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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테러를 당한 선생님이 깨어나는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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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xtxGyEmkYM

* BGM 반복재생 추천

(PC 반복재생 : 화면 우클릭 -> 연속 재생)

(모바일 반복재생 : 톱니바퀴 모양 -> 옵션 더보기 -> 연속 재생)

* * *

나는 벌을 받고 있다. 소라사키 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갔고, 잠시간 얼굴을 내비쳤던 가을도 훌쩍 떠나가버릴 것인지, 햇빛 없이 불어오는 낮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맨살을 내놓는 것이 슬슬 꺼려질 법한 시기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으슬으슬 기침이 나올 것만 같은 시기이거늘,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는 그런 것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선생이 의식을 회복했다는 연락.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달려온 그녀였다만, 어째서인지 병동의 입구로 들어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한낱 유리로 이루어진 문 따위를 넘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선생에게 테러가 가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 어느 일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다. 중상을 넘어 치명상에 가깝다던 그 소식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기도했다. 선생을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신에게 간절하게 외치고 또 빌었다.

찾아가봤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비참한 이야기다. 전투라면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수 있지만, 날밤을 새면서까지 수십 시간동안 진행하는 수술은 전문 분야가 아니다. 문외한이다. 잘못 손대는 것만으로도 그의 목숨을 앗아가버릴 부외자다.

현장에 있던 게 아닌, 그저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었을 뿐인 그녀는 선생에게 갈 수 없었다. 선도부의 장이요, 게헨나의 주 전력이라는 허울좋은 명함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자신이 가진 그 어느 것도 이 상황에서 선생을 도울 수 없었고, 일개 학생 따위에 불과한 그녀로썬 꼴사납게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으며, 비참하게도 그녀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선생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비록 두 눈을 뜰 수 없게 되었고,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한 하반신 신경으로 인해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지만, 그리고 피부가 이전의 말끔한 상태로 돌아갈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지만, 어쨌든 선생은 살았다. 목숨을 부지했다.

그렇기에 히나 자신은 반드시 선생을 봐야만 했다. 그가 스스로 숨을 들이쉬며, 그가 스스로 말을 하는 그 모습을 반드시 봐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든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제 머리 위의 헤일로를 어떻게든 파괴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선생이 살아있는 것만큼은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선생은 그녀에게 그 정도의 존재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이 병동 안으로 들어서질 못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공허한 눈으로,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허망한 얼굴로, 초라하게 문 옆에 주저앉아 제 다리나 감싸안은 비루한 모습으로.

(......)

주먹을 불끈 쥐는 것조차 할 수가 없다. 주저앉은 것만으로 모든 힘을 다 써 버린 것만 같았다. 분명 이 문 너머의 수많은 병실 그 어딘가에 선생이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구절절 따져물을 것 없이, 그녀는 답을 알고 있었다.

"......볼 면목이 없어."

무거운 입술을 억지로 열어 중얼거림을 내뱉는다. 자기 자신조차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하는 변명을, 가슴 속에 응어리진 마음을, 차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를 마주볼 수 없는 제 나약함을 마주한다.

그를 지키지 못했다. 에덴 조약 때는 한낱 총기 따위에. 이번에는 제조자도 알 수 없는 폭탄 하나에.

죽었느냐 살았느냐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선생이 생사의 기로에 내던져질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를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본인이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선생을 지켜주겠다며 호기롭게 약속했지만, 그건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치기 어린 오만이요, 구제불능의 만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덴 조약 때는 히나 자신마저 만신창이가 되어 그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고, 이번에는 죽어가는 그의 곁에조차 있지 못했다.

누가, 누굴 지킨다고?

자신의 속마음 어딘가에선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해왔다. 범죄자를 신문하는 형사라도 된 것처럼, 자식의 거짓을 추궁하는 부모라도 된 것처럼, 속마음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선생이 사경을 헤메이는 그 시간에조차, 히나 자신은 그의 곁에 있지 못하고 그저 혼자 몸부림치는 것조차 버거웠다.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워하고, 선도부장이라는 제 직책에 지쳐 은퇴할 궁리나 하고, 자신의 마음조차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때때로 흔한 학생들보다 못한, 볼썽사납고 초라하며 나약한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내면의 질문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치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선생을 지킨다니, 무슨 능력으로? 정작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현장에 없는 주제에, 무슨 수로?

이런 자신이 무슨 낯짝으로 그를 볼 수 있을까. 하늘이 잔뜩 구름낀 음침함으로, 뼛속에 사무치는 스산한 바람으로 그녀를 비웃었다.

"...여기 계셨군요, 부장님."

