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M #순애 #노아
원본 by けんろん
===================
<1> ~ <2>
<1>
“…선생님?”
심야의 샬레 집무실.
평소처럼 당번 업무를 보고 있는데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파에서 PC와 사투를 벌이던 선생님이 아무래도 잠이 든 모양이다.
“선생님.”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요 며칠 선생님의 피로는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쉬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밤샘이라고 농담 섞어 말하던 그 입술 사이로 고요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테이블을 보니 서류 곳곳에 곡선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억지로 깨워봤자 더 이상의 업무는 무리일 것이다.
다행히 나 혼자서도 적당히 진행할 수 있는 안건들뿐인 듯하다.
평소 선생님의 업무 내용을 기록해 두길 잘했다.
조심스레 탕비실로 가서 컵에 물을 담아 테이블 끝에 놓았다.
눈을 떴을 때 분명 목이 마를 테니까.
원래라면 휴게실에서 주무시게 하는 게 좋다.
하지만 갓 잠든 선생님을 건드렸다가는 깨어나서 다시 무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선생님께 담요를 덮어드리고, 바로 옆에 앉아 일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누구에게 하는 것도 아닌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나는 다시 펜을 움직였다.
“후우…….”
겨우 업무가 끝나고 소리가 나지 않게 아주 살짝 기지개를 켰다.
시각은 23시 51분.
기숙사 통금이라는 시시한 핑계로 나를 쫓아내려던 선생님은 이제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소음 때문에 깨우지 않을까, 이상한 욕심 내지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기우였다.
이 사람,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옅게 코까지 골고 있다.
이쪽만 의식하게 되는 건 늘 있는 일이지만, 조금은 분위기를 파악해 줬으면 좋겠다.
장난쳐 버릴 거예요?
“…라든가.”
이렇게 불안정한 자세로도 잠들 정도로 피로가 쌓인 것이리라.
마음 놓고 옆에서 푹 잠들어 있는 모습은 조금 기쁘기도 했다.
“으음…….”
이따금 새어 나오는 잠꼬대는 하나같이 괴로운 듯한 것뿐.
묘한 마음을 품었던 것에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솔직하게 휴게실까지 모시고 가서 깨어난다고 해도 “설득”해서 억지로 재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소음을 신경 쓰며 비효율적인 작업을 할 필요도, 귀중한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보기 드문 선생님의 잠든 얼굴을 나만의 기록으로 가슴속에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요즘 들어 자꾸 앞서 나가게 된다.
“유우카 짱을 놀릴 처지가 아니었네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이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PC를 껐다.
지금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선생님을 소파에 제대로 눕히는 것.
혹은 선생님을 휴게실로 옮기고 메모를 남기는 것.
그리고 밀레니엄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들이 최적해다.
이미 오늘의 업무는 완료되었다.
평범한 학생은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람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곤란하네요…….”
짐짓 과장되게 중얼거려도 선생님은 아무 변화 없이, 얕은 잠 속에서 희미하게 신음 같은 숨을 내뱉고 있었다.
둥글게 말린 등. 천진난만한 잠든 얼굴.
괴로운 듯한 코골이에, 깎다 만 수염…코골이?
“…커어…….”
“…….”
선생님은 지금 고개를 떨군 채 앉아서 자고 있다.
기도가 압박되는 그 자세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침대에 눕히는 게 좋겠다.
아쉽지만 지급유예는 여기까지다.
“선생님.”
하지만 아무리 어깨를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잠꼬대 같은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선생님? 제대로 주무시는 게 좋아요.”
“…….”
“유우카 짱한테 혼날지도 몰라요~”
“으으…….”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어쨌든 휴게실로 모시자.
곧 날짜가 바뀐다.
마법이 풀릴 시간이다.
이 경우에는 선생님 쪽이 공주님 같지만.
나라도 선생님을 안거나 부축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싶어 선생님의 등 뒤로 손을 돌린 순간.
“노아…….”
“엣.”
“…곁에…….”
“서, 선생님? 일어나셨…꺄악!”
갑자기 이름이 불리는 바람에 등 뒤로 돌리려던 손을 반사적으로 움츠렸다.
