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그 날의 하늘은 유난히도 붉었다.
"....... 현재까지 7명이네요."
"대책위원회, 미식연구회와 후우카 씨, 게임개발부는 별도 지점에 전송 완료된 것을 확인했어요!"
"확인해줘서 고마워요 아야네 씨. 그럼 이제 딱 두 명만 더 도착하면 되겠군요."
"으윽...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야... 물론 리오 회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뭐, 아예 신체가 분자 단위로 쪼개져서 이동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린 씨가 많이 늦네요."
유우카, 카요코, 아코가 저마다 한 마디씩을 얹고, 이내 모두의 시선은 하늘 위,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주시한다.
[히마리. AMAS 드론이 방금 폭발로 손상되는 바람에 더 이상 방주 쪽을 확인할 수 없어. 이제 남은 탈출 시퀀스는 2번. 한 명은... 아마 선생님이겠지.]
"맞아요 리오. 다른 한 명은 린 씨고요. 하지만.... 이제 슬슬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는데요."
그 순간 히마리의 바로 옆에서 별안간 강력한 빛 줄기가 솟아오르더니, 총학생회장 대행, 나나가미 린의 모습이 모두에게 확인된다.
"어머, 린 씨도 양반은 못 되네요. 방금 전까지 린 씨가 왜 안 돌아오나 걱정하고 있었답니다? 괜찮으시죠?"
"네.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것 빼고는 그런대로. 그것보다, 아직 선생님께서는...?"
[이제 남은 시퀀스는 1번.... 아. 방금 모든 시퀀스를 모두 사용했어. 이제 곧 도착할거야.]
"그럼 저희는 선생님을 위한 '뜨거운 환영의 인사'를 준비하도록 할까요?"
"왜 저한테 들러붙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건데요?!"
"아무렴 어때요 아코 씨~"
프레나파테스는 쓰러졌고, 색채의 공세는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히마리 역시 C&C와 밀레니엄의 잔류 인원들로부터 속속들이 들려오는 보고를 들으며 이제야 부담감을 내려놓는다.
(확실히... 이번만큼 능력에서 한계를 느꼈던 적이 없었어요. 그 수준의 전자전 실력.... 저희에게 유리한 변수들이 있었고, 또 리오가 있지 않았더라면...)
"잠깐, 근데 마지막 시퀀스 사용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나?"
정적을 깨는 카요코의 한 마디.
"약간의 딜레이가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좌표 이동이니..."
".... 리오? 지금 선생님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는데, 혹시 발동으로부터 완료까지의 시차가 어느 정도죠?"
히마리 역시 리오 홀로 준비한 탈출 시퀀스의 구체적인 작동 시간까지 알지는 못했기에, 연결된 통신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리오의 대답에는 당혹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아직.... 선생님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네. 아직인데...."
[....... 탈출 시퀀스는 좌표를 통한 공간 도약이라 5초 이상의 시차가 발생하지 않아.]
"..... 네?"
순간, 히마리는 물론 통신 내용을 듣고 있던 승무원 모두가 정적에 빠졌다.
그리고 불과 3초 뒤.
- 번쩍!
"............ 어."
높은, 아주 높은 하늘 위에서 별안간 하나의 섬광이 관측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유감스럽게도 현 상황에서 별안간 번쩍였던 섬광을 해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지 않았다.
아트라하시스의 방주는 방금 폭발했다는 것. 그것 외에는 현 상황을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 리오. 장난은 그만하죠 우리. 선생님의 도약 좌표만 다르게 설정한거죠? "
[.............]
"....... 탈출 시퀀스에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오류가 발생하면 시퀀스가 즉시 중지되고 디버깅 이후 재시작되는 과정을 거쳐.]
"........ 사용하지 않은 시퀀스가 있을거에요. 계산이 잘못되었을테니 빨리 확인해봐요."
[..............]
"아, 아니지 회장? 아니잖아. 그렇지? 분명 어딘가 실수했을거야. 회장도 사람이잖아...?"
급히 유우카가 끼어들지만 리오의 굳게 닫힌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자리의 모두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이미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유우카와 아야네, 아코와 아유무의 시선은 갈 곳을 잃었고 하나코와 카요코, 모모카 마저도 적잖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 털썩.
"우왓! 린 선배??"
"..... 역시 제일 마지막에 탈출했어야 했습니다."
"........ 선배."
".... 승무원 모두가 탈출할 때까지 배에서 내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함장의 책무...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알기에... 근데 저는.... 제가...."
