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M #순애 #노아
원본 by ネンチャッキー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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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5>
<1> 일곱 통의 초안
23시 41분 7초.
방의 불을 끄고 53분이 지났다.
천장은 하얗다.
벽도, 커튼도, 덮고 있는 이불도 하얘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는 모두 똑같은 회색으로 보인다.
침대 옆 선반에는 작은 병이 하나 있다.
꽂혀 있는 얇은 막대기에서 비에 젖어 피어난 백합 같은 향기가 피어오른다.
이 방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은 그것뿐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유는 알고 있다.
오늘이 끝나지 않아서다.
16시 2분, 세미나 회의실.
유우카 짱이 내년도 예산안 파일을 연다.
16시 9분, 첫 번째 포스트잇.
18시 40분, 반성실 문 수리비 관련 유우카 짱의 계산기가 11번 연속으로 울린다.
20시 15분, 저녁 식사 대신 먹은 샌드위치.
유우카 짱은 계란 샌드위치 귀퉁이를 두 조각 남겼다.
22시 48분, 마지막 숫자가 맞아떨어지고, 유우카 짱이 크게 기지개를 켠다.
"노아,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기숙사는 바로 앞이니까요."
눈을 감으면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나는 잊지 않는다.
잊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본 것은 본 그대로, 들은 것은 들은 그대로 남는다.
낮에는 그게 문제 될 일이 없다.
곤란한 것은 이런 밤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에서는 기억이 가장 최근의 사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계산기 소리가 11번.
다시 셀 생각도 없는데 또다시 11번.
42분.
책을 읽으려고 해봤다.
머리맡의 등을 켜고 세 페이지.
머릿속에서 내 목소리로.
내 목소리는 글자 너머를 투과해 버리는 모양인지,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이야기 속 풍경이 아니라 회의실의 형광등이었다.
불은 껐다.
43분.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모모톡 맨 위에는 선생님의 이름이 있고, 마지막 대화는 3일 전 17시 32분, 당번 확인.
입력창에 친다.
『선생님, 아직 깨어 계신가요?』
지운다.
깨어 계실 게 뻔하다.
이 시간이라면 선생님은 아직 샬레에서 서류 더미 앞에 있을 테고, 뻔히 아는 것을 확인하는 문장에는 의미가 없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지운다.
실례인 걸 안다면 보내지 않아야 맞다.
『조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운다.
딱히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
『잠이 안 와서』
네 번째도 지웠다.
다섯 번째는 마침표 앞에서, 여섯 번째는 첫 글자에서 지워진다.
일곱 번째에는 아무것도 치지 않은 채 입력창에서 깜빡이는 세로줄을 10초 동안 바라보았다.
글자는 남는다.
보내면 선생님의 화면에도 내 화면에도, 23시 40몇 분에 우시오 노아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계속 남는다.
목소리라면 남지 않는다.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은 23시 46분 51초.
신호음이 한 번 반.
『…노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목소리 너머로 종이가 스치는 소리, 펜을 내려놓는 소리, 의자 등받이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역시 집무실이다. 이 시간에 아직도.
"선생님이야말로 아직 일하고 계신가요?"
『아…응. 이제 조금만 하면 끝나.』
"30분 전이라 해도 똑같이 말씀하실 생각 아니셨나요?"
『…보고 있었어?』
"아니요. 추리예요."
선생님이 작게 웃는다.
전화 너머로 들으니 평소보다 조금 낮게 들린다.
『그래서, 노아는?』
"……."
용건을 정리해 두지 않았다.
초안은 7통이나 썼으면서.
"조금만 어리광을 부려도 용서해 주시겠어요?"
『물론이지.』
빠르다.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아직 내용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노아라면 대충 다 괜찮아.』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예상대로의 대답에 가슴 한구석이 예상보다 조금 더 따뜻해진다.
이것은 기록하지 않는다.
"잠이 안 와서요."
『어라.』
"오늘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서요.