엉덩이를 띄우려던 자세가 무너지고 무릎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찼다.
텅, 하고 딱딱한 소리.
상판 위에서 컵이 튀어 오르며 기울어졌다.
쏟아진 물이 테이블 끝을 넘어 그대로 내 다리로 흘러내린다.
“윽…….”
차가워.
검은 타이츠 원단이 순식간에 물을 빨아들인다.
무릎에서 정강이로, 짙은 색의 얼룩이 번지며 피부에 달라붙었다.
서둘러 컵을 세웠다.
내용물은 이미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선생님은─
살며시 옆을 살폈다.
…자고 있었다.
아까와 똑같이, 조금 미간을 찌푸린 잠든 얼굴 그대로.
젖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 끝이 얼룩의 윤곽을 덧그린다.
차가운 건 다리일 텐데, 목덜미 근처가 묘하게 뜨겁다.
“…선생님.”
대답은 없다. 알면서도 불렀다.
선생님이 잠꼬대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것은 알 길이 없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쏟아진 물을 손수건으로 닦는다.
다행히 서류나 PC에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물을 머금은 타이츠가 마치 나에게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는 듯 불쾌감을 안겨준다.
마침 심야 0시를 알리는 시보가 울렸다.
“…어쩔 수 없네요.”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을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다.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
리오 회장님이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합리적이라고 긍정해 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용히 양손으로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젖은 타이츠를 벗었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크게 느껴진다.
스르르 내려가는 검은 옷에 의해 허벅지와 무릎이 드러나고, 거기서 한 발씩 타이츠를 빼냈다.
객관적으로 본 맨살은 묘하게 하얘서 내 것임에도 어딘가 색기 서려 보이기까지 한다.
한여름의 샬레에서도 드러낸 적 없는 맨다리를, 한밤중에 선생님과 둘뿐인 상황에서 드러낸다.
그 사실을 의식하자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있을 거니까요.”
한밤중 가을의 냉기가 맨살을 어루만진다.
예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젖은 타이츠를 의자에 걸어 말렸다.
쏟아진 물이 그린 검은 얼룩을 본다.
이것이 마를 때까지.
나의 실수가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조금만 더.
나는 선생님을 안아 올리는 것을 포기하고 옆에 앉았다.
방의 불을 끄고 들떠 있던 마음을 가라앉혀 간다.
나는 유우카 짱이나 케이만큼 수발을 잘 드는 편은 아니다.
코유키 짱이나 아리스처럼 대담하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리오 회장님이나 토키 씨처럼 자신을 강하게 다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나라도 할 수 있는 것.
내가 선생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
선생님이 나에게 바라는 것.
“─실례할게요.”
손이 떨리고 있다. 아주 조금 무서웠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분명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당신의 기록을 남기고, 일어날 때까지 곁에 있고, 놀리고, 서로 웃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일을 맞이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터였다.
선생님의 머리와 어깨를 살며시 안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분명 닿아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저 당신을 올려다보며, 아무것도 아닌 나를 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
그 손을 뻗을 용기도 없으면서 이어지기를 꿈꾼다.
그것만으로는 이제 만족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뻗은 손으로 선생님의 몸을 살며시 뉘어, 그 머리를 허벅지 위에 올렸다.
무릎베개.
선택한 것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이었다.
예전에 선생님께 보상으로 귀 파기를 해 드린 적이 있다.
무릎베개는 그때 이후로 두 번째다.
귀이개가 손에 없는 게 아쉽다고, 그가 깨어 있었다면 말했을 것이다.
그때의 만족스러운 선생님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런 나라도 선생님을 채워줄 수 있다는 고양감.
겨우 그 정도의 논리로서는 취약한 동기.
겨우 그 정도의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둔 달콤한 얼룩.
마치 소중히 아껴두었던 사탕 하나를 혀 위에서 굴리는 듯한 추억.
“…항상 감사해요. 선생님.”
무방비한 내 허벅지 위에서 잠든 무방비한 선생님.
타이츠라는 천 한 장을 사이에 두지 않았을 뿐인데, 전해지는 그의 체온은 놀라울 정도로 뜨겁다.
그 온기가 허벅지를 통해 지긋이 내 안으로 녹아 퍼지며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든다.