"ㅇ, 아, 아직 확실한 건 없으니까 선배.... 일단은..."
"어째서... 내려오고도 꽤 시간이 있었습니다. 근데 어째서... 그 단순한 확인을 하지 않고..."
"ㅅ, 선배 진정해. 지금 여기서 선배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정말로 오류 있었을 가능성도ㅡ"
"히이이이이이이익!!!!!!"
순간, 아야네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설마.... 설마 선생님..... 설마....."
"ㅈ, 진정해!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는거야?"
"유우카 씨.... 어쩌면 선생님은..."
"...... 잠시만. 설마...?"
"카요코 씨...?"
"아코. 분명 듣기로, 우리와 싸웠던 죽음의 신도 결국 살아온 세계만 다를 뿐.... 같은 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었.... 아?"
그리고 다음 순간 자리의 모두는 이 일의 전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거짓말이죠?"
"아니지 그건. 그건 진짜 농담으로라도 못 할 이야기야."
너무나도 명백한 적의였기에 모모카와 아유무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설마요..... 설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무리 학생이라 해도 다른 세계의 존재고 결국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던..... 이건 아니죠!"
"아코...."
"카요코 씨 이건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 사람이 학생들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요! 머리가 돌아버린 게 아닌 이상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은ㅡ"
"........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너도 잘 알잖아."
'그렇게 했을' 확률은 하염없이 오르고 있었고,
"아니아니 잠시만, 아무리 그래도 방금 전까지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었던 상대를 학생이라는 이유로.....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되지."
"........ 자신에게 총을 쏜 상대도 용서했던 분이셨어요 선생님은. 불가능한 일만은....."
[잠시만!!]
"리오 회장?"
[그게... 아까 파손된 AMAS 드론을 방금 안전 모드로 재부팅하는데 성공했어 그리고... 그리고 선생님을 발견했고.... 일단 생명반응은 확인했지만......]
차라리 모든 이들이 여기까지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었다.
[현재 선생님의 고도는....121,000m, 120,890m, 120,750m.........]
다음으로 들려온 소식은 순간 선생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ㅅ, 살아는 계시는거지? 그런거지 회장?"
[일단 열상으로 잡히는 체온은 식별되지만.....]
"방법은? 방법이 있을 거 아니냐고?!"
[......... 미안 유우카.]
"멸망에 대비하겠다고 요새 도시도 만들었던 선배가 이런 걸 못할 리가 없잖아!!!!"
[..............]
".... 히마리 선배. 히마리 선배는 가능하다고 해줘 제발. 응? 가능할거잖아. 그치?"
리오로부터 절망적인 대답을 들은 유우카가 이번에는 히마리를 향한다. 이미 각종 인터페이스를 띄워 어림잡아도 100개 이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히마리의 표정은 가면 갈수록 일그러지고 있었다.
"....... 저 고도라면 설령 살아있다 한들 순식간에 얼어붙을거야. 너무 높은 고도라 중간에 낚아채는 것도 불가능한데다가 무인기를 날려 최대상승고도 쯤에서 받아낸다고 해도 지구 중력에 이끌리는 순간 엄청난 마찰열에 불타버릴ㅡ"
"제발 카요코 씨 그러지 좀 말아줄래요...? 네? 제발요... 좀..."
아코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두의 멘탈을 망가뜨린 카요코의 확인사살로 인해 선생의 생환이 불가능하다는 명제는 점차 그 무게추가 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AMAS 드론은 리오의 홀로그램 대신 선생의 위치를 표시하는 점의 고도와 떨어지는 속도를 표출하고 있었다. 곧 저 속도는 음속에 준하는 속도까지 치솟을 것이다. 아직 35도 언저리로 표시되는 체온은 곧 영하로 떨어졌다가, 이내 초고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단 한 명이 명제의 무게추를 거짓으로 돌리기 위해 사투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분명 방법이... 진정해야 해요. 초천재미소녀라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거에요. 침착하세요 아케보시 히마리. 당신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고요.)
시뮬레이션의 결과값이 하나 둘 0%에 수렴하는 수치를 표시하기 시작했고, 일부 모델은 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끊임없이 눈 앞의 인터페이스를 돌리고, 넘기고, 밀고, 두드리고 있었다.
(할 수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이 분명 있을거라고요. 아닐 수가 없어요.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셨듯 어떻게든 해낼거라고요.)
[............ 히마리.]
