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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소라사키 히나와, 한 소녀를 선택한 선생님과, 그들의 키보토스가 맞이하는 하나의 엔딩.
프롤로그 『풍기위원장 없는 아침』
"위원장님의...... 히나 위원장님의 헤일로가, 부서졌다......?"
아침. 해가 뜨고 생물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 그러나 그런 섭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소란스러운 게헨나 학원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적과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곳, 풍기위원회 본부. 그 가장 안쪽에 있는 위원장실의 아침을 맞이한 고요함이라고 한다면, 행정관 아마우 아코의 완전히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도 방을 채우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 상태 그대로, 아코는 다음의 말을 잇지 못하고 굳어 버린다. 사실을 아코에게 전하고, 그 원인에 대해 선생님 자신도 더 이상 아코에게 전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코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다. 컵이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하고 오늘 가장 큰 소리를 내며 깨졌다. 하지만 컵 파편이 흩어져도, 안의 시커먼 커피가 바닥에 퍼져 일부가 빈틈없이 손질된 아코의 구두를 더럽혀도 아코는 전혀 그녀답지 않은 초점 없는 멍한 시선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아코."
아코가 그 단 세 글자를 말할 때까지의 시간은, 선생님에게 대단히 길게 느껴졌다. 이렇게 동요하며 넋을 잃은 아코를 보는 건 처음있는 경험이었고, 뭔가 좀 더 다정한 말을 해주고 싶었던 선생님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코에게 방금 전에 전한 사실을 거짓말이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곧바로 정면에서 타이르듯 부정하면 아코는 다시 한없는 사고의 루프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지금 아코가 빠져들고 있는 늪은 생각해봐야 결론이 나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칫 현실 부정과 도피로 달려가 정신이 이상해져 버리는 밑바닥 없는 늪이다. 선생님은 그런 늪에 빠지지 않도록 눈 앞에 드디어 실성하기 시작해 제정신이 아니게 될 뻔한 아코에게 다시 한번 전할 말을 분명히 전하기로 했다.
"풍기위원장, 소라사키 히나는 죽었어."
선생님의 그 말은 아코의 귀에 분명히 닿았을 터. 선생님은 눈앞에 있는 아코의 총명함을 대단히 높이 사고 있다. 게헨나에 소속된 학생, 특히 소라사키 히나 이하 풍기위원회 관계자라면, 그녀의 자질을 부정하는 사람은 절대 없겠지. 그러나 그 아코가 이제는 감정이 마구 뒤엉켜 선생님의 간단한 한마디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몰려 있었다.
선생님은 커피잔의 파편과 검은 웅덩이를 즈려밟으며 움직이지 않는 아코 쪽으로 다가가서는 조용히 그 투명한 푸른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그러자 곧 선생님의 몸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선생님은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 손이 움직일 때마다 흐느끼는 소리는 커져 오열이 되어 아이 같은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선생님에겐 여전히 할 말이 없었고, 그저 계속 손을 움직여 무릎부터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코를 안아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아마우 아코에게 소라사키 히나는 너무나 큰 존재였다. 게헨나 학원 풍기위원회 리더와 구성원이라는 사이 이상의 경외와 친애의 정이 아코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아코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주위에는 간단히 느껴질 정도의 크기였다. 그 아코가 히나를 잃은 것이다. 아코는 벌써부터 울다 지쳐 힘이 풀린 듯 했다.
히나는 어젯밤 아코에게 그동안 빠뜨린 적 없었던 정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도착해야 할 그 연락을 처음으로 받지 못한 아코의 초조함. 그리고 이 방으로의 호출 연락을, 기대하고 있던 위원장으로부터가 아닌 선생님으로부터 받았을 때의 공포. 그리고 그녀도 당연히 풍기위원장에게는 적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기회가 있다면 위해를 가하려고 획책하는 자의 존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남달리 의식하고 있었으리라. 총명한 그녀이기 때문에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 고생은 상당했겠지. 그렇게 아코를 염려하는 생각으로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둘 다 정확한 시간은 몰랐지만 아코는 어느 정도 진정됐고 선생님은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나 아코는 선생님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선생님도 껴안기 위해 등으로 두른 손을 그대로 두었다.
잠시 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흐느끼는 듯한 숨결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흐느끼듯 콧소리를 내더니 아코도 드디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아코를 품에 안고 있던 손을 조금 풀고 살짝 속삭이듯 귓가에 말을 걸었다.
"아코, 부탁이 있어."
아직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선생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인 아코의 표정은 선생님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움찔하며 몸에 힘이 들어갔음을 느꼈다. 듣고 있다, 그리고 이쪽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정됐다고 판단한 선생님은 자신의 부탁 내용을 전하기로 했다.
