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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마사 이치카는 착한 사람이다.

그 이유라 한다면 그녀는 좋은 선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기... 이치카 선배... 혹시 서류 작업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흠... 이건...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옆에서 보십쇼. 다음번에는 직접 하실 수 있어야 함다.”

“네! 감사합니다! 이치카 선배!”

또다른 이유라 한다면 그녀는 좋은 동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업 나가기 귀찮아아아....”

“어? 물자 창고 작업 말임까? 제가 미리 해뒀슴다.”

“진짜! 고마워 이치카!”

마지막 이유라 한다면 그녀는 좋은 후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치카. 혹시 제 대신 이번 산해경 출장에 가 주실수 있으실까요?”

“문제없긴 합니다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심까?”

“그게...”

“......하스미 선배. 혹시 신상 오픈한다는 디저트 카페 때문임까?”

“아... 그게...”

“이건 비밀로 해두겠슴다.”

“감사합니다...”

이렇듯 나카마사 이치카는 후배, 동기, 선배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기에 나카마사 이치카는 착한 사람이다.

***

시선을 돌려, 이곳은 트리니티 자치구가 아닌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산해경 고급학원의 중심부.

맴버는 30명 정도. 눈에 띄이는건 1학년 유망주 마시로와 인원 부족으로 오랜만에 보충수업부에서 투입된 코하루. 그리고...

“키히히히히히힛!!!”

부장, 켄자키 츠루기.

이치카는 츠루기에게 말한다.

“츠루기 선배 오늘 컨디션 좋아보이심다.”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하하하.”

멋쩍게 웃은 이치카는 노트를 핀다. 할 일을 정리해둔 노트다. 이번 임무에서 그녀의 역할은 부총괄이다. 총괄 역할은 츠루기인지라 사실상 지휘관의 역할이다. 2학년인 그녀이지만 정의실현부에서 믿음 받는 그녀이기에 체험도 해볼 겸 받게된 역할이다.

이번 임무는 산해경에 있는 트리니티의 유물을 가져오는 것. 어찌보면 간단한 임무 같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유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물의 정황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현룡문 측 대변인 아케시로 류카라고합니다.”

“안녕하심까. 트리니티 종합학원 2학년 나카마사 이치카임다.”

접견실에서 마주한 류카는 유독 체구가 왜소하고 가냘픈 여인이었다.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데다가, 깃을 바짝 세운 검은 정장을 입고 있어서 외형적인 특징을 잡기가 유독 힘든 인상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나이답지 않은 묵직한 위엄이 은연중에 묻어났다.

이치카가 직업적인 직감으로 그 선글라스 너머의 맨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뜯어보려는 순간, 류카는 틈을 주지 않고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놓으며 입을 열었다.

“길게 말할 건 없겠죠. 이게 그 물건입니다.”

류카가 목함 하나를 건냈다. 목함을 열어보니 있는 것은 무늬가 뺴곡하게 그려져 있는 철제 구슬 하나.

“이건...”

이치카는 함부로 구슬을 만져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저 구슬 하나. 이게 트리니티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류카는 이치카의 의아한 표정을 읽었는지, 말없이 목함을 다시 가져가더니 품에서 손바닥만 한 낡은 벽돌판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함 속의 철제 구슬을 집어 들어, 벽돌판의 아래쪽 홈에 맞추고 가볍게 위쪽으로 스윽 밀어 올렸다.

지이이잉— 철컥, 드르륵!

그 순간, 기이한 기계음과 함께 아무런 이음새도 보이지 않던 벽돌판이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스스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표면의 문양들이 유기적으로 회전하며 판의 모양이 변형되더니, 이윽고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트리니티 양식의 소형 제단 모형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와...”

코하루가 신기함에 탄식한다.

“이거. 혹시 원리가 뭔지 알 수 있겠슴까?”

고작 구슬 하나가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유물이라고 불릴 물건의 기술치고는 너무 뛰어났다.

“자석입니다. 교통 카드랑 원리는 똑같아요. 물론 그 시대치고는 너무 선진 기술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이게 왜 트리니티의 것이라는 검까.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한들 왜 저희한테 넘기시는 검까.”

