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XX년 XX월 XX+98일 17:18
선생 치료 시작 98일째, 트리니티 종합학원 본관 앞
"미카 씨. 이제 일어나세요."
"우으...... 5분만....."
"도착하면 깨워주겠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잖아요?"
"으으...."
눈을 비비며 미카가 천천히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본 풍경은 여전히 고층 빌딩들이 가득한 시가지가 아닌, 익숙한 양식의 건물이 그녀를 맞이한다.
"하나코 씨, 이치카 씨도 고생많으셨어요. 오늘은 두 분 다 편히 쉬시길. 이치카 씨는 좀 전에 츠루기 씨로부터 바로 귀가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아, 그렇슴까? 그럼 차만 대어놓고 먼저 들어가봐도 되겠슴까?"
"이치카 쨩~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또 봐아아~"
잠에서 깬 늘어지는 목소리의 미카가 인사를 건네고, 가볍게 미소를 짓는 나기사에게 가볍게 목례한 이치카는 금일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산한다.
"하나코 씨도 고생많으셨어요. 물론 다른 학교와의 교류라는 측면에서는 훨씬 익숙하셨겠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요."
"어머, 그런 말씀을 나기사 씨에게 들을 줄을 몰랐는데요? 나기사 씨도 가끔 보면 반전매력이 있다니까요 정말~ 말하자면, '낮져밤이', 라고 해야 할까요? 후후..."
"..... 제가 분명 뭔가 잘못했죠? 그런거죠?"
"쉿. 의심은 나빠요 나기사 씨~"
"한 마디가 더 얹히는데 의심을 안 할 수가 있나요..."
"그거 아세요? 나기사 씨와 같은 말씀을 한 사람이 또 있다는 걸?"
"허어...?"
"이게 오늘 제가 내는 문제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미카 씨도요~"
"우음.... 하나코 쨩도 간다고....? 그럼 나기 쨩도 가?"
"아뇨. 안 그래도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오늘 반드시 확인해야 할 보고 사항이 있다고."
"그럼.... 나 혼자 들어가는건가... 힝 그건 싫은데... 이치카 쨩이랑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데, 미카 씨의 소속은 아직 티파티입니다. 잊지 않으셨겠죠?"
"......... 에?"
순식간에 미카의 정신이 현실세계로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뭐, 평소라면 이런저런 핑계르 대고 도망치실 수 있었겠지만, 밀레니엄에 가신다고 말씀을 하신 이상 관련된 공문 처리도 하셔야 하고, 밀레니엄과 관련되어서 공부도 하셔야겠죠?"
"저, 저기 나기 쨩.... 아무리 그래도 오늘 우리 강행군을 했는데....."
"저녁 메뉴는 드시고 싶은 걸로 부탁해놓을게요."
"미라클 5000도 돼?"
옳다구나 흥정을 시도하는 미카였지만,
"딸기 크림이 들어간 롤케이크라고요? 그리 전해두겠습니다."
"아니아니내가잘못했어그것만은제발ㅡ"
"..... 저도 쥐고 있을 카드가 하나 늘었네요? 후훗."
즉시 진압. 어림도 없었다. 되려 억제기만 하나 알려준 꼴이 되어버린 미카.
"..... 그거 악취미야 나기 쨩. 그러니까 선생님께 의심암귀 소리나 듣지. 흥이다 흥."
"딸기 크림도 빼버리는 수가 있어요?"
~~~
잠시 후, 티파티 테라스.
식당에 남는 재료를 물색한 결과 적당히 먹을 만한 것은 소고기 안심 밖에 없었기 때문에, 본의 아닌 호사를 누리게 된 두 사람이었다.
"세이아 쨩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겠네☆"
"그냥 드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죠?"
애써 먼 곳을 바라보는 미카. 아직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었기에, 식탁을 세팅해둔 채 자투리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트리니티 포병 운용 개편안(보고)>
1. 개요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포병 기능 운용 능력 검토 지시에 따른 개편안임.
