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진짜 샬레의 선생님께서 오실줄은 몰랐습니다. 검사지에 이름이 쓰여있을 때만 해도 정말인가 싶었거든요."
몇 가지 검사와 설문지를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럭비공 모양의 안드로이드 의사가 나를 반겨준다.
"뭐... 저도 일단은 사람인지라..."
한숨을 곁들여 대답을 대신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진료실을 둘러본다. 온 벽은 흰색, 바닥은 회색 카펫 재질이다. 열고 들어온 문은 그 무거움으로 생각컨대 방음 기능이 있는 문이었다. 조명은 없는 대신 창이 넓어 채광을 대신한다. 뒤에는 공기청정기가...
"아 혹시 춥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일단은 그래도 환절기라"
의사의 말이 시선을 멈춰세웠다.
"네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이런곳까지 오시는 분들은 대개 예민하신 분들이시다보니 한번씩 물어는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럼 이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그 뒤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 그리고 느껴온 감정을 모두 토해냈다. 어른의 카드라든가, 학생들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진 않으려 노력했지만 반대급부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느낌이었달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랬던 겁니다. 사실 제가 여기 오기 전의 삶이 이런 것과 인연이 없다보니 생기는 이질감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학생들을 모두 탈출시켰을 때까지만 해도 잘 버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되니 살고 싶더군요..."
"...모든 것이 불타는 느낌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총상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죠? 총에 맞으면 그렇게 작열감이 느껴지는줄은 몰랐는데, 상처에 새살이 돋기 전에 그 기분이 온 몸에 감싸지는 느낌이라고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잘...모르겠어요 이제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스스로를 갈라놓더라고요. 샬레의 선생님, 그리고 인간 XXX로요..."
"...글쎄요 인간 XXX는 꽤나 행복한 인생을 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고... 제가 이뤄낸 것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존경까지도 샬레의 선생의 것이잖아요?"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었죠.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는 견장은 샬레의 선생이라는 견장인데, 그 견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한참을 이어진 시간. 그리고 이 비극의 서사를 완성시켜줄 한 마디는 의외로 간단했다.
"이렇게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도, 내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갉아먹은 것도, 그리고 내 스스로가 더 이상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도. 모두가 지쳤습니다."
의사의 얼굴에는 큰, 그러나 가운데가 동공처럼 빈 눈이 출력되고 있었다. 그 표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경외감인지 충격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경멸일지. 부디 그 표정이 출력하는 감정이 경멸만은 아니길 잠시 빌어본다.
"일단...검사지 상에서 도출되는 점수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울장애랑 강박장애 관련 검사지였는데, 각각 20점 이상이면 해당 증상이 있다고 판정을 해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나온 말은 의외는 아니었지만 동시에 의외였다. 그저 스트레스가 원인이겠거니 싶었던 생각이 의외가 아니었다면, 이어지는 의사의 말은 의외가 아니었달까.
"선생님께서는 강박 분야에서 31점, 우울 분야에서 43점입니다."
잠시 표정을 살피는 듯하더니 의사는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그러게, 내 표정이 어떤지 내가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솔직히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다음으로 하신 건 빈칸채우기라고도 하는 문답형인데요... 일단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스트레스로 발현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고 보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강박도 상당한 수준이고요.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________________이다.'
'지금의 나는? 없어도 될 존재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__________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잃어버렸다.'
'10년뒤 나는 _________________'
'10년뒤 나는 살아있긴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제가 아니라 어느 병원을 가도 똑같은 증상을 진단할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중증의 우울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로 보여집니다. 추가로 심전도 검사에서는 약하지만 심리적 불안상태에서 빈맥 소견도 있고요."
빈맥. 심장이정상범위를 벗어나 빠르게 뛰는 현상. 예전에 엔지니어부가 외장형 페이스메이커를 실험해달라고 할 때 잠깐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엔지니어부는 그 해결법으로 전극을 자동으로 몸에 꽂아 충격을 주는 방법을 제시했었다만...
'한편으로 그 때 실험에 참여했다면 이렇게까지 고통받진 않아도 되었을텐데'
"저...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젠장. 또 이런 식이다. 무슨 생각을 하든 이런 쪽으로 연관짓다니.