아무리 트리니티의 유물이라고 한들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음...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고대 산해경이 트리니티로부터 정상적으로 넘겨받은 선물이 아니라, 과거 변혁의 시기에 강제로 ‘약탈’해온 장물에 가까운 흔적이 발견되습니다.”

약탈품. 그 단어가 나오자 이치카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부분이었다.

“현재 현룡문의 문주이신 키사키 님께서는...”

류카는 ‘키사키’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때, 아주 잠깐 선글라스를 매만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키사키 님께서는 과거 선배들의 과오로 인한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을 원치 않으십니다. 트리니티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가고 싶어 하시는 눈치입니다.”

과거의 약탈품을 정리하는 차원이라면, 현룡문이 이토록 비밀스럽고 저자세로 일관하는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럼 저희는 이 구슬만 안전하게 회수해서 복귀하면 되는...”

“아뇨.”

류카의 말에 이치카는 흠칫한다.

“이건 유물 본체가 아니라, 단지 ‘열쇠’에 불과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심까.”

“이 기술 자체는 산해경의 광물과 기술로 만든 것이 맞습니다. 기술의 근원 자체는 아주 오랜 옛날 트리니티 측에서 넘어온 도면을 기반으로 한 것 같다만, 제작은 여기서 이루어졌죠.”

“그러면 약탈했다는 것은...”

“네. 맞습니다.”

류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트리니티의 성물은, 이 열쇠로만 열 수 있는 거대한 ‘유적’ 아래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류카는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치카 씨. 이곳은 현룡문 내부라고는 하나 주변의 귀가 많고 보는 눈이 번잡하니, 혹시 자리를 조금 옮겨서 내밀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만 직접 보여주며 설명할 수 있는 보안상의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 넵. 알겠슴다.”

이치카는 의구심을 품은 채 류카의 뒤를 따랐다.

“...저기, 대변인 님. 다 좋은데 왜 저희를 이런 감옥으로 데려오신 검까?”

류카가 데리고 온 곳은 감옥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자치구 법률로만 냉정하게 따진다면, 그 유적과 내부에 매장된 물건들은 전적으로 저희 산해경에 소유권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우리 영토 내에 존재하니까요.”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치카 본인이 법학에 정통한 편은 아니었지만, 소유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영토 점유권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역사적 정통성의 분쟁이 있을 뿐, 당장 트리니티가 소유권을 독점하겠다고 주장하기엔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런 법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이 유적을 당신들에게 떠넘기는 이유라 한다면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순간.

“어머. 오랜만이시군요.”

감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아하고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치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철창 너머로 붉은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평안하셨는지요.”

일전에 자신들의 바비큐 물자를 훔쳐 간 전적이 있으며, 트리니티 지구 내의 유서 깊은 식당 12곳을 무차별적으로 폭파하고, 수족관의 희귀 생물까지 서슴없이 서리하려다 침투했던 게헨나의 일급 테러 집단.

게헨나 미식연구회.

쿠로다테 하루나

“저, 저 옷은...!”

“음? 준코, 저기 밖에서 웅성거리는 애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이즈미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준코가 기겁한다.

“바보야! 트리니티 정의실현부잖아!”

“그게 누군데?”

“거기! 트리니티에서 골드 마구로 훔쳤을 때 쫓아온 애들!”

그 말에 이즈미는 더욱 갸웃거린다.

“아하, 기억나요☆ 특히 저 실눈 분께는 전에 바비큐 물자를 양도해드린 적도 있었죠.”

아카리가 이치카를 딱 한정해서 말한다. 이치카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카리가 말한 바비큐 물자를 양도했다는 일은 이치카가 하스미와 함께 티파티의 휴가를 보좌하러 갔을 때, 자신들의 바비큐 재료들을 훔치고는 미카가 돌려달라고 부탁하자 뻔뻔하게, 선심 쓰듯 줬던 일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랬던 주제에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잘 모르겠는...”

그 때였다.

“이치카. 집중해라.”

낮게 긁는 듯한 공포스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그와 동시에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복도를 채웠다.

“아. 기억난다.”

이즈미가 말한다.

“조용히 해라 너흰.”

켄자키 츠루기.

“어머나, 오랜만이네요 츠루기 씨. 여전히 정정해 보이셔서 보기 좋아요.”

아카리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인사한다. 츠루기는 아카리를 바라본다. 표정 변화는 없다. 반대로 아카리는 오히려 더 빙긋 웃는다.

