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이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른 시각.
"요즘 히나 말야."
"네?"
"과할 정도로 일에 파묻혀 산단 말이지."
샬레와의 협력건으로 날 찾은 히나가 게헨나로 돌아가는 모습을 건물 위에서 바라보며 읊조린 말에 아로나가 대답했다.
"저번에 봤을때보다 눈이 훨 퀭해. 거기다 분위기도 더 우중충해져있고."
"그걸 선생님이 말하시니 어째....."
물론 나도 중증인 상황이긴 하지만, 히나는 학생이다.
한창 잘 먹고 잘 크며 자라야 할.
그러니 성인인 나랑은 이야기가 다르고말고.
"커피도 적당히 마시라고 얘기했는데. 정말 쏟아붓는 식으로 마셔대더라니까."
"그것도 선생님이 더.....?"
"아로나. 자꾸 사실로 때리면 아프단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하는 아로나에게 쓴웃음으로 일갈한 후, 난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일도 히나랑 같이 야근을 할듯한데... 이대로 가면 안 돼."
"으음... 확실히 피로가 많이 쌓이신것 같긴했어요."
"그러니까 말야. 역시 장난을 쳐야할 것 같아."
"왜 또 결론이 그렇게 되는건가요?!"
자연스런 흐름으로 넘어가려 했건만, 소리를 빼액 지른 아로나에 의해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지난번에 유우카씨가 얼마나 힘들어하셨는지 잊으신건 아니겠죠? 선생님??"
"알아. 아는데. 이건 뭐라고 할까... 학생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거라고나 할까. 계도를 위한 거라고나 할까?"
불신에 가득차 날 흘겨보는 아로나를 향해, 난 필사적인 변명을 시작했다.
"커피가 얼마나 심장에 해로운가를 알려줄 뿐이야! 위험한 부분은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 할 필요 없어! 그리고 이번엔 장난인걸 바로 말할게."
"하아아.... 이번엔 또 무슨 장난을 치시려고요?"
한숨을 푹 쉬면서도 나의 장난에 관심을 가져주는 아로나.
비록 제 맘에 들지 않더라도 날 존중해주다니, 이 얼마나 착하고 상냥한 아이란 말인가!
"아, 그건 말이지! 자, 여기 있는게 어제 배송 온 택배거든? 이게 응급의학부 학생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습할때 쓰는 기구인데, 환자역의 사람이 직접 쓸 수 있어! 하지만 실제 심장에는 압박이 가지 않아 안전하다고..."
"설마 심장이 멈춘척을 하시겠다는거예요?"
"............응."
대략 몇시간에 걸친 훈계 끝에서야, 난 간신히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학생을 위해서라는 알량한 목적의식 덕분에.
******
게헨나의 여왕이자 일당백의 최강전력.
키보토스의 거주민이라면 그 이명을 거머쥔 자에 대해 모르지 않을것이다.
단순한 테이블에 앉아 한 사람의 생명을 저울질할 수 있는 자, 그것이 바로 [여왕]이니.
그녀가 폭군이었다는 것은 아니나, 자리가 자리인지라 적은 항상 있었다.
이득을 보는 자가 있다면, 불이익을 떠안는 자도 있으니.
순응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반항하는 자도 있으니.
그렇기에 반역자를 찍어누르고, 선동가의 입을 막았다.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무력을 위시하였고, 게헨나를 뭉치기 위해 외부의 적을 경계했다.
그런 날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어졌기에, 선도부는 하나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이다- 란 소문이 퍼지기는 적당했을테지.
'뭐... 거짓말은 아닌가.'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온건 사실이니.
사람은 이성을 가졌기에 사람이나, 그 이전에 본능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강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렇기에 여왕은 그들의 지도자로 군림하기엔 충분하나, 마음을 통하는 벗은 될 수 없었다.
모든 사소한 행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이고, 소중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약점이 될 것이며, 주변 인물들 가운데 간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누구보다 강하고도 고고한 맹수, 허나 외로움에 쓸쓸히 시들어가는 가시투성이의 장미꽃.
그래, 그것이 바로 나- 소라사키 히나였다. 적어도 저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히나, 커피 너무 많이 마시는거 아니니?"
"아...."
또다.
저런 격식 없는 말투로, 나를 별다를 것 없는 작은 소녀로 취급하는게.
총알 하나에도 쉽게 다치는 무력한 남자. 신체능력은 제로에 가까운 무해한 사람.
하지만 완전무결해야 할 게헨나의 여왕을 단순한 학생으로 대해주고,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약한 마음조차 치유해 준....
