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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잘 먹겠습니다! 니하하!”
샬레의 휴게실 소파에 앉은 쿠로사키 코유키 앞에 커다란 케이크가 세 조각이나 놓여 있고, 코유키는 활짝 웃으며 포크로 큰 덩어리를 한입에 쏙 집어넣었다.
“이번 아리우스 공격을 실현할 수 있었던 건 다 코유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시흔 후 머히요.”
케이크와 행복으로 가득 찬 입으로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하려는 코유키를 선생이 제지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 있던 하야세 유우카는 불쾌한 눈빛으로, 마찬가지로 같이 있던 코누리 마키는 동물원에서 희한한 동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마키는 둘째치고 유우카와 코유키 사이에 있는 불화를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은 광경이었다.
“세미나랑 협상하는 역할, 지이이이인짜 힘들었다니까요!”
그런 유우카에게도 선생은 앞서 과자 한 상자를 건넸다. 그 덕분에 원래 들으려고 각오했던 말들 열 마디 중에 세 마디 정도로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3일만이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는데, 벌써 3주도 넘게 저 코유키가 얌전하게 지냈다니… 선생님, 대체 어떻게 길들이셨어요?”
코유키에게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선생에게 속삭이는 유우카. 대답하려는 듯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잡지를 읽고 있던 아츠코에게 시선을 보내자 아츠코는 아이컨택에 성공했다는 듯이 선생에게 미소를 되돌려 주었다.
“말하자면 아리우스식 훈육이라고 할까.”
덧붙여서 유우카의 말대로 아츠코와 코유키 또한 처음 만난 뒤로 3주 정도 지났고, 특히 초반에는 상당히 긴 시간을 같이 보낸 두 사람이었지만 코유키는 아츠코와 얼굴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냈다. 그 이유를 선생은 깊게 추궁하지 않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유우카가 무슨 사정이 있음을 간파한 그때, 샤워를 하러 갔던 세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샤워실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세나에게 집중되었다.
“당신, 꼴이 그게 뭐예요!!”
목욕수건 한 장만 걸친 채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나타난 세나에게 가장 먼저 달려든 이는 유우카였다.
“집에서는 알몸입니다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여기는 공공장소라고요!”
“하야세 유우카 씨.”
지극히 온당한 말을 하고 있을 유우카인데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세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유우카의 동향을 살핀다. 유우카에게 신경이 쓰이는 건 세나도 마찬가지였기에 유우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수건을 목에 걸어 양손이 자유로워지자 유우카의 얼굴에 슬쩍 손을 얹고는 자연스럽게 입술을 슥 닦아냈다.
“아? 하아!?”
황당한 목소리를 내는 유우카를 무시한 채 자신의 손에 묻은 유우카의 립스틱을 바라보며 세나는 조금 안타깝다는 듯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말했다.
“입술 색이 제가 좋아하는 건강미 있는 색이다 싶었는데, 립스틱을 바르셨군요.”
“맞아! 그 색 진짜 좋지! 낮에는 원래 안 바르던데 방금 전에 막 급하게 바르고 오더라.”
세나의 이야기에 화답한 사람은 마키였다. 그때 유우카의 얼굴은 립스틱 못지않게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마키의 말에 세나는 뭔가 납득한 듯이 유우카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하야세 유우카 씨. 당신도 연적이라는 말이네요.”
“됐으니까!!!!!!”
“빨리!!!!!!”
“옷 입고 오시라고요!!!!!!!!!”
결국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된 유우카가 왕창 소리를 지르며 세나를 휴게실 밖으로 떠밀었고, 한동안 휴게실에는 아츠코가 잡지를 넘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케이크를 다 먹은 코유키와 마키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은 아츠코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츠코.”
“왜? 선생님.”
“미안해, 이번에 아리우스에서 있었던 일…”
“신경 쓰지 마. 지금 마담이 있는 아리우스는 나도 안 좋아하니까, 괜찮아. 다른 아이들은 안 됐지만 뭔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거야. 사오리랑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아즈사도.”
그 부드러운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나는 괜찮아, 선생님… 근데, 그런 생각은 있네. 가능하다면 나도 사오리랑 같이 아르바이트 하고 싶어.”
“사오리한테는 이 가게를 추천해 줬어. 봐. 다른 가게보다 시급이 훨씬 좋지?”
가게 이름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 화려한 전단지의 나머지 정보를 선생의 뇌가 차단했다.
샬레에서 어느 정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 다음 날.