“이치카. 쓸데없는 도발에 걸려들지 말고 업무에 집중해라.”

“아, 네! 알겠슴다, 부장.”

류카가 미식연구회 쪽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한다.

“손님들께선 저 게헨나의 수인들에게 굳이 신경 쓰실 건 없습니다. 저들이 우리 자치구의 전통 식당을 통째로 폭파하는 대형 테러를 저지르는 바람에 게헨나로 인가하기 전에 임시로 구금해 둔 것뿐이니까요.”

류카는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아주 나지막하게, 하지만 진심이 담긴 어조로 덧붙였다.

“...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자들이 폭파한 식당이 평소 위생도 최악이고 맛으로 손님을 기만하던 악덕 업소였던 터라, 속이 좀 시원하지만요.”

이치카가 황당함에 “아니, 공무원이 테러리스트를 두둔하면 어떡함까?”라고 한마디 딴지를 걸려는 순간, 류카가 노련하게 손을 들어 선수를 쳤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희가 제안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유적이 분쟁 지역에 있기 때문이죠.”

류카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진짜 유적이 매장된 좌표는 산해경의 정식 행정 구역 경계선 인근이라 정확히 산해경의 영토라 부르기도 애매한 무법지대이며, 더불어 최근 자치구의 통제를 벗어난 악질 갱단들과 범죄 조직 ‘방우단’이 판을 치고 있는 위험 구역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상황인 데다, 산해경은 얼마 전 내부적으로 큰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어 군사력을 직접 국경 너머로 투입하기가 곤란하므로, 차라리 외교적 명분이 확실한 트리니티에 소유권을 전적으로 포기하겠다는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류카는 이야기를 마치고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비밀 감옥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이 안에 특별히 따로 구금된 자는, 원래 유적 근처를 밀수 목적으로 불법 도굴하다가 이 열쇠를 최초로 발굴해 낸 장본인입니다. 이곳에 갇힌 이유는 열쇠를 찾아낸 과정이 영 깨끗하지 못하고, 자치구 밀수 처벌 혐의가 강력하게 적용되어서죠.”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감옥 내부에는 귀가 쫑긋한 고양이 수인 한 명이 포박되어 있었다.

“냥주주 씨. 여기 오신 트리니티의 정의실현부 분들이 이제부터 당신의 신병 인도와 처분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입니다. 아는 것을 순순히 부시지요.”

정의실현부와 냥주주는 산해경 제공 취조실에 들어갔다.

같이 들어간 것은 이치카를 제외한 2학년 학생 둘과 코하루를 포함한 1학년 셋.

“안녕하심까. 이번 트리니티 성유물 회수 임무의 현장 부총괄을 맡고 있는 트리니티 종합학원 정의실현부 소속 2학년, 나카마사 이치카라고 함다. 지금부터 아니라 냥주주 씨의 자백을 위한 취조를 개시하겠슴다.”

이치카는 열쇠가 들어있는 목함을 들이민다.

“이 유물의 구체적인 내부 진입 경로와 위험 요소를 이미 상세히 아신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하겠슴다. 거짓말할 생각은 접으시는 게 신상에 좋을 검다.”

냥주주의 얼굴이 덜덜 떨린다. 취조실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과하게 떤다. 뭐지?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취조실이 위치하고 있는 5층 건물에 폭발이 일어난다. 엄청난 폭발에 벽이 부서지고 드러나는 것은 헬기 한 대.

“자! 모두 들어가!”

헬기에서 물 밀려오듯 들어오는 상황. 저들이 방우단이라는 자들인가? 나카마사 이치카는 판단한다.

“일단!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열쇠 보호에 집중함다!”

츠루기가 밖에 있다. 그러니 방어다.

어차피 츠루기와 다른 정의실현부원들, 그리고 이 곳 자체에 배정 되어있는 현룡문 측 병력이라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할 것이다.

나카마사 이치카는 총을 장전하고 은폐를 시도한...

“이쪽입니다!!!”

냥주주가 소리친다.

이치카는 뒤를 반사적으로 바라본다.

“여기요!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방우단 나으리들!!!”

“닥ㅊ...!”

콰아아아아앙!

