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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토스에 처음 도착한 외부인이라면 누구나 그 광경에 놀랄 것이다.

학원도시. 학생과 학교가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정치를, 문화를 일궈내고 그 바탕 위에 일상을 영위하는 곳.

자치구의 경계를 넘어서면 보이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들.

머리 위에 헤일로를 띄우고 다니며, 특유의 내탄성을 가진 학생들.

그리고 비슷한 듯 어딘가 다른 상식까지.

당신이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지금은 키보토스에 완벽히 녹아들었지만 엄밀히 구분하자면 외부인에 해당하는 샬레의 선생에게도 예외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또한 놀라움을 자아내는 요소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가장 강한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어디에 있었을까.

내탄성? 사실 온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총격전에 휘말려버린 선생 스스로에게 있어 총알을 맞고도 찰과상에 그친 학생들은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날아오는 도비탄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샬레의 존재? 확실히 그럴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초법적인 권한을 가졌으면서도 그에 수반하는 의무나 행동강령이 없는 단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이야기의 무게를 한없이 가벼이 만드는 단체, 심지어 이러한 과정에서 월급까지 주는 단체의 존재는 사회의 홍진에 익숙한 그 누구를 데려다놓아도 가히 '상식의 장례식'이라 하기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어떠한 면에서 보수적이고, 어떠한 면에서 다소 창의력이 부족하며, 어떠한 면에서는 고지식했던 이 어른에게 있어 가장 충격을 주는 존재는

단지 당번 학생의 지나가는 한 마디였고, 사실 자신의 세계에서도 아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의외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키보토스에서 선생과 학생의 연애는 불법이 아니다.'

라는 단 한 마디였다.

학생과의 연애. 본래 있던 세계에서 그것은 나이에 따라 형법 상의 처벌을 받거나,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절대 고운 시선을 받을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가진 어린애를 꼬시려 한다.'

'자기 나이대의 여자들에게 도태당하니 순진한 어린 애들에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대체 무슨 대가를 주었길래 학생이 어른과 연애를 하느냐.'

'저런 관계는 필히 부적절한 관계일 것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비록 그 나이가 한 살 내지는 두 살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성년과 미성년이 연애를 한다'라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있던 사회에서 쉬이 용인되지 않는 선생과 학생의 연애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충격을 가져다주는 존재였고.

앞서 말했듯 이상한 면에서 유교보이의 성향을 가진 외부인으로서, 그리고 모두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을 베푸는 교육자로서 그가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던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선생의 마음 속 빗장을 열게 될 대상은 누구일지에 대한 논쟁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이슈가 되었다.

설령 그들이 어른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 때 그의 학생이었던 아이들과의 연애를 하시겠느냐는 회의론을 포함하여

주로 3학년들 사이에서는 졸업에 가장 근접한 3학년 중에서 선생의 연인이 나오지 않겠냐는 의견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서 유급한 2학년들을 중심으로 '어쨌든 우리도 18세가 되면 합법이다'라는 주장도 고개를 들었다.

꼼짝없이 최소 1년, 길게는 2년을 기다려야했던 2학년과 1학년 사이에서는 '학생과의 연애가 안 된다면 일단 학생이 아니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워 '3학년 졸업 전에 자퇴하면 그만이야~'를 외치다 학생회에 의해 진압당하기도 했다.

유급한 3학년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이야기.

한편 본인이 일찌감치 가망이 없다고 느끼거나 존경 혹은 친애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지지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령 유우카를 지지하던 코유키나, 미카를 지지하던 코하루와 파테르 분파, 나기사를 지지하던 히후미와 필리우스 분파, 히나를 지지하던 이오리와 선도부 등이었다. (물론 코유키는 이후 노아와 유우카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다 반성실로 유폐당했다.)

그리고 대책위원회는 멸망했다.

그렇게 선생의 의견이 완벽히 배제된 채 이슈를 빙자한 치정싸움은 1년이 넘도록 이어지다, 어느 순간 모든 의견이 단 하나로 통일되며 종지부를 찍는다.

물론 그 의견이

'헤어질 때까지 존버 또 존버한다.'