…그러니까, 선생님 목소리로 뭔가 읽어주시지 않을래요?"
말하고 나서 덧붙이고 싶어졌다.
"선생님은 잠들지 못해 곤란해하는 학생을 내버려두거나 하지는……."
않으시겠죠, 까지 말하려다 그만둔다.
"…방금은 조금 치사했네요."
『치사하지 않아.』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이어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장소 좀 옮길게.』
발소리가 14보.
문고리가 돌아가고, 경첩이 조금 높은 소리를 낸다.
아는 소리였다.
샬레 휴게실 문은 열릴 때 딱 한 번 소리가 난다.
이어서 침대 스프링이 가라앉는 소리.
그 침대다.
선생님이 앓아누웠던 날, 내가 방을 치우고, 수프를 끓이고, 한밤중에 곁에서 책을 읽어주었던.
선생님은 지금 그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다.
아마도 그날 밤 내가 누워 있던 쪽에.
『기다렸지. 노아, 이불은 제대로 덮고 있어?』
"네, 덮고 있어요."
『불은?』
"꺼져 있어요. 처음부터."
『스마트폰 화면은?』
"……,"
머리맡을 비추고 있는 건 손에 든 이 화면뿐이었다.
"…지금 어둡게 했어요."
『좋아.』
아까 내 말을 빌리자면, 이번에는 선생님이 치사했다.
<2> 색깔이 깃든 목소리
『그럼 읽을게. …요전번의 답례야.』
책장 넘기는 소리.
종이가 두꺼운 걸 보니 문고본은 아니다.
조금 큼지막한 책이다.
『「별. 프로방스 목동의 회고」』
숨이 멎었다.
첫 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제목만으로 알 수 있다.
그날 밤, 휴게실에서 내가 읽어주었던 책.
선생님이 앓아누운 채 무언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노아에게밖에 부탁할 수 없다고 했던 그 밤의.
『그 책, 제목이 뭐였는지 다음 날 물어봤었잖아. 그 뒤에 샀거든.』
"…그랬었죠."
기억한다.
다음 날 14시 20분, 선생님이 커피를 내리러 일어나기 조금 전.
제목을 대답하면서 나는 아주 조금 걱정했었다.
선생님은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잠들어버렸으니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자, 그럼 시작할게.』
『「뤼브롱 산에서 가축을 돌보던 시절, 나는 몇 주일 동안이나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한 채 지내곤 했다……,」』
능숙한 낭독은 아니었다.
'뤼브롱'의 '브'에서 더듬거리고 다시 읽는다.
쉼표가 없는 곳에서 숨을 쉬고, 쉼표가 있는 곳에서는 숨 쉬는 걸 잊어서 문장 끝에 가선 조금 버거워한다.
2주에 한 번, 산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는 노새를 당나귀라고 잘못 읽었다.
"노새, 예요."
『어?』
"노새요. 한자로 그렇게 적혀 있잖아요. 당나귀랑은 다른 동물이에요."
『노아, 책 보여?』
"아니요. 외우고 있을 뿐이에요."
『…그럼 내가 읽어주는 의미가.』
"있어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전화 너머에서 선생님이 입을 다문다.
2초.
페이지 끝을 손가락으로 다시 짚는 소리가 났다.
『…노새. 노새가 식량을 싣고 온다.』
다시 고쳐 읽고, 선생님은 다음을 이어 나갔다.
내가 읽으면 글자는 투명해진다.
언젠가 선생님이 말해준 대로라면, 듣는 사람은 말 너머의 풍경을 보게 된다.
산비탈이나, 양 떼나, 오두막의 창문 같은 것들을.
선생님이 읽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뤼브롱 산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휴게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선생님이다.
무릎 위에 책을 펴고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오른손 검지로 읽고 있는 줄을 짚고 있다.
아마도, 짚고 있을 것이다.
줄을 건너뛰지 않도록.
