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주 전의 찌는 듯한 열대야는 벌써 잊혀졌는지, 불어오는 도심의 바람은 당혹스러울 만큼 싸늘하다.
'내복이라도 챙겨와야 했나.....그나마 겉옷이라도 입고 있어서 다행이군.'
하기야, 이 옷은 다용도로 쓰는 주머니가 많이 있어 지금 와서는 전 재산이 이 옷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입고 다니는 거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창 비가 쏟아지는 여름에 겉옷을 들고 다니는 건 방수 기능이 없었다면 꽤 큰일이었을 지도.
몰아치는 태풍에 통장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빗물에 젖기 시작할 때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바람에 무릎을 꿇을뻔했었다.
-지이이익. 스윽. 겉옷의 지퍼를 닫고 후드를 쓴다. 모자는 따로 벗지 않는다. 총을 들고 있는 상황이기에 따로 비는 손이 없는 것도 있지만, 부스스한 머리가 앞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아 다시금 모자를 꾹 눌러쓴다.
벌써 며칠째 공원의 수도에서 밖에 씻지 못한 몸에서는 슬슬 기분 나쁜 악취가 배어 나오려 한다.
머리카락이 떡져서 엉기는 느낌도 최악이다.
당연히 옷의 상태도 최악만 면할 뿐이지, 땀에 절어도 빨지도 못한 상태이기에 후드를 쓰니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
배가 부른 생각이라고 해야 할까.
마담이 지배하던 아리우스에 있을 때에는 이것보다 더 악취나는 환경에서 지낸 적도 많았는데 말이다.
그나마 아리우스의 분대장이자 스쿼드를 이끄는 리더였을 때는 굶지도 않았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도 날마다 할 수 있었지만....그것이 지금의 삶보다 좋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아마 스쿼드의 모두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에 불만을 생각하고 마는 것은....당신의 그 상냥함 탓일지도 모르겠군, 선생.'
하나, 둘, 셋.....그렇게 속으로 숫자를 세니, 냄세는 그대로였지만 참을 만은 한 정도로 느껴졌다.
지금의 기온은 16도 정도인가. 자칫하면 감기에 걸리기 쉬운 기온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열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체온이 떨어질수록 몸에 이상이 생기기 쉬워지고, 몸에서 열을 생산하기 위해서 칼로리를 더 소모하게 되니까.
그리고 일정량 이상의 칼로리를 소모하게 되면 배가 고프게 되고, 더 이상 굶는 것에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되어 식량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식량을 찾는 것이 실패한다면, 대단히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집단의 식량을 강탈하거나.
노리기 쉬운 목표물로 점 찍히거나.
혹은 내가 겪어보았던 것처럼 둘 다거나.
지나온 투쟁의 세월에서 배운 자연의 이치는, 떠올리면 배우기에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었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가령 잡은 벌레나 짐승을 먹는 방법이라든지.
혹은 간이 화장실이나 트랩을 만드는 방법이라든지.
....혹은 어디를 맞아야 덜 아픈지. 아니면 어디를 때려야 더 아프게 만드는지.
나약한 소녀에게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몰랐더라면 그 소녀는 죽었을 테니까.
".....어쩌면....하아, 아니. 쓸데없는 생각만 느는군."
-어쩌면 모르는 채 죽는 편이 좋았을지도, 라니....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것대로 신선해서 우습게만 느껴진다.
다른 아이들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안되는 말일뿐더러 야간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할 필요가 없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일 따름이다.
평소라면 떠올리지도 않았을 생각들이다만, 스쿼드에서 나온 뒤로부터의 최근은 언제나 혼자 있는 터라 그런지 멍하게 있을 때면 순간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고 만다.
'미사키나 히요리가 이런 느낌이었을까....마냥 타이르지도 못하게 되었군.'
아리우스 분교를 나오고, 처음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원하는 모습들을 상상하게 되면서부터 어느샌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종종 들게 되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에도 이런 미래의 일들에 대한 생각들을 종종 했던 거 같지만....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던 거 같다.
오히려 지금은 바로 코앞으로 닥쳐온 현실의 일이기 때문인 걸까.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도무지 행복해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다.
좋지 않은 일이란건 알고 있지만....중독성을 보이는 마약을 먹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한번 이런 생각이 들고나니 부정적인 사고를 끊기가 힘들다.
공주는 잘 지내고 있을까....그러고보니 미사키는 평소에도 자기가 필요한 것을 잘 표현하지 않았지....히요리는....으음
"후우......좋은 생각....좋은 생각.....시급 15,000크래딧.....주휴수당 지급에 수수료 없음.....야간 수당 1.5배....."