히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초점잃은 두 눈동자에는, 엉망진창인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마우 아코가 들어왔다.

"바람이 차갑네요. 감기 걸리시겠어요."

선임행정관 아마우 아코는 그렇게, 초겨울 나뭇가지처럼 말라붙은 목소리로 우려를 표한다.

아코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캔커피가 쓸쓸하게 식어버리기 시작했는데도, 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도부 일이 밀려 있어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개판을 벌려놓는 개자식들도 있고, 만마전의 머저리같은 너구리가 난리치는 것도 제압해야 해요."

메마른 목소리의 아코는, 약해빠진 모습의 선도부장에게 기계적으로 말을 건넨다.

"선도부도 마비됐어요. 이오리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고, 치나츠는 멍하니 앉아만 있어요. 부장님 없는 저희는 한계라구요."

...기계적으로? 아코 스스로의 성찰이었다만, 그녀 스스로가 다시 되새겨보니 그건 기계적이라기보단, 오히려 필사적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일어나세요, 부장님. 게헨나로 돌아가던가......그것도 아니면, 이대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얼굴이라도 보세요."

"......아코는......"

제 말에 돌아온 히나의 목소리에는 공포감이 잔뜩 어려 있었다. 수많은 공포 어딘가에 숨어있는 조소, 의문, 걱정, 슬픔, 우울, 무기력감, 비아냥과 경멸......그 복잡한 감정들이 아코에게까지 전해져, 저도 모르게 눈썹 언저리가 움찔거렸다.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이 정리되지도 못하고, 정의하지 못할 감정이 되어 넘쳐흐른다.

"......어떻게 그렇게......태연해?"

이름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일거에 머리 여기저기를 찔러 지끈거리고, 눈도 찌르는지 터질 것 같이 답답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고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길고 무거운 한숨을 억지로 내뱉어야만 했다.

"......제가, 태연하다구요?"

고개를 들어 눈을 감은 그 자세 그대로,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반문한다.

침착해야한다. 히나는 지금 매우 불안정하다. 위태롭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은 그녀를 확실히 보좌하고 도와야 한다. 1초에 수십 번씩이라도 미친듯이 되뇌인다. 찰나의 시간이 수십 년이라도 되는 것처님 느껴진다. 자신을 제어하고자 애써본다.

......알고 있는데. 분명 그럴텐데. 두통이 넘쳐흘러 얼굴 여기저기가 움찔거리는 것만 같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 되는가. 선생이 치명상을 입고, 영구적 장해를 당한 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속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은데, 자신의 뜻 그 자체인 히나마저 아무것도 못 한 채 멍하니 시간만 죽이고 있는 이 현실. 속이 답답하다 못해, 가슴을 거칠게 두드리는 것으로는 진정되지 않을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강하게 난타하지 않으면 제 속 어딘가가 진짜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 이대로 그냥 심장마비로 죽어버리고 싶다.

아코 스스로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경멸하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히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그럼, 이 상황에 저도 앉아서 울고 있을까요?"

"몰라. 우리는......나는, 어떻게 해야 해?"

아무래도 히나는 어딘가가 툭 끊어져버린 것 같다. 스스로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네 살배기 꼬맹이처럼 방황하는 그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톡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금방 눈물을 쏟아버릴 지도 모르고,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도 풀썩 쓰러져버릴지도 모른다. 위험천만한 외줄타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무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코는 자신이 슬슬 짜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분명 다른 감정이었을 것이 짜증으로 바뀌고, 그것들 중 일부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벅차오르고, 아니면 한도를 넘어선 우울감이 되었다가 분노도 되었다.

하나 확실한 건, 자신조차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게 뒤바뀌고 있다는 것. 자신이 아는 모든 감정이 동시에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전, 해답을 아니까 여기 있는 건가요? 뭐라도......해야겠다는 생각, 안 드세요?"

어거지로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그 형태를 간신히 유지한 채 흘러나온다. 누군가 들으면 미세하지만 확실한 떨림을 발견할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뭘 해야 하는데?"

"모르죠. 부장님은 뭘 하실 수 있죠? 저는 뭘 할 수 있나요? 저, 사실 진짜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일단 부장님을 찾으러 왔어요."

선생이 폭탄 테러를 당했고, 치명상을 입은 채 긴급수술 중. 그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아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사실 믿기 힘들었다. 폭탄 테러? 치명상? 말도 안 돼. 그 선생님이? 맨날 자기 이겨먹을 생각만 하는 그 음흉하고 약삭빠른 선생님이? 총 맞아도 산다고, 자기 생명줄은 질기다고 자신만만해하던 그 선생님이?

