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찻잎에 사랑을]
안녕하세요. 키리후지 나기사입니다.
트리니티 종합학원 소속, 티파티의 호스트이자 필리우스 분파의 수장, 그리고 그 외의 다른 거창한 수식어를 조금은 내려놓아도 좋을.
네. 키리후지, 나기사, 입니다.
요즘 들어 맑은 날만이 계속되는 것만 같네요.
푸르디 푸른 하늘 위에 걸린 따뜻한 햇빛과, 손에 쥔 목화솜처럼 뭉실뭉실한 구름이 오갑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마치 선율이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마치 전 날 잠을 이루지 못한 제게 조그마한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기도 합니다.
아, 잠에 대한 말씀이시군요.
티파티의 호스트란 본래 다망한 자리, 가뜩이나 일련의 사건으로 트리니티 내외의 현안이 몰려드는 요즘 같은 때에는 잠에 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면...
직무에 복귀한 세이아 씨 덕에 근 며칠 동안은 충분한 수면 시간이 제게 부여되었다는 점, 이겠네요.
걱정할 일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에 쉬이 들지 못하는 것에는 혹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다만 스스로 갖는 두려움이라 할 수 있겠지요.
네, 저 키리후지 나기사는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답니다.
모쪼록 그 원인이 무엇일지, 하루 빨리 알아내는 것이 좋겠어요.
때마침 오늘 오후에는 미카 씨 역시 복권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티파티 전원이 함께하는 티타임 자리를 마련했으니,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티파티의 셋이 모두 모여 티타임을 가진다, 라.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점.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유와 단란함보다는 암투와 차가움이 지배하던 이 곳 테라스였으니 말이죠.
헌데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미래가, 불과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고 있군요.
그 미래는 아마... 따뜻할 겁니다.
그토록 부담스러웠던 미래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라....
역시 시간은 언제나 필연성보다 우연성을 등에 업고 흘러가나 봅니다.
곧 미카 씨와 세이아 씨가 오시겠네요. 때마침 물도 적당히 끓고 있고요.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
정오가 두어 시간 정도 지난 오후의 해가 나기사의 자리에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준다.
테라스의 구조가 약간 서쪽으로 비껴선 남향이기 때문에 오는 특징이자, 나기사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이벤트라 할 수 있겠다.
가장 더울 오후 2시에서 3시 정도의 시간대에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온도가 점차 떨어질 4시 이후에는 테라스 전체에 져무는 태양이 내뿜는 황혼의 빛이 비치게끔 해주는 이벤트.
덕분에 곧 다가올 여름에도 그녀는 무더위에 지치지 않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추운 겨울이 오면 점차 기온이 떨어지는 오후 늦은 시간까지도 따스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본래 티타임이라 함은, 오전 11시 쯤의 일레븐지스, 오후 4시 쯤부터 6시쯤까지의 애프터눈 티, 그리고 오후 5시에서 8시쯤 까지의 하이 티로 나뉘는 것.
자연히 오늘의 티타임은 애프터눈 티.
호스트가 주관하는 티타임이자, 아주 오래간만에 있는 티파티 전원의 티타임이므로 오늘의 나기사는 조금 더 신경을 쓰기로 다짐한 참이었다.
주변을 둘러본다.
"(티어 트레이*.... 는 이상이 없네요.)"
* 티타임에서, 주로 차나 다과를 올리는 3층짜리 접시 스탠드
애프터눈 티에 다과가 빠지면 섭한 법.
오늘의 다과는 딸기가 인상적인 홀케이크와 캐니디언 햄을 넣은 오이 샌드위치, 그리고 마카롱이다.
"(오이 샌드위치에 햄을 넣는다....라.)"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라 가히 할 만하다. 본래 오이 샌드위치가 주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미카 씨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한 산물이지만... 역시 낯설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고개를 돌려 마카롱을 확인한다. 설탕을 토치로 짧게 달궈 바삭거리는 식감의 코팅을 만들어보았다. 이는 세이아의 추천.
"(확실히.... 달콤한 향기가 썩 나쁘지만은 않네요.)"
마지막으로 홀케이크까지 확인하며 대략적인 디저트의 점검을 끝낸다.
"나기 쨩~! 우리 왔어!!"
"이러다가 복권이 취소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미카."
"세이아 쨩? 아직 맴매가 부족한가봐?"
"이것 보세요 나기사. 복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아하하... 일단 들어가자 얘들아."
"(음....?)"
순간 나기사의 두뇌 RPM이 3,000을 넘긴다.