...음, 좋아. 다행히 언젠가 선생에게 배워둔 주문이 잘 드는 것 같다. 이 일자리도 선생의 중계로 알게 된 일자리지만, 역시 이런 상태로 계속 경비를 서게 된다면 면목이 없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속물적인 방식인 것 같다만.....어쨌건 효과는 발군이었다.
-이 돈이 있다면 좀 더 앞으로의 생활에 도움이 되겠지....
-....배가 고프군. 오는 길에 오뎅을 팔던 포장마차가 있었지. 하나쯤 먹어둘 걸 그랬나? .....아니. 그래도 하나에 1,500 크래딧이면 차라리 컵라면을 사먹는게....
-선생을 통해 스쿼드의 모두와 아즈사에게 돈을 부치는 방법도 있겠지....
"......."
부스럭. 부스럭.
안주머니에 넣어둔 블랙마켓용 통장. 재발급도 안 되는 그 통장의 안에는 약 270만 크래딧 가량이 들어가 있다.
270만 크래딧.
블랙마켓인 만큼 위험수당을 붙이면 못해도 일당을 약 20만 크래딧 정도 씩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식비와 의뢰 수수료나 휴대폰의 유지비로 반을 넘게 뜯기고 있는 것 같지만, 몇 달간 꾸준히 모으니 나름의 목돈이라 할 것이 생겼다.
물론, 스쿼드의 맴버들에게도 돈을 나뉘주고 있었기 때문에 목돈을 만드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조금만 더 모으면 월세로 작은 원룸을 구해서 스쿼드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 장소를 구할 수 있을 것 이다.
월세와 수도세 같은 고정 지출비용은 이제 내가 부담할 수 있다. 나머지는 다시 목돈을 차근차근 쌓아가면 될 일이겠지.
처음 통장의 돈이 100만 크래딧을 찍었을때는 기분이 좋다기 보다 어딘가 허탈한 느낌이었다.
그 돈이라면 몇명이 얼마나 먹을 수 있는 돈인가, 하고.
혼자라면, 스쿼드의 모두와 같이 쓴다면, 아리우스의 학생들과 나눠 쓴다면. 적어도 천명 가량이 컵라면으로 한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고작 이정도의 돈이 없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했던 건가.
....힘든 일이었지만, 막상 하면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아즈사는 아리우스의 지원도 오래전에 끊겼을 테니까 스스로 학비를 충당하는 것도 벅차겠지.
그 부분은 선생이 장학금을 지원하는 걸로 도와준다고는 말하지만 그 트리니티이니 고정지출을 생각하면....솔직히 말하자면 생활비도 아슬아슬 할 것이다.
아즈사 본인도 친구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선생에게 들었지만, 역시 어느정도는 도와주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히요리가 샬레의 카페에 드나드는 일이 많다고 했던가. 미사키랑 공주도 선생에게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있다고 했으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지만, 역시 선생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건 아닌지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어른의 책무라면서 기꺼이 우리들을 받아 주겠지만, 정말 그걸로 좋은 것일까?
"후우......"
모르겠다.
선생님.....그 분은,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는 그 사람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한한 신뢰와 도움을 주려고한다.
이제는 안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해왔고, 또 얼마나 타인의 악의가 가득한 삶을 살아왔는지. 허무함이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겨 왔는지도, 이제는 뼈저리게 실감한다.
고통만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된 것이다.
동시에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며 우리를 도우려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돈의 문제가 아니다. 총알을 퍼부어 자신의 내장을 해집어 놓은 대상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그건....그 마음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어떻게 해야 그 사람에게 받은 이 모든 것들에 보답할 수 있는 것 일까......과연 내 모든걸 바치더라도, 그 마음을 갚을 수 있는 것일까.
....또,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 자신이 싫어진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대로 1시간만 더 있으면 인수인계를 마치고 내가 맡은 업무도 곧 끝나게 되겠지.
보통은 오전의 다른 일때문에 바로 자야겠지만, 내일 오전은 일이 없는 날이니 조금더 깨어 있어도 되겠지.
".......지금 찾아가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민폐밖에 안되는 일이고 찾아가더라도 설마 지금까지 일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컵라면 정도라면, 입구에 봉투째로 걸어놔도 괞찬으려나.
*후기 : 사오리 애껴요(UwU)
오타나 수정은 자고 온 뒤에....
아마 새벽시리즈로 주에 한번씩 끄적일거 같음....소재나 비주류 애들도 추천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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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