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업무실에서 철야를 하던 중, 창밖을 보자 칠흑의 하늘이 주홍빛 물감으로 서서히 칠해지는 것이 보였다.
“벌써 밤을 새버린건가.”
그러고 보니 온몸이 뻐근한 것 같았다.
우두둑-
의자에서 일어서니, 다리와 팔에서 들리면 안 될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요즘 뭐라도 하는게 있을까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게 좋을 것 같아 업무실 의자에서 내려와 소파로 향해 TV를 켰다.
마침 방영되고 있는 TV에는 크로노스 스쿨에서 방송하는 한 예능이 한창이었다.
“저기, 달링. 그대를 생각하면 내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려. 나와 함께 빛나는 밤의 호숫가에서 사랑을 속삭이지 않으련?”
화면 속에는 정장을 입은 여자아이가 세상 느끼한 표정으로 오글거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통했는지 맞은 편 여자아이의 얼굴에 점점 홍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제 심박수의 변화를 보겠습니다!!”
진행자가 화면으로 나오더니 여자아이의 손목에 채워진 기계로 심박수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확인했다는 듯 잔뜩 흥분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아, 결과가 나왔습니다! 심박수 증가량이 60이 넘었습니다! 이거 이정도면 전력질주한 정도의 심박수가 아닌가 싶은데요!!”
화면 속 여자아이들은 타겟의 심박수를 가장 많이 변화시키는 사람이 이기는, 이른바 고백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건 무슨 상황이죠?”
오⋯.
TV 화면속 얼굴이 발그레지는 소녀들을 보며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어차피 학생들이 10살도 넘게 차이나는 아저씨를 좋아할 리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심해봤자 조금 경멸하는 눈초리를 받고 끝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저것을 따라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Target 01. 우시노 노아
얼마 지나지 않아, 당번 시각의 정시가 되자,
업무실의 문에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나의 작전은 시작된다.
“응, 안녕! 그러고보니 말인데, 노아는 항상 포커페이스에 가깝고 평정을 유지하지?”
“네? 일단은 세미나의 서기이기에, 저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 평소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이야, 혹시 어떤 상황에서도 심박수의 변화가 적겠지?”
“어지간한 일에서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아는 찬찬히 바라보고는 흥미로운 듯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 선생님의 표정, 목소리에서 나오는 작은 기대와도 같은 떨림은 무언가를 준비하셨다는 의미겠군요. 조금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나는 노아의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노아의 심박수를 측정해주는 기계야. 만약 10분동안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노아의 심박수가 30이상 올라가지 않는다면 내가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
“후훗⋯. 그거 재미있겠네요. 소원이라하면 ‘어떤 것’이든 다 되는 건가요?”
그러고는 품 속에서 늘 기록하는 기록지와 펜을 꺼내고는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20XX년, 3월 5일, 오전 10시 3분. 선생님께서 조건없는 소원권을 건 심박수 내기를 거셨다.]
노아의 펜은 계속 사각거렸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꼬옥-
나는 열심히 기록하는 노아의 손 위를 살포시 잡았다.
“선..생님?”
“노아. 기록에 신경쓰지 말아줄래? 나는 노아가 나만을 바라보면 좋겠어.”
말에서 기름기가 뚝뚝 나올 정도로 느끼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는 종이 위를 사각거리던 펜이 멈췄다.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온갖 로맨스 영화들을 보며 느끼한 대사들을 공부하였다. 당연히 이런 대사가 통하리라는 기대따위는 없다. 나의 계획은 로맨스로 심박수를 올리는 것이 아닌, 이런 느끼함을 견디다 못해 화가 나는 학생들의 반응으로 심박수를 올리는 것이다.
“이⋯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죠⋯.”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는 듯이, 노아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화가 많이 난 걸까 싶었지만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더 진행하기로 했다.
“노아. 나의 떨림이 느껴져? 나의 고동이, 심장의 두근거림이 손을 통해 느껴지지?”
“⋯.”
노아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새하얀 백발 사이 새빨개진 귀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로맨스 영화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노아의 하얀 머릿결을 따라 귓가를 쓸어내렸다.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찰랑거리며 기분좋은 향기가 났다.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다.