수류탄이 벽을 부순다. 그로인해 먼지가 피어오른다. 이치카는 지체없이 정의실현부원들을 뒤쪽으로 몬다.

“모두! 뒤쪽으로!”

그리고 이치카는 눈앞에 놓인 육중한 철제 취조 테이블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그녀가 신은 제복 구두의 단단한 굽 사이에 책상 다리가 딱 걸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리 근육에 힘을 주어 그대로 걷어찼다.

테이블은 무거웠지만, 이치카의 각력에 형편없이 밀려 나가며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갱단원들의 진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임시 바리케이드가 되었다.

이치카는 달려나가 어깨로 테이블을 힘껏 밀어낸다.

“당황하지 말고 배운대로 함다! 코하루는 열쇠를 지키시고 나오미는 반대쪽 벽을 폭파시켜 공간을 확보함다! 나머지는 절 서포트함다!”

다가오는 병력은 열댓 명 가량. 반대쪽을 슬쩍 보니 예상대로 츠루기 측이 밀어내고 있다. 이대로라면 곧 지원 병력이 온다.

이치카는 벽 파편에 몸을 은폐. 사격을 개시한다. 정의실현부원들이 이치카를 서포트한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정의실현부 부원은 침착하게 C4를 벽에 부착한다.

“폭파 7초 전!”

나오미는 바로 앞에 있는 코하루에게 묻는다.

“코하루! 너 열쇠 잘 가지고 있어?”

“어? 어! 여기...!”

코하루가 열쇠가 들어가 있는 목함을 품에서 뺀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냥주주가 튀어나와 그 목함을 쳐낸다.

“어어...?!”

코하루가 당황한다.

“폭파 3초 전!”

나오미가 소리친다.

코하루는 목함에서 떨어진 열쇠를 줍기 위해 몸을 날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벽이 폭파되며 옆방이 들어난다.

그 순간 이치카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미식연구회.

그리고 폭발의 위력에 날아가는 열쇠와 바닥에 한 차례 부딪혔지만 다시 끈기있게 열쇠를 향해 점프하는 코하루.

마지막으로 그런 코하루를 조준하고 있는 방우단원의 바주카포 하나.

“코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코하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고통은 없었다. 코하루가 눈을 열자 보이는 것은 흩날리는 탐스러운 금발.

코하루는 그 얼굴을 알았다.

트리니티를 공격한 적으로서 한 번, 자신들이 시험을 칠 수 있게 도와줬던 동료로서 한 번.

와니부치 아카리였다.

그 틈새에 열쇠는 벽에 한 번 튕겨 아카리의 얼굴 쪽으로 날라간다.

정확히는 아카리의 입 쪽으로.

꿀꺽.

코하루의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이치카 역시 들고 있던 총구를 내린 채 아카리를 바라보았다.

정작 철제 구슬 열쇠를 부드럽게 삼켜버린 아카리는, 자신의 목줄기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특유의 생글거리는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사야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그리고 사야의 연단방 인생에서 가장 당황시킨 인물은, 그저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건가, 사야.”

류카가 묻자 사야가 학을 땐다.

“변비약이나 설사약은 다 써본 것이다. 심지어 엄청난 배탈이 부작용인 약까지 다 먹인게 저 모양인 것이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위장인 것이냐...”

류카는 아카리를 바라본다. 사야의 약은 부작용이 문제지 효과 하나는 엄청나다.

저 변비약과 설사약들은... 자신이 한 방울이라도 먹었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 약들이다. 그걸 엄청나게 먹였는데도 저 모양인 것이다.

류카는 천천히 다가가 석판을 아카리의 배에 쓰윽 밀어본다. 그러자 판이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잠시 고민하던 류카는 이치카에게 다가간다.

“저... 이치카 씨.”

“아 넵.”

이치카는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팠다. 저 최악의 테러리스트 몸 안에 열쇠가 들어가 있다니. 토해내게 시켰지만 무리였다. 그리고 류카의 제안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는 약을 만들어낸다는 연단방으로 갔지만 그것도 실패.

“일단 죄송합니다. 실패라고 할 줄은 몰랐네요.”

“하아... 아님다.”

류카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연다.

“일단 아까 확인해 보니 열쇠의 자기장이 꽤 쎄서 몸 두깨 정도라면 열쇠가 작동을 합니다.”

