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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핫산] 키류 키쿄: 축제가 끝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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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43자

#키쿄

원문 panda

────────────────────

정말로 이렇게 진탕 취할 만큼 마셔본 것은 얼마만일까.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시야도 흔들린다. 육지에 있지만 거친 파도를 나아가며 항해하는 배를 탄 듯한 기분이다.

비틀거리는 갈지자걸음으로 딱딱한 돌층계를 휘청휘청 걷고 코로 숨을 크게 쉰다.

스읍, 겨울에 가까운 가을밤의 차갑고 맑은 공기가 비강을 스친다.

흙과 마른 낙엽, 금목서가 섞인 쓸쓸하지만 부드러운 가을 냄새. 그리고 화약 향기와 포장마차 음식 냄새가 멀리서부터 뒤섞여 축제날 특유의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귀를 기울이면 아직도 식지 않은 열기의 소란이 멀리서 들려온다.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꿈처럼 어렴풋이 멀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시끄럽다.

"이거... 어디서 좀... 쉬어야겠네..."

무뎌지는 감각에 조금 과했을지도,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조금은 경쾌하고 들뜬 채 똑바로 걷질 못하는 발로 쉴 곳을 찾아 걸음을 옮긴다.

"아니... 그나저나... 후훗, 맛 좋은 술이었어..."

방금까지 마시던 술을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입맛을 다신다. 가능하다면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만 그럴 만큼 다리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커다란 보름달이 바로 위에 있었다.

한가위 보름달이란 녀석이다. 크레이터 모양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커다란 보름달이다.

가을의 맑은 공기 속 등롱 너머로 보이는 보름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

백귀야행에 일로 온 것은 아직 날이 밝은 낮 때였다.

얼마 전 20년만에 열린 『백귀야행 등롱제』에서 발생한 사건과 그 주범인 화조풍월부의 소동, 사건 관련 진전과 피해 파악, 그 외에도 학생들의 곤란한 점은 없는지 최근들어 백귀야행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선생, 알고 계십니까? 사실은 오늘 밤에도 축제가 있거든요."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이제는 단골이 된 소바집의 개 점주의 즐거운 표정으로 꺼낸 말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아하, 그렇군요... 어쩐지 큰길가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던 게..."

가게 입구 쪽으로 바깥을 힐끔 보면 여기저기서 출점 준비를 하고 있다.

탕탕탕, 망치 두들기는 소리.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낮은 남성 목소리의 지시하는 소리.

그리고 그 지시에 따르는 활기찬 학생의 소리.

마치 축제 직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네, 분명 그 마츠리운영관리부의 시즈코 씨를 중심으로 다시 축제를 연다고 하더군요. 뭐랬더라,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다시 많은 축제를 열어 조금씩 회복해나가죠!』라고 선도해서... 요즘은 자주 개최되네요."

"아하하... 시즈코답네요."

축제와 매출에 진심인 백야당의 당주 카와와 시즈코가 축제 준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분명히 축제 직전인 오늘도 그녀는 여러 가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혹시 일정이 없다면 선생도 즐겨보시는 게 어떱니까? 예전 백귀야행 등롱제만큼 큰 축제는 아니겠지만 학생들은 물론이고 저번 사건으로 도움받은 사람들도 기뻐할 걸요?"

"아하하, 그렇겠네요... 오늘은 백귀야행에서 볼일이 끝나면 이후 별다른 일정도 없고 모처럼이니까 즐기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업무를 끝내고 밤이 되어 축제에 참가했지만 어느새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번 등롱제의 감사의 표시로』, 『평소 신세를 지고 있으니』 같은 이유로 음식과 술을 권유받다 보니 어느새 술에 취했다는 것이다.

아니, 술도 물론 맛있었지만, 무엇보다 술이 잘 넘어갔던 이유는 역시 『안줏거리』 때문이다.

축제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점이 즐비한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광장에는 많은 의자와 테이블이 있어 축제에 참가한 손님들이 편하게 먹고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축제의 활기찬 분위기를 타고 나도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맛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선생, 그러고 보니 음양부 아이들에게 항상 고민 상담을 받고 있는데...』

『나도 얼마 전 분쟁조정위원회가 불량배들에게 휘말렸을 때 도움을 받아서...』

『역시 마츠리운영관리부는 대단하구만! 이번 축제도 자발적으로 여러 가지로 준비해 줘서...』

『그... 인법연구부는 뭐하는 데랍니까...?』

등등.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학생들의 호평과 활약, 때때로 질문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몇 번이고 술을 권해지고 대접을 받았다.

그야 어쩔 수 없다.

제자들의 활약과 칭찬을 듣고 이야기하며 술을 마신다, 선생님으로서 자랑스럽지 아니할 수 없고 이렇게 술이 맛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량을 넘겨버렸다. 응,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주정뱅이가 하나 탄생한 것이다.

"여기 괜찮네...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찾은 공원 벤치에 겨우 주저앉는다. 바람에 세차게 불고 몸이 떨린다.

이제 한계다.

술을 진탕 마신 데다 걷느라 피가 돌아서 그런지 시야가 확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보는 듯 흐려졌다가, 갑자기 초점이 맞은 듯 선명해지고, 다시 뿌옇게 흐려진다.