2. 문제 인식
.
.
.
(....... 당분간 긴축재정인가요.)
처음으로 마주한 공문은 지금껏 포병연대 및 4개 포대로 구성된 화력자산의 증강 및 재편성에 관한 공문이었다.
트리니티의 포병 자산은 6문이 1개 포대를 이루고, 다시 4개 포대가 1개 연대를 이루는 구조로 총 3개 연대, 72문에 불과하였다.
개정안은 편제를 3개 포대를 묶어 1개 대대로, 다시 3개 대대를 묶어 1개 여단으로 재편하여 1개 여단 총 54문, 3개 여단 총 162문을 보유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특기할 점은 이들과 별개로 티파티 직속 포병여단을 창설하여 이들에는 구경과 사거리가 증가한 신형 자주포를 배치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총 야포 수는 216문에 달하는 물량이 필요한 상황.
이에 따른 대규모 인력 및 화포의 도입 소요가 같이 보고되었고, 나기사의 머릿속에는 '예산' 두 글자가 강렬히 박혔다.
(학비를.... 더 걷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사실 나기사의 발상은 명분으로 따지기에는 가장 적합하였다. 트리니티 뿐만 아니라 키보토스 전반에 걸친 위기라는 점은 이미 각 분파의 중진은 물론 일반 학생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있었다.
(방과 후 디저트부.... 였나요.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돈다고는 했죠.)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의 희생'만큼 좋은 명분은 없었던 것.
그러나 다른 한 켠에서는, 이러한 정석적인 움직임에 반기를 드는 '악마의 대변인'이 칼을 갈고 있었다.
(에덴조약 이후 티파티의 권위..... 트리니티의 권위.... 글쎄요...)
야심차게 추진한 에덴조약은 안팎으로 내홍을 겪은 끝에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오죽하면 에덴조약이 남긴 것은 '원수를 순진하게 믿지 말라'는 교훈과, 에덴조약의 파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양측 학교의 어린 아이들을 수용하는 '에덴 보육원'이 전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나 아리우스, 게헨나, 미카라는 삼중고는 티파티의 권위가 멱살잡혀 메쳐지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
"마녀를 처단하라!"
"티파티는 집 단속부터 똑바로 하라고!"
"한 놈은 골로 갔고 한 놈은 배신자, 이딴 게... 학생회?"
"뿔 달린 놈들은 믿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난 저럴 줄 알았다. 에휴."
"게헨나를 믿느니 자기들 세계에 갇혀사는 산해경 야만꼴통들을 믿고 말지. 대체 뭔 생각으로 조약을 추진한거래?"
"네 말에 정답이 있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놈이면 절대 그런 정신 나간 조약 추진 안 함."
"야야 저기 니 룸메 지나간다. 킥킥킥."
"아 미X년아 뒤질래? 분충*이랑 방 쓸 바엔 자살함."
* 분교충
"분충 쟤네는 피냄새 좀 빼고 오지 여기까지 냄새가 진동을 하네. 여기가 학교야 도축장이야 진짜."
"어허! 그라믄 안 돼! 그거 '아혐'이라니까~ 푸흡....큭....큭큭."
"하아.... 못 들어주겠네.... 조용히 다니겠다니까 왜 시비를 쳐 걸고 지X이세요? 자살 어쩌고 하는데 진짜 자살시켜줘?"
"와 눈까리 휙 바뀌는 것 보소? 사람 죽이는 것만 배운 놈들 근본 어디 안 가죠?"
"야야 분충이 또 사람 잡는다!"
"크하*~ 트붕이들 안녕! 오늘은 아리우스산 모가지 꺾기를 직관 1열에서 생중계할거야. 여기? 지금 분수대 앞! 볼 사람은 빨리 오라구~ 어라? 닉네임 섬광탄 님 방금 '곧 감'이라고 채팅 쳤는데.... 혹시... 그 내가 아는 그 섬광탄 아니지? 그치?"
