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 #VL #SF #카요코 #아코
원본 by 成未霧蘭
원제 : Nobody Does I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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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종말의 예상은 구원의 희망과 결탁한다.
—오사와 마사치, 『허구의 시대의 끝』
<1> ~ <3>
<1>
달이 없는 밤이었다.
가로등의 하얀 빛에 도려내진 거대한 직육면체 무리는 그 무기질적인 직선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지상으로 짙은 그림자를 투사한다.
구성주의의 무정함을 온몸에 두르고 솟아 있는 그것들은 학생들이 거주하는 집합 주택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외벽에서는 명백한 열화가 느껴졌다.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고려해도 노후화가 현저했다.
늘어선 어느 동을 보아도 마치 폐허나 다름없어 보였다.
외벽에 규칙적으로 늘어선 창문들은 지금 모두 철제 덧문으로 틈 없이 봉인되어 있었다.
쏟아지는 눈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다.
녹슨 철이 바람에 휩쓸려 때때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울렸다.
작지만 신경질적인 그 소리는 박쥐 떼가 날아다니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예년마다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는 이 지역, 레드윈터 제6 중앙 공업지대에서 이런 풍경은 절반쯤 일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삭막함은 나 같은 이방인에게 어쩔 수 없는 불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버려지고 남겨진 전체주의자의 토치카.
혹은 기계적인 반추를 반복하며 살덩어리를 내뱉는 강제 수용소, 라게르.
형상화되어 연상되는 여러 비참한 죽음들.
그 상징으로서 기호적으로 진열된 사자(死者)들.
그것들의 환각.
동과 동 사이의 골목에 발자국을 남기며, 나는 뇌를 침식하는 그 이미지를 그저 받아들인다.
환각은 환각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그 영향력을 박탈당하고, 다른 기억과 마찬가지로 아카이브화된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변질된다.
나는 감은 눈꺼풀 아래에서 안구를 빠르게 운동시켜 그 데이터베이스를 망각한다.
이것은 안구운동에 의한 탈감작 및 재처리 절차, 이른바 EMDR이라 불리는 동작으로
시신경 자극을 통해 뇌의 기억 영역에 간섭하여 임의의 기억을 변조하는 기술이다.
진자를 눈으로 좇게 하는 고전적인 최면술의 응용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당신은 점점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 속삭임을 들으며 시신경 자극을 받음으로써 직전의 워킹 메모리가 소거되고, 그 영역이 졸음으로 덮어씌워진다.
그리고 잠이 온다.
EMDR은 원리적으로 이 최면과 완전히 동일하다.
미신 같은 이 행위의 효과가 발견된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치료 현장에서였다.
작용 기전은 불분명하지만, 안구운동을 통한 뇌 자극이 정신 안정에 유효하다는 사실은 임상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트라우마적인 기억이 설령 부분적일지라도 변조됨으로써 플래시백의 영향을 경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억 변조라는 행위는 다른 정신 의학 치료와 비교해도 침습도가 높은 치료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점이 크기 때문에, 즉 트라우마가 방치되었을 때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기 때문에 EMDR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내가 방금 행한 것처럼 일련의 동작을 통해 죽음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나의 정신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안정을 되찾는다.
EMDR은 기본적으로 상담사와 환자의 공동 작업이지만, 나 같은 요원은 모두 혼자서 EMDR을 실천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워킹 메모리의 조작은 감정 통제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하가 높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정을 억압하고 원활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자기 최면은 이제 필수 불가결하다.
M은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훈련생 시절에는 구습의 일종이라 의심했었지만, 실전에 투입되면서부터는 그 효과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공포, 분노, 열락, 애수…….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감정에 지배된 채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
감정은 합리적인 판단을 현저히 어렵게 만든다.
그 곤경에 직면하는 찰나의 순간이 우리가 짊어진 임무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 게헨나 학원의 안보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임무를 맡고 있다.
즉, 우리가 찰나의 방심으로 실수를 저지르면 우리가 속한 학원 전체가 위기에 처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언제나 냉정해야 한다. 언제나 냉혹해야 한다.
우리의 피는, 나의 피는, 언제나 차가워야만 한다.
영하로 떨어지는 이 레드윈터의 밤공기보다 훨씬 더 차가워야 한다.