홍채가 바쁘게도 움직인다. 남의 일인 듯 멍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했다.

"후우... 후후후..."

나도 모르게 웃으며 누웠다.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나무 벤치의 감촉이 뜨겁게 달아오른 뺨에 닿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모두가... 그렇게 의지하고 있다니... 사랑받고 있어서... 다행이네... 그래야지... 노력하고 있으니까..."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것은 백귀야행의 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쟁조정위원회의 아이들이다.

한때 부장의 부재로 뿔뿔히 흩어진 그녀들도 함께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고 이제는 다시 백귀야행의 『분쟁조정위원회』로서 매일매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활동 중단으로 잃은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며 애쓰는 그녀들을 뒤에서 응원하고 있었는데 평판을 들어보면 점차 잘 되어가는 듯 했다.

"정말로... 응... 다행이야... 후후후..."

벤치 위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들을 생각하면 가슴 속 따뜻한 기운이 솟아오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만큼 기쁘다.

분명 그녀들이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낼 것이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만큼 그녀들이 하나로 힘을 합쳐 극복한 그 사건은 그 아이들의 안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큰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감회가 깊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의식이 흐려진다.

살을 에는 밤의 추위에 몸이 떨리지만 편안한 졸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기분이 좋다. 즐겁다.

눈을 감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해서──

"우와... 누구야 저 취객은... 어라... 거짓말... 당신이 여기서... 뭐하는...!"

귓가에 어렴풋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마터면 완전히 의식을 잃을 뻔 했다.

"당... 잠... 여기... 제대... 야지! 일어나...!"

목소리가 들린다. 왠지 귀에 꽤나 익은 여성의 목소리다.

그런데 말의 의미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분명 아는 목소리인데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나를 깨우려는지 몸을 좌우로 흔든다.

애써 눈을 떠봐도 가로등의 역광에 비치는 희미한 검은 실루엣만 보인다.

오감이 전부 둔해져 무엇을 하든 흐릿한 초고속 카메라처럼 보인다.

"응... 미안... 괜차나... 괜... ㅊ..."

"선생... 이런... 잠들면 안... 감기걸... 하아... 일단... 백화... 조정실..."

누군지 모르지만 왠지 화난 것 같아서 사과하고 싶지만 목소리도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

술은 이토록 무서웠던 것일까. 머리로는 생각할 수 있지만 신체 모든 부분이 머리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분이다.

"잠깐... 참아... 영차... 무거... 진짜..."

갑자기 몸이 일으켜지는 감각과 함께 잠시 후 내가 어깨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술이 뇌까지 침투했는지 아까보다도 걸음을 휘청거린다. 그럼에도 제대로 걷는 것은 옆에서 지탱하는 누군가의 덕택일 것이다.

어깨와 허리에 단단히 손이 감겨 있다. 가만 보면 가는 무언가도 허리에 감긴 듯 하다. 밧줄이라도 쓴 걸까.

"우와... 술냄... 당신... 까지 마시는 타입... 였어? 의외네..."

아까보다 가까이에서 말하기 때문인지 조금 선명해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당황스럽고 낮으면서도 상냥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어딘가의 학생일까? 그렇다면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자... 곧... 백화요란의... 에 도착할... 정말... 왜 이렇게까지..."

"백화요란...?"

"응...? 술이 조금 깼어...? 응, 지금부터... 요란의..."

"백화요란... 백화요란... 오늘... 축제서... 많이... 칭찬하더라... 후후후... 기뻤어..."

백화요란이라는 말을 듣고 방금 전까지 생각했던 것이 떠올라 또 히죽히죽 웃음이 나온다.

하아, 옆에서 한숨을 쉰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다.

"... 왜 이렇게 취한 건지... 그런 일이... 정말... 어쩔 수 없..."

"헤헤헤헤... 그래서... 다들 다행이야...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네네... 알겠으니까... 빨리 걸어..."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지금 어디로...?"

"괜찮아... 제대로 쉴 만한... 에 가니까... 자, 조금만... 힘내..."

"쉴 곳...? 응... 고마워... 고마워..."

"감사할 정신이 있으면... 조금만 더 힘을... 좋아... 읏... 하아, 무거웠..."

가끔씩 멈추면서도 질질 끌려 따라간다.

나를 달래면서도 몸을 잡아끌듯 함께 걷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그대로 그녀가 말하는 쉴 만한 곳으로 향했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두 개.

검은색의 긴 꼬리같은 것.

마치 생명체처럼 의지를 가진 듯 흔들리는가 싶으면 갑자기 내 가슴팍에 툭 떨어졌다가 다시 불규칙하게 살랑거리며 멀어진다.

"어라...? 여긴...?"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격자 모양 나무 천장판의 일본식 천장. 백귀야행 건물에서 흔히 보이는 전통적인 형태의 천장이다.

그 앞에서 흔들리는 고양이처럼 가늘고 유연하고 검으면서 끝으로 갈수록 파랗게 물든 듯 그라데이션이 있는 꼬리가 두 개.

이 꼬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키보토스가 넓다고 해도 이런 고양이 꼬리 두 개를 가진 학생은 한 명 밖에 모른다.