“정체 모를 학생들이 주도한 습격이 전방, 후방을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 전역에서 발생. 초대형 적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적의 병력은 파악할 수 없고, 병참이나 학교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한에 가까운 적들에게 포위된 느낌이다. 이것이 전선으로부터 받은 보고입니다.”
분주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아직 본대가 있는 버려진 교회를 본격적으로 야전 병동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 세나와 선생은 교회를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응급의학부 내부 연락망으로 충격적인 내용의 연락이 온다.
“세나 부장, 도와주세요! 저희 교회가 포위당해서 공격받고 있습니다. 모든 인원을 내부로 들였지만 지상에 있는 차량이나 시설들이, 꺄앗!”
그 목소리는 비명과 폭발음에 묻혔다.
“괜찮으십니까, 대답해 보세요.”
중환자를 부르는 듯이 차분한 호소 속에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누군가를 불러 오면…”
세나와 선생의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조금 위험하기는 해도 만약 복제<<미메시스>>가 상대라면, 내가 있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에덴조약의 전말, 당사자 외에는 말하지 않았던 일들을 세나에게 이야기했다. 어른의 카드의 힘과 예로니무스의 모습을 목격했던 세나도 반신반의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납득했다.
***
멀리서 버려진 교회를 보니 그 주변을 푸른색 옷을 입은 집단이 둘러싼 채로 돌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뒤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자세를 낮추기 위해 차에서 내려 세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선생님!”
이 자리에 숨어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세나와 선생뿐만 아니라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일당은 잠시 동요하더니 이내 선생과 세나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선생 앞으로 나서려던 세나를 선생은 손으로 제지했다.
“선생님…”
“너희들은 에덴조약의 계율을 따르는, 복제<<미메시스>>구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야 할 존재에게 분명하게 동요하는 기색이 비쳤다. 선생이나 세나가 조금만 더 냉정하게 상대의 인원수를 세어 보았더라면 처음에 열 명 남짓이던 인원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우리 게헨나와 샬레는 트리니티, 그리고… 아리우스와 마찬가지로 ETO의 일원이야. 총을 내려 줘.”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선생, 세나는 그때 상대가 셋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 순간 세나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선생의 목덜미를 잡고 자기 자신의 몸과 함께 차를 방패삼을 수 있는 위치까지 선생의 몸을 끌어당겼다. 바로 직후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이 있던 곳으로 총알이 빗발쳤다.
“세나, 무슨 짓이야…”
“제가 저쪽으로 달려갈 테니 선생님은 그 사이에 차를 타고 도망치세요. 이 정도 인원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달려나가려던 세나의 손을 선생은 붙잡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세웠다.
“...읏, 선생님!”
“싫어.”
유형과 무형의 압력으로 세나를 굴복시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말부터 먼저 건네야 할지, 양손을 드는 게 좋을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억지로 생각을 하는 선생에게 차량 양쪽으로 돌아오려는 발소리들이 가까워지고, 곧이어 주위 일대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성이 그친 뒤에 들려온 것은 아주 가벼운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선생님, 이러고 다니다 진짜로 죽는다구?”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고음의 목소리였다.
“미카…?”
복제들을 소멸시킨 뒤 홀로 서 있는 이는 전 티파티 호스트이자 에덴조약을 둘러싼 일련의 소란을 일으킨 원흉, 미소노 미카였다. 손에 든 기관단총의 총구에서 아직도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애는 선생님 편이야? 적이야? 적이면 쏠게?”
“선생님, 이 분을 아군이라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미카, 세나.”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총구를 겨누지 않은 채로 묻는 미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치는 세나, 선생은 짧은 말로 두 사람을 진정시키려 했다.
“나도 알아, 선생님. 가끔은 좀 미친 척이라도 해야 버티지 않겠어?”
“실례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노 미카 님.”
장난스레 말하는 미카와, 모자를 벗고 깊게 고개를 숙이는 세나를 보며 한숨 돌린 순간, 차분해진 머리가 선생에게 교회를 두고 벌어진 공성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미안, 미카. 이런 데 서서 이야기하기도 좀 그러니까, 조금만 도와줄 수 없을까?”
“저는 뒷좌석에서 사격하시라고 권유했습니다. 리어 캐리어를 잡고 가겠다고 직접 판단하셨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막 밟겠다고는 안 했잖아! 덕분에 바닥에 굴렀다구! 진짜!”
