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 #VL #SF #카요코 #아코
원본 by 成未霧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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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는 아코를 교육했다.
M이 나를 그렇게 했듯이, 나는 아코를 평범한 신입생에서 일류 요원으로 길러내려 했다.
아코의 적성은 있다고도 할 수 없었고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내 가르침에 따라 그녀는 내 파트너가 될 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나와 아코가 막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그 시점에 나는 아코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런 인물을 특무과에 추천한 것에 대해 M은 나를 추궁했다.
왜 저런 어설픈 녀석을 데려왔느냐고.
아닙니다, 그녀는 새로운 재능이 넘쳐나는 다이아몬드 원석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둘러대는 데 꽤 애를 먹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내 장기였지만, M의 장기는 거짓말을 간파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게 만들어야만 했다.
나는 가혹한 훈련을 아코에게 부과했다.
도망칠 걱정은 딱히 하지 않았다.
사적으로도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구조했던 고양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코는 퇴원과 동시에 인수자가 없던 그 애꾸눈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이름은 ‘쥬크’였다.
의미는 끝내 묻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그 새끼 고양이를 구실 삼아 나는 아코와의 관계를 깊게 다져 나갔다.
그러한 내 노력 덕분인지 아코는 훈련을 잘 견뎌냈다.
다만, 잘 견디는 것과 잘 배우는 것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언급해 두어야겠다.
정보 전술 분야에 관해서 아코는 아주 잘 배웠다.
기밀 정보의 관리, 미스디렉션을 이용한 교란, 대중 선동.
아코는 그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순식간에 실전 레벨까지 체득했다.
하지만 백병전, 현장 잠입에서 요구되는 기술을 아코는 몸에 익히지 못했다.
때리고, 차고, 던지고, 쏘고, 조르고, 메치고.
전투에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실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형(型)을 습득한다.
형이란 무도의 원리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격을 방어하거나 흘리고, 자신의 공격을 유효타로 만들 것인가.
그것이 무도의 원리다.
그것은 실전 데이터의 통계학적 분석에서 도출된 고도의 합리적 선택의 축적이며, 그곳에 개인적인 감각이나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즉, 형을 온전히 실천하고자 하는 자는 그 실천에 있어 일체의 자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의 생체 병기로서 오직 적의 배제만을 의식하며 싸워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으로서의 인격을 배제하고 대신 형을 설치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첩보 임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체 감각과 정신 감각 모두를 임무를 위해 집중시키지 않으면, 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적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감정은 첩보라는 메타 게임에서 가장 취약한 수다.
그녀가 〈시라유리〉에게 당했던 사례는 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아코에게는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아코는 감정이 너무나 풍부했다.
그녀는 욱하기 쉬웠고, 눈물도 너무 많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폭력의 행사에 자아를 개입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 경향은 나와 아코의 스파링에서 현저히 드러났다.
근접 전투 훈련으로 행해지는 육탄전, 그것이 스파링이다.
나는 아코와 수없이 스파링을 반복하며 총과 주먹을 섞었다.
아코는 나쁘지 않은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격정에 휘둘리는 충동이 가져오는 힘일 뿐이었다.
물론 그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전투에서 살아남는 힘이 아니다. 내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한 아코는 패배한다.
실제로 아코는 아무리 스파링을 반복해도 반드시 나에게 졌다.
그녀가 전투술을 전혀 익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상적으로 다루지 못했을 뿐이다.
자아를 개입시키지 않는 나의 합리성 앞에 아코는 반드시 패배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스파링을 마친 후의 아코는 매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멍투성이 얼굴로 아코가 나에게 미소 짓는 것이었다.
나는 그 미소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애꾸눈 쥬크를 차마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아코만큼 솔직한 웃음을 지어주는 학생은 달리 없었다.
동급생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생은 나의 담백한 태도와 날카로운 눈매를 경원시했다.
나는 누구와도 깊게 엮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그런 관계를 회피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타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교실 구석에 있는 전형적인 음침한 아이로밖에는 인식되지 않았다.
나는 그 상황을 형편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독은 나의 진정한 친구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코의 태도는 달랐다.
아코는 그 누구보다 나에게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첩보원 지망생으로서 배울 때도, 나이 차이가 있는 친구로서 접할 때도, 아코는 아무튼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했다.