"... 선생님, 깨어났구나."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왠지 기뻐보이면서도 약간 아쉬움이 느껴지는 소녀의 목소리다.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문지르며 그대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 잠든 당신의 얼굴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으니 모처럼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끝났네."

앳된 모습이 남아 있지만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

어깨까지 내려오는 먹물로 염색한 검은 고급 비단처럼 가늘고 윤기 나는 고운 머리카락.

이따금 쫑끗거리는 그녀의 제일 큰 특징 중 하나인 뾰족한 고양이 귀.

달을 등진 채 쳐다보는 그녀의 원래부터 아름다운 모습이 달빛에 비추어 더 아름답게 보여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 키쿄?"

백화요란 분쟁조정위원회 작전참모, 키류 키쿄.

그녀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얼굴 거리가 30cm도 안 될 정도로 가까워서 그녀의 동공까지 자세히 보일 정도였다.

편하게 엎드린 채 여유롭게 턱을 괴고 가벼운 하품을 하면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늘 걸치던 푸른 하오리는 지금은 벗고 있다.

백귀야행 연합학원 지정 교복 사이로 얼핏 보이는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쇄골이 살짝 보여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 그러니까, 뭐 하고 있어? 키쿄?"

"... 깨어나서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당신이야말로 뭘 하고 있던 거야?"

하아아, 그녀가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한숨을 내쉰다.

몸을 일으켜 이마에 손을 얹고서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그녀의 검푸른 색 머리카락도 흔들린다.

"추운 공원 벤치에서 잠들 정도로 얼큰하게 취해서는, 깜짝 놀랐어. 뭐하고 있냐고 물어도 너무 취해서 말도 안 통하고, 데려가려고 해도 스스로 걷지도 못하고. 어깨를 빌려주고 힘들게 여기까지 데려오니까 이불에 눕히자마자 잠들어 버리고.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내 대답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듯 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내민 그녀가 속사포처럼 불평을 쏟아냈다. 무너진 댐처럼 화를 와르르 쏟아내는 키쿄는 조금 무서웠다.

"미... 미안해... 어라...? 나는 분명... 쉴 곳을 찾다가...?"

그리고 마침내 몸을 감싸는 따뜻한 감각으로 자신이 이불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키쿄가 일부러 깔아준 것일까.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두꺼운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하아... 뭐, 상태를 보니 술도 조금 깬 것 같네. 자, 물. 천천히 마셔."

"어...? 아, 고마워."

그녀가 내민 물컵을 받아들려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건네받은 잔은 차갑고 시원해서 꿀꺽꿀꺽 마시니 취기와 열이 조금 중화되어 편해졌다.

아직 머리가 멍한 느낌은 조금 들지만 훨씬 나아져서 세상도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인다.

시간 감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꽤 지났는지 처마 끝에서 보이는 달이 축제 장소를 떠났을 때보다 분명히 기울어져 있다.

"여기는... 백화요란의 조정실이지?"

주위를 둘러보면 낯익은 방이 눈에 들어온다.

다다미 열 장 정도의 방, 돋보이는 일본식 집무용 책상과 그 주위에 난잡하게 쌓인 책과 서류들.

그리고 몇 개의 총기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 일본식 방에 건랙이라니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곳은 키보토스, 여기는 그러한... 장소다.

무엇보다도 확신한 것은 천장의 투박한 수리 흔적. 분명 예전에 조정실이 엉망이었을 때 내가 고친 흔적이었다.

"맞아, 당신을 공원 벤치에 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 뭐, 여기가 제일 가까웠거든."

"어라? 키쿄는 그 때 왜 거기 있던 거야...?"

"... 저기 말이야, 등롱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순찰을 돌지 않을 수 없잖아."

"아, 그런가..."

백귀야행 등롱제가 한 번 엉망이 되고 시즈코 일행의 제안으로 다시 열렸을 때 같이 순찰하러 나간 렌게와 키쿄가 말하곤 했다.

『앞으로 수백 번은 열릴 백화요란의 축제를 위한 순찰의 일환』이라고.

그 말대로 이번에도 키쿄나 다른 아이들이 순찰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나잇값도 못하고 그녀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점점 부끄러워지고 열이 나는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뭐 그래도 막 흩어진 뒤 발견한 건 당신에게 행운일지도 모르겠네... 나로서는 술냄새나는 무거운 어른을 혼자 옮기느라 재난이었지만."

"그렇구나... 미안, 여러 가지로 걱정과 폐를 끼쳐서... 한심한 모습도 보이고..."

"하아...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나도 너무 심하게 말했어."

잠깐의 침묵 뒤 한숨을 내쉰 뒤 떨떠름한 표정의 키쿄가 입을 열었다.

왠지 어색해졌는지 한쪽 팔을 잡고 내가 없는 양 시선을 피하고 있다.

"당신을 걱정해서 놀란 건 맞지만... 그렇게 화난 건 아니니까. 내가 선생님을 보호한 건 백화요란의 의무고 당연한 일이야. 단지 그뿐...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 당신도 내가 몸살이 났을 때 간병해줬었지. 그러니까 비긴 거야. 알겠어?"