"히나가 사라진 일, 잠시 덮어뒀으면 좋겠어. 이오리나 치나츠에게도."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아코에게서는 일절 반응이 없었다. 당연하다고 선생님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아코의 입장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풍기위원회는, 아코에겐 미안하지만 히나가 정상에 있어야 성립되는 조직이다. 간부인 이오리나 치나츠의 힘을 결집한다고 해서 히나 없이 지금의 풍기위원회를 유지할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히나가 사라진 뒤의 일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아코, 이오리, 치나츠의 힘을 합쳐 히나와는 또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할 터. 그러나 지금 선생님의 부탁은 그 풍기위원회 운영이라는 짐을 아코 한 사람에게, 더구나 일체의 준비기간도 없이 맡겨버린 거나 다름 없다. 그 현실을 아코도 누구보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즉답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한 번 느슨하게 한 힘을 아주 조금만 더 강하게 주며 다시 아코에게 다그친다.
"아코, 지금 게헨나 풍기위원회를, 아니, 게헨나 학원을 지킬 수 있는 건 아코밖에 없어."
그 말을 했을 때, 선생님은 아코에게 지금 자신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의 아코와 눈을 마주쳤다면 통찰력이 뛰어난 그녀가 이쪽의 불안과 거짓말을 간파해 버릴까봐. 어쩌면 이미 어투에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 생각은 아코가 손을 뿌리치고 한 발짝 물러서 선생님의 몸에서 거리를 두는 순간 단숨에 커졌다.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이 고개를 숙인 것은 말 그대로 간청이 반, 아코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이 또 반이었다.
"선생님."
그 목소리는 언제나 냉정한 아코의 목소리였다. 선생님이 그 말에 고개를 들자 아코는 휙 발길을 돌려 선생님에게 등을 향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코는 짧게 그리 대답하고는 옆으로 몸을 숙여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깨진 컵 조각들을 손 위에 주워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밑으로 보이는 아코의 부츠 굽과 타이트한 스커트의 엉덩이 라인이 신경쓰였다.
"선생님."
다시 고개를 돌린 아코가 갑작스레 말을 걸어 선생님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일이 마무리되면, 위원장님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약속할게."
잘게 조각난 파편은 줍기에는 끝도 없는 숫자가 되어 있었지만, 아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주워 모으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코의 등에 한마디만 답하고는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선생님은 방문을 닫고 게헨나 학원 밖으로 걸어가면서 불과 며칠 전, 같은 방에서 똑같이 단둘이 있었던 히나와의 대화를 되새기고 있었다.
소라사키 히나 암살 계획
그날, 선생님을 풍기위원장실로 불러낸 건 히나였다.
『지금 만날 수 있어?』
여느 때와 같은 짧은 모모톡, 평소와 다른 것은 그 연락이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보내졌다는 사실이다.
『좋아. 어디서 만날까?』
『풍기위원회 본부로 와.』
그 장소의 지정도 선생님에게는 의외였다. 히나로부터 호출이 있을 때는 대개 학생도 초목도 잠자는 심야였고, 풍기위원장과 샬레의 선생님이라는 직함 탓에 자신이 게헨나나 키보토스에 작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염려하는 경향이 있는 그녀는 대체로 게헨나 밖이나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의 회합을 올바르다고 여기고 있었다. 또한, 풍기위원회로서의 의뢰 같은 공적인 일이라면 반드시 아코를 통해 연락이 들어가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 평소와의 차이에 조금 위화감을 느끼며 선생님은 게헨나 학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인원이 배치된 경비 학생과의 짧은 대화를 거쳐 풍기위원회 위원장실에 들어가자 넓은 방 가장 안쪽에 설치된,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인 집무 책상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손님용 응접 테이블과 함께 놓여 있는 소파에, 평소의 교복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히나가 있었다.
"아, 선생님. 와줘서 고마워."
언뜻 보기엔 자고 있었던 것 같지만, 신경은 항상 날카롭게 하고 있는 거겠지. 문을 여는 순간 이쪽을 인식한 히나가 소파에 깊숙이 앉은 채 말을 걸어 왔다. 선생님은 반대편 소파가 아닌 히나 옆에 걸터앉는다.
"미안해, 선생님이 올테지만 신경쓰지 말라고 전해둔 탓에 마실것도 없어서."
"괜찮아. 드문 일이네. 이런 시간부터 게헨나 풍기위원장이 오프라니."
사과하는 히나에게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 히나의 모습을 쏙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서류가 쌓인 집무용 책상 쪽을 순간적으로 흘끗 본 히나의 눈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귀찮다고 말할 듯한 느낌이었다.
"피차일반이겠지."
"나는 학생과 만나는 게 일이니까."
이번에는 히나의 표정에 조금 발칙한 것을 보는 듯한 모멸의 빛이 나타난 듯 했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볼일이 있었지?"
"그러네.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선생님은 『에덴조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히나의 입에서 『에덴조약』이라는 말을 듣고 역시나 하는 마음이 반, 그리고 귀찮구나가 반이라는 게 선생님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이 세계, 키보토스의 치안은 여하튼 나쁘다고밖에 할 수 없다. 밖을 걸으면 총알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면 마치 일상 대화처럼 총을 겨누고 있다. 은행강도 같은 흉악범죄 소식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이렇게 우리가 한가롭게 소파에 나란히 걸터앉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일정한 질서가 있기 때문이고, 그 질서란 곧 힘이며, 그것은 무력이나 권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키보토스 전역에 영향을 주는 굴지의 힘을 지닌 것이 여기 게헨나 학원이며, 에덴조약의 상대교, 트리니티 종합학원이다. 예로부터 권력자끼리 서로를 받아들인 경우는 없다. 게헨나와 트리니티도 그 예시에 빠지지 않고 계속 충돌을 거듭해 왔다. 그 두 학원이 지금 에덴조약에 의해 손을 맞잡으려 하고 있다.
