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L #미스터리 #미요 #히로미
원본 by 徒桜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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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3>
<1>
어깨에 걸쳐진 코트의 무게에 문득 남자분의 외투를 빌릴 때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감에서 전해지는 체온의 잔재.
불과 몇 분 전까지 남아 있던 그녀의 온기가 지금 나를 감싸고 있다.
긴 복도를 걷는다.
내 구두 소리만 유독 크게 울려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끝에서부터 파급된 그 소리는 심장까지 기어 올라와 꾹 죄어오는 듯한 긴장을 선사한다.
지금은 그녀, 히로미 짱의 등 뒤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막힘없는 발걸음.
히로미 짱의 구두 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익숙한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 일에.
모퉁이를 돌자 ‘KEEP OUT’이라 적힌 규제선이 보였다.
그 너머에 있는 단 하나의 문.
제6기숙사 202호실.
“고생 많으십니다, 부대장님.”
문 앞에 서 있던 사감대 학생이 히로미 짱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반걸음 뒤에 대기했다.
당당하게 구는 편이 오히려 의심을 사지 않는다.
수없이 경험하여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일.
그런데도 이렇게 그녀의 등 뒤에 서 있으니, 겪어본 적 없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야기가 끝났는지 학생이 문 앞을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배웅한 뒤, 우리는 규제선을 넘었다.
문이 열리자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암막 커튼이 쳐진 채인지 바깥은 해가 떠 있는데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히로미 짱이 벽의 스위치를 찾아내 누르자 형광등이 몇 번 깜빡이다가 불이 들어왔다.
첫인상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와일드헌트의 기숙사 방은 그곳에 사는 학생들의 손에 의해 크든 작든 아틀리에 풍으로 개조되곤 한다.
나와 후유, 릿 짱이 사용하는 제5기숙사 402호실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이 방은 결이 완전히 달랐다.
방은 세로로 양분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보아 왼쪽은 마치 의상실 공방 같았다.
옷걸이 랙이 설치된 의상장이 여러 개 늘어서 있고, 걸려 있는 각양각색의 의상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옷장과 옷장 사이의 틈새로 보이는 것은 원단이 만들어낸 파도.
너머는 전혀 내다볼 수 없었다.
오른쪽은 서재였다.
천장 근처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책장 한 개가 두 영역을 가르는 칸막이처럼 솟아 있었다.
책장은 오직 그 하나뿐.
하지만 그 위용은 범람하듯 쏟아지는 의상들의 부피와 충분히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겠다. 이제 됐어, 미요 짱.”
그 목소리에 나는 눈 깊숙이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올렸다.
돌아선 히로미 짱의 모습.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에 나는 순간 핑 도는 현기증을 느꼈다.
“이렇게 미요 짱을 끌어들여 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주었으면 좋겠는데.”
코트를 받아들며 히로미 짱이 그렇게 말했다.
“방금 그 아이 말인가요?”
“응. 내가 같이 있다고 해서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통과시켜 주잖아.
모자로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애가 있으면 조금은 의심해 줬으면 하는걸.”
그 말에 건네려던 모자를 나도 모르게 꽉 쥐었다.
히로미 짱은 쿡 하고 웃었다.
“히로미 짱……!”
“후후, 미안 미안. 하지만 잘 어울렸어.”
그렇게 말하며 히로미 짱은 순순히 내 손에서 모자를 가져갔다.
텅 빈 손바닥으로 시선이 떨어진다.
빌렸던 물건의 무게가 사라지자 어쩐지 조금 마음이 허전해졌다.
“뭐 이런 직책이고, 피곤해질 시기야.”
그녀는 제모를 손에 든 채 방금의 대원을 감싸주는 듯한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에 가시는 없었다.
히로미 짱은 늘 그렇다.
사감대 부대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반 학생들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법이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건 아마, 히로미 짱이 신뢰받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히로미 짱은 눈을 살짝 깜빡이더니 이내 곤란한 듯 미소를 지었다.
“…미요 짱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간지럽군.”
같은 문학 전공의 친구.
내가 아는 것은 온화한 그녀뿐이다.
언제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히로미 짱.
그녀는 나에게 부대장으로서의 고충도, 고민도 숨김없이 이야기해 준다.
그런 태도 덕분에 분명 다른 대원들에게도 신뢰받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순간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렸다.
지금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
그것을 떠올리면 다시 가슴이 삐걱거린다.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의 힘이 필요해.’
