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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延화 세리카 pro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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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어박히는 건 나쁘지 않다.
푹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절대로 질질 끌려가지 마라.
모래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머리맡에 놓인 자명종을 확인하자 현재 시각은 아침 8시 59분인 듯하다. 자명종을 세팅한 시간은 1분 뒤인 9시 정각이라 방의 주인인 쿠로미 세리카는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하지만, 세리카는 고작 벌레 같은 걸 위해 귀중한 휴일에 일찍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뭐, 돈을 벌 수 있다면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임시 휴교 기간에 아르바이트가 아닌 다른 돈벌이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쉬는 날이니 쉬게 해달라고.
세리카는 잠에서 깬 불명료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생각하는 사이에 1분이 경과한 듯 자명종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기상 직후 머리가 멍할 때 이렇게까지 소음을 내면 역시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렇다면 자명종을 켜지 않으면 될 텐데, 하지만 세리카는 최근 의식적으로 생활 습관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었다.
밤 11시까지는 취침하고 아침 9시에 일어난다. 이 임시 휴교 기간에는 반드시 10시간 자도록 했다. 이유는 단순히 최근 잠이 부족했다는 것과 체력을 충분히 비축하기 위해서다. 고양이 귀이기 때문에 고양이만큼 자야 한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건 그렇고 모래폭풍인가. 자주 있는 일이니까 익숙하지만, 모처럼 밖에 나가려고 생각한 타이밍에 오면 역시 힘이 빠지네......"
커튼을 열고 밖을 보니 그곳에는 모래 빛이 펼쳐져 있다. 모래폭풍이다. 그것도 꽤 대규모로.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외출을 감행하면 금세 조난당할 게 뻔했다.
창문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은 몹시 지루해 보인다. 이런 얼굴을 대책위원회 모두 앞에 드러내면 제멋대로 사진을 찍을 테고, 그것을 다시 한동안 놀림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어느새 이런 포지션에 익숙해진 걸까.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뭐 괜찮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안 그래도 운이 나쁜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조난당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겠지. 온갖 고난을 겪어온 세리카는 그렇게 자기 분석을 하며 커튼을 쳤다.
"후아암...... 일단 세수부터......"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세리카는 화장실로 이동했다. 차가운 물로 억지로 눈을 뜨려는 듯, 손에 모은 물을 얼굴에 끼얹자 싸늘한 물이 피부를 찌른다.
세안폼을 사용해 얼굴을 거품으로 감싼다. 건조한 날씨 탓에 다소 꺼칠꺼칠했던 피부가 촉촉함을 되찾고 있다는 걸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다.
다시 물로 얼굴의 거품을 씻어낸 뒤 거울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어느 정도 평소와 같은 세리카가 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검은 고양이 귀는 완벽한 삼각형이다. 거기서 난 수북한 털은 여느 때처럼 오른쪽과 비교해 왼쪽이 약간 길다.
그 후 양치질을 마친 세리카는 거실 책상에 작은 거울을 놓고 앉아 그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표면에 일그러짐은 없다.
특별히 외출할 예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스킨케어 정도는 매일 빼놓지 않고 해야 아비도스의 가혹한 환경에서 피부가 버틸 수 있다.
아비도스에서 고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나는――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세리카는 그 노력을 아낄 생각이 없었다.
그건 어째서? 그야 하나밖에 없는 게 당연하잖아.
"......아야네쨩, 정말로 평생 원망할 거야――아니 뭐 나도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 세리카가 어떻게든 체력을 유지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는 이유도, 나갈 예정도 없는데 꽤나 진심으로 스킨케어를 하고 있는 이유도, 사실은 단순히 아야네와 아이돌을 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전에 아야네는 학교 수영장에서 하마터면 익사할 상황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고, 호시노가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간단히 생의 이별을 맞이할 뻔했다는 듯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병실에서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아야네를 본 순간 세리카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운 건 운 거고, 무서운 일을 겪었을 아야네를 위해서 세리카는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줄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야네에게서 만나자마자 「호시노 선배에게 떠밀려서 세리카쨩하고 함께 아이돌 하게 됐어......」라는 말을 들으면 의식은 그쪽을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랑스러운 대책위원회 서기는 뭘 멋대로 남을 팔고 있는 걸까.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세리카가 호시노 상대로 아이돌을 한다고 말한 게 잘못이지만――게다가 아직 한다고 정해졌을 뿐이고 전체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다――그렇게도 생각했지만 그때의 발언은 자신과 호시노 밖에 모를 텐데. 그럼 역시 심플하게 아야네쨩이 날 판 거잖아. 진짜 뭐 하는 거야? 라는 게 세리카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아, 떠올리니까 조금 우울해지기 시작했어...... 그렇다고 할까, 평범하게 부끄럽고......"
지금까지 아비도스를 다니면서 이런 경험은 전혀 없었다. 빚 상환 대책을 세우는 정례회의 때 노노미가 장난삼아 「스쿨아이돌을 하죠♧」라고 말했던 건 기억하고 있지만, 설마 자신이 첫 번째로 하는 처지가 될 줄은.
아이돌이 입을 만한 의상을 입은 자신과 아야네를 상상해 본다――하지만 아야네에겐 어울려도 자신에겐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의상이 어울린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이돌이라고 할 정도니까 어차피 핑크색이나 하늘색의 하늘하늘한 의상을 입게 되겠지. 뭐라고 할까, 약간의 부끄러움이 있었다.
이왕 입을 거라면 검은 게 어울릴 텐데. 아야네와 자신의 머리색으로 생각해도 검은색을 기조로 하는 편이 통일감 있을 테고, 아이돌로서는 그쪽이 좋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하는 상황.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리카는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아. 아침이나 먹자......"
대강 스킨케어를 마치고 머리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다듬은 세리카는 마지막으로 고양이 귀의 털을 작은 빗으로 빗어 털의 흐름을 정리하고 일어선다.
향한 곳은 부엌 냉장고 앞. 끈질기게 나올 것 같은 하품을 삼키며 세리카는 냉장고 문을 열고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기 위해 우유를 꺼냈다.