얼마 전 몸살이 나도 무리해서 혼자 일하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여기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선생님으로서 학생이 힘들 때 돕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때 그녀에게 의지했으면 좋겠고 의지해도 괜찮다고 했던 말이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감회가 새롭다.

분명히 그때, 그 순간부터 그녀와 나의 관계를 확실히 달라졌다.

성격과 입장 상 남에게 의지하기 힘들고 매번 상대방의 사고를 읽고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항상 계산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이 백화요란의 작전참모를 담당하는 키류 키쿄라는 소녀의 평소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녀에게 언젠가 이용해야 할 장기말로서 샬레의 선생님과 백화요란의 학생이라는 관계보다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운 거리감으로 대해졌었다.

그런 그녀와 유대감을 거듭 쌓아가며 키쿄로부터 직접 『전신전령으로 어리광부리겠다』는 선언까지 듣게 되었다.

그녀가 추천하는 책이 있다며 사적으로 불렀을 때는 놀라는 동시에 기뻤다.

그녀가 드디어 마음을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이대로 여기서 자고 가. 지금은 샬레까지 가는 교통편도 끊겼을 테고 이 상태로 돌려보내는 것도 걱정되니까."

"... 고마워, 키쿄. 여러 의미로."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라니까... 아, 그렇지. 정 신경쓰인다면 다음에 샬레에 갈 때 어리광을 잔뜩 받아줘. 평소보다도 많이. 내가 제대로 만족할 만큼."

좋은 생각을 떠올린 아이처럼 키쿄가 표리가 다른 듯한 제안을 해왔다.

"응... 막 생각한 거지만 꽤 묘안일지도 모르겠네. 흐응, 기대하고 있을게? 선생님이 이렇게나 은혜를 느끼는 나에게 대체 어떤 대접을 해줄까... 어줍잖은 걸로는 만족하지 않으니까, 알았지?"

키쿄가 웃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눈을 흘기며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그야 당연하지. 키쿄가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어리광을 받아줄게."

"... 아아, 그랬지.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인데 까먹고 있었어."

인상을 쓰고 실망한 듯한 한숨을 쉰다.

허탕을 친 뒤 어처구니가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응응. 언제 어디서든 키쿄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리광 부려도 괜찮아?"

"헤에... 두말하기 없기야, 선생님?"

한숨을 내쉬는 키쿄를 보고 조금 기세가 올랐다고 자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키쿄가 눈을 게슴츠레 뜬다. 입가에 옅게 짓궂은 듯한 미소가 떠오르고 그녀의 하얀 치아가 보인다.

먹잇감을 노리는 육식동물처럼 소리도 없이 천천히 옆까지 다가왔다.

"선생님, 옆에 자리 좀 내줘."

"... 뭐라고?"

"자, 빨리."

"잠ㄲ... 와앗...?! 와아아앗?!"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키쿄가 이불 속으로 스르륵 들어왔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엔 좁아 보이는 공간 사이로 능숙하게 파고들어왔다.

그대로 저항도 못하고 키쿄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 꿈틀거리며 자리를 잡는다.

겉보기와 달리 체온이 높은 그녀의 몸과 접촉하자 나도 모르게 동요해 버려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키쿄라는 여학생의 부드러운 몸이 내 신체의 여러 부분에 닿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한 자세를 찾았는지 최종적으로는 서로 등을 맞대고 밀착하는 자세가 되었고 그녀의 편안한 듯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잘됐어. 여기 이불이 하나뿐이여서 방석을 베개 삼아 잘까 했는데 그렇게 말한다면 어리광 부리도록 할게."

"저기... 키쿄..."

"뭐야? 당신이 아까 말했잖아? 『언제 어디서든 키쿄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리광 부려도 괜찮아』라고."

"그건... 그렇긴 한데... 지금 여기서 그러는 건 조금 예상 밖이라서... 뭐랄까..."

"자업자득. 평소에 그런 말만 하니까 그런 거야. 설마 이제 와서 안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뭐... 응... 알겠어..."

"후후... 그래야지."

압박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하면서도 동의하자 만족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승리했다는 표정일 것이다. 그만큼 신나 보이는 목소리가 그녀의 속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녀의 꼬리가 내 팔에 스르륵 얽힌다. 한쪽 팔에 양 꼬리를 전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감아온다.

아무래도 놓아줄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는 모양이다. 『미성년자와 단둘이 이불 속에 있다』라는 사실만 빼면 특별한 문제되는 짓은 없으니 포기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순응한다.

"... 술 냄새."

킁킁, 등 뒤에서 냄새를 맡는 소리가 나고 키쿄가 불평한다.

확실히 아직 술 냄새가 빠지지 않고 내 몸에 배어 있다. 그녀의 냄새가 이불 속으로 들어온 뒤에는 더욱 느끼기 쉬워졌다.

"키쿄는 산뜻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나네."

"... 잠깐만, 여기서 그런 소리 하지 마. 기분 나빠."

"키쿄가 먼저 시작했는데..."

별 생각 없이 감상을 말하자 꽤나 진지한 매도를 받았다.

슬프다.

