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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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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finale.

5878자. 5915자. (수정)

​

​

​

색종이를 접는 손가락이 무척이나 작았다.

휘황찬란한 하루다. 창밖을 보며 선생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은 새파랗다 못해 쨍쨍한 색감으로 시야를 따갑게 했다. 으레 보이던 조각구름은 웬일인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가 어디에 떠 있든 무슨 상관일까.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는 빛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폭주라고까지 느껴지는 물감의 파도 속에서 그나마 흐릿한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여기, 이 방의 한구석뿐이리라.

​

한낮이다. 일과의 한복판이건만.

처리해야 할 업무와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뒤로 하고, 그가 가만히 누워있게 된 데에는 도무지 다른 핑계를 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업자득이었다.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시작된 뒤였다. 과로로 인해 쌓인 피로가 옅은 몸살기와 함께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서둘러 상비약과 영양제를 삼켰지만 아무래도 해롱해롱한 정신을 가다듬기가 영 쉽지 않았다. 당번 학생에게 이상을 들키고 만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곁에서 색종이를 접는 손가락은 무척이나 작았다.

이마에 올린 물수건을 새로 갈거나, 이따금 선생을 향해 부채질을 해주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는 묵묵히 종이를 접고만 있었다.

종이학이라도 천 마리 모으려는 것일까? 그러나 선생은 그녀가 접고 있는 것이 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학 대신 형태와 종류를 불문하고 온갖 동물을 빚어내고 있었다. 오색의 야생이 하나둘 쌓이더니 누워 있는 선생의 몸을 들판 삼아 저들끼리 뛰어놀고 있었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그것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

“색종이 잘 접네.”

​

기다란 정적 속에서 먼저 목소리를 낸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꼬물꼬물 바삐 움직이는 손놀림과 별개로 무감정한 표정이 무섭게 느껴지는 탓이었다.

평소라면 맹한 미소라도 지을 그녀가 흔치 않게 사색에 잠겨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선생의 말에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한 박자 늦게 깜빡인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이더니 이내 겨우 시선이 맞닿았을 때는.

이미 대여섯 번의 호흡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한 뒤였다.

​

“⋯⋯.”

​

예의 말버릇도 없이 그녀는 싱긋 웃어 보이기만 했다.

선생은 이렇다 할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웃어주어야 했다.

짠한 모래 내음을 품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그녀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간지러울 법도 한 그것에조차 그녀는 느껴지지 않는 듯 무심했다.

무정했으며.

잔잔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선생이 과로로 쓰러진 일 정도는.

이런 일 정도는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해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얼굴이었다.

​

약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선생은 잠기운을 느꼈다.

흐트러진 감각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헝클어진 옷매무새와 무리를 이루고 있는 종이 동물들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아주 멀리서부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선생은 곧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수많은 학생이 들이닥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문 쪽으로 시선을 향하면, 그곳은 거짓말처럼 이곳과 동떨어져 있었다.

동떨어져 있었다. 이것보다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늪은 현실이었으나 동시에 현실이 아니었다. 창문을 뚫고 침입하려는 생명력은 기이한 환상에 불과하며, 세계의 경계는 그의 인지 바깥에 앉아 있었다. 선생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숨을 쉬고 있는 이 자리의 두사람이 지금의 전부라는 사실이었다.

​

그때, 호시노가 입을 열었다.

​

“종이접기⋯ 이상해?”

​

이상하냐니.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이상하지 않아.”

“그래? 그러면 어울려?”

​

어울리냐니.

선생은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까 고민해봤지만, 선뜻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고민을 한 것부터가 문제다. 그는 솔직한 심정을 입에 담기로 했다.

​

“어울리지는 않지.”

“⋯ 으헤.”

​

이런 답도 마음에 든 걸까.

호시노는 익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선생은 그 얼굴을 마주 보며, 있는 힘껏 웃어주었다.

​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에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열중하던 손가락이 살짝 기세가 누그러지긴 했어도,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거북이와 토끼를 나란히 세워두고 새로운 색종이를 집어 든 그녀가 물끄러미.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

선생은, 굳이 순화하지 않고 말하자면.

죽을 맛이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떨쳐낼 방도가 없었다. 소파와 쿠션은 필요 이상으로 푹신푹신했고, 포근한 공기는 달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호시노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었다. 사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릴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어떻게든 버티고야 있지만 얼마 가지 못할 저항이라고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과연 몸살기가 있긴 있는 건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감각은 확실하긴 하지만.

꿈나라와 현실을 사이에 두고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그는 자기 자신이 호시노에게 제대로 웃어주었는지마저 확신하지 못했다.

​

“선생은, 색종이로 소원을 비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어?”

​

늘어트린 목소리가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

“학을⋯ 천 마리 접어서 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오. 맞아. 잘 알고 있네?”

​

호시노가 색종이를 접는 이유는 종이학을 모으기 위해서일까?

그렇지만 종이학을 접지 않고 다른 동물들만 만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펭귄, 개구리, 거북이, 꽃게, 강아지와 고양이도 있고.

이것들 중에는 그녀답다고 해야 할 지, 고래가 유별나게 많이 있지만.

학은 한 마리도 없었다.

종이학을 모을 때 사용하는 유리병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 그야, 접을 이유가 없으니까.”

“⋯⋯?”

​

선생의 의문을 알아챈 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종이학을 접는다고 진짜로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않잖아.”

​

그래도 옛날에는 열중해서 접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호시노가 멋쩍다는 듯이 웃으며 덧붙였다.

새롭게 코끼리를 완성한 그녀의 손은 다음 색종이를 집어 들고 있었다.

짙은 면을 매만지는 손가락은 주저하는 것 같았다.

그건 미련이자 아쉬움일 수도 있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이제는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 버릇일 지도 모른다.

