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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6>
<4>
“외부에서 반입된 게 아니라고……?”
히로미 짱이 미간을 찌푸렸다. 동요한 탓에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 말은 즉, 즉흥 연극부는 음주를 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주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술은 외부에서 용기에 담아 밀반입한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적절한 단어를 고른다.
나 스스로도 아직 윤곽이 흐릿하다. 하지만 무언가가 확실하게 형태를 갖추려 하고 있었다.
“…이 방 안에서, 직접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만들어졌다고…….”
히로미 짱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밀조를 했다는 뜻인가?”
“가능성으로서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만 이 방식이 아니라면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외부로부터의 반입은 사감대가 철저하게 단속했죠.
하지만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았어요.
그건 애초에 외부에서 ‘액체 상태로 들여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면 모든 앞뒤가 맞아떨어져요.”
히로미 짱은 팔짱을 낀 채 깊은 생각에 잠긴 태도를 취했다.
“…확실히, 그런 발상은 해보지 못했어.”
중얼거리듯 내뱉는 목소리에 자책하는 듯한 울림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줄곧 외부로부터의 밀반입만을 전제로 수색을 진행했으니까.
검문을 강화하고, 용기류를 규제하고.
하지만 방에서 직접 제조한 것이라면 애초에 그 단속망에는 걸려들 리가 없지.”
“네. 그러니까 마치 검문을 유유히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던 거예요.”
그녀들이 단속을 피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정문을 통과한 적조차 없었던 것이다.
히로미 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맹점이었군. 밀수 사건으로만 단정 짓고 쫓아다니느라 그 가능성은 생각조차 못 했어.”
그 말에 나는 조금 가슴이 아팠다.
히로미 짱 일행이 태만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극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저 처음부터 대전제가 어긋나 있었을 뿐.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착오가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그 사실을 세상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추적하는 측의 고정관념이야말로, 도망치는 밀수업자에게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는 것을.
…나도 참, 또 이런 범죄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히로미 짱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의상실 공방과 서재.
그녀의 눈동자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려는 듯 방황했다.
“하지만 미요 짱, 설령 밀조라 해도 그 물증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녀의 현실적인 목소리가 나를 다시 수사관의 시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술을 빚으려면 설비가 필요해.
재료를 발효시킬 용기나 증류하기 위한 장치 같은 것들.
그런 물건이 이 방에 있었다면, 적어도 수색 과정에서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되었어야 마땅해.”
“그건…확실히 그렇네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창한 물건들이 이 방에 숨겨져 있었다면 사감대의 예리한 눈을 피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의 추측이 틀린 것일까.
“아니, 그런가.”
히로미 짱이 무언가 깨달은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방에서 직접 만들 필요는 없는 거였어.”
“네?”
“식당이야.
기숙사 식당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있어.
그곳이라면 증류에 쓸 만한 가열 장치나 설비가 얼마든지 구비되어 있지.”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키친 스페이스. 와일드헌트의 기숙사 방에는 수도나 수조 시설이 없다.
대신 학생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조리 공간이 식당에 몇 개 설치되어 있다.
그 용도는 의외로 다방면에 걸쳐 있다.
염료를 조합하거나 수지를 가공하고, 독한 용제를 사용하는 작업들.
문학 전공인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다른 전공 아이들에게는 그런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작업 공정이 일상적이다.
원래는 각 학과 동의 전문 설비를 이용해야 하지만, 과제에 쫓기는 깊은 밤중에는 별수 없이 기숙사 조리실을 빌려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기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이웃 학생들에게 소음이나 악취로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곳이 진짜 밀조 현장이라면 이 방에 흔적이 남지 않은 것도 설명이 돼.”
“하지만 식당에서 그런 수상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목격당하지 않을까요?”
“심야 시간대라면 인적이 드물어.
만에 하나 증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알코올 냄새를 들킨다 해도, ‘의상에 쓸 염료 작업 중’이라고 둘러대면 얼마든지 은닉할 수 있지.”
히로미 짱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안광이 깃들었다.
사감대 부대장으로서의 얼굴.
조금 전까지 보이던 자책 섞인 나약함은 깨끗이 지워지고, 이미 머릿속으로 하나의 각본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식당의 야간 이용 기록을 대조해 보면 무언가 나올지도 몰라.