"(분명 오늘 티타임은 저희 셋의.... 근데 다른 목소리가.... 심지어.....)"
틀림없었다. 그녀의 귀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라면 이 목소리는.....
"선생님 저것 보라니까? 세이아 쨩이 늘 먼저 시작한다고!"
"'마녀'의 간계에 속아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선생님. 언제나 시작은 미카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는데 말이죠."
"(선생님.....?)"
선생이었다.
이전에도 예상치 못한 방문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의 '급습'은 가히 비상사태라 할 만 했다.
"(잠시만요, 오늘의 차는 분명......)"
눈 앞에 놓인 티백을 바라본다.
본래 나기사라면 잘 들여놓지 않는 티백이겠으나, 오늘 티타임의 목적은 미카의 복권을 '미리' 축하하는 날.
그간 서로의 고생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편안한 분위기에는 거창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나름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선생이라니, 그녀에게는 VIP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티백이라니, 언어도단이었다.
하지만 이를 어찌 하리,
티타임을 즐기러 온 게스트를 두고 호스트가 자리를, 그것도 티백을 찻잎으로 바꿔오기 위해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격이 빠지는일인지 역시 나기사는 잘 알고 있다.
고개를 돌리자 이미 미카의 가슴에 달린 티파티 뱃지가 보일 정도로 셋이 다가온 것을 확인했다.
"(아하하.......)"
속된 말로 '망한 것'이다.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격조있게 인사를 건넨다.
"평안하셨는지요 여러분, 그리고 선생님."
"으에 뭐야? 오늘 그냥 격식 안 차리기로 한 거 아니었어?"
"역시 미카의 인내심입니다. 경이로울 정도에요."
"잘 지냈어? 정의실현부에 일이 있어 왔는데 나오면서 둘을 만나서 말이야. 이야기는 다 들었지만.... 혹시라도 내가 불편하면 자리를 비워도 돼. 편하게 이야기해줘."
"아닙니다. 여분의 찻잔은 항상 준비하고 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이니. 편하게 앉으시지요."
"(잠깐만요. 대체 후환은 어쩌려고 이런 말을 한 거죠. 키리후지 나기사....?)"
선생의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나온 그녀의 대답.
옆의 두 사람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점이 유일하게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제서야 티백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안다. 선생이라는 사람은 본래 그런 격식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페트병 홍차를 천연덕스럽게 건네던 그에게 어쩌면 티백은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기사는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귀한 손님에게 귀한 것을 대접해야 한다는 강박 그 이상으로 그녀의 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 제 실수였어요. 이런 일을 대비한 우발 계획을 수립했어야 하는 것인.... 아니죠. 이건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침착해요 키리후지 나기사.)"
앓는 속을 뒤로 하고 생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암시를 거는 그녀.
그러나 그 암시가 불과 3초를 못 갈 것을 그녀는 알았을까.
"오? 나기 쨩 오늘은 티백이네?"
"(에.)"
"나기사의 기호와는 농으로라도 가깝다고 하지 못하겠으나, 본래 빌더스 티라는 것이 다 그렇죠. 격식을 차리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그, 그렇습니다. 본래 오늘 티타임의 목적은 여지껏 쉼없이 달려온 저희들을 위한 소탈한 위로. 그렇기에 평소와 달리 약간의 변주를 줘보았답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냈을까, 세이아가 그녀 몫의 설명을 대신한다. 함께 묻어가려는 나기사의 반응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음, 나는 이런 쪽도 좋은데, 마음에 들어.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ㄴ, 네? 아.... 네. 과찬이십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뭔가요 이 얼빠진 듯한 대답은!)"
선생의 감사와 별개로 핑핑 돌아가는 그녀의 두뇌 회전은 이미 3,510가지 최악의 수를 상정하고 있었다.
~~~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티타임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언제나 선생에게 적극적인 미카가 날뒤면 세이아가 제지하는, 그런 느낌. 선생은 그저 허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건 그렇고 나기 쨩, 요즘 들어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은데, 맞아?"
"미카 씨...? 그걸 어떻게...."
"으흥☆ 잊었어? 우리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나기 쨩의 요즘 바이오리듬이랄까,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
"이제는 부두술까지 익힌 건가요 미카."
"역시 세이아 쨩이야 마치 3년 동안 벙어리로 살아서 한풀이를 하는 것 같잖아? 하핫☆"
합리적인 추론인지 정말 그녀의 말대로 느낌적인 느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긍정을 해버렸고, 이제 '나기사의 불면'이 아젠다로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나기사...? 요즘 잠을 잘 못 자고 있다니.... 혹시 일 때문이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선생.