“류카 님, 설마...”

이치카의 미간이 완전히 찌푸려졌다.

“네. 불편하시겠지만, 진짜 유적을 열기 위해 저 분을 통째로 열쇠로 취급하여 데리고 동행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절대 안 됨다! 아무리 급해도 게헨나의 일급 현행범을 트리니티의 공식 성물 회수 작전에 동행시킨다니, 말이 안 됨다!”

류카는 한 번 쉬고 말한다.

“하지만 트리니티 측도 이제 시간이 얼마 없으시지 않습니까. 아까의 습격으로 방우단은 냥주주를 확보해 유적의 정확한 좌표를 이미 손에 넣었습니다. 이대로 규정만 따지며 시간을 지체하다간, 고대의 성물을 범죄 조직에게 통째로 선수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죠.”

사실 열쇠 자체는 유물을 안전하게 발견하고 싶은 트리니티 쪽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갱단 입장에선 문을 통째로 터뜨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류카는 약간 껄끄러운 이야기를 할려는 듯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뭐, 사실 임무 투입 도중에...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 운동이 활발해져서 배출될 수도 있는 노릇이고요.”

“그래도 게헨나랑, 그것도 지명수배범이랑 같이 다니는 것은 말이 안 됨다.”

“...융통성 있으신 분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꽉 막힌 부분이 있으시군요.”

“그렇게 하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치카는 당황해서 말한다.

“츠루기 선배 안 됨다.”

“정의실현부 부장인 나의 판단이다.”

츠루기는 그리고 이치카를 바라본다.

“이 시간부로 와니부치 아카리에 대한 철저한 밀착 감시, 신변 확보 및 생리 현상 관리는 전부 네게 전임한다. 이 시간부로 나카마사 이치카의 이번 임무 파견 부총괄 직책을 박탈, 전임 감시관으로 변경한다.”

“...네 알겠슴다.”

이치카는 아무 말없이 수락했다.

나카마사 이치카는 착한 후배니까.

***

“......”

“수고 많으시네요☆”

아카리가 살갑게 말했지만 이치카는 말없이 그녀의 발목에 추적기를 채울 뿐이었다.

“자동으로 위치 추적이 되며 억지로 파괴하려 한다면 폭발함다. 다리 한동안 못 쓰고 싶으면 부수십쇼.”

“어머. 무섭네요~”

아카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여유. 게헨나는 다 저런건가.

“이치카 선배!”

정의실현부 1학년 부원이 나타난다. 후배가 나타나자 얼굴이 확 풀린다.

“아, 무슨 일이심까? 천천히 숨 고르고 말해보십쇼.”

“저기... 그! 현룡문 측 방어선 경계 배치 쪽에 소통 문제가 좀 생겨서, 저희 조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어요...”

“아, 그건 말임다. 제가 아까 서류를 미리 확인해 뒀는데, 현룡문 3조 조장에게 가서 제 이름을 대고 이 양식을 보여주면 바로 해결될 검다.”

아카리는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이치카 씨는 참 상냥하시네요. 저한테도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당신 족속들은 뭐가 그렇게 문제임까?”

“그게 무슨 뜻이죠?”

“...아님다. 신경 쓰지 마십쇼.”

아카리는 불쾌해하는 이치카를 향해, 이번에는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혹시 이치카 씨는 어느 쪽이 진짜죠?”

“......”

이치카는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무시로 일관했다.

“아, 물론 어느 쪽이든 이치카 씨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카리는 창밖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제때,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터뜨려 줄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거 같지만요. 음식도, 사람의 감정도.”

“뭐라...”

덜컥.

문이 열리고 코하루가 들어온다.

“코하루 무슨 일이심까?”

“저... 이치카 선배 죄송해요...”

아까 열쇠를 지키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일거다. 이치카 입장에선 근성을 보여주는 모습이 더 인상 깊었지만 말이다.

“아. 괜찮슴다. 코하루는 그때 상황에서 진짜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준검다. 기죽지 마십쇼.”

“감사합니다. 그리고...”

코하루는 아카리를 바라보고는 말한다.

“저기... 아까... 나 구해준 거, 고마웠어. 혹시... 많이 다쳤어...?”

아마 아카리가 폭발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것을 말하는 것일테다.