그 모습은 각인 효과로 부모를 알아본 새끼 고양이의 그것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신기하게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한때 진정한 친구로 삼았던 존재를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와 함께 보냈던 시간보다 아코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더 큰 안락함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고독은 나와 적성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한 명의 첩보원으로서는.
하지만 그 인식을 뒤엎을 정도로 아코와 접하는 시간을 나는 즐겨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코의 그 태도는 PTSD 환자에게서 보이는 증상 중 하나인 특정 타인에 대한 병적인 의존의 전형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허구적인 호의를 어딘가 솔직하게 받아들여 버리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나 또한 아코처럼 완전히 자의식을 버리지는 못했던 셈이다.
나와 아코는 함께 쥬크를 돌보게 되었다.
고양이를 아끼는 즐거움을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이제 이 행위는 기밀 관리 활동의 일환이 아니게 되었다.
당연한 흐름으로 우리는 서로의 방을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굳이 레드윈터의 벽지까지 올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것도 이런 갈등을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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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이었다.
아코는 없었다.
나는 방 안을 한 차례 살피며 그녀를 적발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의자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곧 방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됐다.
방에 들어온 아코는 가볍게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워낙 좁은 방이라 아무리 나라고 해도 기척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문틈에 끼워두었던 머리카락을 내가 일부러 떨어뜨려 둔 것을 눈치챈 것일까.
하지만 아코는 이렇다 할 무장을 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 부주의함이 무르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압도적인 우위를 확인한 뒤, 의자에 앉은 채 아코에게 말을 걸었다.
“M은 부하가 부업으로 푼돈 좀 만지는 것 정도는 눈감아주지.”
아코의 등이 가늘게 떨렸다.
“기밀을 팔아넘기지만 않는다면.”
몸을 돌린 아코는 등 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직시했다.
야간 투시경 너머로 아코의 표정이 보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거창하게 말씀하시네요……. 선배답지 않게.”
그녀답지 않게,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넘버 에이전트가 파견된다는 소문……. 역시 사실이었나 보네요.”
넘버 에이전트.
특무과 소속 요원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정예에게 M이 부여하는 칭호다.
고대어 중에서도 특히 격조 높다고 여겨지는 언어, ‘링과 라티나’를 사용하여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의미하는 코드네임이 요원에게 할당된다.
나는 그중 제7호, 셉템이다.
물론, 나는 이 사실을 아코에게 알린 적이 없다.
부과되는 임무는 만마전 내부 학생들에게조차 비닉되어야 하는 성격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배신자 처단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아군에게도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유감이네요……. 비밀은 만들지 않기로 맹세한 사이였는데.”
아코는 내가 넘버 에이전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기밀에 접근해 있었다는 뜻이리라.
역시 나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던 셈이다.
굳이 동사할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올 가치는 충분했다.
“상당히 여유로우시네요.”
내가 당장 손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아코는 책상 앞에 앉았다.
나와 아코가 정면으로 마주 보는 형태가 되었다.
아코가 만마전 입대 면접을 보러 왔을 때와 같은 구도다.
나와 아코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코의 방이니까. 마음이 편안하네.”
“말은 잘하시네요.”
“따뜻한 커피 한 잔도 안 내놓다니, 너무 야박한 거 아냐?”
“실례했군요. 대접해 드릴까요?”
그렇게 말하며 아코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뒤로 이어진 일련의 동작은 실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머그컵 대신 꺼내진 것은 권총이었다.
시제 회전식 권총 TYR.
아코가 여기서 손에 넣은 물건일 것이다.
그 기괴할 정도의 거대함은 차치하더라도, 역시 가장 큰 특징은 저격 소총탄을 사용한다는 점.
그 위력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훈련받은 요원이라도 단 한 발조차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특징 때문에 반동 제어가 극도로 어려워 전용 의수라도 쓰지 않는 한 연속 사격은커녕 명중조차 쉽지 않다.
시제 무기가 시제 무기인 이유다.
“그런 물건은 전술적 가치가 없다고—”
“입 닥쳐!”
아코는 나를 겨누었다.
총구가 나를 포착했다.
가늠쇠 너머로 보이는 아코의 처절한 표정.
방아쇠가 당겨졌다.
찰칵.
맥 빠지는 금속음과 함께 공이가 약실을 때렸고, 실린더가 회전했다.
