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딩 시로코. riding with shiroko.
7003자.
타는 듯한 갈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번듯한 가로수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도로가 작열하는 태양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삭막하기만 한 풍경이었다. 종종 전선이 끊어져 있는 전봇대나 말라붙다 못해 제풀에 지쳐 넘어지고 만 나무둥치를 제외하고는.
달리면 달릴수록,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사구가 더위에 못 이겨 자세를 바꾸거나.
지난번에 언뜻 봤던 폐건물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된 정도.
몰상식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혹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찰나에,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견디기 어렵다면.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서순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 버텨봤자, 먼저 묻힌 것들을 따라 함께 모래를 덮게 되는 것 말고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진한 커피의 향기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새파란 하늘 색감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혀끝으로 맛보는 단내보다 인상적이지 못했다.
온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말라붙어가며 풍기는 짠내보다도 못했다.
이 땅은, 드물게 내리는 빗방울을 겸허히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이 경계를 뛰어넘어 영혼을 짓누르는 탓이었다.
핸들 옆에 매달린 물통에 손가락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집으려던 것을 겨우 이성으로 억눌러 멈춰 세운 것이었다.
몸이 요구하는 대로 마셔봤자 도로 토해내는 것밖에 더 할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시선을 똑바로 앞을 향했다.
곧게 뻗어 있는 도로가 아득히 솟아 있었다.
아득히.
그래.
아득히, 다.
오르막길이 있을 거라는 언질이라면 미리 듣기는 했지만.
아비도스 자치구에 이런 길이 있는 줄은 지금 막 봤으며.
이 길이 시로코가 즐겨 다니는 라이딩 코스라는 사실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여태 자신이 내달려온 길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는 평평한 평지에 불과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차이라고 해봤자, 키 높이조차 되지도 않는 만큼일 것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다다른 광경을 목도한 순간 한숨이 나오지 않을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코스?」
「응. 이왕 하는 거 시로코가 자신 있어 하는 코스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 그런 대화를 나눴다.
가만 보면, 의욕이라는 녀석은 눈치가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하루를 온전히 비우고, 제대로 약속을 잡아서 하게 된 라이딩이었다.
아이의 기대에 부응해주고 싶다는 이유가 상냥하다면 상냥하다고 할 수야 있겠지만.
「선생, 시로코 쨩의 순찰은 강행군이라고? 이 아저씨도 따라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고?」
「선생님?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어때요⋯⋯?」
「미쳤어, 선생님?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
복잡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노미를 끝으로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말렸을 때, 마주 웃어주었던 이유라면.
단순한 동심이나 호기심이 전부이지는 않았다.
이미 뱉어버린 말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다시 주워 담자니, 그것에 못 박혀 있는 시선은 어느새 사람 한 명분의 욕심보다 훨씬 더 커다란 몫이 되어 있었다.
이쪽을 응시한 채 쉴 새 없이 두 귀를 쫑긋거리던 시로코는,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잊어버린 듯 보였다.
잿빛 눈동자가 들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기쁘다는 감정을 숨기지도 않고 이내, 소녀가 활짝 웃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말간 호의가.
제 불안을 눈치챌 수 있는 터럭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 하아.”
다른 수를 선택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기대감도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로코가 안내하는 아비도스 자치구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하며.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만만치 않은 길이 될 것이기에 굳세게 마음을 먹었다.
아비도스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하나같이 준비에 미비한 사항이 있지는 않은가, 꼼꼼하게 체크하고 배웅까지 해주었다. 아야네와 세리카에 이르러서는, 시로코를 붙잡고 신신당부를 남기는 등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눈앞의 언덕으로 올라서는 이 길은, 오늘의 난관이기도 하겠지만 소녀가 약속하는 클라이막스이기도 했다.
이 길만 넘으면.
그래, 이 길만 넘으면.
“괜찮아, 선생님?”
“⋯⋯.”
이쪽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시로코에게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조금 힘에 부친다고 느껴지는 건, 나이나 환경 같은 기타 등등의 이유일 터였다.
어른이다.
페달을 밟아서 바퀴를 굴리는 것 정도, 노동은커녕 소일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체력에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라이딩 코스를 짜는 것에 관해서 시로코가 많은 부분을 양보해주기까지 했다.
오늘을 위해서 가장 마음 졸이고 있었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시로코였을 것이므로.
계속 가도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온 길이 짧지 않았다. 이제 와서 지친 모습을 보여줘봤자 본전도 챙기지 못할 판이었다.
