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

프롤로그
설 연휴가 끝나고 1월도 중반이 지났다. 어딘가 축제 같은 고양감으로 휩싸였던 연말연시도 끝나버리고 전혀 없었던 것처럼 하루하루 격류 속으로 떠내려간다.
이 학원도시의 「선생님」으로서 여러 학원 자치구를 방문했지만, 이렇게 신년이 일찌감치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느 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방문한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밀레니엄은 설을 제쳐두고 연말을 향할때 더욱 분주했다. 밀레니엄의 연말은 개인과 동아리에 지급되는 연구예산 심사의 계절이다. 학생들에게 연구 예산은 생명보다 무겁다.
심사를 받는 단체 이상으로 살기등등한 것이 심사를 하는 측의 학생회 조직・세미나다. 특히 회계를 맡은 하야세 유우카의 업무량과 책임은 헤아릴 수 없다. 지금의 유우카는 말을 거는 것조차 꺼릴 정도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을 거다.
『지금의 유우카쨩은 도저히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 이유로 이렇게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오늘 나는 그 세미나의 서기를 맡은 우시오 노아로부터 호출받아 밀레니엄을 방문 중이었다.
세미나 사무실은 학원 중앙에 위치한 「밀레니엄 타워」 위층에 있고, 회의의 기록이나 특허 심사 업무를 보는 노아는 대개 이 사무실에 머문다.
하지만 오늘 내가 안내받은 곳은 사무실과 같은 층에 있는 회의실이었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 구석의 긴 책상에서 몇 분정도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녀가 나타났다.
「바쁘신 와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노아가 옆에 착석하며 내민 물 페트병을 받았다.
「아냐, 노아야말로 바쁘잖아. 예산 심사도 그렇고 안 그래도 연말의 학생회니 다음 해를 위해 할 일이 산더미지?」
짐작하신 대로라는 듯 노아는 눈썹을 팔자로 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우카를 걱정하는 노아 자신의 안색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네..... 사실 이번에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그 다음 년도의 준비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저도 손이 닿지 않아서.」
「상관없긴 한데... 난 밀레니엄의 제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후훗, 그건 걱정 없어요. 분명 선생님에게 익숙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노아의 목소리에 약간의 장난스러움이 섞였다. 왠지 그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먼저 이쪽을 봐 주시겠어요?」
노아는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뭔가의 관리기록 같은 표가 떠 있었다. 표의 각 줄에는 사람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타워 26층 2604 교실 같은 방 이름이나 IP 주소 같은 것들이 즐비하다.
「이것은 세미나에서 학생들에게 대출하고 있는 교실과 서버 목록입니다.」
연구 활동에는 장소가 필요하다. 물리적인 장소는 물론 성과를 학내외에 공개하는 웹 페이지를 만들려면 서버도 필요하다. 세미나는 연구를 하는 단체의 규모와 실적에 따라 그런 장소의 대출도 해주고 있다고 노아가 설명했다.
「희망이 있는 한 대출하고 싶은 생각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 이상, 회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아, 예전 게임개발부 같은 느낌이구나.」
일찍이 게임개발부가 유우카에게 방을 빼앗길 뻔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게임개발부는 밀레니엄 프라이스에서 수상함으로써 실적을 인정받았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던 개인이나 단체도 그동안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대출자로부터 응답이 없는, 사용하지 않게 된 교실이나 웹 페이지를 회수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 부탁드리고 싶은 내용은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아는 표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열에는 「공개 서버」의 문자와 IP 주소가 적혀 있다. 대출 개시일은 3년 전.
「이쪽의 공개 서버...... 웹 페이지용의 장소입니다만, 대출로부터 시간이 흘러 빌린 분도 알 수 없게 되어, 1월 말을 기일로 회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실물을 보는 게 빠르겠죠. 여기가 그 웹 페이지입니다.」
노아가 태블릿 화면을 바꿨다. 표시된 것은 단색 배경 위에 단문이 여러 개 늘어선 글자뿐인 페이지다.
「이건...... 게시판 사이트?」
그것도 내가 보기에도 꽤 그리운 구조의 게시판이다.
가볍게 둘러본 화면상에는 사용자 아이콘은커녕 로그인 버튼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름과 본문을 입력하고 대화 스레드를 세우거나 스레드에 응답하는 정도의 간단한 것이다.
「네, 이 게시판말인데, 아직도 이용하는 것 같아서요.」
나는 태블릿을 손가락으로 스크롤 해봤다. 수십 개 존재하는 스레드는 거의 모든 게 같은 이름의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이다.
「『Jane Doe』.......?」
「네. 『제인 도』....... 『이름 없는 아무개』 같은 가공의 이름이죠.」
옛 문헌에서 본 적이 있는 표현이라고 노아가 가르쳐 주었다.
「이만큼 올라오는 걸 보면 갑자기 정지하는 것도 꺼려져서요. 선생님이라면 이분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인 도』의 스레드는 하루에도 몇 개의 페이스로 계속 올라와 있다. 게시판이라기보다는 마치 개인 일기 같다.