(아니에요 제발 그 말을 제게 하지 마요 리오. 분명 당신이 틀렸어요. 네, 제 생각이 옳다고요. 반박하지 마요 제 말이 맞다고요.)
"히, 히마리 선배. 지금...."
(유우카 아니에요. 당신마저 포기하지 마요. 저는 무조건 해낼거에요. 안 된다고요.)
유우카의 갈 곳 잃은 눈이 히마리를 향하자 그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인터페이스를 두드리는 그녀의 손가락 끝은 물론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어느새 본인도 모르게 줄줄 흘린 눈물로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있었다. 볼 옆으로 지나는 물줄기는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으며, 목의 스카프는 진작에 젖어버렸다.
히마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마저 포기해버리면, 지금 저 하늘 위에서 어쩌면 숨쉬고 있을지도 모를 선생을 본인이 죽여버리는 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0%에 한없이 가깝더라도 결국 0%가 아닌 그 생환의 가능성을 그녀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것이 설령 자신과 선생을 맞바꾸는 일이든 해내야만 했다.
그리고
-덥석.
"... 놓으세요 유우카."
"....... 선배."
"가능성이 분명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손을 놓아주세요."
"......... 히마리 씨."
"아니에요 린 씨. 할 수 있어요. 적어도 0%의 결과값만 있는 건 아니니까ㅡ"
[히마리....]
"........ 제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요... 돌아올 수 없다, 이미 돌아가셨다,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란 말이에요."
[............ 미안.]
리오의 미안하다는 한 마디까지 귀에 꽂히자, 히마리의 손놀림이 느려지다, 이내 멈춘다.
"제발......... 제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란 말이에요........."
하늘에서 푸른 빛이 반짝, 하고 빛났다.
~~~
"후후, 늦지 않게 와주셨군요. 어서오세요 선생님."
"히마리? 방금 그 드론은......"
"아, 그거라면 밀레니엄의 경비 드론이에요. 저는 병약한 미소녀라서 직접 마중을 나가기가 어렵다 보니, 선생님의 안내역으로 마침 적당히 주변에 돌아다니느 걸 가볍게... 네, 해킹했답니다. 길 안내역으로는 제격이었죠? 좋은 아이들이랍니다. 제법 귀엽기도 하고요. 드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을...... 그래서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명패에도 여쩐지 묘한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어, 어라? 그, 그, 그렇게 이상한 이름인가요? 좋은 이름이 어디 없을까. 사흘 밤낮을 고민한 끝에 떠올려낸, 무척이나 이지적이고 인텔리하면서 정체를 숨기기에 딱 맞다고 생각한, 그야말로 밀레니엄의 천재 우등생다운 작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 그, 묘하다고 할까, 개성 넘치고, 응, 좋다고 생각해. 그래서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뭐야?"
"으음. 아무리 저 같이 단점 하나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미소녀라도 늘 긴장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러니까....조금쯤은, 그, 마음을 푹 놓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지...... 아무런 대가 없이 다가와주고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제 본연의 모습을 보아도 화를 내지도, 핀잔도 주지 않던 사람이 때마침 근처에 있지 않았던가~?하는 생각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모처럼의 은신처까지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역시 혼자만 있는 건 심심하니까 선생님이라면.... 그게.... 제 말 상대가 되어 주시지는 않을까~ 하는 아주 약간의, 그게, 욕심이라고 할지, 바람이라고 할지,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자리에 모셨다고나 할지......"
"응, 뭐, 그런 용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히마리."
~~~
그녀가 처음으로 선생과 업무 외의 일로 만났을 때가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사로운 일로 선생을 부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지 며칠 밤을 고민했던 기억도, 당일날 적당한 드론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선생의 밀레니엄 도착 3분 전에 겨우 마땅한 경비 드론을 해킹했던 기억도, 선생을 만나는 순간까지도 혹시 일이 꼬이진 않을지 걱정하던 기억도.
~~~
"..... 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흐음. 흐음. 과연, 그렇군요? 후후훗."
"... 히마리?"
"그래서 어땠나요 선생님. 오늘 하루 그러한 일을 겪은 덕에 조금이나마 운세가 오른 게 느껴지시나요? 혹은 뭔가 오늘은 무척 멋진 하루였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던가?"
"응? 그건 무슨 소리야...?"
"자, 부디 이것을 봐주세요."
"동쪽, 단팥죽.... 잠깐, 그럼 설마 오늘 하루 벌어졌던 일은 전부....."