이 오르막길을 굳이 코스에 넣은 시로코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녀가 안내하는 끝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그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지평선을 넘보는 도로는 희끗희끗하게 물들어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전경은 고요하기만 했다.
물병을 들어, 미지근한 물을 입 안 가득 머금었다.
자전거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발바닥에서부터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살짝 느슨해진 다리 근육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콧김을 내뿜으며 의욕을 불태웠다.
끼릭끼릭, 하는 체인의 소리가 타악기를 경쾌하게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럴듯한 그늘이 한 뼘조차 보이지 않는 뙤약볕의 아래에서 맞바람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모래알을 후, 불었다.
따갑고 뜨거웠다.
“⋯⋯.”
“⋯⋯.”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로코의 모습을 뒤에서 응시했다.
그녀를, 그리고.
지금도 자신들의 학원을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을 다른 아이들을 떠올렸다.
참으로 모호한 세계이지 않은가.
무엇이 해결되었고, 무엇이 해결되지 않았는가.
그 사이를 선명하게 가로지어야 할 굵은 직선은 언제부터인가 흐릿해져 있었다.
무게 중심을 잃은 펜촉이 흐트러지는 것 같더라니 손 쓸 틈도 없이 바사삭 깨지고 말았다.
펜대에 담겨 있던 잉크가 부족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잉크를 지나치게 많이 머금고 있기 때문일까?
⋯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로코는 묵묵히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뒤에서 그녀를 쫓아가기만 하는 자신이, 이 소녀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피로와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모르지 않았다.
앞서가는 그녀는 분명히 이 길을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다녀 봤을 것이기에.
오늘 함께 일주하는 라이딩 코스보다 더 길고, 더 험난한 도로를 뚫고 끝내 이 언덕을 올라간 날도 많았을 것이다.
도무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 날이라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날이라도.
지금 자신이 두 눈으로 담고 있는 모습처럼 소녀는 꿋꿋하게 앞을 고집했을 것이다.
그녀의 삶.
시로코를 비롯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이.
그러했을 것이다. 혹독하게 다그치는 자연을 어떻게든 이 악물고 받아내면서 말이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자신도 바보같이 행동하는 때가 왕왕 있었다. 이따금 사람에게는 이성보다도 감정을 더 우선시 여겨야 하는 순간이 닥쳐오곤 한다.
그것이 올바른 정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약속과 신뢰, 꿈이니 희망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들에 손끝과 발끝이 전부 질려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저질러버리곤 한다.
결과적으로야 좋았지.
결과적으로야 좋을 수 있겠지.
그러나 더 좋았을 수 있는 선택은 항상 눈앞에 있었다고, 부정할 수 없었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을 쏟았다.
모처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었다. 사색에 잠겨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속도를 높였다. 그녀와 나란히 섰다.
이쪽의 움직임을 곁눈질로 확인한 시로코가 흥미롭다는 듯이 흐응, 하는 콧소리를 냈다.
도발이라고 알려주기 위해 씨익 웃어준 뒤, 달렸다.
이만한 언덕이라면 분명 내리막길도 쉽진 않겠지.
체력을 미리 빼봤자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밋밋한 산책보다 순위를 가리는 경주가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냐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로코의 기세가 살기등등했다.
쫓기듯이 올라선 오르막길의 정상은 확, 트여 있었다.
가빠진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호흡을 가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으로 다가온 얼굴은 맑은 땀방울로 젖어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도로의 바깥을 가리켰다.
“봐, 선생님.”
모래더미 속에서도 분명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원이 보였다.
애매한 거리감이 마치 갈고리에 꿰인 거울 같았다.
한 줌의 정성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붓질.
뒤엉켜 있는 풍경은 어린아이가 캔버스에 장난을 친 것 같다고도 느껴졌다.
무질서하게 흩뿌려진 물감은 공평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가혹하다고 해야 할 지.
휘몰아치는 파도는 온통 황금빛이었고, 세계는 맥없이 잠기는 중이었다.
아직 견디고 있는 잔재들이 안타깝게만 보일 정도로,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몰락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아비도스가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버려져야 할 땅인가?
근질거리는 목울대를 참기 힘들었다.
“⋯⋯.”
도심이라고 칭하기조차 부끄러운 좁은 영토.
띄엄띄엄 이어진 건물들이 섬처럼 보이는.
그 중앙에 간신히 자리 잡고 있는 학원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 자리에서, 이 풍경을 보고 있는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었다.