굉장히 악질적인 농담이라고, 소문의 진원지부터 찾아 엄히 처벌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샬레의 선생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니, 그딴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필시 제정신은 아닐 테니까.

그런 농담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일단 일어나보시죠, 부장님. 뭐라도 해야죠. 그냥 이렇게 바보처럼 앉아계시기만 할 건가요?"

"바보......바보, 라. 바보......"

히나가 아코의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바보' 라는 말이 이렇게나 와 닿을 줄은 몰랐다.

자기 자신이 막연하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행정관인 아코도 저렇게 뭐라도 해보려고 움직이는데, 명색이 부장이라는 자기 자신이 이렇게 주저앉았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다.

"...선생이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이 왜 죽는데요? 살았어요. 죽을 운명이어도 어떻게든 부득부득 살 사람이에요."

무리다.

어째서 안 좋은 쪽으로만 머리가 도는 걸까. 분명 목숨만은 부지했을 터이고, 언젠간 반드시 일어나서 자신에게 웃어보일 그일텐데, 무언가가 끊임없이 히나 자신을 악몽 속으로 끌어들이기만 하고 있다.

...오히려 아코가 더 나은가. 당연한 말을 하는 것처럼 확신하는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본다. 아코의 표정이 썩 무서웠다. 지키지도 못한 사람을 바라며 주저앉은 자신 따위보다 훨씬 강인해보였고, 냉정해보이기까지 했고, 어느 의미로는 불안해보였다.

"......부장님은 선도부장이지, 샬레 경호원이 아니에요. 왜 선생님보다 부장님이 더 망가지시는 건가요. 그 사람의 엄마라도 되시나요? 보호자신가요? 왜 그렇게 멍청한 눈을 하고 계시냐구요. 어차피 그 사람은 어른이고,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인데, 대체 왜 그런 사람 대신 못 죽어서 안달이시냐구요!"

아마우 아코 역시, 그저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그저 입가에서 맴돌기만 하면 그대로 지껄여가면서, 난생 처음으로 제 상사를 마구잡이로 힐난하고 있다.

"더 이상 못 보겠어요! 대체 지금 뭐하고 계신 거죠? 세상에 선생님 못 지킨 사람이 부장님 하나밖에 없나요? 그렇게 따지면 저도 그 사람 서포트 제대로 못했으니 저도 앉아서 엉엉 울고 있을까요?! 그 사람은 부정하겠지만, 봐요!! 지금 이 키보토스 내에서 슬프지 않은 사람 있어요?! 자책하지 않는 사람 있어요?! 부장님만 서러워요?! 부장님만 슬퍼요?! 이게 부장님 책임인가요?! 우리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벌어진 테러라구요!! 테러의 근원을 잡아 족쳐야지, 이게 주저앉아서 어린애마냥 울어제낀다고 될 일인가요?!"

선생은 대단하다. 맨날 땡땡이치고 놀 궁리만 하는 사람이지만 제 일을 다 해내고자 하고, 자신들은 생각치도 못한 전술을 생각해내어 각기 다른 능력의 학생들을 지휘하고, 죽음이 목전에 닥치더라도 굴하지 않고 학생들을 구하고, 그 어떤 대가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학생들도 버리지 않는다. 그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언젠가 그에게 진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온다면 그에게 배웠던 그의 정신 그대로, 그런 어른의 태도를 본받아 모두와 함께 그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더욱 완벽한 학생이자 철두철미한 선임행정관이 되려고 발악했다. 히나던 선생이던, 그게 그들에게 있어 부끄럽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선생은 테러로 치명상을 당했고, 선도부장은 자신을 자책하며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이 상황이 미칠 것 같았다. 선생은 자신의 오기이고, 히나는 자신의 의의였다. 오기와 의의가 눈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건 쉽사리 지켜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억지로 일어나야했다. 뭐라도 해야했다. 선생이 쓰러져있는 동안 이렇게 멋지게 일들을 해냈다고, 역시 당신에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그의 앞에 가서 자신만만하게 승리 선언을 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그건 히나도 마찬가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이미 선도부실에 없었다. 히나의 머릿속에는 선생이 가득했고, 어쨌든 누군가는 남겨진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선생이라도 만나고 나면 기운을 차릴 거라고, 그게 아니어도 복수심에 불타며 주동자를 죽일 거라고, 그 때가 되면 자신은 전력으로 그녀를 수행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그녀가 선을 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끓어넘치는 생각 속에서 간신히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

망가졌다. 선생은 목숨'만' 부지했고, 그런 그를 찾아갔을 그녀는 병원 문 앞에서 청승만 떨고 있었다.

