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것은, 텐도 케이가 처음으로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을 접했을 때의 이야기다.
‘음... 나는 4세대가 가장 재밌던데. 처음 해본 포켓몬이라 그런가?’
단언컨대, 절대 선생님이 가장 좋아해서 이 버전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절대 아니었다. 그저 선생이라는 타인에게 추천을 받았기에 하는 것 뿐이다. 그래,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케이는 유즈에게서 빌려온 낡은 빨간색 레트로 닌텐도 3DS를 손에 쥐고 게임을 시작했다.
화면 너머의 마박사가 물어본다.
‘자네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를 골랐고, 이어지는 질문에 응했다.
‘당신의 이름은?’
망설임 없이 자판을 꾹꾹 눌러 ‘케이’를 입력했다. 그리고 다음 난관이 찾아왔다.
‘친구의 이름은?’
케이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리스... 아리스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지만, 감히 ‘친구’라는 소박한 단어 하나로 칭할 수 있는 대상일까?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화면 속 친구 캐릭터의 머리색이 노란색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이름은 ‘모모이’다.
오프닝이 끝나고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가방 안에서 빛나는 세 개의 몬스터볼.
‘자! 어떤 포켓몬으로 할지 선택하거라!’
모부기, 불꽃숭이, 팽도리. 세 마리의 스타팅 포켓몬을 앞에 두고 케이는 또다시 고뇌하기 시작했다. 방향키를 누르며 3분 동안이나 세 마리의 순서를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다 너무 귀여웠다.
“끄으으으으으......”
케이는 신음 끝에 결국 풀타입의 모부기를 골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생 최대의 고민.
‘모부기에게 닉네임을 지어주겠습니까?’
“닉네임......”
케이는 장고 끝에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정성스레 활자를 입력했다.
‘새싹이’
액정 화면에 뜬 그 소박하고 직관적인 이름을 보며, 케이는 가슴을 펴고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완벽한 명명이었다. 자부심을 충전한 채 스토리를 진행하려 하자마자, 노란 머리의 라이벌이 화면을 가로막았다.
‘너 늦으면 벌금 100만 원이야!!’
모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열이 뻗쳐왔다. 고증이 지나치게 잘 된 기분이었다.
짜증을 가라앉히며 스토리를 계속 진행했다. 광휘라는 소년이 나타나 몬스터볼로 포켓몬을 잡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그 모습을 본 케이는 자신만의 엔트리를 구축하기 위해 포켓몬을 더 잡아야 할 필요성을 직감했다.
케이는 수풀 속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자신이 처음으로 포획할 운명의 포켓몬을 탐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첫 번째 야생 포켓몬.
띠리리리리링~
기괴하고도 독특한 울음소리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것은 조그만 빨간색 벌레 포켓몬이었다.
그리고 케이는, 본인은 한사코 부정하겠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강렬한 이끌림을 느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모부기의 몸통박치기를 한 방 날렸다. 상대의 체력 게이지가 아슬아슬하게 빨간색까지 줄어들었다. 완벽한 타이밍. 케이는 즉시 몬스터볼을 투척했다. 화면 속의 볼이 좌우로 세 번 흔들리더니, 이내 효과음과 함께 완전히 고정되었다. 포획 성공이었다.
‘잡은 귀뚤뚜기에게 닉네임을 지어주겠습니까?’
또다시 찾아온 인생일대의 고민 시간. 케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귀뚤이’
레벨은 고작 2짜리 포켓몬.
케이는 당당하게 선봉으로 귀뚤이를 내세워 야생의 비버통과 마주했다. 그리고 기술 칸을 누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게 뭐죠?!”
케이는 경악했다. 활성화된 기술 창에는 오직 ‘참기’라는 기술 단 하나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황당함 속에 기술 설명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2턴 동안 공격을 견뎌 입은 데미지를 2배로 만들어 상대에게 돌려준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메커니즘에 놀라는 사이, 야생 비버통의 몸통박치기가 귀뚤이를 공격했다. 레벨 2의 나약한 육신은 그 일격만으로도 체력의 절반 가까이가 날아갔다.
‘귀뚤이는 참고 있다.’
진짜로 참고만 있을 뿐, 화면 속 벌레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명령을 내린 처지였지만 기가 찼다.
