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7자
#노아 #카즈사 #하루나
원문 カフェ陰
────────────────────
여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다.
오늘은 상쾌한 바람이 땀으로 끈적하게 달라붙은 옷을 식혀 오히려 조금 서늘할 정도다.
오늘의 업무는 이미 끝났고 평소에는 당번 학생들과 밥이라도 먹으러 가지만 오늘은 당번이 없는 날이라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할 일이 없고 한가했던 나는 휴식용 소파에 앉아 키보토스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잡지를 읽고 있었다.
한창때의 소녀들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그녀들과 공통된 화제를 갖는 것은 큰 이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이곳에 온 뒤 이렇게 틈틈이 잡지를 읽거나 근처의 맛집을 찾거나 한다. 처음에는 이런 잡지는 젊은 층을 위한 잡지라고 생각해서 조금 경시했지만 읽기 쉬운 디자인으로 정리된 최신 뉴스, 눈길을 끄는 칼럼, 귀여운 글씨로 쓰여진 학생용 정보 등 전부 재미있어서 요즘은 정보 수집과 무관하게 재밌어서 볼 정도다.
관심있는 제목을 눈으로 훑으며 페이지를 넘기다가 문득 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주의! 이런 행동을 하면 미움받을지도 모른다?!』
붉은색 두꺼운 글씨의 노골적인 경고성 디자인으로 쓰여진 그것은 제목처럼 이런 행동을 하면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무난한 내용이었다.
내가 학생에게 한 행동이 있다면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읽어보다가 더욱 신경쓰이는 문장을 발견한다.
『이름 부르기는 NG! 적당한 거리감을 갖자!』
가슴이 철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처음 만난 학생을 매번 이름으로 불렀고 더군다나 격식없이 편하게 불렀다.
곰곰이 생각하면 너무 허물없이 대한 것일지도 모르고 학생을 불쾌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사에 너무 휩쓸리는 것도 좋지 않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잡지인 만큼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고민하기만 하는 것은 아마추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는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이 프로다.
마침 내일 당번이 올 예정이니 당장 이 내용을 실천해 보자.
읽던 잡지를 빠르게 끝까지 읽은 나는 편의점에서 저녁을 사 먹고 수면실 침대로 뛰어들어 의식을 어둠으로 내려놓았다.
~~~~~~~~~~
【쿠로다테 하루나의 경우】
쨍쨍 내리쬐는 햇빛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반사되는 열기가 저를 태우는 그런 무더위 속에서 이런 조리법의 요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더위로 완전히 뻗어버린 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더운 날 일부러 밖에 나간다는 것은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은 몇 달 전부터 기다리던 샬레의 당번이라 이런 더위 속에서도 기분만큼은 들떠있었습니다.
도중에 단골 붕어빵 가게에 들러 선물을 사가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여기서 선생님과 붕어빵을 먹었는데 선생님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도 사적으로 몇 번 정도 방문했다고 합니다.
"실례합니다, 붕어빵 7개 주세요."
일부러 홀수 개의 붕어빵을 사는 것은 저의 사소한 어필이자 선생님과 반을 나누고 두배로 맛있어지는 붕어빵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붕어빵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선생님의 얼굴을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뺨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뺨의 뜨거움은 차치하고서라도 마음속 깊이 채워지는 듯한 이 열기는 분명 이 날씨와는 무관할 것입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저는 샬레 앞에 도착했습니다. 세면대에서 꼼꼼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심호흡합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그 안에서 두 번째 심호흡을 합니다.
그리고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한 저는 세 번째 심호흡을 하고서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아, 안녕."
"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무기질적인 기계음이 손님을 알린다. 나는 오늘의 당번 학생, 쿠로다테 하루나를 향해 가벼운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희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차 끓여 올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부끼는 백발에서는 소녀 특유의 좋은 꽃향기가 나고 거기에 더불어 그녀의 손에 들린 종이봉투에서는 그녀가 좋아하고 나도 단골인 붕어빵의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건 그 집 붕어빵이야?"
"네, 괜찮다면 함께 드시겠어요?"
"나야 기쁘지."
그녀가 여기 올 때면 항상 무언가 선물을 가져오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왜인지 매번 홀수 개로 사와서는 마지막 하나를 반으로 나눈다. 짝수 개 사오면 어떻겠냐고 말해볼 생각도 했지만 반으로 나눈 것을 먹을 때 그녀의 행복한 미소를 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 차, 거기 앉아도 될까?"
"당연하죠, 그래서 비워두었으니까요."