* 크로노스 보도국 산하 뉴미디어부 제작 미디어 플랫폼 '크위치'
~~~
"하아......."
해명의 탈을 쓴 변명을 하기에 에덴조약은 이미 십자포화를 맞고 있었다. 어느 한 곳을 막다보면 다른 곳에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도 허다하였다.
색채 침공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다소 소강되는 듯하였으나, 최근 기계군단의 습격이 늘며 티파티에 대한 비토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음 역시 알고 있었다.
"응? 나기 쨩. 이거는 나기 쨩이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 거짓말이죠?"
"아니 아무래도 제목을 보니 이건 나기 쨩 것 같아서..."
건네는 미카의 표정을 읽은 나기사는 이것이 단지 미카가 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전투 보고서...?)
정의실현부에서 온 전투 보고서였다. 나기사는 천천히 밑줄을 쳐가며 내려 읽는다.
이내 그녀의 미간이 V자를 그리고 있음을 알아챈 미카가 조용히 질문한다.
"그... 심각한 일이야 나기 쨩?"
"하..... 오늘 들었던 이야기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겠지만, 일단 다른 학교에도 공유할 필요는 있어보입니다."
한숨을 내쉰 뒤, 나기사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기계군단에, 전차가 섞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여태 본 적 없는 모델이고, 심지어 양도 적잖다고 합니다."
"에? 전차? 그거야.... 아, 그건 나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었네☆"
"잘 끊어줘서 고맙습니다 미카?"
"칭... 찬 맞지?"
"어쨌든, 세이아 씨가 빨리 돌아와야겠어요. 아무래도 저희 셋이 머리를 맞대고 나서야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 보이네요. 하....... 일단, 좀 쉬었다 식사부터 할까요."
"아하핫! 스테이크 잘 먹을게☆"
깨발랄하게 뛰어가는 미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기사가 별안간 풋, 하고 웃는다.
그나마, 차량을 타고 올 때의 모습으로부터, 다시 말해 선생의 상태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지난번과 같이 선생이 신경 쓸 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탈진해버린 모습으로부터,
조금은 에너지를 되찾은 미카의 모습이 나기사의 유일한 위안거리였으니까.
(세이아 씨도 잘 하고 계셔야 할텐데요...)
~~~
20XX년 XX월 XX+98일 17:21
선생 치료 시작 98일째, 샬레 업무 구역
"...... 네, 여기까지가 미카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녀와, 저희가 걱정하고 있는 선생님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역시 미카는 모를리 없지."
"둘만의 비밀, 이라고 해야 할지요."
"그것보다는 뭐, 내 부주의라고 해야겠지."
멋쩍은 웃음으로 애써 상황을 무마하려는 선생이었다. 물론 그것을 지켜보는 세이아에게는 그 멋쩍음 역시도 고통의 분출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 또 결국 이런 전개라니.)
선생의 입장에서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의 '괜찮은 척'에도 불구하고 그의 증상에 대한 소문 혹은 진실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럼 세이아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 선생님께서는, 제 직감을 믿으시는지요?"
"세이아도 내 학생이니까. 학생의 말을 믿어주는 건 당연하지."
"역시, 그런 쪽이군요. 그렇다면야...."
잠깐의 뜸을 들인 뒤 세이아는 과거 미카와 나기사에게 했던 자신의 직감, 그리고 거기서 보여준 삽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 그건 좀 슬프네."
"네. 슬픈 이야기지요. 저는 그렇기에 이번만은 제 직감이 그저 빗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이번 일과 결부지어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게 걱정이네. 아이들이 다치거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데."
".......... 그런 쪽이었습니까."
"물론, 세이아와 미카, 그리고 나기사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에게 주어진 의무가 있잖니."