“아뇨. 전 괜찮습니다.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내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치카는, 아까 전 흥분하느라 미처 놓치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뒤늦게 깨달았다. 아카리가 코하루를 구했다는 사실. 그리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아카리가 몸으로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열쇠를 방우단에게 통째로 빼앗겼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치카는 비교적 누그러진 태도로 말한다.

“코하루는 왜 구해주신 검까?”

아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한다.

“음... 위험해 보여서요.”

대체 뭘까, 이 여자는. 무슨 이득이 있다고 트리니티의 학생을 구한 것일까. 도무지 게헨나 테러리스트의 사고방식은 이치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감사함다. 저희 후배를 구해줘서.”

“별 말씀을요.”

또다시 찾아오는 적막.

꼬르르르르르르르륵!

그 침묵을 깬 것은, 아카리의 배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거대한 뱃고동 소리였다. 엄청난 소리에 이치카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치카는 이내 황당하다는 듯 표정을 바꾸더니,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배고프심까?”

“아무래도 그렇네요.”

이치카는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아카리에게 건낸다.

“그럼 식사하고 오십시오. 정의실현부의 카드임다.”

“어머. 그래도 될까요?”

이치카는 털털하게 웃는다.

“뭐, 행정상으론 적어도 유적에 가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론 죄인 신분이 아니라 아군 협력자 신분임다. 그리고 아까 코하루를 조건 없이 구해준 행동을 보면, 적어도 카드를 들고 도망칠 그런 비열한 사람 같지는 않아서 말임다.”

“후후, 그렇게 믿어주시니 정말 기쁘네요. 하지만 저, 보기보다 제법... 아주 많이 먹는 편인데 정말 감당 가능하시겠어요?”

“하하, 걱정 마십쇼. 명색이 트리니티 정의실현부의 공무 카드임다. 한도가 제법 넉넉하니 마음껏 드십쇼. 그리고... 뱃속에 무언가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것도 생기지 않겠슴까.”

아카리는 그 말에 카드를 넘겨 받는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카리는 임시 거처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이치카는 잠시 후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따라나간다.

아카리의 뒤를 밟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도달한 곳은 현무상회였다. 키보토스 전역의 기상천외한 식자재와 최고급 재료들이 모이는 상인연합회로, 산해경 내에서도 단연 으뜸가는 미식의 명소이자 대형 식당가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이런 상업적 특징 덕분에 산해경의 전통 요리뿐만 아니라 키보토스의 다양한 식문화와 대중음식을 모두 높은 퀄리티로 섭렵하는 전형적인 맛집 구역이었다.

대식가이자 미식가인 아카리가 전형적으로 찾아갈 만한 식당가였다.

이치카가 아카리에게 정의실현부의 법인 카드와 자유를 준 진짜 이유라 한다면, 우선은 그녀를 순수하게 ‘믿어서’였다. 코하루를 아무런 대가 없이 구해준 사람이니 도망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 다음, 그녀의 내면 속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솔직한 이유라 한다면... 그녀가 차라리 이 카드를 들고 도망쳐주기를, 그리하여 자신이 저 뻔뻔한 게헨나의 테러리스트를 합법적으로 때려잡을 명분이 생기기를 오히려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쓸데없는 생각이다.

이치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왕 나온 김에 고생하는 후배들 간식이나 몇 상자 사 가자고 생각했다. 자신도 대충 저녁을 때우면 될 일이었다.

이치카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국수집으로 들어가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이치카가 그릇을 거의 비웠을 때였다.

따르르르르르릉!

이치카의 핸드폰이 울린다. 정의실현부 측 행정 담당인 3학년 선배다.

“네. 나카마사 이치카임다.”

[이치카! 너 지금 산해경에 파견 나가 있는 거 맞지? 부원들이랑 다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고 있는 거야?]

“아, 네. 뭐... 대충 비슷함다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슴까?”

[아니, 지금 현장 파견 인원이 고작 30명 정도잖아! 아무리 회식이라고 해도, 방금은 너무 쓴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심까? 얼마가 찍혔길래...”

[45만 엔! 45만 엔이 긁혔다고! 그것도 계속 추가 승인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이치카! 대체 뭘 먹고 다니는 거야?!]