그리고 자비 없이 이어지는 비버통의 두 번째 몸통박치기. 그리고 화면 상단에 떠오른 문구.
‘급소에 맞았다.’
두 번 참기도 전에, 귀뚤이는 그대로 무력하게 기절해버렸다.
“......”
케이는 말을 잃었다. 닌텐도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게 뭐예요!!!”
이윽고 부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기술이 고작 이거 하나라고? 아니,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시스템인가? 첫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버티지도 못하고 참기만하다가 쓰러지는 포켓몬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케이는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약하다는 것은... 포텐셜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 아닐까요?’
케이는 빈약한 포켓몬 상식을 지녔지만, 오직 튀어오르기밖에 쓰지 못하는 쓸모없는 잉어킹이 진화하면 갸라도스가 된다는 것은 안다.
대기만성. 초반에 이토록 무력하고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그런 과의 숨겨진 사기 포켓몬이라는 증거였다.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케이는 다시 눈을 빛내며 풀숲을 샅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직 '참기' 하나만으로 스토리를 꾸역꾸역 진행한 지가 벌써 지루한 한 시간. 마침내 귀뚤이는 레벨 10에 이르렀다.
‘...오잉!? 귀뚤이의 모습이...!’
드디어 왔다!
‘귀뚤이는 귀뚤톡크로 진화했다!’
생애 첫 진화다.
그러나 케이는 진화의 빛이 걷힌 화면을 보고 실망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의 귀여운 곤충 외형은 어디가고, 무슨 수염이 난 이상한 벌레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귀뚤이는 귀뚤이다.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다.
케이는 진화한 귀뚤톡크의 닉네임도 변함없이 다시 ‘귀뚤이’로 바꾼다. 이 정도까지 키웠으면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진행해도 되겠지.
그렇게 지역을 이동하다 보니, 라이벌 모모이가 가로막으며 등장했다.
모모이의 선봉은 찌르꼬. 하지만 진화한 귀뚤톡크는 이제 새로운 기술인 ‘연속자르기’를 사용한다. 사용하면 할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기술의 특성. 그리고 찌르꼬와의 레벨 차이와 진화가 독보적으로 빠른 귀뚤톡크의 특징 상, 상성상 불리한 모모이의 스타팅 불꽃숭이까지 낙승으로 이길 수 있었다.
역시! 자신의 계산이 맞았다. 사기 포켓몬이다! 이 정도 압도적인 화력이라면 엔딩까지도 금방일 것이다!
***
며칠 뒤.
“아리스! 우리 왔... 어라?”
모모이, 미도리 그리고 유즈는 게임개발부 부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부실 안에는 아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케이를 볼 수 있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케이를.
“어라... 케이?”
케이의 입에선 대답이 없었다.
“케이?”
모모이가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죽여버리겠어요!!! 모모이!!!”
“끄아아아아아!!!”
케이가 전광석화처럼 모모이에게 달려들어 목을 부여잡았다. 미도리는 이번에도 모모이가 무언가 크게 잘못했겠거니 생각하며 슬며시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케이... 어라?”
바닥에는 3DS 화면이 켜진 채 뒹굴고 있었다. 방금 포켓몬들의 체력을 회복시킨 건지 화면 속 캐릭터는 포켓몬 센터에 서 있었다.
“죽여버리겠다고요!!! 당장!!! 우리 귀뚤이를!!!!!!”
귀뚤이? 미도리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포켓몬 센터 밖으로 캐릭터를 이동시켜 보았다. 화면 속 배경은 운하시티다.
“아마 포켓몬 때문에 그러는 거 같은데...”
“미도리... 혹시 내가 한 번 봐봐도 될까?”
유즈가 조심스럽게 포켓몬 엔트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유즈는 목격했다. 정말이지 심각하기 짝이 없는 라인업의 포켓몬들을.
[귀뚤이 / 새싹이 / 빠삐코 / 와ㅋ / 덩쿠리]
[귀뚤톡크 / 토대부기 / 파비코리 / 왕콘치 / 덩쿠림보]
유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자기가 아주 어렸을 때 처음 포켓몬을 해봤을 때도 이런 절망적인 라인업은 쓰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그때는 척 봐도 강해 보이는 녀석들을 골라 썼고, 엔트리도 6마리를 꽉 채웠으니까.