'뭐라고 해야할까. 모르겠어.'
그저 소중한 사람, 머릿속에서 그리 정의내렸던 남자를 향해 나는 대답했다.
"걱정 마, 선생. 카페인에는 꽤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럼 더 안되지! 아직 한창 커야 하는 나이인데 그러면 안 된다?"
한껏 걱정하는 표정을 보이며, 선생은 내 손에 들려있던 커피를 채간다.
벌써 어둑어둑한 창문. 이 밤을 넘기려면 커피는 필수란 것은 그도 알텐데.
난 몸을 일으켜 선생 쪽으로 팔을 뻗었다.
"엇, 잠깐...?"
그리고 선생의 옆에 놓여있던 또다른 커피잔을 가져오며, 나는 은은한 미소를 흘리는 채로 대답했다.
"그러는 선생도 카페인 과다섭취인건 알지?"
"그건.... 윽......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변명 금지."
짧고 단호한 대답과 함께 선생이 내게서 채갔던 커피도 살며시 되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 홀짝이며, 어벙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눈웃음으로 응한다.
"이걸로 선생 건강은 내가 챙긴거야."
"히나."
"응, 왜 불러?"
"내 것까지 가져가면 어떡하니...."
"후훗."
내가 왜 이러는걸까.
그와 함께 있을때면 성격이 송두리채 바뀌는것만 같다.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고, 일만 하는 사무적인 여자. 그것이 평소의 나였을텐데.
그와 장난을 치고 싶고, 말을 나누고싶고, 신체를 맞닿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사실 방금 커피잔을 가져올때도 의도치 않은척, 그의 손등을 어루만졌으니.
충동질이 머리를 고무시킨다.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싶어.
사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서로의 사생활을 공유하고, 서로의 일상에 들어가고 싶어.
선생과 하나가... 되고싶어.
'....라니, 생각이 어디까지 가는거야...!'
또다시 혼자 갈데까지 가버린 망상을 잠재우기 위해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다.
'내가 내가 아닌것만 같아.....'
스스로 볼 수는 없지만, 지금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겠지.
그것을 허겁지겁 손으로 가리고 있자니 놀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히나?! 그렇게 갑자기 마시면 사레들려!"
"크흠, 괜찮아. 자, 그, 그러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화끈화끈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선 일에 집중한다는 핑계를 이용해 산처럼 쌓인 종이더미에 얼굴을 파묻을 수밖에 없다.
지금 미친듯이 쿵쾅대는 이 심장은 커피 때문일까, 아니면 멋대로인 감정 때문일까.
자꾸만 그의 얼굴로 시선이 힐끔힐끔 가는건 무엇 때문인걸까.
그 때문에 일에 잘 집중도 안 되거니와, 샬레와의 협력건으로 인한 수많은 결재요청에 오늘도 시달릴테니 야근은 당연한 수순이겠지.
"어휴... 내일부터 히나는 적당량의 커피만 섭취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직접 관리할테니까. 오늘이 마지막이야!"
눈만 빼꼼 내놓은 내게 당차게 선언한 선생은 대체 언제 새로운 커피를 타온건지, 종이컵에 가득 찬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다.
"쿡, 완전 내로남불이야."
그는 듣지 못하게 조용히 웃었다. 그 보기 힘들다는 여왕의 웃음이 이리도 헤프게 변할줄은.
이만 글자가 가득한 서류로 눈을 옮긴다. 잠시라도 그와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기 위해선 일을 끝마치긴 해야하니까.
힘을 내야지. 선생을 위해서.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털썩ㅡ.
무언가 둔탁한 것이 쓰러지는 소리를 낸건.
이에 놀라 다시 고개를 틀었을 때 익숙한 양복을 잽혀입은 남성이 눈에 들어온건.
"선생?"
그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건.
"서, 선생!!!!"
그가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져있다.
왜, 갑자기? 왜?
- 덜컹!
"으극, 무슨 일이야! 선생!! 정신 차려봐 선생!!!!"
갑자기 몸을 일으킨 바람에 의자에 걸려 넘어졌지만, 쓰라린 무릎은 뒤로 한 채 서둘러 그에게로 기어갔다.
"히.... 나........"
다행히도 아직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 선생.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
"갑자기 왜, 왜 그래!! 대체 왜 쓰러진.....!!"
아직은 따스한 남자의 뺨을 붙잡아 단단히 일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미약했다.
"심장.... 커...... 피가.........."
"아니, 말. 말 하지 마..! 선생은 정신줄 붙잡는거에만 집중해!"
