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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피폐) 색채 침공 당시, 카이저 모브의 일지
/블루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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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꼭두각시 인형 마냥 남의 수족으로 부려지는 건 기본이고, 화약과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막사에서 매일 눈 뜨는 것만큼 끔찍한 게 있을까?

키보토스의 학생들은 총학생회에서 내세우는 학업의 의무에 따라 3년의 교육 기간을 모두 마치고 졸업을 해야 한다.

물론 학업에 일절 관심 없던 난 어쩌다 입학식 때 SRT 홍보 영상에 나오는 특수 부대의 모습에 제대로 꽂혀 버렸다. 보기만 해도 비싸 보이는 장구와 무기로 무장해서 적들을 섬멸하는 모습이 얼마나 끝내줬는지.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바로 학교 따위는 때려 치고 카이저 PMC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총학생회에서 PMC 용병으로써 군사 훈련을 수료하면 의무 학업을 완료했다 인정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었겠다, 어차피 공부도 못하는 내게 희소식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부모님과 얘기는 그리 잘 되지 않았다. 하도 길길이 날뛰시며 반대 하시길래, 결국 새벽에 몰래 가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꽤 병신 같은 짓을 해 버린 것 같다.

솔직히 말만 PMC지, 실상은 때 묻은 소총 한 자루 메고 윗분들 뒤처리나 하는 이 청소부 집합소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 보니 참 오만 가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기서 맥코이와 알트라는 두 오토마타와 친구 먹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맥코이는 덩치 크고 말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녀석 덕분에 목숨 건진 적이 많았고, 알트는.. 진짜 성가신 동생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좋은 녀석이다.

그나저나 또 개 같은 내 상관이 나더러 튀어오라 지랄한다. 곧 2주 남기고 전역 신청한 것 때문에 그런가? 이만 줄여야겠다.

<DAY 2>

일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본사에서 내 전역 신청을 승인해 줬다는 좋은 소식과, 복무 기간의 마지막 2주를 아비도스에서 보내야 한다는 나쁜 소식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따지니까 꼬우면 전역 신청을 취소하라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길래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젠장, 예전에 인원 수 문제로 날 붉은 겨울에 석 달간 처박아 둔 걸로는 부족했던 걸까?

알트 그 녀석은 내 얘기를 듣고는 2주 간 일광욕을 즐기며 전역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하길래 스패너로 머리통을 두들겨줬다.

그래도 녀석 말대로 좋게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2주 간 땡볕 아래에서 일광욕 좀 하다 전역하고 SRT 편입 시험을 준비 하면 문제 없겠지.

짐은 다 챙겼고, 아비도스 행 수송 트럭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일기나 쓰고 있다.

그나저나 엄마한테 편지라도 써 볼까 싶어서 뭐라 쓸지 생각해 봤는데 아직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

<DAY 3>

전역까지 앞으로 11일 남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 아비도스의 땡볕과 주기적으로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내 말년이 많이 꼬인 것 같다.

그래도 기지에서 후발로 재배치 된 맥코이와 알트를 만난 건 그나마 위안이 좀 된다.

그나저나 알트의 말이 맞다면, 내가 근무할 이 메브로스 기지는 카이저 PMC가 아비도스에 세운 기지들 중 제일 크고 견고한 건 물론, 그만큼 엄청 많은 병사들이 배치된 곳이라 한다.

총알과 무기는 사막 모래알만틈 잔뜩 쌓였고, 격납고에는 전차와 골리앗들이 넘쳐 난다길래 한번 가 봤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기지가 생각보다 엄청 넓길래 찾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모래 바람 때문에 망가진 골리앗과 전차들을 수리하느라 쉬지도 못하는 엔지니어들의 빡친 표정을 보니 괜히 인사 했다가 총 맞을 것 같아서 그냥 다시 돌아왔다.

그나저나 이 메브로스의 총 책임자인 중령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아비도스의 학생들이 카이저의 인수 합병 절차를 방해하고 있으니 그들의 행동거지를 철저하게 감시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비도스가 모래 폭풍으로 망하기 전에는 트리니티보다 엄청나게 크고 굉장한 곳이라 들었는데, 지금 경계탑 창문으로 보이는 저 넓은 사막을 보면 세월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슬슬 잠도 오고, 교대 시간이 다가온다. 이만 줄여야겠다.

<DAY 4>

오늘은 여러모로 우울한 날이라 뒤늦게 일기를 쓴다.

남은 오후 근무를 다 끝내고 휴게실에서 SRT 예상 문제집을 풀다 머리 좀 식힐 겸 TV를 켰는데, 현실이 내 이상과 목표를 완전히 박살 내고 말았다.