오늘 아침, 히로미 짱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상상력. 그것이 있다는 것.
소설을 쓰는 자에게, 쓰려고 하는 자에게 건네는 지극히 순수한 찬사.
분명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창작자로서, 이야기를 자아내는 자로서 나를 인정해 주고 있을 뿐.
그런데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범죄자의 수법을 읽어내는 상상력.
증거를 은닉하는 방법을 간파하는 상상력.
그녀가 모르는 내 안의 내가 멋대로 그런 의미를 읽어내 버린다.
그녀의 순수한 찬사를 내 손으로 더럽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연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달콤하고 애절하여 읽는 사람의 가슴을 죄어오는 그런 이야기를 자아내고 싶다.
그것이 처음 펜을 잡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타이핑을 하는 손가락은 그 마음을 배신하듯 언제나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져 간다.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고 그 허를 찌른다.
동기를 추측하고 행동을 예측한다.
연애 소설적인 섬세함과는 결이 다른, 훨씬 더 차가운 무언가가 내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재능이란 참으로 잔혹하다. 원하는 곳에는 싹트지 않고,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만 뻗어 나간다.
‘특수교역부’의 부장.
와일드헌트의 삼엄한 검문을 뚫고 의뢰인에게 금지품을 조달하는 밀수 집단의 브레인.
그것이 나의 또 다른 얼굴.
밀수 루트와 거래 방법, 사감대의 눈을 속일 수단.
나는 그것을 수십 종류나 고안하고 실행해 왔다.
히로미 짱은 모른다.
그녀가 쫓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지금 이렇게 곁에 서 있는 친구라는 것을, 분명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같은 문학 전공의 친구라는 그저 그뿐인 이유로.
그 순진무구함이 지금은 조금 눈부시고, 아프다.
“그래서, 여기가 문제의 그 방인데.”
히로미 짱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제6기숙사 202호실. 통칭, ‘즉흥 연극부’.”
대본을 낭독하듯 히로미 짱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방을 사용하고 있는 게 그 즉흥 연극부의 네 명.
연극 전공 1학년이 두 명, 복식 전공 2학년이 한 명, 문학 전공 3학년이 한 명.
부장은 그 3학년인 걸로 되어 있다.
당연히 동아리로서는 비공식이지만.”
학과에서의 배움이 곧바로 예술 활동으로 이어지는 와일드헌트에서 공식 동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흥 연극부도 방을 배정받은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모임 중 하나라는 뜻이다.
“즉흥 연극, 인가요.”
중얼거리며, ‘그 사람들인가.’ 하고 곧바로 머릿속에 떠올렸다.
학원 곳곳에서 느닷없이 연극을 시작한다는 집단.
이 모형 정원 같은 학원에서 두드러지게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의 귀에든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듣자 하니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즉흥 연극부.
본인들은 나름대로 고집이 있는지 ‘극단’이라느니 뭐라느니 자처하는 모양이지만.”
그 마음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들의 활동에 타인이 붙인 이름이─평가가, 온전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특수교역부로서 그녀들과 거래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한 어색함은 아주 조금─정말 아주 조금은 희석되었다.
히로미 짱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강의실에서. 신출귀몰하게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돌연 자신들의 무대를 시작한다.
수업 방해에 교칙 위반 상습범이라 몇 번을 주의 주어도 정신 못 차리는 뼛속까지 문제아들인 셈이지.”
목소리에 쓴웃음이 배어났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사정이 달라졌다.”
방 안을 둘러본다.
암막 커튼이 쳐진 실내는 어스름했고, 먼지 섞인 공기가 고여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떠오른 것은 바닥에 무참하게 내팽개쳐진 책과 의상 더미.
무수히 널려 있는 의상장과 책장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진 흔적들이었다.
봉쇄.
규제선 안쪽에서 그녀들의 생활 흔적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기숙사 방의 봉쇄.
와일드헌트에서 그것은 단순한 가택 수색이 아니다.
일시적이라 해도 살 곳을 빼앗기고, 사생활이 폭로되며, 학생으로서의 신용을 뿌리째 박탈당한다.
설령 무죄가 증명되어도 그 상처는 남는다.
그 정도의 엄중한 조치가 이 방에는 내려져 있다.
“그녀들에 대해서 어떤 소문이 돌고 있었거든.
그 근원을 쫓아가 보니, 아무래도 사실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더군.”
