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길에서 우산 안 예쁘다고 엄마한테 땡깡 부리는 애를 보고 써봄.
개인적으로 비 하면 생각나는 학생이 하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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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다. 아니 폭우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침의 일기예보를 통해 비가 올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이 올 줄은 예상 밖이었다. 유일한 구원이라면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아 내 몸에 수직으로 날아오는 빗방울을 맞을 일은 없다는 정도일까.
오전까지만 해도 어디서 이만큼 사람들이 나오는 걸까 싶을 정도로 떠들썩했던 휴일의 거리도, 오후부터 시작된 폭우 때문에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서 일까, 일찍 폐점한 가게도 여럿 보인다.
용무를 마치고 샬레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우산은 챙겨와 비에 젖은 생쥐 꼴은 면할 수 있었지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더위와 습기 때문에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는 게 거슬린다. 그에 따라 우산을 들지 않은 반대쪽 손에 들려있는 짐도 조금씩 거슬려 온다. 덕분에 발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진다.
시라토리 구의 중심에 가까워지는 만큼, 점점 커져가는 생텀 타워를 보며 걷다가 문득, 폐점한 가게의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하스미? 여긴 어쩐 일이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용무가 있어서 잠시... 오전 중에 마치고 돌아가려 했습니다만, 예상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비를 피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외출이신가요?"
"아아. 나도 마찬가지야. 일 끝나고 샬레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하스미가 비를 피하고 있던 처마로 재빨리 들어가 우산을 접고 하스미의 옆에 선다.
비가 내리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하스미의 옷이나 날개는 그다지 젖지 않았다. 아마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기 서 있었던 모양이다. 빗속에서도 하스미의 자세는 감탄이 나올 만큼 기품이 넘친다.
"우산도 없이 이 멀리까지 오다니, 하스미 치고는 꽤 큰 도박을 걸었네."
"예정대로라면 오전까지 끝마치고 비가 오기 전에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만, 사소한 문제가 겹치는 바람에 이런 꼴이... 면목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하스미는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비 때문인 건 아닌 것 같다. 문득 우리가 서있는 가게의 내부를 창문 너머 들여본 나는 그녀가 기분이 안좋은 이유를 대강이나마 짐작했다. 우리 뒤의 가게는 최근 들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디저트 전문점으로 평일에도 불구하고 오후가 되기 전에 대부분의 상품이 매진된다고 한다. 가게가 샬레와 가깝다는 이유로 샬레의 당번을 신청하는 학생도 있을 정도다. 예를 들면 나츠라든가 유토리 나츠라든가.
...... 디저트 사러 왔었구나.
"네... 디저트 때문입니다."
"응?!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니요, 눈빛으로 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의외로 표정에 잘 드러나는 분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입을 살짝 삐죽이는 하스미. 언제나 냉정 침착한 그녀지만 요즘 들어 단둘이 있을 때는 나이 대에 맞는 귀여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게 되었다. 아마 정의실현부 소속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면 아무도 안 믿지 않을까. 하스미의 이런 작은 모습 하나하나가 그녀와 친해졌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진다.
소문의 디저트를 손에 넣기 위해 아침 일찍 시라토리 구에 도착한 하스미지만 뜻밖에 오늘은 임시 휴업일이었고, 아쉬운 대로 다른 가게로 향했지만, 오후의 폭우로 인해 손님이 적을 거라 예상한 대부분의 가게들이 평소보다 적은 양의 상품만을 준비하는 바람에 하스미가 들어갔을 땐 모두 매진 상태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스미가 망연자실해 하는 사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하하. 하스미한텐 불운한 날이었구나."
"후훗. 네. 그랬었습니다."
"그랬었습니다? 과거형이니?"
"네. 그도 그럴게 덕분에 이렇게 선생님이랑 만났으니까요."
"...... 하하, 하스미도 꽤나 말주변이 늘었는걸. 한방 먹었어."
"그럼요. 언제나 선생님께 받기만 했으니까요. 가끔씩은 저도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하스미의 깜찍한 기습을 제대로 받은 나는 하스미와 함께 한참을 웃었다.
