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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얇은 흰색 옷이 땀에 젖으면 사실상 알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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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즈음이면 항상 헛소리를 시작하시는군요."

앞서 길을 걷던 여우 소녀는 가볍게 귀를 쫑긋해 보였다. 그 외의 반응은 없었다.

"더우니까 말이지."

"제가 당황하는 반응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다는 그 태도, 조금 열받습니다만."

타박, 타박, 작은 보폭이지만 그를 보충하기 위해 발걸음이 빨라지는 기색은 없었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라는 말이었다. 소녀의 뒷모습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길 양쪽으로 키보다 한참 큰 해바라기가 수없이 자라나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지금은 그것이 약간의 그늘을 허락해 주고 있었다.

별안간 그 걸음이 멈췄다. 소녀는 가볍게 뒷짐을 지고선 반 바퀴 돌아 이쪽을 향했다. 윤기있는 금빛 머리칼이 햇빛에 타듯이 반짝였다.

"좋아요, 잠깐 쉬어갈까요."

#

"며칠째 사람이 더위에 이성을 잃는 모습을 계속 보면 아무래도 패턴이 보이지 않겠나요. 선생님은 햇빛을 막을 수단이 전무하시니까요."

모래 깔린 비포장도로 구석, 해바라기의 그림자가 발을 뻗은 곳에 우리는 작은 돗자리를 피고선 서로를 바라보며 앉았다. 길을 향하는 건 눈부시고, 빽빽한 해바라기 속을 바라보는 건 어쩐지 기분나쁘다는 이유였다.

피크닉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하나씩 나눠 가진다.

"그래서 해가 높아 그림자가 없는 정오가 되면 더위에 맛이 간다는 말인가... 며칠째였지?"

"5일째예요."

"다섯 번째의 8월 25일이죠."

몇 번이고 공연히 확인해 본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켜 봤다. 잠금 화면에 적혀 있는 날짜는 역시 8월 25일이었다. 어제도, 그저께도, 이곳에 처음 온 날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전파는 닿지 않았다. 전파 세기 표시 대신 금지 표시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비스 제한 알림창을 닫고서 보람 없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직 꿈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나요?"

"그 생각은 접었어. 세이아는 예지몽을 꾸는 능력을 잃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처럼 꿈 속에 함께 갇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무슨 고상한 척인가요.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 제게 뺨을 때려 달라고 부탁하셨던 일 이야기입니다만."

세이아가 코웃음을 쳤다.

"...창피하니까 그 얘기는 하지 말자. 그리고 엄청 아팠어."

"선생님의 실수입니다. 최근의 저는 미카와 싸워도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그건..."

그래도 지금의 미카라면 평화로운 결말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닫았다.

"뭐, 구태여 다시 한 번 말해 보죠. 저희는 8월 25일, 하루가 영원히 반복되는 이 끝없는 해바라기 들판 속에 갇혀 있고, 이는 꿈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길을 따라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고, 탈출 방법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이아가 벌떡 일어서더니 허리에 손을 짚고 말했다.

"나름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이상 현상이 벌어졌을 때 현실을 부정하는 인물은 낙오해 이변과 하나가 되어 버리는 법이라고요."

"그런 판타지 같은 이야기도 읽는구나..."

"도서관에 와 보셨지 않나요. 다양한 책이 많거든요."

선언은 끝났는지, 세이아는 다시 제자리에 앉아 무릎을 껴안았다.

"또, 제 역할은 상투스니까요. 티파티에서 가장 소문이 잘 드나드는 위치에 있거든요. 소녀들이란 소문을 좋아하는 법이죠. 트리니티의 소녀들도 당연히 그렇고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오목눈이들이 세이아의 귓가에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지만, 역시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 역할 분담이 있었구나."

"나기사는 필리우스,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역할. 호스트로서는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죠."

"그럼 미카는..."

"파테르의 위엄, 말하자면...힘입니다. 왜 아직도 파테르 분파가 문제 투성이인 미카를 대신할 사람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지 아시겠나요?"