"네, 전부 제가 해킹으로, 이곳에서 했던 실증실험이었답니다. 제가 마침 12월 생일이기도 하니 이번이 좋은 기회다~ 싶었던 덕에. 다만 안타깝게도, 선생님도 아시다시피저는 함부로 밖에 나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라, 직접 실험해볼 수 없는 대신 선생님을 그 실증의 대타로 삼았다고나 할지."
"전부 히마리 네가 한 일이야?! 그보다 운세 실험의 대타라니 말이 돼?!"
"후훗, 역시 선생님이시네요. 저 같은 천재 소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시다니, 이거 참 제법....."
"...... 히마리."
"네?"
"조금 진지하게 설교할 거니까. 각오해."
~~~
버스 배차 간격이며 행선지며 잔뜩 해킹한 덕에 선생으로부터 처음으로 잔뜩 설교를 들었던 기억도 스친다. 1시간 정도였던가. 물론 설교를 들으면서도 그 시간을 선생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나름의 낙관주의적인 발상 덕인지 어딘가 가슴 한 곳이 간질간질했다. 싫지 않았다.
~~~
"후후, 어떠신가요. 밀레니엄 최고 미소녀의 맨발을 씻겨줄 기회라니... 좀처럼 흔 치 않은... 흔치 않은 기회의...."
- 스으윽.
"읏...? 생각했던 것보다... 뭔가 이상한 듯한... 기묘한 게... 부, 부끄럽다고 할지... 어, 어째서...? 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뭐뭐뭣."
"단순히 선생님이 제 발을 정성스럽게 씻겨주고 있을 뿐일 텐데... 어째서...?"
"그냥 비누칠을 하고 있을 뿐인데요!?"
"후, 후훗, 네, 물론 각오는 되어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길. 부디, 마음 가는대로.... 각오는 되어 있을... 테니까요."
"알았어. 그럼 계속할 테니까."
"네, 네에. 그,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
베리타스 부원들도 부러워 하는 스페셜 한정판 요괴 MAX를 구해와 선생과 함께 맛보려 했으나, 익명의 모 부원으로부터 요괴 MAX를 5배 더 맛있게 먹으려면 흔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속았던 날의 기억도 스쳐 지나간다. 선생이 직접 닦아주었던 발의 감촉이, 그 날의 오묘한 감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 선생이.
당장이라도 돌아와 그녀의 부름에 응해 때로는 난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없이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그런 선생이. 분명히 본인에게 있어 살아있을, 아니 살아있어야 할 선생이.
밀레니엄의 가장 진보한 기술로도 살아돌아올 수 없다는 정보가 눈 앞에, 귀 안에 멤돈다.
가슴이 메어온다. 누군가 몸 속에 손을 넣어 심장을 꽉 쥐는 듯 속이 아파왔다.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터져 몸 곳곳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운동능력을 상실한 양 다리는 이미 본인이 통제할 수 없이 떨고 있었다.
"린 선배... 일단은 어떻게든 대책을..."
"..............."
문득 고개를 들자, 한 쪽에서는 총학생회의 임원들이 추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하나코가 애써 아야네를 위로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자리에 주저앉은 아코와 먼 곳 어딘가를 그저 바라보고 있던 카요코가 보인다.
자신의 옆에서는 유우카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러나 히마리는 그녀를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선생님?)
(이렇게 이별이 빠를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 잠깐! ㅁ, 뭔가 이상해.... 이럴 수는 없는데....]
순간 통신이 복구된 리오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낙하 속도가.... 낙하 속도가 줄어들고 있어...? 하지만 어, 어떻게...?]
"....... 네?"
[이건... 이건 설명이 안 돼.... 어떻게...?]
"제대로 말해요 리오. 무슨 일이냐고요."
[낙하하는 잔해물을 추적하던 시스템에서 비정상 낙하하는 잔해물이 포착되었어. 1m가 조금 넘는 크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 확실해. 하지만 어떻게.....]
리오의 보고는 비탄에 빠진 현장의 인원들에게 '어딘가 이상하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제 아무리 과학에 무지한 사람일지라도 중력에 이끌리게 되면 점차 가속도가 붙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 터. 이상하다는 인상은 이내 실낱같은 희망으로 변했다.
"....... 리오. 예상 낙하 좌표는요?"
[그 쪽에서는 거리가 좀 있어. 일단 예상 구역의 좌표를 보여줄게.]
이내 히마리의 인터페이스에 2개의 알파벳과 10개의 숫자가 표시된다.
"...... 가죠 여러분."