「괜찮긴 한데 세미나의 이름을 대고 『정지할게』라고 연락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다행입니다만......」
노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스레드 중 하나를 탭했다. 투고자는 『제인 도』가 아니라 『세미나 우시오』. 「당 서버는 관리자 부재로 1월 31일을 기해 정지합니다.」라는 내용이 배경을 포함해 상세하게 통지되어 있다.
그 투고에 대해 『제인 도』의 반응이 붙어 있었다.
단 한 줄, 「죽어! 권력의 개!」 라고.
「......이런 사정으로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저희보다 선생님이 더 익숙한 분야일거라 생각해서.」
「커뮤니케이션 말이지......」
그렇긴 하지만 그 상대는 화면 너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다. 정말 학생인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길어질 거 같네.」
「후훗, 승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대답의 어디가 승낙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노아의 목소리가 활기를 띄었다.
나는 한숨쉬면서도 이것으로 세미나가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며 해당 게시판 사이트를 내 북마크에 추가했다.
출처 불명의 서버를 둘러싼 보름에 걸친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Chapter : 1 1월 19일
Jane Doe :
밀레니엄 교내를 걷다 보면 아주 다양한 걸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도.
그게 싫고 싫어서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 그럼.」
노아로부터 의뢰를 받은 날 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일단 내 스마트폰으로 해당 게시판 사이트를 열어 보았다.
정체 불명의 『제인 도』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그녀의 사람됨을 짐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유일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녀의 과거 글. 여러 개 늘어선 스레드를 나는 미지근한 커피를 한 손에 들고 훑어본다.
투고의 대부분은 매우 일상적인 얘기였다. 물리 강의는 과제가 많아 싫다거나 겨울 한정 럼레이즌 아이스크림을 일년 내내 살 수 있으면 좋겠다거나 방과 후 야구부 연습 소리가 시끄럽다거나 하는 내용들이 지난 일주일치 줄을 잇고 있다.
밀레니엄 학생이라는 점은 사실인 듯 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본모습은 읽을 수 없어서 나는 다음 수를 쓸까 망설였다.
(커뮤니케이션을 부탁한다고 노아도 말했었고)
나는 고민 끝에 그녀의 게시물에 답변해 보기로 했다. 가장 최신의 스레드를 열고 내용을 입력한다.
『선생님 : 안녕. 물리, 나도 고생했지.』
지장없는 내용을 적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투고된 무기질적인 고딕체의 문자열을 보고 있으면, 처음치고는 다소 허물없이 군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게시판이란 그런 걸지도...... 이 아이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늙은이 티가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뜻밖에도 바로 답장이 왔다.
『Jane Doe : 뭐야?』
경계심이 역력한 문면.
나는 곧바로 저질러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제인 도』에게는 무인 게시판에 갑자기 내가 나타난 셈이다. 그것도 세미나에서의 정지 통보 직후에 「샬레의 선생님」이.
『선생님 : 아, 미안해. 밀레니엄 학생이 조사해달라고 부탁해서, 옛날 밀레니엄생의 업적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조사하다가 게시판을 찾은거라.』
스스로도 괴로운 변명이다. 만약 이 게시판이 다른 곳에서 링크를 타는 것이 아니라..... 내부 연락용이라면 지금의 말로 무덤을 판 셈이다.
내 서투른 거짓말을 원망하면서 나는 판결이라도 받는 듯한 기분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Jane Doe : 흐~응』
하지만 조금 기다려봐도 그녀의 답장은 그뿐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더 이상 추궁당하기 전에 다른 화제로 돌렸다.
『선생님 : 계속 이 게시판을 일기로 쓰고 있어?』
『Jane Doe : 응. 원래 무슨 게시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딱 좋으니까.』
『Jane Doe : 1주일 정도면 로그가 사라져 버리니까 옛날 일기는 없지만 말이야.』
어째서 이런 일을. 그렇게 치려다가 나는 손을 멈추었다.
(조금 조급함이 과하네)
모처럼 대화에 응해준 것이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좀 더 대화하자. 헛스윙이었던 물리 화제를 대신할 것을 둘러보며 대화에 몰두한다.
『선생님 : 럼레이즌을 좋아해?』
그녀의 다른 스레드에서 주운 그 화제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붙었다.
『Jane Doe : 별로, 보통.』
『Jane Doe : 하지만 한정이라고 하면 먹고 싶어지잖아?』
그리하여 『제인 도』는 띄엄띄엄 잡담에 응해 주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이나 학년, 연구 전문 분야같은 그녀의 본모습을 밝혀줄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우선은 이정도일까)
서버가 정지되는 1월 말까지는 아직 2주 정도 남았다.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고 상대의 목적을 듣고 난 뒤라도 설득은 늦지 않다.
장황하게 답변이 늘어난 단 하나의 스레드에 마지막으로 「잘자」라고 투고한 후, 나는 브라우저를 닫았다.
『제인 도』와의 대화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렇다해도 그것은 정말 실없는 주고받기일 뿐, 여전히 나는 그녀의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에.
밀레니엄의 업무를 마친 나는 귀로에 오르는 대신 동아리 부실동으로 향했다.
부실동 한 구석, 어두운 복도 안쪽의 그 방에서는 불빛과 기계 구동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 먹이의 눈길을 끌기 위해 발광하는 생물을 연상케 한다.