미카가 아리우스의 회랑을 혼자서 무너뜨리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머릿속으로 뭔가 대단한 장면이라도 떠올리고 있을 거라는 듯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세이아가 곧 화제를 돌렸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언젠가 이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남쪽 어딘가에 드넓은 평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무수한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그곳은 일년에 단 한 번, 햇빛이 수직으로 내려와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날이 있는데, 그날만큼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해바라기 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 해바라기 밭으로 들어간 사람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소문으로는, 그 사람들은 끝없는 해바라기 사이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에 갇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저희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나요?"

세이아의 시선이 내 등 뒤로, 아마도 끝없이 이어진 이 길의 저편으로 향했다.

"으스스한 이야기네... 왜 그런 이야기가 생겼을까."

"쉽게 상상할 수 있지 않나요? 안 그래도 사람 키보다 큰 해바라기로 뒤덮여 길을 잃기 쉬운 이곳에서, 한여름에 미아가 되어 버리면 위험하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경고를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겠죠."

"처음에는 해바라기 밭에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다가,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날'이라는 이 지역의 특징을 채용하는 등, 살이 붙어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을 거예요. 그 편이 이야기로서 더 재미있으니까."

"그렇다면 반복되는 하루라는 부분은,"

"단순한 말장난이에요. 해바라기(ヒマワリ, 히마와리)니까, 날(日, 히)이 돈다(回る, 마와루)."

"이변, 괴이, 괴담, 초현상, 다양한 이름이 있겠지만, 이런 하찮은 도시전설이 원인이라면... '로어'라고 해야겠지요."

세이아가 엉덩이를 가볍게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일어나 볼까요."

"해가 지기 전에 잠자리는 찾아야 할 테니까요."

#

"이 시간 즈음이면 그림자가 완전히 길을 덮어 버려서 쾌적하네."

"벌써 익숙해지셨군요."

"그러게,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인데..."

"상상 이상으로 저희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환경이니까요."

오후 3시경,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하늘은 여전히 밝지만 길은 이미 해바라기의 그늘 안이다. 그림자의 색은 조금이지만 하늘처럼 푸르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피로도 완전히 사라져 있고요."

"어째서인지, 허기도, 갈증도 없는 것도 같은 궤일까."

"샌드위치도 다시 채워져 있고요."

"보통 이런 이야기라면, 밤이 되면 해바라기 속에서 괴물이 나타난다거나 할 텐데."

"며칠 동안 본 바에 따르면, 저희 말고 다른 존재의 흔적조차 없죠."

"...괜찮네."

곁에서 들려오는, 몇 시간 전과 똑같은 리듬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곤란합니다만, 저는 영원히 샌드위치만 먹으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렴..."

"선생님, 이대로 나아가면, 또다시 똑같은 잔디밭이 있을까요?"

"없으면 곤란한걸."

첫째 날, 우리는 무작정 길을 따라 걸어 나갔지만 아무런 발견도 하지 못한 채 해가 저물고 말았다. 때마침 세이아가 저 멀리, 해바라기의 벽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는 것을 알아챘다. 혹시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그곳으로 향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단순히 정사각형의 작은 잔디밭이었다.

허탈함도 잠시, 불빛도 없는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마침 피크닉용 돗자리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잔디밭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섬칫했지만, 곧 사람의 흔적이 없는 새로운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매일 새로운 잔디밭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느새 우리는 이 흐름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뭔가, 이대로는 영원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게 될 것 같네."

"섬뜩한 소리 마세요."

"있지, 세이아."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세이아가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반대로 우리가 처음으로 이곳을 헤매기 시작했을 때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처음인가요."

세이아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이곳에 왔는지, 기억하시나요?"

#

"...이런 곳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어."

"선생님께 예측을 허락한 적은 없습니다."

1시간을 넘는 난폭운전 끝에, 우리는 트리니티 남부의 평원 지대에 도착했다.

"조금은 교통법규라는 걸 지켜야 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시죠. 트리니티에서는 제가 곧 법규입니다."

"억지야...!"

차에서 내려 휘청거리는 나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세이아도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바구니 하나를 꺼내 들고선 앞서 걷기 시작했다.

"따라 오세요."

"피크닉입니다."

나는 주차된 차를 뒤로 하고, 세이아를 뒤쫓아 들판으로 향했다.

