요.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가 죽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는데."
그 말에, 리카온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
정적이 흐르고, 벨은 의아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리카온씨? 왜 말이 없어요?"
"아, 아닙니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들이쉬곤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번에 이야기해준 잭이라는 분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네. 리카온씨와 휴고씨를 걷어주신 은사라고 하셨잖아요."
"정확히 기억하시는군요. 사실 저와 휴고는 그리 잭과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저와 잭이 만나고 얼마 뒤에 휴고를 만나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잭은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는 잭에게 처음으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아무 가족도 없이 길을 떠돌아다니던 저를 챙기시고 지금의 저로 성장하도록 키워주셨지요.
하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그건 휴고도 마찬가지였겠죠.
저와 그가 결렬한 날도, 만약 잭이 살아있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모킹버드를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죠."
그는 다시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모킹버드를 떠났기에 지금의 빅토리아 하우스키핑 동료들을 만나고, 로프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선택에 후회나 미련은 남아있지 않죠.
그러나...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남는군요.
저는 그 허전함이 휴고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저는 그와 화해를 했고,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은 좋은 관계를 유지중입니다.
로프꾼님, 그렇다면 이 허전함은 대체 무엇일까요? 로프꾼님처럼 현명한 분이시라면 이 문제의 답을 알 수 있으실지도 모릅니다."
그의 진심이 담긴 질문에, 벨은 진지하게 고민하는듯 눈을 감았고, 짧은 시간이 흘러 곧 입을 열었다.
"리카온씨를 보살펴줄 따뜻한 사람이 그리운거 아닐까요?"
그녀의 말에 리카온은 무언가 깨달은 듯 잠시 행동을 멈췄다.
'보살펴줄 따뜻한 사람..?'
그는 벨과 만나기 전 자신이 집중해서 읽었던 책을 떠올렸다.
그 책의 내용은 '보살핌', 게다가 그는 사실 글보단 책의 사진에 더 집중했다.
엄마가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진.
그동안 있던 허전함을, 자신의 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몸만큼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벨은 핸드폰을 보곤 그에게 말했다.
"아, 오빠가 부르네요. 리카온씨, 오늘 하루 즐거웠어요. 다음에 봐요!"
"넵, 안녕히가시죠..."
급히 달리는 벨의 뒷모습을 보며 리카온은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을 느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 새벽, 리카온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노을이 지던 시간에 벨이 했던 말,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계속 그의 마음속을 헤집었다.
그러나 내일은 그의 업무 시간, 더이상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마음을 차분히 달래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광장 어느 구석에서, 그는 달을 바라보며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그때 벨님이 내 얼굴을 보셨던 이유는 뭘까...'
평소였으면 그냥 넘어갈 그였지만, 보름달의 영향 때문일까, 그는 별개 다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자신의 얼굴을 봤냐며 역으로 받아치셨지...'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리카온씨!"
그 목소리는 다름아닌 벨, 리카온은 살짝 놀란듯 눈을 크게 떴지만 곧 평소의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또 만났네요. 늦은 새벽에 무슨 일이십니까?"
"아, 단순히 잠이 안와서요. 리카온씨는 뭐하고 계셨어요?"
"아, 저 역시 잠이 안와 산책을 나왔습니다. 지금은 보름달을 보고 있고요."
"리카온씨는 보름달을 보세요. 저는 리카온씨를 볼게요."
"...?"
갑작스러운 벨의 말에, 리카온은 말문이 막힌 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벨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혹시 부끄러우세요?"
"...아뇨. 단지 갑작스러워서 제때 반응을 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했던 말은 잘 생각해보셨어요?"
"따뜻한 보살핌이 그리운거 아니냐는 말씀 말이신가요? 네, 로프꾼님의 말이 일리가 있는거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리카온씨도 알고 계실거지만 저랑 오빠도 저희를 보살펴주신 선생님이 있었거든요. 그때의 선생님의 따뜻한 품이 가끔씩 그리워져서 어쩌면 리카온씨도 저희랑 똑같은 마음 아니실까 해서 대답한거에요."
"역시 로프꾼님이시군요."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로프꾼님이랑 있으면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마침 아까전까지 로프꾼님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벨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그의 꼬리를 가리켰다.
"꼬리는 왜..?"
그가 꼬리를 보자, 그의 풍성한 꼬리는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꼬리 흔들리시네요, 리카온씨."
"..."
그는 약간 부끄러워진듯 고개를 숙였고, 벨은 더 장난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벨은 리카온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감촉에 그는 당황하며 머리를 빼려 했지만, 그녀의 손길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편안하고... 따뜻했다.
"그동안 고생많으셨잖아요. 개과 시렌은 머리를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아진대요."
"벨님..."
리카온, 그는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그의 부모는 누구인지 알 수조차 없었고, 잭을 만나기 전까지는 따뜻함이라는 걸 느껴본 적도 없었다.
잭을 만나고, 휴고를 만나고 나서, 그는 잠시 평화를 찾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잭이 죽고, 시간이 흘러 휴고와 결렬하며 그의 두 다리와 눈은 갈려나갔다.
후에 빅토리아 하우스키핑에 들어가서, 그는 다시 평화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쉴 틈은 없었다.
아니, 정확힌 '쉴 틈'은 있었지만, '감싸질 틈'은 없었다.
그는 불우한 과거를 가진 자신의 친구 휴고만큼이나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러한 삶속에서 그는 따뜻한 보살핌, 감싸짐을 그리워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마음을 채워준건, 다름아닌 벨의 손길이었다.
리카온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도, 아니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속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오랜만에 경험하고 있었다.
보름달 아래에서, 늑대 한 마리는 한 소녀의 손길속에서 마음속 허전함을 채우고 있었다.
중간중간 내용은 리카온 신뢰퀘 몇개 섞어서 함 써봄
댓글 12
제목부터 무섭노시발
이상한거 아니다 게이야...
와 휴고나올까봐 개쫄리면서봤네
bl일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어
개형 최애인데 휴고랑 게이 분위기 극혐해서 쓴거
글 잘쓴다 흡입력 ㅆㅅㅌㅊ
노말로 써줘서 고맙구나,,, 순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