머리맡의 스탠드가 비스듬한 위쪽에서 책과 선생님의 손가락과 조금 굽은 등을 비추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직접 본 것은 아니다.
전화 너머의 일 같은 건, 단 하나도.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색깔이 있다고 생각한다.
투명하지 않은 만큼 글자 너머의 풍경 대신 목소리의 주인이 보인다.
회의실의 형광등은 어느새 꺼져 있었다.
『「그 일요일, 식량을 싣고 온 것은 늘 오던 농장 꼬마 녀석도 늙은 아주머니도 아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높아진다.
『「…아가씨였다. 스테파네트 아가씨, 바로 그분이었던 것이다!」』
목동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대목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까지 들떠 있다.
"후훗."
『…지금, 웃었어?』
"아니요."
『웃었지.』
"선생님이 즐거워 보이셔서요."
『즐거워. 노아한테 읽어주는 거.』
이것도 기록하지 않는다.
아가씨는 오두막 안을 둘러보고, 목동이 자는 짚 더미 잠자리와 양가죽을 들여다본다.
애인은 가끔 만나러 오느냐며 놀려대서 목동을 잔뜩 당황하게 만들고는 돌아간다.
그런데 산을 내려가던 도중, 소나기로 물이 불어난 소르그 강과 맞닥뜨린다.
저녁 무렵, 흠뻑 젖어 겁에 질린 채 아가씨는 산으로 되돌아온다.
이미 밤이 되었으니 농장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목동은 불을 피우고 양 우리에 아가씨의 잠자리를 만들어준 뒤, 자신은 밖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보초를 선다.
아가씨는 잠들지 못한다.
가축이 움직일 때마다 짚이 바스락거리고, 꿈꾸며 우는 소리도 들린다.
그럴 바엔 불 옆이 낫겠다며 밖으로 나온다.
잠들지 못한다, 는 대목에서 선생님이 읽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스테파네트도 잠이 안 왔나 보네.』
"본문으로 돌아가 주세요, 선생님."
『네.』
모닥불 곁에 둘이 나란히 앉는다.
밤의 산은 낮과는 다른 세계다.
샘물이 노래하는 소리는 맑고, 연못에는 작은 불꽃이 켜지며, 온 산의 정령들이 자유롭게 오간다.
『「저 별의 이름도 아나요, 목동님?」』
스테파네트의 대사가 나오면, 선생님은 매번 목소리를 반음 정도 올린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네 번쯤에서 세는 걸 그만두려 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다섯 번째.
목동이 별의 이름을 가르쳐준다.
하늘 한가운데를 흐르는 하얀 길은 생 자크의 길.
프랑스에서 곧장 스페인으로 뻗어 있으며, 사라센인과 싸우는 샤를마뉴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 성 야고보가 그어놓은 것.
그 너머, 네 개의 빛나는 바퀴 축을 가진 것이 영혼의 수레.
앞서가는 세 개의 별이 세 마리의 짐승이고, 세 번째 별 바로 옆의 작은 별이 마부.
『「조금 더 아래쪽에 보이는 게 쇠스랑.
세 명의 왕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 목동들에겐 시계나 다름없죠.
저것만 봐도 벌써 한밤중이 지났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0시 4분 20초.
목동은 별로 시간을 읽는다.
내 시계는 머릿속에 있어서 단 1초도 어긋난 적이 없다.
이야기는 장 드 밀랑으로 넘어간다.
별들의 혼례식 밤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먼저 떠난 일행을 따라잡지 못해, 화가 나서 지팡이를 내던진 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동의 별.
새벽에 양 떼를 몰고 나갈 때도, 해 질 녘에 데리고 돌아올 때도 늘 하늘에 떠 있는 마글론.
『「마글론은 피에르 드 프로방스를 뒤쫓아가서, 7년마다 결혼한답니다.」』
『「어머나! 목동님, 별들도 결혼을 해?」』
여섯 번째.
『7년에 한 번이래.』
선생님이 책 밖에서 말했다.