"아.... 적어도 업무에 관한 건은 확실히 이전보다는 개선되었습니다. 세이아 씨가 직무에 복귀한 것도 있고, 미카 씨의 복권이 공표되면 미카 씨에게도 업무를 일부 위임할 생각이니까요."
"엑, 그럴려고 복권시킨거야? 아니지? 정말 아닌거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시 단칸방에서 롤케이크만 먹으면서 버티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카."
"하핫☆ 끝나고 봐 세이아 쨩?"
"그나저나 잠을 잘 자지 못한다니 나로써도 신경이 쓰이네. 혹시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글쎄요..... 고민이라...."
선생의 물음으로 시작된 자기 성찰의 시간.
"(글쎄요.... 미카 씨도 미카 씨지만 세이아 씨도 이전보단 훨씬 괜찮아 보이니 그 부분은 확실히 아닐 것이고....)"
"(아리우스? 아니죠. 스쿼드가 건재하고 아츠코 씨가 학생회장으로 연착륙하였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에요. 실제로 지난 주에는 아리우스 관련된 안건이 2건밖에 올라오지 않았으니.)"
"(게헨나와의 문제는 어차피 마코토가 의장을 잡고 있는 한 큰 문제는 없을 터. 아리우스 건으로 선도부장과는 이야기를 좀 해야 하지만 급한 일은 아니네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그녀가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그녀 스스로도 밝힐 수가 없다.
"걱정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 스스로도 무엇을 까닭으로 잠에 들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네요...."
"흐음..... 요즘에는 나 그래도 사고 안 치고 조심히 다니지 않았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래서 아예 밖에 안 나간 적도 많거든. 물론 여기저기 쏘다니는 세이아 쨩은 예외지만☆ 하핫! 막이래~"
"공무를 분담하고 난 뒤에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여전히 잠에 쉬이 들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나기사. 뭔가, 본인도 모르게 무언가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ㅁ, 뭐야, 무시당했어 나?"
"으음...."
미카의 하소연을 (의도치 않게) 외면하고 있는 선생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확실히, 세이아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네. 무의식적으로 신경쓰는 것이 있을 수 있어. 문제는 그게 정말로 '무의식' 속의 일이니만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신경... 쓰는 것. 이려나요...."
~~~
네, 다시 나기사입니다.
세이아 씨도 선생님도 말씀하신 핵심어 무의식.
그렇다면 결국 그 실마리를 찾는 건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하겠죠.
글쎄요.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볼까요.
지난 주 월요일부터 시작하죠.
......... 평소대로 현안을 검토하고, 서명을 이어가다가, 이 부분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아 선생님께 모모톡으로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늘 있을 수 있는 일이죠.
화요일은.... 미카 씨가 선생님이 시스터후드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네요.
혹시나 방문해주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죠. 확실히 마지막에 뵈었을 때 서로의 모습을 생각하면....
다시 생각해도 그 때의 전 꽤 과감했었던 것 같네요. 선생님께 '아앙'이라니. 후훗.
각설하고. 수요일에는 간만에 외부로 출장을 나갔습니다. 현장지도라곤 하지만 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네요. 물론 호위로 따라붙은 이치카 씨가 고생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
요즘에는 저런 스타일의 학생이 인기가 많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아, 생각해보니 돌아가는 길에 요즘 유행한다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었죠. 선물용으로 인기라길래, 나중에 평소 신세를 지고 있는 분들께 보낼까 싶어 지출이 조금 있었네요.
....... 오늘 선생님도 오셨으니만큼 이따 드릴까 싶네요.
목요일은..... 정말로 별 일이 없었습니다. 컨디션이 영 좋지 않기도 했고, 세이아 씨가 고생해주신 덕에 업무량도 평소의 3분의 1 정도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조기퇴근에 성공하여 간만에 여유있는 저녁을 보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오늘은 모모톡이 칼답이라며 놀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금요일.... 금요일엔 무슨 일이 있었죠.... 아, 구호기사단의 미네 씨가 찾아오셨네요. 지난 번 아리우스에서 고생을 많이 하신 모습입니다.
이럴 때는 필리우스니 요한이니 무엇이 중요할까요. 점심 식사 전에 다과를 대접해드리니 오랜만에 미네 씨의 미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죠. 결국 우리는 모두 트리니티라는 깃발 아래의 사람들이죠. 지금은 다른 그룹으로도 묶이겠지만요. 이를테면 선생님의 제자들. 이라든지.....
주말은 정말 별 일이 없었어요.