그 차가움을 가지고 해야 할 일만을 해야 할 방식대로 해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같은 임무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5호동의 현관으로 발을 들인다.
콘택트렌즈에 내장된 야간 투시경 ANVIS는 어둠 속에서 어떤 인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다.
매복을 경계했으나 기우였던 모양이다.
후드를 벗는다.
시야가 단숨에 넓어진다.
유리문 표면에 반투명한 내가 투사된다.
축축하게 젖어 어둠에 섞여 드는 오버사이즈 파카 아래에서, 무표정하지만 공격성을 머금은 얼굴이 나타난다.
흑백 두 색으로 나뉘어 염색된 포니테일이 흔들린다.
뒷머리에서 휘어져 허공으로 뻗은 두 개의 날카로운 끝부분은 악귀를 연상시키는 한 쌍의 뿔이다.
그 색은 둘 다 검은색.
갓 닦아낸 나이프처럼 번뜩이고 있다.
옷에 묻은 눈을 턴다.
그 두 손은 드러난 뼈라고 착각할 만큼 하얗고 가늘다.
피부에 닿은 눈은 녹아내려 소리 없이 투명하게 맺혔다 떨어진다.
듬성듬성 켜진 형광등이 연출하는 모노크롬의 복도를 나는 조용히 걷는다.
고전 영화의 한 장면을 샘플링한 듯한 공간에 나는 동화된다.
목적한 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난간조차 없는 낡은 계단이다.
이 집합 주택에 엘리베이터 같은 세련된 설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레드윈터 연방학원은 엘리베이터 설치로 인해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누릴 편의의 크기와,
엘리베이터 건축비 및 유지비 조달을 위해 최우선으로 희생될 캐러멜 푸딩 수입비 총액을 저울질한 끝에 후자를 무겁게 여기기로 했던 것이다.
서기장의 독단으로 내려진 그 결정은 사회주의 이념 실현에 관한 몇 가지 논쟁, 그리고 분파 학생들에 의한 사보타주를 불러일으켰다.
타 학원의 첩보 부대가 선동하지 않은 저항 운동 중에서는 상당히 대규모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주변 사실들은 나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나는 엘리베이터의 부재를 눈곱만큼도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이곳을 거처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는 레드윈터 소속 학생조차 아니다.
나에게 이 5호동은 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장소에 불과하다.
계단을 오른다.
매끄러운 발걸음을 지탱하는 것은 하이컷 정음(靜音) 군화, 에어맥스다.
특수 가공된 합성 고무 밑창 덕분에 내가 내야 할 발소리는 거의 완벽하게 흡수되고 있다.
5호동의 공산주의자들이 나를 눈치챌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들이 나의 눈을 들여다볼 일도 없다. 아마 꿈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들은 꿈다운 꿈조차 꾸지 못할 것이다.
하루 종일 작업에 동원되어 초주검이 된 노동자들은 모두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최저 임금으로 구식 전차를 만드는 용접공,
끝이 보이지 않는 철도 부설에 동원되는 작업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채석장의 광부…….
원하든 원치 않든 가혹한 처지에 몸을 담고 있는 그녀들에게 안락한 잠은 희소성 높은 행운 중 하나일 터다.
나는 그것을 방해하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
그런 종류의 악의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목적지가 위치한 6층에 다다라 나는 계단을 벗어난다.
발걸음을 늦추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나아간다.
파카 주머니를 양손으로 더듬는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몇 가지 지각한다.
나는 그것들이 틀림없이 그곳에 있음을 재확인한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것들을 조작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나 자신이 지금 막 행하려는 일의 중대함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길지 않을 복도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그 자각이 불러일으킨 긴장 때문일 것이다.
교감 신경의 과도한 흥분으로 인해 나의 신체는 가벼운 지남력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호흡의 흐트러짐, 심박수 상승, 그에 부수되어 강조되는 편두통 등의 경미한 신체적 이상 원인도 모두 그곳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건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나는 다시 EMDR을 시도한다.
플래시백하는 끔찍한 기억을 지워버리려 시도한다.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고, 나의 피는 다시 차가움을 되찾는다.
그나저나 임무 수행 중에 이 정도의 긴장을 느낀 것이 대체 얼마 만인가.