탄환은 발사되지 않았다.
“가지러 올 생각이라면, 탄약은 여기 있어.”
나는 주머니 속에 감춰두었던 탄약을 꺼내 바닥에 흩뿌렸다.
사전에 아코의 권총에서 빼두었던 여섯 발의 탄약이다.
“숨길 장소를 좀 더 고민해 보는 게 좋겠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코는 권총을 내려놓고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이오리의 실력은 어땠나요?”
“그 은색 트윈테일 아이 말인가?”
“네. 제가 키운 아이예요.”
아코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여전하다.
적절한 자기 인식과 오만한 태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반푼이더군.”
나는 이곳에 오기 전, 한 소녀를 쓰러뜨렸다.
아코의 말을 신용하자면, 그 소녀는 아코가 보낸 에이전트인지 보디가드인지 였던 모양이다.
이곳으로 오는 화물 열차 짐칸에서 나는 그 소녀의 습격을 받았다.
기습을 당한 것이다.
소녀가 어떻게 내가 숨어든 컨테이너를 찾아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소녀는 계속 나를 미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내 처신이 미흡했다는 뜻이리라.
앞으로 직면하게 될 개인적인 갈등에 정신이 팔려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어쩌면 소녀 또한 그 나름대로 첩보 기술을 갖추을지도 모른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그 소녀는 아직 중등부 학생처럼 보였다.
중등부 나이에 그 정도 기술을 갖췄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코가 했다는 교육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하지만 첩보원으로서는 제 몫을 할지 몰라도, 전투원으로 평가하자면 소녀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소녀는 라이플로 무장하고 있었다.
원거리도 대응 가능한 고위력 라이플이다.
일격에 확실히 나를 처치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가짐은 평가할 만하다.
그녀는 아코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에이전트를 상대하기 위해 상대보다 뛰어난 무기를 든다.
나쁜 판단은 아니다.
하지만 그 현장에서의 전술적 판단으로서는 역시 오판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극도로 제한된 폐쇄 공간에서 라이플의 전술적 가치는 권총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거대한 덩치로 인한 조작 편의성의 저하가 반응 속도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화물 컨테이너 내부에서 유효한 무기라고는 빈말로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마.”
소녀의 목소리는 높았다.
나는 위협을 무시하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우, 움직이지 말라고!”
소녀는 곧바로 쏘지 못했다.
이미 총구를 내 눈앞에 들이대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아직 총조차 잡지 않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신참 특유의 겁일까.
아니면 나의 차가운 눈을 너무 깊이 들여다본 것일까.
“안전장치.”
나는 짧게 내뱉었다. 말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
소녀는 라이플의 안전장치를 확인했다.
내가 던진 말에 불필요한 불안이 자극된 것이다.
물론 안전장치가 걸려 있을 리 없었다.
속았다.
소녀가 그것을 깨닫기도 전에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이플의 총신을 나는 간단히 쳐낼 수 있었다.
목표를 빗나간 탄환이 컨테이너에 구멍을 냈다.
소녀는 찰나의 순간 라이플을 되찾으려 저항했지만, 곧바로 포기하고 예비 무기를 꺼내려 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내게 총을 꺼낼 틈을 주고 말았다.
그 찰나가 생사를 갈랐다.
서부극의 속사 요령으로 나는 소녀를 쐈다.
절제된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안이 두 번 밝아졌다.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겁에 질려 있었다.
경악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이것은 M이 만들어내고 내가 연마한 속사 기술이다.
애송이인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음은 자명하다.
조준도 하지 않고 쏜 두 발의 탄환은 소녀의 몸통과 다리에 명중했다.
충격과 고통에 소녀는 무너져 내렸다.
고위력 폭발 탄약을 두 발이나 맞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고도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은 그저 경이적인 맷집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배짱 하나는 두둑했던 셈이다.
소녀는 웅크린 채로도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재빨리 나를 겨누었다.
하지만 소녀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보다, 내가 소녀의 머리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 더 빨랐다.
소녀는 허무하게 혼절했다.
“무언가 느끼셨나요?”
“언제 말이지?”
“이오리를 쐈을 때 말이에요.”
“별로.”
나는 위협을 배제하는 데 있어 그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다.
방어 반응으로 인해 표정이 일그러질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물학적인 반사에 불과하며 그곳에 감정은 담겨 있지 않다.