「......오랜만이야, 선생님.」
문을 연 나를 맞이한 것은 서버의 팬 소리와 에너지 드링크 냄새...... 그리고 카가미 치히로였다.
「여어, 치히로. 바쁜데 미안해.」
『제인 도』의 설득이 장기화되자 나는 병행해서 이 게시판의 출처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 쪽의 지식이 부족한 내가 의지한 것은 밀레니엄 최고의 해커들이 모이는 비인가 조직・베리타스다.
「......컴퓨터 관련이라면 나, 라고 생각해 주는 건 기분 나쁘진 않지만.」
치히로는 한숨을 쉬며 모니터 쪽으로 돌아섰다. 그 등에 호소하는 목소리로 부탁하며 해당 페이지를 보여준다. 스마트폰 화면을 본것만으로 치히로는 곧바로 같은 화면을 자신의 모니터에 열어 보였다.
「이 페이지네. ......어떻게 이런 오래된 사이트를?」
내가 간단히 경위를 설명하자 치히로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살이 금세 깊어졌다.
「......그거, 괜찮아? 세미나에서 귀찮은 일을 떠넘겼다고 해야하나.... 괴롭힘 당하는 거 아니야?」
「확실히 힘들다고 할까, 보람만 있는 일이지만...... 노아가 의지해 줬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노아라. 그 아이도 방심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너무 깊이 파고들면 험한 꼴을 볼지도 몰라.」
차갑게 말하면서도 치히로는 척척 손을 움직였다. 화면에는 검은색 창이 여러 개 열리고 영어의 나열 같은 게 줄지어 있다.
「그건 뭐하는 거야?」
「게시판 앱이 작동하는 것 같으니까 서버상의 프로그램 코드를 보고 있어.」
치히로는 모니터로 눈을 향한 채 설명했다.
「성실한 프로그래머라면 코멘트를 남겼을 테니까. 만들어진 날짜나 제작자 이름을 알 수 있을까 해서.」
「오오......」
약간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의미 없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 사이에도 치히로의 화면에서는 검은 창 하나가 스크롤을 이어가고 있다.
「......어라.....?」
이윽고 치히로는 손을 멈추었다.
「코멘트에 뭐라고 쓰여 있었어?」
「.......아니, 코멘트 자체가 거의 없었어. 마치 이 정도는 코드를 읽으면 알겠죠? 라고 말하는 것처럼.」
치히로는 애초부터 잠이 부족해 보였던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의아하다는 시선을 모니터로 향하고 있었다.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쓰는 방법에도 꽤 버릇이 있네. 각각의 처리는 억지스럽게 한 줄로 모아놨는데 전체 구성은 정리되어 있어서 묘하게 보기 좋아.」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도 왠지 모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버릇, 본 적이 있어.」
치히로는 옆의 에너지 드링크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했다.
「이거...... 아마 히마리가 쓴 코드일거야.」
Chapter : 2 1월 26일
Jane Doe :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이외의 모든 걸 싫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다.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 이외의 모든 걸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자신을 싫어해도 주변의 모든 게 함께 미워질 뿐인데.
『선생님 : 그건, 무언가의 인용?』
그날 내가 쓴 건 그런 답장이었다. 늘 주변의 일이 담겨 있는 『제인 도』의 스레드가 그날은 드물게 시적인 내용이었기에.
『Jane Doe : 아니, 내가 생각한 거야.』
잠깐 일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답장이 돌아왔다.
『Jane Doe : 선생님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
이어지는 투고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어떤 대답을 해도 여러가지가 덧붙어 파란을 부를 것 같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스레드에는 다음 회신이 왔다.
『Jane Doe : 나는 있어, 좋아하는 사람.』
『Jane Doe : 노력파인 사람이고,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되고 있어.』
『선생님 : 좋은 사람이네.』
왠지 흐뭇해져서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연애 이야기를 듣다니, 얼마만일까.)
어떻게 보면 한창 때 아이들의 상담을 듣는 선생님의 특권 같기도 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했다.
『선생님 : 너는 그 사람을 응원해?』
『Jane Doe : 으음...... 그다지.』
의외의 반응이었다. 망설이는 나에게 그녀는 계속 털어놓는다.
『Jane Doe : 가끔 생각해. 일하는 그 사람을 갑자기 데리고 나가서 어디론가 놀러가고 싶다고.』
『Jane Doe : 그리고 계속 이야기하는 거야.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연애 상담에 들떴던 걸 반성했다.
『선생님 :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는걸 보면, 좋아한다는 건 그런거겠지.』
『Jane Doe : 그런거구나.』
오늘의 『제인 도』는 왠지 말이 많다.
『Jane Doe : 다행이야.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줘서.』
그날의 스레드는 거기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끝나고 보면 고유명사 하나 나오지 않는 정말 추상적인 대화.
하지만 나는, 그날 처음 『제인 도』의 본모습을 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샬레 집무실 문이 열리고 수첩을 한 손에 든 채 얼굴을 비춘 것은 노아다. 오늘은 그녀의 샬레 당번 날.