"똑같이 내 냄새를 언급하라는 소리가 아니야... 그러고 보니 당신, 맨날 그 정도로 마셔?"

"아, 아니... 평소에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아. 아마 여기 와서 그렇게 취한 건 처음일 걸."

"흐응...? 모르겠는데..."

급히 변명하지만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회의적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아니, 정말이야...? 믿어줘..."

"네네. 응...? 잠시만. 그렇단 말은 혹시 당신의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본 사람은 키보토스에서 나뿐이라는 건가...?"

무언가 묘안, 혹은 재밌는 장난이 떠오른 듯한 말투로 키쿄가 묻는다.

잠깐 고민했지만 딱히 거짓말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음... 그렇게 되겠네..."

"헤에... 그렇구나. 흐응..."

선생님의 약점을 잡았네, 키쿄의 늘어지는 목소리가 유달리 기뻐 보였다.

키쿄에게 들키는 것 자체는 상관 없었지만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 저기... 키쿄? 이 일은... 가능하면 비밀로 해줬으면..."

"뭐야? 다른 학생에게 들키는 건 싫어?"

"뭐... 그야... 다시 생각해보니 그다지 좋을 것 같진 않아서..."

"어떻게 할까? 『샬레의 선생님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인사불성이 된 채 학생에게 부축받고 심지어 같은 이불에서 잠들었다』라고 당신의 한심한 모습을 백귀야행 전역에 뿌린다...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역시나 그것은 어른으로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선생님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백귀야행 거리를 걷다가 소곤소곤 손가락질을 받는 광경을 상상한다.

굉장히 무섭다. 백귀야행은 커녕 키보토스 전역을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그것만큼은 봐줘... 부탁드립니다, 키쿄 씨..."

내 선택지는 전적인 항복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 키쿄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어깨가 뭔가를 참는 듯 부들부들 떨린다. 때때로 목이 메는 듯한 웃음소리도 들린다.

"... 키쿄 씨?"

"풉... 아하하... 농담, 농담. 필사적으로 부탁하는 모습이 우스워서 그만."

"키, 키쿄... 키쿄의 농담은 알아듣기 어려워..."

"냄새를 언급한 복수도 조금 겸해서."

"죄송합니다."

빠르게 사과한다.

나로서는 좋은 의미로 한 말이지만 키쿄는 생각보다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 말해 두는데, 냄새를 몹시 신경쓰는 사람도 있으니 안이하게 말하지 마... 나구사 선배나, 렌게나, 유카리.나, 아닐 것처럼 보여도 꽤나 신경쓰고 있으니까."

"새, 새겨두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런 모습을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건 그것대로 이득이니까... 여차하면 내 무기로 쓸 거야."

"그럴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훗... 좋아."

"휴..."

완전히 항복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만족했는지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위기는 넘긴 듯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높은 체온 덕분에 이불 속이 따뜻해진다.

눈꺼풀이 다시 점점 무거워진다.

"... 내일 아침은 밥이랑 된장국이랑 계란말이면 충분하지?"

"어? 만들어 주는 거야?"

"목소리가 커. 뭐... 식재료도 있고 내가 직접 만든 요리라도 괜찮다면."

"최고야... 키쿄가 만들어주는 요리는 맛있으니까 기대돼..."

"... 단순해."

"그만큼 키쿄의 요리를 나는 좋아하는 거야."

한 번 먹었을 때부터 가능하다면 매일 그녀의 밥을 먹고 싶을 정도였다. 기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실례다.

그녀의 요리는 맛있을 뿐만 아니라 왠지 모를 그리운 맛까지도 느껴지는 기분이다.

쉽게 말해서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할까.

백귀야행이 일식 위주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키쿄의 요리는 아무튼 내 입맛에 딱 맞는 것 같다.

"흐응... 뭐, 최대한 솜씨를 발휘해 줄 테니까 내일 제대로 일어나."

"왠지 설레서 제대로 못 잘지도..."

"어린애같은 소리 하지 말고... 재워주기까지 해야 해? 등을 토닥이며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 그거 괜찮을 것 같은데."

"... 바보."

"너무해..."

꼬리가 가볍게 팔을 조인다.

상냥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그녀를 상상하며 나름 진심으로 한 소리였는데 유감이다.

"후아암..."

그녀와의 대화에서 편안함을 느껴서인지 졸음이 천천히 엄습했다.

나도 모르게 하품을 크게 한다. 술을 마신 탓도 있을 것이다.

"... 자, 이제 자자?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아침에 약하거든. 당신이 원하는 시간에 깨워 줘."

"응, 알았어... 후후후..."

그녀의 말투가 왠지 부부 사이의 대화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뭐야? 뭐가 웃긴 거야? 내가 아침에 약한 게 그렇게 이상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의아해하며 묻는 그녀에게 오늘 하루를 떠올리며 문득 생각한다.

취한 나를 불평하면서도 성의껏 챙겨주었다.

엄한 듯한 말투지만 여러 방면으로 상냥하다.

요리도 맛있고 돌보는 것도 잘하니 아이들 상대도 잘할 것이다. 사실 유카리의 선배로서 키쿄는 잘 해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그녀와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역시...