"아까 보셨죠? 이곳을 지나 언덕을 넘으면 굉장히 경치가 좋은 명소가 나온다고 합니다. 탁 트인 하늘, 드넓은 잔디밭, 나무 그늘 밑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죠."

가슴 정도 높이의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 있는 들판 사이로 하나의 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세이아는 한 손에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반대 손을 사뿐히 흔들며 내 앞을 걸어갔다.

"이런 곳은 미카나 나기사랑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지 않아도 권해 봤지만, 나기사는 일이 바쁘다고 하고, 미카는 잔디밭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질색을 하더군요."

"잡초 뽑기의 트라우마일까..."

"실망하지는 마세요. 선생님이 미카와 나기사 다음이라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예이 예이. 아무렴요."

"그건 그렇고, 선생님. 일은 바쁘지 않으신가요."

"세이아의 부름이 더 급하니까!"

"일하기 싫으신 거죠?"

"맞습니다."

"후훗. 그 정도 핑계면 충분해요. 선생님을 쉬게 하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동안의 소회라도 나누시죠. 트리니티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나기사가 또 홍차 잔을 깬 이야기, 미카를 골탕먹인 이야기, 미네가 또 수많은 구호 대상자를 만들어낸 이야기, 사쿠라코가 또다시 큰 소동을 일으킨 이야기, 세이아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개중에는 내가 휘말렸던 사건도 있어 그때마다 세이아는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하던 세이아의 말이 갑작스레 끊겼다.

"...선생님.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해바라기들, 이렇게 컸나요?"

세이아의 말을 듣고 주위를 살핀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분명 가슴 정도 높이였던 해바라기 군락은 어느샌가 머리보다 한참 높이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언덕, 이렇게까지 멀리 있지 않았어요."

구불구불 이어지던 길도 어느새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여긴... 어디죠?"

"...그런가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첫날의 일을 이야기했다. 세이아는 만족스럽지 않은 눈치였다.

"....우리, 그냥 길을 따라 걷기만 했지?"

"그렇네요."

"차라리 해바라기 사이로 뛰어들었다가 빠져나오니 이상 공간이었다는 식이면 알기 쉬웠을 텐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세이아가 손가락으로 해바라기 군락을 가리켰다. 끝없이 층층이 쌓인 해바라기 줄기 사이는 시커먼 암흑으로만 보였다.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저 불길한 공간으로 다시 뛰어들고 싶나요?"

"...아니."

길을 잃은 사람이 해바라기 군락 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그 일부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럼 도대체... 아. 세이아. 저길 봐."

"...오늘의 잠자리인가요."

저 멀리에서 다시 새로운 잔디밭을 발견했다.

#

"...세이아, 자?"

세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세이아는 이 해바라기 밭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던 거지?"

바람에 해바라기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구분할 수도 없을 만큼 섞여 하나의 노이즈로만 느껴졌다.

"그런데, 왜 이날 이곳을 찾아온 거야...?"

세이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다음날 아침, 핸드폰은 여전히 오늘이 8월 25일이라고 알리고 있었다. 6번째의 8월 25일,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이대로 걸으면 출구가 나타날 거란 생각은 거의 사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걷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세이아."

"네."

"대화 주제가 떨어져서 말인데, 인생 상담이라도 할까."

"무슨 소리시죠."

"최근에 고민은 없냐는 소리야."

"미카가 제 도발을 받아주지 않게 된 것 정도일까요."

"미카에게 나중에 맛있는 디저트라도 사줘야겠구만..."

"그보다 갑자기 뭐죠, 고민거리 같은 게 그렇게 단숨에 튀어나올 리 없지 않나요..."

"..."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계속 걸었다.

"...세이아."

"네."

"이곳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목적인가요."

"희생자를 이곳에 가둔 뒤 괴이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거나,"

"그렇다면 행방불명이 된다는 소문이 나타나지 않았겠죠."

"희생자를 해바라기가 잡아먹는다거나?"

"잡아먹을 거면 첫날에 잡아먹지 않았을까요."

"희생자가 반복되는 하루에 지쳐서 결국 스스로 해바라기가 되기를 선택한다거나...!"