늘 같은 상황, 늘 같은 대답. 다른 누군가가 그의 증상을 알고 걱정한다. 때로는 활동을 그만두거나, 혹은 몸조리를 할 것을 권유한다.
그럴 때마다 선생은 어른의 의무, 선생의 의무를 들어 정중히 거절한다. 역시 이번에도. 머니코드는 유효했다.
다만, 그 코드의 뒷 부분에 약간의 변주가 가미되는 것이 문제였지만.
"어른의 의무로 인해 어른 자신이 위기에 빠진다 하여도, 그것을 행함에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 그렇지."
(나라고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
"선생님."
"응, 세이아."
"..... 오늘의 저는 유물론*자가 되어야 할 것 같군요."
* 유물론: 세계의 구성요소로 물질을 제시하는 이론, 세계의 변화 역시 자연, 혹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연관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여긴다.
"이런, 철학은 젬병인데."
".... 선생님께서는 만에 하나, 제 직감이 끔찍한 방법으로 들어맞았을 때, 그 뒤에 대한 생각은 하셨는지요."
"....... 아이들도 언젠가는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겠지. 단지 그 시간이 조금 더 빨리 왔을 뿐. 그저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 뭐?)
어안이 벙벙해진 선생에게 세이아는 더 깊숙하게 주장을 꽂아넣는다.
"선생님은 그 존재만으로 키보토스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 또 그 이야기인가.)
"선생님의 행보에 모두가 주목합니다. 당신의 발걸음은 학교로 하여금 긴장상태에 놓이게 합니다. 물론 그 근원은 부정이 아닌 긍정과 경애에서 오는 것이겠습니다만은, 선생님의 사생활까지도 저희가 양지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선생님의 생각에만 비단 있지는 않겠지요."
"............."
(또... 또 같은 이야기...)
작금의 선생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것은 싯딤의 상자의 두 OS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 우려, 선배. 심박부 상승, 뇌파 불안정, 세로토닌 분비 감소 확인
- 선생님 빨리 필요시 약을 드셔야 해요!
그러나 둘의 목소리는 닿지 못했다. 이미 그의 머리에는
(..... 결국 또 또 또 같은 이야기. 대체....)
그간의 투병과, 괜찮단 연기의 장기화로 인해 생겨난 절제되지 않은 목소리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우려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몸을 아끼셨으면 하는 것이 저희의 바람입니다. 그것이 휴가의 형태를 띈다면 트리니티에서 총학생회에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 그렇구나."
(........... 나라고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느냔 말이야.)
긴 침묵 끝에 눈을 가볍게 감은 채로 선생이 입을 연다. 그러나 종전과 다른 점이라면
그의 목소리는 차분함을 넘어 차가운 수준으로 가라앉았다는 것.
"세이아는 현명하네. 응, 분명 그렇지. 맞아. 아마 내가 사라지면, 심지어 내가 죽어버리면, 그 때는 많은 아이들이 슬퍼하고 나와의 추억은 슬픔으로 귀결되겠지. 그것을 꺼내보려 하지 않을 것이고 더더욱 나와 함께하면 얻은 삶의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그래, 그 이야기는 이해하고 있고. 나 역시도 인지하고 있어. 하지만."
이내 선생이 눈을 뜨고 세이아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세이아는, 이 상태에서 내가 공식적인 방법으로 도움을 청하길 바라는거잖아?"
(그리고 넌 그 위험부담이 큰 일을 하라고 부추기고 있고.)
"..... 네. 그렇습니다. 그저 며칠이라도 몸을 녹이고, 쉬어갈 수 있는 방안이면 더욱 좋을 것이고, 이 부분은 티파티와의 논의가 끝이 난ㅡ"
"그럼 다른 학교는?"
"... 네?"
"말을 끊었구나. 미안해. 하지만 세이아. 세이아는 내가 그것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을 때의 파동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구나."