우유팩을 들자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진작에 바닥을 드러낸 모양이다. 쓰레기는 확실하게 버렸을 텐데...... 뭐 가끔은 버리는 걸 깜빡하는 일 정도는 있겠지. 세리카는 빨리 장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잠깐, 먹을 거 없는 거 아냐?"
세리카는 서둘러 냉장고의 모든 칸을 확인했지만 거기에 있는 건 조미료라든가 얼음 정도였다. 시리얼도 아주 조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먹을 게 없다.
거기에 더해 말하자면 먹을 것은커녕 마실 것도 없다. 아니, 수돗물은 나오니까 수분을 보충하는 정도는 곤란하지 않지만.
"그럼 오늘 하루 아무것도 못 먹잖아!? 모래폭풍으로 밖에도 못 나가니까 장 보기도 어렵고, 전파가 약해져서 배달도 부탁할 수 없고――그렇달까 모래폭풍으로 배달도 올 수 없고!"
오늘이 평범한 휴일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리도 없었지만, 만약을 얘기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리카는 소파에 깊숙이 앉아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휴일인데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방 청소는 얼마 전에 했고, 책장 정돈도 끝냈다. 식기 같은 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어제 다 씻었고, 거기에 전파가 좋지 않아 인터넷으로 시간을 때울 수조차 없는 상황.
그렇지 않아도 모래폭풍 때문에 사방이 막혀 있으니 조금 정도는 시간을 때우고 싶은데...... 세리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소파에서 일어나 얼마 남지 않은 시리얼을 접시에 넣어 거실로 가져왔다.
세리카는 접시에서 시리얼을 하나 집어 입 안에 던져 넣는다.
"뭔가 이렇게 먹는 거 아저씨 같지 않아?"
뭐랄까, 이거, 술에 뒤따르는 안주를 먹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게 마카다미아 너트라든가 초콜릿이라든가 그랬다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까. 결국 세리카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때가 되어 봐야 알겠지만.
덧붙여서 여기서 말하는 아저씨란 결코 아비도스 고등학교 3학년 타카나시 호시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 맞다. 저번에 노노미 선배가 추천해 준 책 아직 안 읽었잖아. 이렇게 된 김에 오늘 읽을까."
세리카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라 들고 있는 접시를 테이블 위에 놓고 책장 속에서 미스터 니콜라이의 「선악의 저편」 빼내 손에 들고 테이블 앞에 앉는다.
참고로 이 책은 노노미에게 빌렸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제대로 서점에 가서 돈을 내고 직접 샀다.
아마 노노미에게 말하면 빌려주겠지만, 만약 그랬다가 책을 더럽히기라도 한다면 미안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래도 노노미는 용서해 주겠지만, 세리카 자신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책을 펼치고 왼손만으로 재주 좋게 페이지를 넘긴다. 조금 입이 허전해지면 오른손으로 접시에서 시리얼을 집어 먹는다――잠깐. 모처럼 조용히 책을 읽으려는데 입안에서 와작와작 큰 소리가 나서 생각보다 성가셔.
세리카는 일단 시리얼을 두고 다시 부엌으로 가 컵에 물을 담아 거실로 돌아왔다. 먹을 것은 시리얼 말고는 없고 마실 것도 물 말고는 없으니 이제 물로 참기로 한 것 같다.
물이 담긴 컵을 들어 입으로 기울인다. 컵 안의 물은 반사된 탓인지 유난히 빛나 보였다.
"――......후우......"
과연, 노노미가 추천하는 만큼 꽤 재미있다. 재밌다고는 해도 폭소한다거나 포복절도하는 그런 부류는 아니다. 그래서 이건 어느 쪽인가 하면 흥미롭다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캐릭터 계열 책이라고 얕잡아 봤지만, 세리카는 어째서인지 이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복잡한 심경이지만, 재미있다고 느낀 걸 재미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도 왠지 모르게 청개구리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호의라든가 물건의 취향 같은 건 너무 숨기지 않는 편이 좋다. 원활하게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간다면 너무 숨기는 건 반대로 악수다. 손과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싶다면, 역시 이건 피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인가 휴식을 취하며 활자에 눈을 향하기를 약 3시간. 현재 시각은 정오――즉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뜻밖에 「선악의 저편」이 재미있었던 탓에 단 3시간 만에 다 읽었다는 건 세리카의 뇌리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아니 그건 그렇고 재미있었다. 다음에 노노미에게 감사의 말을 해야겠지――그리고는, 그래. 일단 가끔 샬레의 카페에서 얼굴을 마주하기도 하고, 아지타니 히후미에게도 읽은 걸 이야기해 볼까. 세리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설령 히후미에게 모모프렌즈 관련 화제를 꺼낸다 해도 터무니없는 길이의 머신건 토크가 날아오지는 않는다. 히후미는 의외로 이야기를 잘한다. 그렇다고 할까 그녀는 모모프렌즈를 포교할 때 만에 하나라도 모모프렌즈의 인상이 떨어질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럼――어쩐다? 단 3시간 만에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버렸는데."
밖을 봐도 역시 모래폭풍은 아직 거기에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전파를 확인해 봐도, 도저히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리카는 아직 컵 안에 남아 있던 물을 전부 마시고 숨을 내쉰 후 천장을 올려다본다. 지난번에 청소한 지 얼마 안 돼서 올려다본 곳은 의외로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다.
"......응, 역시 그렇겠지."
세리카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그렇게 말한다. 소파의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세리카에겐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것보다도 지금은 더 심각하게 봐야 할 게 있다. 솔직히 책 같은 걸 읽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조건이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
세리카는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감추지도 않는다. 아니, 꽤 오래전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단지 2학년 선배 두 명――시로코와 노노미, 그리고 동급생이자 친한 친구인 아야네에게 엄청 주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의식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슬슬 그렇게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방 청소나 시간을 때울 거리도 이젠 바닥났다. 그래서 세리카는 그제야 겨우 현실 도피를 그만두고 얌전히 현실을 인식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세리카가 인식한 참을 수 없는 현실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갇혀 있는 거잖아!?"