"자, 잠시만 히마리 선배... 물론....."
"아뇨 가야해요. 반드시.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고요. 이렇게 선생님을 보내드릴 수는 없어요. 저, 아케보시 히마리가 용납할 수 없다고요."
이미 전지니, 지성이니, 하는 것들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던 히마리.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선생의 생존과 귀환에 있었다.
"..... 가서 손해볼 건 없지. 다들 가자."
"카요코 씨의 말이 맞네요. 일단 움직이죠. 얼마나 걸리죠 히마리 씨?"
"...... 생텀타워까지만 가면 됩니다. 그 구역 일대가 예상 낙하 지점이에요."
"... 10분이면 가겠군요. 서두릅시다. 설령 선생님이 아니라 해도, 저희가 지금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부분은 저 낙하물이에요."
린의 판단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생텀타워의 터를 향해 걷다,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표정은 제각각이었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기대감이 가득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고 싶지 않았던 히마리 역시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본래 속도를 내는 용도로 설계된 휠체어가 아니기에 서서히 그룹에서 뒤쳐지기 시작했다.
"히, 히마리 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 네."
문득 뒤를 돌아본 아야네가 급히 휠체어를 같이 밀기 시작하고, 하나코가 합류한다.
"...... 고마워요. 모두."
(.......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반드시...)
점점 가까워지는 생텀타워의 터를 보며, 히마리의 심장은 유난히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기대감 때문인지, 혹은 곧 보게 될 물체가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인지,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뛴다.
(제발..... 제발 살아만 계셔주세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제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던 푸른 빛에, 보랏빛이 함께 감돌기 시작한다.
~~~
"허억.... 허억...."
"..... 우리... 안 늦은거지 아유무 선배...?"
"네... 그런 것.... 헤엑.... 같네요...."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네.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어. 이제 낙하물이 드론의 비행 고도까지 내려온 것을 확인했어. 측정 결과 물체의 표면 온도는...... 섭씨 36.4도고.]
정상적으로 떨어졌다면 이미 불타 없어졌을 잔해물.
그러나 점차 감속하며 이내 관측이 가능한 영역까지 떨어지던 그 잔해물.
그리고 인간의 체온 36.5도에 근접한 온도.
"........ 고생했습니다 리오 씨. 그리고 여러분."
"조금 늦었지만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겠네요. 후훗."
몇몇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선생의 생존과 성공적인 귀환은
"리오. 현재 상황은요?"
[5....]
"네?"
[4.... 3.... 2.... 1.... 착지. 뒤야.]
순간 모두가 본인들이 방금 전까지 뛰어온 길을 바라본다. 보라색 빛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고, 아주 약간의 흙먼지는 '낙하물'이 연착륙하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두가 숨죽인 채, 흙먼지가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콜록 콜록.... 어으..... 진짜 두 번 다시는 못해.... 으으 허리가..."
당번으로 가게 되면 늘상 '일하기 싫어'를 외치던 어딘가 나사 빠진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그 뒤로 히마리의 기억은 온전치 않았다.
본인을 포함해 몇몇이 정신없이 뛰어갔다거나
돌아온 선생이 넝마를 걸친 채 한 손에 태블릿 PC만을 들고 있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그녀의 선생이 돌아왔다는 그 사실 하나는 그녀에게 있어 축복이자, 기적이며, 또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고, 그것만으로도 기억의 망각을 보상하기엔 충분했으니까.
그저 그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심장은 충분히 두근거렸으니까.
그녀가 선명히 기억하는 유일한 순간은
선생이 우트나피쉬팀의 배 승무원들에게 하나하나 감사를 표할 때, 그녀의 앞에 선 뒤,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 채.
"고생했어 히마리."
"그것보다 손이..... 많이 노력했구나."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라고 말해주었던 순간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은 그 어느 순간보다 격하게, 그리고 빠르게 뛰고 있었기 때문에.
~~~
"고생했어 부장.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 아니다, 혹시 우주에 다녀온 사람들끼리 뒤풀이 같은 거라도 조촐하게 하려나."
".........."
"부장?"
"......있잖아요 에이미."
"응?"
".....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눈을 떠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근데 말이에요. 돌이켜보면 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안 가던 순간이 있었어요."
"혹시 행운의 색이 틀렸다거나, 부적이 효과가 없었어?"
"아뇨 그게 아니라...."
잠시 뜸을 들인 히마리가 조심스레 다음 말을 고른다.