토요일은 밀린 잠을 보충하려고 애를 썼고, 일요일에는 점심 식사로 나온 파스타가 예전에 선생님과 먹었던 것이 기억나 모모톡을....
...... 잠시만요.
뭔가 이상해요.
분명 제 기억에 어떠한 오차는 없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아예 언급조차 않았으니까요.
근데 이 이질감은 무엇일까요. 마치..... 마치 제 삶에 뭔가 다른 것의 비중이 꽤 크지 않았나요?
기분 탓일까요.....
음....... 여기서 말을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에요. 어쨌든 공무가 포함된 일은 사적으로는 안 하는 것이 옳겠죠. 선생님께서 언젠가 저를 걱정하며 쉴 때만은 푹 쉬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는 만큼, 공사의 구별은 확실히 해야겠습니다.
~~~
"........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네요."
"으음......."
"나기 쨩 진짜 괜찮은거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면이라면 구호기사단에 한 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밀레니엄에서 만든 제 친구들에게 이걸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요."
"확실히 걱정이 되는걸. 아무래도 부족한 수면은 건강에도 악영향이니까."
선생의 걱정섞인 위로에 나기사가 반색한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선생님...."
"아니야, 나기사의 잘못이 아닌걸. 개인적으로는 고맙다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 그런가요. 후훗. 네, 그럼.... 진심을 담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방금 그거 완전 자아성찰 같았어☆"
"아하하.. 좀 봐줘...."
어딘가 모를 뿌듯함에 내심 마음이 편했던 나기사. 감사를 전한 뒤에도 한동안 생글생글한 미소는 그녀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네.... 확실히 전했네요. 감사.....)"
"그건 그렇고 있지 선생님. 그러니까...."
그 이후에도 다과회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가끔은 웃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던 나기사가 문득 시선이 멈춘 것은 선생의 자리.
어느덧 저무는 해가 불그스름한 빛을 테라스에 고르게 비추고 있었다.
저녁놀의 태양만이 보여주는 붉디 붉은 빛.
그 빛이 문득 선생을 밝게 비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나기사.
"(어딘가......)"
편안했다.
마치 이전까지 있었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질 정도로.
가벼웠다.
어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마음의 보관함에서 빼놓을 정도로.
두둥실했다.
이 시간이 떠나가는 것을 아쉬워할 정도로.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헉....)"
한 가지 나기사에게 다행인 것이 있다면, 햇빛이 테라스를 고르게 비춰준 덕에 그녀의 홍조가 자연스레 가려졌다는 것.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몰랐던 나기사를 향해. 선생은 그저 웃어보였다.
다음 순간 눈이 마주치고, 선생은 그저 싱긋, 하고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 그런가요.)"
그런 그를 향해, 나기사 역시 싱긋, 하고 웃어보인다.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발생하는 백색 소음 사이로, 두 사람의 눈길은 그렇게 한동안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선생님 선생님. 그냥 자고 가면 안 돼?"
아쉬움이 역력한 듯한 미카와, 난처함이 섞인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는 선생.
"그러고 보니 나기사가 안 보이네요. 어디로 갔는지...."
"나기 쨩? 아까 가져올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 뭐 잊은 물건이라도 있는걸까?"
"아, 저기 오는군요. 역시 양반은 못 된달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니 오늘 저희에게 와주신 특별한 손님께 무어라도 챙겨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들고 왔습니다."
선생의 뒷편에서 걸어오던 나기사가 선생에게 잘 포장된 박스를 하나 건넨다.
"나기사...? 이건...."
"필시 선생님께서는 오늘도 야근으로 고단하시겠죠."
"으음..... 하하...."
"저 역시도 그 감정을 이해하기에, 일찍 주무시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는 못하겠습니다. 허나 어차피 보내야 할 밤이라면, 조금의 일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가져왔습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입니다."
"아! 이제 알았다! 저거 엄청 유명하잖아! 코하루 쨩이 안 그래도 정의실현부 선배들이랑 나눠먹겠다고 바둥바둥대면서 두 박스 사가는 걸 본 적 있는데!"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나기사의 준비성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마워 나기사. 정말 잘 먹을게. 항상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럼 부디, 가시는 길 무탈하시고 평안한 밤이 되시길."
그렇게 셋은 선생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배웅했다.
"하아! 오늘 진짜 알차고 재밌었어. 그치 나기 쨩?"
"확실히... 그런 면이 있네요. 그건 그렇고 미카 씨?"
"응? 나?"
"업무에 복귀할 준비를 이제 슬슬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엑."
"미카 씨가 힘내주신다면 제 불면도 어느 정도는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후훗."