그렇다. 세리카는 현재 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하든 갇혀 있다. 아마도――라고 할까 거의 확실하게, 그 괴기현상에.
무엇을 숨기랴, 세리카는 이 모래폭풍에 8일 정도 갇혀 있다. 어차피 곧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모래바람은 약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온 방이 깨끗해져 버렸고, 책 같은 건 전부 다 읽어 버렸다.
당연히 음식 같은 걸 사러 갈 수 있을 리도 없고, 외부에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밖은 모래폭풍이다. 조난당할 게 뻔하다고 할까, 아마 밖에 나가면 못 볼 꼴을 보겠지. 그렇기에 세리카는 자신의 집에서 나간다는 선택지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째서인지 수돗물만은 나오는 게 의미불명이지만...... 덕분에 식수와 목욕은 곤란하지 않다. 그러나 이쪽도 언제든지 쓸 수 없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아...... 어째서 나는 이런 일만 당하는 거지? 다음에 액막이굿이라도 좀 받아볼까......"
임시휴교, 4+8일째.
괴이[그것]는 지금도 변함없이 세리카를 포착하고 있다.
모래폭풍[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세리카를 붙잡고 있다.
■■[그것]는 지금도 변함없이 세리카를 가두고 있다.
얌전히 괴기현상에 갇혀있다는 걸 인정한 세리카는 우선 처음에 왜 갇혔는지를 떠올리기로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유 같은 건 세리카 본인에게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떠올려보면 임시휴교 4일째. 아야네가 입원하고 바로 다음 날. 그날 세리카는 모래폭풍 때문에 방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세리카도 괴기현상의 기본적인 규칙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하다가 뭔가에 속기 십상인 세리카지만 역시 이 정도의 큰일을 깜빡 잊는다고는 할 수 없었다.
뭐.
즉.
원인은? 하고 물으신다면.
"무심코 『모래폭풍이 평생 계속되면 어쩌지』하고 생각해버렸어......!!"
깜빡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심플하게, 그게 전부다.
"하아아아아...... 피곤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실수를 하다니......"
솔직히 세리카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싸매고 이불을 뒤집어쓴 후 나름대로 외쳐 이 부끄러움을 발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치심에 몸부림치다가도 책상을 향해 몸을 돌려 미리 준비해 둔 종이에 연필을 움직였다.
다음은 현재 판명된 괴기현상의 특징이다.
첫째. 계속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둘째, 생각한 시점에서 괴기현상은 1단계로 나아간다.
그 상태에서 무한을 인식하게 되면
2단계로 이행하고 만다.
셋째, 탈출 방법이 반드시 하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건 대개 기상천외한 것.
넷째, 탈출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2단계로 이행하지 않으면
생환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다섯째, 괴기현상 내부에서는 인식이 중요하다.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워지는 것이다.
여섯째. 괴기현상은 정보 공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전과 같은 대처법은 통하지 않는다.
항상 괴기현상의 의표를 찔러라.
일곱째.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되면,
그때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의지하면 된다.
분명 힘이 되어줄 테니까.
"......대충 이런 느낌. 아야네쨩이 가르쳐 줬으니까 여기까지는 우선 틀림없겠지?"
세리카는 간단히 현재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했다. 이렇게 정보를 정리하고 괴기현상에 맞설 수 있는 건 목숨을 걸고 정보를 가져다준 세 사람 덕분이다.
세리카는 시로코와 노노미, 아야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하며 이어서 이 모래폭풍――자신의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우선 신경 써야 할 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지. 뭐 모래폭풍에 갇혀있을 뿐이지만 문제는 그 기간. 음, 아마 시로코 선배가 1시간, 노노미 선배가 대략 175시간, 아야네쨩이 1시간이었을 텐데......"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노노미의 기간은 상당히 돋보인다. 그만큼 사망할 위기가 닥치기까지의 시간도 길다는 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즉 갇힌 시간은 결국 목숨의 위기로 이어지는 시간을 보여준다. 세리카는 일단 이 법칙에 따라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내가 방에 갇힌 시간은, 음, 8일간이니까...... 대략 192시간 정도. 그러니 현시점에서는 내가 가장 오래 갇혀 있다는 거고, 그건 아무도 이다음을 모른다는 얘기, 즉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라는――아아아아아아...... 정말로, 나는 왜 이런 역할 뿐인거야......?"
그렇다. 현시점에서 이미 세리카는 대책위원회 중에서 가장 오래 괴기현상에 말려든 학생이 된 상태다. 지금까지 두 선배와 아야네가 쌓아 만든 노하우는 이후에도 통할지 알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세리카는 큰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빠져 있어도 세리카는 이 괴기현상――태풍의 눈이 아닌 모래폭풍의 눈인 방 안에서 움직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괴기현상의 룰, 다섯째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워진다> 뭐 딱히 방에서 나갈 수 없을 뿐이고, 모래폭풍 같은 건 자주 오니까. 이 정도면 무섭지는 않지. 인식이 중요한 걸 몰랐다면 이렇게 냉정하게 있을 수 없었을지도......"
세리카는 의외로 냉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까, 새삼스럽게 이 정도의 괴기현상으로는 당황하지 않는다. 어느 쪽인가 하면 오히려 여유로운 느낌으로, 진중하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실제로 세리카는 현재 책상 앞에서 책상다리로 진중하게 앉아 있다. 참고로 이 경우 진중함은 딱히 체중이 무겁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인식이 중요하다. 그건 뭐 괜찮아. 이쪽이 괴기현상을 위협이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되는 것뿐이니까. 실제로 내가 당하는 일이라고 하면 좀 평소보다 더 오래 갇혀 있는 것뿐이고. 먹을 건 없어졌지만 그건 오늘 하루 만에 탈출 방법까지 찾아내서 얼른 여기서 나가면 되는 거니까."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의 전례로 미루어 볼 때, 이 공간에서 탈출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세 번의 사례 중 경과시간이 탈출의 열쇠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탈출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생명의 위기가 찾아온 거고, 그 부분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세리카가 현 상황에 초조함을 느끼고 그렇게 인식했을 경우, 그 끝에 기다리는 건 아마도 제한시간이라는 새로운 룰의 발생이다.