​

기대이자 타협이었다.

실망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호시노는 이상을 꿈꾸기보다도 현실적인 해답을 찾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녀를 지켜본 선생은 그리 여겼다.

​

그녀는 멈춰 있지 않다.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을 구하러 와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다고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끊임없이 행동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기어이 해내려고 한다.

밤마다 아비도스 자치구를 순찰하는 것도, 대책위원회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나서던 것도, 자기 총의 무게도 버거워하면서 선배가 남긴 방패를 들고 다니는 것도.

그로 인해 헤매고 실수투성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움직인다.

책임이다.

그리고 짐이다. 동시에.

그것은 호시노라는 사람의 뿌리이기도 하다.

현실주의자인 그녀는 문제를 당면했을 때 낙관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차라리 직접 마주하려고 하겠지. 앞을 향해 총구를 겨누면서 말이다.

서서히 죽어가는 땅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가 벼려야 했던 선택이었다.

​

“종이학을 접어서 모은다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

호시노가 말을 이어갔다.

​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천 마리도, 만 마리도, 그보다도 더 많이 접었겠지.”

​

선율이 되어 맴도는 목소리에는 체념도, 후회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쉬움조차도 없는 그런 마침표가 맺혀졌다.

종착지에 찍힌 온점은 지독하게도 선명한 낙인이 되어 있었다.

타일을 뚫은 펜촉의 집념이 마치 악의처럼 느껴졌다. 선생은.

선생은,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끝내 내뱉지 못하고 다시 닫고 말았다.

​

희망은 이따금, 독이 된다.

잘 써야 약이 되는 건 이놈이나 저놈이나 매한가지다.

그가 호시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닐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진작부터 깨달았을, 그런 흔한 종류의 조언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또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마냥 품속에 안은 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세상은 생각보다 아주 냉정하며.

치사하다.

​

“⋯⋯.”

​

그래도.

선생은 팔을 들었다.

몇 마리인가, 얹혀 있던 동물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저편에 있는 손을 붙잡았다.

다음으로 접을 동물을 고르지 못해 반듯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색종이.

그것을 쥔 작은 손이 살짝 떠는 것이 느껴졌다.

​

말이란,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아.

부딪히지도 않았으면서 이 너머를 단정 지을 수 없다.

때때로, 당연한 말은 당연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니.

대부분, 당연한 힘이 되어준다.

호시노는.

​

“종이학을 접고 싶은 거 아니야?”

​

마른 목소리가 다가가, 되려 물었다.

이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선생은 그렇게도 느꼈다.

​

“⋯ 접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걸.”

“소원 때문에?”

“응. 소원 때문에.”

​

흐릿한 정신은 눈치 없게도 그를 꿈속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둥실 떠오른 몸에는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공중을 부유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이 물씬 느껴졌다.

대부분이 감긴 눈은 호시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윙윙거리는 소음이 소용돌이치며 온 세상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는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할까 봐 그래?”

​

한껏 작아진 물음이 여린 깃털이 되어.

그녀를 향해 훅 불자 날아올랐다.

​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야.”

​

호시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에게는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피식, 웃더니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서.

토닥토닥.

토닥토닥, 하고.

어루만져 주었다.

​

“그러면 접어도 되는 거잖아.”

​

다독이는 손짓이 그녀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만큼 사소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손짓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

꿈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될 리가 없다.

소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림거리가 될 수는 없다.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 장의 색종이를 접어서.

천 마리의 학이 날개를 퍼덕인다고 한들, 그것은 남들에게 질시 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했다며,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현실을 직시하려는 소녀가 사실은 속으로 누구보다도 헛된 희망을 바란다고 할 때, 그건 비웃을 일이 아닐 것이다.

이해해주고, 나란히 바라야 할 일일 것이다.

이 세상에 꿈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꿈을 위해서, 꿈과는 하등 관련도 없을 종이접기나 한다고 해도 그걸 손가락질할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소녀의 이상을 이루어주기 위해 손을 거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몰라도.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접어도 되는 거잖아.”

“⋯ 하지만 종이학을 접는다고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않아.”

“그래도 바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유니까. 바라는 것으로부터, 희망을 찾으니까.”

​

바라지 않는 것도 자유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꿈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제법 크다.

빛이 바랜 옛날의 이야기라도 좋은 추억만 고르고 고르면 바구니가 가득 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기록해두는 게 좋겠지. 무한한 크기의 도화지 위에 먹물로 몸을 적셔 적어 넣은 글씨는 멀리서도.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일 것이다.

​

완전히 눈을 감은 선생은 자신의 호흡이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토닥이는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손목의 맥박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잠깐이다. 아주 잠깐만 쉬자고.

그렇게 스스로 다짐한 그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늘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호시노는 선생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규칙적으로 들뜬, 평화로운 악보가 요란하던 방 안을 비워내고 있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영원할 것 같았다. 그녀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색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다시 한번 더 반으로 접었다.

눈을 감고도 만들 자신이 있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간절함이 씨앗을 뚫고 새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 봤으니까.

​

휘황찬란한 하루다.

호시노는 오늘을 그리 여길 것 같았다.

마지막 종이학을 접는 손가락은 무척이나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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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4.08.06창작

소설) 피날레.

#소설
좋아요 0댓글 29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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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DC
사과가사과작가
게시물 4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4.08.06 22:58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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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9

나
ㅇDC
ㅇㅇ124.08.06
디시콘
ㅇDC
ㅇㅇ224.08.06

얘 뭔데 글빨 미쳤노

ㅇDC
ㅇㅇ24.08.06

미식입니다!

ㅇDC
ㅇㅇ324.08.06

잘쓴다

ㅇDC
ㅇㅇ24.08.06

캬 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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