시간은 늦은 심야. 지원을 부르기엔 적절하지 않다.
지금 가장 필요한것은 응급처치.
다행히 아직 까먹지 않았다. 치나츠에게서 들어놓았던 응급처치 방법을.
'내가 어떻게든 해야해...!'
- "다음은 급성심정지 환자의 경우예요. 심정지의 증상은 보통 가쁜 호흡, 쓰러짐, 의식 불명 등이 있는데...."
쓰러짐. 지금 선생에게 벌어진 증상.
이를 한 번 악문 후, 난 온힘을 다 해 선생의 몸을 덮고 있던 옷을 찢어재꼈다.
- "심정지가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그냥 심장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 되죠."
그리고 언제나 의지가 되던 가슴팍에 귀를 갖다댄다.
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제발....!"
없다. 생명의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선생은 아직 죽지 않았다.
봐, 지금도 눈을 뜨고 날 바라봐주고 있잖아.
내 이름을 불러 주었잖아.
그러니까 나만 잘 하면, 그를 살릴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어...!'
욱신거리는 다리를 강제로 움직여 상체를 세운 후, 선생의 흉부에 두 손을 가져다 댄다.
"괘, 괜찮아. 분명 제대로 배워뒀으니까... 그대로만 하면......!!"
심폐소생술. 분명 이것으로 모든게 해결 될 것이다.
위치는 흉골 아래로.
손바닥의 뒤꿈치를 이용해서.
체중을 실고, 5cm정도의 깊이로.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숨이 가빠온다.
하나, 둘.
팔이 아려온다.
하나, 둘.
아까의 충격으로 어깨가 욱신거린다.
하나, 둘.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가는 소녀의 필사적인 저항을, 달빛은 몇분이고 비췄다.
하나.
둘.
******
"서, 선생. 어때, 정신이 들어?"
하얗고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묻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두운 새벽 특유의 공기로 싸늘한 방.
"저기... 이미 정신 차렸잖아.... 이럴때조차 장난인거야...?"
낮게 읊조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지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히나는 수백번은 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다시금 남자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는다.
이번에는 박동소리가 들려오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허나 그녀의 앞에 늘어진 남성의 신체는 진작에 온기를 잃었다.
단순한 고깃덩이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으니, 심장이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아......."
바들바들 떨리는 고개를 겨우 든 소녀의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아니... 내가 못듣는거야... 난 의사가 아니니까.... 분명 치나츠..... 치나츠가 온다면........"
그는 살아있다고, 그리 말해주겠지.
나의 둔해빠진 귀가 문제라고, 그리 말해주겠지.
비틀거리는 몸을 이를 꽉 악물어 세운 다음, 그녀는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치나츠.... 치나츠.....!"
허나 사람이 많을 터였던 복도는 한산했다.
아무도 없었다.
진작에 자정을 넘겼으니 이는 당연한 사실.
치나츠는 진작에 집으로 돌아가, 숙면을 취하고 있을것이다.
"아코.. 이오리.... 지원이... 지원이 필요해..... 선생님이......."
못미더운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의지가 되던 선도부의 일원들도 불러본다.
허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쳐보아도, 고요한 적막만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복도를 가득 메울 뿐.
"아... 아아......"
결국 작은 신체는 털썩- 하고 쓰러진다.
커다란 보라빛 눈동자에서 투명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으.... 우... 우으아아......"
지난 몇년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
약점을 숨기고, 최강의 존재로 남아있기 위해 철저히 숨겨왔던 약한 내면이 터져흐른다.
수천개의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망치로 깨부숴진 섬세한 유리 공예품처럼.
"아아, 아....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
망가져가는 소녀의 두뇌로, 선생과 함께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플레이백되기 시작한다.
첫 만남. 첫 대화.
함께한 시간들. 함께한 장소들.
실의에 빠진 날 그가 구해준 일. 생명의 위험에 처한 그를 내가 구해준 일.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함께 한 시간.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마지막 즐거움. 그리고, 마지막 후회.
"내가... 내가 이 시간까지 선생님을 붙잡고 있지만 않았어도오.....!"
자신의 제멋대로인 일정에 끌어들이지 않고, 야근이란 핑계 뒤에 숨긴 음습한 독점욕으로 그를 묶지 않았다면.
그가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면.
커피따위, 마시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선생이 죽는 이런 미래따위 오지 않았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그 절망을, 그 끈적한 감정을 쇠가 긁히는듯한 절규로 표출해낼수록 정신만이 갉아먹힐뿐.