그런 상투적인 대화 뒤 2인용 소파에 앉는다. 사실 맞은편에도 의자가 있지만 언제부턴가 그녀의 제안으로 이렇게 옆에 앉아 먹게 되었다.
그녀의 근황을 물으며 붕어빵을 먹었다. 역시 그녀가 호평한 만큼 앙금의 섬세한 단맛과 반죽의 부드러운 달콤함이 어우러져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다.
"그렇구나, 쿠로다테도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후후... 네? 죄송합니다,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그 전에요!"
"응...? 그렇구나, 쿠로다테도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되물을 정도로 긴 문장이었나? 목소리 크기도 평소와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왜 되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말이 끝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기를 반복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심을 굳혔는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 어째서 갑자기 성으로 부르시는 거죠?"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녀는 다 듣고난 뒤 굳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거리감은 중요하지만 선생님과 제 사이가 그정도인가요... 진짜로 불안했다고요? 미움받은 게 아닌가 해서..."
"미안..."
사과하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고 하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히죽히죽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 아니요, 용서할 수 없어요. 선생님께선 학생을 슬프게 만든 책임을 져주셔야겠어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밝았기에 실제로는 더 이상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난이 떠오른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으면서도 내심 어떤 요구를 할지 대비하고 있었다.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를 구해달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그녀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서는 일주일 동안 제 저녁을 만들어 주셔야겠어요."
"응?"
맥빠진다,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설마 그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치만 나 요리 잘 못할 텐데?"
"그러면 같이 만들죠."
"쿠로... 하루나도 귀찮지 않겠어?"
"아, 지금 또 성으로 부르신 거죠? 일주일 추가입니다. 그리고 귀찮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로요."
아마도 그녀는 정말로 귀찮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지 태양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주일이라... 힘들겠네..."
"당연하죠, 벌이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힘들 땐 같이 식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요."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눅든 듯한 그녀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미안 미안, 나야말로 기뻐. 하루나랑 2주간 매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성으로 부른 보람이 있는걸?"
"정말, 그만 놀리세요! 그리고 쓰다듬는 손이 멈췄으니까 더 쓰다듬으세요!"
나는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 쪽으로 숙이는 그녀는 보니 친정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날부터 2주 동안 매일매일의 식사는 인생에서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즐거웠다. 매일 주방에서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몇 번 반복할 무렵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 2주가 지날 무렵에는 요리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요리 실력이 늘어 있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가게를 차려도 될 정도라는 보증수표도 받았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고 내일의 메뉴를 정하는 일상은 그녀와 결혼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느낄 정도로 충분했고 그녀와의 결혼식이 상상되어서 밤에 조금 힘들었다.
"선생님, 오늘 요리도 맛있었습니다. 처음에도 맛있었지만 솜씨가 정말 많이 느셨네요."
"아아, 그렇게 말해주니 보람이 있네. 오늘로 2주는 지났지만 또 언제든지 와. 실력을 발휘해 줄게."
"말 안해도 그렇게 할거랍니다. 선생님께선 제 위장을 길들인 책임을 지셔야죠."
"하하, 그럼 열심히 해야겠네."
"네, 힘내주세요. 이제 놓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저녁의 땅거미도 비출 듯한 눈부신 미소로 말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주 3회 정도는 샬레에 찾아와 선생님의 요리를 즐기는 하루나가 목격되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요리를 대접하기 시작했지만 그때마다 그녀가 조금 언짢아하는 것은 기분 탓일까.
~~~~~~~~~~
【우시오 노아의 경우】
세미나 일을 적당히 끝낸 저는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끼며 귀가했습니다. 기우는 햇빛이 한쪽 면을 주황색으로 비추고 서서히 기울어지는 그림자를 보면 옛날 사람들이 그림자를 시계로 사용했던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저녁의 석양에서 밤의 어둠으로 바뀔 때쯤 집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습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내일 일정을 되짚으며 가볍게 미소짓습니다.
처음에는 놀릴 때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기록하기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항상 눈을 그를 쫓게 되었습니다. 업무 중의 얼굴, 서류의 실수를 몰래 수정할 때의 얼굴, 다른 여학생들과 얘기할 때의 얼굴... 그것을 떠올리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제 자신이 조금 싫어집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는 동안 일의 피로가 쌓인 탓인지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만 자기로 하고 침대에 몸을 맡깁니다. 잠시 후 의식이 깊게 가라앉았고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난 저는 몇 가지 준비를 마치고 예정보다 한 차량 빠른 D.U.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역 안내방송도 지금의 저에게는 기분 좋은 BGM이었습니다.
"오늘은 덥네요..."
