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권력,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권리와 힘.
결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수 없으며,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치를 가지는 독이 든 성배.
과연 이는 학생들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기에 학원도시 키보토스에서도 권력을 노리는 자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권력의 정점에 군림하는 존재--- 총학생회장.
비록 느슨한 연방제를 유지하며 각 학교 간의 자치권을 존중하는 키보토스지만 그럼에도 총학생회장의 영향력은 여느 대형 학교의 학생회장들마저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 어마무시한 자리인 만큼, 총학생회 조례에는 총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이 불미스러운 사태로 공석이 될 경우 수석 행정관 및 각 행정위원들이 권한을 대행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하지만 현실의 국가원수도 대부분의 경우는 무난히 임기를 마치는 것을 생각해보자.
더군다나 이곳은 실탄을 BB탄 보듯이 수류탄을 눈송이 보듯이 하는 세계.
애초에 총학생회장의 목숨이 고작 총격이나 테러 따위로 심각하게 위협 받을 일 자체가 매우 희박한 세계.
그렇기에 어느 필자는 "총학생회 조례에서 제일 쓸모없는 문장"이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렇다.
분명 이곳은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꿈과 기적의 세계.
그랬어야 할 터인데.
"---실장께서는, 총학생회 조례에 의거하여, 현 시간 부로 키보토스 총학생회장의 모든 권한과 직무를 위임 받게 되셨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억누르며 담담한 척 사실을 전하는 통괄실 행정관과 비서진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아연실색한 채로 굳어버린 이 이야기의 주인공.
현직 키보토스 총학생회 행정위원회 재무실장.
아니, 이제는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겸 재무실장이 되어버린 그녀.
아무래도 그녀가 정신을 되찾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니 잠시 시간을 조금 앞으로 되돌려 보자.
---4시간 전, 키보토스 모처의 어느 원룸.
정오마저 한참 넘긴 시간인지라 방 안의 사물들은 창문으로 환하게 비치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게헨나의 교복과 총학생회 제복.
테이블에 쌓여있는 무수한 서류더미를 제외한다면 그저 평범한 여고생의 방이라고 하면 딱 맞아떨어질 광경.
하지만 늦은 시간과 따사로운 햇빛에도 불구하고 방의 주인은 새근새근 소리까지 내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오늘이 그녀의 반년만의 휴무였기 때문.
총학생회에서 재무와 관련된 업무의 최선임자로 근무하는 그녀는 불과 어제까지 업무회의에 제출하기 위한 내년도 총학생회 예산안을 작성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임기 상 첫 번째 예산안 심의가 통과되었지만 어마무시한 과로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녀는 휴가서를 제출했고 총학생회장이 흔쾌히 승인해준 덕분에 이렇게 꿀잠에 빠져있는 것.
원래대로라면 다른 행정위원들과 함께 오늘부터 시작되는 키보토스 황륜대제의 개회식에 참가해야 했겠지만 과연 악에 받친 직장인의 휴가서는 어느 공무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느슨한 모습이 그녀를 상징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의 그녀는 그야말로 서류와 결혼하고 데이터를 첩으로 두었다는 악취미 섞인 농담으로 평가될 정도의 워커홀릭이었다.
어려서부터 재무 및 경영 공부에 관심을 가졌고 중등부 시절 키보토스 경제올림피아드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입상, 이 점을 눈여겨본 총학생회장 덕분에 불과 1학년의 나이에 재무실장으로 임명되는 파격적인 인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그녀.
그럼에도 천성이 모범생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성공가도에 도취하거나 남들을 업신여기기는 커녕 그럴 자원과 시간을 아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전부 쏟아붓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말하면 남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최상급이나 자신만의 대의를 가지고 남들을 다뤄가며 목표를 이루는 행위는 하려는 의지도 없었고 경험도 없는 존재라는 것.
요컨대, '관료'로서는 최고이나 '정치인'으로선 한없이 초짜에 가까운 게 현재의 그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 자신도 그런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총학생회장의 배려와 재무실장으로서의 능력만큼은 총학생회의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 덕분에 지금까지 큰 문제가 벌어진 적도 없었고 당장 예산안 작성이 바빴던지라 신경 쓸 틈새조차 없었다는 나름의 이유로 합리화가 가능했다.
게다가 그녀는 재무실장이란 자리마저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오른게 아닌 만큼 자신이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생각 자체가 추호도 없었다.
만일 이 점이 나중에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때는 그저 순순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물러나면 되는 일이리라.
살짝 비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녀의 생각은,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이나 총학생회장 및 다른 행정위원들을 믿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시계침은 어느새 오후 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꿈나라 여행을 한순간에 현실로 귀국시킨 주인공은 바로 밤새 틀어놓은 TV에서 우렁차게 울려퍼진 아나운서의 개회식 오프닝 멘트였다.
"그럼 지금부터 학생 여러분의 뜨거운 함성과 환호와 함께--- 키보토스 대운동회를 시작--- 하겠습니다!"