「어서와. 세미나 일로 바쁜 와중에 미안해.」
「아뇨아뇨. 저도 유우카쨩도 샬레에서 선생님의 커피로 한숨 돌리는 걸 기대하며 학원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카페는 아닌데 말이지, 여기......」
샬레 소속 학생 중에는 노아처럼 학원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아이도 있다. 그러한 학생에게 있어서는 사무 작업이나 청소, 의뢰의 접수같은 걸 받는 「당번」의 시간은 학원에서의 일보다 한가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공공연히 휴식 취급을 받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런데 그 게시판 건은 어떤가요?」
머그잔을 한 손에 들고 탕비실에서 돌아온 노아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았다.
「아아, 그거라면......」
순조로워, 라고 말을 이으려다 나는 굳어졌다.
지난번의 대화로 조금은 『제인 도』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알려고 한 나머지 나는 당초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후훗, 대답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인 도』씨와 선생님이 상당히 친해진 건 이쪽도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노아는 기분 탓인지 즐겁게 말하며 손에 쥔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였다.
노아가 그 게시판을 알려줬으니 그녀가 상황을 모두 꿰뚫어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저번 스레드에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나머지는 선생님이 그녀를 설득해서 서버 정지에 대해 납득시킬지..... 아니면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 뿐이네요♪」
「네, 네에......」
나는 노아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벌써 1월도 마지막 주가 되어버렸습니다. 조금 마음이 괴롭지만, 슬슬 서버 정지를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어요. 그럴 경우 『제인 도』씨가 원한을 품고 세미나를 비방하거나 사무실이 습격당하는 것도 걱정해야 합니다만.....」
「괜찮아. 나는 아직 비책이 있어!」
나는 가슴을 펴고 옷걸이에 걸린 코트에 손을 뻗었다. 게시판으로 주고받는 것은 전부 들킬지라도 이쪽의 손패를 노아는 알지 못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잠깐 집 좀 봐줘. 밀레니엄에 일이 있어서.」
「밀레니엄에..... 요?」
「응. 실은 그 게시판을 만든 사람을 찾았을지도 몰라. 거기서 관리자나 『제인 도』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그런 얘기였나요.」
노아는 머그잔 속의 검은 수면에 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기대되네요. 선생님이라면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응, 맡겨줘!」
웃는 노아에게 배웅받으며 나는 샬레를 뒤로 했다.
「어머, 꽤 그리운 사이트네요?」
아케보시 히마리는 해당 게시판이 모니터에 뜨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밀레니엄으로 간 나는 그녀를 만나러 「초현상특무부」를 방문했다. 이 조직은 동아리라기보다는 히마리가 활동하기 위한 명분 같은 것이다.
베리타스가 미끼를 번득이는 물고기라면 방을 가득 채운 컴퓨터를 휠체어에 탄 몸으로 조종하는 히마리는 캄캄한 심해를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우아하게 헤엄치는 심해어를 연상시켰다.
「치쨩에게 용건은 들었어요. 네, 이건 제가 1학년 때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히마리는 팔짱을 끼더니 눈을 감고 회고에 잠긴다.
「세미나의 의뢰를 받아 학생 모두가 교류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쪽은 백엔드 시스템만 대강 마무리한, 이른바 부품 하나에 불과합니다만. 완성했을 경우 이 초천재 병약 미소녀가 만든 시스템으로서 『재녀병동(才女病棟)』이라는 이름을 붙일 생각이었죠.」
「트, 특이한 이름이네......」
무리한 요구를 낸 세미나에 대한 보복으로 이상한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는 건 아닐 거다. 묘하게 들뜬 히마리의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게시판은 완성되지 않은거야?」
「네. 사실 개발이 중단됐어요. 직후 『모모톡』이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굳이 만들 필요가 없어져서요.」
「아아......」
초천재도 유행은 예측할 수 없었겠지. 어깨를 으쓱하는 히마리에게 동정하면서도 내 뇌리에는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어라? 그럼 이 게시판은 결국 사용되지 않은 거야?」
나는 틀림없이 계속 사용되다가 역할을 끝낸 게시판에 『제인 도』가 정착한 줄 알았지만.
「네, 맞아요.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곳으로는 만들었지만 결국 빛을 보지는 못했죠. 이 게시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저와 발주자인 세미나 외에 당시 디버깅을 도와준 몇 명 정도가 아닐까요?」
「그 몇 명이 누군지 알고 있어?」
「반 친구에게 적당히 말을 걸었기 때문에 아련하게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그 중 누군가가 『제인 도』인 걸까. 하지만 히마리에 의하면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이 게시판이 그 몇 명 이외에 알려져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히마리가 수중의 키보드를 두드리자 모니터에 무수한 문자가 흐르기 시작했다. 문자의 탁류는 몇 초 후 정지해 낯익은 IP 주소를 빨간 글씨로 나타냈다. ......그 게시판이 있는 IP 주소를.
「이렇게 네트워크를 스캔하면 공개 서버는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저 같은 초천재 미소녀가 아니더라도 밀레니엄의 수업을 들으면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가..... 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거의 모든 학생이 『제인 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모습을 밝혀내기는커녕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괜찮으시다면, 그 계정의 출처를 알아낼까요?」
입을 다물어벌니 나에게 히마리가 젱나했다.