순식간에 교회 주변의 적들을 물리친 뒤, 둘의 그런 대화를 조금 긴장한 채로 듣고 있던 선생이었지만 그런 속편한 방관자 입장이 허용될 리가 없었고 곧바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선생님 생각은 어때?”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선생은 한심하게도 머뭇거리면서 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죄를 참회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 대화를 한동안 이어가던 선생은 미카에게 묻는다.
“미카는 왜 여기 있어?”
“그거 말야!! 들어봐 선생님!”
기다렸다는 듯이 미카가 말하기 시작한다.
“나라고 좋아서 이런 데 있는 게 아냐. 그렇다고 또 전에 갇혔던 감옥이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SNS도 안 되고, TV도 거의 안 나오고, 헤어드라이기를 쓰면 바로 두꺼비집이 내려가고, 세이아 쨩이 열쇠 가지고 있어서 돌아갈 수도 없고. 아~. 내가 왜 그냥 세이아 쨩을 때려눕히고 열쇠를 뺏을 생각을 못 했을까. 다음에 해 봐야지. 뭐 됐어. 아무튼 그래서 말야, 내가 이런 데 있는 이유 말인데 진짜 너무하다니까 나기 쨩. 아, 생각했더니 화가 막 치밀어올라. 나기 쨩 바보! …후우.”
미카의 이야기만 듣고 있다가는 언제쯤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선생은 어느 정도 화제를 유도해보기로 했다.
“나기사 명령이야? 아리우스를… 공격하라고?”
“나기 쨩 명령은 음, 아리우스 공격은 아니긴 해. 선생님은 내가 게헨나 어어엄청 싫어하는 거 알지?”
바로 옆에 게헨나 학생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미카의 성격을 잘 아는 선생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근데 나보고 미카 씨, 트리니티에서 보내는 특사로서 게헨나-아리우스 전쟁의 중재자 역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중립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트리니티는 게헨나와 동맹 중이니 게헨나에 이익이 되도록 행동해주세요. 아리우스의 아군을 최대한 이용하세요. 미카 씨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는 거야.”
중간에 말투가 바뀐 부분은 미카 나름대로 시도한 나기사의 성대모사였고, 이를 파악한 선생은 미묘하게 특징을 잘 잡아낸 그 성대모사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진짜~~~, 나기 쨩 멍청이이이이이이!!!!”
미카가 소리를 지르기 직전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타이밍에 이를 예감한 세나는 자신의 귀를 막았다.
“너무한 거 아냐!? 심지어 스쿼드 애들을 끌어들이려 했는데 이미 한참 전에 아리우스에서 사라졌어.”
큰 소리에 흔들려 무방비 상태가 된 선생의 머릿속에 메이드 카페 전단지와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소녀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고, 이윽고 참을 수 없게 된 선생은 빵 터지고 말았다. 빤히 쳐다보는 미카에게 사과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 이제 딱 결심했어. 나기 쨩이랑 세이아 쨩한테 싫은 소리 듣기 전에 빨리 돌아가서, 나기 쨩이 아끼는 최고급 차를 끓여오라고 할 거야. 그리고 롤케이크 빼고 과자도 잔뜩 달라고 해야지.”
“폭풍 같은 분이셨네요.”
한바탕 투덜거리던 미카가 떠나고 몇 시간 뒤, 세나는 그동안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미소노 미카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그때는 언제 닥쳐올지 몰라 대비했던 폭풍, 구체적으로는 복제 <<미메시스>>나 부상을 당한 학생들이 연이어 찾아오는 일 없이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코토의 육성으로 전 게헨나 학생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선생은 마코토가 그런 결정을 순순히 내렸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선생 옆에서 듣고 있던 세나는 전혀 놀라지 않은 모양이었다. 응급의학부 통신 회선을 연결하더니 말했다.
“각 부원들은 주위 만마전 학생들의 동향을 살피고, 조용히 게헨나로 귀환하십시오. 여러분들의 노력 덕분에 이번에도 시체 수는 0구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선생은 비틀비틀, 숲으로 향하던 차량이 지나간 자국이 남은 길을 걸었다.
선생도 세나도, 둘 다 긴장의 끈을 놓았던 그 순간 갑자기 주위 일대에 요란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차량 한 대가 버려진 교회와 숲을 잇는 직선 상에 서 있던 선생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세나는 그 순간 이해했다. 다가오는 저 차량은 중장갑도 아니고, 화력이 강한 화포를 싣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 자신들이 이전에 했던 것처럼 본진의 차량들을 숨기기 위한 위장도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단 한 대로 대규모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원시적이면서 확실한 공격, 즉 폭탄을 가득 실은 자폭 차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선생님!!”