“…소문, 말인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히로미 짱은 목소리를 딱딱하게 굳혔다.
“즉흥 연극부에 음주 혐의가 있어.”
그 말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2>
와일드헌트에서 음주는 최대의 금기다.
‘예술의 고향’이라 불리는 학원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재능이 알코올에 빠져 스러져 갔던가.
붓을 쥐는 손이 떨리고 색채를 분별하는 눈이 탁해져 이내 아무것도 자아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화가들.
그 과거를 우리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물리도록 귀에 박히게 배워왔다.
압생트의 녹빛에 매료된 자들.
포도주의 붉은빛에 가라앉아 간 자들.
그들이 남긴 것은 미완의 걸작, 썩어가는 육체, 그리고 예술에 순교했다는 일견 아름다운 허구뿐이었다.
예술가는 연약하다.
그 섬세함 덕분에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그 섬세함 탓에 부서져 간다.
그렇기에 와일드헌트는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온갖 종류의 술을 다른 그 어떤 학원보다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단순한 교칙 위반이 아니다.
예술가를 지망하는 자로서의 긍지가 걸린 문제. 그것을 깨뜨린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미래를 더럽히는 것과 다름없다.
적발되면 엄중한 처분이 내려진다.
적어도 정학, 최악의 경우에는─.
“…그래서, 봉쇄를.”
“응.”
히로미 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표정에서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상태였다.
“주요 증언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녀들의 연극을 관람한 학생이 상당히 독한 알코올 냄새를 맡았다는 보고.
또 하나는 만취 상태로 보이는 부원이 기숙사 내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
나는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정황 증거뿐이잖아요. 신빙성은 있는 건가요?”
“증언한 학생이 여러 명이다.
학년, 전공, 소속 기숙사 모두 제각각이고. 말을 맞추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히로미 짱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떨어뜨렸다.
“미요 짱의 마음도 이해하지만…방치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큰일이니까.”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재능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
혹은, 더욱 직접적인 파멸.
이 학원의 역사에는 그런 비극이 몇 개나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와일드헌트는 음주에 대해서만큼은 용서가 없다.
“미요 짱, 최근 일주일 사이에 학외로 나간 적이 있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아…음. 나간 적…없어요.”
거짓말이다.
자유외출부에게 의뢰해 사흘 전에 샬레에 다녀왔다.
미안해, 히로미 짱.
“그럼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군.”
히로미 짱은 나의 동요를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와일드헌트 전역에서 음료와 관련된 규제가 강화되었다.
수통이나 페트병의 내용물 검사, 일부 구역에서의 취식 제한.
학외를 오가는 검문도 엄격해졌고.”
“…그 정도까지.”
“그만큼 우리도 진심이었다는 뜻이지. 외부로부터의 밀수 루트를 철저하게 조이려고 했다.”
돌이켜보니 근래 사감대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기분이 든다.
자유외출부의 안내는 정문을 거치지 않으니까, 검문 양상이 변했다는 사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꼬리조차 잡지 못했다.
술 종류가 검문에 걸리기는커녕, 즉흥 연극부로 이어질 만한 수상한 반입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지.
그래서 이렇게 봉쇄를 감행한 거야. 결정적인 물증을 잡기 위해서.”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의상장에는 각양각색의 원단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책장에는 책들이 틈새 없이 꽂혀 있었다.
사감대가 수색한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바닥에 흩어진 책들.
내팽개쳐진 서랍.
흐트러진 의상 더미.
“…부원 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문득 신경이 쓰여 물었다.
봉쇄 처분을 받은 기숙사 방의 학생들은 통상 반성실에 수용된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당한 채 사감대의 감시하에 심문을 받게 될 터였다.
히로미 짱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다시 목소리 톤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2학년 이하의 세 명은 봉쇄 직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도주했다.
지금도 학원 어딘가에 잠복해 있는 모양인데…찾지 못했지.”
“…직전에요?”
“정보가 누설되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단순히 감이 좋았던 건가.”
어느 쪽이든 히로미 짱에게는 타격이었을 터다.
용의자를 놓쳤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사감대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든다.
“그래도 어떻게든 부장인 문학 전공 3학년 한 명만큼은 신병을 확보하긴 했는데…….”
히로미 짱은 말을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입을 열지 않나요?”
“입을 열지 않는 수준이 아냐.”
깊은 한숨과 함께 표정이 다시금 복잡해졌다.