「게시하는 시각과 장소를 알아내 주변 CCTV라도 확인하면 금방이지 싶은데요.」
마치 「차가 있으니 바래다 줄까.」 라고 말하는 듯한 편안함으로 히마리는 그렇게 말했다. 하긴 그게 가장 쉽고 테크놀로지를 구사한 밀레니엄다운 해결책 같기도 했다.
「아니, 그건 됐어.」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킹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지만 그 외에도 이유가 있다. 나는 히마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건 선생님의 일. 커뮤니케이션 의뢰니까!」
(폼잡는 게 아니었어......)
나는 히마리에게 해킹을 부탁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제인 도』에 대해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은 채 벽시계는 1월 30일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게시판 정지는 내일로 다가왔다. 그걸 알고 있을 터인 『제인 도』는 오늘 게시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다시 읽고 단서를 찾는다. 그렇다고 해도, 어떤 스레드도 벌 써 몇 번이나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노아에게는 미안하지만, 슬슬 물러날 때인가.)
『제인 도』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노아는 서버를 지워야 한다. 그때 뒷맛이 좋은가 나쁜가의 차이일 뿐.
화난 『제인 도』가 물리적・전자적 보복을 시도할 때를 대비해 베리타스와 엔지니어부에 상의해 두는 정도면 될 얘기인지도 모른다.
얼핏 본모습을 보여준 듯 했던 『제인 도』도 다시 단단한 가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첫 대화부터 차례로 스레드를 재검토해봐도, 그 안의 정보를 아무리 조합해 봐도 신원과 연결될 만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래도 뭔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며 일단 게시판을 다시 읽고 있었던 그때였다.
(......어라? 그러고 보니)
어느 장소에서 나는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 그녀는 그런 얘기를.......)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은 하얀 점이 점점 크기를 더해간다. 추리극에서 본 장면처럼 지난 보름간의 일들이 뇌리에 전개돼 한 줄로 나란히 섰다.
(......혹시.)
『제인 도』가 3주 정도에 걸쳐 올린 흔한 내용의 일기. 히마리의 작품이지만 결국 사용되지 않았던 게시판.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나의 황당무계한 상상은 점점 확신에 가까운 윤곽을 띠고 있었다.
『히마리, 밤중에 미안해. 지금 괜찮아?』
뭔가에 떠밀리듯 나는 히마리에게 모모톡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 제 회색 병약 뇌세포에 용무인가요? 수면 부족은 피부와 두통에 영향을 미치니 간략하게 부탁드릴게요.』
말하는 것에 비해 답장은 금방 돌아왔다. 나도 간단하게 용건을 돌려준다.
『미안해, 내일까지 알고 싶어서.
.......전에 이야기한 게시판 사이트, 지우는 방법 알아?』
Chapter : 3 1월 31일
게시판 서버를 정지하는 날이 왔다.
노아에게 안내되어 엘리베이터로 밀레니엄 타워 중간 층에서 내리면 그곳은 층 전체가 서버실로 되어 있었다.
겨울 야외와 비슷한 온도로 유지되는 실내에는 서버 랙이 즐비해 곳곳에서 점멸하거나 팬 구동음을 울리고 있다. 그 모습은 작은 빌딩의 숲인가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마천루에서는 엄청난 수의 케이블이 뻗어 혈관처럼 방안에 둘러쳐져 있다. 그 모세혈관 끝자락, 방 안쪽에 비치된 단말기 앞에 노아가 앉아있다.
익숙한 IP 주소가 관리 단말기에 입력되자 매일같이 보던 게시판 화면 대신 검은색의 무기질적인 콘솔이 나타났다.
「이게 서버를 관리하는 화면?」
「네. 보안상 이곳에서만 접속할 수 있지만, 여기서 약간의 명령어만 입력하면 서버 삭제가 끝나요.」
「.......뭔가 싱겁네. 그렇게 생각하니.」
노아의 화면을 옆에서 들여다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게시판 서버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제인 도』와의 대화 기록도 사라진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수고해 주셨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그렇게 사과하는 노아의 면목없는 듯한 미소를 보고 나는 침을 삼켰다.
「......결과라고 한다면 말이야. 아직 나오지 않은게 아닐까.」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것이 느껴진다. 만약 헛스윙으로 끝난다면 나는 꽤 이상한 놈이다. 그래도 지난 보름정도를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콘솔을 앞에 둔 지금,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지 않아? 노아. 역시 네가 『제인 도』씨, 맞지?」
「......후훗.」
노아는 입가를 가리고 억누르듯 웃는다. 그 모습에서는 그것이 빗나간 추리에 대해 웃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정인지는 읽을 수 없었다.
「참고로,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제, 『제인 도』와 한 그동안의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거든.」
노아의 의뢰를 받은 날. 이 간소한 게시판 사이트에는 지난 일주일 정도 제인 도의 글이 줄을 이었다.
그 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일주일 정도밖에 로그가 남지 않는 이 게시판을 어째서인지 그녀가 일기장으로 쓰고 있다는 걸 들었다.