가까워진 적은 있어도 이렇게까지 맞닿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순수한 그 얼굴에. 두 사람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이 공간에.
맞닿은 피부의 따스함에.
몸의 심지부터 녹아내리는 듯한, 아찔한 감각.
“들리시나요…선생님…….”
소파에 앉아 있는 건지, 둥실둥실 허공에 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오른손은 그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그의 고동을 쫓았다.
집무실 시곗바늘이 새기는 규칙적인 소리조차 이제 들리지 않는다.
내 귓가를 때리는 것은 선생님의 숨소리와 너무나 시끄러운 자신의 심장 소리뿐.
“선생님.”
줄곧 말하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
지금이라면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는.”
다시 어딘가로 떠나버릴 것 같은 당신이 내 품 안으로 길을 잃고 들어온 사이에.
스스로를 표백해 버리는 내가 당신의 색으로 물들어 있는 사이에.
“저는, 줄곧─”
<2>
“음……?”
“─어라?”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여행자가 눈을 떴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아직 더 주무셔도 괜찮은데 말이죠?”
“…노아?”
갓 태어난 아기 새 같은 눈망울.
눈을 뜬 그의 첫마디가 내 이름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찌릿하며 달콤한 비명을 질렀다.
“네, 맞아요.”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건지, 선생님은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너무 우스워서.
“후훗, 아직 잠결이신가 보네요. 어제 일, 기억 안 나세요?”
“어 그게, 어제는 분명…….”
“중간부터 꾸벅꾸벅 조시길래, 제 마음대로 이렇게 해버렸답니다.
업무는 걱정 마세요.
적당히 끝이 보일 때까지는 다 마무리해 뒀으니까요.”
“그렇구나, 고마워.”
선생님이 몸을 뒤척이려 했다.
아마 일어나려고 무의식중에 움직인 거겠지.
시선이 마주치는 정면에서 몸을 왼쪽으로─.
“앗…….”
그렇게 되면 나의 무방비한 모습을 들키고 만다. 그건 아직 부끄럽다.
“가급적 방향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계셔 주시겠어요?
실은 어제 물을 쏟아버리는 바람에…….”
앞뒤 사정은 생략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선생님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표정은 이내 풀렸고, 다시 눈꺼풀이 감기려 하고 있다.
“…후훗♪ 그대로 다시 한숨 자도 괜찮답니다?”
무언가 말하려던 선생님은 들이마신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입을 다물었다.
갈등과 당혹감, 쏟아지는 잠, 그리고 기분 좋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선생님의 잠꼬대를 기록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제대로…제 마음속에만 간직해 둘게요♪”
다시 허벅지에 무게감이 실린다.
온몸을 맡기고 있다는 게 전해지는 무게. 그 느낌이 나에게도 기분 좋았다.
아무래도 상황은 내 편인 모양이다.
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는다. 머리카락은 조금 푸석했다.
원인인 수면 부족과 불규칙한 식생활은 다 같이 협력해서 어떻게든 한다 치고.
보습 효과가 있는 샴푸를 빌려드려 볼까.
샤워라도 하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나와 같은 향기가 나게 할 구실을 생각할 정도로,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선생님 탓이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나쁜 건 분명, 좀처럼 마르지 않는 타이츠 때문이니까요.
그런 누구에게 하는 것도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는─.
“…안녕, 노아.”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저기,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머, 벌써 잊으셨나요? 그렇게 뜨거운 밤을 보내놓고선…….”
“엑.”
“후훗, 농담이에요♪
실은 저, 어제부터 한숨도 못 자서 그런데, 잠시 잠을 좀 자도 될까요?”
“그건 물론 괜찮지만…….”
“그럼 교대네요.”
“어, 아, 응, 그러니까 내가 무릎베개를 해주는 식으…잠깐만, 왜 타이츠 안 신고 있어?!”
“영차.”
“영차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왜 타이츠 안 신고 있냐니까?!”
“흐, 웁…….”
“엎드려 눕는 건 좀 아니지?!”
여기에도 핑계 필요할까요?
네, 잠을 못 자서 그런 거랍니다.
Fin.
댓글 5
영차영차
미식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