노아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넘기던 손이 그대로 노아의 등을 타고내려가며 한 팔로 가볍게 끌어안았고, 다른 검지손가락으로 노아의 턱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으으⋯⋯.”
노아는 내 눈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나의 행동에 화가 많이 난 것일까…. 온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만약 정말 싫었다면 나를 뿌리쳤거나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내 눈을 바라봐줘. 노아.”
내 시선을 피하고 있는 노아의 눈동자는 이때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아는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지금 필사적으로 분노를 참고 있지 않은가. 이런 노아를 위해서라도 내가 그만두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나는 노아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노아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더니 결국 내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삐이이이!!!! 고심박 경고! 고심박 경고!!]
노아가 차고 있는 심박수 측정기계가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노아를 끌어안던 팔을 풀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심박수를 보니, 이미 한참 전에 내기에서 진 상황이었다.
[고심박 경고! 고심박 경ㄱ⋯]
펑-
경고음이 계속되자 노아는 기계를 거칠게 잡아뜯었다.
“노..노아?”
“가장 설렜었는데 저 기계따위가 방해를⋯.”
“노아? 화⋯. 많이 난거야?”
“음, 그럴지도요?”
노아는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짓지만, 나는 그 속에 분노가 섞여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역시 이런 일은 무리였겠지.
“노아, 정말 미안해. 나는 너가 그렇게 화난지도 모르고⋯.”
“다시해요.”
“응?”
“미안하면 아까한거 다시해요.”
“아, 그건 좀 힘들것 같은데. 저 기계는 하나 밖에 없어서.”
“다시해요!!”
노아의 눈동자에서 무언가 강렬한 의지를 읽은 나는 바로 도망쳤고, 노아는 나를 끝까지 쫓아왔다.
결국에는 붙잡혀 힘들게 다시 대사들을 말했고 노아는 이내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날의 노아는 평소와는 다르게, 왜인지 모르겠지만 감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Target 02. 우라와 하나코
그 날로 부터 며칠이 지난 날,
오늘의 당번은 내가 가장 대처하기 곤란한 학생 중 한명이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후후~ 역시 다시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쭉쭉 짜내버리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그거 잘하는데 도와드릴까요?”
“하⋯하나코??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께서 다 쓰신 볼펜을 모아두는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 혹시, 이상한 상상이라도 하셨나요? 아이 참…. 선생님도⋯⋯.”
“기대⋯하고 있었던 건가요? 아이~ 엉큼하셔라~”
홍조를 띄우며 부끄러운 듯 눈을 피하는 연기를 하는 하나코를 보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하나코의 수줍어하는 연기를 보자 나는 저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코, 내기 하지 않을래?”
“분명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대가로 이것저것 요구하는 건가요? 예를 들면 OO라던가, OOOO이나⋯.”
“그건 무리야!!!! 그런게 아니라 소원권을 하나 걸게.”
소원이라는 말을 듣자, 하나코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놀리고 있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선생님과의 소원권이라니⋯.”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한 시골소녀가 생각날 정도로 순수한 표정이었다.
하나코에게 노아와 같이 룰을 설명하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손목에 기계를 채우자, 하나코는 조금 전과 같이 도발적인 말을 했다.
“후후, 아무리 내기라고는 해도 손목이 묶인 저에게 OO같은 일을 하면 안된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나는 하나코의 손가락을 보석을 다루듯이,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코는 움찔했을 뿐 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나코의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말랑말랑하며 부드러웠다.
투명한 물에 끈적거리는 잉크가 퍼지듯이, 나의 손은 서서히 하나코의 손과 겹치며 뻗어나갔다.
“선⋯선생님??”
그리고는 손가락들이 마주보며 양손에 손깍지를 끼워졌다.
“그렇다면 손을 잡는 것까지는 괜찮지?”
퍼엉-
문자 그대로 하나코의 얼굴에 폭탄이 터진 듯, 새빨간 홍조가 졌다.
역시 하나코도 이런 걸 싫어하는 구나.
하나코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여기서 물러서게 된다면 하나코의 의지를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코도 분노했는지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 그 정도라면요⋯.”
나는 하나코의 심박수 기계를 보았다.
심박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지만, 뭔가 더 결정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코, 내 눈을 봐줘.”
“으읏⋯."