"...그건 조금 있을 법 하네요. 좋은 일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런 걸 생각해봤는데, 전부 아닌 것 같아."

"어째서인가요?"

"돌아온 사람이 없다면 하루가 반복된다는 이곳의 상황이 외부의 소문으로 퍼져 나갈 수 없잖아. 앞뒤가 맞지 않아."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아마도 구전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누락됐거나, 아니면 이야기를 무섭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돌아온 사람이 있다는 내용을 뺐다고 생각해... 중요한 건 여기인데,"

"하루가 반복된다는 내용, 너무 뜬금없지 않아?"

"그 부분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삽입된 것 같아. 마치...하루를 반복하는 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처럼."

"...선생님."

"그렇다면, 이 현상의 원인은... 하루를 반복하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선생님."

세이아가 내 말을 제지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이해했습니다."

"역시 당신답다고 말할 만하지만..."

"제가, 어떠한 고뇌에 빠져 이 무한히 반복되는 해바라기 평야라는 현상을 일으켰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그렇게 말하는 세이아는 어째선지, 화나 있다기보다는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와 이렇게 상담을 시도하고 계시는 거고요."

"아시지 않나요."

"유리조노 세이아는 요즈음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세이아는 그렇게 말하고선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카는 매일 놀려도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 주죠. 나기사도 조금은 옛날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되찾고 있고요. 종종 하나코의 말썽을 전해 들은 나기사가 경련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가끔은 밀레니엄의 아이들도 연락을 보내 옵니다. 그 밖에도, 즐거운 일이 정말 많아요."

세이아가 이야기를 해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즐거워 보인다고 나는 생각했다.

"네, 맞아요... 유리조노 세이아는 매일이 너무나도 즐겁답니다. 말 그대로,"

"내일이 찾아오는 게 기다려질 정도로."

세이아의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다시 한 번 등골이 서늘해졌다.

"선생님, 당신의 추론이 맞다는 전제 하에, 범인을 찾아 보죠."

"내일이 오는 것이 기다려지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세이아의 눈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설마 여기까지 듣고서 제 3의 원인을 찾아 나설 생각은 아니겠죠, 선생님."

"...그런가."

"내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빌어 버린 건, 나인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정오의 태양이 내리쬔다.

언제부터였을까.

죽은 자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평행 세계의 또 다른 자신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도했을 때? 수백 년 간 응어리진 증오를 마주했을 때? 자신을 포기하라는 학생을 만났을 때? 배에 구멍이 뚫렸을 때? 한 학생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때?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을 때?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은...자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런가, 결국 강해지지 못한 나는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해 버린 건가."

"묻지 않을게요. 당신은 아마도 제가 모르는 곳에서, 또다시 제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으셨겠죠."

"하지만, 기껏 택한 도망이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인 것마저 당신답네요. 당신이 없어져서 혼란이 일어나는 건 싫으셨던 거겠죠."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명백하게 칭찬입니다만."

"키보토스의 학생들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충격은 받겠지만, 아무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한 몸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출귀몰하며 학생들을 케어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니까요. 당연히 힘들겠죠."

"충격받으려나?"

"말하자면, 자신이 성장해서 더 이상 어머니의 등에 업힐 수 없음을 깨달은 어린아이 정도로는 충격을 받겠죠."

"큰 충격이잖아."

"마마보이 같은 말을 하시네요."

"남자는 그런 법이야."

"기분 나쁩니다."

그제서야 세이아는 나를 보며 웃어 주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기분 나쁜 게 적당히 당신다워요."

#

오후 1시경, 길가에 돗자리를 깔고 샌드위치를 먹는다. 어느새 루틴처럼 자리잡혔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걷는다. 3시가 넘으면 길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해질녘, 하늘이 붉게 물든다.

세이아는 내 앞을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슬슬 충격에서 회복되셨나요."

"조금은."

"나쁘지 않은 속도네요."

"미안해, 세이아. 이런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게 해 버려서."

"천만에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눈치채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응?"

세이아가 다시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나와 마주보았다.

"아시겠지만, 저라면 이런 곳을 자기 발로 걷겠다는 발상 따윈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 자가용을 끌고 와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겠지."