"... 키쿄는 말이야, 왠지 좋은 아내가 될 것 같아."

타의 없이 순수한 진심으로,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 하아?"

허를 찔린 듯한 목소리를 낸다. 그다지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도 말이다.

"... 아직도 술에 취한 거야? 아니면 잠꼬대?"

"아니,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누워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납득한다.

아마 그녀의 말대로 아직 취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술 때문에 아직 머리가 조금 아프고 깊게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키쿄가 좋은 아내가 될 것 같다는 말은 진심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다.

"당신 말이야..."

"그야 이렇게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배려심 넘치고 모두에게 신뢰받고 머리도 좋고 요리도 굉장히 맛있고 또..."

그녀가 좋은 아내가 될 만한 요소를 생각나는 대로 하나하나 나열한다.

역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녀는 좋은 아내가 될 것이 틀림없다.

"... 자, 거기까지. 슬슬 화낼 거야."

"아... 미, 미안..."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워져서 화가 났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래도 역시 질투나네... 장래에 키쿄의 남편이 될 사람이 부러워. 진짜로 질투심이 드는 걸..."

내가 보기에도 질척거리지만 미련을 갖고 키쿄에게 계속 말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꼬리가 조이는 힘이 여느 때보다도 강해진다.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일까.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눈을 감으려 했다.

"... 당신은 그런 소망이 있어?"

그때 그녀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

"나? 그런 소망이 결혼을 말하는 거야?"

"... 지금 문맥에서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그래서? 어떤데?"

"나야 뭐... 언젠가 가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흐응..."

키쿄가 여러 의미가 담긴 콧소리를 내더니 말이 없어졌다.

또 실수해서 그녀를 화나게 만든 걸까.

고요함 속 서로의 숨소리만 이불 속과 어두운 조정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럼 당신이 맞이해줘."

그리고 그런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어?"

"그런 소리를 할 거면 당신이 나를 맞아들이라고."

"키쿄가... 내 아내로...?"

"응, 내가 당신의 아내로."

어때? 나쁜 제안은 아니지? 키쿄가 말을 계속한다.

그녀의 꼬리가 팔을 잡아당긴다.

"... 저기, 선생님. 잠깐 움직일게."

"뭐...? 우왓..."

어깨를 잡히고선 그대로 강제로 눕혀진다. 이불 위여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다키마쿠라처럼 그녀에게 안겨졌다.

몸을 붙들듯 양팔로 끌어안고 허벅지에는 그녀의 가는 다리가 얽힌다.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키쿄의 가슴이 팔에 꾹꾹 눌린다.

"잠깐만... 저기... 키쿄...?!"

"괜찮아, 가만히 있어... 알겠지?"

그녀의 손바닥이 살며시 내 머리를 쓰다듬고 귓가에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살포시 속삭인다.

숨결이 귓불에 닿아 간지럽지만 그보다 기분 좋은 느낌이 더 강해 등골이 오싹하다.

시야 가장자리로 키쿄가 보인다. 눈은 가늘게 뜨고 입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뺨은 불이라도 붙은 듯 붉다.

"저기... 상상해 봐?"

"뭐... 뭐를?"

"... 나와의... 결혼 생활."

"키쿄와... 결혼...?"

"그래... 예를 들자면...?"

귓가에 천천히 그녀의 숨결이 가까워진다.

"당신이 맛있다고 말해준 요리을 매일 삼시세끼 만들어 줄게.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해서. 아침은 내가 만든 된장국과 계란말이... 아, 아침은 서양식을 선호했지? 뭐, 그러면 토스트에 스크램블 에그로 할까? 점심은 내 수제 도시락. 매일매일 커다란 도시락을 싸줘서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도록. 저녁에는... 뭐든 만들어 줄게. 외식을 못하게 될 정도로 당신의 위장을 길들여 줄게. 어때?"

"키쿄의 요리를... 매일..."

키쿄와 매일 식사하는 상상을 한다.

부엌에 앞치마를 입고 서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매일매일 새로운 요리를 해줄 것이다. 아니, 간단해도 좋다. 그녀가 만든 요리는 무엇이든 맛있을 테고 그 솜씨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것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다.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에이프런을 입은 그녀의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남색 에이프런을 두르고 요리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

뭐든 잘 어울릴 것 같고 그녀가 주방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남성으로서 더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오늘 밤처럼 술을 마시고 당신이 헤롱헤롱해도 이렇게 데리러 올게. 어디서 마시든, 걷질 못해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어도 내가 꼭 찾으러 갈게... 뭐, 그땐 나도 어른이니까 어쩌면 같이 마시러 갈지도 몰라... 후훗, 당신과 마시는 것도 괜찮을지도. 오늘 밤처럼 당신의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대돼. 후후후..."

"둘이서... 술을..."

키쿄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가는 광경을 떠올린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그녀에게 술을 권한다. 꿀꺽꿀꺽 목젖을 울리며 술을 마시고 뺨이 상기된 그녀는 분명 요염하고 매력적일 것이다.

그 옆에서 또 오늘처럼 흐느적거리는 자신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아마 키쿄가 또 어깨를 빌려줄까? 그대로 둘이서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걸까.

그 풍경은 몹시 행복해 보인다.