였던 것이 하나의 문제였지만.

그렇다. 20대 후반을 달려가던 선생의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준 봄이 등장한 것이다.

유난히 청초했던 선생의 그녀는 적극적인 구애도, 명백한 이성적 호감도 크게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아마 다소 의외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 짝사랑이란 부끄럽거나,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숨기고 홀로 끙끙 앓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던가.

누구보다도 선생에 대한 호감이 높았고, 비록 그 방법이 심히 마이페이스였으나 선생을, 그리고 선생과의 시간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색채 결전 당시 선생의 귀환이 늦어지자 누구보다도 속이 타들어갔던,

그러나 그것을 차마 밝히지 못했고, 애써 태연하게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던.

무엇보다 이런 모든 감정을 성인이 되던 그 날까지 꾹꾹 눌러담고 있었던 그녀의 이름은

밀레니엄의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

아케보시 히마리였다.

~~~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안색이..."

"아, 별 일 아니야. 아하하... 그냥 스팸 문자 같은 게 왔나?"

"정말이지.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앞으로 30분 정도만 지나면 퇴근이잖아요?"

"일단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전제부터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우카 양?"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늦은 오후의 샬레. 오늘도 어김없이 티격태격을 이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일단 이건 결재 상신하고..... 일단 어째 밀린 일들은 다 끝낸 것 같은데..."

"이 쪽도요. 단순한 수량 문제였는데 중간에 단위가 하나 잘못 들어갔네요."

"자.... 그럼 이제 금요일을 맞이하여 칼퇴를 준비해볼까?"

"분명 아까 퇴근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러려 했는데 내가 아주 아끼는 세미나의 회계, 아니지 이제는 회장님께서 30분만 지나면 퇴근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말이지. 나는 학생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른이니까."

"아주 말이나 못하면..... 에휴 뭐, 그래도 4일치 업무가 밀린 오늘보다는 월요일 당일 업무까지 2일치 업무가 밀린 편은 쉽겠죠? 그럼 오늘은 빠르게 퇴근할까요. 오늘은 안 그래도 저녁 약속이 있거든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녁은 누구랑 먹어?"

"C&C의 부장과요. 요즘에 고민이 있는지 별안간 밥 한 끼 하면서 이야기 좀 들어줄 수 없냐고 하더라고요."

"아카네가? 의외네. 뭔가 심각한 일은 아니었음 하는데. 나도 같이 갈까?"

"안 돼요."

"엑."

"아, 아카네가 다른 누구에게도 유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서요.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어째서?!"

"아마 '소녀들의 대화'가 아닐까요? 후후."

"너무 매몰차...."

"하? 매몰차다니, 임자 있으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쪽이었어?!"

"에휴... 진짜 이럴 때 보면 역시 그 때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렸을걸 심히 후회되네요."

".........."

유우카의 푸념에 선생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 역시 알고 있다. 유우카의 마음 역시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그녀가 히마리에 비해 한 살이 어렸고, 아직 학생의 신분이었을 뿐이었음을.

히마리와의 연애 사실이 공표된 이후 퉁퉁 부은 눈으로 축하의 말을 건네던 모습을 기억하는 입장에서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한다.

"에휴.... 됐어요. 조심하기나 하세요. 다들 선생님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계시죠?"

"넵...."

"잘못했다간 밀레니엄이 흔적도 없이 쓸려나갈 뻔했잖아요. 지금도 선도부 선임행정관, 아니 이제는 전 선임행정관이죠. 그 사람은 심심하면 저한테 전화해서는 히나 부장님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느니 나는 그냥 집 지키는 멍멍이였다느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말씀드렸었죠?"

게헨나와 트리니티. 좁혀지지 않을 두 학교의 거리감이 단숨에 봉합된 것은 히마리와의 연애가 공표된 이후였다.

"기억하지.... 나는 히나와 미카와 호시노가 그렇게 합이 잘 맞을 줄 몰랐어."

"아비도스 헬기 위에서 뛰어내려 당장이라도 총기를 난사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 나카마사 이치카 씨였죠? 그 뒤로 마리 씨가 세 번 보면 죽을 것 같은 생기없는 표정으로 달려왔고요."

"나기사나 세이아, 키사키가 그렇게 감정이 격해진 건 처음 봤었어..."

"그 뿐만인가요. SRT와 재액의 여우가 창문을 깨고 세미나로 돌입했을 땐 얼마나 억울했는데요. 저희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데. 심지어 선생님이 놀라 자빠지니 세리나 씨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지를 않나..."

"아코의 문자 테러나, 베리타스의 초현상특무부 에어컨 해킹은 양반이었지..."

실제로 밀레니엄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는 동감하나 선생님께서 고심을 거듭하여 내리신 결정이므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축복하는 것이 합당하다'라며 참전하지 않은 츠루기와 '다 좋은데 히마리 눈에서 눈물 나오게 하면 뒤진다!'라는 말과 함께 둘을 응원한 네루를 제외한 각 학교의 최강자를 모두 한 번에 상대할 뻔했다.

"죄송합니다..."

".... 됐어요. 그 때 이후로 학교 간의 신사협정이 체결되어서 둘 사이를 방해하지는 말자는 쪽으로 합의가 되었으니 망정이죠. 여튼 그러니까 선생님."

여전히 뚝뚝 묻어나오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유우카가 선생의 어깨를 툭툭 치며 한 마디를 남겼다.

"기왕 연애 하시는 거. 맘껏 하세요. 후회 안 남게."

"유우카...."

어쩌면 그녀답지 않지만, 어떠한 면에서는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그녀다운 발언이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많이 들었다.

의외로 미카도 상황이 정리되자 역시 침착하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

(그래야 그 년이랑 헤어졌을 때 미련이 안 남으니까☆ 아하핫!)