그 순간, 이치카의 머릿속에 거대한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선배, 잠시만요. 제가 확인해 보겠슴다.”

[이치카? 이치카?!]

이치카는 바로 현무상회 쪽으로 달려간다. 아카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군중들을 헤치고 들어간 그 중심에는, 원래 대인용 연회 장소로 쓰이는 거대한 원형 식탁에 홀로 앉아 있는 아카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치카의 표정은 그 순간 얼어붙었다.

아카리의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빈 접시들... 대충 눈대중으로 보아도 그 수가 최소 세 자리 수 단위, 즉 수백 그릇은 가볍게 넘어가고 있었다.

“흐음... 저기, 레이죠 씨라고 하셨나요?”

“네... 네?! 넵!!!”

아카리의 폭식에 상당히 당황한 레이죠가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카리는 우아하게 냅킨으로 입술을 닦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여기 메뉴판에 있는 전가복 요리, 대단히 훌륭하네요. 혹시 지금부터 50인분 정도 더 추가 주문이 가능할까요? 결제는 이 카드로 한꺼번에 해 주세요☆”

이치카가 격분하여 당장 카드를 빼앗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흠칫—!

이치카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이고 불길한 기운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키보토스 전역을 통틀어, 자신이 아는 한 이런 살의와 기운을 뿜어낼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츠, 츠루기... 선배...?”

“이치카.”

“넵.”

츠루기는 이치카에게 말한다.

“실수를 저지른 것은 상관없다. 넌 아직 2학년이고, 현장 지휘관으로서 아직 배울 것도, 경험해야 할 것도 많으니까.”

“넵.”

이치카는 또다시 짧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나?”

“......”

실수라면 실수라고 할 수 있고, 아니라면 아닐 수 있는 일.

“넵. 제 실수였슴다.”

“이치카. 내가 이번 임무에서 다른 선배들을 제쳐두고 네게 부총괄 자리에 이어 와니부치 아카리의 전임 감시를 맡긴 이유라면…… 널 믿어서다. 감시역이 부총괄만큼 중요한 자리라 생각해서 네게 준 거다.”

“넵.”

“빈말이 아니야. 저 와니부치 아카리라는 여자는… 개인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분류라고 판단했어. 그리고 넌 방금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내 눈엔 그건 방심이었다.”

“넵 알겠습니다.”

츠루기는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치카의 옆을 지나가자 어깨를 잡고 말한다.

“그리고, 네 나름대로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거다.”

“……?”

무슨 뜻이지? 저 말은?

“적어도 내가 졸업하기 전까진, 네가 진정할 수 있어야,”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가 날뛸 수 있으니까.”

츠루기는 아카리의 머리를 그대로 움켜쥐고, 그녀가 앉아 있던 원형 식탁에 그대로 처박아 버렸다. 식탁이 종잇장처럼 박살 나며, 아카리의 머리가 대리석 바닥 깊숙이 쾅 하고 꽂혔다.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주변의 접시들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튀었다.

먼지 속에서, 바닥에 머리가 반쯤 박힌 채 처참하게 널브러진 아카리는... 놀랍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표정의 변화조차 단 일절 없이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어머나, 츠루기 씨... 무슨 문제라도 있으실까요☆ 음식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말이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표지 일러도 나왔고 수정한 부분도 있어서 재업함

이번 7서코에서 낼 회지의 전반부임

연세대 부스인 BJ43,44 독수리 크림빵집이고 이거 읽고 재밌었으면 한번 들려주셈

일러레 님 x는 (@ittiititit61627)이심

https://x.com/cheesedontgas

그리고 이건 내 x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18876343&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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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7.13창작

소설)표지있음)재업)나카마사 이치카는 착한 사람이다-1

#나카마사 이치카#소설
좋아요 0댓글 5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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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DC
치동작가
게시물 28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X
게시일2026.07.13 00:25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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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나
ㅇDC
ㅇㅇ126.07.13

이치카 아카리 일부러 분탕쳤으면하는 부분 캐해가 너무 좋음

ㅇDC
ㅇㅇ226.07.13

선입금은 없음?

치DC
치동작성자26.07.13

그 정도로 많이 팔리지는 않아서요...

ㅇDC
ㅇㅇ326.07.13

통판은 있소?

ㅇDC
ㅇㅇ426.07.14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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