"죄송합니다. 그게,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것인가 싶어서..."
"....선생님께서는 조금 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지금 상태는 비교할 필요도 없이 절대적으로 좋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정도면...조심스럽지만 입원을 하시는 것이 어떨지도 고민해보셔야ㅡ"
"그건 절대 안됩니다."
말해놓고도 스스로에게 적잖이 놀라버렸다. 그런가, 여전히 샬레의 선생이라는 자각을 버리지는 못한건가.
"어...그렇죠. 선생님이시니까요. 저도 어떤 입장이신지는 잘 압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종잡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요?"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스트레스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상태입니다. 두번째는 과격성이나 평정심에서 문제가 생길거에요."
순간 세나를 떠올린다.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커진다. 미안 세나. 괜찮아진다면 언젠가 꼭 벌충할게.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자살 기전입니다."
자살. 그 두 글자에 담긴 소름 끼칠만큼의 정적. 잠시 숨을 고른 뒤 의사는 말을 이어간다.
"선생님께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건 온 키보토스 주민들이 다 압니다. 요즘 어린 아이들 말로는 '모르면 색채'라고까지 하더군요. 그렇기에 더더욱 입원을 권장드리는겁니다. 선생님께서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죠. 그래서 더 그럴 수 없는 겁니다."
"네...? 그건 무슨..."
"지금 키보토스에서 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는 자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하루 휴가를 내는 것도 신문에 나올 정도죠. 어쩌면 오늘 제 내원도 블랙마켓이건 크로노스건 암암리에 소문이 돌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 일거수일투족은 좋게 말해 홍보, 나쁘게 말하면 감시받는 셈이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장기간 자리를 비운다면 입원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럼 그 뒤로는 병원에 갇혀있는 절 뒤로 하고, 학생들은 슬퍼할겁니다. 누군가는 자책할 것이고, 또 어떤 아이들은 누가 절 입원하게 만들었는지 서로를 지목하고, 또 불신하겠죠. 그럼 결국 다시금 전쟁터가 되는 겁니다. 파멸로 귀결되는 것만은, 그것만은 바라진 않아요."
의사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하다. 무슨 생각일까. 당장 여기서 구속복을 입혀 병동으로 데려갈까? 아니다. 내 일상은 이미 공공재인데, 그럴리는 없지. 그렇다고 내 말이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습니다. 그럼 대신 하나만 약속해주십쇼. 처방해드리는 약은 무조건 빠짐없이 드셔야 합니다. 이건 의사가 아니라 키보토스인으로서, 초인에게 드리는 부탁입니다."
"제가 초인은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고심끝에 타협안을 제시한 의사를 뒤로하고, 잠시 뒤 조제자판기에서 처방전과 함께 세 타래의 약이 약봉지에 포장되어 나온다.
사무실로 돌아가 가장먼저 처방전을 읽어본다. 질병코드가 눈에 띈다.
'F32.2, F42.1, F.43.1, R00.0, R00.2'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 읊조리며 병원을 나선다. 사무실에 들어와 PC를 켜고 해당 내용을 스캔한다. 난생 처음 가본 정신과다보니, 적어도 무슨 약을 먹는지 정도는 알아둬야하니까. 다만, 스캔정보를 업로드하는 과정을 지켜본 두 AI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내 병세를 직접 확인하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아로나를 프라나가 위로하고는 있었다. 다행이었다. 언뜻 보기에 프라나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동요하고 있다는 점만 뺀다면.
'참 너희들에게도 못할 짓을 하는구나 내가...'
이어서 약 타래를 꺼내본다. '아침', '자기 전', '필요 시'가 적혀있는 약봉지가 연결된 타래 3개. 순서대로 알약 1개, 알약 2개, 알약 1개. 마지막으로 의사와 나눈 대담을 떠올린다.
"약은 점점 정도를 올릴 예정입니다. 선생님의 병세를 생각하면 최고용량으로 투여해도 모자르지만 처음부터 고용량으로 투여하면 부작용 위험이 너무 커서요. 원래는 2주 정도 텀을 두고 뵙지만 당분간은 매주 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절대 약을 거르시면 안됩니다. 말씀드린대로, 선생님을 위해서. 말씀하신대로, 학생들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 타래의 약을 잘 보관할 차례. 거주구 공간의 3층 강철제 함이 보인다. 본래는 총기나 보안이 요구되는 물건을 넣어두라고 린이 선물한, 자물쇠로 잠겨있는 캐비닛이다.