그 대화도, 내가 오기전의 일기도, 어제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의뢰받은지 보름이 지났는데. 아직 모든 과거 로그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제인 도』의 투고가 잘못돼서 사실 로그가 한 달 정도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하지만 계속 일기를 쓰는 사람이 로그가 언제 사라지는지 착각할까?」
노아는 시험문제의 해설이라도 듣는 것처럼 흥미로운 얼굴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일부러 「로그가 사라진다」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지 생각해봤어. 추억이 담긴 이 게시판을 지키고 싶은 줄 알았지만 히마리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추억은커녕 사용된 적도 없었지.」
그리하여 어젯밤, 나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제인 도』가 오래된 서버를 사유화하고 있다..... 그 자체가 의뢰인이 한 거짓말이 아닐까 하고.」
사용된 적 없는 무인 게시판에 일기 몇 개를 올려 「익명의 누군가가 정착한 삭제 예정지」를 만든 것은 아닐까.
「투고를 삭제할 수는 있지만, 로그가 남는 기간의 변경까지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런 방법을 취했어야 했을 것이다...... 라고.
노아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웃는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이런 추리소설을 읽었다고 치고, 노아는 『제인 도』의 동기가 뭐라고 생각해?」
「......글쎄요, 뭘까요? 그건 『제인 도』씨 밖에 모르는 일이죠.」
노아는 조작하던 단말기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가 사유화한 게시판은 이제 삭제됩니다. 답을 알 방법은 없어지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추측이 되겠죠.」
노아가 명령어를 입력하려 한다. 거기에 나는 또 하나 준비해 둔 카드를 꺼냈다.
「그거 말인데. 내가 하게 해주면 안될까, 서버 삭제.」
「......선생님이요?」
가늘게 웃고있던 노아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맡겨줘. 절차라면 이 게시판을 만든 사람에게 물어봤으니까.」
멍하니 있는 노아를 두고 나는 클리어 파일을 열어 안의 종이 뭉치를 꺼냈다
쓰여진 명령어를 더듬거리며 콘솔에 입력해 나간다. 그것은 히마리에게 배운 비밀스런 주문이었다.
*
어젯밤.
『전에 이야기한 게시판 사이트, 지우는 방법 알아?』
나는 히마리에게 모모톡으로 그렇게 「요건」을 전달했다.
『지우는 방법이요?』
『응. 게시판 시스템을 끄고 서버 자체도 지우고 다음 사람이 그곳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해?』
『글쎄요...... 서비스를 중지하고 구성 파일이나 설정을 삭제한 뒤 서버도 셧다운 한다는 얘긴가요?』
『예를 들어서 그걸 자정이 되면 자동으로 시작하도록 세팅하는 건 가능할까?』
『......그렇군요.』
그정도의 설명으로도 히마리는 납득한 듯 했다.
『선생님이 그걸 하기 위한 명령어를 보내면 되는 거죠?』
『역시 히마리!』
『맡겨주세요. 가능한 한 간결하고 틀리기 어려운 명령어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히마리는 순식간에 그 주문을 보내준 것이었다.
*
히마리가 되도록 간결하게 만들었다는 말 만큼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정말 주문 같은 문자열이었다. 모든 명령어를 콘솔에 입력해 넣기까지는 몇 분이나 걸렸다.
「이제 이 서버는 내일 0시에 삭제될 거야. 이거면 될까?」
「될까....라는건?」
「작업은 끝. 내일이면 다음 사람이 제대로 쓸 수 있지만 날짜가 바뀔 때까지는 『제인 도』도 글을 쓰러 올 수 있다는 거야.」
「......그렇군요.」
그러자 노아는 실이 끊어진 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왠지 추리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후후, 알겠습니다.」
「노아......?」
「네, 좋으실대로. 서버 관리도 정통한 선생님 덕분에 제 일거리가 없어졌네요.」
노아는 재킷을 다시 입더니,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쌀쌀하기도 하고 일이 없으면 오래 있을 필요가 없죠.」
「저기, 노아......?」
그대로 노아는 성큼성큼 출구로 걸어갔고 그런 그녀를 나도 황급히 뒤쫓았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작업은 다 끝났으니 저는 사무실로 돌아갈게요.」
서버룸을 나선 뒤 노아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건 내가 타고 내려가는 것.
「오늘도 늦게까지 일이 있으실 테니, 이후의 일은 적당히 하죠♪」
헤어질 때 닫히려는 문 너머로 노아는 그런 말을 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평범한 배려의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이 좋다.
학생들은 다들 취미도 개성도 특기 분야도 제각각이지만 무언가의 전문가. 그런 그녀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 학원이 나는 정말 좋다.
그 학원을 뒤에서 지탱하면서, 학원 모두의 모습을 기록하고 기억해 나가는 것은, 어느새 나에게 있어서 일 이상의 취미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기록에 몰두하며 세미나의 시점에서 밀레니엄 전체가 보임에 따라,
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기록의 렌즈를 흐리게 하는 노이즈라고 느끼게 되었다.
밀레니엄 교내를 걷다 보면 아주 다양한 걸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도.
이성이 개성을 조화롭게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에 나의 주관이 좋음과 싫음의 라벨을 붙여나간다.
그게 싫고 싫어서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아닌 『제인 도』의 좋음과 싫음을 이 서버에 묻기로 했다.