그것은 키보토스의 판도가 크게 바뀐다는 걸 의미한다. 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게 허용되는 키보토스에서 최대의 군사 동맹. 평화조약 같은 건 이름뿐, 이 힘을 이용해 키보토스의 정복을 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에덴조약의 목적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좋은 거 같아. 무익한 싸움을 하지 맙시다, 라는 거잖아."
"식당에 블랙페퍼가 놓여야 하는지 화이트페퍼가 놓여야 하는지의 논쟁에서 폭격기를 날리는 녀석들이 무익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선생님의 의견은, 다툼은 없앨 수 없지만 줄일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키보토스이며, 키보토스의 풍기, 치안 유지라는 난제를 늘 최전선에서 마주하고 있는 히나는 이를 일축했다.
"아......"
말문이 막혀버린 선생님은 이곳에 오는 길에 4분의 3이 날아간 식당 앞에서 주리가 큰 짐칸에 잔해를 쌓으며 철거작업을 하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전익기의 특징적인 잔해가 흩어져 있던 것과 묘하게도 코에 전해지는 향기가 감돌았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사고방식은 틀린 게 아니야. 트리니티는 우리의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에덴조약이 있으면 멈출 수 있지. 그렇게 룰을 만들어서 싸우지 못하게 하는 거야. 에덴조약은 골이 아니지만, 그것을 위한 거대한 수단이야."
히나는 자신의 생각을 이쪽에 들려준다기보다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는 에덴조약을 성사시키고 싶고, 최근에는 그것을 위해 움직이고 있어. 그러면서 생각하는 건, 굉장히 적이 많다는 것."
히나가 말할 것도 없이 적이 많다는 건 선생님의 감각으로도 수긍이 갔다. 애초에 풍기위원회는 혼돈, 자유를 중시하는 게헨나생에게는 성가신 존재여서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학생이 많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대립해 온 트리니티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얘기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따르는 학생이 어느 정도 있을지는.
그때 문득, 룰을 만들겠다던 히나의 말이 선생님의 뇌리에 몹시, 극히 위험한 것으로 새겨졌다. 히나는 풍기위원장으로서 게헨나의 학생들에게 날마다 룰의 준수를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룰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히나라는 막강한 존재가 게헨나에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을 게헨나의 구역 밖, 트리니티나 키보토스 내의 다른 학원까지 넓혔을 때, 과연 룰을 룰로서 받아주는 학생들만 있을까. 하물며 게헨나 교내에서조차 언젠가 히나가 사라지고 룰만 남았을 때, 지금과 같은 잠깐의 휴식시간이라도 남게 될까. 힘없는 룰만 남아 새로운 싸움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가운데 히나는 말을 잇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 지금부터가 본론."
그렇게 말하고 히나는 선생님 옆에서 일어나 집무실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며 선생님에게서 살짝 거리를 둔다. 거기서 빙글 돌아 선생님을 향하자 작은 체구와 긴 머리, 존재감을 발하는 코트가 펄럭였다.
"내 계획에 함께해줬으면 좋겠어."
"계획?"
자신의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던 선생님은 그렇게 짧게 되묻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신경쓰지 않고 히나는 말을 이었다.
"나, 소라사키 히나를 암살하는 계획."
"암살?"
"그래. 에덴조약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녀석들 중에 내 존재가 방해되니 지워버리려는 사람들이 있어."
대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데다 선생님의 생각 속에서는 아직 히나의 이야기가 잘 정리되지 않았다. 암살이라는 행위. 정면으로 승부해도 승산이 없는 히나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 사람이 취할 듯한 행동. 만약 히나의 암살 계획이 있다면, 이는 확실히 말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히나가 말한 계획은 자신을 암살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게헨나 안에서 말이야."
선생님은 일단 사고를 배제하고 눈앞의 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에덴조약 저지를 위해 히나를 배제하고 싶은 세력은 트리니티가 아닌 게헨나 안에 있는 것 같다.
"전에 말이지, 우연히 보급부대와 행동하고 있을 때 습격이 있었어. 타이밍도 그렇고 수법도 그렇고 훌륭했지만, 이쪽의 동향을 나름대로 자세히 알고 있지 않으면 그 습격은 불가능. 뭐, 아직 감을 잡을 수는 없지만."
불온한 이야기를 시원스레 말해 버린다. 선생님은 새삼 그녀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 감이 맞다면 지금의 히나에게는 일체 믿을 만한 아군이 없다는 게 아닐까. 게헨나 안에 적이 있다는 것은 이 건물 안에서조차 조심성 없는 한 마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괜찮아. 그것 때문에 사람을 물렸으니까, 여기서의 이야기는 새어나가지 않아. 절대로."