쓸데없는 행동을 해서 더 이상 괴기현상을 강화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세리카는 그 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 그럼 다음은――찾아올 가능성이 있는 생명의 위기에 대해서 파약해야겠지. 뭐 이것도 솔직히 예상은 되지만."
세리카는 다리가 저렸는지 책상다리로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한 번 일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이번에는 쭉 뻗은 자세로 다시 앉았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생각한 것은 생명의 위기가 올 가능성――즉 어떻게 죽을 위험성이 있는가. 아무래도 세리카는 여기에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듯했다.
"뭐, 우선 생각나는 건 쇠약사. 먹는 건 이 8일간 다 먹어 버렸고, 물을 마실 수 있다고는 해도 아마 30일 정도면 한계가 올 거야."
세리카는 방 안에서 쇠약해져 죽는 자신을 상상하려다 역시 기분 좋은 건 아니라서 그만두기로 한 것 같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그 인식이 적용되어 버렸을 경우,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세리카는 극도로 냉정했다.
뭐 시로코나 아야네가 죽지 않은 이상 아마 그건 인식해도 괜찮겠지만, 그럼에도 현재 세리카는 미지의 영역에 돌입해 있는 상태. 그 때문에 신중해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밖에 나가서 조난을 당한다거나? 이건 내가 밖에 나가지 않으면 괜찮겠지. 일부러 밖에 나가지 않는 한 밖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역시 그곳에는 모래폭풍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느낌으로 보면 역시 모래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건 악수다. 세리카는 또다시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물을 입에 머금고 곧바로 그것을 체내에 흘려 넣는다. 차가운 물이었다면 통과하는 부위를 차례로 식혀 줬겠지만...... 얼음을 넣은 것도 아닌 그 물은 세리카의 몸을 식혀주지는 않았다.
"미지근해...... 뭐 됐어. 어쨌든 일단 떠오르는 건 이 두 가지. 어쩌면 그밖에 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노노미 선배 때처럼 카운트다운 같은 것도 없으니까 정말 그냥 갇혀 있을 뿐인가......?"
일단 세리카가 내놓은 결론은 당장 생명의 위기가 닥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 전례가 있는 괴기현상의 패턴을 근거로 생각하면 이 괴기현상은,
"――그렇게까지 살의는 갖고 있지 않다. 라고 할까,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나는 갇히는 장소가 좋았지. 시로코 선배는――폭염 아래 아스팔트에 한 시간이라니, 나라면 절대 못 견뎠을 거고."
그래, 이 모래폭풍은 현재로선 딱히 명확한 살의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간과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8일간이나 방치되어 있는데 생명의 위기가 하나도 없다는 건 이제 와서는 의미 불명이다.
그렇기에 세리카는 갇혀 있는데도 이렇게까지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일 날마다 모래폭풍의 위력이 강해져 집 외벽을 깎아나가기 시작했다면 이렇게까지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다만, 차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건 뒤집어 보면 그만큼 사고가 쳇바퀴 돌기 쉽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도 세리카는 종이와 연필을 이용해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걸로 끝. 응, 사태는 꽤 단순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탈출 방법을 찾아내는 것뿐......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여기서부터지."
탈출 방법을 생각한다고만 하면 왠지 간단해 보이지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아직 전제 조건이 나오지 않았다.
즉 아직 정리하지 않은 정보가 존재하고 있다. 세리카는 먼저 그쪽을 생각하고 만전의 상태를 갖춘 뒤 탈출 방법을 찾기로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먼저 생각해야 정보라는 것은.
"이 괴기현상은 대체 어떤 구조인가."
시로코 때는 직선이 끝나지 않았던 것처럼.
노노미 때는 계단이 무한히 늘어났던 것처럼.
아야네 때는 끝없는 물속이 계속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어떤 끝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시로코 선배 때는 직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무한. 한없이 펼쳐진 신기루――그러니 그때는 위로 도망갔다고 했지."
직선 방향에 대해 수직. 분명 그것이야말로 탈출의 열쇠라고 생각한 시로코는 평소 가지고 다니는 촬영용 드론(촬영용치고는 조금 뒤숭숭하지만)을 이용해 괴기현상에서 도망쳤다고 했나. 병문안 갔을 때 유난히 자랑스럽게 말했던 건 기억에 남아 있다.
"노노미 선배 때는 입체적으로 이어지는 무한.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는 무한 계단――보통은 있을 수 없는 방법으로 계단을 내려갔기 때문에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다...... 같은 느낌이었지."
나아가는 게 아니라 돌아간다. 위로 나아가려 해도 아래로 나아가려 해도 계단의 단수가 늘어난다면 이쪽으로서는 돌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노노미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사람――아야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무래도 죽었을 쿠치나시 유메 선배인 듯한――에게서 탈출 방법의 힌트를 받아 마지막 순간에 탈출 방법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야네쨩 때는 공간적으로 펼쳐진 무한. 착각이 만들어내는 하늘에 가득한 물――절대 헬기 안에서 취하지 않을 것 같은 자세를 취해야 탈출할 수 있다니, 유메 선배 같은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쩌면――아니아니, 아야네쨩은 살아났으니까, 지금은 그것보다 나를 생각해야지."
자세를 바로잡는 게 아니라 무너뜨린다. 그러나 설마 물에 빠져있는 와중에 그런 생각에 이를 리도 없었고, 아야네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호시노에게 심폐소생술을 받았기에 겨우 살아났지만, 정말 그때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아야네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유메라고 여겨지는 인물이 구하러 와 주지 않았을 경우, 계속 공중을 물속이라고 인식해 문자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을 것임은 불 보듯 뻔했던 것 같다.
"......3명의 예를 나열해 봤지만, 이렇게 보면 역시 무한은 아니지 않아? 가장 이해하기 쉬운 건 아마 노노미 선배의 예겠지."
노노미의 예, 즉 무한계단. 그 이름에도 무한의 두 글자를 붙이고 있는 그것이 세리카에게는 아무래도 유한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아니, 그럼 무한 계단이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세리카의 이 지적은 틀린 것도 아니다.