“미요 짱, 그녀와 이야기해 본 적 있나? 그 3학년 선배.”
“…아니요. 일단 얼굴은 알고 있지만요.”
문학 전공으로는 일단 선배에 해당하기도 하고, 즉흥 연극부의 평소 행실도 있어서 얼굴만큼은 일방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복도에서 몇 번 스쳐 지나간 정도.
키가 크고,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매사 행동거지가 연극조로 과장된 사람.
그 정도의 인상이었다.
히로미 짱이 말을 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굳이 표현을 골라보자면.”
고민하는 듯 그녀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집어삼켜진다’고 해야 할까.”
“집어삼켜져요……?”
“응.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신을 차렸을 땐 내가 무엇을 물으려 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려. 그런 인상이야.”
나는 조금 놀라고 있었다.
히로미 짱이 누군가의 인품을 이런 식으로 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은 즉, 그만한 사태가 있었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심문에 세 명이 투입되었다.
다들 그녀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한 명은 설득당해 버렸고, 한 명은 해탈한 듯한 표정이 되었고, 한 명은 울고 있었지.”
나도 모르게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본인들도 설명하지 못해.
그런 상태라 제대로 된 청취조차 불가능하지.
그래서 지금은 일단 취조실에 가둬둔 상태야.”
가둬둔다.
그 단어가 묘하게 실감 나게 울렸다.
말로 사람을 조종한다.
그것은 나에게도 낯익은 기술이다.
다만 나의 그것은 종이 위에서만 발휘될 뿐이다.
현실의 대화 속에서 사람을 통째로 삼켜버릴 정도의 기술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부원 세 명의 도주를 허용한 이상, 문제의 술 종류는 이미 밖으로 반출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아.
그렇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흔적은 남는 법이지.
방을 구석구석 조사하면 무언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히로미 짱이 이야기를 되돌리듯 말했다. 즉.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거군요.”
“응.”
히로미 짱이 고개를 끄덕였다.
“증언의 신빙성은 높아.
음주가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해.
하지만 물증이 나오질 않아.
부장은 입을 열지 않고, 다른 멤버들은 도주 중이지.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는 것은…….”
“곤란하겠군요.”
“곤란하지. 봉쇄에도 기한이 있으니까.
부장의 신병이 확보된 만큼, 예외 조치도 인정받기 어려울 거야.
기한이 지나면 증거 불충분으로 봉쇄를 해제할 수밖에 없어.”
히로미 짱의 목소리에 미세한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들은 ‘영웅’이 되겠지.
사감대의 횡포에 굴하지 않은 투사.
설령 그녀들의 본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극적인 각본은 대개 알아서 쓰이기 마련이니까.”
“…그건.”
“와일드헌트에는 그런 공기가 흐르고 있잖아?
권위에 대한 반항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 말이야.
평소에는 눈감아주는 부분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넘어갈 수 없다.”
히로미 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 기질의 학생들.
규칙보다 자유를 존중하는 학풍.
사감대는 필요악으로서 받아들여지고는 있지만 결코 환영받지는 못한다.
만약 즉흥 연극부가 승리해 버린다면, 그것을 모방하는 자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음주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에 손을 대는 학생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원래 보호받아야 할 학생들이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히로미 짱이 말한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단순히 즉흥 연극부 한 곳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번 히로미 짱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에게 도움을 청하신 거군요.”
“응. 미요 짱은 사감대가 아니니까.
우리와는 다른 눈으로 이 방을 보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다른 눈.
그 단어가 가느다란 가시처럼 가슴을 찔러왔다.
나의 눈은 확실히 사감대의 시선과는 다르다.
그러나 기대받고 있는 뜻과도 다르다.
그녀들이 쫓는 자라면, 나는 쫓기는 자다.
속이는 자의 논리를, 도망치는 자의 사고 회로를 나는 분명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보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하지만 그것은 창작자로서 칭찬받을 만한 능력인 걸까.
망설이는 나의 눈동자를, 이번에는 히로미 짱이 똑바로 마주 보았다.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미요 짱이라면 무언가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시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신뢰. 기대.
그런 진실한 것들이 그녀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부응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나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재능이 있다.
내가 바라는 연애 소설가라는 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잔혹한 가지.
잘라내고 싶다고 몇 번을 바라면서도 매번 좌절하고, 결국 줄곧 애매하게 내버려두었던 힘.
하지만 만약 그것이 그녀의, 히로미 짱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면─.