에이전트는 어디까지나 냉혹하고 냉정해야 한다는 규범에 나는 대체로 충실하다.
적어도 임무 중인 나는 그렇게 행동한다.
“그렇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선배가 여기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아코는 책상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일에 가담하지도 않았겠죠.”
두툼한 서류 표지에는 아코의 자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프로젝트 K1V/R1X에 관하여—
“조사 많이 했네.”
“전 아직 1학년이니까요…….
선배 같은 권한은 없죠.
선배 이상으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아코의 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녀의 냉정함은 역시 연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런 저조차 알 수 있어요……. 이 계획의 목적이 대량 학살이라는 것 정도는!”
참으로 서툰 연기였다.
그래서 이 일에는 맞지 않는다고 M은 판단했던 것이다.
나는 역시 바보였다.
<5>
프로젝트 K1V/R1X.
만마전 정보부 특무과는 당시에도 이미 수많은 기밀을 안고 있었지만, 이 계획은 그중에서도 최고 기밀로서 비닉되어 있었다.
간부급에게조차 이 계획에 관한 정보는 통제되었다.
물론 최고 기밀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계획의 전신이 된 어떤 계획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M에 대해서도.
만마전은 게헨나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흑마술에라도 손을 댔다.
그 흑마술 중 하나는 기술과의 피와 땀에 의해 구체화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H.G.W.다.
트리니티 자치구에 파견되었던 침투 공작원 중 한 명이 고서관에서 어떤 고문서를 발견한 것이 발단이라고 알려져 있다.
금서로 지정되어 있던 그 고문서에는 수십 세기 전 고대 문명이 사용했다는 흑마술과 그 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문헌은 고서관에서 탈취되어 만마전 소유의 지하 연구소에서 극비리에 해독되었다.
이 시점에서 만마전의 의도는 대립 관계에 있는 트리니티 학원이 행사할 수 있는 미지의 위협에 대한 방어책 검토였다.
유사시 트리니티에 유린당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두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의도는 여러 의미에서 빗나갔다.
트리니티에서의 보고들은 하나같이 미지의 위협을 준비하고 있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고는 모두 충분한 신뢰성을 담보하고 있었다.
트리니티는 단순히 그 마도서를 저주받은 책으로서 봉인해 두었을 뿐이었다.
만마전의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구체화된 사례가 보이지 않는 이상, 한때는 고문서의 기술이 모두 미신인 것처럼 판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고문서 해독이 상당 부분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병기적 및 정치적 이용이 기대되는 흑마술의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최초로 개념을 제창한 자의 이름을 따서 그 흑마술은 H.G.W.라 명명되었다.
H.G.W.의 작동 형태는 폭약과 흡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흑마술은 폭약으로서의 역할을 마친 뒤에도 치명적인 위협으로서 계속 잔존한다는 것이었다.
H.G.W.의 폭풍을 맞은 범위의 모든 것에는 어떤 원리에 의해 지효성 대미지가 계속 누적된다고 고문서에는 적혀 있었다.
노출된 자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르고, 폭풍의 먼지에 오염된 땅은 반영구적으로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다고도 했다.
고대인들은 이 H.G.W.의 위협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H.G.W. 그 자체에 대한 신앙을 만들어낸 모양이다.
이 신앙이 땅을 지배하던 시대는 고대어로 ‘팍스 아토미카’라 불렸으며, 적대하는 여러 공동체가 손을 맞잡는 평화로운 시대였다고 전해진다.
평화에 관한 기술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여럿 지적되었으나, 압도적인 공포에 의한 지배의 유효성은 연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했다.
고문서는 만마전 기술과로 넘어갔다.
기술과에는 H.G.W.의 실체화가 요구되었다.
끝없는 시행착오 끝에 기술과는 시제품을 완성했다.
운반에 전용 차량을 요구할 정도의 둔중한 쇠공이 지하 연구소에 현현했다.
고문서의 기술이 미신이 아닌 한, 그것은 사방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는 전대미문의 대량 살상 병기 그 자체였다.
만마전은 덩치만 큰 장식품 따위엔 볼일이 없었다.
전술적 가치를 내다보고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은 H.G.W.의 위력을 어떻게 해서든 확인해야만 했다.