'뭐, 지금은 이게 제일 극비사항일테니까'
첫번째 칸을 연다. 아코가 호신용으로 선물해준 권총이 눈에 띈다.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내가 습격당해 죽으면 키보토스 전체에 혼돈이 몰려올거고 게헨나는 특히 더 심할텐데 그중에서도 온갖 나쁜 소문이 도는 자신은 분명 XXXX당하고 XX당한 다음 온갖 XX한 짓을 당한 뒤 종국에는 XX으로 XXXX 당하는 XXX의 결말로 귀결되는 치욕을 맛볼거라는... 뭐 아코다운 발상에서 나온 선물이다. 물론 그렇게 말이 남들이 듣기에는 창의적으로 혹은 현학적으로 길어지는 데에는 본인의 마음을 숨기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역시 지금은 잠시 다른 곳에 두는 게 나을 것이다. 미안 아코.
권총을 제일 아래칸에, 그리고 약을 위 칸에 두기로 한다. 손 닿기 편한 곳에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살충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만큼 2중 잠금이 가능한 마지막 칸에 권총을 두는게 낫다는, 나름 합리적인 계산이었다. 캐비닛 세팅을 도와준 유우카도 이건 완벽한 설계라며 인정해주리라. 아니 그 전에 절대 들키면 안된다. 공식적으로는 무조건, 단순변심인거고, 맨 윗칸에도 조만간 자물쇠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코가 '뭔가요! 이제는 제 몸을 땅바닥에 기게 한 걸로도 모자라 제 마음까지 땅바닥(=아래 칸)에 쳐박겠다는건가요? 이번엔 제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으로 내기인가요? 저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거니까 더 동요시켜보시죠!'라고 한동안 들들볶을 걸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러다 필요시 약을 바로 뜯겠는걸'
마음에 여러 의미로 좋지 않은 생각들을 밀어내려 노력하며,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이미 아로나는 눈물자국이 선명하고 프라나도 눈이 충혈되어있다.
불안 섞인 눈으로 쳐다보는 둘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걱정 마 아로나, 프라나. 약 먹으면 나아질 수 있을거랬어. 그리고, 절대 나는 어느 곳도 가지 않아."
"선생님?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서명 완료. 계약 위반은 중대사항입니다."
조금이나마 밝아진 아로나와 애써 자신의 다행스러운 마음을 숨기는 프라나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읊조린다.
'걱정마렴. 아직 나는 편히 죽기에 너무 이른 것 같으니까.'
20XX년 X월 X일
선생 치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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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스토리를 짜내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어쨌든 이제 선생이 스스로의 상태를 알았으니 치료에 임하긴 할겁니다. 키보토스에서는 특히나 약하디약한 선생이지만 누구보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는 건 병적일정도로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우울증 환자들은 대개 본인의 힘듦을(특히 힘들수록)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아합니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그런 셈이죠. 그러나 한편으로 더 잔혹한건, 본인의 의지든 아니든 그러한 현상이 누군가에게 관측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는 것이고, 대개 그 경우 당사자건 목격자건 상당한 수준의 타격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게 스트레스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안절부절함이든, 언젠가 떠나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든요. 이제부터 선생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병을 숨기고, 또 그것이 어떻게 들켜가는지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매우 힘겨운 상황일지도, 의외로 가볍게 풀릴지도 모르는 그 전개에 관해선 생각해보겠습니다.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긴 한데, 혹시나 특별히 보고 싶으신 학생이 있다면 댓글로 적어주시면 최대한 반영을 해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한섭만을 하다보니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은 스토리에 한해서는 캐릭터 해석이 늦어지거나 어긋날 수 있어서 부득이하게 5장 캐릭터들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개추 하나 얹어주고 가시면 개추만큼 재미있게 써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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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탭 ㄱㄱ
헉

예전에 내가 썼던 소설이랑 비슷한데 필력이 존나 좋네…개추
창작탭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