계절은 한여름, 오늘 기온은 이상 기후 수준의 36도. 총알도 견딜 수 있는 키보토스의 저희들이라도 더위에는 평등합니다. 제한제를 쓰고는 있지만 이렇게 더우면 효과를 보기 힘듭니다.
간신히 샬레에 도착한 저는 다시 땀을 닦아내고 애용하는 메모와 펜을 편한 위치로 옮기고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샬레 내부는 냉방이 잘 되어 있어 땀으로 조금 축축해진 옷에 닿는 바람에 기분이 좋습니다. 일단 꼼꼼히 확인하긴 했지만 땀냄새가 날지도 모르니 도착하고 당분간은 가까이 가지 말도록 하죠...
"으윽~!"
서류 정리 때문에 계속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풀 목적으로 최대한 몸을 편다. 관절이 뚜둑 소리를 낸다. 나는 이 소리를 꽤나 좋아하기 때문에 이 소리를 내기 위해 긴 서류 작업에 몰두하는 일도 있을 정도다.
"어머, 굉장한 소리네요♪"
"어라?! 언제부터 와 있었어?"
놀랄만도 한 것이 그녀가 오기로 한 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오늘은 일찍 왔네? 시간이 좀 남았으니 거기 소파에서 쉬고 있어."
"네, 오랜만의 당번이라 평소보다 빨리 만나고 싶어서요♪ 남은 시간동안 같이 쉬지 않을래요? 선생님도 피곤하시죠?"
그녀의 이 농담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진심인 줄 알고 두근거렸지만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이 정도로는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늘 싱글벙글하며 여유로운 표정의 그녀를 당황시키고 그 여유로운 표정을 무너트리는 것이 최근의 비밀 목표다.
"그럴까, 밖에 덥지? 차 끓이고 올게."
"감사합니다... 쉽사리 낚이지 않는 사람이네요."
이 약간의 야유도 언제나의 일이다. 그녀가 놀리는 것을 회피하고 『쉽사리 낚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듣는 것까지 한 세트다. 나와 그녀의 여흥같은 것으로 서로 이 합을 즐기고 있다. 그 증거로 쉽사리 낚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꼬리는 알기 쉬울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자, 여기."
"보리차네요, 마침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그거 다행이네, 요즘은 좀 어때?"
근황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원하게 식은 보리차를 목으로 흘려보낸다. 나는 계속 샬레에 있었기 때문에 차가울 정도지만 바깥에 있던 그녀에게는 딱 좋은 온도일 것이다.
"그렇구나... 우시오도 힘들겠네."
한 박자 늦게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깨진 컵의 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앗!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아으, 에? 아..."
물론 이 정도로 키보토스인이 다칠 리가 없지만 일일히 걱정하는 버릇은 고칠 수도 고칠 생각도 없었다.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 자루에 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잔해에 반사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떨리는 손과 촉촉한 눈동자, 게다가 입에서는 목소리조차 아닌 희미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표정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표정을?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 파편을 줍는 손을 멈췄다.
"우시오... 괜찮아?"
"윽...!"
실수한 건지 그녀의 동공이 더욱 커질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순간 어깨를 강하게 붙잡혔다.
"선... 생님...? 제가 뭐 잘못했나요?"
"응? 딱히 그런 건 없는데..."
"그렇다면 부탁이니까 성으로 부르는 건 그만해 주세요...!"
그녀는 아무래도 그 호칭 때문에 침착함을 잃은 듯 했다. 금방이라고 울 것 같은 촉촉한 눈빛이 평소의 여유로움과 갭이 느껴져서 그녀의 매력이 더욱 돋보였다. 다시 그녀를 그렇게 부르면 화를 낼까?
"미안,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야."
나는 이렇게 된 경위를 가능한 한 정중하고 알기 쉽게 설명했다.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절대 저를 성으로는 부르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요!"
"알겠어..."
... 떨리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나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녀에게 지기만 하니 이 정도의 보복은 용서받을 것이다.
"우시오."
"으읏~~~!!!"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시 성으로 불러보니 볼을 부풀린 그녀가 가슴을 툭툭 때린다. 적당히 완급 조절을 하고 있겠지만 헤일로가 없는 나로서는 다소 아프다.
그녀의 여유를 잃은 얼굴을 처음 봤다는 우월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를 이길 수 있는 궁극의 수를 찾았기 때문인지 나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너무해요 선생님! 유우카짱에게 일러바칠 거에요?!"
"그것만큼은 좀 봐주세요."
둘이서 한 시간 정도는 이런 대화를 반복했다.
울상이 되고 울컥하는 등 평소의 그녀에게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을 휙휙 바꾸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서 나도 너무 놀렸을지도 모른다.