"그 대신... 잔뜩 어리광 부릴 테니까. 사양하지 않고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많이. 아침에 당신의 옆에서 일어나 밤에 당신의 옆에서 잠들 때까지. 일이 없을 땐 항상 곁에서 어리광 부릴 거야. 싫다고 해도... 아니, 당신이라면 싫다고 말할 리는 없겠지. 귀엽디귀여운 아내의 어리광을 제대로 받아 줄 거지?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니까?"

집에서 내 옆에 어깨에 머리를 얹고 찰싹 달라붙어 어리광쟁이가 된 키쿄를 떠올린다.

부부가 되어 단둘이 있을 때의 키쿄는 말 그대로 전혀 사양하지 않게 되는 걸까.

하루 종일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꼬리를 감고 어딜 가든 따라오는 그녀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 어리광을 부리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인 모습 이상이라면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어리광을 얼마나 받아주게 되는 걸까.

왜냐하면 그 정도로 어리광을 부리는 사랑스러운 그녀는 나로서도 매우 곤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책을 읽고, 같이 지내고,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당신이 나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만큼 내가 당신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또 그만큼 당신이 나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후훗, 어때?"

치사하고 교활하다.

그 달콤한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녀와의 생활이 계속되면 서로 어리광을 부리고 받아주게 되어 분명히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 선생님? 아... 졸리기 시작했구나."

키쿄의 높은 체온이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끈적하고 나른한 속삭임까지 더해져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린애같아... 후후... 귀여워..."

그녀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상냥함과 인자함이 깃든 손길이다.

"저기, 잠들기 전해 말해줘. 어때...? 나와의 결혼 생활."

대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이라니, 어떻게 생각해도...

"정말... 좋아... 최고겠지... 키쿄와 결혼 생활..."

"후훗... 후후후후후... 그래, 그렇지... 후후후후후..."

귓가에서 기분 좋은 듯 몇 번이고 되새기는 것처럼 큭큭 웃는다.

몸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의식이 점점 잠기는 느낌이 든다.

이제 곧 나는 의식을 놓는다. 확신이 들었다.

"저기, 선생님?"

귓가에서 달콤한 목소리로 키쿄가 속삭인다.

비밀 이야기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소곤거림이었다.

"... 확실하게 기억해 둬? 당신이..."

그리고 나는 그 말의 뒷부분을 들을 힘도 없이 뺨에 촉촉하고 까슬한 감촉을 느끼며 의식을 놓았다.

선생님이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 감각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꽤 오래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개 삼아 베던 내 팔이 저리지만 그런 것 따윈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지금은 단지 이 잠든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곳이 세상에서 제일 안심되는 곳인 양 태평하게 잠든 그의 옆모습을 뇌리에 새겨질 때까지 계속해서.

"후훗... 아하하하..."

기분이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억누르려고 해도 웃음이 새어나온다.

심장이 시끄럽게 요동친다. 쿵쾅거리며 온몸으로 혈액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감정은 대체 얼마만에 느끼는 걸까. 스스로 돌아보아도 이렇게나 흥분한 적은 없었다.

"... 남의 속도 모르고 기분 좋게 잠들어서는... 후후후..."

아직도 기분 좋게 잠든 눈앞의 남자를 향해 말한다.

뺨에 손을 댄다. 조금 거친 선생님의 피부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정말이지 지독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읽었던 어설픈 3류 연애소설에서도 이렇게나 상대에게 반한 히로인은 없었다.

백화요란 작전참모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분명 지금 몹시 간드러진 표정일 것이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 이렇게 애쓰는 모습을,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이고 있다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의 큰 착각.

이 키류 키쿄가 모든 면을 드러내고 어리광을 부리는 상대라니 백화요란은 물론이고 백귀야행, 키보토스 전역을 살펴도 아무도 없다.

아야메 선배도, 나구사 선배도, 렌게도, 유카리도, 다른 누구에게도 이렇게까지 어리광을 부린 적은 없었다.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그야 당연하잖아?

선생님의 첫 인상은 최악이었다.

아야메 선배가 사라지고 나구사 선배도 증표를 반납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백화요란은 이제 끝내 망가져 버리고 렌게와 다른 부원도 하나 둘 떠나갔다.

나도 그랬다. 다른 있을 곳이 없어 조정실에 끝까지 있었지만 포기하고 있었다.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 능청스러운 얼굴로 『나구사 선배에게 계승전을 하고 싶다』고 말해온 유카리와 함께 이 남자가 찾아왔다.

누구보다 나구사 선배를 동경하던 유카리가 더 큰 상처를 입기 전에 백화요란에서 밀어내려고 했는데, 보호자라도 되는 양 『유카리의 마음은 유카리의 것이니까』라며 그녀를 안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 마음 속 깊이 화가 났다.

『외부인 주제에 우리의 뭘 아느냐』고 비난했다.

유카리의 집안 사정도 모르는 듯 해서 전부 알려줬다.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도 그녀는 돌아갈 곳이 있다고.

선생님을 전혀 신용하지 않았다.

상처받는 건 나만으로 족했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그래서 괴롭고 슬퍼도 유카리를, 선생님을 내쳤다.