하스미와 함께 비를 피한지 꽤나 시간이 지났지만, 빗줄기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일기예보대로 정말 밤새 내릴 모양이다.
"이러고 있으니 그때가 생각나네. 트리니티 공원에서 같이 비를 피했을 때 말이야."
"어머, 우연이네요. 저도 마침 그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트리니티 외곽의 공원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돌아가던 나와, 마찬가지로 새벽까지 보고서 작업을 끝마치고 기숙사로 가던 하스미가 아침까지 비를 피했었던 일. 중간에 나는 잠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를 기점으로 하스미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것 같다.
"그때는 미안했어. 어른이 돼서 먼저 잠이나 들고 말이야. 원래라면 내가 지켜보는 입장이어야 했는데."
"아니요.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그때 그 시간은 저에게 사치스럽지만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자는 얼굴도 충분히 감상했고요."
하스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의 하스미는 나에 대해 한층 더 허물이 없다. 아마 단둘만이 있는 지금의 환경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거겠지. 그저 기쁠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도 그렇고 하스미와 이렇게 오래 얘기한 게 다 비가 내릴 때구나."
"네. 그렇게 생각하면 비도 마냥 나쁜 것 만은 아니네요."
"그래도 축축한 건 싫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렇게 한동안 옛날이야기를 회상하거나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 사실 저는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 정확히는 우산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머뭇머뭇 시작한 그녀의 독백과도 같은 고백에 나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저는... 그... 다른 학생들 보다 조금... 아니요, 다소 큰 편이죠. 키도, 날개도."
하스미의 평균 이상의 신장은 그녀에겐 꽤나 콤플렉스이다. 언제나 침착한 하스미지만 그녀의 앞에서 키나 체중을 언급하면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 이때만큼은 츠루기 마저 도망칠 정도이다.
언젠가 하스미가 샬레의 사무실에서 츠쿠요를 처음 만난 날, 신이라도 만난 듯 감동에 젖은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제 성장은 비교적 어릴 때부터 시작돼서, 비가 올 때면, 어른들이 쓸법한 커다란 우산이 아니면 언제나 날개가 젖곤 했죠."
"비 오는 거리를 우산을 쓰고 걷다 보면 작고 귀여운 우산을 쓰고 제 옆을 걷는 친구들이 어린 마음에는 내심 부러웠습니다."
"그 마음이 조금씩 커져 어느새 제 커다란 우산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 거겠죠. 그래서 큰 비가 오지 않는 이상 가급적이면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으려 했어요."
정의실현부 내에서도, 나아가 트리니티 전체에서도 모두의 언니 같은 하스미도 결국은 한 명의 고등학생일 뿐이다. 다른 학생들만큼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고, 자기 체중을 신경 쓰는. 마찬가지로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고 놀라운 일은 아니다.
"... 지금도 그런 마음이 드니?"
"후후... 아니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마음도 자랐으니까요. 어느 정도 받아들였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선지 그때의 기분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쨰설까요."
그런 말을 하며 잠시동안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하스미는 무언가가 번뜩인 듯 '아'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마주 보는 그녀의 얼굴엔 쑥스러운 듯 두 뺨에 붉은빛이 깃들었지만, 입가엔 따뜻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서...... 그렇군요. 선생님께 우산을 보이는 게 싫었나 봐요."
"선생님께 귀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군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하스미의 얼굴은 아까보다 좀 더 붉어졌지만, 표정은 어쩐지 후련해 보였다. 마치 소중한 무언갈 발견한 듯. 그런 하스미가 귀여워서, 나도 따라 미소 지었다.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주는 건 고맙구나 하스미. 하지만 나를 너무 과소평가한 게 아니니?"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 있던 우산을 앞으로 펼친다. '팡'하는 소리와 함께 펴진 우산은 말 그대로 거대했다.