내 인생의 목표였던 SRT가 갑자기 폐교 되었다는 뉴스 소식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적어도 이유가 뭔지 알고 싶었지만 총학생회에서는 아예 노코멘트라며 해명은 쥐뿔도 하지 않았고, SRT의 학생들은 싹 다 발키리 경찰 학교로 강제 편입 됐다고 한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말하는데, 하마터면 테이블을 엎어 버리는 것도 모자라, TV에 총질을 갈겨 버릴 뻔 했다.

도대체 왜 윗대가리 작자들은 하나 같이 골 빈 등신 천지인 걸까?

계산기 몇 번 두들기다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다고 많은 이들의 앞날과 꿈을 싹 다 깨 부수는 게 답이라고 생각 했던 걸까?

TV는 또 다시 몰려온 모래 바람 때문에 전파가 끊겨 꺼져 버렸고, 더 이상 쓸모 없는 문제집은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적기에는 좀 쪽팔리지만, 발길 드문 창고에서 한 동안 어린 아이처럼 오랫동안 울다 알트에게 들켜서 위로 받았다.

이젠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전역하면 대체 뭘 해야 하지?

<DAY 5>

오늘은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알트와 함께 순찰 임무에 자원 했다. 아비도스의 구 시가지 외곽으로 가기 위해 험비 한 대를 차출 받으러 가는 길에 문득 중령이 본사에서 온 듯한 높으신 분께 무언가 보고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알트에게 물어보니, 내가 본 높으신 분은 PMC의 총책임자였던 이사의 뒤를 이어 새로 온 제너럴이라는 엘리트 장교였고, 높으신 분께서 직접 행차 하시는 게 무슨 뜻인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만 늘었다.

구 시가지 외곽을 순찰하며 알트에게 전역할 수 있다면 뭘 할 수 있는지 물어 봤는데 대답이 좀 신박 했다. 멕코이와 함께 타코 가게를 차려 보고 싶다나?

이유를 물어보니 그것도 좀 웃겼다. 태어나서 총질만 하다 죽을 삶이라면, 무언가 특별한 걸 해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녀석과 함께 계속 대화를 나누며 순찰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 버렸고,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지에 복귀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SRT라는 길이 아닌 애시당초 오르지 못할 벽 앞에서 그저 달리는 게 아닐까?

<DAY 6>

알트와 함께 기지에 복귀해 보니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병사들은 보급관들이 나눠주는 무기와 탄약을 챙겨 연병장에 집합하는 중이었고, 엔지니어들은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업무량에 갈려나가고 있었다.

바로 험비를 반납한 우리는 연병장으로 가던 맥코이를 만나 카이저가 기어이 총학생회 '합병 인수 절차'를 밟기 시작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빌어먹을, 전역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이런 개 같은 일에 엮여 버린 걸까?

알트는 자기가 아는 온갖 농담을 끌어 쓰며 날 안심 시켰지만 그 녀석의 목소리에는 겁 먹은 티가 확연히 드러났다.

일단 무장 챙기고 집합 하라며 행정관이 소리 지르고 있으니,

(DAY 6의 내용은 여기서 끊겼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피와 기름, 그리고 먼지로 잔뜩 얼룩져 있다.)

<DAY #$@#$@@>

뭔가 잘못 됐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기절했다 깨어 보니, 피와 먼지 투성이의 알트와 맥코이가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반쯤 깨진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하늘이 붉게 물든 건 물론, 저 멀리 사막 한 가운데에 보기만 해도 섬뜩한 커다란 탑이 우뚝 서 있었다.

알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자기도 정확히 기억을 할 수 없다며, 갑자기 하늘이 붉게 물들고 못 보던 탑이 생기더니, 곧 문어 비슷한 괴물들이 기지 방벽을 타고 넘어와 학살극을 벌였다고 했다.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기지 병력의 못해도 절반 이상이 당했고, 중령의 명령 하에 살아남은 병사들은 기지 내부로 대피해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최대한 오랫동안 방어전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저 멀리 덩치 큰 오토마타를 반으로 찢어버리고 내장 케이블을 휘적거리는 문어 한 마리를 보니 씨발 그게 과연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다.

저 멀리서 중령이 통신병들에게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본사에게 지원 요청을 보내라 닦달하는데, 늘 품위 있어 보였던 그가 이제 나처럼 거지 꼴을 하고 있으니 참 웃길 노릇이다.

머리가 자꾸만 아파온다. 모르핀 젤을 먹어서 그런 건가? 너무 무섭다.

그래도 맥코이가 내 일지를 챙겨서 보관하니까 정말 다행이다.

<#$@#$@@%^>

여전히 기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망할 문어들이 우글거리는 저 밖으로 나간다면 분명 1분도 못 버티겠지.

중령은 분명 본사에서 지원 요청 연락을 받았는데도 왜 답장이 안 오는 거냐고 게거품을 물며 지랄하고 있다. 병신 새끼, 일개 땅보병들만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보다 이 문어 녀석들, 생각보다 무서운 놈들이다. 7미리 탄을 잔뜩 갈겨야 껍질이 겨우 떨어지고, 그 틈에다 50구경 탄을 때려 박아야 겨우 쓰러진다. 대체 씨발 이런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며 버티라는 거지?