~~~

물론 의도는 조금 다른 쪽이었지만.

다양한 생각이 교차하던 선생이 PC를 끄고 코트를 여민다. 유우카 역시 다소 덥다고 느껴져 벗었던 교복 잠바를 다시 입는다.

"그럼. 월요일... 아니 다음 주 목요일이었죠? 그 때 뵐게요."

"다음 당번 때 봐. 저녁 맛있게 먹고."

약속시간이 임박했는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유우카를 지켜보다, 문득 자신에게도 약속이 있었음을 자각한 선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트가 내일이었네.)

~~~

집으로 돌아온 뒤, 가볍게 씻고 저녁을 해결한다. 본래 간편식이나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넘겼지만 그런 그의 식성을 걱정하던 히마리가 사귄 지 100일 기념으로 직접 프로그래밍한 가사 로봇과 넥타이를 선물한 뒤로는 로봇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내일은 어디 갈까...)

완연한 봄 날씨. 호수공원으로 데이트 가기에 딱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일은 히마리가 주말 오전까지 회사에 있을 시간. 점심을 먹고 온다고 이야기했었기에 바로 카페를 검색한다.

(여기는.... 좀 힘들겠고. 여긴 엘리베이터가 있나?)

호수가 한 눈에 보이는 2층 이상의 카페를 생각했던 선생이었기에 더욱 신중을 기하여 장소를 고른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식당에 예약을 했다가 2층까지 히마리를 안고 올라가야 했다.

물론 히마리는 이런 것도 신혼부부 같고 좋다고 말했지만. 화장실이나 다른 용무가 있어 자리를 떠야 할 때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 여기가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이 선택한 카페는 최적의 입지였다. 호수로 창이 나 있는 3층 짜리 카페. 진입로는 경사로로 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도 두 대나 운영하고 있다. 장소도 넓고 자리도 많아 휠체어를 두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다.

(그럼 동선이....)

4일 동안 쌓인 일을 모두 끝내고 온 지라 누구보다 피곤한 금요일이었지만, 데이트 코스를 짤 때만큼은 피로가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데이트 코스는 오후 2시 정도 만나 카페에서 1~2시간 시간을 보낸 뒤 근처 백화점으로 이동하는 루트.

지난번에 히마리가 유심히 보던 목걸이를 선물하고 싶었던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식사는 백화점 옥상의 전망대 식당에서 마치고 저녁 늦게 돌아가는 것.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온 히마리의 피로가 모처럼 풀리길 바라는 선생이었다.

모모톡을 열어 히마리에게 안부 인사 겸 내일 데이트에 관한 메시지를 보내둔다.

<내 사랑>

[오늘 하루도 고생많았어용 (19:48)]

[(스컬맨이 하트 보내는 이모티콘) (19:48)]

[있잖아, 내일 코스를 하나 짜 봤는데 어때? (19:48)]

[(파일) (19:49)]

[보고 의견 주시면 감사드리겠슴당 (19:49)]

야근이 있는 날이 아니면 30분 내로 답장이 오곤 한다. 씻는 도중이거나 이동 중일 때도 답장이 간혹 늦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칼답이 오는 히마리와의 대화.

5분 정도 지났을까, 답장이 온다.

[저는 너무 좋답니다 (19:54)]

[항상 고마워요 그리고 고생많았어요, 코스 짜는 거 보통 일이 아닌데. (19:54)]

[내일 볼 수 있으니까. 즐겁게 짰어! 고맙습니다:) (19:55)]

[그럼 내일 봐요 선생님. (19:55)]

[사랑하는 거 알죠? (19:55)]

[나도! (19:55)]

"오늘은 힘들었나보네..."

가끔 야근이 있거나 피곤한 날에는 모모톡에 이모티콘이랄지, 애정표현이 급감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히마리였다. 물론 이 점은 선생도 마찬가지라 둘이 서로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척도는 모모톡이 담당하는 셈이었다.

".... 내일은 맛있는 거 사줘야지."

그렇게 선생의 밤이 깊어간다.