"..... 에이미. 어떤 사람이 말이죠. 아니, 어떤 사람과의 기억이랄까, 좋았던 것들이 그 사람이 없을 때도 생각나고, 그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하고, 그 사람이 저를 보고 웃어주면 괜시리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하고, 괜시리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애틋한 감정이 든달까... 또...."
"사랑이네."
"에."
"사랑이지 그건."
"사, 사, 사, 사, 사랑이요?! 에, 에이 서, 설마요. 저 같은 밀레니엄의 청초한 한 떨기 꽃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거리가 이, 있지 않을까요?"
"말 더듬는 거 보니 사랑 맞는 거 같은데."
"에이미!"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에이미가 자신의 PC를 몇 번 두드리더니, 이내 히마리의 인터페이스로 무언가를 보낸다.
"그거 풀어봐. 혹시 모르니까. 그럼 나는 먼저 들어갈게. 내일 봐 부장."
- 지이잉.
에이미 홀로 지켜오던 초현상특무부의 부실을 이제는 히마리 홀로 지키고 있었다.
"........ 일단 해볼까요."
<당신의 마음을 알려DREAM>
"알려드림이라...."
[1. 그 사람과 떨어져 있을 때에도 그 사람이 생각난다. O X]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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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사람이 다른 동성(검사자 기준)과 같이 있는 것을 바라보면 괜히 초조하다.]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아니죠 잠시만요...."
중간중간, 히마리의 거침없는 선택을 가로막는 선택지들이 보였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린 씨가 선생님께 여벌옷을 드릴 때 뭔가 기분이 묘했는데....)
(아니아니! 근데 이 감정이 초조함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맞아요 그럴 리 없어요.)
이미 끝장토론을 시작한 그녀의 뇌세포들이었고, 5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히마리는 한숨을 내쉬며 O에 체크한다.
[14.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그 사람과 함께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21. 뉴스에서 그 사람과 관련된 주제(지역, 직업, 기타 공통점)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으로 이어진다.]
[27.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과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꿀 수 있다.]
[44.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한 생각을 한다.]
[49.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본인의 단점 혹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바꾸거나 그러려 시도한 적이 있다.]
[61. 오랫동안 그 사람을 보지 못하면 공허함을 자주 느낀다.]
[68. 단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
.
.
[100. 가능하다면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이제 마지막 문제군요... 뭐, 이건 사실이니까요. O.)
마지막 문제까지 모두 마치자, 화면은 '결과 출력 중'이라는 문구가 뜨더니 이내 다른 화면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를 본 히마리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당신이 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TOP3>
[* %는 경향성을 나타내며, 100에 가까울수록 그 감정을 실제로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사자: 아케보시 히마리 님]
[1. 사랑(98.4%]
[2. 존경(34.1%)]
[3. 집착(29.8%)]
"에....?"
사랑, 존경, 그리고 집착, 심지어 2, 3위와 1위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에?!?!!?!?!?"
히마리의 감정에, 초봄의 강풍이 불어온다.
~~~
1화를 쓰려고 인연스와 최종장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최종장은 참 많은 여운이 남네요. 히마리의 중간 회상은 인연스의 실제 대사를 가져온 것인데, 히마리의 자기 PR문구는 키사키의 고풍스러운 말투, 하나코의 19금 드립 연타와 함께 가장 어려운 묘사 같습니다. 쉽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1화의 내용 대부분은 아래의 단 하나의 장면이 오기까지의 과정을 나름대로 풀어나가는 과정이었기에, '왜 히마리는 저 때 눈을 감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IF들을 갖고 글을 써야 했는데 그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역시 하꼬 글쟁이의 역량으로는 모자라지 않았나도 싶고요.
2 / 2여튼 말씀드린 바와 같이 (편의상)차기작은 수시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특히 연애물인 이상 글쟁이의 심적 상태에 매우 크게 영향을 받는데, 다음 화가 빨리 올라올 수 있도록 제 심적 상태가 좋은 상태를 꾸준히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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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미식이네요!
시행착오가 많은 1화인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크으 개추

카요코 그긴거ㅋㅋㅋ
초안에는 없던 내용인데 최종장 스토리를 다시 읽다보니 팩트한접시가......
하루나도 인정할 정도의 미식

폭발은 면했다...!
가공는 -> 각오는
히마리 인연스가 주마등마냥 스르륵 스쳐지나가는듯한 연출 좋다
최종장 어레인지도 좋고
오타는 바로 정상화 완료! 주마등 연출을 알아봐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