"…7년은 기네요."
『그래?』
"별들의 사정은 모르겠지만요. 일반론적으로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너무 길다고 생각해요."
『일반론이라.』
"일반론이에요."
책장 넘기는 소리.
열일곱 번째.
"선생님."
『응?』
"이렇게 듣고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선생님이 이쪽으로 와 주시면 훨씬 더 빨리 잠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요."
말을 마치고 후훗, 하고 웃을 준비를 한다.
농담이에요, 라고 덧붙일 준비도.
늘 하던 절차.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갈까?』
준비해 두었던 '농담이에요'가 목구멍에서 턱 막힌다.
진지한 목소리였다.
놀림받고 당황할 때의 목소리가 아니다.
책을 덮는 소리마저 들린 것 같았다.
아마 정말로 덮으려 했을 것이다.
"…후훗."
웃는 타이밍이 늦었다.
늦었다는 걸 들키지 않게끔.
"농담이에요. 기숙사 통금 시간은 선생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아, 그렇지. …맞아.』
아쉬운 듯 들린 것은 분명 내 기록의 오차일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내 입이 멋대로 말을 잇는다.
"목소리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해요."
『…그래.』
책을 다시 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올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3> 어깨
밤이 깊어간다.
모닥불 앞의 스테파네트는 조금씩 조용해지고, 선생님의 목소리도 그에 맞춰 조용해져 간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목동에게 감화된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무언가 서늘하고 보드라운 것이, 내 어깨에 살포시 무게를 더하는 것이 느껴졌다.」』
느릿느릿한 낭독이었다.
『「졸음으로 무거워진 아가씨의 머리가 내게 기대어 온 것이었다.
리본과 레이스와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사랑스러운 옷깃 스치는 소리를 냈다.」』
목동은 움직이지 않는다.
별이 하얗게 빛을 잃고 아침 햇살에 지워질 때까지 그대로 있는다.
가슴속은 조금 술렁거렸지만, 맑은 밤이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우리 주위에서는 별들이 커다란 양 떼처럼 얌전하고 고요하게 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선생님이 잠든 대목이 여기다.
별들이 마치 양 떼처럼.
거기까지 읽었을 때,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투명하고 예쁘다고 했다.
글자 너머를 상상할 수 있다고.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고, 잠시 후 선생님의 대답이 끊겼다.
0시 49분.
숨소리는 1분에 14번.
아무도 듣지 않는 한밤중의 방에서 나는 마지막 한 문장을 읽었다.
그 한 문장이라면 일점일획까지 다 안다.
원문도, 번역문도.
책에는 '어깨'라고 적혀 있다.
가장 가냘프고,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잠든 것이라고.
나는 '발끝'이라고 읽었다.
잘못 읽은 게 아니다.
나는 잘못 읽지 않는다.
우시오 노아가 태어난 이래 단 한 번, 알고 있으면서도 정확하지 않은 쪽을 선택한 기록.
그날 밤, 나는 선생님 옆에 누워 턱을 괸 채 책을 펴고 있었다.
잠들어버린 선생님의 머리는 내 어깨에서 손바닥 하나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위치만 따지자면 책에 적힌 그대로였던 셈이다.
길을 잃었다, 는 대목까지도.
키보토스 밖에서 와서 몸져눕고는 당번도 아닌 내가 올 때까지 홀로 앓고 있던 사람에게 그토록 잘 어울리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읽을 수 없었다.
잠든 사람 바로 옆에서 "내 어깨에"라고 소리 내어 말해버리면, 그건 더 이상 이야기 속 한 문장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양 떼’ 대목까지는 이야기의 대사로서 읽어놓고.
마지막 한 문장만큼은 목동의 공상이 아니라 내 눈앞에 있는 현실로서 말했다.
어깨를 발치로 바꿔 읽은 건 아마도 그에 대한 보상 기재였을 것이다.
『「…별들 중 하나, 가장 가냘프고,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잠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깨, 라고 선생님은 읽었다.