이래서는 히나의 계획에 대한 언급도 섣불리 할 수 없다고 선생님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을 히나가 짐작하고, 선생님에게 안심하고 말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게헨나 내의 적은, 만마전?"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만마전을 전혀 신용하고 있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좋은 정보 밖에 전하지 않았어. 따라서 배신자는 풍기위원 내부에 있겠지."
선생님이 혹시나 하고 일시적인 위안을 위해 제시한 가능성도 시원하게 잘라내는 히나. 아마도 계획이 떠오른 순간부터 히나는 이미 혼자 싸울 각오였던 것 같다. 게헨나 풍기위원회로서가 아닌, 한 명의 학생인 히나로서 선생님에게 협력을 바라고 있는 모습에서 그런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내가 살해당한 걸로 하겠어. 암살자도 바보가 아니니까 다른 곳에서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공을 빼앗겼다는 조급함을 느낀다면 최고겠네. 아무튼 그렇게 되면 풍기위원회의 혼란을 부추기거나, 권력을 잡으려고 하거나."
전략을 생각하는 히나는, 자신의 생명이 그 미끼가 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마치 미래가 보이는 것처럼 생각을 풀어간다.
"그러면 배신자를 일망타진할 수 있어."
그렇게 단언하고 고독한 싸움의 포문을 연 히나의 비장한 결의의 말과 표정 속에, 아주 조금 장난스러운 미소가 섞여 있었던 것이 선생님에게는 조금이나마 다행이었다.
"어때? 조금이지만,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
"기다렸지."
"이거, 제대로 작동하는 거야?"
선생님이 아코와 헤어진 후 제 1교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히나에게 말을 걸자, 아마 지금까지 써 본 적 없을 듯한 싸구려 베이스볼 캡을 깊이 눌러 쓴 그 아래에서 들려오는 첫마디는 상당히 언짢은 것 같았다. 이거, 라는 건 밀레니엄의 엔지니어부에게서 양도받아 히나에게 건넨 헤일로 기만 장치를 말하는 거겠지.
히나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정체를 들켜버리는 것, 특히 한눈에 개인이 식별할 수 있게 되는 헤일로의 문제였다. 엔지니어부가 말하기를, 획기적인 발명이 아니라 옛날에 유행했던 파티용품을 모방한 물건으로, 히나도 그 존재는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할 것도 없이 히나의 계획은 배신자에게 히나가 살아있다고 들켜버린 시점에서 와해되고 만다. 그런 중대한 문제를 이런 장난감에 맡길 수 있을지 하는 불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생님이 보는 한, 히나의 머리에는 평소의 불길한 것과는 다른, 꽤 심플한 헤일로가 떠 있었다. 이 정도면 이 장소도 결코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닌데도, 행인들은 설마 여기에 우는 아이도 입 다물게 할 풍기위원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원인은 헤일로를 시작으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선생님의 판단으로는 복장이 제일 큰 요소였다.
"괜찮아, 외형은 확실히 달라 보여."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그래서, 아코는 괜찮았어?"
"응, 충격은 받았지만 당분간은 아마 생각대로 히나에 대해선 비밀로 해줄 거야."
일단 두 사람은 함께 제 1교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기 시작한다. 히나는 선생님의 그림자에 가려지듯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항상 앞서가는 히나의 뒤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대단히 신선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 나는 이제 교외의 폐공장으로 갈 생각인데, 거기서 당장의 협의를 하고 나서 해산해도 될까?"
"그.....러네. ..........후훗, 아하하하하."
등에 전해진 아무렇지도 않은 진지한 말에 선생님이 돌아서서 대답을 하려 한 순간, 따라오는 히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만났을 때부터 참았던 감정이 끝내 무너져 웃을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뭐야?!"
갑자기 멈춰 서서 웃기 시작한 선생님에게 전혀 짐작가는 게 없어 당황하고 마는 히나.
"아하하하...... 미안미안."
"대체 뭐야? 뭔가 이상해?"
사과하는 선생님에게 아무리도 외모 때문에 뭔가 놀림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히나는 기분 나쁜 듯이 선생님에게 다그친다. 그 덕분에 선생님은 가능하면 말하지 않고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내뱉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아니, 그거, 중학교 때 교복?"
그 순간, 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히나의 새하얀 피부가 단번에 홍조를 띄었다.
"문제 있어?"
"아니, 귀엽구나 해서."
자세히 말하자면 히나 자신의 용모와 옆에서 보았을 때의, 중학생이 발돋움해 고교 교사를 방문하고 있는 상황이 어우러져 사랑스럽다는 감상이 됐을 테지만 세세한 설명을 덧붙이면 히나가 진심으로 화낼 것 같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그것만을 간결하게 말했다.
"......바보 취급 한 거 아냐?"
"안 했어. ......아파!?"
돌아보지 않고 말한 선생님의 발뒤꿈치를 히나가 뒤에서 찼다.
"너무해, 하지만, 그 모습으로 폐공장에 드나드는 건 좋지 않다고 봐."