"......아...우으......? 지금이 몇시야......"
이런.
아무리 피로가 쌓인게 많았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총합 16시간 풀수면을 했을 줄이야.
물론 그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 할 리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살짝쿵 아려오는 마음의 한 켠을 붙잡고 침대에서 살며시 몸을 일으킨다.
반쯤 돌아온 정신으로 세면을 마치고 냉동고에 무지막지하게 쌓여있는 간편도시락 중 하나를 꺼내 렌지에 돌린다.
옷을 잠옷에서 총학생회 로고가 박힌 츄리닝으로 갈아입자마자 전자렌지에서 들리는 기분 좋은 차임벨 소리.
도시락과 수저를 들고 침대와 TV 사이 테이블에 앉아 몸을 기댄다.
때마침 개회식에선 이제부터 총학생회장의 축사가 있을 차례였다.
자신의 상관이자 이 휴가의 은인인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목소리를 경청하기 시작한다.
"존경하는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키보토스 황륜대제의 축사를 맡게 된 총학생회장---"
안봐도 비디오가 분명한 의례적 문구로 점철된 첫마디를 대충 흘려듣고, 이제부터가 본문의 시작.
"---황륜대제는 모든 키보토스 학생들이 참가하는 축제이자 화합의 장으로서 키보토스의 평화와 안녕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로움은 특별한 날에만 누릴 수 있는 '축제'가 되어선 안됩니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음음, 드디어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시는군.
"키보토스 총학생회, 만마전, 티파티는 오랜 협상과 합의 끝에 게헨나와 트리니티 두 학원 간의 평화 협정--- 이름하여 '에덴 조약'을 내년까지 체결하기로 전격 합의하였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양 측 학생들을 괴롭혀왔던 증오와 분노의 연쇄를 끊어내고, 지금까지 갈등하고 반목하던 학생들의 힘을 모아 우리 키보토스를 더욱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나는 원동력으로 바꿔줄 것입니다."
바로 이게 요즘 제일 뜨거운 이슈, 에덴 조약이다.
비록 양 학교 학생들에겐 말만 번지르르한 사실상 상대방에게 굽히는 꼴과 같지 않냐던지 졸속적인 평화협상이라던지 등등의 부정적인 의견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총학생회장이 그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는 이유 또한 빈약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지.
"물론 평화를 향한 길은 마냥 쉽고 편안한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이상 우리 후배들에게 이를 미룰 수 없으며 우리 학년들이 앞장서서 해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저를 비롯한 총학생회의 모두는 어떠한 대가가 따르던지 그것을 치를 준비가----------"
치이이이---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킨다.
그와 동시에 연설 도중 끊어져버린 방송.
눈을 지그시 감은채로 아무 말 없이 내용을 듣다가 갑자기 끊겨버린 방송과 치이익 하는 잡음에 짐짓 놀라 눈꺼풀을 연다.
크로노스 애들, 설마 이런 중요한 방송에서까지 사고를 내고야 만 것일까.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다른 채널로 TV를 넘겨본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4개에 달하는 채널에서 개회식을 송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채널에서 방송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무심코, 마음 속 한켠에 무언가 떠오른다.
에이, 아니겠지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도 내심 불안감에 총학생회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설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안녕하십니까, 재무실장입니다.
지금 스타디움에서 방송이 끊긴 것으로 보이는데 연락 및 상황파악 중인건ㅈ--"
쨍그랑!
유리가 사정없이 깨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니야, 아니어야먄 돼, 아닐거야, 하지만!
유리를 피해 투과성 커튼을 마저 걷는다.
그리고 눈 앞에 보여진 광경.
개회식 개최장소인 스타디움이 위치하고 있을 남동쪽 지점.
그곳에는 스타디움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도 없고 어마무시한 크기의 버섯구름이 피어올라 주변부를 집어삼키기 시작하고 있었다.
발 밑에 유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까먹은 채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아아....아으...아아아......"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굳어있기만을 어언 몇십 초.
현관 쪽에서 누군가 문을 다급히 강타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맥없이 쾅하고 열려버리는 문.
총학생회 직속 경호실 직원들과 함께 SRT 대원들이 우르르 집 안으로 진입해오기 시작한다.
"---실장님! 모시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실장님? 지금 당장 창문에서 떨어지십시오!"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는 그녀.
결국 대원들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들어 창문에서 떨어뜨린다.
"어.....어째서......"
"실장님! 한시가 급합니다! 제발 제 말에 대답해 주십시오!
재무실장님!
아니,
리쿠하치마 아루 재무실장!"
2 / 2넷플에서 지정생존자 정주행 조지고 나니까 하드보일드를 접하지 못하고 그대로 모범생으로 자란 바보병신사쵸가 센세가 오기도 전에 테러에 휘말려서 권한대행이 되어 똥꼬쑈하는 정치물 같은 걸 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안쓸거 같애서 내가씀.......

댓글 23
웅

맛있겠다
아니시발 왜 여기서 끊어 더써와
노벨피아로 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