어쩌면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실전에 임해 처음으로 맨손으로 타인을 혼절시켰던 그때조차 이 정도의 긴장은 아니었다.
닫힌 몇 개의 문 앞을 지나쳐 나는 608호실 앞에 선다.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낸다.
그 손에서 은색이 빛난다.
Q과에서 특별 제작한 백금제 락 피킹이다.
들릴 듯 말 듯한 크기로 딸깍 소리와 함께 밀실의 문이 해제되었다.
꿀꺽 숨을 삼키고 방으로 발을 들인다.
주머니에 넣은 채 금속의 감촉을 움켜쥐고 있는 왼손에 땀이 밴다.
문은 다시 소리 없이 닫힌다.
어둠.
밀실.
<2>
게헨나 학원 고등부의 신입생은 누구나 폭력의 세례를 받는다.
정도나 경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외는 없다.
누군가는 총에 맞고, 누군가는 매질을 당하며, 또 누군가는 가혹하게 유린당한다.
단독으로 혹은 집단으로, 재학생은 신입생을 습격한다.
그렇게 폭력의 기억을 심층 심리에 각인시켜 게헨나를 존립하게 하는 폭력의 구조 속에 신입생을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 세례는 당연히 학원 자치의 틀 안에서 제도화된 이벤트가 아니다.
하지만 절반쯤 하나의 전통으로서, 혹은 불문율로서 오랫동안 계승되어 오고 있다.
신입생들은 조만간 어떤 기회로든 게헨나에 뿌리박힌 폭력의 구조와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더 강인한 육체와 무기를 가진 선배 학생들에 의한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실력 행사.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의 폭력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폭력.
그 실천.
약육강식이라는 말조차 미지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실상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런 사태가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신입생은 입학 전부터 이미 귀동냥으로 알고 있다.
그것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그녀들은 게헨나에 입학하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은 왕왕 그녀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의 가혹함을 보여준다.
상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한 신입생은 그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끊임없는 폭력을 견뎌낼 수 있는 육체적 및 정신적 강도를 어떻게든 획득하느냐, 아니면 학원을 떠나느냐의 양자택일이다.
어느 쪽이든 신입생들은 묵묵히 이를 악물 수밖에 없다.
아마우 아코가 처음으로 이를 악문 것은 입학식으로부터 약 2주 뒤의 일이었다.
게헨나 학원은 과거에 한 번 시설의 대대적인 재편을 겪은 바 있다.
학원의 규모 확장에 따라 모든 시설이 새로 지어졌다.
그때까지 학원을 구성하던 건축물의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철거되었다.
단 하나의 예외로서, 역사적 건조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교사 본관만이 ‘구교사’로서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신축 교사로의 기능 이전이 완료된 이후 제대로 된 보존 작업이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선도부나 만마전도 기능하지 않는 시설의 치안까지 유지할 필요는 없다,
그럴 여유는 없다고 판단하여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구교사는 오로지 불량 학생들의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다.
절반쯤 필요악으로서 묵인되는 경향도 있었다.
입학 직후, 아직 학원 지리에 서툴렀던 아코는 도서관을 찾다가 그곳으로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엔트런스 홀에 발을 들인 아코는 이곳이 자신이 찾던 장소가 아님을 즉각 깨달았다.
황폐해진 내부 인테리어나 무성한 잡초, 비릿한 쇠냄새가 나는 공기만이 그 판단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곳에 진을 치고 있던 학생들, 도서관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험악한 소리를 내지르던 다섯 명의 학생들의 모습을 아코는 분명히 보았다.
그녀들은 모두 하얗고 위엄 있는 특공복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고전적인 학생복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통적인 군복처럼 보이기도 하는 옷이다.
그녀들의 몸에 딱 맞게 제작된 그것은 특주품이다.
종교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통일성 외에 전투복으로서의 기능도 겸비하고 있다.
원단 곳곳에 짜 넣어진 철판이 그중 하나다.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던 그녀들은 처음에 멍하니 서 있는 아코를 알아차리지조차 못했다.
부릅뜬 다섯 쌍의 눈은 번뜩이며 빛났고, 시선은 어떤 한 곳에 쏠려 있었다.
아코는 그 시선을 쫓았다.