하나코는 버거운 듯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내 눈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코하루가 항상 사형을 외치게 하는 하나코가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다. 즉 저건 명백한 연기다! 하나코가 아직까지 연기를 할 정도로 나의 멘트들이 강하지 못했다니⋯. 조금은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코하루가 들으면 사형을 외치다 못해 기절할 말을 하기로 했다.
“하나코, 할 말이 있어.”
“뭔가요오⋯.”
나는 하나코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는 양 어깨를 잡고는,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었다.
하나코는 몹시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안절부절하며 쳐다보았다.
“선생님? 그⋯그만⋯. 그거 위험하니까⋯.”
나는 멈추지 않고 하나코의 귓가에 내 입을 갖다대고는 낮은 중저음으로 속삭였다.
“나랑 OO할래?”
“⋯.”
1초,
2초,
3초⋯.
한참을 기다려도 하나코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점점 차갑게 식어감에 따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하나코?? 방금은 그냥 한 말이니까!”
하나코의 얼굴을 보자 눈의 초점이 사라져있었다.
“우으⋯ 선생님⋯⋯♡”
“하나코?? 너 괜찮아?”
“진심으로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하나코는 양손으로 내 양팔을 꽉 잡고는 천천히 나를 쳐다보았다.
“하나코씨? 지금 양 팔이 많이 아픈데 일단 놓아주고 생각해보는게 어떨까요?”
“선생님⋯♡”
틀렸다. 하나코의 눈빛은 영락없는 포식자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온힘으로 발버둥쳤지만 하나코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나코는 버둥거리는 나를 양팔로 꼬옥 끌어안고는 천천히 얼굴을 갖다대어 귓가에 속삭였다.
“저희 OO해요♡”
이건.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도 잠시후 코하루가 야한 냄새를 맡고 왔다며 나를 덮치고 있는 하나코를 보며 필사적으로 사형이라고 소리쳤고, 하나코는 정신을 차린 것인지 곧바로 업무실 밖으로 도망갔다.
한참동안 코하루에게 해명을 한 뒤, 한동안 하나코는 나를 보면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새빨개진 얼굴로 저 멀리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이후 생각나서 하나코의 심박수 기록을 확인해보니 [측정불가]가 나타나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이후 다른 당번 학생들에게도 며칠동안 계속해서 ‘그’ 놀이를 했고,
“쿠후후~♡ 부끄러워하는 표정 재밌어. 선.생.님, 나를 보면 두근두근 해지는 거지?”
오늘 당번인 무츠키가 나의 무릎 위에 걸터앉아 볼을 쿡쿡 찌르며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무츠키, 나랑 ‘놀이’ 해보지 않을래?”
“응?”
잠시 뒤 얼굴이 홍조로 새빨개진 무츠키가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업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꾸만 도망치는 당번 학생들로 인해 업무량은 당연히 떨어져 린에게 불려가서는 한참동안 혼나게 되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나의 작은 놀이는 여기서 끝나게 되었다.
<작가후기>
읽으면서 느꼈겠지만 이 소설은 다른 소설핫산의 형식을 참고해서 써봤음. Target 01 이라던가,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라던가⋯.
사실 무츠키 편도 2주정도 고민 정말 많이 했는데 도무지 소재가 생각이 안나서 못적었어. 무츠키 같은 애들이 아무말도 못하고 얼굴 새빨개지는거 ㄹㅇ 미식이거든요. 그 외의 캐릭터들은 쓰면서 정말 흐뭇했음
위에 시리즈 보면 알겠지만 처음으로 써본 피폐, 학대계열 아닌 소설임⋯. 진짜진짜 살면서 피폐계열 아닌 소설은 처음 써보는거라 조금 어색하거나 그런 거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냥 생각나는거 아무거나 피드백해줘도 진짜 고마울 것 같아. 피드백 얻을 수 있는 곳이 너무 한정적이라 그런 의견들 하나하나가 성장에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좋은 주말 보내!
댓글 34
주말에는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서 리플이 늦게 달리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선플후독하는 경우도 있으니 피드백보려면 좀 기다려야됨


오 죽은줄알았는데 살아있었네 센남 개연성 개방하면서 벽쿵 하면 바로 난자 나오지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