자신이 한 고민은 무엇이었는가. 그럼 자신도 선생의 중상에 슬퍼하며 울고만 있어야 했는가. 히나보다 더하게 절망하고 좌절하며 무너졌어야 했는가. 행여나 그가 죽어버린 게 아니냐며 혼자 태웠던 속은 걱정조차 되지 못했는가. 자신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인건가.

"부장님이 이렇게 청승떨며 울어버리는 건, 선생님의 가슴에 대못을 탕탕 박아버리는 게 아닌가요?! 지키겠다면서요! 부장님 말마따나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그래놓고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웅크리고 있어요?! 선생님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선생님 곁에 있으려는 건데요! 자격도 없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떤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는 걸까.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를 제어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다 썩어들어가는 히나의 얼굴과, 끔찍하게 변해버렸을 선생의 얼굴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마다 생각이 다 날아가버려,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 머리가 새하얘져 단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자신이 무작정 화를 내고 있다는 것, 자기도 그 누구 못지 않게 서럽다는 것, 무섭다는 것, 그럼에도 책무를 내려놓을 수 없어 괴롭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미안, 아코. 이런 멍청한 년이 부장이어서."

눈에 초점이 돌아왔을지언정, 그녀의 많은 것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인지, 그런 자책을 털어놓는 히나의 얼굴은 서글픔밖에 남지 않았다.

아코는 저 자신을 막지 못하고, 그녀가 그동안 상상치도 못했고 앞으로도 상상치 못할 행동을, 히나의 멱살을 잡았다.

툭, 하고, 캔커피가 바닥에 떨어져 느릿느릿 나뒹굴고, 찬바람의 씁쓸한 맛이 혓바닥을 얼얼하게 만드는 동안, 마치 잇몸에 피가 나 버릴듯 앙 다문 그녀가 속절없이 부들거렸다.

"근데, 대체, 어째서!!! 당신이!!! 나에겐 그 남자 빼면 당신밖에 없는데!!! 그렇게 강한 당신이-"

울분을 토해내던 아코가 말을 멈춘다. 소름이 끼치도록 흐린 얼굴의 히나는, 초점이 있는 두 눈동자로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죽이려는 눈빛이 아닌, 오직 선명히 괴로워하는 그 눈동자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결례를 범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채 서서히 두 손을 놓았다. 울분을 식히지 못한 듯한 부들거림이 두 손에서 두 팔로, 팔에서 온몸으로 역병처럼 옮아간다.

"......죄송합니다."

죄송? 무엇이? 폭언? 하극상?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무엇을 사과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무언가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저 망가져버린 채 기계적으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을 히나는, 제 두 다리로 일어서 버티고 있었다.

"...먼저 돌아가있어, 아코."

아코는 여전히 히나를 마주보지 못했다. 병원이 아닌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한 그녀의 심정을 짐작할 수 없다. 자신의 심정마저도 짐작할 수가 없는데, 누가 누굴 짐작하는가.

"......선생님은, 안 보시는 건가요?"

발소리가 멈춘다. 히나는 멈췄고, 아코는 보지 못하는 쓸쓸한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코라면 볼 수 있겠어? 만신창이가 된 선생님..."

아코가 캔커피를 천천히 집어들었다. 쓸쓸하게 나뒹구는 주인잃은 캔커피는 그 열기를 점점 잃어가며 차갑게 식어간다.

그녀가 두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입술을 모아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잔뜩 울어버린 어린아이의 한숨처럼,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한 날숨이 턱턱 막혀 불규칙한 소리를 토해낸다. 가슴이 뚫리지 않는다.

"......아니요."

발소리가 다시 멀어져간다.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코는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 나선, 내뱉지 못한 답답함과 서러움이 일시에 몰려 올라오고, 짜증과 슬픔에 뒤섞여, 참을 수 없는 기분나쁨으로 올라와버린다.

들고 있던 캔커피를 멀리, 전력으로 던져버렸다. 덧없이 날아간 캔커피가 바닥에 부딪히고는 파열음과 내용물을 내뱉고, 그러고도 그 잔해는 아무 의미 없이 바닥을 여러 번 튕겨 나간다.

아코가 소리를 지른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도 된다고 여길만큼 거칠고, 내장이 튀어나올 만큼 거세게 내지른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불쾌할 정도로 답답한 속이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 * * *

폴리스 라인이 잔뜩 쳐진 샬레 사무실은 그 날을 기억한다는 듯 엉망이었다.