즉흥 연극부원 중 누군가가 빈번하게 출입한 흔적이 있다면─
고마워, 미요 짱. 덕분에 해결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어.”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히로미 짱의 말대로 이용 기록을 수사하면 확실한 정황 증거는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감대의 수사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또 다른 불가해한 의문이 실루엣을 갖추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알아차렸던 위화감.
즉흥 연극부의 동향에는 단 한 가지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나의 시선은 서재의 책장으로 향해 있었다.
소설, 희곡, 시집, 평론, 창작론.
문학 전공자다운 정연한 책들의 배열.
하지만 아까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던 위화감의 진짜 정체.
사감대의 임무는 증거를 수집해 규칙 위반을 입증하는 것.
그 관점에서는 ‘식당 이용 기록’이라는 새로운 루트를 찾아낸 시점에서 나의 역할은 끝났다.
히로미 짱의 기대에도 이미 훌륭하게 부응했다.
그런데도 아직, 나의 주관이 멈추질 않는다.
“…히로미 짱, 아까 말했었죠.
부원 세 명이 도주했으니 술 종류는 이미 밖으로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요.”
“응, 그랬지.”
히로미 짱이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가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을 터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입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들은 확실히 무언가를 가지고 밖으로 달아났어요.
그렇지 않다면 리스크를 짊어지고 도망칠 이유가 없으니까요.”
히로미 짱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그녀 역시 도달해 있던 결론이리라.
“그러니까 의문인 거예요. 히로미 짱, 그녀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도망친 걸까요?”
“그게 무슨 뜻이지?”
“술을 들고 도망쳤다고 가정했을 때, 도대체 어떤 용기에 담아서 들고 갔느냐는 말이에요.”
나는 침대 곁의 선반을 가리켰다. 머그컵 네 개, 수통 네 개.
“그녀들의 생활 도구는 전부 여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머그컵도, 수통도 정확히 네 개씩. 반출되지 않았어요.”
히로미 짱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건…그렇네. 확실히 숫자가 딱 맞아떨어져.”
“술은 본래 액체예요.
도망친 세 명이 그것을 운반하려면 무언가 액체를 담을 만한 용기가 필요해요.
하지만 이 방에서 들고 나갈 만한 쓸 만한 용기들은 전부 여기에 남아 있죠.”
“밀조에 사용했던 전용 용기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을 용기째 들고 도망쳤다거나.”
“그것도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료에 관한 규제 조치가 강화된 건 정확히 언제부터였죠?”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소문이 돌고 조금 뒤부터니까, 일주일─아니, 거의 이주일 가까이 되었네.”
“그렇다면 그 삼엄한 기간 동안, 그녀들은 용기 형태로 술을 소지하고 돌아다닐 수 없었을 터예요.
수통이든 페트병이든 닥치는 대로 검사를 당하는 상태였으니까요.”
“맞아. 그런데도 꼬리 한 번 잡히지 않았지.”
그 목소리에 다시금 쓴물이 배어났다.
“즉흥 연극부는 자신들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봉쇄 직전까지 전혀 몰랐다고 했죠?”
“응. 심증만 있는 상태라 일부러 내버려 두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녀들은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을 겁니다.”
히로미 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최근의 목격 증언은 사흘 전이야.
기숙사 내에서 스쳐 지나간 학생이 지독한 알코올 냄새를 맡았다고 했지.
그렇다면 규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도 변함없이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는 뜻이 돼.”
“그런데도 단 한 번도 검문에 걸려들지 않았다.”
나는 문장을 매듭지었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도대체 무엇에 담아서─아니요, ‘어떤 형태로’ 술을 보존하고 있었던 걸까요?”
입 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나 자신이 찾아낸 진짜 의미가 뇌리에 묵직하게 박혀왔다.
평범하게 생활하면서도 검문에 걸리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단속망을 통과했다.
그것은 그녀들의 은닉 수법이 교묘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검문의 타깃이 될 만한 ‘용기나 액체 형태’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것은 어떤 수단이란 말인가.
불시에 내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도약이 일어났다.