물론 미지의 위험을 내포한 병기의 작동을 게헨나 자치구 내에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마전은 자치구 밖에서 초토화해도 상관없는 장소를 골라야 했다.
선택된 곳은 아비도스 자치구였다.
당시의 아비도스 자치구는 키보토스 내에서도 특히 평온이 유지되던 지역이었다.
풍요로운 농경 지대에 비교적 소수의 주민이 거주하던 아비도스의 중추에는 아비도스 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게헨나를 비롯해 다른 모든 학원과의 관계가 희박했다.
총학생회의 거점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탓에 학생회의 개입도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만마전 간부들은 아비도스 자치구의 중심, 거주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광활한 바나나 농장 지대에서 H.G.W.의 실험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H.G.W.의 운반을 담당한 것은 블랙마켓에서 고용된 불량 집단 중 하나였다.
만마전은 <검은고양이단>을 고용해 농장에 H.G.W.를 반입하게 했다.
또한 별도로 관측대를 현지에 파견했다.
관측대의 임무는 주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H.G.W.의 기폭 장치 조작.
다른 하나는 <검은고양이단>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여 고문서 기술의 진위, 즉 H.G.W.의 위력을 검증하는 것.
관측대에게는 납으로 만든 방호복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고문서에 납이 H.G.W.의 맹독을 차단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관측대는 그것을 믿고 기세등등하게 현장으로 향했다.
주로 기술과 학생들이 자원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을 눈에 새기고 싶어 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험에 즈음한 만마전의 판단은 대체로 옳았다.
불꽃은 확실히 쏘아 올려졌고, 그 이후의 대외적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과오는 실제로 일어났다.
<검은고양이단>이 소정의 위치에 도착함과 동시에 관측대는 기폭 장치를 작동시켰다.
계획대로의 정확한 기폭이었다.
아비도스 종단을 명령받았던 <검은고양이단>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순간적으로 증발했다.
고통을 느끼지도 못했을 터다.
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관측대는 말 그대로 눈에 새겼다.
그녀들 또한 초고온의 열선을 맞았기 때문이다.
고문서의 기술이 틀렸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들이 제조 공정에서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H.G.W.의 폭발 반경은 사전에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관측대는 사전에 방호복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어지간히 자신들의 작품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열선의 직격탄을 폭심지에서 어중간하게 떨어진 곳에서 맞은 관측대는 불행히도 즉사를 면했다.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검은고양이단> 대신 그녀들이 몸소 폭발의 위력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고온을 받아 피부는 벗겨졌고, 충격파를 받아 안구는 돌출되었다.
파쇄된 관측 기구의 파편이 전신에 박히고 신경이 갈기갈기 찢겼다.
급히 편성된 후발 관측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들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고 한다.
후발 관측대는 그녀들을 구조하는 대신 그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테이프와 필름에 기록했다.
이 기록은 H.G.W.의 개발 기록과 함께 아직 보관되어 있다.
서류, 이미지, 영상, 음성,
M은 자료를 내게 주었다.
명령받지 않았어도 나는 그것을 참조했다.
혀가 타버린 그녀들의 목소리는 거의 말이 되지 못했다.
비명. 신음. 쇳소리 섞인 숨소리.
하지만 의미를 담아 들리는 음성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아직도 내 고막에 달라붙어 있다.
“물…물 좀…….”
희생된 것은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아비도스 자치구는 광활한 탓에 주민 대부분은 폭풍이나 열선의 직격을 면했으나, H.G.W.의 대미지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었다.
폭발과 함께 광범위하게 뿌려진 먼지는 주민들의 신체를 서서히 좀먹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먼지에 오염된 지역의 동식물은 예외 없이 전멸했다.
실험 직후 잠시 폭발의 사건성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그 기운은 곧 사그라들었다.
애초에 현장에 들어가 조사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데다, 증거다운 증거는 모두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총학생회는 그 폭발이 불운한 사고였다고 단정 지었고, 아비도스의 모든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비극을 종결시켰다.
이 과정에 특무과의 암약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아비도스는 죽음의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결과를 거두고도 만마전은 H.G.W. 개발 계획을 실패로 간주했다.
사태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자치구 하나를 괴멸시키는 영향력은 학원으로서는 분명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게헨나의 실력으로서 운용하게 되면 여러 장애물에 직면하게 된다.
