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6qdacPH8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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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떨지 장담은 못 한대."
[ 그렇습니까...... ]
유우카의 한껏 풀죽은 목소리에, 휴대폰 너머 린의 목소리도 제법 시무룩하게 들린다.
[ 병원도 원인을 진단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식사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말씀이군요. 악의적이네요. ]
유우카의 상황 설명을 요약하며, 린은 결국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일단 알겠습니다. 그대로 전달하죠. ]
"그 쪽은...어때? 분위기라거나......"
하야세 유우카는 휴대폰 너머의 상황이 꽤나 궁금한 것인지, 은근슬쩍 분위기를 언급하며 질문을 던졌다.
선생의 보호가 목적이라지만, 회의에 참석하지 못 한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 글쎄요. 일단 어느 정도는 진정이 된 것 같습니다만,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
'그래도 다름아닌 선생님이 이렇게 된 거니까 생각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조금이나마 품어보았다만, 그 생각은 린이 내뱉은 애매모호한 말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 휴식 시간이 끝나면 선생님의 상태를 설명하겠습니다. 숨겨봐야 하등 좋을 건 없으니. ]
"응. 알겠어."
[ 아, 그리고 선생님이 깨어나시면 그것도 전해주십시오. 현 상황을 공표하는 걸 의논해보겠다고.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면 곧바로 연락드리겠다고. 원래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긴 하셨지만요. ]
"알겠어. 말씀드릴게."
[ 네. 그럼 이만... ]
곧 전화가 끊어진다.
원래라면 선생도 참여해 수월하게 결론냈겠지만, 어쨌든 저 자리에 선생이 없으니 얼마나 시끌시끌할 지는 알 수 없다.
본인의 참석에 관계없이 회의를 진행하는 게 그의 뜻이기도 하니, 그걸 위해 비지땀을 흘릴 린에게 맡겨두는 수밖에.
휴대폰의 홀드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끈 유우카가 눈길을 돌린다.
병실 침대 위에 누운 선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저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링거를 맞고 있다는 것만 빼면, 오늘은 그 어느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대행이 뭐라던가요?"
그녀의 옆에 있던 나츠메 이로하가 넌지시 질문을 건네온다.
"아직은 회의가 잘 될 지 안 될 지 모르겠나봐. 지금은 쉬는 시간이래."
"그런가요......대행도 고생이네요."
이로하는 진심으로 린이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총학생회에 대한 신뢰가 탄탄하지도 않은 데다가 선생의 뒤처리도 해야 할 마당이니, 그녀의 노고가 어떨지는 '뻔할 뻔' 자겠지.
그런 이로하 역시 고개를 돌려 선생을 바라본다.
"저희는......오늘은 선생님과 함께 있는 쪽이 낫겠네요."
"응. 당장이야 별 문제는 없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유우카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로하의 의견에 동의한다.
선생의 몸상태가 크던 작던 악화되어가는 마당에, 이제는 누구던 선생의 용태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샬레로 찾아오고, 쓰러진 선생을 뒤늦게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일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누군가가 그를 지키고 있는 쪽이 백번천번 더 나았다.
"당번을......"
저도 모르게 입을 뗀 유우카를, 이로하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당번을 다시 시작하는 게 어때?"
"당번요? 샬레 당번 말하는 거죠?"
이로하의 물음에 유우카가 '응' 이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샬레의 업무가 멈춰서면서 같이 중단된 샬레 당번을, 그녀는 아무래도 되살리고 싶어하는 모양새였다.
"저번에 노아도 그랬고, 오늘 우리도 그랬고...항상 선생님이 쓰러지신 뒤에야 찾아왔잖아. 그럴 바에는 누군가가 샬레에 상주하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 확실히......그러면 조금은 낫겠죠. 약간의 이상만 보여도 병원으로 모실 수도 있겠구요."
"그런다고 이 흐름을 막을 수 있을지는...모르겠지만..."
유우카가 말끝을 흐렸다.
오늘 아침 마주했던 그 기억이 어지간히 폭력적이었던지라, 무슨 짓을 하더라도 눈 가리고 아웅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겠지.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미칠 것 같죠."
뭐라도 해야겠다고.
두 사람이 이르게 된 결론이었다.
그를 병원으로 이송한다 한들, 배울 대로 배운 의료진마저 이상의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 확실한 원인조차 몰라서야 그의 건강 악화를 막을, 하다못해 늦추게라도 만들 방도를 찾지 못 할 것임도 당연하다.