퍼즐 조각이 부서지듯 얼굴을 확 쳐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학 전공의 책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소설, 희곡, 시집, 평론, 창작론.
문학 전공의 책장.
각본을 쓰는 3학년 선배의 장서.
일견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완벽한 서재.
하지만 지금의 내 눈이라면, 위화감의 진짜 실체를 포착해 낼 수 있다.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보존 방법.
검문 검색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완벽한 형태.
확신은 옅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진짜 진실이라면, 나에게는 밀수업자로서─아니, 한 명의 친구로서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히로미 짱, 부탁이 있어요.”
“응?”
“그 부장 선배와…단둘이 만나게 해줄 수 있나요?”
검고 깊은 눈동자가 몇 번인가 깜빡였다.
<5>
사감대 본부.
평소라면 발을 들이기는커녕 근처에 접근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장소.
설마 내 두 발로 직접 걸어 들어오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취조실 문 앞에 보초를 서던 학생이 있었다.
제모의 챙을 만지며 조금 더 깊게 눌러썼다.
“고생 많으십니다, 부대장님.”
“수고가 많네. 잠시 안쪽 방 좀 빌릴게.”
스쳐 지나가는 찰나, 학생이 나직하게 히로미 짱에게 귓속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부대장님. 곁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
순간 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히로미 짱은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감대 동료야.”
취조실은 상당히 안쪽 깊숙한 구역에 위치한 모양이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공기가 무겁게 고여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후후, 거짓말해 버렸네.”
불시에 히로미 짱이 중얼거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그 입꼬리 끝에는 미세한 자조가 걸려 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아니야, 거짓말은 거짓말이지.”
히로미 짱이 쓴웃음을 지었다.
“미요 짱은 사감대가 아니니까. 원래라면 여기 들여보내서는 안 되는 사람인걸.”
나는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못했다.
평소에 느끼던 특수교역부의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과는 조금 결이 다른 무게.
훨씬 더 단순하고, 그렇기에 유독 도망칠 곳이 없는 무거운 감정.
그녀가 학원에서 쌓아 올린 고결한 신뢰를 나는 그저 나의 이기적인 주관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그 사실에 제멋대로인 죄악감이 밀려왔다.
“…미안해요.”
“사과할 필요 없어.”
그녀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복도의 막다른 끝.
돌아선 히로미 짱의 얼굴에는 언제나와 같은 온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데려오기로 결정한 건 나니까.
미요 짱이 마음 쓸 일이 아냐.
게다가, 미요 짱이 대체 어떤 진실을 포착해 낸 건지 나 역시 내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고 싶으니까.”
똑바로 마주해오는 다정한 시선.
신뢰와 기대, 그리고 아주 작은 호기심.
나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기야.”
막다른 곳의 문이 열렸다.
취조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넓었다.
무기질적인 벽면.
창문에는 쇠창살.
형광등의 둔탁한 백색 불빛으로 가득 찬 공간.
중앙에는 탁자가 하나. 마주 보듯 의자가 둘.
그리고 안쪽 의자에 앉아 있는 단 하나의 인영.
키가 컸다.
앉아 있는 상태임에도 그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초연하게 버티고 선 그 자태가, 취조실의 딱딱하고 차가운 의자를 순식간에 화려한 연극 무대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고작 그뿐인 행위가 그녀의 몸을 거치자 완벽하게 계산된 ‘연기’가 되었다.
우리가 들어와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눈동자만이 조용히 이쪽을 향해 고정되었다.
가치를 저울질하는 듯한 서늘한 시선.
나는 의자에 앉지 않고, 그대로 탁자 사이에 우두커니 섰다.
그녀의 시선이 내 몸을 따라 움직였다.
“어, 저기. 안녕하세요……..”
대답은 없었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다만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가 움직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소라고 하기에도, 비웃음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실루엣.
집어삼켜진다고 히로미 짱은 그녀를 평했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질문하려 했었는지조차 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 나 역시 길게 말을 섞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은 딱 한 가지뿐이에요.”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 눈동자 너머로 아까 서재에서 보았던 책장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문학 전공자의 장서 더미.
그 완벽한 배열 속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단 하나의 공백.
단 한 박자의 침묵을 두고, 나는 문장을 던졌다.