"우으.... 나기 쨩 너무해.....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둘 다!"
"내일 또 봐야 한다고요...?"
"세-이-아-쨩-?"
"오우."
그렇게 미카도 돌아가고, 이제 남은 것은 두 사람.
한동안 말 없이 저녁의 황혼을 감상하던 둘의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세이아.
"나기사."
"아, 네. 세이아 씨?"
"나기사가 깊이 고민하는 것 같아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 감으로만 말씀을 드리자면, 뭔가 나기사의 마음 속에 큰 무언가가 들어찼다,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네?"
언제나 그렇듯, 이해할 수 없는 세이아의 말투였지만, 오늘의 나기사에게는 그것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분명 그녀의 일상은 아무 문제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업무를 처리하였고,
그저 평범하게 주변과 상호작용했으며,
그저 평범히 주어진 일상을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큰 무언가'라니. 알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미카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나기사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르는 일이겠죠. 후후...."
"이러실 때만큼은 제가 미카 씨의 편을 들어드리고 싶을 정도인 거, 아시죠?"
"농이 지나쳤군요. 일단 자리를 옮길까요?"
~~~
그렇게 세이아의 방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이미 판이 깔린 마당에 다시 여는 말을 구태여 할 이유는 없을 듯하고, 아까 무엇을 그리고 골똘히 생각하고 계셨나요 나기사?"
"아까라 함은...."
"당연히 아까 무의식 속에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 지긋하게 생각을 하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죠."
"........ 지난 주의 일들을 떠올려봤어요."
"그래서, 소득은 없었던 모양이군요. 그럼 그 전 주는 어떤가요?"
"글쎄요. 이 때부터는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또 다시 턱에 손을 갖다대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나기사.
그러나 한참이 지났음에도 답은 같았다.
"그냥....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네요. 이상하리만큼."
"흐음......."
그런 그녀를 보며 세이아 역시 고민에 빠지는 듯하다, 이내 다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다.
"나기사."
"네?"
"괜찮다면 지난 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저로 하여금 알고 싶지 않게끔 하는 일이 있다면 제하여도 좋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특별할 건 없는데요.... 지난 주 월요일부터 말씀을 드릴까요?"
세이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기사가 지난 주에 있었던 일들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야기한다.
어느새 탄력을 받아 2주 전의 이야기까지 모두 끝마친 나기사.
"...... 네. 여기까지에요. 지난 2주는 지극히 평범했고, 지극히 정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오리무중이네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 수록, 점점 더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나기사.
그러나 그와 반대로 세이아의 표정은 밝다 못해 히죽히죽거리는 수준에 가까웠다.
"어.... 세이아 씨? 무슨 일이라도...."
"아아, 아닙니다. 그저 선.... 아니 나기사의 그 고민이 사실 아주 간단한 것임을 최초로 알아버린 것에 대한 기쁨이랄지, 환희랄지, 네. 그런 것들이죠."
"네.....?"
한참을 작게 웃던 세이아가 이내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기사에게 묻는다.
"나기사.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셔도 됩니다."
"ㄴ, 네....."
"앞으로 시작될 이야기는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아니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느닷없고, 충격적이고, 결국 얼굴을 붉히게 되는 이야기."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지만, 어쩌면 마침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는 이야기."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들을 준비가 되셨나요?"
"...... 세이아 씨의 말이라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으니, 기꺼이 듣고자 합니다."
그런 나기사의 눈빛을 확인하는 세이아.
"(확실히 여기선 다른 변수를 생각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수도 있겠군요.)"
조용히 입을 연다.
"나기사. 당신의 머릿속을, 가장 큰 비중으로 차지하는 대상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네...?"
"그저 당신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 너무나도 사소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고, 또 익숙해서일 것입니다."
"저기....."
"네. 바로 결론을 말씀드릴게요 나기사. 이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제가 드린 말씀을 잘 생각해보시길."
침을 꿀꺽 삼키는 나기사와, 그런 그녀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세이아.
"나기사."
"네."
"제 생각에 나기사의 마음 속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건........"
"선생님. 입니다."
~~~~~
주문하신 적 없는 나기사 순애물
고풍스러운 아가씨 말투 재현하기 너무 어렵다
반응 좋으면 더 끓여오겠음
댓글 19
제발계속써
뜨문뜨문이라도 일단 써보겠슴....
제발 더 줘
다음화 빨리쪄오셈

너무달아서충치가생길것같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요
좋다 달다 맛있다
홍차에 각설탕을 세 개나 넣어버려요
재밌어여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