"정말 무한이라면 진짜 죽을 때까지 가둬놓잖아. 일부러 이상한 카운트다운까지 준비되어 있던 거 같은데...... 그렇달까 애초에 뭔가 노노미 선배 때만 여러 가지로 다른 거 아냐?"
세리카는 떠올린다. 노노미의 사건을. 그러고 보니 위화감――이라고 할까 명확한 차이가 너무 많은 걸 깨닫는다. 시로코와 아야네의 예에서는 어디까지나 환경이 목숨을 앗아갈 가능성이 있었을 뿐인 데 반해, 노노미의 예에서는 환경은 인명에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수수께끼의 카운트다운이 있긴 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의미를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도 불분명하고, 애초에 그 카운트다운에는 이유가 없었다.
"......노노미 선배, 병원에 실려 간 후에도 한동안은 눈을 뜨지 않았지. 게다가 그동안 심박수가 계속 불안정했고...... 그러니 아마 그 카운트다운이 끝까지 갔더라면――아니, 지금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니라 노노미 선배 때의 괴기현상은 무엇을 확대했었는가 하는 거지."
즉 세리카는 노노미의 무한 계단을 계기로 괴기현상의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그 구조를 바탕으로 자신이 현재 휘말려 있는 괴기현상――모래폭풍의 눈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다. 세리카의 운명을 결정할 때까지――나아가 이 괴기현상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타를 가할 수 있을지가 결정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가려진 분기점은, 바로 앞까지 와 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이전까지 대로 입체적인 계단――즉 상하의 확대겠지만, 그럼 계단의 단수가 한 단계씩 늘어나는 의미는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단순한 확대는 아니잖아, 이거."
그래, 그 부분이다. 아까부터 어렴풋이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거기가 위화감의 온상이라고 방금 확실히 이해한 것 같다.
세리카는 일단 그 부분을 주시하며 고찰을 해나가기로 한 모양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노노미 선배의 예에서 가장 의아한 건 병원에 이송되는 동안에도 제대로 학교에 갇혀 있었다는 거야. 시로코 선배와 아야네쨩은 갇혀 있던 곳에서 이동하면 탈출할 수 있었는데...... 역시 노노미 선배 때만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네."
카운트다운이나 계속 증가하는 계단, 그리고 환경의 위해가 없는 것, 단순한 이동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공간――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크게 나는데, 아직 다른 예와 차이점은 더 있다.
예를 들면 같은 시간을 루프하고 있었다는 것. 물론 이 사실에는 노노미 자신도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거의 그게 확실할 거라는 사실은 왠지 짐작하고 있었다. 때문에 노노미는 그것도 얼버무리지 않고, 빼먹지 않고 정보 공유를 실시했다.
그렇기에 세리카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잠깐만. 그때 노노미 선배는 계단에서 떨어져서 기절했지? 다른 두 사람, 시로코 선배랑 아야네쨩과 다른 점은 의식을 잃었는지 아닌지가 아닐까?"
그렇게 혼잣말을 한 시점에서 어째선지 세리카는 노노미와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해도 확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괴기현상 내에서 정합성이라든지 이치라든지 그런 걸 신경 써서는 아마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세 가지 전례로 성실하게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건 분명하다. 세리카는 그 부분에서 상상 이상으로 탄탄했다.
"나하고 노노미 선배의 예가 비슷하니까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하나는 나도 선배와 마찬가지로 기절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마침 잠든 타이밍에 괴기현상에 휘말렸다는 것."
스스로 한 그 말이 왠지 방안에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세리카는 조금 불가사의한,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것은 아직 아무도 정답자가 없는 문제를 풀었을 때 같은, 혹은 아직 패배한 적 없는 누군가를 쓰러뜨렸을 때 같은, 또는 등정자가 없는 영봉을 등반했을 때 같은 느낌.
어쨌든 그것은 틀림없이 어떠한 미지를 기지로 바꾸었다. 세리카에게는 막연한, 그런 둥실거리고 형태 없는 감각만이 있었다.
"......있을 법해. 왠지 나는 운도 안 좋고...... 그렇다고 할까 자기 전에 『모래폭풍이 너무 길어!』라고 생각해 버렸고. 어쨌든 그렇다면 대체 노노미 선배 때 무엇이 확대된 건지, 어쩌면 보일지도 몰라."
보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 세리카는 거의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순서대로 해명하고 있을 뿐이며 실제로는 확인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여하튼 목적은 탈출방법의 확립. 그리고 현재 하는 건 그것의 사전 준비인 괴기현상의 구조 확인. 더 말하면 이것은 이제 거의 끝에 다다랐다.
세리카는 여기까지 와서야 노노미의 괴기현상이 대체 무엇을 확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하나의 답을 도출한 듯하다.
"의식을 잃지 않았던 시로코 선배는 직선. 마찬가지로 의식이 있던 아야네쨩은 공간. 이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장소를 확대하고 있을 뿐. 반면 의식을 완전히 내려놓았던 노노미 선배는 반대로 현실 쪽이 아니라 의식을 확대하고 있었던 거 아냐?"
모래폭풍이 일순간 명백하게 거세진 것 같았지만 세리카는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이 여기까지 추리해 이끌어낸 답을 계속해서 입 밖으로 꺼낸다.
모래폭풍이 그 이상 강해지는 일은 없었다.
"......괴기현상의 룰, 여섯째. <전과 같은 대처법은 통하지 않는다>――이거, 틀림없이 『같은 탈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라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더 심플하게 『육체에 작용하는 패턴과 정신에 작용하는 패턴이 있다』라는 거 아냐?"
세리카는 이것도 종이에 적어 정리하기로 했다. 연필심이 약간 닳아 있어 처음 글자와 비교하면 살짝 둥글둥글한 게 눈에 띈다.
그러나 정작 세리카 본인은 그런 것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노노미 선배의 예에서 확대되고 있던 건 기절해 있던 노노미 선배의 의식이었다고 생각하면 장소를 옮겨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라든지, 주위 환경이 해를 끼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이상한 카운트다운과 하나씩 늘어나는 계단은 불안정했던 심박수――뭐, 말하자면 그렇게 되기까지의 카운트다운이었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지."