무대의 장막이 발목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 뻔했다. 그 사실을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들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도대체 어떤 내일을 기대하고 있길래, 타는 목을 부여잡으면서도 떠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차라리 견디기 어렵다면.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텐데.
“⋯⋯.”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라 목소리를 삼켰다.
멀리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시로코의 모습이 도저히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팔과 다리가.
태양을 피하지 못하는 묵은 영혼이.
바람결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올 한 올의 머리카락마저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이 소녀는, 살아있기는 한 걸까?
못된 의심이 속을 긁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무게를 못 이겨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고개를 들고 있기가 무서웠다.
“⋯⋯?”
그리고, 낯선 조각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전거의 앞바퀴가 눈치 없이 밟고 있는 잎은, 초록색이었다.
몸을 움직여 짓누르는 것을 치워주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길을 잃고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무례하게 영토를 침범한 이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초록색이 아니다. 색으로 따지면 훨씬 탁하고, 또한 모순적이게도 옅은 색깔이었다.
그렇지만, 아니다. 그것은 확실한 초록색이 맞았다.
녹이 슨 가드레일과 금이 간 아스팔트의 사이사이가 황량하지 못했다.
이름을 모르는 잡초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피어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들꽃까지.
저마다 팔을 들어 하늘 높이 뻗고 있었다
쏟아지는 저주를 향해 작은 생명들이 모여서 어떤 봉기를 일으키는 중이었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니, 도로가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능사인 줄 알았다.
제 신념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죽어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길은 시선이 닿는 족족 바삐 움트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여기 오르막길만이 아닌 여태 힘껏 자전거를 달랬던 길 위가 모두.
⋯ 길이 아닌 어느 장소라도.
“선생님?”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소리를 엿듣기라도 한 걸까.
자신을 부르는 시로코의 목소리가 영 헐겁지 않았다.
호기심과 의아함이 기분 좋게 뒤섞여 있었다.
은근히 올라간 입꼬리는 눈매를 따라서 휘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깜빡일 때마다, 자신의 호흡이 그 박자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그녀의 숨이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럴만한 거리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시로코.”
“응, 선생님.”
모래로 뒤덮여 있는 세상은 일견,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것처럼 보일 터였다.
그러나 그 지하에는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영원할 것이며, 이 지상에는 아직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었다.
끝이 났는가, 아니면 끝이 나지 않았는가. 그것을 짚자면 본디.
끝이 나지 않았다고 누가 모르겠는가.
타는 듯한 갈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든 지금을 지탱해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임은 틀림없었다.
언덕 위를 침략하는 바람의 사기가 한풀 꺾여 있었다.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그것이, 도로 위에 쌓여 있는 모래를 치워버리는 중이었다.
달궈진 아스팔트에 눌어붙어 있던 보석들이 그 애잔한 반항을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비켜주었다.
옅은 초록색이 피어 있는 이곳은.
소녀가, 그리고 소녀들이.
사람이 터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었다.
열기를 담고 있던 땀이 점차 식어갔다.
두 눈동자에 자신의 학원을 가득 담아낸 시로코는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그렸다.
나 참.
오르막길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가야 할 내리막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학원까지 도착하는 여정까지 생각한다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
코끝이 찡했다.
안간힘을 써 가며, 들어 올린 까치발의 높이는, 시작점으로 삼기에 다소 부족하겠지만.
이곳은, 시로코가 자신을 이끌어 보여주고 싶어 한, 이 자리는.
아름답기는커녕, 처참하고.
자연스럽기는 무슨, 필사적이며.
편안하다니, 숨 쉴 틈도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눈을 반듯하게 뜨려고 할 때마다 햇빛이 안구를 찔러대기만 하지.
키보토스의 다른 수많은 명소에 비하면 웅장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그러나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선명한 선분이 되었다.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물음은 담겨 있지 않았다.
대신 자신감과 자랑스러움이 당장이라도 흘러넘칠 듯 넘실거렸다.
“슬슬 갈까, 선생님?”
아.
서둘러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무 세차게 저어서 머리가 띵할 정도로 말이다.
시선을 들어 시로코를 쳐다보니, 그녀의 미소가 태양을 닮아 있었다.
“그럼 조금만 더 쉬었다가 갈까?”
그녀의 목소리는 항상 덧없기만 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자극은 때때로 가볍다 못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덧붙인 웃음소리에는 언제나.
그녀를 닮은 잿빛 이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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