“...케이. 혹시 라이벌한테 막힌 거야?”
만약 처음에 모부기를 골랐다면, 라이벌 모모이의 스타팅은 불꽃 타입인 초염몽이 된다. 게다가 비행 타입인 찌르호크까지 가지고 있으니, 현재 케이의 풀과 벌레 위주의 라인업으로는 두 마리의 지옥 같은 화력을 넘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모모이가!!! 모모이가!!!”
설마 라이벌 이름을 진짜로 모모이로 해둔 것일까?
“하아... 케이 일단 진짜 언니 잘못도 아니잖아. 일단 풀어봐.”
미도리의 이성적인 중재에 케이는 모모이에게 걸었던 헤드락을 풀었다. 모모이는 켁켁거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케이. 혹시 왜 5마리만 잡은 거야?”
“그야... 포켓몬은 친구잖아요...”
그 오글거리는 대사를 뱉고는 자신도 민망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는 케이였다. 유즈는 케이가 무슨 순수한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친구니까 함부로 버릴 수도 없다. 그 뜻일 것이다.
“그리고 왕콘치 이름은 왜...”
“...그게, 지어 줄려다가 자판 버튼을 잘못 눌렀어요.”
“......”
‘와ㅋ’라는 기괴한 이름의 왕콘치를 보며 유즈는 침묵했다.
“유즈. 혹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흠... 그건...”
유즈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차였다.
“한카리아스와 루카리오를 키우면 됩니다! 케이!”
어느 순간 튀어나온 아리스가 양손을 번쩍 들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아, 아리스? 하지만 이미 포켓몬은 5마리라 두 마리를 더 잡을 수가...”
“귀뚤톡크를 놓아주시면 됩니다!”
그 무자비한 해결책을 들은 케이의 표정이 비극적으로 일그러졌다.
“귀뚤톡크는 케이와의 모험을 하기엔 너무 약한 것입니다!”
아리스는 그저 해맑았다. 케이의 머릿속으로 귀뚤톡크와의 눈물겨운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 하지만...’
효과가 굉장했을 때도.
델레레레~ 우웁~
“하지만... 귀뚤이는... 레벨 2부터....”
효과가 별로였을 때도,
델레레레~ 우웁~
“함께한 동료입니다...”
델레레레~ 우웁~
“동료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케이가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리스는 그런 케이의 모습을 보더니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대못을 박았다.
“귀뚤이도 강한 적과 싸워서 아픈 것 보단 자연에서 쉬는 게 더 편할 것입니다!”
그 순수한 일침 한마디가 케이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 그런 건가요...”
오히려 자신이 약한 귀뚤이를 억지로 전장에 내몰며 고문했던 게 아닐까. 원래라면 201번 도로에서 평화롭게 노래나 부르고 있었을 아이인데, 자신의 이기심으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엄습했다.
바로 그때였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
유즈가 단호하게 말했다.
“필요한 건 약간의 조정이야.”
“조정... 말이에요?”
유즈가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태초의 장소인 201번 도로. 유즈의 전문적인 코칭이 시작되었다.
‘귀뚤톡크의 주력기는 연속자르기 일 거야.’
벌레 타입의 귀뚤톡크가 쓰면 자속 보정을 받아 위력이 상승하고, 거기에 기술이 명중할 때마다 위력이 10, 20, 40, 80, 160까지 배로 뛰어오른다.
‘거기에 메트로놈이 핵심이야.’
메트로놈은 같은 기술을 연속으로 사용했을 때 매턴 위력을 10%씩 추가로 상승시켜주는 도구다. 그걸 장착하게 한다면 이론상 최대 위력으로 적들을 분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메트로놈을 얻는 방법은...
델레레레~ 우웁~
풀숲의 야생 귀뚤뚜기들이 고작 5%의 확률로 몸에 지니고 있다. 그렇게 케이는 귀뚤이를 구하기 위해 201번 도로의 잔혹한 귀뚤뚜기 학살자가 되었다. 수십 마리의 동족을 쓰러뜨린 끝에 마침내 메트로놈을 손에 넣었다.
‘그다음은 노력치야.’