“사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6>
사감대 본부 앞,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와일드헌트를 상징하는 장엄한 건축군.
그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석돌 바닥에 복잡한 문양을 그려낸다.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뜸했다.
마지막 교시도 끝난 이 시간, 대부분의 학생은 이미 기숙사로 돌아갔으리라.
그 질문을 던진 후,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나의 질문에 그녀─즉흥 연극부의 부장 선배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가치를 저울질하는 듯하던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입꼬리를 미세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표정을 바꾸어 나갔다.
미소. 비웃음이 아니었다.
경악도 아니었다.
어딘가 홀가분한, 포기와도 닮은 웃음.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허무할 정도로 순순히 모든 것을 인정했다.
분명 그녀 역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핵심을 꿰뚫어 오기를.
말이라는 미궁으로 상대를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마디의 문장으로 정곡을 찔러 주기를.
즉흥 연극부 안에서의 그녀는 각본가인 동시에 연출가이자 배우였다.
언어를 부리는 자로서, 그 이정표가 되어줄 사전을 은닉용 도구로 이용한 것에 나름의 가책이나 복잡한 감정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많이 기다렸지, 미요 짱.”
본부 입구에서 히로미 짱이 걸어 나왔다.
저녁노을의 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작게 손을 흔들었다.
“벌써 끝난 건가요?”
“응. 뒷처리는 다른 대원들에게 맡겨두고 왔어.”
히로미 짱이 내 곁에 나란히 선다. 둘이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달아난 세 명도 그녀를 통해 연락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그 아이들, 부장 선배를 엄청나게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그렇군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처분이 내려지게 될까.
음주라는 금기를 범한 죄는 확실히 무겁다.
정학만큼은 면하기 어려울 터다.
그래도 일말의 온정이 베풀어지기를 속으로 빌었다.
돌바닥을 딛는 두 사람분의 구두 소리가 겹친다.
해 질 녘의 바람은 조금 서늘했다.
“그나저나, 설마 사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줄이야.”
히로미 짱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그 책장을 보았을 때, 무언가 중요한 것이 모자란다고 느꼈어요.”
사전.
와일드헌트의 문학 전공자라면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소지하고 있는 물건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물건이기에 도리어 부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나 역시 조금은 의심했어야 마땅했는데.”
─어째서, 사전이 사라져 있던 것일까?
도망친 세 명의 부원이 그것을 품에 안고 반출했던 것이다.
증거를 은닉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하필 사전이었을까.
그녀들은 사전으로 무엇을 했던 걸까.
“하지만 설마 술의 진짜 정체가 ‘분말주’라는 물건이었을 줄은 몰랐어.”
히로미 짱이 중얼거렸다.
나 역시 아직 현실감이 없는 멍한 기분이었다.

분말주.
물에 녹이는 것만으로 알코올 음료로 변하는 마법 같은 가루.
그녀들이 밀조하고 있던 진실의 정체는 바로 그 분말주였다.
시클로덱스트린.
고리 모양의 분자 구조를 이용해 휘발성 성분을 가루 속에 가두어 두는 기술.
그 화학 서적에 적혀 있던 후각 연출용 ‘향료의 분말화’와 정확히 같은 원리였다.
정확히 같은 메커니즘으로 그녀들은 술을 분말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계기는 무대 소품으로 사용하려던 과일을 상온에 방치해 부패시켜 버린 일이었다.
그 우연한 사고로부터 ‘발효’라는 생물학적 현상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분말화라는 화학 기술과 이어졌다.
무대 효과 연구라는 주관적인 열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폭주해 버린 결과물이었다.
밀수가 아닌, 밀조.
액체가 아닌, 분말.
그렇기에 검문에 걸려들 리가 없었다.
용기류를 단속하는 규제 조치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들은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사감대의 눈을 완벽히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사전은 기숙사 방이 봉쇄되기 직전, 그 분말주를 운반하는 용기로 둔갑했다.
“사전의 종이는 얇으면서도 질기니까요.”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사전은 아무래도 페이지 수가 방대해질 수밖에 없다.
그 두께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사전은 일반 종이보다 훨씬 얇고, 뒷면의 글자가 비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수한 재질을 띠고 있다.