"게헨나라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히나는 그렇게 말한다. 어느 쪽인가 하면 히나의 말대로 게헨나의 치안을 생각했을 때 그리 드문 광경도 아닐 터였다. 그러나 학생을 교육하는 입장에 있는 선생님으로서는 안타까운 이야기임에 틀림없었고, 적어도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히나에게 제안한다.
"묘하게 주목받아 보도되면 그거야말로 곤란하니까 말야. 좋아, 지금부터 옷을 사러 갈까."
"하아? 그런 경우는...... 잠깐!"
"결정! 가자."
선생님은 머뭇거리는 히나의 손을 잡고 걸어가기로 했다. 이대로 대로로 나가면 일단 게헨나는 벗어날 수 있고, 샬레 방면 버스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택시가 지나고 있을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했다.
*******
"어서오세요, 괜찮으시다면 용건을 말씀해 주세요."
샬레 근처에서는 어쩌면 게헨나의 잘 아는 얼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생님이 선택한 것은 밀레니엄의 부티크였다. 버스에서 내려 세련된 거리를 히나와 걷는 시간은 선생님에게도 행복했지만 중학생을 데리고 다니는 어른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게헨나 중학생이 폐공장에 드나드는 것 이상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결과, 가리지 않고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아이의 토탈 코디를."
"잠깐......."
도망치려던 히나의 양 어깨를 잡고 안드로이드 점원 쪽으로 민다. 점원의 표정을 나타내는 액정이 활짝 웃는 얼굴 표시가 되었다.
"알겠습니다. 희망사항은 있으신가요?"
"본인에게 물어보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의견일 거 같지만 최대한 밝은 색의 상의로,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세요."
곤란해보이는 히나의 간청하는 듯한, 찌르는 듯한 시선을 받으며 점원에게 전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쪽으로 와주세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빠른 솜씨로 히나의 등을 선생님에게서 데려가더니, 원망섞인 시선을 계속 이쪽으로 보내고 있는 히나를 순식간에 가게 안쪽으로 끌고들어가 버렸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느긋하게."
히나가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껏 멋을 낸 히나와 나란히 있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멋을 부린 상태로 왔기 때문에 한가로이 자신의 옷을 보면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던 선생님은 문득,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히나에게도 당분간 그런 시간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점원에게, 잠깐 가게 밖으로 나간다는 취지와 끝났을 때의 연락처를 전해주고 히나를 기다리는 동안 밀레니엄의 거리를 걸어 보기로 했다.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한 돌길은 아직 오전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고 있을 때, 폰의 호출음이 울렸다. 벌써 가게의 연락인가 하고 화면을 보니 발신자는 아코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생님. 아까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지금 어디 계신가요?』
『미안해, 잠깐 샬레 밖에 있어.』
아코의 물음에 선생님은 무심하게 상세한 거처를 숨기고 전했다.
『그럼 가능한 한 간결하게. 우선 향후 풍기위원회의 운영을 포함한 대응입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2, 3일 정도는 제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응.』
『그런 이유로, 오늘 시간이 되실 때라도 본부로 와 주실 수 있나요? .......현 상황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 밖에 계시지 않아서.』
전화 너머로 아코가 쥐어짜듯 간청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살짝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형편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내일 밤은 안 될까? 나도 조금, .......정리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아코는 이쪽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그러고는 질문을 거듭해 온다.
『히나 위원장님의....... 헤일로를 부순 상대는, 누구입니까?』
『지금 알고 있는 건 아직 적지만, 내일 이야기할게.』
『......알겠습니다.』
아코의 대답은 아까보다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돌아왔다. 원래라면 당장이라도 캐묻고 싶은 정보겠지. 그런 점에서는 역시 착란에 빠져 있었는지 일단 나를 돌려보내버린 아코의 실책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은 생각했다.
『미안해, 아코. 그럼 내일 봐.』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경치를 보고 있을 기분이 아니게 된 선생님은 재빨리 가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충분히 시간을 들여 가게 안을 물색했을 무렵, 조금 전 점원에게 말을 걸어 선생님은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완전히 새롭게 차려입은 히나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머리색에 녹아드는 듯한 흰색 블라우스에 짙은 브라운 쇼트 팬츠. 늘씬 다리 라인을 강조하는 사이하이 삭스와 쇼트 부츠, 이쪽의 시선을 가리는 캐스켓(casquette)이 검은색인 건, 점원의 선택인지 밝은 색을 택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대한 못마땅함으로 히나 자신이 택한 것인지 선생님은 알 수 없었지만, 대단히 히나다움이 엿보이고 있었다.
"......어때? 나는....... 그다지 이런 것의 좋고 나쁨을 모르겠지만......."
선생님을 안내한 점원은 웃는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생님도 히나의 모습을 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히나가 그렇게 말을 꺼낼 때까지 코디를 위한 방은 완전히 무음에 싸여 있었다. 평소 풍기위원장으로서 흐트러짐 없는 히나의 모습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 없는, 쭈뼛거리는 가냘픈 목소리가 선생님의 의식을 겨우 되찾게 했다.