포켓몬이 지금까지 싸운 상대에 따라서 능력치가 조금씩 증가한다. 온라인 게임에 비유하자면 스탯을 찍는 개념으로, 사람의 능력에 비유한다면 개체치는 태어나면서 타고난 특징이라고 본다면 노력치는 훈련이나 태어난 이후의 노력으로 생긴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귀뚤톡크의 공격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투자하기 위해, 케이는 202번 도로로 이동해 공격 노력치를 주는 수많은 꼬링크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그렇게 다른 포켓몬들의 노력치까지 완벽하게 분배하여 투자한 뒤, 케이는 다시 스토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고, 그 과정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조로웠다.
운하시티에서 모모이에게 복수에 성공했고, 스토리를 진행화는 과정에서 눈설왕이라는 새로운 든든한 포켓몬도 엔트리의 마지막 빈자리에 얻었다. 신오지방의 체육관 배지 8개를 전부 획득하고...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갤럭시단의 보스 태홍 역시 몇 번의 치열한 도전 끝에 승리했다. 이후 깨어진 세계에서 마주한 전설의 포켓몬, 기라티나와도 마주했다.
“오오!!! 기라티나 잡자! 아까 잡은 눈설왕 빼고!”
모모이가 화면을 보며 신나서 소리쳤다.
“...아뇨.”
그리고 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라티나를 공격해 쓰러트렸다.
“저는 제 포켓몬들을 믿습니다. 스노우맨을 뺄 생각은 없습니다.”
케이는 당당하게 포켓몬 리그로 향했다. 그렇게 도전한 사천왕도 바로 깨...지는 못했다. 불꽃 타입을 다루는 대엽한테 한 번 전멸당하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 후 다시 전술을 재정비하고, 마침내 최종 챔피언인 난천에게 도전했다.
‘자 그럼! 여기에 온 목적은 알고 있어! 포켓몬리그 챔피언으로서 너와 시합하겠어!’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시작된 배틀은 그야말로 한계까지 치달았다. 난천의 화강돌, 밀로틱, 로즈레이드가 쓰러지는 동안 케이의 동료들도 하나둘 쓰러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최후의 전장. 지금 상황은 체력이 거의 바닥난 케이의 귀뚤톡크와, 난천의 루카리오의 대면. 난천에게는 아직 한 마리의 포켓몬이 더 있었다.
루카리오가 무서운 속도로 선공기인 신속을 활용해 귀뚤톡크의 끝낼 생각이었지만, 케이는 침착하게 판단했다.
“귀뚤이! 회복약이에요!”
아이템을 사용해 귀뚤이의 체력을 바로 전력으로 회복했다. 버텨낸 귀뚤톡크의 연속자르기 스택은 이미 20. 연속자르기의 기본 위력은 이제 40. 난천의 회복약은 이미 밀로틱에서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난천의 한카리아스와의 대결.
‘내가 이렇게 밀리다니, 얼마 만일까?!’
난천의 컷신 대사 이후에 뜨는 디스플레이. 케이는 고민하지 않고 연속자르기를 선택했다. 레벨이 자그마치 12나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스피드를 가진 한카리아스가 먼저 선공을 가져갔다. 한카리아스의 화염방사가 귀뚤톡크를 덮쳤다.
콰아아아아!
귀뚤톡크의 체력은 절반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귀뚤이의 칼날도 매서웠다.
다음 턴의 연속자르기의 위력은 기본 80에 도달해 있었고, 메트로놈 보정까지 합산되어 실질 위력은 112이라는 화력으로 한카리아스의 몸통을 깊숙이 갈랐다. 한카리아스의 체력도 순식간에 요동쳤다.
다음 한카리아스의 공격은...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일 것이다. 이제 남은 회복약도 없었다. 이번 턴에 무조건 끝을 내야만 했다. 한카리아스가 다시 한번 입에서 뜨거운 불꽃을 뿜어냈다. 화염방사를 정통으로 맞은 귀뚤이의 체력 바가 아슬아슬하게 줄어 4분의 1 지점에 다다랐다.
그리고 귀뚤이의 차례, 한카리아스에게 마지막 한 방! 연속자르기의 위력은 160에 메트로놈 보정까지 하면 240! 여기서 무조건 끝이 나야 한다!!!!
“아아...”