시선은 그녀들의 발치에 꽂혀 있었다.
무언가가 둘러싸여 있다.
칼을 든 다섯 명의 학생들이 무언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아코는 눈을 가늘게 떴다.
둘러싸인 것은 하얀 무언가였다.
차가운 어둠 속, 돌바닥에 내팽개쳐진 하얀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 있었다.
고양이의 얼굴은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울면서 서툴게 윙크를 해 보이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물론 고양이는 실제로 울고 있었던 것도, 윙크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고양이는 오른쪽 눈이 파여 나가 텅 빈 안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무슨 짓인가요.”
아코가 다섯 명에게 말을 걸었다.
질문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비난하는 목소리였다.
아코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아코는 분노하고 있었다.
원래 정의감이 강했던 아코였다.
눈앞에서 지금 막 자행되던 비인도적인 행위를 묵묵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학생 중 한 명이 일어섰다.
뒤돌아 아코를 보았다.
나머지 네 명도 그 뒤를 따른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는 없다.
그녀들의 입가는 기묘한 형상의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다.
표정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둡게 빛나는 다섯 쌍의 안광은 초점을 잃은 채 아코를 계속해서 포착했다.
비틀거리듯 다가오는 그녀들.
아코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다섯 명에게 둘러싸였다.
“무슨 생각이죠?”
끝까지 의연한 태도를 취한다.
수십 센티미터 앞까지 다가온 그들을 노려보며 더욱 강한 비난의 의사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섯 명은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눈은 가학적인 기대감에 한층 더 빛나기 시작한다.
새로운 사냥감을 손에 넣었다는 듯한 눈이다.
먹잇감이 제 발로 뛰어들었다.
길을 잃은 새끼 고양이보다 훨씬 더 괴롭힐 보람이 있는 신선한 먹잇감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코는 학원 지리뿐만 아니라 학원 내 정세에도 밝지 못했다.
자신과 대치하는 다섯 명의 학생들이 ‘시라유리(死羅百合)’라 자칭하는 신흥 종교 단체의 일원이라는 것,
그녀의 정면에 서 있는 자가 그 시라유리의 지도자라는 것,
시라유리는 가뜩이나 치안이 열악한 게헨나 자치구 내에서도 특히나 악명을 떨치고 있다는 것.
그런 주변 사실들을 열다섯 살의 아코는 아직 알지 못했다.
“너는 누구냐.”
아코의 눈앞에 선 학생이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였다.
상대를 위압하는 목소리다.
박력이 있다.
아코를 내려다보는 학생의 눈은 가학심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아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소 움츠러들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태도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그 학생을 더욱 강한 비난의 눈초리로 노려볼 뿐이었다.
“묻고 있다, 너는 누구냐고.”
한층 더 위압적인 목소리로 학생이 아코를 압박했다.
아코는 역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고양이, 당신들이 저렇게 만든 건가요?”
“대답이 되지 않는군.”
힐문이 오간다.
답은 나오지 않는다.
시라유리들의 손에 쥐어진 나이프에서는 아직 미지근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더러운 구교사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혈흔, 그리고 무심하게 버려진 작은 안구.
그것들을 확인하고 아코는 각오를 다졌다.
교복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낸다.
입학과 동시에 구입한 소구경 호신용 권총이다.
총구는 아코의 눈앞에 있는 학생, 시라유리의 수장을 겨누고 있다.
“당신들이 어떻든 나는 동물 학대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누구든 나는 당신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생사를 불문하고 나는 당신들을 관계 기관에—”
아코가 그 말을 다 끝맺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 아코가 느낀 것은 충격이었다.
충격이 아코의 호흡을 멈추게 했고, 말을 부자연스럽게 끊어버렸다.
엄청난 질량이, 중력이 돌연 아코의 배 위로 덮쳐왔다.
허리가 꺾이고 복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야 아코는 통증을 인식했다.
그녀의 배, 배꼽 바로 위, 좌우 갈비뼈 하단 경계 사이에 주먹이 박혀 있었다.
시라유리 수장의 주먹이다.
단단히 쥐어진 그 주먹은 내장을 움켜쥐기라도 할 듯 아코의 배를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먹 안쪽으로 나이프의 자루가 보였다.
아코는 찔린 것이다.