~~~

".... 날이 많이 따뜻해졌네요."

"그러게. 지난 주까지만 해도 때에 맞지 않게 추웠잖아. 히마리에게는 쉽지 않은 1주일일 것 같아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어디서 이런 곳을 또 수배해오신거에요 선생님."

"아직 밑천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1년 반이 넘도록 떨어지지 않는 밑천이라니 조금은 욕심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더 좋은 곳도 꼭 가자. 알았지?"

선생의 한 마디에 히마리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만 선생의 마음 속에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히마리의 상태가 평소와 달리 한 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

"..... 회사에서 많이 힘들었었구나."

"네? 아... 혹시 표정에 드러났나요?"

"오늘은 누가 우리 히마리를 괴롭힌거야. 말만 해 가서 확....."

짐짓 과장된 몸짓을 하는 선생의 모습에 히마리가 처음으로 미소를 보인다.

"..... 항상 감사해요 선생님. 언제나 분에 넘치는 애정을 주고 계시다는 것 잘 알아요."

"당연한거니까. 내 가장 사랑하는 제자이자 곁에 머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그런가요..."

말을 마친 뒤 히마리는 조용히 창가를 내다보았다.

"..... 사실 그것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음? 무슨 일이길래?"

"........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 참 기분이 이상해지곤 한답니다. 정말로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요. 특히 선생님을 연모하던 학생들이 그토록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여전히 시선은 바깥을 향한 채 히마리가 말을 이어나간다.

"다만...... 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제 행복에 젖어 정작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더라고요.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장기적으로 이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히마리는 선생을 똑바로 바라본다.

"선생님의 탓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모자랐고, 선생님 곁에 머물기엔 한없이 부족할 뿐이에요."

"잠깐, 히마리..? 말 끊어서 미안.... 근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 애초에 내가 그다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다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건 그 쪽이 아니잖아?"

좀처럼 말을 자르지 않는 선생이 다급히 말을 자른 데에는 이런 류의 대화들이 향하는 종착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그렇죠. 하지만 요즘 있던 일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결국 연애도,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도 결국 현실의 영역이라는 걸 깨달아버렸어요. 어떠한 충동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사랑이 변했기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어떠한 가설을 세워봐도 선생님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저보다 훨씬 나은 사정을 가진 사람이 선생님의 곁에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나왔을 뿐이에요."