“…한번 해볼게요.”
맹세와도 같은 대사로 나는 그녀의 다정한 시선을 받아들였다.
<3>
의상장 행렬을 누비듯 방 안쪽으로 나아간다.
원단 냄새. 먼지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무언가 도료 같은 냄새.
무대 의상을 만들기 위한 소재일까.
알록달록한 자투리 천들이 옷장에서 넘쳐흐르듯 늘어져 있었다.
“이 부근은 복식 전공 2학년이 사용하는 영역이야.”
뒤에서 따라온 히로미 짱이 말했다.
의상장 하나에 다가가 안을 들여다본다.
드레스, 군복, 그리고 이 화려한 것은 민족 의상일까.
다양한 시대와 장소의 의상들이 비좁다는 듯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놀랍게도 전부 수작업으로 만든 모양이다.
바느질은 정성스러웠고, 장식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단하네요. 이거, 전부 자신들이 직접?”
“그런 모양이야. 복식 전공 아이들의 실력은 확실하니까.”
사감대가 조사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발치에 있는 서랍들은 전부 열려 있었고, 내용물이 무질서하게 헤집어져 있었다.
재봉 도구, 단추가 가득 찬 상자, 리본과 끈 뭉치.
어느 것 하나 의상 제작에 쓰일 법한 물건들뿐이라 수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옷걸이에 걸린 의상들의 배열이 일부 부자연스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히로미 짱 일행은 이것들도 한 벌 한 벌, 안감까지 조사했던 것이리라.
노고가 전해져 온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의상장 행렬 뒤로는 작업대가 나타났다.
재봉틀 두 대와 다리미.
안쪽에 세워져 있는 것은 재단판이다.
벽에는 스케치들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의상 디자인화.
세밀하게 치수가 적혀 있고, 사용할 원단 지정까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의상을 만드는 거군요.”
“공연이 있을 때마다 의상을 새로 만든다더군.”
히로미 짱이 디자인화 한 장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사감대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이기 짝이 없지만, 작품을 향한 정열만큼은 진짜라고 생각해.”
그 목소리에서 어딘가 부러워하는 듯한 울림이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히로미 짱이 어떤 마음으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같은 문학 전공으로서 그녀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정열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은 전공이기에 느끼는 묘한 부끄러움과 약간의 대항 의식, 그리고 내가 품고 있는 비밀.
여러 가지 것들이 겹쳐 장벽을 만들고 있었다.
손이 멈춰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작업대 서랍을 열어보았다.
바늘, 실, 초크, 줄자. 수납은 어수선했지만 나름의 계통을 세워 정리되어 있는 듯했다.
서랍 하나에 알록달록한 작은 병들이 틈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이건 뭐죠?”
“염료였어. 성분은 전부 검사 완료. 안타깝게도 알코올은 검출되지 않았지.”
이런 것까지 갖춰 두고 있는가 싶어 또다시 감탄이 나온다.
병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톡 쏘는 화학 약품 냄새가 풍길 뿐이었다.
나는 뚜껑을 닫고 병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작업대를 벗어나 이번에는 방 반대편, 서재로 향한다.
입구에서 보아 오른쪽 구역.
칸막이처럼 솟아 있는 책장 뒤편으로 돌아서자 방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책장 안쪽에는 커다란 장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원고지 뭉치와 만년필.
각본을 쓰기 위한 비품들이다.
창가에는 오래된 안락의자 한 대가 독서용 스탠드 조명과 함께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의상실 공방의 어수선한 활기와는 다른, 고요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여기가 부장 선배의…….”
“아마도 그렇겠지.
뭐, 의상실 쪽이 저런 모양새니 분명 네 명의 공동생활 공간이기도 했겠지만.”
나는 책장으로 다가가 그 위용을 새삼스레 올려다보았다.
두 영역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등.
장서들은 역시 문학 전공자다웠다.
소설, 희곡, 시집, 평론, 창작론.
고전부터 현대까지 폭넓게 구비되어 있었다.
내 책장에 꽂혀 있을 법한 소설류마저 거의 망라하고 있는 듯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빈틈은 조사를 위해 꺼내진 채 그대로 방치된 부분일 터.
무심코 한 권을 빼내 보았다.
희곡집이었다.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긴다.
필기 흔적이 있었다.
대사 옆에 적힌 연출 메모.
등장인물의 심리에 관한 고찰.
가느다란 글씨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과연 열성적이네요.”