밀레니엄이 새해를 맞이함에 따라 세미나가 준비해야 할 것은 많다.
학원에서 귀가해 식사와 목욕을 마칠 무렵에는 시각이 벌써 10시가 넘었다. 긴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면서 다른 한 손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뻗어 그 게시판을 열고 있었다.
표시되는 것은 내가 『제인 도』같은 이름으로 매일같이 투고한 스레드들. 그 맨 위, 최신의 투고가 표시되는 위치에, 신착 스레드가 1건 투고되어 있었다.
투고자는 「선생님」.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젖은 상태 채인 머리도 내버려두고 그 스레드를 열었다.
내일의 머리카락 끝은 괴롭겠지만, 오늘을 경계로 사라져 버리는 이 장소가 지금은 중요하다.
그런 감정의 움직임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관리자가 없는 이 서버를 지우기로 한 것도, 그 위에서 일기놀이를 시작한것도 자신인데.
『선생님 : 이쪽에서 물어보면 되려나. 어째서 이런 일을 한 거야?」
스레드는 그런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Jane Doe : 심술궂네. 선생님은 이미 짐작했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선생님은 바로 답변했다.
『선생님 : 대체로는. 이 게시판 밖의 너와 많이 달랐으니까.』
『Jane Doe : 헤에, 어디가 달랐어? 이런 스스럼없는 말투라던가?』
『선생님 : 그런게 아니야.』
거기서 선생님의 투고가 잠시 끊겼다.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그의 마지막 게시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의미 없이 눈을 비비다가 감겨진 눈꺼풀 뒤에서 「그런게 아니야.」 라는 글자가 새겨져 흔들렸다.
눈을 떴을때, 화면은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이 이미 표시돼 있었다.
『선생님 : 네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좀 더 주위에 얘기해줘도 좋지 않을까. 모두 역할로서의 너를 보는 것보다 네 말을 듣고 싶어할 거야.』
내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로 미끄러져 간다.
『Jane Doe : 그러려나? 세미나란 입장,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경 쓰게 되는 거야.』
아아, 이래서는 이제 『제인 도』도 무엇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내 손가락 끝이 말을 돌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Jane Doe : 모두의 예산을 정하거나 신청된 특허를 체크하는 입장이야. 좋다거나 싫다거나 섣불리 말하는 것만으로 형평성을 훼손하거나 모두를 겸손떨게 만들지도 몰라.』
『Jane Doe : 그래도 선생님은 같은 말을 할 수 있어?』
『선생님 : 할 수 있어.』
답장은 바로 왔다.
『선생님 : 괜찮아. 밀레니엄의 모두는 너의 좋고 싫음과 세미나로서 판단의 구별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세미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너에게 아첨하거나 겸손을 떨 아이들이 아니야.』
『선생님 : 게다가, 좋다거나 싫다거나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건, 있어서 좋을 리가 없어.』
화면이 번져 읽을 수 없게 돼 눈가를 닦았다.
어째서 이 사람은 이렇게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 걸까.
처음부터 그랬다. 어째서 이 사람은 항상 내 본모습을 들여다보려 하는 걸까.
어째서 나는 선생님께 『제인 도』 찾기 같은 걸 부탁했을까.
『선생님 : 그런 건, 외롭잖아.』
아아, 그렇구나.
나는 외로웠던 거야.
『Jane Doe : 그렇네.』
『Jane Doe : 그렇게 할게.』
『선생님 : 다행이다. 이제 이 서버가 사라져도 괜찮으려나.』
시계에 눈을 주니 1월 말은 벌써 5분도 남지 않았다.
불필요한 서버를 빌려서 삭제 전에 잠깐 놀았다. 그저 그것뿐인데 앞으로 5분이면 이 장소가 사라져 버릴 거라 생각하니 가슴 안쪽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Jane Doe : 바이바이, 선생님.』
그런 답장을 마지막으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용서해 주지 않았다.
『선생님 : 내일부터 잘 부탁해, 노아.』
「......읏!!」
다시 내 시야가 번진다.
그 무심한 인사가, 마지막에 다시 한번 밀어붙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게시판에서의 시간이 그 순간, 결정적으로 사랑스러워지고 말았다.
『Jane Doe : 선생님, 감사합니다.』
글자를 치는 손가락을 멈출 수가 없엇다. 언어를 하나 늘릴 때마다 가슴 통증도 커져가는데.
『Jane Doe : 당신 덕분에 저는 숨 쉴 수 있어요.』
곧 사라질 서버에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인 도』가 아닌, 우시오 노아의 마음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입력란에 그렇게 써넣었다. 과거의 어떤 기억보다도 강하게 심장이 뛰고 있다.
23시 59분. 나는 떨리는 손가락 끝을 송신 버튼에 겹친다, 그리고..... 살며시 닿은 후, 뗐다.
2월 1일 0시 00분. 스마트폰 화면에는 「투고되었습니다.」의 문자.
화면을 다시 보려 해도 브라우저에는 이미 에러 화면만 뜨고 있다.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선생님♪」
2월도 중반에 접어들 무렵. 용무가 있어 밀레니엄을 찾았을 때 부실동 복도에서 노아와 우연히 만났다.