화면을 지켜보던 미도리가 나지막이 탄식했다. 한카리아스의 체력 게이지가 야속하게도 실핏줄 같은 빨간색 실금 상태에서 딱 멈춰버린 것이다. 아쉽지만, 케이의 위대한 난천 도전기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부실의 모두가 그렇게 절망적인 패배를 직감했다.
“아뇨.”
오직 화면을 쥔 케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난천의 한카리아스가 끝내기 위해 또다시 화염방사를 시전했다. 붉은 화염 효과가 귀뚤톡크의 온몸을 감쌌고, 모두가 기절을 예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귀뚤이의 체력은 정확히 1을 남겨두고 기적처럼 버텨냈다!
“바위 깨기로 마무리입니다!”
그리고 한카리아스는 기절한다.
‘...조금 전까지 너는 최강의 도전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최고의 포켓몬 트레이너로서 챔피언이 된 거야.’
“이겼...다...”
미도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아! 유대 기띠입니다! 유대의 힘으로 체력 1을 남기고 버틴 것입니다!”
아리스가 방방 뛰며 신나서 소리쳤다.
“아니.”
유즈가 말했다.
“유대 기띠는 6세대 때나 등장한 시스템이야... 4세대에는 아직 그런 유대 시스템은 없어...”
모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이긴 거야?”
유즈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귀뚤이의 능력치를 보니까, 과거에 레벨업 할 때 특방 노력치작이 꽤 되어 있었어. 거기다가 성격이 건방이라 특방도 1.1배고.”
케이는 과거에 귀뚤이의 레벨을 올릴 때, 영문도 모른 채 수풀 속에 흔히 출몰하던 초목 도롱마담들을 닥치는 대로 잡으며 레벨업을 했었다. 그리고 초목 도롱마담은 쓰러트릴 때마다 특수 방어 노력치를 2씩이나 주는 포켓몬이었다.
“상대 한카리아스와 레벨이 12나 차이 나고, 특방 노력치에 50이랑 성격까지 보정되어 있었다고 계산하면... 방금 화염방사는 저난수 3타였어.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97%의 확률로 쓰러지는 거였어...”
그야말로 3%의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며 영광스러운 전당등록의 순간이 찾아왔다. 화면 위로 케이의 소중한 동료들의 이름과 도트 그래픽이 차례대로 스쳐 지나갔다.
[귀뚤이]
[새싹이]
[빠삐코]
[덩쿠리]
[와ㅋ]
[스노우맨]
‘전당등록을 축하합니다!’
축포가 터지는 화면을 보며 케이는 자신의 포켓몬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해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중간에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첫 운명이었던 귀뚤이와 끝까지 함께 발을 맞춰 걸어왔기에, 이 장대한 모험을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이 가진 묘미가 아닐까.
“혹시... 다음은 어떤 세대를 추천하시나요?”
케이의 순수한 질문에, 모모이가 엣헴 하며 당당하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역시 5세대지! 5세대는 이상과 진실이라는 다소 무거운 스토리를 아주 멋지게 풀어냈고, N이라는 포켓몬 역사상 최고의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역시 시나리오 라이터의 관점선 다른 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스토리를 가진 5세대를 추천할 수밖에 없겠어!”
유즈가 옆에서 모모이를 되게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모모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콧대를 높였다.
“그럼. 5세대로 이어서 해볼까요.”
케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계속해서 이어가는 거다. 나의 소중한 파트너인 귀뚤이와 함께 새로운 지방에서의 모험을...
그리고 몇 시간 뒤.
“이게 뭐예요!!! 모모이!!!”
“켁켁, 살려줘어어어어!!!”
부실이 떠나가라 울려 퍼지는 모모이의 비명소리. 케이는 모모이의 팔을 뒤로 꺽고 있었다.
“여기서는 우리 귀뚤이가 아예 안 나오잖아요!!!”
“크아아아악! 아리스! 미도리! 유즈!”
케이 귀뚤이 밈이 너무 귀여워서 써본 소설입니다...
제 트위터입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18876343&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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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도리 안골라서 안읽음
모모이 5기견인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싹이 닉 귀뚤이처럼 존나 귀엽게 잘지었네 ㅋㅋㅋㅋㅋㅋㅋ
블갤 명작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