그러니, 이 방안은 자연스레 자신들을 위함이 된다.
악의마저 느껴지는 불가항력적인 사태 속에서 이성적으로는 더 빠른 대응책 마련을 위해, 감성적으로는 학생 본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적어도 이 모든 일의 종착역에 다다르기 전까지만이라도, 유우카가 샬레 당번을 다시 한 번 복구시키고자 하는 까닭이었다.
"당번은 당번인데, 샬레나 선생님이 계신 병원으로 가서 선생님을 살피는 당번이 되겠네요."
"응. 일단 대행에게는 건의해야겠어. 어쨌든 당번을 다시 시작하려면 일단 상황을 공표해야 할 테니까."
유우카가 다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까 전화를 끊기 전에 생각했으면 좋았을 걸. 괜시리 바쁜 사람에게 전화를 두 번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신경이 쓰이나, 괜히리 미뤘다간 두 배 이상 번거로워질 것 같아 문자라도 넣어놓을까 싶었다.
"......유우카 씨."
그리고 나츠메 이로하는 유우카를 멈춰세웠다.
"......선생님을, 좋아하시죠?"
예상치 못한 타이밍, 예상치 못한 질문.
유우카가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이로하를 바라본다.
이로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감정이 담겨있다고 해야 할까.
의문. 안쓰러움. 불편함. 기타 갖가지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당번을 다시 시작해도, 유우카 씨는 괜찮으세요?"
"......그게 무슨......"
"유우카 씨의 의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며칠동안은 사실상 유우카 씨가 선생님의 아침을 책임지셨잖아요."
정말 궁금한 것뿐인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이로하의 목소리는, 쉬이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뿐이었다면야 별 신경쓰지 않고 넘겼겠다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심히 신경쓰여 함부로 넘길 수조차 없었다.
"유우카 씨라면 선생님의 컨디션을 체크하겠다는 명분으로 곁에 머물 수 있어요. 당번도 중지됐으니 선생님과의 시간을 은근슬쩍 독점하실 수 있다구요."
이로하는 어쩌면, 유우카가 애써 고개돌리고 있던 점을 구태여 꺼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번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이 며칠 동안 유우카 씨가 독점하던 선생님과의 시간을 내어놓는다는 뜻이에요."
"...필요없는 걱정이야. 그동안 해왔던 거고, 난 그저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실 수 있다면--"
"--곧 돌아가시게 될 선생님과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당번. 혼자서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선생님. 하루종일 붙어서 선생님을 간호하고 보조해야 할 당번.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유우카 씨 뿐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다른 학생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시겠다구요? 과연 그 기회를 운좋게 잡은 다른 학생들은 유우카 씨처럼 순수하게 생각해줄까요?"
"그, 그래도 어차피 낮에 만나잖아. 선생님도 최대한 무언가를 하려고 하실거고, 이로하 씨도 나도, 다른 사람들도 선생님을 만날 거야. 똑같잖아!"
"모두가 떠난 밤에는요? 일주일 내내 선생님과 붙어 계실 생각인가요? 본인의 업무가 어떻게 되던 다 내팽개치시려구요? 당장 지금도 이 곳에 저와 유우카 씨밖에 없어요. 눈을 잠깐이라도 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일이 나비효과처럼 굴러갈 지 모르구요."
이로하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유우카에게서, 누워있는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링거를 꽂은 채 그저 눈을 감고 누워있는 선생.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뭐 하나 스스로 하기 힘들 것이고, 그러한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이전의 건강한 모습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
그런 그를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이로하가, 다시 유우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 사실 선생님을 엄청 좋아해요. 한평생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누구에게도 꺼낸 적 없던 속마음.
이로하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런 제가 내일 당번이 된다면 어떠세요?"
"뭐...?"
"선생님은 결국 돌아가시겠죠. 내일이 지나면 당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죠. 그리고 선생님은...제가 뭘 하던 저항하시기 어렵겠죠."
"무, 무슨,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가며, 유우카는 이로하의 진의를 캐물었다. 그녀가 꺼내놓는 말이 제법 해괴망측하여, 어찌보면 당연할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이런 생각을 저만 할 것 같으시냐구요."
이로하는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 한 마디로, 과연 '대의' 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셈이었다.
"......당번을 재개시키지 말자는 말이야?"
"뭐...개인적으로는 그렇네요. 소유욕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뭐라고 할까, 좀 걱정스러워서요."
걱정. 걱정이라.
이로하가 내뱉은 말은 생각보단 수동적인 단어였다.