「여, 노아. 여전히 바빠?」
「네, 뭐어..... 연말만은 어쩔 수 없네요. 마음을 바꿔서 유우카쨩의 재미있는 비명소리로 힘내고 있답니다♪」
노아와 만나는 것은 그 1월 말의 서버실 이후 처음이었다. 그 후의 모습에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오늘의 모습은 잘 알던 노아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어서 나는 일단 안심했다.
「여기 있다는 건 노아도 베리타스에 볼일?」
베리타스의 부실은 여기서 가깝다. 노아에게 그리 물어본 것은 나도 베리타스에 볼일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네, 그 밖에도 이런저런 부에 볼일이 있습니다만..... 선생님의 행선지도 같다면 먼저 베리타스에 함께 갈까요?」
우리는 잡담을 나누며 베리타스의 방으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세미나 및 샬레의 용무로 왔습니다♪」
「......어째서 같이 오는 거야?」
치히로의 의아하다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나와 노아는 각자의 요건을 다했다.
노아는 신학기를 위한 학생 데이터의 갱신 때문에 하레나 코타마와 협의를 하는 듯 했다. 내 용무는 샬레의 보안 상황 진단. 치히로의 진단 결과 여기저기서 혼이 나면서도 나는 노아의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묵묵히 뭔가 작업을 하던 마키가 갑자기 머리를 싸안고 비명을 질렀다.
「아~! 왠지 모를 에러가 너무 많이 나는데!」
「선생님, 잠깐 미안...... 어디, 보여줘봐. 마키.」
치히로가 나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마키의 등 뒤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여기 변수의 유형 지정, 틀린 거 아니야?」
「아, 정말이네!」
그녀는 화면을 한 번 쳐다보자마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집어냈다. 마키가 그대로 고치자 이번에는 프로그램이 오류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키는 곧 웃는 얼굴이 되어 치히로에게 감사를 전한다.
「고마워! 이야~ 정말 치히로 선배 덕분에 숨 쉴 수 있어. 나.」
「윽!?」
뭔가 기억에 있는 문구.....
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등뒤에서 노아가 성대하게 뿜고 있었다.
「케흑, 콜록! 콜록!」
「에....... 노아, 괜찮아?」
하레는 걱정과 곤혹이 뒤섞인 시선으로 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갑자기 기침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네, 조금 목이 메여서.... 죄송합니다. 콜록, 콜록.」
역시 노아는 곧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키의 발언을 그대로 흘려보낼까 망설였지만 경위를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으음..... 지금 건? 마키가 말했던 숨이 어쩌고 하는.......」
「.......아아, 신경 쓰지 마. 베리타스 내의 유행어 같은 거니까.」
「오옷, 들어볼래? 그걸 설명하려면 먼저 내가 만든 『지저귐군』부터 얘기해야지!」
치히로와 마키가 동시에 대조적인 대답을 한다. 치히로는 한숨을 내쉬었고 콧대가 높아진 마키가 그대로 말을 이었다.
마키가 말하길,
하레나 코타마 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그녀는 베리타스에 공헌하기 위해 최근 해킹이나 코딩 연습 중이라고 한다.
그 일환으로 그녀가 만든 것이 「지저귐군」 ――밀레니엄의 서버를 떠다니며 주운 말을 랜덤하게 합성 음성으로 말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동작 테스트도 할 겸 마키는 그것을 항상 기동중으로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한밤중, 날짜가 바뀐다 싶을 때 「지저귐군」이 지저귄 게 그 문구였던 것이다.
「이야, 완전 웃겼어. 다들 밤늦게까지 작업하느라 죽은 눈을 하고 있는데 합성 음성으로 뭔가 포엠스러운 대사가 흘러나오니까. 당신 덕분에 저는 숨 쉴 수 있어요, 라니!」
마키는 떠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책상을 탕탕 쳤다. 시야 끝에서 노아가 조금씩 떨고 있는 것 같지만 무서워서 시선을 돌릴 수 없다.
마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치히로가 그녀에게 충고한다.
「......일단 말해 두겠지만, 다른 서버로부터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얻는것도 그다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니까. 사생활을 건드리는 데이터라든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
「그렇게 말할거야? 그날 밤 제일 웃은건 치히로 선배면서!」
「시, 시끄러워! 지금 그건 상관없잖아!」
정곡을 찔린 치히로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 문구는 부실동 한쪽 구석의 이 방에서 제대로 유행하고 있는 듯 했다. 치히로도 포함해서.
「......그럼, 노아..... 대체로 용무가 끝났으니 우리는 실례할까.....」
굳어있는 노아를 데리고 나는 일단 퇴실하기로 했다.
방을 나와 어두운 복도를 걸으면서도 노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올때와는 달리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어, 으음.」
어떻게 위로할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침묵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그렇게 말을 꺼내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노아의 미소에 대답을 허용치 않는 압력을 느낀다. 대책없이 나온 나는 맥없이 침묵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아. 최악이에요. 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어요.」
갑작스레 노아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의 이런 표정을 처음 본 기분이 든다.
「무서운 일이군요, 기록된다는 것은.」
.......알아줬다면 다행이다, 라고 나는 조심스레 생각했다.
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9611379
베리타스는... 서비스 종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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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노아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