"귀여워."
"좀 더 구체적으로 뭔가 없어?"
선생님으로서는 솔직한 의견이었지만 히나는 불만 반, 수줍음 반의 빠른 말로 선생님에게 입술을 내밀었다.
"내 생각대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며 히나에게 다가가자 두 사람의 신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났고, 히나는 더 위로, 선생님은 더 아래로 시선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이 히나가 쓴 캐스켓을 집어들자 둘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됐다.
"평소 교복도 멋있지만, 여자아이 같은 옷도 엄청 잘 어울려, 히나."
히나도 그때, 선생님의 모습이 평소 러프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았고, 그 분위기 차이인지 단순한 거리감의 문제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얼굴이 홍조를 띠면서 고동이 빨라지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읏...... 선생님, 나......."
조금만 더 히나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정도의 대꾸가 가능했을 테지만, 그럴 만한 시간도 여유도 그녀에게 주어지진 않았다. 눈앞에서 화가 날 정도로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싱글벙글 웃는 선생님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반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꼼짝 못하는 히나의 머리에 살며시 캐스켓을 씌운다.
"잠시만 기다려."
선생님은 곧 히나가 입고 있는 하의와 같은 색의 코트를 들고 돌아왔다.
"점원씨. 사이즈, 이거면 될까요."
"문제 없습니다."
선생님은 확인하자마자 히나의 등 쪽으로 돌아 히나에게 코트를 입히려 재촉했고, 히나는 바라는 대로 코트에 팔을 집어넣었다. 히나는 살짝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짙은 색조의 코트를 걸친 만큼 시크한 색조가 되었지만 선생님, 아까느 밝은 색이 귀엽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히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선생님이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11시가 조금 넘은 참이었다. 뭔가 떠오른 듯 선생님이 히나에게 묻는다.
"저기, 히나."
"왜?"
"점심, 좀 늦어도 괜찮아?"
그것은 점심 전인 이 시간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대수로울 것 없는 질문이었기에 특별히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던 히나도 별 의문 없이 승낙했다.
"상관없는데."
하지만, 이후 몇 시간 동안 히나는 이 대답을 후회하게 된다.
*******
"잘못했다니까, 기분 좀 풀어줘."
"끈질겨. 딱히 화나지 않았어."
선생님과 히나는 게헨나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시각은 오후 3시가 넘었고, 선생님은 눈앞의 큰 접시에 담긴 스파게티를 빙글빙글 돌려 익숙한 솜씨로 입에 가져가는 히나를 보며 연신 사과만 하고 있었다. 부티크에서 대화한 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라며 시작된 히나의 패션쇼는 매장 내 옷들을 전부 기억해 버릴 정도로 선정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선생님에 의해 히나 자신의 위압감을 담은 「적당히 좀 해」 라는 발언으로 중단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콧김을 내뿜으며 걷는 히나를 따르듯 둘이서 이 가게에 들어와서는 소파에 털썩 걸터앉아 「페페론치노와 마리나라, 그리고 까르보나라를 전부 곱빼기로, 식후엔 아이스 커피를 부탁해.」라고 주문해 지금에 이른다.
히나가 마지막 한 입을 먹어치우자 곧 아이스커피가 두 잔 나왔다.
"그건 그렇고 히나도 도망갈 곳으로 게헨나 자치구를 선택하다니."
빨대에 입을 댄 히나에게 선생님이 그렇게 말을 걸자 히나는 일순간의 곤혹 끝에 생생하게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나중에 폐공장 구역으로 이동할테니까....... 아니, 미안해, 선생님. 머리에 피가 올라서, 정신 차려보니 이곳을 선택했어."
히나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적당히 좀 해」라며 화를 낸 이유는 옷 갈아입기가 끝이 없어서가 아니라, 몇 벌의 옷을 가져온 선생님이 흥분한 듯 「이것 좀 입어봐.」라며 망설임 없이 블라우스 단추에 손을 댔을 때 묘하게 두근거리고, 받아들여버릴 것 같은 그런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계속 숨기고 있었다.
"아니, 괜찮을 거 같아. 이만큼 귀엽게 변장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렇다면 사람이 많고 지리에도 익숙한 게헨나가 좋아. 나무를 숨기려면 숲 속이라고도 하잖아."
그런 히나의 갈등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하아, 하고 한숨 쉬었을 무렵에는 히나의 마음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럼 공장지구로 이동할게. 연락은 나중에 다시 하겠어."
"목욕이나 샤워는?"
"며칠이나 잠적하는 게 아냐. 배신자도 내가 없어진 걸 깨닫고 바로 행동하겠지."
"히나는 땀흘려도 좋은 냄새지만, 한창때의 여자아이가 며칠이나 몸을 씻지 않는 건 선생님으로서는 어떨까악!!"
히나의 작은 다리가 선생님의 정강이를 노렸다.
"그럼."
"기, 기다려, 히나. 연락용 계정은 있겠지만 익명의 선불폰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일어나 떠나려던 히나를 글썽이는 눈으로 선생님이 불러세웠다. 이름 불린 것에 조금 움찔한 반응을 보인 히나에게 선생님을 계속 말을 잇는다.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부를 때, 어떡하지."