깊고도 깊은 생각의 늪에 빠지며, 그녀의 두 눈은 점점 빛을 잃어간다.
"으흐..... 흐으으......."
선생을 위해 단정하게 차려입었던 제복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지고, 찢긴다.
선생을 위해 애써 관리했던 머리칼이 산발로 변한다.
그러나 이제와 그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것을 두 눈에 담아줄 따뜻한 어른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것을.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마침내 그녀의 목이 다 쉬어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낼 수 없게 되었을때.
"으극, 선, 선생...."
히나는 다리를 질질 끌며 다시금 선생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누워있는 남자.
그것을 눈물이 말라붙은 눈으로 아주 오랜시간동안 지켜본 히나는, 그 옆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그리고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선생... 나, 외로워. 추워."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당신이 없는 키보토스에, 게헨나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야."
"그야 당연한걸. 나를... 모든걸 포기하려던 나를 일으켜세워준 건 당신이니까..... 당신이 내게 힘낼 이유가 되어주었으니까...."
질끈하고 입술을 한 번 짓이긴 히나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 이유가 사라졌다면... 더이상 힘낼 이유가 사라졌다면.... 나에겐 무슨 의미가 있어...?"
"난... 난 자신이 없어..... 더 이상 선생이 없는 세상에서, 히끅, 계속 살아갈 자신이 없어......."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남자 앞에서 고해성사를 끝마친 히나는, 품 속에 넣어다니던 호신용 권총을 꺼내든다.
"바보같은 여자.... 염치없는 여자란걸 알지만..... 선생, 난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 그것만은 확실하다는걸 이제야 깨달았어. 미련하게도."
"선생은 상냥하니까... 날 용서해줄거지? 다시 만나면 꼭... 그 따뜻한 품으로 날 안아줄거지....?"
너무나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과거 모종의 루트로 이 물건을 압수한 선도부가 비밀리에 소지하고 있던 저주받은 총탄이 장전되어 있는.
언제나의 돌발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호신용이라 포장되었던 '흉기'를 꺼내든 히나는 그것을 제 헤일로에 가져다댄 후, 가냘프게 떨리는 손가락을 차가운 방아쇠에 애써 건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았을 터인 한 방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달빛을 받아 푸른빛으로 빛나는, 시커멓게 죽은채 퀭해진 두 눈과는 대조되는 미소와 함께.
"기다려줘 선생. 금방 만나러 갈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손가락이 움직인다.
- 타아앙ㅡㅡ!!!!
굉음과 함께 하얀 머리칼이 나부낀다.
소녀의 육신이 바닥에 널부러지고, 새빨간 선혈이 흩날리는-
"허어어..... 휴우, 막아서 다행이다........"
- 대신, 마지막 순간 몸을 일으켜세워 권총을 붙잡은 손을 쳐낸 선생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실신한 히나가 있었다.
"와 씨, 일어날 타이밍을 못 쟀더니..... 큰일났네......!!"
까맣게 속아넘어간 불쌍한 소녀와,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썩을대로 썩은 어른이.
그곳에 있었다.
******
소녀는 눈을 떴다.
"히나."
"......아."
익숙한 얼굴. 그리웠던 얼굴.
히나는 몸을 일으켜, 소파에 누운 자신을 옆에서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선생을 보았다.
정신이 일깨워짐과 동시에 쓰러지기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취했던 행동이 기억 난 그녀는-
"성공했구나... 다행이다."
평온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남자의 손을 맞잡는다.
"선생, 안녕. 보고싶었어."
그와 다시금 만나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질렀던건지는 저 호수 아래에 묻어둔 채, 그리 반갑게 인사할 뿐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표정은 좋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 어울릴만한 안색.
"선생?"
"히나. 미안."
선생은 우선 사죄부터 한 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로 했다.
아무래도 자살미수라는 대형사고까지 간 일이니만큼, 장난기를 쏙 뺀 진지한 얼굴로.
"....왜...?"
허나 히나는 그것을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위해, 한 남자만을 위해, 선생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고 따라왔으나.
첫인사에 대한 대답이 '반갑다'도 아닌 '미안하다'라면-
"잠깐만, 선생님 말하지 말아줘. 알아. 나도 안다고. 선생님을 한계까지 무리시킨건 나라는걸. 결국 선생님을 죽인것도 나라는걸."
망령이 되어서까지 따라와놓고도 거절당하는 여자의 심정은 종잇장처럼 갈갈히 찢겨나가고 있었다.