한바탕 놀린 나는 문득 궁금해진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성으로 불렀을 뿐인데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구나."
그녀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물러선 뒤 상냥한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거리를 두려고 하길래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어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붉게 물들은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어프로치는 적극적이지만 『정말 좋아한다』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에 직설적인 말은 잘 하지 않는 그녀의 직구는 교사라는 나의 가면을 부수기에 충분했다.
온몸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분명 여름의 탓이다...
그녀를 바라보니 방금 전의 대화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겼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만족스러운 미소로 내 다음 수를 기다리는 그녀에게 나는 양손을 들고 항복 선언을 했다.
이후 그녀와 나의 여흥의 흐름에서 그녀의 공세가 더욱 직접적으로 바뀌어 나는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역시 나는 아직 그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
【쿄야마 카즈사의 경우】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가뜩이나 더운 마당에 행인들도 『덥다』를 연신 반복하고 있어 더욱 덥게 느껴진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매미소리도 사람들의 목소리도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설렌다. 이것도 다 선생님 때문이다. 그를 생각하는 가슴이 내 몸에서 제일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아니면 더위를 먹은 탓일까.
하지만 오늘은 정말 덥다. 키보토스의 일각에서는 이 더위로 도로의 아스팔트가 녹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더위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샬레의 냉방은 잘 되어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더우면 역시나 걱정된다.
잠시 고민한 끝에 선물로 아이스크림을 가져가기로 했다. 저번에 선생님에게 아이스크림을 받았으니 그 답례도 할 겸 조금 좋은 아이스크림을 사가기로 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서둘러 샬레 근처의 엔젤24로 걸음을 옮긴다. 자동문이 열리고 편의점 내부의 냉기가 나를 맞이한다. 이렇게 더운 것은 별로지만 이 순간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각양각색의 아이스크림 중 평소에는 사지 않고 나에 대한 특별한 보상으로만 사는 다른 아이스크림의 두세배는 되는 가격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다. 나는 굳이 선생님과 다른 맛을 사기로 했다. 어쩌면 한 입씩 나눠먹을수도 있다는 옅은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고작 간접키스로 이렇게 기대하며 궁리하는 나의 머릿속은 객관적으로 봐도 이 자리의 어떤 디저트보다도 설탕투성이였을 것이다.
아무리 냉방이 잘 되는 사무실이라고 해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살인적인 햇빛과 열로 일그러진 풍경을 보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몸은 시원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밖에서 빌딩 사이에 반사되는 햇빛을 쬐고 있는 것 같다.
블라인드라도 내리려고 몸을 일으킨 순간 문이 열리며 무기질적인 기계음이 손님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더웠지? 조금 쉬지 않을래?"
"안녕, 응. 그렇게 할게... 고마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잘 식힌 보리차를 컵에 따른다. 개인적으로 여름에 마시는 차가운 보리차는 다른 무엇보다도 맛있게 느껴진다.
"기다렸지, 보리차로 괜찮지?"
"괜찮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아, 선생님. 이거 가져왔어."
그리고 그녀는 손에 든 봉지에서 고급스러운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그거 비싼 거 아니야...? 얼마나 썼어...?"
"됐거든요! 전에 아이스크림을 받았으니 그 답례야. 학생의 호의, 당연히 받아줄거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네... 감사히 받을게."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세히 보면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귀가 평소보다 쫑긋 서 있다. 고양이 같다고 말하면 화내기 때문에 입으로 꺼내진 않지만 역시 고양이 같아서 귀엽다.
"선생님... 방금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지?"
"들켰어...?"
"다 들켰어,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반쯤 뜬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와 몇 초간 눈을 마주치다가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미안 미안, 귀여워서 그만."
"윽...! 매번 말하지만... 누구한테나 그런 말을 하는 건 그만두는 편이 좋아... 착각하게 되니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고 화내는 그녀는 역시 귀엽다. 친정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이러기도 해서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겹쳐보이게 되는데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이 주고받기를 한결같은 반응으로 해주는 그녀를 보고 싶어서 그만 짓궂어지는 것이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다음부턴 조심할게."
"그 말도 몇 번이나 들었어!"
"하하... 슬슬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모처럼 사왔는데 녹아버리니까."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그녀가 사온 아이스크림으로 주제를 옮긴다. 모처럼 그녀가 사온 아이스크림을 녹은 채 먹게 되면 그녀에게 미안하다.
"진짜... 뭐 됐어. 선생님 말대로 녹아버리는 건 싫으니까."
"코야마는 어떤 걸로 할래?"
"으음... 어, 하아? 선생님, 그거 농담이면 재미 없거든?"