물론 자신이라고 그가 염려되지 않는 건 아니다. 마음같아선 당장 그를 찾아가 무사한 지 확인하고 싶었고, 1년 365일 내내, 그가 퇴원하게 되더라도 그의 옆에서 밀착 경호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발키리의 공안국장이고, 이 사건을 총괄지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모든 이가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슬픔을 밀어둔 채 뒷수습을 해야만 했고, 그건 결국 자신의 몫이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오가타 칸나는 엉망이 된 샬레에 있어야만 했다.

가끔 당번 일로 찾아오던 샬레다. 자신의 생각보다 편안하고 안락해 썩 마음에 들었던 참이고, 무엇보다 선생은 자신 역시 '미친 개' 가 아닌 학생으로 봐 주었다. 샬레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두 어깨의 짐을 내려놔도 좋다는, 학생을 배려하는 그만의 성의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배려가 도움이 되었다. 그 포장마차만큼이나 편하던 곳이 이 곳이었으니까.

"......젠장."

그렇게 편안하던 이 곳이, 지금은 이 불쾌한 메스꺼움의 원천이 되었다. 선생은 이 곳에서 폭탄 테러를 당했고, 생명줄 한 가닥만을 간신히 붙잡은 채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의 직장이었던 이 곳이 어찌됐던 그의 무덤이 될 뻔했다.

...바로 저기, 메말라버린 핏자국들이 아직도 선명한 저 곳이.

속이 또 한 번 메스꺼워져, 무심코 바라보았던 시선을 다시 억지로 돌려버렸다.

반드시 해야만 했던 현장 보존과 채증 작업이 끝나자마자, 그 어느 발키리 학생들도 이 곳에 들어오길 원치 않았다.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이 사건에 배정된 그 어느 누구도 사무실을 바라보지도, 폴리스 라인을 넘어 들어오지 않았다. 칸나 자신만 빼고.

발키리 학생들은 모두 선생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무능한 경찰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던 이들로 하여금 멸망의 위기를 막고, 끊임없이 시민을 지키고, 자부심을 심어 준 선생은 말 그대로 자신들의 은인이었다. 발키리의 모두는 선생의 지시라면 목숨을 걸고, 말 그대로 지옥이라도 따라갈 만큼 그를 따르고 있다. 칸나까지 포함해서.

그런 그가 단 2분만 후송이 늦었어도 사망할 뻔한 장소가 이 곳이다. 자신들의 영웅이자 은인의 죽음이 아른거렸던 곳이고, 지금 키보토스를 감싼 슬픔과 무기력함의 원천인 곳이다. 그 누구라도 들어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된 걸 후회할 줄은......)

칸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 한 번도 경찰의 이름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발키리 학생증은 그녀의 자부심이고 자신감이다. 그녀의 자부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없었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약간의 후회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마는, 생리적으로 드는 거부감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흰색 테이프와 숫자 팻말로 표시된 선생의 흔적은 상상하기조차 싫어지는 모습이었고, 검게 그을리거나 상처가 난 바닥, 그리고 폭발흔이 새겨진 천장이 이 현실의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버티기 힘든 것은 검붉게 말라붙어가는 혈흔이었다. 말라붙어간다지만 선명하게 남은 그 뼈아픈 흔적은 그의 책상에도, 겉옷이 걸쳐진 의자에도, 책상 위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에도, 심지어는 PC의 모니터에도 남아 있었다. 의외로 아기자기한 필체로 쓰여졌을 포스트잇들은 이미 그 내용을 알아보지도 못 할 지경이었다.

...키보토스에서 경찰이 된 이상 혈흔을 보는 것은 당연한 것. 가벼운 찰과상이라도 어쨌든 피는 나는 법이요, 종종 발생하는 중상자들이라면 수사에 들어가야 할 수준이다. 특히 칸나와 같은 공안국 소속이라면 그 빈도는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저 정신나간 양의 혈흔이 선생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칸나의 가슴을 후벼파 마구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없을 사람이 참혹하게 죽어가던 현장을 보며 '살아남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따위의 생각을 해야만 하는, 이 현실 자체가 너무나도 역겹고 이질적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이 객관적으로 볼 때는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핏자국이 말라가며 배어버린 역겨운 피비린내에, 칸나가 메스꺼움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고, 때로는 듬직한 얼굴을 하고, 때로는 마음이 녹아버릴 정도로 따뜻한 말을 건네는 선생이 쏟은 피다. 총상처럼 신체 일부를 겨냥한 것이 아닌, 어느 부위를 노린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폭탄에 의한 피다. 칸나에게 있어 대체할 수 없는 이가 죽음을 목전에 둔 채 흘린 피다.

(......할 짓이 못 되는군.)