히로미 짱도 곁에서 함께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동감이다. 나도 읽어봤는데 꽤 예리한 분석도 많았어.”
그 글씨들의 나열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 필기 하나하나에 그녀의 사고가 응축되어 있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집념.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탐구심.
그것은 나에게도 익숙한 힘이다.
이야기 한 번 나누어 본 적 없는 선배.
하지만 이 필기들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모를 친밀함 같은 것이 느껴지고 만다.
같은 것을 쫓고 있는 자를 향한, 제멋대로인 연대감.
열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깨끗하다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이 순간, 그녀에게 의심의 화살이 향해 있는 현실이 어쩐지 분했다.
나는 책을 다시 선반에 돌려놓고 시선으로 책장 전체를 훑었다.
문득 무언가가 걸렸다.
문학 전공다운 장서들.
소설과 희곡, 시집, 평론. 창작론도 있다.
낯익은 책등.
활자들의 배열.
하지만 무언가가─.
위화감의 정체를 찾아내고자 책장 가장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이 구간만큼은 내용물의 결이 조금 달랐다.
마술 트릭 해설집.
발성법 교본.
의상의 역사 도감.
인체의 움직임을 해설한 교본.
“이 부근은…뭘까요.”
“무대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모아두었다는 느낌이랄까.
각본 소재를 위한 내용도 있는 것 같고.”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층 더 이질적인 책들이 몇 권 섞여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화학?”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학 전공자의 책장에 화학 관련 전문 서적이라니.
그것도 한 권이 아니었다.
히로미 짱이 나의 시선을 쫓으며 말했다.
“응, 그거. 나도 신경 쓰여서 연극 전공 아이에게 물어봤는데…….”
한 권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스르륵 넘겨 나갔다.
『무대 공간의 설계와 화학─시각·후각적 연출의 기술사와 실제』.
“무대 효과 연구에 사용했던 모양이야.
의외로 무대 연출과 화학이라는 건 고전 시대부터 연관이 깊다나 봐.
불꽃 반응 같은 것이 그 전형적인 예지.”
히로미 짱의 손가락이 어느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봐봐, 여기.
‘후각 연출 현장에서는 시클로덱스트린(Cyclodextrin)을 이용한 향료의 분말화가 제안되고 있다.
고리 구조의 공동에 휘발성 분자를 포집함으로써, 연출 의도에 따른 시한적인 향기 방출이 가능하다.’─라고.”
…….
무슨 주문 같은 건가?
나의 표정을 보고 히로미 짱이 쓴웃음을 지었다.
뺨이 화끈거렸다. 내가 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걸까.
“요약하자면 도넛 같은 모양의 분자가 있어서, 그 구멍 속에 향기 성분을 가두어 두는 거야.
그렇게 하면 향기를 가루 상태로 보존할 수 있어서 물을 뿌리거나 문지르면 향이 밖으로 나오게 돼.
이걸 이용하면 연출가가 의도한 타이밍에 객석으로 향기를 전달할 수 있는 거지.”
과연.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해가 간다.
“흥미롭네요. 향기를 가루로 만들어서 나중에 해방한다니.”
“그렇지? 나도 감탄했어. 이런 기술들이 무대를 지탱하고 있구나 싶어서.”
확실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부자연스러운 장서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단서가 되지는 않을 듯했다.
히로미 짱이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 책장에서 멀어졌다.
원고지 뭉치가 놓인 장책상.
발치에 놓인 쓰레기통은 비어 있었다.
내용물은 사감대가 문자 그대로 뒤엎어가며 조사했으리라.
다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니.
책상 위에는 원고지 외에도 스탠드 조명과 몇 권의 책, 서랍식 소품함, 그리고 어째서인지 사과 몇 개가 접시도 없이 생으로 놓여 있었다.
만져보니 밀랍 모형이 아니다.
서늘한 과피의 감촉이 느껴졌다.
진짜다.
원고지를 슬쩍 훔쳐보니 여백에 소품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메모가 활자처럼 휘갈겨 적혀 있었다.
서랍을 열어본다.
안에는 원고 초안, 퇴고의 흔적이 남은 메모, 만년필 교체용 잉크 카트리지.
예상대로 별다른 것은 없었다.
나는 서랍을 닫고 책장을 등진 채 방 전체를 내다보았다.
의상장과 책장 사이의 틈새, 방의 안쪽 깊숙한 곳에 2층 침대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합계 네 명분의 잠자리.