아무리 하스미라도 이 정도 크기는 처음 보는지 우산을 보는 눈이 동그래져 있어서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대부분이 비 맞는 걸 좋아하진 않겠지만, 남들 이상으로 비 맞는 걸 싫어하는 나는 올여름 역대급의 장마가 올 것이라는 소식에 오더메이드로 특대 이상의 우산을 주문했다.
완성된 우산을 유우카가 보고 웬 파라솔을 샀냐고 잔소리를 했었다. 내가 우산이라 해명한 뒤에는 돈 낭비라고 더 잔소리를 들었었다.
"하스미보다도 큰 내가 겨우 하스미의 우산을 보고 놀랄 거라 생각했니?"
"후후.. 그렇네요. 선생님 앞에선 '겨우'였겠네요.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하스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도록, 일부러 과장을 섞어 말했다. 하스미도 그런 내 의도를 알아본 듯 즐겁게 웃어 보인다.
"... 선생님. 저는 그날, 빗속에서 선생님과 밤을 보내던 날, 비가 조금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선생님 덕분에 비가 좀 더 좋아졌고요. 선생님과 함께 있다 보면 비를 좋아하게 될 이유가 점점 늘어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그럼 곧바로 하나 더 만들까."
쑥스러운 듯 그렇게 말하는 하스미에게 오늘 내 외출의 이유였던, 아까부터 들고 있던 짐을 하스미의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다.
"?! 선생님 이건..."
동글동글한 글씨와 색색깔의 디저트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로고가 인쇄되어 있는 포장용 상자. 트리니티에 위치한 디저트 전문점으로 오늘 하스미의 당초 목적이었던 가게만큼은 아니지만, 매일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가게다.
얼마 전, 가게에 침입한 불량학생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가게의 사장님과 완전히 친해지게 되었다.
"여기 사장님이랑 얼마 전부터 알게 됐거든. 이번에 내놓을 신제품의 시식을 부탁받아서 말이야. 막상 받기는 했는데 양이 보통 많은 게 아니라 어쩌나 고민이었거든."
"어떠니, 하스미. 여기서 조금만 가면 샬레인데 시식 좀 도와주지 않을래? 아저씨인 나보다 현역 여고생의 평가가 더 가치 있을 테고 말이야."
조금은 유치한, 어린애들에게나 통할 법한 권유라는 자각이 있었지만, 아까부터 박스에 시선이 못 박힌 하스미에게는 그런 건 딱히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흠, 흠. 다른 분도 아닌 선생님의 부탁이니까요. 여기서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죠. 기꺼이 돕겠습니다."
헛기침과 함께, 마치 마지못해 받아들이 듯 엄숙한 목소리로 내 부탁을 승낙한 하스미는 얼마 안 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따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 정해졌으면 서둘러 갈까."
디저트가 든 상자를 하스미에게 건네고 우산을 들어 올려 처마 밑을 빠져나온 나는 하스미에게 손을 내민다.
머뭇머뭇 내 손을 잡은 하스미를 그대로 끌어당겨 우산 안으로 들인다.
끌어당겨진 하스미와 살짝 어깨가 부딪히고 서로 눈이 마주친다. 커다란 우산은 딱 알맞게 우리를 하늘로부터 가려주었다. 지금만큼은 우산 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우리 둘뿐이다.
하스미의 얼굴이 오늘 본 것 중에서 가장 빨개진다. 그런 그녀를 보고 살짝 웃어 보인 나는 발걸음을 샬레로 향한다. 하스미도 내 발걸음에 맞추기 시작한다.
"선생님?"
"왜 그러니 하스미."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지금 하나 더 생긴 것 같습니다."
내 팔을 쥔 하스미의 손이 좀 더 그녀에게로 가까워진다. 둘 사이의 공간을 완전히 메우기라도 하듯. 문득 등에 느껴지는 감촉에 살짝 뒤를 돌아보니 하스미의 아름다운 검은 날개가 내 등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등에도 우산을 씌워주듯.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생긴 건, 그녀뿐만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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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는 하스미가 없어서 그냥 비가 존나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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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맛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