"하루 종일 걷는다는 것도, 유리조노 세이아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아시지 않나요."

"그래, 아무리 세이아가 건강해졌다지만, 한 시간 정도면 몸살이 나서 앓아누워겠지."

"말투도 조금 다르지 않나요? 유리조노 세이아가 이런 식으로 말했나요?"

"...반말이었나?"

"무엇보다, 당신은 자신의 변덕에 무고한 학생을 끌어들일 만한 위인이 아니니까요."

"...그래. 절대 못 하지."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왜 이곳에 왔는지, 기억하시나요?"

"...기억해."

5일 전의 8월 25일,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곳에 혼자 찾아왔다. 분명, 해바라기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오, 해바라기 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우물은 바닥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정확히 그림자가 없어지는 시간이었다. 발밑에 작은 그늘만을 드리우며 나는 해바라기 밭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부러 길에서 벗어나 해바라기 줄기를 헤치고 나아갔다. 키보다 큰 해바라기 사이에서 방향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언뜻 빛이 보였다.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내 해바라기 밭을 벗어난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흰 원피스를 입은 금빛의 여우 소녀가 서 있었다.

"너는... 세이아가 아니구나."

내가 눈 앞의 소녀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유리조노 세이아가 맞습니다. 단, 당신이 기억하는 유리조노 세이아일 뿐이죠."

"또 알쏭달쏭한 말을 하는구나."

"당신이 저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례네, 나."

#

"왜 가짜 기억까지 만들어 가며, 모든 걸 잊고 있었던 걸까."

"그 정도로 잊고 싶었던 거겠죠."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떠올린 걸까?"

"...그 정도로 잊고 싶지는 앉았던 거겠죠."

"...세이아,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 같네. 어려운 말만 하게 된 게."

"모든 걸 떠올리고도,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시나요."

"그저, 당신이 그 시절의 저를 추억하고 있을 뿐인 거예요."

밤, 우리는 돗자리 위에 누워 있었다. 해바라기에 적당히 잘려 나간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세이아."

"네."

"왜 너였을까."

"글쎄요."

"영원히 수다를 떨 말동무로 심심하지는 않겠다, 싶었던 게 아닐까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하늘만을 올려다보았다.

"...세이아."

"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려줘."

"그럴 생각이 드신 건가요?"

"아마 이거로 충분할 거야. 충분하기 때문에 모든 걸 떠올린 거겠지. 그래, 학생들을 보러 가야지."

"나도, 영원히 샌드위치만 먹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아."

"후훗."

소녀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어느새 누운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인가요?"

"그야, 뻔하지 않나요."

소녀의 오른손에는 어쩐지 횃불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해바라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면, 해바라기를 없애 버리면 되는 거예요."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말이죠, 선생님. 아무래도 당신은 다시 이곳을 찾아오고 말 것 같아요."

"...또다시 이런 선택을 할 정도로 내몰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웃음을 지었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재미있다는 듯이.

"어쩔 수 있나요. 당신 자체가 그런 사람인걸요. 또다시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하다가, 그것이 자신의 능력 밖임을 알고 좌절하겠죠."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흰 치맛자락이 가볍게 날렸다. 불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가 되면,"

그녀의 손에서 횃불이 훌쩍 날았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시야가 불타올랐다.

날아가지 못하도록 두 손으로 모자를 잡고서, 소녀는 태양처럼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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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를 찾아내 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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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5.17창작

"얇은 흰색 옷이 땀에 젖으면 사실상 알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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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DC
별내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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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6.05.17 00:42
조회58
광고

댓글 88

나
ㅇDC
ㅇㅇ126.05.17

왜 섹스안함

ㅇDC
ㅇㅇ226.05.17

3줄요약좀

ㅇDC
ㅇㅇ726.05.17

세이아가 방화범임

ㅇDC
ㅇㅇ2926.05.17

진짜네

ㅇDC
ㅇㅇ326.05.17
디시콘
ㅇDC
ㅇㅇ426.05.17

중간부터 안읽었는데 자궁관통 난관삽입 난자파괴 암컷타락 절정섹스 해달라는거지?

ㅇDC
ㅇㅇ5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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