고양이의 오른쪽 눈을 도려냈던 나이프가 이번에는 아코의 배를 관통했다.
칼날은 보이지 않았다.
뿌리까지 아코의 체내로 삼켜졌기 때문이다.
갓 산 교복에 피 얼룩이 번져나간다.
아코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된 거지?
질문하는 그녀의 사고에 그녀의 육체가 답했다.
무뎠던 통증이 날카로워졌다.
날카로워진 통증이 그녀의 체내를 파고들었다.
서늘한 이질적인 차가움과 타는 듯한 뜨거움을 아코는 동시에 지각했다.
구역질이 몰려왔다.
위 내용물이 새어 나온 피와 섞여 식도로 역류했다.
쇠 맛과 신맛이 났다.
무게 중심을 잃고 아코는 등부터 바닥으로 쓰러졌다.
딱딱한 돌바닥에 뒷머리를 세게 부딪쳤지만 아코는 그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머리의 통증을 느끼기에 배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가, 아, 하아, 아.”
바람 빠진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아코의 몸은 패닉을 일으켜 아직 호흡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폐에 남은 가느다란 숨을 짜낼 때마다 내장에서 나온 출혈이 울컥울컥 입 밖으로 샜다.
자신이 게헨나의 폭력의 세례와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코는 겨우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학생의 신체에 처참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잔혹한 병기라 하여 날붙이를 이용한 실력 행사는 키보토스 총학생회 규약으로 금지되어 있다.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으나 자상은 오래 남으며, 통증에 의한 쇼크 또한 총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총학생회 규약 위반은 중죄로 간주되며, 위반자는 교정국에서의 엄격한 재교육 프로그램 이수를 강요받는다.
대다수의 학생은 그것을 두려워하기에 위반자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아코는 이런 사태를 상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 아, 커흑.”
“아아? 뭐라고?”
“커, 커, 커흑.”
아코는 필사적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말다운 말을 발음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녀의 목구멍에서 피가 거품 이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아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무언가 말해야 한다, 자신을 찌른 학생에게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한다,
그 의식만이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양이가 보고 있었다.
간신히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고양이는 역시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고양이가 흘리는 피눈물을 자신도 흘리고 있는 듯한 착각에 아코는 빠졌다.
전례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코를 비웃으며 내려다보던 중 시라유리의 한 명이 아코의 교복에서 지갑을 낚아챘다.
“보아하니 신입생인 것 같습니다.”
학생증을 발견한 그 신도가 수장에게 전했다.
“그 정도는 안다. 냄새가 나니까.”
“이름은, 아마—”
“이름도 나이도 아무래도 좋다.
그것은 프로필이다.
프로필은 기호다.
기호는 개인이 아니다.
무작위적인 문자 정보에는 가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나는 지금 그녀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신도는 대꾸할 말을 잃고 물러났다.
수장은 아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네게 묻고 있다. 대답해라. 지금 대답해라. 자.”
수장은 쪼그려 앉아 그렇게 말했다.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아코의 눈동자가 들여다보였고, 아코 또한 수장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곳에 빛은 없었다.
생기라고 부를 만한 것이 깃들지 않은 그 눈은 사람의 눈조차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눈의 주인은 물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아코는 어떻게든 대답하려 했다.
대답할 수 없었다.
통증 때문에 숨도 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코는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아마우 아코, 열다섯 살, 생일은 12월 22일.
그런 자기소개라면 할 수 있다.
강제로 하게 되는 것은 본의가 아니지만, 어떻게든 대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대답해서 일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답이 기호에 불과하다면, 단순한 군더더기 말이라며 잘려 나간다면, 그 경우에는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를 정의하는 요소, 나를 구성하는 요소, 그중에서 기호가 아닌 요소는 무엇일까?
나는 정말로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호는 개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개인이 아닌 것인가?
아코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코는 새로운 공포를 느꼈다.
“아, 아, 아.”
통증을, 장부를 꿰뚫은 나이프가 가져오는 통증의 감각을 가볍게 뛰어넘는 공포였다.
“아아아!”
아코는 거기서 겨우 비명을 질렀다.
흘러나오는 피를 흩뿌리며 비명을 질렀다.
포착할 수 없는, 하지만 확실히 심상치 않은 공포의 감각이 그녀로 하여금 비명을 내지르게 한 것이다.