적대하는 타 세력에 대한 위협으로 H.G.W.의 위력을 흘릴 경우, 우선 아비도스에서의 사건을 게헨나의 소행이라고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공포를 공포로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무관한 자치구의 주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짓을 하면 총학생회는 물론, 다른 모든 학원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 뻔하다.
가령 그 사건을 표명하고 타 학원이 적대적 세력으로서 단결했을 경우, 게헨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제는 H.G.W.를 내세워 강압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경솔하게 H.G.W.를 운용할 수도 없다.
게헨나 자치구의 경제나 산업은 게헨나 자치구만으로는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타 학원 자치구를 초토화하면 그만큼 게헨나도 고통받게 된다.
소실된 타 학원의 도시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은 어렵다.
장기적으로 잔존하는 H.G.W.의 재미지를 중화하는 방법이나 치료하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그 사실은 타 학원들도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메타 게임이 유발될 것으로 생각되는가.
게헨나에 대한 경제 제재나 무역 제재일 것이다.
H.G.W.의 실질적인 유효성, 유사시 게헨나가 파괴 병기를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확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인식이 퍼지면,
그 사용을 미연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방지하려는 흐름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틀에서의 축출을 통해 게헨나의 쇠약을 기다리고,
충분한 체력 저하를 틈타 쿠데타 지원이나 방어적 침공을 감행하여 H.G.W.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현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다.
H.G.W.에 관한 추가적인 지식을 게헨나가 획득하기 전에 말이다.
그것이 타 학원들에 있어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자포자기한 게헨나가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단번에 적대하는 타 학원을 전멸시킬 만큼의 행동을 게헨나가 취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게헨나가 미리 각 자치구에 H.G.W.를 반입해 두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기에
타 학원의 초기 대응은 다소 신중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게헨나는 그런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거기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요구된다.
또한 개발진은 모두 타 죽어버렸다.
기술 계승에는 거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시간적 비용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안은 현실적이지 않다.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단계에서 블러핑을 해봤자, 학살의 진상을 알게 된 타 학원들은 첩보를 강화해 결국 사실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후의 흐름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게헨나는 파멸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병기의 영향력에 의해.
이렇게 판단한 당시의 만마전 간부들은 일련의 계획 일체를 어둠 속에 묻어버리기로 했다.
유사시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영향력으로서, 쌓아 올린 노하우만이 참고 자료로 보관되었다.
학살의 진상이 탄로나는 것도, 타 학원이 기술에 도달하는 것도 게헨나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원본인 고문서에 대한 접근이 다시 이루어졌고, 문제가 되는 해당 부분은 변조되었다.
자료는 지하 연구소 깊은 곳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실험으로부터 약 반세기 후, 뇌제가 그것을 눈에 담는 날까지.
뇌제의 본명을 아는 자는 없다.
적어도 지금의 게헨나 학원 내에는 없다.
아니 실제로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내놓는 대답은 똑같다.
“모른다.”
그 엄숙한 이명으로 불리기 전부터 그녀는 본명으로 불리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아직 만마전 특무과장이었을 무렵이지만, 그때 이미 그녀는 본명으로 불리지 않고 있었다.
역대 특무과장들이 전통적으로 그렇게 불려 왔듯, 그녀는 M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M의 동기들은 M의 본명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녀들은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M에게 전수받고 내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유도 심문 메소드를 구사하고도 알아낼 수 없었다.
변덕스럽게 만마전의 문을 두드린 신입생이었던 내게 M은 온갖 첩보술과 전투술을 주입했다.
음침하고 친구도 적었던 내게서 M은 첩보원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는 반쯤 감금되다시피 하며 M의 제자가 되었다.
M의 훈련은 가혹했다.
나는 M에게 수백, 수천 번을 얻어맞고 걷어차였으며, 수백, 수천 번을 밑바닥 수준의 어휘로 매도당했다.
도망칠 곳도 없었다.
M은 나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훈련이라기보다 조교에 가까웠다.
주인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짐승을 길들이기 위한 조교.
그럼에도 내가 M의 수하로 남기를 택한 것은 결코 내가 마조였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에이전트로서의 재능에 눈을 떴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M이 넋을 잃을 정도로 화려한 에이전트였기 때문이다.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몸짓과 거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만큼 뛰어난 에이전트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해도 좋다.