만약을 위해 적어 두지만, 이 괴기현상 내에서 중요한 건 생각하고 생각해서 도출해 낸 사건에 대한 결론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하는 게 중요해지는 건 학교에서 실시하는 필기시험이라든가 그럴 때 정도다.
"......응. 노노미 선배의 예로 확대되었던 건, 잃었던 의식. 아마 괴기현상은 이걸 영혼 같은 거라고 해석했을 거야. 어쩌면 신비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든 이제 겨우 알 거 같네. 대체 이번 괴기현상은 무엇을 확대 중이고 어떻게 나를 가두고 있는지가!"
이 경우 중요한 건 오히려 그렇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틀렸더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면――무엇이든 간에 그렇게 인식한다면.
"그러네. 사실 나는 지금 자고 있는 거라고 가정하면, 확대되는 건 아마 잠들기 직전에 생각하고 있던 것."
괴기현상은 어디까지나 생각대로 형태를 바꾼다.
"시로코 선배가 달리기 좋은 길을 생각하는 바람에 붙잡힌 것처럼. 노노미 선배가 기절하는 바람이 직전의 의식이 확대된 것처럼. 아야네가 다 같이 수영하는 것과 물구름호로 하늘을 나는 걸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쪽에 갇힌 것처럼. 나도 잠들기 전에 언제 모래폭풍이 끝날지 생각해 버리는 바람에――"
그것은 마치 자각몽처럼.
"――정체된 시간에, 붙잡혀 있어."
이리하여 괴기현상의 구조는 정해졌다.
세리카의 인식이 이 공간의 요건을 설정했다.
그리고 그 말이야말로 탈출 방법을 확정한다.
괴이[그것]는 지금도 변함없이 세리카를 포착하고 있다.
모래폭풍[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세리카를 붙잡고 있다.
정체[그것]는 지금도 변함없이 세리카를 가두고 있다.
세리카는 그렇게 숨겨진 진실을 발견했다.
탈출 방법을 찾기 위한 준비도 끝났고, 이제부터 겨우 시작하려는 마당에 세리카는 일단 수분을 보충하기로 한 듯하다.
싱크대가 있는 부엌으로 이동해 컵에 물을 담고 있는데 거기서 새삼스럽게 당연한 의문을 제기했다.
"......어째서 물만은 문제없이 나오는 거야? 이런 건 내가 탈출의 기회를 찾을 시간을 늘릴 뿐이잖아. 만약 가두고 싶으면 굳이 이럴 필요는 없지."
자신보다 먼저 휘말린 세 사람에게는 이런 구제 조치――생명을 이어줄 수 있는 수단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점에 자신의 차례가 오면서 갑자기 괴기현상이 물러졌다.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물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의외로 하늘색 머리카락을 한 사람――지금은 죽은 쿠치나시 유메가 이래저래 손을 썼거나 해줬을 가능성도 있다.
세리카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일단 그 수분을 입에 머금었다. 이 물을 마시는 것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지만 역시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목구멍 깊숙이 물을 흘려넣는다.
"――......후우. 뭐 마시게 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달까 여기 우리 집이니까 굳이 그런 거 신경 쓸 필요도 없지."
결국 도출한 결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지금은 그보다 탈출 방법 확립이 먼저다.
세리카는 일단 거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그곳에 앉으려다 연필심이 동그랗게 변해 있는 걸 겨우 알아차린 것 같다. 세리카는 일일이 깎는 것도 왠지 귀찮아 연필에서 샤프로 바꿨다.
"자, 그럼 다음은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이지."
그렇게 말했지만 구체적인 탈출 방법은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세리카는 떠오른 것부터 순서대로 적어 가기로 했다.
연필에서 샤프로 바꿔서일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익숙해서일까, 꽤나 막힘없이 술술 적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세리카는 첫 번째 탈출 플랜을 세운다.
"뭐 우선 첫 번째는, 심플하게 현관에서 나가는 거지. 여섯째 룰에서도 말하는 대로 의표를 찌를 필요가 있다면, 오히려 노골적으로 위험한 밖으로 나가는 게......"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래도 이게 옳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세리카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어쩌면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 그렇다고 해도 그건 의표를 찌른다기보다 그냥 청개구리잖아."
창문으로 밖을 살펴봐도 역시 그곳에는 모래폭풍이 있을 뿐이다. 뭔가 노골적으로 수상한 점이 있다면,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장소 같은 건 보이지 않고, 결국은 그저 모래폭풍이 조금 길어졌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세리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그러고 보면, 뭔가 어설프네......"
그래. 여하튼 어설프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조잡하다. 덧붙여 말하면 그건 너무 단조롭다.
세리카는 지금까지 대책위원회 멤버들을 세 번이나 괴롭혔던 이 괴기현상이 새삼스럽게 그리 싸구려 같은 수단을 쓸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창문으로 나가는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현관으로 나가는 거 하고 다를 바 없는 거 같단 말이지. 그러니 이 안은 기각."
세리카는 한숨을 내쉬며 방금 쓴 안에 취소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음 안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 빨리 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나오지 않았고, 끙끙 신음하는 것만으로 20분이나 낭비해 버렸다.
현재 세리카는 책상에 힘없이 엎드려 손발을 구르고 있는 형국이다.
"으음, 으으음........ 아 진짜!! 의표를 찌른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어디쯤을 찌르는 게 좋은 거야!? 역시 시간이 흐르지 않은 부분일까――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의 의표를 찌르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
거기서 세리카는 시로코와 노노미의 결단력, 그리고 아야네의 사고 속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닫는다.
아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번 괴기현상은 너무 어렵다고는 생각하지만. 뭐야 정체된 시간이란 건. 그럼 뭐 거기에 시간역행이라도 하면 되는 건가.
어려운 문제를 억지로 떠넘기기나 하고, 이 괴기현상은 소중한 모두를 죽일 뻔했기 때문에 원래부터 싫었지만 이번 일로 더욱 싫어질 것 같다. 괴기현상에 실체가 있다면 때려주고 싶다.