도망치고 싶다. 발키리 학생증이고 자신의 머그컵이고 다 집어던지고 도망치고 싶다. 더 이상 선생의 피 묻은 물건을, 피비린내나는 샬레를,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그의 흔적을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만신창이가 된 선생 옆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럴 용기는 없다. 그의 추이가 요약된 냉랭한 보고서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마당에, 그 아픔에 신음하고 있을 실물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니까.

속이라도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 깊고 깊은 한숨을 나지막히 내쉬어본다. 공기가 빠져나간 속을 피비린내가 대신 채우는 것 같아 머리만 곱절로 아프다.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하도록."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건 조금 전이었다. 그래, 구태여 따지자면, 선생의 피비린내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던 즈음이려나.

폴리스 라인 너머 문 저편의 인기척은, 존재를 들킨 것을 탓하기라도 하듯 멋쩍은 웃음을 한 번 내지어보였다만, 여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그저, 사건 현장이 되어버린 샬레 사무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칸나 국장에게 들키지 않을 리가 없지."

네무가키 후부키. 생활안전국 1학년. 그녀의 목소리를 모르진 않았다. 그저 그녀를 막지 않은 공안국의 다른 학생들에게 의문을, 그리고 다른 이들만큼이나 힘이 없는 목소리에 대한 동정을 품었을 뿐이다.

"생활안전국은......분명 이 근처의 순찰을 담당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만,"

칸나가 말을 멈춘다.

사실, 뭐, 지금 D.U. 시라토리 구 전체를 휘감는 이 무기력함이라면, 그녀들이 휘둘리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 총책임자인 칸나 자신이 할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어쨌든 스스로의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뭐, 상관없나."

머릿속이 막연한 공안국장이 천천히 문을 향해 걷는다. 잠시 머리를 환기시켜야 할 것 같다. 자신 역시 수사 따위보단, 용기도 없는 주제에 그저 선생에게 가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은 공안국의 장이고, 이럴 때일수록 학생들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의무가 있다. 다른 부서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녀는 간부이고, 네무가키 후부키는 직속은 아닐지언정 그녀의 하급자였으니까.

아무 말도 없이 폴리스 라인을 넘고, 사무실 문가에 서 있었을 후부키의 옆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자신이 코로 한숨을 대신 내뱉는 소리, 그리고 후부키가 천천히 숨을 쉬는 소리만이 들려올 정도로, 이 곳은 불쾌하리만치 고요했다.

"뭐라고 해야할지......실감이 잘 안 나네."

하고 싶은 말을 골라내듯 침묵하던 후부키는, 첫 마디를 어렵사리 내뱉는다.

"......시간이 나만 빼놓고 흐른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

후부키는 칸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칸나 뿐만이 아닌, 마주쳐 지나가는 모든 학생들과 일절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이건 영화다. 기분나쁘고 추악한 영화다.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부정한다. 저마다 가지각색의 고통을 표출한다.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후부키 자신도 그 이유에 똑같은 쓰라림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다. 똑같은 시간에 몸을 맡긴 일행이다.

스크린이 암전되고 영화가 막이 내리면, 여운에 빠진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마다의 감상평을 떠들며 영화관을 나서면, 관객들을 끌어들이던 이야기는 필름 속의 세계로 돌아가버린다. 이야기의 흐름과 하나가 되었던 관객들이 더 이상 그 흐름에 함께 하지 않는다.

후부키는, 영화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과도 같았다. 키리노도, 칸나도, 발키리의 그 누구라도, 이 키보토스의 그 누구라도 자신과는 다른 시간선의 존재 같았다. 시간이, 자신만 빼놓고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녀라고 이 상황이 울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개 생활안전국 소속 발키리 학생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은 칸나의 역할이고, 범인을 잡는 것은 공안국의 역할이다. 선생을 치료하는 것은 더더욱 그녀의 역할이 아니다. 그 사실이 그녀를 울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영화와 같이 느껴지고 있다. 사람을 밑도끝도 없이 불쾌하게 만들고, 관객들이 자신을 기만했다며 분노를 표하며, 평론가들이 감독의 의도에 대해 의미없이 갑론을박을 해대는 영화같았다.

"...나도 슬퍼. 엄청 단 도넛을 먹어도 맛이 안 느껴지고, 땡땡이를 치려고 해도 재미가 없어서 금방 그만 둬. 근데......이 슬픔을 이 이상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모르겠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감정 표현을 잘한다. 배우가 기뻐하는 장면에선 자신도 모르게 그 기쁨을 느끼고, 배우가 슬퍼하는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배우가 격노하는 장면에선 어째서인지 주먹이 움켜쥐어지기도 한다.