그렇게 적혀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한 단어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것 같은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끝.』
탁, 하고 책이 덮인다.
『노아? 자?』
"…깨어 있어요."
『그렇구나. …어땠어?』
"노새가 1번.
쉼표 위치 잘못 4번.
줄을 1번 건너뛰셨고요.
스테파네트의 대사에서 목소리를 높이신 게 11번."
『그걸 다 세고 있었어!?』
"세어버리게 되거든요."
『…잠은 아직도 안 와?』
"아니요."
거짓말이 아니다.
눈꺼풀이 조금 무겁고, 눈을 감아도 더 이상 형광등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다행이네.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가벼워진다.
『저번에 노아가 읽어줬을 때. 나 끝까지 못 들었잖아. 중간에 자버려서.』
"…네. 알고 있어요."
『노아는 마지막에 어떻게 읽었어?』
숨이 멎었다.
오늘 밤 두 번째로.
선생님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거짓말은 할 수 있다.
원문 그대로 읽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선생님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다.
발치라고 읽었어요, 선생님이 잠들어 계셔서요, 라고.
어느 쪽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기억 안 나요."
전화 너머로 선생님이 웃는다.
『노아가?』
"네."
『노아가 기억 못 하는 것도 있어?』
"우시오 노아에게도 기억나지 않는 것쯤은 있어요."
『…그렇구나.』
그 이상 선생님은 묻지 않았다.
믿는 눈치는 아니다.
평소엔 둔감한 주제에, 이럴 때만 예리해지니 곤란하다.
기억나지 않는 것 따위 단 하나도 없다.
0시 51분 30초, 나는 발치라고 읽었다.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어 베개 위에 놓았다.
왼쪽 어깨 바로 옆, 고개를 조금 기울이면 뺨이 닿는 곳.
화면의 불빛이 하얀 베갯잇에 작은 사각형을 드리운다.
"선생님."
『응.』
목소리가 어깨 부근에서 들려왔다.
"마지막 부분만 한 번 더 읽어주시겠어요?"
『그래.』
책을 펴고 페이지를 찾는 소리.
『「…별들 중 하나, 가장 가냘프고,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어깨 부근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난다.
『「내 어깨에 내려앉아 잠든 것이라고.」』
눈을 감는다.
뺨을 아주 조금 왼쪽으로 기울인다.
화면은 조금 따뜻했다.
『노아.』
"…네."
『다음에 또 노아가 읽어줄래? 다음엔 끝까지 깨어 있을 테니까.』
"……."
다음, 이라.
"네. 그때는─"
정확하게 읽을게요, 라고 하려다 삼켰다.
"…그때는, 주무시지 마세요."
『노력할게.』
<4> 하얀 방의 토끼
『하나 더, 짧은 거 읽어줄까?』
"…부탁드려요."
내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대답이 나왔다.
『같은 책의 첫 번째 단편, 「이사」.』
페이지가 한참 앞쪽으로 넘어간다.
『「가장 먼저 놀란 건 토끼들이었다.」』
오랫동안 빈집이었던 풍차 오두막에 토끼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본부 같은 걸로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화자가 이사 온 첫날 밤, 달빛 아래에서 스무 마리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앞발을 데우고 있었다.
천창을 열자마자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수풀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토끼는 달빛으로 앞발을 데우나 봐.』
"따뜻해지지 않을 거예요. 달빛이니까요."
『이야기니까.』
"…그렇겠네요. 이야기니까요."
풍차 오두막 2층에는 늙은 부엉이가 있다.
20년째 살고 있는 터줏대감으로, 음침한 얼굴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머리를 얹고 있다.
부서진 회반죽과 기와 사이, 풍차 축 위에 꼿꼿이 앉아 둥근 눈으로 화자를 쳐다보며 부엉, 하고 울더니 회색 날개의 먼지를 털어낸다.
『「나는 곧바로 녀석과의 임대 계약을 갱신해 주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웃고 있다.