"열받아...... 진짜로 열받아!! 의표를 찌른다니 뭔데! 시간이 어쨌단 거야!?"
세리카는 분노에 휩쓸려 책상을 내리치려다 그만뒀다. 여기서 화를 내도 의미가 없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헛되이 소비할 뿐이다.
딱히 그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세리카의 한계가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쓸데없이 지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확실히 이해한 세리카는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주먹에 최대한 힘을 주고, 충분히 6초 정도 몸을 떤 후 그 주먹을 천천히 원래 위치로 되돌린다――이른바 앵거 매니지먼트라는 것――그러는 김에 쓸데없이 힘을 준 탓에 귀의 털이 곤두서 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고쳐 둔다.
"......진정해야지. 조급해 봐야 좋을 거 없고, 지금까지 그랬다가 잔뜩 실패했으니까...... 이럴 때는 역시 심호흡이지. 응응, 심호흡, 심호흡."
세리카는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일으켜 한계까지 숨을 들이마신다. 팔은 양쪽으로 크게 벌리고 꽤나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으으으으읍――――"
그리고 거기서 숨을 멈추길 3초. 아주 조금이지만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기에 거기서 세리카는 단번에 숨을 내쉬려――
는 순간.
갑자기 인터폰 벨이 울렸다.
"푸흡!?!?!?"
숨을 내쉰다고 할까, 이미 뿜어내고 있던 세리카였지만, 지금의 세리카에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추호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인터폰이 울렸다는 건 이 모래폭풍 속에서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집을 찾아왔다는 걸 의미하니까――그리고 그것이 현재 자택 현관 앞에 존재한다는 것도.
"......어? 아니, 으에......? 이거 괴기현상, 그런 게 아닌 거 아냐......?"
이 괴기현상은 그저 뭔가를 확대할 뿐이고. 이번에는 시간에 적용되었을 뿐이고. 그렇다고 할까 애초에 이런 모래폭풍 속에서 인터폰이 울릴 리가.
"......혹시, 유령?"
왠지 모르게――라고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세리카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어쩐지 갑자기 쌀쌀해진 것처럼 느껴져 몸을 벌벌 떤다.
어째서일까, 조금 전까지 대량으로 마신 물이 겨우 효과를 보인 걸까. 아니, 그렇기엔 너무 늦고, 애초에 그 수돗물은 차갑다기보다는 미지근했을 텐데.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렇달까 애초에 유령이 뭐라고! 화난 호시노 선배가 훨씬――"
그 말을 끝까지 다 하기도 전에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그리고 그 인터폰 소리가 울림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윽, 괜찮아, 세리카...... 유령이라든가 무섭지 않아, 그렇달까 유령 같은 건 없어. 살아있는 인간이 더――"
그 말을 끝까지 다 하기도 전에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그리고 그 인터폰 소리가 울림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그리고 그 인터폰 소리가 울림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그리고 그 인터폰 소리가 울림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인터폰이 울린다.
"――......뭐, 뭐야!? 뭐냐고 이렇게 갑자기!? 어째서, 어째서 갑자기 이런.......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그말을끝까지다하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그리고그인터폰소리가울림을멈추기도전에다시인터폰이울린다.
돌연.
뚝.
소리가 멈춘다.
"......이제, 갔어......?"
그 자리에서 몸을 끌어안듯 귀를 막고 몸을 움츠리고 있던 세리카는 아무래도 인터폰의 연타가 끝난 것 같다고 눈치채고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든다.
도중에 랩 현상*이 발생하거나 갑자기 밖에서 돌풍이 불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식은땀을 흘리면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세리카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인터폰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실내 모니터 앞까지 이동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뭔가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현상
"――인터폰에는 아무도 안 나오네......"
인터폰 버튼을 연타했을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리도 없는데, 하지만 이른바 정상성 바이어스*라는 걸까. 세리카는 몸의 긴장을 풀고 큰 한숨을 내쉰다.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 별일 아니라고 안심시키려는 심리적 특성
"하아아아아...... 아니 진짜 뭐냐고!? 어째서 나만 이런 꼴을――"
세리카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갑자기 말을 끊더니 무서운 기세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아차. 실책이다――실수다. 그렇다고 할까 실패했다. 눈에 보이는 위협이 사라졌다고 해서 안이하게 경계를 풀지 말아야 했다. 세리카는 마음속으로 후회 섞인 생각을 품었다.
일단은 잠잠해졌던 박동이 다시 그 호흡을 되돌린다. 숨도 기척도 죽이고 있었는데 더 강하게, 점점 더 강하게, 힘 있게.
이건 완전히 여담이지만.
집에 없는 척하려면 5분 정도는 큰 소리를 내지 마라.
세리카가 숨을 죽이기 시작한 지 약 5초 후.
쾅, 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힉."
방금까지 했던 인터폰 연타가 마치 어린아이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리카의 큰 귀에도 그 굉음은 당연히 와 닿았다.
일체의 틈도 없는 노크가――구타가 집 문에 때려 박힌다. 세리카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귀와 눈을 막고 몸을 웅크리고 완전히 새끼 고양이처럼 떨면서 그저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 집에 세리카가 틀어박혀 있다는 것도 괴이현상 측에겐 들켰겠지.
아마 문을 열 때까지 이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문을 열면 당연히 그것은 들어올 것이다. 도망갈 곳이 없음을 짐작한 세리카의 눈가는 조금씩 물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만 이런 일을 당하는 거야......?"
운다고 사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고, 굉음은 변함없이 울리고 있다. 인터폰 모니터를 들여다봐도 거기엔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각도상으로는 뭔가 나와야 할 텐데, 거기에 있는 건 모래빛 폭풍뿐이었다.
불가시, 불가해. 즉, 괴이.
이상하며 다른 것.
정체불명, 인식불가, 이해불능.
세리카는 이제 솔직히 한계였다.