그것이 그녀들에게 있어 최고의 조건이 되어주었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틈새에 분말을 흘려 넣고, 테이프로 가장자리를 밀봉한다.
약을 포장하는 약포지와 정확히 같은 요령으로, 가루 형태라면 두꺼운 책 내부에 얼마든지 숨겨서 이동할 수 있다.
액체가 아니니 종이가 젖어 찢어질 염려도 없다.
급조해 낸 보관함으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말 대단해, 미요 짱은.”
히로미 짱이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우리 대원들이 그렇게 샅샅이 뒤져도 알아차리지 못한 진실을 고작 몇 시간 만에 간파해 내다니.”
“…그저 우연이에요.”
“우연이 아냐.”
그 목소리에는 확고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미요 짱은 평소에도 사소한 변화를 금방 알아차리잖아. 창작자로서 귀중한 재능이야.”
재능.
그 단어를 지금의 나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진실을 간파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속이는 자의 사고 회로를, 도망치는 자의 내면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 어떤 추악한 실체가 숨겨져 있는지.
히로미 짱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협조를 부탁하는 건 진짜 이번 한 번만으로 해둘게.”
불시에 그녀가 말했다.
“네?”
“미요 짱에게는 역시, 이런 궂은일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울림이었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 단어의 무게를 나는 가슴속으로 깊이 되새겼다.
그녀가 규정하는 나라는 존재.
같은 전공에서 학업을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
로맨스 소설가를 꿈꾸는 순수한 친구.
그것은 분명, 규칙 위반자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세우는 차가운 추적자의 포지션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연약한 존재.
히로미 짱은 나를 배려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를 그런 음습한 사태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며, 선을 그어 지켜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히로미 짱이 가진 진실한 다정함.
그렇기에 나의 가슴은 줄곧 욱신거리며 아파오는 것이다.
히로미 짱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녀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것을 어째서 나는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는 걸까.
맹세를 완수했음에도 나의 먹먹한 심정은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도움이 되어줄수록 내가 숨기고 있는 ‘특수교역부장’이라는 비밀의 무게가 증폭되어 간다.
신뢰받으면 받을수록 내가 저지르고 있는 배신의 윤곽이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사실 그런 모순 따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다 한들 이 찌르는 듯한 통증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는다.
“히로미 짱!”
정신을 차려보니 입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히로미 짱도 반걸음 늦게 자리에 멈춰 섰다.
저녁노을의 마지막 붉은 잔광이 그녀의 가냘픈 가녀린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언제나 온화하고 다정한,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
오늘 하루 내내 가슴 깊은 곳에서 지글지글 욱신거리던 무언가가 있었다.
히로미 짱의 곁에서 사감대의 제복 외투를 걸쳤을 때.
봉쇄된 방 안의 흔적들을 둘러보았을 때.
밀수업자의 시선을 빌려 각본의 트릭을 깨부수었을 때.
그녀에게 사소한 기만을 내뱉게 만들었을 때.
그리고 지금, 그녀의 입에서 재능이라는 찬사를 들었을 때.
몇 번이고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진실.
말해야만 한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보여준 수사의 능력.
그것이 도대체 어느 어둠에서 기원한 힘인지.
어째서 내가 도망치는 자의 사고 회로를 꿰뚫고 있는지.
특수교역부의 존재.
나의 숨겨진 또 다른 진짜 얼굴.
그녀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쫓고 있는 교정 내 ‘그림자’의 진짜 정체.
그 모든 진실을, 지금 이 순간.
“저기, 사실 저는─”
그 뒷문장을 소리 없이 가로막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스름이 깔리는 하늘 아래.
길가 가로등에 점점이 노란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해 질 녘의 서늘한 바람이 우리 두 사람의 좁은 침묵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돌바닥의 냄새, 화단의 흙냄새.
고개를 숙인 나의 주먹은 무의식중에 꽉 쥐어져 있었다.
결국, 우회하여 목소리가 되어 나온 것은 전혀 다른 비겁한 문장이었다.
“…저는, 다음에 또 의지해 주셔도…정말로 괜찮으니까요.”
히로미 짱은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미요 짱.”
그 다정한 확답에, 나는 또다시 아무런 진실도 건넬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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