『「2층은 지붕으로 드나드는 녀석에게 맡기고, 나는 아래층 방을 쓰기로 했다.
석회로 하얗게 칠한 작은 방으로 수도원 식당처럼 천장이 낮다.」』
『하얀 방이래.』
"…네."
『노아 방 같네.』
"제 방은 천장이 낮지 않아요."
『그쪽이었어?』
"네."
선생님이 웃는다.
어깨 부근에서.
눈을 감은 채 내 방의 하얀색을 떠올린다.
천장, 벽, 커튼, 이불.
선반 위의 작은 병과 베개 위의 네모난 불빛.
오늘 밤 이 방은 아마 아주 조금 하얗지 않을 것이다.
0시 26분.
몇 초였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조금 뒤의 일이다.
『노아, 목소리 졸려 보여.』
"…안 졸려요."
『졸려 보여서 귀엽네.』
"…귀엽다는 말은,"
기록 대상에서 제외할게요, 라고 받아칠 생각이었다.
"…귀엽다는 말은, ……."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단어들이 느릿느릿하게밖에 배열되지 않는다.
선생님이 또 웃었다.
이번엔 소리 내지 않고.
전화 너머로도 알 수 있다.
선생님은 계속 읽어 내려간다.
화자는 그 하얀 방에서 문을 활짝 열어둔 채 햇살 속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눈앞에는 빛에 반짝이는 소나무 숲이 비탈을 내달린다.
저녁이 되면 근처 농장으로 알프스에서 여름을 난 양 떼가 돌아온다.
0시, 31분.
인 것 같다.
"선생님."
『응.』
"통화는…제가 잠든 뒤에 끊어주세요."
『알겠어, 근데 왜?』
"잠든 시각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요."
『그건 노아한테 무리 아니야? 자고 있을 텐데.』
"…그러니까."
말이 조금 늦게 따라온다.
"선생님이 기록해 주세요."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내 기록을 남에게 맡긴 적은 없다.
유우카 짱에게도, 회장님에게도.
우시오 노아의 시간을 아는 건 언제나 우시오 노아뿐이었다.
『알았어.』
선생님이 말했다.
『제대로 보고 있을게.』
전화인데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선생님의 손가락을 보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선생님이 다시 읽기 시작한다.
양 떼가 산에서 돌아와 시끌벅적하게 줄을 지어 농장 문 아래로 흘러 들어간다.
개들이,
개들이, 무엇을 했더라.
알고 있었을 터였다.
일점일획까지.
알고 있었을, 터인데.
어깨 부근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의 형태가 풀어지고, 소리만이 남아간다.
백합 향기.
화면의 온기.
『…노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잘 자, 노아.』
그리고 조금 더 무언가.
제일, 이라고 들린 것 같았다.
그 뒷말을, 나는
<5> 공백
잠에서 깼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시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 동안 천장을 올려다본 채로 있는다.
하얀 천장.
밝아진 커튼 가장자리.
선반 위의 백합 향기.
왼쪽 어깨 곁에 스마트폰.
6시 2분.
화면을 보고 알았다.
초는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통화 기록이 남아 있다.
통화 시간, 2시간 41분 33초.
23시 46분에 걸어서 끊긴 것은 2시 28분.
기억에 남은 마지막 시각은 0시 31분이고, 그마저도 '아마'가 붙는다.
그 이후는 없다.
계산해 보면 1시간 57분.
내 기록에 이렇게 커다란 구멍이 뚫린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구멍 너머에서 선생님이 무엇을 읽고, 무슨 말을 했으며, 어째서 2시간 가까이나 통화를 끊지 않았는지 나는 모른다.
모모톡에 알림이 2개.
첫 번째는 2시 28분.
『0:38』
그것뿐. 0시 38분.
내가 잠든 시각.
초가 없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분까지만 있다.
선생님답다.