(이런 이야기를 대체 몇 번째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의 목소리 톤이 다소 올라온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여전히 가라앉아있었다. 그 분위기는 세이아마저 압도되어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
"내가 당장 나가서 이런 사정으로 아프다는 걸 공표해보자. 그럼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티파티의 보안이 삼엄한들, 그곳이 완벽히 격리된 곳이 아닌 이상 그건 무의미하겠지? 그럼 더 큰 문제가 발생해. 무엇일까?"
"... 서, 선생님....."
"학교 간의 불균형이 발생하겠지. '왜 티파티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논란은 '왜 트리니티가?'로 이어질거고, 그 다음은 '왜 우리는?'으로 확산되겠지? 그렇지 않겠니?"
세이아는 차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학교에 따라선, 그래 그럴 수 있지. 트리니티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모든 학교가 그렇게 반응한다면 에덴조약을 굳이 체결했어야 할까?"
"....... 죄송합ㅡ"
"입원은 어떻게든 넘어가보자고. 하지만 만약 내 몸상태가 공무를 수행하기 어려워 요양이 필요하다고 여길 정도임이 밝혀졌을 때, 학생들의 생각이 과연 하나로 통일될까? 당장 너희 셋도 의견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데?"
머니 코드의 변주가 점차 격정적인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세이아의 말을 두 번이나 끊고, 아주 조금이지만 분노마저 서려있는 선생의 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마음 속의 목소리는 어느새 그의 발언의 방향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사유를 붙이자면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투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존감의 하락, 자기 불신, 그리고 예민함 등. 그리고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과 '나가서 사람이라도 만나'와 같은 도움 안 되는 조언도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이미 극구 반대하던 솔루션이 계속해서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것 자체도 크나큰 스트레스였다. 불행히도, 이미 악화일로를 걷는 선생에게 생겨난 '목소리'를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은 많지 않았을 뿐.
"내가 아픈 것이 온전히 내 탓이라고 한다고 하면, 평소의 나를 아는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 그래, 솔직히 말할게. 업무의 양은 원래 있던 세계의 그 어느 곳보다 많다고 자신해. 그런 상황에서 과연 총학생회가 타겟이 되지 않을까? 이미 위.상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총학생회가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니? 트리니티에 있다는 사실은 다른 학교로 하여금 '트리니티가 뭔가 캥기는 것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니냐'는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걸 트리니티가 감당할 수 있어? 아니, 트리니티의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야. 내가 납치당한 것이다,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런 소문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
한껏 쏟아낸 선생의 모습에 압도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의 말에 논리적 흠결이 없기에 무어라 답할 것이 없어서일까, 세이아는 줄곧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 나라고... 나라고 쉬고 싶고 도망치고 싶지 않겠냐고.... 응? 나라고, 키보토스의 모든 것을 익숙하게 여길 수 있을까? 정말 미안하지만, 나 역시도 사람인 이상 두려움을 느끼고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는 경계심이 있어. 그건 당연한 거잖니."
(그리고 너희는 내가 그 정도 생각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온 셈이지. 그렇지?)
마음 속의 목소리는 점차 그의 진짜 목소리와 그 의도가 일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 그리고 너희는 내가 그 정도 생각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온 셈이지. 그렇지?"
완전히 일치되고 말았다.
"ㅅ, 선생님.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진심으로...."
(내 고민의 깊이는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니?)
"내 고민의 깊이는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니?"
"선..... 선..... 선생니......"
(적어도, 적어도 세이아만큼은 이해해주리라 믿었어.)
"적어도, 적어도 세이아만큼은 이해해주리라 믿었어."
"아....... 아아......"
(그렇지만 결국 세이아에겐 나도 그 직감에 얽매인 사람일 뿐이었구나.)
"그렇지만 결국 세이아에겐 나도 그 직감에 얽매인 사람일 뿐이었구나."
- 풀썩
세이아가 결국 고개를 떨군다.