지금 후부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역시 그러하다. 어쨌든 나름 알고 지냈을 이들이 저마다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폭발시키고 있다. 낯설어버릴 정도로 그녀들은 슬퍼하고 있으며, 오한이 들 정도로 그녀들은 격노하고 있다.

일반인인 관객은, 어찌되었던 배우들보단 감정 표현이 미숙하다. 기뻐도 어떻게 기뻐해야 할 지 모르고, 슬프거나 화가 나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른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몰입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감정 표현을 그저 감탄하며 지켜보기도 한다.

후부키 자신은 관객이다. 자신은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주변의 모든 것이 낯설고, 뒤늦게서야 무섭고, 어쩌면 외로움을 넘어 어안이 벙벙해지고 마는 모양이다.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은 슬프다. 그저 어찌할 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을 뿐, 선생의 피해를 분명 크게 걱정하고 있다. 그저 눈 깜빡할 새 거쳐간 슬픔의 급류에 타지 못했을 뿐이다. 남들의 반응과 속도를 맞추지 못했을 뿐인데, 정신차려보니 영화 밖 관객처럼 되어버렸을 뿐이다.

"그럼, 내가 느끼는 이 슬픔과 무기력함은...가짜야? 나도 물불 안 가리고 펑펑 울거나, 목이 찢어져라 소리쳐야하는거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아무도 안 가르쳐줬다고. 선생님도. 응. 선생님도 안 가르쳐줬어, 이런 거."

후부키 자신은 멍청이다. 배우지 않은 일에 대해선 모른다. 민원이야 어디 넘겨버리면 그만이니 회피라도 하겠다만, 이 거대한 슬픔은 넘길 수조차도 없다. 이런 건 배운 적이 없다. 누가 알려준 적도 없다.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나는 그저, 이렇게 슬픈 일을......겪어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언제나 느긋하게 살아왔던 자신이다. 스트레스와도 거리가 멀었고, 자신의 직무까지 은근슬쩍 밀어두면서 아주 여유만만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해도 세상은 돌아갔으니까. 어차피 누군가는 겪어봤을 일이고, 결국 언젠가는 해결되는 일이니까.

...세상이 멈췄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낯선 슬픔을 안고 찾아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 주는 이도 없었고, 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하던 이가 선생이었는데, 그런 선생은 죽다 살아난 반송장이 되어 병원에 누워있었다.

"키리노 알지? 왜, 나카츠카사 키리노. 맨날 경비국에 가고 싶어하는 걔. 걔 요새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들었어? 하루종일 사격 연습을 하거나 자책을 하거나 해. 자신이 멋진 경관이 되는게 그나마 선생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면서."

동기이자 친구인 키리노는 사건 이후 전혀 웃지 않게 되었다. 생기잃은 눈으로 기이할 정도로 늘지 않는 사격을 연습하고, 진전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그녀 자신을 힐난한다. 손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주먹을 쥐고, 입술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이 악 물고 훈련한다. 본 적도 없던 다크서클까지 생겨나고, 생기있던 눈동자는 점점 어두워져갔으며, 윤기있던 머리카락은 거칠고 까끌까끌해져갔다.

물론 언제나 경찰이라는 본분에 진심이던 그녀다. 키리노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후부키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매일매일 사격 훈련을 빼먹지도 않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신고 및 민원에도 성실히 대응한다는 건 다 꿰뚫고 있다.

지금의 키리노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루의 절반 이상이 사격 훈련이었고, 이제는 후부키 자신마저 그녀의 사격이 제발 늘었으면 좋겠다고 빌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낯선 것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난 그런 걔를 처음 봤어. 그렇게 확 변해야 정상인 걸까? 어떻게 슬퍼해야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비정상이야? 진짜 모르겠다니까."

자신은 그렇지 않다. 뭔가 급하게 변해야 하는걸까? 키리노처럼? 제 주변의 다른 학생들처럼?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하나? 그런 생각이 안 들면, 이 슬픔은 분위기에 휩쓸렸을 뿐인가? 진짜 슬픔이 아닌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지금의 후부키에겐 모든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자신의 감정도, 이 머리아픈 상황도, 낯선 주변도.

"......알려줘, 칸나 국장.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해?"

마침내 후부키가 그녀의 쪽으로 얼굴을 돌리면, 칸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글쎄. 내 의견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 같군.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도 그저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녀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칸나 자신의 눈에는, 그녀는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도 울적해보이고 고통스러워보였다. 충분히.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귀관의 자리로 돌아갈 것."

"......역시 그래야겠지."