커다란 비명이었다.
비명은 구교사에 울려 퍼졌고 그 밖으로까지 새어 나갔다.
그때였다.
구교사 안쪽의 어둠 속에서 소녀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가 번쩍였다.
그림자는 소리 없이 두 번, 섬광을 내뿜었다.
아코를 내려다보던 시라유리 다섯 명 중 두 명이 쓰러졌다.
쓰러진 두 명의 머리에서 화약 연기가 피어올랐다.
찰나의 일이었다.
“적이다!”
벌떡 일어나며 수장이 고함을 쳤다.
그림자에게 선수를 뺏긴 시라유리였으나 반응은 빨랐다.
특공복 소매 안에서 총이 튀어나와 각각의 손에 쥐어졌다.
긴급 상황 시 즉각적인 사격을 가능케 하는 슬리브 건이다.
시라유리들은 언제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재빠른 움직임은 견실한 전투 훈련에 뒷받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상식 밖의 반응 속도로 그림자를 향해 납탄의 비가 쏟아졌다.
초당 10발의 발사 속도를 자랑하는 기관권총이 난사되었다.
기괴한 정적에 휩싸여 있던 구교사가 순식간에 킬 존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기민했다.
초음속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탄도를 그림자는 가볍게 피해버렸다.
납탄에 파헤쳐진 구교사 벽이 말아 올린 먼지 구덩이 속으로 그림자는 몸을 숨겼다.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 속에서 그림자의 발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맨 다운!”
누군가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림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한 발, 두 발 섬광을 내뿜으며 담담하게 세 사람을 몰아붙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이 계집애가—”
그 목소리를 끝으로 구교사에 침묵이 찾아왔다.
승부는 단 10초 만에 결정났다.
다섯 명 중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구교사 안에는 화약 연기와 먼지가 자욱했다.
아코는 여전히 움직이는 그림자의 정체를 그저 검은 형체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발소리가 겨우 들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림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이윽고 무심하게 주저앉았다.
아코의 기억이 맞다면 그림자가 주저앉은 곳에는 분명 그 불쌍한 흰 고양이가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격통과 공포, 혼란 속에서 오직 그 고양이만이 아코에게, 붕괴해 가던 아코의 세계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한동안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코는 고양이가 그 그림자에게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
고양이가 아직 살아있기를 기도했다.
그림자가 일어섰다.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이다.
발소리는 아코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코는 그 그림자가 누구든 간에, 살아있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기를 바랐다.
지금 이곳에는 고양이 말고는 그림자와 자신뿐이다.
자신은 움직일 수 없다.
고양이는 죽어가고 있다.
고양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고양이를 도와야만 한다.
고양이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자신이나 자신을 찌른 학생들과는 달리, 본래 폭력의 시스템에 편입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니까.
기도하는 아코의 곁에 다다른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굽혔다.
아코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림자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기도가 닿았음을 깨달았다.
“괜찮아, 지금 구급대를 부를게.”
그림자는 아코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림자의 정체는 한 소녀였다.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소녀의 손은 차가웠고, 목소리도 차가웠으며, 시선 또한 차가웠다.
소녀의 피부는 뼈처럼 하얬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허리에는 한 장의 날개가 돋아 있었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악마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아코에게 소녀는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새끼 고양이를, 그리고 나를 지옥에서 구해내기 위해 강림한 수호천사.
차가운 손도 목소리도 시선도, 아코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온기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온기가 너무나 기분 좋았던 나머지, 아코는 격통을 느끼면서도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었다.
실혈로 인한 의식 장애나 쇼크로 인한 혼절과는 다른, 평온한 잠에 아코는 빠져들었다.
의식을 잃는 순간, 소녀의 가느다란 팔에 안긴 고양이가 미소 짓는 것을 아코는 본 것만 같았다.
<3> ~
나와 아코의 만남을 아코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설명은 대체로 정확했다.
적어도 그 현장에서의 내 상황 인식과는 상당 부분 일치했다.
나는 구교사에 비상구로 침입해 〈시라유리〉를 섬멸하고 아코를 구조했다.
사태의 흐름에 관해서는 거의 설명 그대로의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하자면, 그것은 오로지 그녀가 사용한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수사법의 영역일 것이다.