같은 우려를 갖고 있던 히나는 다시 자리에 앉더니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오토리(鴻) 소라."
그것은 소라사키 히나의 강한 부분을 모두 제거한 듯한, 한 소녀의 이름이었다.
"이럴 때를 위한 비밀 이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어. 아코도 몰라. 부를 때는 소라라고 불러."
"......알았어."
선생님은 여기서 굳이 살짝 장난스럽게 이름을 부를까 망설였지만 짧게 그렇게만 답했다.
*******
그것은 머뭇거리는 히나를 반강제로 설득해 휴대폰 가게로 향하던 도중의 일이었다.
"선생님, 지금 골목."
"알고 있어. 내가 갈게."
밀레니엄과는 조금 달느 점포의 구조가 이어지는 게헨나 지구의 번화가지만, 가게와 가게 사이의 골목으로 한발짝 들어가면 마치 다른 세계와 같은 어두컴컴함에 지배되고 만다. 히나와 선생님이 걸으면서 이변을 눈치챈 것도 그런 골목 중 하나였다.
선생님은 만류하려던 히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척척 골목으로 들어서서는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듯한 두 사람의 등을 향해 거리낌없이 말을 건다.
"여어, 뭐하고 있어?"
"아앙?"
"뭐야 네놈."
갑작스러운 방문자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돌아본 그녀들이 맞춰 입고 있는 것은, 어느 불량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걸 가리키는 회색 제복.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면 우선 스스로 다가설 생각을 하지 않는 존재였다. 이런식으로 말을 걸 일도 없을거라 생각하며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샬레의 선생님이야.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
소녀답지 않게 한껏 위압이 담긴 표정을 짓던 두 사람의 얼굴이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단숨에 굳어졌다.
"위험해, 가자."
"응."
귓속말처럼 작고 짧은 대화를 나누던 소녀들은 선생님의 좌우를 지나 대로를 향해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이후에는 선생님과, 소녀들에게 휘말려있던 불행한 키보토스 주민의 모습이 있었다.
"아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주저앉은 수인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걸 돕는 일을 히나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표적이 된 건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그 짐 때문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내용물은 별 거 아니지만, 보시는 대로 꽉 차있는 거라......."
"조심하세요. 귀중품 운반 시에는 게헨나 지역이라면 풍기위원회에 의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기꺼이 협조해 줄 테니까요. 다만, 법에 저촉되는 물건이 아니라면 말이죠."
"선생님."
수인이 감사를 전하고 떠나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히나가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소녀들에게 한 것과 같은, 조금 익살스러운 분위기 그대로 선생님은 답한다.
"풍기위원회 일을 늘려서 미안해."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그건 그렇고 게헨나의 불량한 아이들은 솔직해서 좋네. 교육이 잘 되어 있다고 해야하나, 주입되어 있다고 해야하나. 위에서 확실히 『샬레와 충돌하지 마라』라고 얘기하고 있겠지. 나로서는 문제행동 자체를 그만뒀으면 좋겠지만."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히나는 그렇게 거듭 선생님의 말을 부정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것 같았다.
"총에 맞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냐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 그 전에 히나가 도와줄 거잖아?"
약삭빠른 어른인 선생님이 그렇게 히나의 생각을 앞질러 알아맞히자 히나는 숙이고 있던 시선을 휙 들었다.
일상에 너무나도 잘 녹아들어 가끔 잊어버리거나 의식 밖으로 나가버리기 쉽지만 이곳은 키보토스라는 세계이며 소녀들은 당연하다는 듯 총을 소지하고 거리낌없이 그 힘을 행사하고 있다.
"아까 2인조도 상대가 쏘려고 했다면 총에 맞았을 테니까, 그건 무서워. 하지만 트리거에 손가락이 가지 않았고, 세이프티도 걸려 있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그 순간에 뛰어들어와 줬겠지?"
"확실히 그렇지만, 내가 옆에 항상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내가 없는 곳에서도 그런...... 읏!"
"괜찮아."
선생님은 모자 위로 히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억지로 대화를 멈췄다. 선생님에게서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 할 말을 잃은 히나는 언짢은 듯한 모습으로 찌그러진 모자를 고쳐 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
"역시."
두 사람은 안드로이드가 운전하는 택시로 공장 구역 입구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공장까지 직접 향하지 않고 걸어서 20분 정도 이동하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치 추정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히나가 신경썼기 때문이다. 히나가 아무리 혼자서 괜찮다고 해도 듣지 않고 완전히 어두워진 키보토스의, 더욱 더 인기척이 없는 공장 지구를 두 사람이 걷고 있는데 갑작스레 앞서가는 히나가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유별난 사람인 거 같아."
"히나와 함께라면 뭐든 즐거워. 그건 그렇고 어떤 너덜너덜한 폐공장에 묵을 까 걱정했지만 요즘 폐공장은 전기도 들어오고 깨끗하구나."
"뭐야 그게. 하지만 확실히 휴업 중인 공장이라고 말했더라면 선생님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끼치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이건 좀......."