그래도 선생님은 우리를 다시 연결시켰다.

일방적인 마음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쳐 주었다.

유카리를, 나구사 선배를, 렌게를, 백화요란을, 모두를 도왔다.

그래서 그 빚을 갚으려고 했다.

우리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기브 앤 테이크,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 이상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터였다.

이상한 사람이다.

조정실 바닥과 벽, 천장이 노후한 것을 보고 돕겠다고 했지만, 말 뿐이고 힘들어지거나 질리면 사라질 것이란 생각에 다른 일을 하러 나갔지만 개의치 않고 조정실을 계속 고치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답례로 내가 『뭐든 하겠다』고 말해도 『그럼 쉬도록 할까』라며 결국 나는 아무 보답도 못하고 어리광 부리기만 했다.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몸져누운 날.

누구에게도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조정실까지 거침없이 찾아와서 『선생님으로서 학생이 힘들 때 돕는 건 당연한 일이야』, 『만약 의지하기 힘들면 편하게 이용한다 생각해도 좋아』라며 나를 간호했던 그날.

그날부터 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맡기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 내면을 보이고, 나와 관계를 맺고,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강하게 연모했다. 이렇게나 말이다.

같이 있고 싶었다.

같이 책을 읽고 싶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싶었다.

조금만 떨어져도 불안해졌다.

만나면 만날수록 강하게 끌렸다.

그의 존재를,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언제든 그의 행방을 모르면 불안해졌다.

선생님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게 당연하잖아."

『누군가를 독차지하고 싶다』고 이렇게 강하게 열망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니까.

그렇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연 상대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어리광을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 상대는, 지금껏 없었다. 내 생애 첫 상대, 그것이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내 전부를 주려고 생각했다. 그럴 셈이었다.

"... 내 전부를 당신에게 줄 각오를 했는데 당신이 그렇지 않은 건 불공평하잖아, 안 그래?"

자고 있을 때 말해도 소용없지만,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목 너머로 삼켰다.

어리광 부린다고 했지만 결국은 선생님과 학생으로서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른』과 『아이』의 범주에서 어리광을 부렸다. 『전신전력으로 어리광 부릴 테니까』라고 말했지만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다.

마지막 선은 넘지 못하도록 할 듯한 벽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참고 있었다.

"... 당신이 『좋다』고 했으니까."

모든 것이 뒤집혔다.

『기대』는 『확신』이 되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 내가 좋은 아내가 될 거라고? 내가 매력적이라고? 아하하하하..."

정말로 우습다.

설마 그런 사랑스럽기 마지않는 말을 하다니.

어이없게도, 단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인내를 전부 깨트려 버렸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그 맛을 각인시키고... 게다가 내가 애써 『기다려』라는 명령을 스스로 듣고 있었는데..."

당신이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양하지 않기로 했다.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이 한 말은 책임져야지? 선생님? 뭐... 이제부터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당신이 책임지도록 할 테니까, 응?"

취했다고는 해도 그의 언질을 받았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었다.

나의 선전포고는 끝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를 놓치지 않고 가두기만 하면 된다.

고작 그 정도는 백화요란의 작전참모에겐 식은 죽 먹기다.

신중하게 한 수씩 몰아붙이며, 고양이가 쥐를 사냥하듯 천천히 착실히 계획을 세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도망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벼랑 끝으로 몰아 내 소유로 만든다.

어쩌면 선생님은 오늘 밤의 일을 술 때문에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억하고 있다 해도 또 『키쿄의 농담은 알아듣기 어렵네』라며 얼버무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의 자업자득이고 사후약방문이니까 빠져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으니까.

나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당신의 입으로 말했으니까.

"...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니까 각오하라고...? 『서・방・님』?"

조금의 장난기와 많은 애정을 섞어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으응, 그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 바보같은 얼굴. 후훗. 정말이지..."

정말로 사랑스럽다.

그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볍게 입술을 깨문다. 입맞춤이라고 부르지 못할 정도로 일방적이고, 독선적이고, 어수룩하게 입을 맞춘다.

술 냄새가 섞인 미지근한 숨결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입을 통해, 기관지를 통해, 폐에 도달하고 그가 내 안에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취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이렇게 몸이 뜨거워지는 걸까.

이렇게 마음이 두근거리는 걸까.

"음... 술 냄새... 후훗..."

잠든 사이 빼앗은 선생님의 처음의 맛은 지독한 알코올 냄새에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이상으로.

온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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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3.12.17번역

[소설핫산] 키류 키쿄: 축제가 끝난 뒤

#키류 키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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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anpanpandakun8작가
게시물 6개
ㅇDC
ㅇㅇ(소설핫산)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아카라이브pixiv
게시일2023.12.17 02:35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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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나
ㅇDC
ㅇㅇ123.12.17

전에 본거같은데

ㅇDC
ㅇㅇ(소설핫산)작성자23.12.17

최근 업로드라 아닐걸요

ㅇDC
ㅇㅇ223.12.17
디시콘
ㅇDC
ㅇㅇ323.12.17

와..와....

ㅇDC
ㅇㅇ423.12.17
ㅇDC
ㅇㅇ523.12.17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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