나는 결코 붙잡힌 아코를 구하겠다는 의도로 구교사에 돌입한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쓰러져 있는 아코를 발견해 응급의학부에 인계하게 되긴 했지만,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였다.
반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무장 단체의 활동 실태 파악.
그것이 나에게 부여된, 그리고 내가 나에게 부여한 임무였다.
〈시라유리〉는 이전부터 잔혹한 폭력 행위에 손을 대고 있었다.
주인이 있든 없든 게헨나 자치구 내에 서식하는 고양이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던 것이다.
고양이의 사체는 반드시 게헨나의 교사 안에 버려졌다.
그날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가 희생되었다.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사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반드시 사체의 목은 절단되었고, 두 눈은 파헤쳐져 있었다.
이것이 〈시라유리〉의 범행이라고 단정된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들이 범행 성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 문구)을 남겼기 때문이다.
잘려 나간 사체의 머리에는 반드시 괴문서가 물려 있었고, 그것을 통해 그녀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학생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지는 것이 아니며, 우선 대처해야 할 위협이 산적해 있다는 이유로 선도부는 대응을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는 우리 동포에 대한 잔혹 행위로 직결되는 전조이며,
또한 이교도적 성격을 띤 집단은 학원의 안보에 있어 예기치 못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만마전은,
아니 정확히는 나는 〈시라유리〉에 대한 처리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그녀들의 검은 미사를 습격할 계획을 나는 M에게 직접 제안했다.
M이 나를 신뢰해서였는지, 아니면 어떤 이익을 M 나름대로 확신해서였는지(거의 틀림없이 후자일 것이다),
내 제안은 손쉽게 승인되었고 실행 허가를 받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고양이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임무의 제안과 수행에 일절 사심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게헨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충실한 특무과 대원에 불과했다.
애교심을 가지고 게헨나 자치구의 치안을 지키고자 하는 하나의 폭력 장치일 뿐이었다.
M은 나를 그렇게 길러냈고, 나 또한 그러기를 원했으며, 실제로 그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봐도 좋다.
임무는 완수되었다.
나는 수장을 포함한 〈시라유리〉의 구성원 다섯 명을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응급의학부에서의 치료가 끝난 후, 그녀들의 신병은 즉시 만마전 특무과가 인수했다.
심문을 담당한 특무과 동료 하누마 마코토에 따르면, ‘정중한 대접’을 받은 다섯 명은 24시간 이내에 단체의 전모를 불었다고 한다.
해방된 그녀들이 다시 응급의학부로 인계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대접이 아주 정중했던 모양이다.
사이비 집단의 해체에 필요한 정보는 너무나도 쉽게 손에 들어왔다.
곧바로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요원이 그들의 거점으로 파견되었고, 집단은 신속하게 해체되었다.
거점에는 몇 가지 파괴적인 병기와 그것을 이용한 계획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만마전은 이것들을 빠짐없이 압수했다.
압수품은 최상급 기밀로서 엄중히 관리되었다.
홍보과는 아주 표면적인 정보만을 사건의 전모로서 발표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특무과의 관여나 대량 살상 병기의 존재 같은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는 정보는 은폐되었다.
특무과가 맡은 일이 맞이하는 결말로서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편한 진상은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내가 본래 원했던 결과는 얻었으나, 뜻밖의 부작용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 부작용 중 하나가 나와 아코의 사적인 관계다.
구조할 당시,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녀와의 개인적인 관계에는 딱히 흥미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쩌다 현장에 있었던 가련한 피해자에 불과했고, 고양이 사체와 비슷한 정도의 동정심을 유발할 뿐, 결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녀를 도운 것 또한 사적인 감정에 의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게헨나의 학생이었고, 깊은 상처를 입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기에 의무감에 이끌려 응급의학부에 인계했을 뿐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코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그녀를 특별한 자애로움을 가지고 구한 것이라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응급의학부 치료동에서 그녀는 나에게 그 사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나는 그때 응급 처치가 완료된 다섯 명의 신병을 인수하러 가던 중이었다.
그녀들이 다시 곧바로 이곳으로 보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헛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독약 냄새가 밴 복도에서 나는 고양이를 안은 아코와 마주쳤다.