후부키가 벽에 기대어있던 몸을 뗀다. 공안국장이라면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어찌되었던 그녀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불쾌한 곳에 있는 것이니까. 쓰잘데기없는 의문이었지.

"아니, 내 눈에는 귀관이 충분히 슬퍼 보이니까 하는 이야기다."

"......뭐?"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지 않나? 나는 왜 쟤랑 다를까, 따위의 생각 말이야. 이상할 것 없이 정상이다."

칸나가 후부키를 바라본다. 얼빠진 듯한 벙 찐 얼굴의 네무가키 후부키는, 오늘 중 가장 생기있어보였다.

"중요한 건 귀관이 슬프다는 사실을 귀관이 알고 있다는 거다. 그걸 확실하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 나머지는 냉정히 말하자면...자기들 선택이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귀관은 충분히 울적해보이니까. 다른 학생들처럼."

"......"

"왜, 그럼 귀관은 사실 슬프지 않은 건가?"

후부키가 고개를 저었다. 거의 즉답이었다.

"아니, 슬퍼. 그것도 엄청."

"그렇다면 귀관은 충분히 슬퍼하고 있는거다. 그러니 귀관의 자리로 복귀해. 어쨌든 우리에겐 임무가 있으니까."

"......그래야겠네."

후부키가 마침내 발걸음을 뗀다. 사실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자신은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도넛도 맛이 없고, 땡땡이 생각조차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나도 지금 죽을만큼 우울하다' 라는 생각을, 어거지로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일말의 도피처가 생겼으니까.

"...하나만 더 묻고 싶어, 칸나 국장."

"뭐지?"

후부키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뭔가 답답한 듯 제 머리를 긁적이는 칸나를 바라본다.

"지금 여기서 버티고 있는......당신은, 슬픔을 그저 참고 있는거야? 당신도 죽을 만큼 슬퍼?"

그녀 나름대로, 슬픔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임무를 수행한다는 동질감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실력 발휘만 한다면 충분히 영리하고 우수한 그녀이니만큼, 발키리의 모두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곧 깨닫겠지만, 이 곳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이와의 동질감을, 스쳐가듯 대화한 이와의 동질감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뼈저린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동질감을.

...어려운 질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칸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여기저기 다 남아있는 그 사람의 핏자국이, 다시 한 번 역한 피비린내와 함께 맴도는 것만 같았다.

칸나가 천천히 한숨을 내뱉고는, 아주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래, 당장 죽고 싶을 만큼 말이지."

---------------------

선도부와 발키리 이야기

선생이 죽다 살아났다고 하면 미친듯이 달려갈 학생들이 있으면,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제 일을 해야 할 학생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써봄

역시 그 역할은 이 둘이 제일 제격인 것 같음

정작 히나는 선생이 중상일 때 그 근처에도 없었다면 트라우마가 폭발해서 얼굴도 못 보지 않을까?

아마 한두 편으로 이번 이야기 마무리하고 다른 주제 그대로 쓸 듯? 제대로 짰으면 장편으로도 써 봄직하긴 한데 뭔가 딱 단편용인 것 같음

언젠가 장편도 써 보고 싶긴 한데 요새 성수기라 바빠서 시간이 안 난다......관광철 끝나고 좀 한가해지면 슬금슬금 준비해볼까 생각중

소재 추천은 언제나 환영함

스리슬쩍 만져서 써 볼 수도 있음

웹소설은 얼어죽을 웹소설? 시발 블갤이 체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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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3.10.28창작

소설) 테러를 당한 선생님이 깨어나는 이야기 (2)

#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55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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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DC
데스/모이네스!작가
게시물 51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YouTube
게시일2023.10.28 23:47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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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5

나
ㅇDC
ㅇㅇ23.10.29

히나아코 이야기는 생각한대로 흘러가네 발키리는 슬픔을 뒤로하고 본인들의 역할에 충실을 다하고있고

데DC
데스/모이네스!작성자23.10.29

발키리는 수사 기관이라...누군가는 꼼짝없이 현장을 지키지 않을까 싶더라

ㅇDC
ㅇㅇ23.10.29
디시콘
데DC
데스/모이네스!작성자23.10.29
디시콘
ㅇDC
ㅇㅇ123.10.29
데DC
데스/모이네스!작성자23.10.29
ㅇDC
ㅇㅇ223.10.29

어우 개피페하네

데DC
데스/모이네스!작성자23.10.29

선생 피폐 너무 좋아

ㅇDC
ㅇㅇ23.10.29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히나아코 이야기가 참 미식이네요

데DC
데스/모이네스!작성자23.10.29

감사합니당 정작 선생 얼굴 못 보고 벌벌 떠는 히나가 체고데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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