히나가 본거지로 삼으려던 공장은 원료 공급 부족 전망에 따라 이날 계획적으로 휴업이 결정된 건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생님도 지적한 대로 묘하게 밝은 게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느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였다.
"침입자 발견."
히나가 모퉁이 끝에 모습을 드러낸다. 총을 휴대한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소리도 없이 빙글 이쪽을 돌아본다. 전자 음성이 이상을 알린다. 안드로이드가 외부인으로 파악한 이쪽으로 총을 겨눈다. 히나가 든 MG42의 굉음이 공기와 함께 안드로이드의 몸을 가른다. 그 일들이 순식간에 한꺼번에 일어났다. 한 박자 늦게, 나아가려던 방향에서 무수한 서치라이트가 조사되어 두 사람의 몸을 어둠에 비췄다.
선생님의 몸을 밀어내듯이 서치라이트로부터 몸을 숨기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히나가 선생님을 밀어 넘어뜨리는 형태가 된다. 선생님이 올려다본 히나의 표정은 전혀 여유가 없었고 초조함에 지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 시선을 치켜든 히나의 눈에 자신을 향해 조준을 마친, 퇴로를 막는 다수의 안드로이드가 들어왔고, 드디어 사고가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나가 싸우는 것을 포기하려 했을 때, 처음에는 멀리서, 주변 일대에 엔진의 중저음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확실하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고, 안드로이드를 포함한 전원의 의식이 그쪽으로 향했다. 굉음이 최고 볼륨에 달했을 때, 눈과 센서를 현혹하는 전조등이 나타났다. 눈과 귀가 익숙해질 무렵에는 탑재된 기관총이 눈앞의 안드로이드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오렌지 색으로 칠해진 차체에 『급양』 로고가 박힌 6륜 대형 장갑차였다. 차량은 마침 서치라이트와 두 사람을 가르는 벽이 되듯이 정지해 있었다.
"타세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재촉 받아 히나의 손을 끌며 차내로 올라탔다.
***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기우로군요. 선생님."
넓지는 않지만 6인용 좌석의 차 안으로 두 사람을 초대한 차의 주인은 쿠로다테 하루나였다. 차내의 다른 멤버가 소속된, 키보토스 굴지의 문제아 집단, 미식연구회의 리더다. 문제아, 라는 이유로 당연히 히나와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는 학생이다. 히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생님 옆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히나의 모습도, 측면 창으로 여전히 서치라이트 불빛이 들어오는 것도, 권총탄이 차량의 장갑을 드문드문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하루나는 말을 잇는다.
"선생님도 이 공장에 대한 소문을 들으셨군요."
"소문?"
"네. 오늘 가동률 악화로 조업이 중단된다고."
"그건...... 그렇지."
선생님이 히나 쪽으로 눈을 돌리자 히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휴업해야 할 공장에 어째서 이렇게 무장 안드로이드가 있는 거야?"
"그래요, 그게 저희가 여기에 온 가장 큰 이유입니다."
히나가 「풍기위원도 잡지 못한 뭔가가 있다......?」 하고, 선생님에게만 들리도록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조금 전까지는 드물었던 발포음이 서서히 규칙성과 연속성을 띠고 있었다. 카카카캉, 금속과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가벼운 소리와 살짝 늦게 발포음이 들려온다.
"라이트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가까이 오지는 않는 거 같아."
태블릿으로 차외 모니터를 보고 있던 붉은 머리의 학생, 아카시 준코에게서 그런 보고가 들어온다. 괜찮냐는 선생님의 걱정을 읽은 듯 하루나가 말한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 공장에 대구경 기관포나 대물 라이플, 대전차 화기류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확인 완료. 그것을 예상하고 이 푹스(TPz Fuchs)*를 빌려 왔으니까요. 힘껏 탄환을 낭비해주시고, 이후의 작전을 편하게......"
쾅! 유난히 큰 소리와 충격이 차 안에 울려 하루나의 말을 막았다. 일동의 시선은 소리의 출처, 차 안에 쌓여 있던 도시락의 연어를 뺨에 가득 채우고 있던 시시도우 이즈미의 머리 위 20cm쯤 되는 곳에 나타난 쇠말뚝 같은 것에 쏠려 있었다. 20초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같은 충격이 차량 내부를 덮쳤다. 차 반대편으로 대피하던 선생님이 앉았던 허리 부근에 또 하나의 말뚝이 생겼다. 그리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일동의 눈앞에 또 한번의 충격과 차체를 관통함으로써 에너지를 소진한 은빛으로 빛나는 끝이 뾰족하고 굵은 사인펜 같은 물체가 굴러 들어왔다.
"밟을까요?"
"바로!"
운전석에 자리잡은 와니부치 아카리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태평하고 침착한 목소리에 하루나가 즉각 대답하자 순간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쇠말뚝은 더 이상 차 안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푹스
2 / 2댓글 14
오
아 이거 풀림?
ㅇㅇ



나아직안봤는데 이거 피폐임? 진짜죽임?
ㄴㄴ
와 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