계속 속삭임이 들린다. 뭐라 말하는 건지 몰라도, 절대 좋은 뜻은 아닌 것 같다.

무섭다. 그냥 내 인생 자체가 어쩌다 이리 된 건지 알 수 없다.

<#$@#$@@절망은 죽음을 낳는다>

알트가 죽었다. 갑자기 구토 하며 발작하는 한 병사를 일으켜 세우려다 그 개자식이 겨눈 총에 머리 상단부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알트를 죽인 녀석의 몸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계속 절망에 대한 말을 지껄이는 데 온 몸이 갑자기 푸른 형광빛을 내더니 그대로 좀비처럼 날 덮쳐 물어 뜯으려 했다.

맥코이가 녀석의 목을 잡아 벽에 처박고 총알을 박아주지 않았다면 난 죽었겠지.

중령은 소식을 듣자마자 나처럼 헤일로가 달린 애들을 다 죽이라며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젠 그 양반도 미쳐가는 듯 보인다.

속삭임이 조금씩 선명하게 들리니까 알트의 농담이 너무나도 그립다. 행실이 경박해서 언제 한 번 총 맞을지 모른다 생각 했지만, 이렇게 죽는 건 원치 않았다.

그 등신 돌대가리가 너무나 보고 싶다.

<#$죽음은 변화를 낳는다@#$^>

방어선이 뚫렸다. 문어들이 아닌 미쳐버린 오토마타와 병사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헤일로 달린 애들만 괴물로 변하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 오토마타들도 미쳐버리며 온 몸이 푸른 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PMC 기지 중에서 제일 큰 이 메브로스가 겨우 열 몇 시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니, 이젠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제일 웃긴 게 하나 있다면, 중령 그 병신 새끼가 부하들 데리고 전용 헬기를 타고 도주 하려다 2백 미터도 못 가 그대로 추락해 뒤져 버린 거다.

아마 파일럿이나 자기 부하들 중 하나가 변해 버리면서 뒤진 거겠지.

내가 일지를 쓰면서 계속 웃으니까 맥코이가 정색하며 정신 차리라 한다.

난 이미 멀쩡한데.

병사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고, 이제 복도에는 괴물들이 여럿 돌아 다니고 있다.

여기 발을 들인 순간부터 우린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속삭임이 이제 선명하게 들린다. 절망은 죽음을, 죽음은 변화를 낳는다.

<#$@#$$살고 싶어>

맥코이가 죽었다.

그 녀석은 모르핀 젤의 약기운에 취해 있던 날 깨우며 기지 지하의 폐기물 배출 통로를 통해 메브로스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고 했지만, 자신은 남아야 한다고 했다.

이유를 따지려 했지만, 녀석의 손 끝이 파란색으로 변해가는 걸 보니 차마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혼자가 되는 게 너무 무섭다고 우니까, 녀석이 날 배출 통로 입구로 끌고 가며 말했다.

어차피 무의미하게 총질만 하다 죽는 삶이라면, 한번 만이라도 좋은 일을 해보고 죽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뭐라 더 말리기도 전에 괴물들이 우릴 찾아냈고, 맥코이는 곧장 날 어느 한 격리실에 날 던져 넣고 문을 잠그더니, 그대로 몰려드는 괴물들을 상대했다.

그게 문이 닫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못해도 6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서 살아 나간다 쳐도, 엄청난 열기로 인해 사막 한가운데에서 죽을 테고, 이대로 있으면 놈들에게 먹히거나, 어쩌면 나 또한 괴물로 변하겠지.

내가 이 일지를 다 쓰고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구든 좋으니 이걸 발견하면 부모님께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괴물로 변했다면... 가지고 있는 탄을 전부 내 머리에 갈겨 줘라. 다시 못 일어날 정도로 잔뜩.

(색채 사태 이후 호시노가 PMC 출신 헬멧단원의 증언을 토대로 메브로스 군사 기지에서 수색 하던 도중 발견한 일지다.

기지 내부에는 테러화로 오염되어 버린 PMC 병사들이 여전히 존재 했으며, 이에 대한 처리는 트리니티 시스터 후드의 협력 아래 진행 중이다.

생존자는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일지의 주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방법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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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7.12창작

(피폐) 색채 침공 당시, 카이저 모브의 일지

#카이저 코퍼레이션#색채#피폐#모브
좋아요 0댓글 4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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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DC
홍동쓰작가
게시물 49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5.07.12 17:25
조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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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나
ㅇDC
ㅇㅇ125.07.12
디시콘
ㅇDC
ㅇㅇ225.07.12
디시콘
ㅇDC
ㅇㅇ325.07.12

아포칼립스 일지 너무 좋아

ㅇDC
ㅇㅇ425.07.12

맛있다 -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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