"죄, 죄송, 죄... 죄, 죄...죄송..."
의도하지 않은 것도 정답,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도 정답이었다. 단지 그녀의 잘못이라면, 그 날 그 자리에 거기 있었을 뿐.
"..... 미안하지만, 그 이야기는 들어주기 어려울 것 같구나. 더욱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 설령 그 직감이 참이라고 해도."
"........... 네. 죄송... 합니다..."
"........ 더 할 말은 없니?"
"네... 없습니다.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선생님....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늘.... 평안... 하시길..."
세이아가 가볍게 목례하고 뒷걸음으로 나간다. 그녀가 나간 문은 유난히 부드럽게 닫혔다.
"하아............"
- 선생님!!!!
".... 아로나?"
순간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별안간 큰 소리가 들린다.
- 선생님!!! 저희가 몇 번이나 불렀는 줄 아시는 거에요?!
"어, 어?"
- 긍정. 뇌파 불안정, 세로토닌, 도파민 및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율 상승, 현재 상태는 급격한 우울 에피소드입니다.
- 그래서 약을 드시라고 불렀던건데....
"미안... 내가 이런 건 잘 챙겨야 했는데."
- 부정, 저희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제서야 선생은 방금 전까지 본인이 세이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인지했다.
급격한 멘탈의 붕괴로 인한 감정의 격류,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있던 세이아의 걱정 어린 진심.
유감스럽게도 둘의 만남은 파국이 되었다. 단지 세이아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단 것.'
"...........아."
- 이미 택시를 타신 걸 확인해서 더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모모톡이라도 보내셔야 하지 않을까요...?
- 혼란. 현 상황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대한 의문 제기.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 프라나 쨩! 그래도 지금 상황은.....
"....... 미안하구나 얘들아. 너희들에게도 못 보일 추태를 부리고 말았어."
- 저희는 이해할 수 있어요. 선생님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세이아 씨가 걱정일 뿐이지.....
아로나가 그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위로를 건네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이아와의 대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애, 선생은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쓰러지듯 앉는다.
"아아.... 나란 새끼..... 미친 빡통 새끼...."
~~~
우울증에 관한 큰 오해 중 하나는 '우울증은 우울한 병이다'라는 인식일 것 같습니다. 물론 우울감과 스트레스 취약성, 무기력 등이 주된 원인이기도 하죠. 그러나 한편으로 우울증 환자들은 통칭 '급발진' 역시도 잦습니다. 스트레스 취약성과 이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질병에 대한 노출, 약의 부작용에 따른 호르몬 혼란, 심지어는 본인이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쉽게 무너집니다. 자연스레 감정의 격류가 되고, 그것은 대개 극심한 우울감의 연속과 무기력함으로 나타나지만, 반대로 감정의 격류와 이로 인한 분노, 언어폭력 등으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단지 화를 잘 내고 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우울증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참 살기가 힘든 세상이에요. 지금 제 상태의 유일한 장점은 이런 글이 잘 쓰인다는 점이겠습니다. 물론 그 반동으로 히마리와의 꽁냥꽁냥 스토리는 답보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쉽지 않습니다. 가끔 댓글로 죽을 때 죽더라도 완결은 하고 죽으라고 하는데, 일단 지금처럼 잘 쓰일 때 세이브 원고라도 좀 만들어보겠습니다. 다음 화는 다음 주에 다시 올라올 예정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환절기 건강관리 조심하시고, 내일도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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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으로 극한까지 몰리면 자기도 모르게 입이나 행동이 앞서는 기분... 잘 알고 싶진 않은데 잘 아는거 같아서 슬프다
뭔가 요즘 2장 들어와서 선생이 자기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파트를 볼 때마다 딱 그런 류의 글을 쓰는 저까지도 뭔가뭔가합니다


항상 글올라오는거만 기다리면서 잘보고있습니다
어유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째서 이 시간에 급발진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