맞잡을 뿐이었던 히나의 손가락에 점점 힘이 실리고, 무쇠보다 강한 족쇄가 되어 선생의 자유를 빼앗는다.
"자, 잠깐, 히나...?"
당황하기 시작한 선생을 담는 그녀의 눈은, 한층 더 악화되어 보라빛의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말야, 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여기에 왔어. 선생을 따라왔다고. 이제야... 이제야 진심을 전할 수 있게됐는데, 으극, 싫어...."
"히나! 진정해! 히나?!"
"죄, 죄송해요.... 용서 해 주세요..... 시키는건 뭐든 할테니 제발.........."
거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듯,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압도적인 무력을 이용해 남자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애원한다.
그 어떤 말도 듣지 않는, 아니, 듣지 못하는 패닉에 빠진채로.
몇분간 더 이어진 끈적한 실랑이를 겨우 끝낸것은, 선생이 목이 찢어져라 외친 외마디 비명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안 죽었다고오!!!!!!!!!!!"
******
"저기, 아로나."
"네, 선생님."
"히나가 집밖으로 안 나온지 얼마나 됐어?"
"오늘로 사흘이네요."
큰일이다. 진짜 큰일났다.
장난이 너무 심했던건지, 그날 모든 오해를 풀자마자 한 번 더 기절해버린 히나는 그 이후로 집에 틀어박힌 채 나오질 않고 있었다.
때문에 게헨나의 행정은 마비.
책임감을 느낀 내가 대신 모든 일들을 해치우느라 오늘도 야근의 야근이 이어지고만 있었다.
새벽 네 시가 넘어가는 덕분에 몸도 정신도 피폐해져가고 있고.
"저는 분명히 말렸어요?"
"크으윽....!"
아로나 저 녀석, 꼬시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아무튼, 이걸로 선생님도 느끼는 바가 있으시겠죠? 더 이상 나쁜 장난은 안 치실거죠?"
"으으으으........ 일하기 싫어........."
"대답 피하지 마시고요! 설마 아직도.....!"
발끈한 아로나가 또다시 잔소리를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 덜컹!
거칠게 열린 집무실의 문 너머로, 지난 사흘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던 히나가 헐레벌떡 뛰어온 것은.
"선생!!!!!!"
"어어, 히, 히나?"
"지, 후욱, 지금 뭐 하는거야!"
"응? 보, 보다시피 일....."
"안 돼. 안 돼, 안 돼!! 당장 그만해!"
얼마나 급하게 뛰어온건지, 숨을 거칠게 헤엑헤엑대는 히나는 무서운 발걸음으로 내게 접근한다.
그리곤 내가 집어들고 있던 서류를 빼앗곤, 억지로 손을 잡아 이끌어 방 밖으로 나선다.
"선생이 왜 게헨나의 업무까지 하고 있어.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는거야!"
"잠깐 히나.... 진정해봐! 너야말로 이 시간에 샬레에 왜 온거야?"
"그야 당연히 선생이 야근을 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어... 설마.
"저기, 히나. 그날 일은 정말 장난이었다니까.....!"
"하아, 하아....... 장난....?"
"응, 응! 장난! 자 봐, 선생님은 건강하다고!!"
".............아......"
그제야 약간은 제정신을 차린건지, 히나는 날 강제로 끌고가던 행동을 멈추고 우뚝 굳는다.
"맞아.... 선생은 안 죽었어...... 분명 그렇게 들었었으니까... 봤으니까........."
그리곤 초점이 나간채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내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말한다.
"미, 미안 선생. 조금 안 좋은 꿈을 꿔버려서. 정신이 온전치 못했나봐. 현실이랑 분간도 못하다니..."
"아니 그... 네가 미안할건 아니긴한데......"
머쓱하게 고개를 긁적이던 난, 문밖으로 나서려던 히나를 서둘러 붙잡았다.
"히나!"
"으, 응."
바로 사죄의 도게자.
철푸덕하고 내 신체가 바닥과 충돌한다.
"선생님이 진짜 잘못했어! 미안해!"
"..........."
잠시 시간이 지나고, 앞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 일어나."
"으, 으응....."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세운 내게, 히나가 안겨온다.
"어, 어어....?"
그것을 어정쩡히 안아주니, 작은 체구가 내 몸을 더욱 죄여온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장난 치지마아......"
"네엡.... 죄송합니다....."
울먹이는 히나와 한참동안 사죄의 포옹을 하느라, 역설적이게도 야근은 더욱 늦어질 뿐이었다.
다음에는 미카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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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스래기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