잠깐의 침묵 뒤 그녀는 분명히 분노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맛 아이스크림으로 할 지 물어봤을 뿐인데 그녀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것 같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이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 혹시 내가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 지 정해져 있었어?"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며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를 골랐다.
"하아? 그런 걸로 화낼 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그녀의 지뢰를 제대로 밟은 듯 했고 더욱 짜증내는 그녀를 보며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호칭이야 호칭! 진짜... 아직도 모르겠어?!"
분노한 그녀의 호통에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렇게 화낼 일인가?
"에이, 그것 뿐?"
너무 사소해서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한 마디가 새어나오고 말았다. 말하고 나서 곧바로 그녀로부터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고 나는 몇 초 전 언행에 대해 사무치게 후회했다.
"그것 뿐이라고 했어? 선생님한테는 사소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진짜 싫었어. 내가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으면 제대로 말하라고... 아니면... 이미 내가 싫어진 거야...?"
"그런 게 아니야!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카즈사가 싫어진 건 절대로 아니니까!"
처음에는 귀신의 형상으로 화를 내던 그녀는 뒤로 갈수록 약해져서 마지막에는 부모에게 혼나고 울지 않으려고 눈물을 참는 유치원생을 연상시켰다.
나는 최대한 주의하면서 오해를 부르지 않도록 이렇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정좌한 채 그녀의 질책을 받고 있었다.
"그으으런 이유로?!?!?! 나만 괜히 걱정했잖아!!!!"
"정말로 죄송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그녀에게 나는 연신 사과만 할 뿐이었다.
"유행을 조사하는 건 좋지만 써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으로서 어떨까 하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런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할 입장의 사람이 이래서는 학생을 마주볼 수 없다.
그녀는 이후로도 몇 분 동안 설교를 이어갔고 그제야 진정했는지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것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그 잡지는 나도 읽었는데 그건 초면이거나 친하지 않은 사이의 경우의 이야기잖아... 우리는... 그, 그게... 가까운 사이니까..."
아직도 불안함이 남아있는지 그녀의 말을 점점 약해졌다. 그녀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와 카즈사의 사이는 특별하다고 확실히 말해줘야 할 것이다.
"물론이지, 나와 카즈사는 특별한 관계야."
"윽...! 흐응~!"
불안이 해소되고 그녀의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역시 기분이 좋아진 카즈사가 제일 귀엽다.
얼굴을 붉힌 채 귀를 쫑긋 세운 모습은 자꾸만 쓰다듬고 싶어지는 귀여움을 마구 발산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읏!!!!!"
손을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황홀한 얼굴을 보였고 귀는 쓰다듬기 쉽도록 납작 내려앉았다. 조심스럽게 내 소매를 잡는 그녀는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완전히 고양이 그 자체였다.
"아이스크림 녹으니까... 슬슬 진짜로 먹을까..."
"으, 으응. 그러자, 선생님!"
한참 쓰다듬다가 문득 생각난 아이스크림 얘기로 화제를 돌린다. 솔직히 다른 화제를 찾지 않으면 그만둘 때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손을 떼자 그녀는 쓸쓸한 눈으로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손을 쫓는 몸짓을 보며 다시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리는 것도 그녀에게 미안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아이스크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꺼내는 동안 그녀는 자리에 그대로 서서 우물쭈물하며 무언가 궁리하더니 심호흡을 한 뒤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선생님. 다음에 또 머리 쓰다듬어줘."
조금, 아니 꽤 놀랐지만 그녀의 말을 거절할 이유도 없고 나로서도 귀여운 그녀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카즈사가 좋다면 나야말로 기꺼이."
"그런 말, 진짜로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는 하면 안 돼?"
그런 평소와 같은 대사도 평소보다 더 요염하게 느껴졌다. 촉촉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그녀는 내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
"당연하지."
더욱 얼굴을 붉힌 그녀는 한 박자 늦게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한 입씩 교환할래───?"
──조금 녹은 아이스크림을 그녀와 나눠먹는다. 녹아버렸기 때문에 서로 먹일 때 조금 곤란했지만 그녀는 그것마저 기뻤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짓고 있었다. 다 먹을 때까지 그녀는 내내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기분 좋은 듯 했고 꼬리가 있었다면 분명 좌우로 흔들렸을 것이다.
이후 카즈사는 나를 만날 때마다 귀를 내리고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밖에 있든 안에 있든 불시에 요구하는데 그 때마다 근처에 다른 학생이 있는 건 우연일까?
댓글 27

유우카 반응 궁금했는데 없네
미식이네요

존나 미식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