그녀가 안고 있던 고양이가 그때 구했던 고양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애써 무시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나는 금세 붙잡혔다.
물론, 아마우 아코였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나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때 그녀의 감격한 모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육체와 정신은 분명히 회복되어 원래대로, 아니 그 이상의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보답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녀의 구조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만마전의 요원으로서, 또한 그 이전에 게헨나의 선량한 한 명의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감사받을 이유는 어느 정도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의 대가를 받을 명분은 없을 것이다.
나는 말을 흐리며 적당한 핑계를 대고 본래 예정되어 있던 업무로 복귀하려 했다.
하지만 아코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 후에도, 그녀는 “적어도 성함만이라도”라며 막무가내로 물고 늘어졌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특무과 요원으로서 은밀 임무를 담당하는 이상, 임무와 관련된 제삼자와 개인적인 접촉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그 사건에 대해 호기심으로 캐묻고 다닐 경우, 나는 그녀를 만마전에 보고해야만 한다.
기밀 유지상의 리스크로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적절히 처리’될 것이고, 나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부주의하게 리스크를 끌어들인 요원은 예외 없이 상부로부터 ‘기나긴 이별’을 고지받았다.
그것도 아주 정중한 이별을.
나와 그녀가 친구 관계가 된다면, 그런 불이익이 나와 그녀 모두에게 닥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이름과 학년만 짧게 말해주고는, 지인의 병문안을 가야 한다고 둘러대며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토록 어리석은 선택도 없었다.
나의 감정 통제는 그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아코는 세 번째 접촉을 가졌다.
두 번째 만남으로부터 7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재회였다고 기억한다.
퇴원하고 나서 줄곧 아코는 나를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내 이름을 거론하며 사람 찾기에 열을 올리는 신입생이 있다는 소문이 2학년들 사이에서 파다했다.
나는 만마전 특무과의 요원인 동시에, 게헨나 학원에 다니는 일개 학생이기도 하다.
흔히 스파이라 불리는 직함을 가진 자는 대체로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임무 수행 중은 물론이고 그 외의 상황에서도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일상적인 생활에 몸을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는 어디까지나 교체 가능한 샘플로서 인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나를 찾아다니는 하급생이 있다는 상황은 나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런 학생이 있는 한,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계속해서 눈에 띄게 된다.
요원으로서는 극히 부적절하고 위험한 상황이다.
나는 직접 아코를 찾아내 접촉을 시도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기에 접촉은 쉽게 이루어졌다.
나와 아코는 연락처를 교환했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미 몇 명 있던 내 친구들(물론 이것도 내가 학원에 동화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지만)과 비슷한 정도의 교제를 아코와 시작한 셈이다.
아코의 사람 찾기는 끝났고, 소문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당초 내가 직면했던 문제는 해소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아코가 내 정체를 알고 싶어 한 것이다.
예측 가능한 사태였지만, 역시 회피는 불가능했다.
그날 그때 그 장소에 왜 내가 있었는지를 아코는 기어이 알고 싶어 했다.
아코는 내가 구교사에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불량 학생인 건 아닐까 우려하고 있었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전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구교사 출입이나 전투술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지어내는 것도 곤란했다.
적당한 거짓말을 믿게 할 수 있을 만큼 아코의 지능이 낮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책략을 썼다.
아코를 ‘이쪽 세계’로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아코의 정의감을 이용했다.
그녀의 의구심을 얼버무리면서 그녀에게 은근슬쩍 만마전이라는 기관을 소개했다.
학원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이 기관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 정도로 정의를 신봉하고 악을 증오한다면 이곳을 한번 견학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름만 남은 선도부 따위가 아니라.
나는 우회적으로 아코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아코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녀는 단순했다.
만마전의 일원이 된 아코는 당연한 수순으로 내가 만마전의 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입단 면접에서 맞이했으니까.
아코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내가 요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가 〈시라유리〉를 배제한 것의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납득했다.
내 추천으로 아코는 특무과에 배치되었다.
아코를 가능한 한 눈이 닿는 범위에 두어 그녀가 불편한 기밀에 접근할 리스크를 줄이려는 속셈이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아코가 나 같은 요원으로서 완성된다면 문제없이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To be Continued : 뇌제의 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