선생을 바라보는 히마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언제나 그랬듯 약간의 미소를 띈 얼굴이었으나, 선생은 훗날 회고하길 그 날의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슬퍼보였다고 한다.

"그러니 선생님."

"........... 히마리."

"한없이 모자란 저를 한없이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통보를 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해요. 저를 얼마든지 원망하셔도 좋아요. 아니, 차라리 그래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그래서..... 저희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주말을 맞아 북적이던 카페의 2층이었으나, 두 사람의 자리만큼은 차가운 침묵이 억누르고 있었다.

유난히 따뜻했고, 유난히 맑았던 그 날의 봄.

선생이 '심장이 사방에서 쥐어짜이는 듯했던 날'로 회상하던 그 날의 봄.

선생의 사랑은 그렇게 쉼표를 찍는다.

500일을 넘어 600일을 향해가던 두 사람의 결말에 혹자는 개연성도 핍진성도 모두 갖추지 못한 이야기라고, 기승전결에서 기와 결만이 있는 이야기라고, 마치 미대 떨어져서 자살한 사람 수준의 요약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기가 있을지언정, 결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의 첫 페이지로 넘어가 다음 페이지를 하나하나 이어붙이고자 한다.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서사의 빈 공간을 채워가는 이야기.

씁쓸하고 차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할 이야기.

그리고 그의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를 연재 중이던 글쟁이입니다.

본래 이 작품은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가 완결이 되면 후속으로 구상만 해둔 습작 수준의 텍스트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지금 업로드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올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입니다.

최근 들어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현생에서의 부침이 '다 때려칠래' 모드가 되어버린 상황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으레 그렇듯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잡다한 상상력들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 습작의 내용이 조금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습작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이 감정과 이 심상은 아마 지금이 아니면 다시 끌어내기 쉽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과감히, 프롤로그 격에 해당하는 내용을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당연하지만 <그리고 모든 기적이 시작되는 곳>에서 따왔습니다.

제목과 내용에서 보시다시피 흔하디 흔한 연애물입니다. 다만 피폐물을 쓰던 성향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다소 씁쓸하고 답답한, 때로는 화날수도 있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소재들이 같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주력은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이므로, 다음 화를 언제 올릴지에 관해서는 정해진 바 없습니다. 다만 이런 식의 내용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의 니즈가 있는지 정도는 파악을 하고 지속적인 연재를 하는 게 좋다는 판단이 들어 작품의 중후반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프롤로그로 당겨봤습니다.

계속 연재가 된다는 전제 하에 다음 화는 아마 선생의 연애 시작 파트로 다시 돌아가 시간 순서대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월이 되었는데 눈이 오는 것을 보고 저 역시 다소 놀랐는데, 출퇴근길, 등하교길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성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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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3.05창작

소설)(가제) 그리고 그의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프롤로그)

#소설
좋아요 0댓글 48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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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DC
슈퍼물라매작가
게시물 77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5.03.05 23:25
조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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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8

나
ㅇDC
ㅇㅇ125.03.05
디시콘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5.03.05

수정신공... 제발 되라

ㅇDC
ㅇㅇ125.03.05
디시콘
ㅇDC
ㅇㅇ225.03.05

삭제된 댓글이에요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5.03.05

제발 이번에는 삭제는 안 된다

ㅇDC
ㅇㅇ325.03.05

수정같은 야한말하지마셈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5.03.05

헉뭣

ㅇDC
ㅇㅇ425.03.05

다음화 내놔

ㅇDC
ㅇㅇ425.03.05
디시콘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5.03.05

다음화(언제 올라올지 모름)

ㅇDC
ㅇㅇ525.03.05

뭐야 왜 헤어지는거야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5.03.05

일단 시작부터 헤어지고 왜 500일 장수 커플이 헤어졌는지 풀어야 맛도리죠!

ㅇDC
ㅇㅇ425.03.05

어쨌든 휠체어를 쓰지 않는 다른 학생들보단 확연히 선생에게 한가지 더 부담을 지운다고 생각하는거지

ㅇDC
ㅇㅇ525.03.05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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