세나의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컸지만 엔진 소리에 묻혀 선생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선생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코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움직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유리 너머 운전석에 앉은 소녀의 모습을 본 뒤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차량은 순식간에 선생에게 도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대로 선생을 들이받고 교회까지 일직선으로 나아갈 줄 알았던 차량이 급격하게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날아가서 의식을 잃었던 선생이 눈을 떴을 때,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눈앞에서 뭐라 외치고 있는 세나의 모습과 세나의 어깨 너머에서 불타오르는 폭발한 차량, 그리고 자신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이 눈에 들어왔다. 세나는 온 힘을 다해 뭐라 외치고 있지만 선생의 귀에는 지이잉 하는 높은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세나.”
의식이 흐릿해져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상황에, 선생은 눈물이 맺힌 채로 무언가 계속 호소하는 세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옆이 아니야.”
선생은 간신히 들어올린 팔로 불타는 차량을 가리킨다.
세나는 선생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나는 선생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선생이 입모양으로 보기에 무슨 말을 전하려고 입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히무로 세나.”
선생은 세나를 풀네임으로 불렀다.
“세나, 너는 늘 시체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나는 알아.”
과연 음정이 맞았을지, 제대로 발음하고 있는지, 세나에게 전해질 만한 음량인지 선생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지만 그저 최선을 다해 계속 말했다.
처음 보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세나에게, 전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오직 한 마디를 읊는다.
“세나, 사실 너는 시체를 아주 싫어해.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옆이 아냐. 저 차 옆이야, 세나.”
그때 세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하지만 금빛 눈동자의 흔들림은 가라앉고, 평소의 올곧은 눈빛으로 돌아왔다. 선생이 참 좋아했던 히무로 세나의 눈이었다.
세나는 부드럽게 안고 있던 선생의 상체를 내려놓고 달려 나갔다. 이윽고 선생은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세나에게, 이제는 닿지 않을 줄 아는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그러면 돼. 세나. 나머지는, 부탁할게…”
게헨나 학원 응급의학부 본부. 깨끗한 하얀색으로만 꾸며진 방의 침대 위에서 한 소녀가 눈을 떴다.
낯선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더니 문이 열리고 어느 인물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는 원래 또 다른 인물이 있었는지 그 둘은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누가 감았나요, 저 붕대.”
“내가 직접.”
“여전히 서투르시네요.”
소녀는 멍한 머리로, 웃는 두 사람을 보며 사이가 좋아 보인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다.
에필로그 ‘히무로 세나’
“지금 열어줄게.”
노크 소리를 들은 히나가 선도부 집무실 문을 열자 히무로 세나가 서 있었다. 그런 모습,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본 히나는 말없이 세나를 응접용 소파로 안내했다.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몸을 맡긴 히나였지만 세나는 좀처럼 앉으려 하지 않았다.
“불초 히무로 세나,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
“어서 와.”
미묘하게 맞물리지 않는 인사를 주고받는 두 사람. 세나는 아직 서 있는 상태다.
“부상자 이야기는 들었어. 선생님 이야기도. 동시다발적으로 자폭 공격이 있었다는데, 사망자가 0명이었다는 건 분명 응급의학부가 활약한 덕분이겠지.”
히나의 말대로 복제를 이용한 아리우스의 반격을 막아낸 게헨나에 차량을 통한 자폭 공격이 있었다. 하누마 마코토가 자폭 공격을 두렵게 여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히나는 그것이 완전 철수를 결정하게 된 요인임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히무로 세나가 이끄는 응급의학부의 적절한 대응으로 헤일로를 잃는 일 없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보다.”
끝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딱히 대답도 하지 않는 세나에게 히나는 물었다.
“나는 히무로 세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런 히나의 질문에 세나는 즉답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옆이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건… 거절당했다는 뜻이야?”
“모르겠습니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야 겨우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고, 배웠으니까요.”
여전히 서 있는 자세로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세나에게 히나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표정이 즐거워 보이네.”
“네, 즐겁습니다.”
“어찌됐건 제가 사모하는 분은, 키보토스에서 가장 시체에 가까운 분이시니까요.”
2 / 2댓글 3
아. 어쩐지 왜 다 망하고 아무 희망도 없는 아리우스가 그냥 공격받게 놔뒀나 했더니, 아직 베아트리체가 건재한 시점이었구나. 어쩐지... 선생은 키보토스에서 가장 죽기 쉬운 사람이고, 세나는 그런 선생에게서 눈을 뗄 수 없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는 내용인가.
3만 5천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