"지금처럼이라면 저도 유우카 씨를 돕는다면서 선생님과 계속 있을 수 있어요."
"정말 그 이유 때문이야? 그러니까 당번을 되살리지 말고 우리 둘이 독점하자고? 다른 애들이 이성을 잃고 선을 넘을게 두려워서?"
이로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내내 유우카를 바로 보던 눈을 슬며시 피하며, 조금 작아진 목소리를 내었을 뿐이다.
"...저, 사실 유우카 씨가 제일 무서워요."
유우카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다.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그 말에, 입 밖으로 목소리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유우카 씨는 언제나 선생님 곁에 있었으니까......그리고, 선생님을 결국은 유우카 씨에게 빼앗기게 될까봐......"
"......무슨......"
"제가 곁에 있으면, 선생님이 유우카 씨에게 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게 기회가 올 수도 있을까요?"
하야세 유우카가 나츠메 이로하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가는 뭇 비밀스러운 것을 고백하는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담백한 진실을 의미하는 듯 깊고 어두웠다.
물론 그녀 역시도 현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결국 자신들 둘만 있는다는 게 가망 없는 이야기라고. 자신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건 누군가 난입하건 파국에 이르게 될 이야기라고. 종국에는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리게 될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심히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어두었다. 자신의 솔직하고 부끄러운 감정을 머뭇머뭇 털어놓으면서, 그렇게 선생을 독점하고자 하는 의견을 냈다.
처음 경험하는 '사별(死別)' 의 감정이, 그녀 내면의 온갖 마음을 죄다 뒤흔들어놨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감정이, 내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이유는 될 수 없어."
우시오 노아가 할 법한 말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우카가 꺼내어 놓는다.
"선생님을 좋아한다면서, 선생님께 그런 상처를 줘 놓고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 선생님과의 시간을 독점하는 걸 선생님이 좋아하시겠냐구."
"알아요. 저도 안다구요. 그런데...그런데 제 마음이 그렇게 안 되는 걸 어떡해요?"
"변명이야. 정신차려, 이로하 씨.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아니고, 고등학생 씩이나 되어서 그런 자기합리화에 빠지면 안 돼."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다른 사람들이 유우카 씨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적어도, 유우카 자신이 알고 있는 나츠메 이로하라는 사람은 이 정도로 감정에 솔직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조용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로하는 그러지 않았다.
언성만 높이지 않았다 뿐이지, 어찌 보면 이미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어찌보면 필사적이고 절박한 사람처럼, 그렇게 유우카를 향해 제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적어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쪽이, 우리 둘이 선생님과 하루종일 붙어있는 쪽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이성적인 방안이야."
그리고 유우카는 그러한 이로하를 어찌보면 단호하게, 어찌보면 필사적으로 제지하고 있었다.
"...선생님을 좋아하냐고? 응. 좋아해. 엄청."
친구 노아에게도 대놓고 말한 적 없던 그 속내를, 그렇기에 당당하게 내비쳐보인다.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어. 같이 먹고, 자고, 그렇게 죽을 때까지 같이 있고 싶어. 그래도 난 이로하 씨처럼 일을 저지르고 싶지도 않아. 왜인지 알아?"
약간은 인상찌푸리는 것처럼 보이던 유우카의 얼굴이 침대의 선생을 향한다.
그 이후 그녀의 얼굴은, 아마도 어딘가 서운하고 서글퍼보이는 표정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그걸 원하지 않으실 거니까."
죽은 듯이 잠들어있는 그를 바라보며, 유우카는 소리없는 한숨을 길게, 아주 길게 내쉬었다.
"하루종일 붙어서 간호해드린다면 참 좋을거야. 용기를 내면 선생님께 이 마음을 고백할 수도 있겠지. 달밤을 배경으로. 묘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거고."
"...네. 그러니까 당번은 필요 없--"
"--날 꼬드겨서 우리 두 사람만 있게 만들고, 기회 봐서 선수라도 치려고?"
이로하가 말을 멈췄다.
모함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일 뿐이고, 자신 역시 저렇게 된 선생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유우카에게 말했던 대로 수많은 학생들에게 일말의 기회조차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한 유우카의 저 은근슬쩍 적대적인 표정은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자기 역시도 선생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으니까. 지양하고 싶었으니까.
허나 가능성의 영역일 뿐이지만, 자신 역시 그러한 욕망에 지배당하게 된다면......
그래.
한 발 물러서서, 낮은 확률의 모함이라고 해 두자.