나 자신도 비할 데 없이 우수한 에이전트이긴 하다.
어떤 임무든 정확히 수행할 수 있고, 어떤 대상이든 확실히 배제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M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아마 10초, 아니 5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장 세련되었을 때조차 M과의 스파링에서 주도권은 항상 M에게 있었다.
M은 압도적이었다.
절대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오늘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조차, 모두 M이 준비한 시나리오의 범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M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M이 특무과장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리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2학년 때 선대 M을 몰아내고 M의 이름을 계승했던 그녀는 3학년이 되자 아무도 모르는, 전례가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한 직책에 올랐다.
그것은 만마전의 최고 권력자인 의장으로부터도 독립된 직무였다.
M이 그러했듯, 그 직책에도 공식적인 이름은 없었다.
어떤 이는 딕타토르라 불렀고, 다른 이는 퓌러라 불렀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렇게 불렀다.
뇌제(차르).
그때부터 그녀의 이름은 뇌제가 되었다.
뇌제가 구축한 지배 체제는 그녀답게 강권적이었다.
친정인 특무과와 정체불명의 첩보 기관을 이용하여 뇌제는 게헨나 전체를 수중에 넣었다.
그 고집불통인 선도부조차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게헨나의 전능한 신이나 다름없었다.
첩보의 신이자 정치의 신이며 모략의 신.
지금도 그렇다.
졸업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게헨나의 신은 신으로서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게헨나 전역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자, 다음으로 그녀는 키보토스 전역을 수중에 넣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학원은 물론이고 총학생회, 나아가 학생이 관할하지 않는 독립 기업들까지 자신의 휘하에 두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신의 힘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각 학원에는 각자의 첩보 기관과 방첩 기관이 있다.
특히 트리니티와 총학생회의 그것은 신이 길러낸 최고 걸작인 에이전트들에게도 까다로운 상대였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오토마타 군대도 결코 얕볼 수 없었다.
대등한 조건에서 싸우는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패배할 리 없었겠지만, 현실에는 역시 지형지물의 이점이라는 문제가 있다.
적의 토지, 적의 시설에서 두뇌전이나 육탄전을 벌이는 데는 무시하기 어려운 리스크와 핸디캡이 따르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만하게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단독 행동에 나선 에이전트가 극소수 존재했으나, 그녀들이 맞이한 말로는 대개 비참했다.
그런 무모함이 허용되는 것은 신뿐이었다.
신의 수하에서 스스로 벗어난 순간부터 그녀들은 멸망할 운명이었다.
물론 그녀들 따위의 희생으로 신의 군대가 약해질 리는 없었다.
오히려 불순물이 정화됨으로써 신의 군대는 더욱 완전한 형태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신은 그 군대를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타개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신은 동급생인 Q에게 다른 학원에 대한 유효타,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을 의뢰했다.
물론 이 Q라는 것도 본명이 아니라, 만마전 기술과장이 오랫동안 계승해 온 코드네임이다.
만마전의 어느 부서든 이런 코드네임을 붙이는 관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신은 그 양식을 특히 중시했다.
마치 구시대적인 스파이 영화 같아 넌센스인 데다,
후계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코드네임의 존재는 불길하지 않느냐고 내가 한 번 비판적으로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신은 이렇게 답했다.
"셉템, 자네는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
내가 자네를 과대평가했을까?
현장을 떠나고 나서 감각이 많이 무뎌졌어.
나도 노망이 난 게지.
그럼 그 노망난 김에 자네에게 하나하나 씹어서 가르쳐 주도록 하지.
그 신체 감각과 정신 감각을 곤두세우고 듣게나.
이것은 나와 자네의 스파링이니까.
코드네임은 확실히 양식의 산물이다.
구시대적이라는 지적은 옳아.
그 문자열 혹은 문자는 양식에 의해 부여되는 단순한 기호에 불과하지.
이 기호화는 물론 첩보 임무의 기밀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만, 넌센스라는 자네의 지적 자체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자네의 오해는 그다음에 있네.
첫째로 자네가 본명이라 부르는 개념 또한 전적으로 그러하며, 따라서 지적이 지적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지.
물론 사전에 규정된 본명이라는 문자열 혹은 문자를 전제로 하면서,
다시 코드네임이라는, 언뜻 보기에 더욱 무작위적인 문자열 혹은 문자를 할당하는 것을 넌센스라고 지적하는 것은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 지적 또한 전제된 의문과 마찬가지로 오류임에는 변함이 없네.