"......알았어, 열면 되잖아. 그렇게까지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줄게.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세리카는 냉정함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즉 괴기현상에 붙잡혀 있다고 드러난 시점에서도 사실 상당한 정신적 부하가 걸려있었다. 직전까지 세리카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건 3가지 전례, 즉 시로코, 노노미, 아야네는 탈출했다는 사실이 있었기 때문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없었던 패턴의 괴기현상, 오래 지속된 긴장 상태가 완화되고 그 직후에 다시 그것을 넘는 긴장――공포. 온갖 아수라장을 넘어왔다고는 하지만, 그건 대책위원회의 모두와 함께였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독은 외롭다. 외톨이인 건 괴롭다.
믿음직한 선배는 구하러 올 수 없다. 오랜 친구는 입원 중. 무서워. 정보가 적은 미지의 영역. 연속되는 이레귤러. 울리는 굉음. 무서워. 끝나지 않는 모래폭풍. 깨어나지 않는 자각몽. 애매모호한 시간감각. 조용히 피부를 덮는 열기. 무서워. 이명. 창문을 내리치는 모래알. 텅 빈 냉장고. 계속 흐르는 물. 바짝 마른 빈 목과 안구. 무서워. 싱크대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떨림이 멈추지 않는 두 다리. 품에 안은 애총, 신시어리티. 서서히 거칠어지는 호흡. 벽시계의 초침이 시간을 새기는 소리. 연속된 옷 스치는 소리. 협착하는 시야. 무서워. 심하게 떨리는 턱. 끝없는 공포. 마룻바닥에 쌓인 먼지. 책장에서 소리를 내며 떨어진 한 권의 문고본. 알림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고요함.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 의미 없는 문자열을 발음하는 구_강. 무서워. 모르는 사이에 자란 손톱. 접근할수록 증폭되는 악의. 착각. 아무리 기다려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하늘색 사람. 홍조가 도는 뺨. 비명을 지르는 뇌수의 뒷면의 뒷면의 뒷면. 불완전하고 어중간하게 더해지는 전능감. 기도. 군데군데 그을린 벽지. 무서워. 홀로 헤매는 시선. 광기적 정상성 바이어스. 새우등. 자갈이 쌓인 현관문. 왜곡된 평형감각. 직시하기 어려운 환각. 나쁜 버릇. 의식적인 무의식에 의한 과집중. 얼굴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땀. 손끝에서 전해지는 도어락의 차가움. 무서워.
"......해주겠어. 해준다고. 무조건 선수를 잡아서 집에 들어오기 전에 가능하면 현관에서 무조건 해주겠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화난 호시노 선배가 훨씬 무서우니까――"
세리카는 이른바 반광란 혹은 발광 상태에 한쪽 발을 들이고 있었다. 더 간결하게 현재 세리카의 정신상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계였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한순간에 공포로 가득 찼을 때. 사람은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어쩌면 그야말로 드러난 생존본능의 모습 그 자체일지도 모르지만.
"열어서, 때려눕히고, 쏜다. 열어서, 때려눕히고, 쏜다――응, 할 수 있어. 나라면 할 수 있어. 호시노 선배도 때릴 수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유령 따위는 무섭지 않아......!"
어느새 문에서 울리는 굉음은 멎어 있었다. 즉, 노크가 멈췄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리카는 그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어 외부의 적을 배제할 생각밖에 하지 않는 듯했다.
문 창문 너머로 그림자가 보인다. 아마 그게 이번 일의 원흉이겠지. 현재 세리카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인식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게 맞다는 확증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데.
"가는 거야, 세리카...... 쓰러뜨리고 여기서 나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 테니까......!"
시야가 좁아진다. 호흡이 가빠온다. 어지럽다. 귀가 울린다. 전신이 폭발해 날뛰기 시작할 것 같은 감각에 지배되고 있다. 초조해. 외로워. 초조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구역질이 날 정도의 공포에 휩싸이면서도 세리카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거나 발길을 돌려 도망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세리카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가. 혹은 광란에 휩쓸려 가고 있기 때문인가. 결국 어느 쪽이든 결말은 바뀌지 않겠지만.
그야 그렇겠지.
어쨌든 세리카는 문을 열 테니까.
"반드시, 모두에게 돌아갈 테니까!"
세리카는 잠금장치를 힘껏 해제하고는 기세 그대로 문을 밀어 열었다. 갑자기 집 안으로 폭풍에 의해 날아오른 모래가 흘러들어오지만 이런 건 필요 경비, 콜래트럴 대미지라는 거겠지.
문에 밀려났을 괴이는, 아무래도 균형을 잃은 것 같다. 쓰러뜨린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오히려 지금을 놓치면 다음은 없으리라.
"이거나 먹어라!!"
세리카는 지체없이 괴이에게 달려들어 신시어리티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큰 소리로 외치며 괴이의 정수리를 향해 자신의 애총 개머리판 부분을 주저 없이 내려찍었다.
"히잉!?!?"
――......히잉?
"에? 어라, 한 방에 쓰러뜨려버렸어......"
아니 뭐야 그 귀여운 비명은. 그렇다고 할까 문 앞에 괴이는 높은 목소리로 봐서 여자였던 걸까. 그렇게 되자 기절시킨 건 왠지 미안해졌다.
아니다. 세리카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그런 게 아니라 방금 자신이 때려눕힌 상대의 정체――즉 누구를 때려눕혔느냐 하는 것.
순간 시야에 비친 건 틀림없이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으로 보인다. 제법 긴 머리에 전체적으로 느슨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가슴이 큰 것 같다.
어째서일까, 어디선가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을 들어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왠지 모르게 그 부분이 신경 쓰인 세리카는 때려눕힌 괴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니, 잠깐만. 이러기 있어?"
그제야 세리카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때려눕힌 충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때려눕힌 상대가 상대였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세리카는 이번에야말로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꼈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 막 세리카가 애총의 개머리판으로 전력을 다해 쓰러뜨려 기절시킨 상대는――
"이 사람, 유메 선배잖아......"
――사망했을 아비도스 고등학교의 선배이자 이른바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즉 시로코, 노노미, 아야네의 생명의 은인인 쿠치나시 유메 그 사람이었으니까.
댓글 6

새로고침만 2주째.. 드디어 나왔다
블끼야아악
세리카 너무 똑똑해
와~!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