이불 위에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어 당장 누울 수 있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침대 곁에는 작은 선반이 있었다.
안에는 머그컵 네 개와 수통 네 개가 들어 있었다.
머그컵은 층마다 있는 공용 세면실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다.
간단한 설거지나 양치질 등을 할 때 쓰는 것.
증거로 같은 선반에 네 명분의 칫솔이 꽂혀 있었다.
기숙사의 각 방에는 수도 시설이 없으므로 이런 소품들은 필수품이 된다.
수통은 학원 내의 급수대에서 물을 길어오거나 식당에서 홍차를 우려내어 들고 다니기 위한 물건이다.
이것 또한 흔한 도구다.
구매 시설과 기숙사 동은 거리가 멀고, 과제나 창작에 몰두하다 보면 식당에 갈 시간조차 아까워지기 마련이다.
바로 손이 닿는 곳에 보급 용품을 두고 싶어 하는 것은 어느 전공이든 매한가지다.
“히로미 짱, 컵이나 수통 내부도 조사해 보셨나요?”
“당연하지. 내부 내용물도, 안쪽에 남은 잔류물까지도.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알코올은 휘발성이 높다.
물로 가볍게 헹구는 것만으로도 흔적은 깨끗이 사라진다.
설령 사용했다 하더라도 씻어버렸다면 증거는 남지 않는다.
딱 한 가지 알아차린 것은 있다.
즉흥 연극부의 동향에 한 가지 불가해한 지점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다시금 방 전체를 조망했다.
의상실 공방과 서재.
네 명분의 생활 공간.
사감대의 수색 흔적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바닥재를 들어 올리려 했던 흔적.
열려 있는 채인 천장의 점검구.
한 권 한 권 검증된 책더미들.
솔직히 말해, 얕보고 있었다.
사감대의 수사 능력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특수교역부로서 일상적으로 검문을 빠져나가고 있으니 어디가 나사 빠져 있거나 구멍이 있을 거라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창한 짓을 하지 않아도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그럴싸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철저한 은닉을 마주하니, 내 생각이 너무 물렀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고를 전환한다.
다른 시선에서 다시 한번 사태를 파악해 보자.
가령, 그래. 만약 내가 외부에서 무언가 음료를 조달한다면.
액체는 까다롭다.
고형물과 달리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무언가 용기에 담지 않으면 운반할 수 없고,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리고 의외로 무게가 많이 나간다.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고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방의 상태를 보아하니 그녀들에게는 그 고안을 실행할 기술이 있었다.
복식 전공인 2학년 부원의 실력은 진짜다.
가령 가방의 바닥을 이중으로 수선해 낸다거나, 가짜 포장을 만들어낸다.
그런 잔재주는 식은 죽 먹기였을 터다.
다만 그렇다면 그 장치를 해체한 흔적이 발견되어야 했다.
봉쇄 직전에 도망쳤다는 그녀들이 그 모든 증거를 흔적도 없이 처분할 수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역시 그녀들 자신의 손으로 밀수한 것은 아닐 터였다.
특수교역부 같은 전문 집단에 의뢰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반입된 물건은 술이다.
와일드헌트에서 가장 중대한 금기.
의뢰하는 측도, 수락하는 측도 리스크가 크다.
너무나도 크다.
“미요 짱?”
문득 침묵에 빠져버린 나를 보며 히로미 짱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급히 시선을 피했다.
“…저기, 히로미 짱.”
“응?”
“사감대의 규제는 어느 정도로 강화되어 있었나요?”
“꽤 엄격하게 했다고 자부해.
수통, 페트병, 음료 캔, 파우치, 종이팩. 그 외에도 예를 들면 비닐봉지 같은 것까지도 말이야.
대략 액체가 들어갈 법한 용기들은 닥치는 대로 검사했다.
수상한 것은 전부 개봉해서 내용물 확인까지 거쳤지.”
“…그런데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히로미 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물고 사고 회로를 처음부터 다시 뒤쫓았다.
외부로부터 반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검문은 철저했다.
자력으로 밀수한 흔적도 없다.
외부 청탁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런데 음주 행위는 실제로 존재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걸까.
머릿속에서 무언가 실루엣이 형태를 갖추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윤곽이 흐릿하다.
어디선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스템의 전제.
“히로미 짱.”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스스로도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술은 외부에서 반입된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To Be Continued : 해답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