왜인가?
약간 견강부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쉬운 말을 빌리자면, 이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자네들은 모두 각자의 역할과 그 역할을 규정하는 타자의 시선이 가진 영향력에 의해, 정해져야 할 장소에 정해져 있네.
지금은 그렇지 않은 자도, 그렇게 정해질 것을 그때그때 적절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지.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정해지게 되네.
예외는 없어.
이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장소가 자네들이나 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정해져 있는 한,
그것은 잠정적으로 자네들이나 나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반대로 말하면, 자네들이나 나는 잠정적으로 바로 그 장소인 것이네.
그 장소는 그 장소를 대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타당하지.
본명 따위의, 그 장소와 결부되지 않는 문자열 혹은 문자가 아니라 말이야.
이렇게 본명이라 여겨지는 문자열 혹은 문자는 코드네임이라 여겨지는 문자열 혹은 문자 앞에서 그 우위성을 상실하고,
따라서 그 존재 의의는 소멸하네.
그리고 역할이 없는 자에게 주어질 장소가 없듯이, 존재 의의를 갖지 못하는 개념은 소멸하지.
자동적인 프로세스인 거야.
그래, 자네는 코드네임이 내포한 교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적했었지.
자네의 그 통찰 또한 틀리지 않았네.
자네들이나 나는 항상 유동적인 존재로서 그 역할을 변화시킬 수 있지.
자네가 나에게 폭력의 세례를 받고 재능을 꽃피워, 앞뒤 분간 못 하는 건방진 애송이에서 셉템에 걸맞은 생체 병기로 변신한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동시에 자네가 셉템이 됨으로써 이전의 셉템은 셉템이 아니게 되었지.
더욱 셉템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를 위해 그녀는 셉템이라는 장소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거네.
더 보편화해서 말하자면, 장소 자체의 변화 없이 그곳에 정해져야 할 자가 변천했다는 뜻이지.
이는 즉, 장소에 대해 자네들이나 내가 교환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네.
자네가 범하고 있는 위험한 착각은 이 교환 가능성을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해진다.
그 역학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전혀 불길한 일이 아니네.
오히려 자네들이나 나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사과가 지구의 인력을 감수하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 감수를 위한 매체 중 하나로서 코드네임은 또한 필연적으로 존재하네.
그렇지 않은가?“
신이 읊조린 이 말을 나는 일자일구 기억하고 있다.
해마에서 이 기억을 끄집어내어 반추한 횟수는 셀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의 본질을, 혹은 신의 본의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또다시 신과의 스파링에서 패배한 것이다. 역시 신은 절대적이었다.
이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의 Q가 '해임'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Q는 신을 배신하고 있었다.
신의 계획을 Q는 상당히 이른 단계부터 두려워했고, 그 계획에 이용될 수 있는 H.G.W. 자료를 신으로부터 은닉했다.
그 시도는 금방 간파되지는 않았지만, 역시 Q와 그 부하들은 우수한 연구원일지는 몰라도 우수한 에이전트는 아니었다.
Q를 의심하기 시작한 신은 당연하다는 듯 이중 스파이를 심어 Q의 음모를 알아차렸다.
Q가 그 이전에 유효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오염 지역에서 건조가 진행되던 열차포 셰마타나, 북쪽의 외딴섬에서 개발된 TK 보행 전차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그런 둔중한 장난감을 만들어낸 것도 신에게 공포를 느낀 Q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신은 Q를 '해임'하고 자신이 Q를 겸임했다.
과거의 Q와 그 부하들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녀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신은 실제로 이전의 Q보다 Q로서 더 적임자였다.
신은 발명가로서도 절대적으로 뛰어났던 것이다.
그런 신이 리스크가 너무 큰 H.G.W.를 그대로 병기로 전용할 리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검토된 H.G.W. 운용상의 리스크를 인지하면서도 '팍스 아토미카'적인 공포 정치의 형태에는 주목했고,
그 지배를 미치게 하는 데 있어 대안이 될 수 있는 병기를 찾기 시작했다.
고문서 해독이 다시 이루어졌다.
<시라유리> 적발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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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은 뭔뜻임
Very Long 초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