선생님의 기록은 언제나 내 것보다 엉성해서 나로서는 절대 쓸 수 없는 한 줄이었다.
두 번째는 6시 정각.
『안녕. 푹 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정각에 도착한 건 알람을 맞춰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2시 반에 주무시고 6시에 일어나신 걸까.
오늘 나는 당번이 아니지만, 점심 전에 샬레에 한 번 얼굴을 비추기로 했다.
커피는 연하게 타야겠다.
입력창에 친다.
『좋은 아침이에요. 기록, 감사합니다.』
보내고 이어서 친다.
『하나만 확인하게 해주세요.
0시 38분부터 2시 28분까지, 선생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읽음 표시가 뜰 때까지 40초.
『그 건에 관해서는』
『구두로는 청구되지 않으니, 제대로 서류를 갖추어서 신청해 주세요.』
침대 위에서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아무도 없는 하얀 방에 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 대사다.
일점일획, 내 대사.
선생님의 현재 위치를 예측하는 기기의 특허를 무효로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돌려준 말.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까지 기억하고 있다.
웃으면서 문득 생각한다.
그 1시간 50분 동안, 선생님은 내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건 딱히 상관없다.
숨소리 정도야 얼마든지 들으셔도 괜찮다.
하지만.
우시오 노아가 잠꼬대를 했는지 어떤지는, 우시오 노아의 기록에 없다.
제일, 이라고 들렸던 그 목소리는 정말로 선생님의 것이었을까.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하얀 베갯잇에서 희미하게 백합 향기가 났다.
『…삐질 거예요.』
답신을 보내고 나서 화면을 가슴에 품은 채 조금 더 누워 있었다.
8시 12분, 세미나 회의실에 도착한다.
유우카 짱이 먼저 와서 어제 세운 예산안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고 있다.
"안녕, 노아. …어라."
"좋은 아침이에요, 유우카 짱."
"왠지 안색이 좋네. 어제 그렇게 늦게까지 있었는데."
"후훗. 푹 잤거든요."
"흐음……."
유우카 짱의 눈이 조금 가늘어진다.
장부의 숫자가 맞지 않을 때의 눈빛이다.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요."
"거짓말. 노아가 그런 얼굴을 할 때는 무조건 뭔가 있는 거란 말이야."
"어떤 표정인데요?"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
내 얼굴은 나 스스로 볼 수 없다.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좀 더 자세히 봐둘 걸 그랬다.
"오늘은 서류를 한 장 작성해야 해서요."
"서류? 무슨 서류?"
"유우카 짱에게는 구두로 답변해 드릴 수 없답니다♪"
"뭐어!?"
항의를 한 귀로 흘려듣고 자리에 앉는다.
서류의 양식은 머릿속에서 금세 완성되었다.
청구자, 우시오 노아.
청구 대상, 0시 38분부터 2시 28분까지의 통화 내용.
청구 사유─
거기서 손이 멈춘다.
알고 싶지 않을 리가 없다.
선생님이 그 뒤로 무엇을 읽고, 무슨 말을 했는지.
'제일'에 이어지는 내용은 꿈이었는지.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버린 건 아닌지.
하지만, 전부 알아 버린다면 그 1시간 50분도 내 기록의 일부가 되고 만다.
지금은 아직 선생님에게만 기록이 남아 있다.
초 단위는 생략한 채 분 단위로, 조금은 투박하게.
서류는 작성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도 사실 하나쯤은 간직해 두기로 한다.
그날 밤, 휴게실에서 '어깨'를 '발치'라고 읽었던 일.
선생님은 모르는 나만의 한 문장.
이것으로 서로 마찬가지다.
다음에 선생님께 책을 읽어드릴 때는 정확히 읽어야겠다.
단 한 단어도 틀리지 않게.
선생님이 끝까지 깨어 있더라도,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그 결심만은 오늘 아침 날짜로 기록해 둔다.
가장 가늘고, 가장 밝은 별이, 길을 잃어─
어깨에, 라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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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