"소용없어. 선생님은 그 고백을 받아주지 않으실 거야."
"어째서요? 유우카 씨라면 분명 가까운--"
"--나 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의 고백이라도 받지 않으실 거야."
하야세 유우카는 단호하게, 완전히 부정했다.
"선생님은 선생이고 우린 학생이니까. 선생님은 끝까지 선생님으로 남고 싶으실 테니까. 특히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건 언뜻 보면 자조섞인 넋두리일지도 모른다.
사실 마음으로만 따지자면야, 그에 대한 연심은 다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선생이 졸업 운운하며 애매하게 회피했다면, 미래의 그 언제라도 그에게 다가갈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단호했다.
도전하는 쪽에서 김이 샐 정도로, 그는 학생들의 연심을 눈치챈 듯하면서도 필사적으로 거절했다.
무엇보다, 그가 제일 중시하는 '학생과 선생' 이라는 법칙이 깨지는 날엔, 더 이상 그가 없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정도만 되어도 이로하 씨는 잊지 못할 거잖아. 그런데도 선생님이 점점 더 안좋아지신다면...상상해 본 적 있어?"
"......아뇨."
"그 때의 선생님께 고백한다고? 선을 넘는다고? 망가진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꺼려하고 경계하는 선생님 상대로, 뭔가 해야겠다는 욕구가 샘솟을 수 있겠어?"
연심 고백.
그것은 기본적으로 좋아한다는 감정.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저항하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안 돼,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야" 따위의 말을 하는 선생을 상대로, 그런 감정을 고백하고 선을 넘어버리는 것.
그것이 선생 이상으로 학생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
"가벼운 문제라면 그럴 수 있겠지. 그렇지만 선생님은 점점 중환자로 변해갈 거야. 믿기는 싫지만. 그 때 그 얼굴을 보고서도 '일단 이 사람을 가져야겠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있을까?"
연심이라는 강력한 감정도, '목숨' 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일을 저지르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더라도, 정작 고통에 신음하게 될 그를 보고서도 그럴 지는......
"...선생님이 살아 계셔야 사랑이던 고백이던 하는 거야."
유우카의 마지막 말에는 어느덧 꽤나 힘이 빠져 있었다. 이로하에게 던지는 말이면서, 동시에 제 자신에게도 날리는 스트레이트 결정구였다.
"그러니까......"
휴대폰의 잠금을 다시 푸는 유우카.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는 이로하.
"다른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려. 나는......이 이상 좋은 생각은 못 하겠으니까."
단호한 어투와는 다르게 불안감을 잔뜩 머금은 채로 유우카는 결국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로하는......그 어느 말도 하지 못하며 그저 유우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뭔가 느낌이 안 좋네."
베리타스의 부장, 카가미 치히로가 영 찝찝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치히로 뿐인가. 옆에서 듣고 있던 오토세 코타마와 오마가리 하레도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저었다.
코누리 마키는 한 술 더 떠, 모모이를 향해 확인 차 질문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연락을 아예 안 받는다는 얘기지?"
"그렇다니까! 어제는 유우카도 한 번 만났는데, 나한테 아는 체도 없이 혼자 중얼거리면서 지나갔어!"
사이바 모모이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도와달라는 제 자신의 말에 대한 새로운 근거를 들이밀었다.
"그건...확실히 이상하네."
"그치? 그치? 치히로 선배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나한테 얘기한들......"
본인을 의지해주는 것이 썩 고마운 마음이다만, 그것과 이 문제는 별개였다. 선생도 유우카도 며칠 내내 연락이 안 되는 건, 냉정히 따지면 제 자신이 어찌 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물어봤어?"
"...노아 선배는 대답을 피했고, 네루 선배도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가 버렸어요."
"노아 선배가 샬레에는 가지 말라던데? 자세한 사정은 안 알려줬고."
"...이상하네. 노아가 그런 말을 할 애는 아닌데."
미도리의 대답에서 의아함을 한 번, 모모이의 대답에서 의아함을 두 번.
카가미 치히로는 노아가 했다던 말이 아무래도 꽤나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대답을 은근슬쩍 피하는 경우도 없거니와, 무작정 하지 말라는 말을 내뱉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또 누가 있나? 리오......는 연락두절이고."
"히마리 선배는? 히마리 선배 정도면 알지 않을까?"
"아니, 히마리도 몰라."
'생각났다' 스러운 표정의 모모이를 향해, 치히로가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인다.
"잠깐 확인할 게 있다면서 며칠 전에 에이미 데리고 어디 갔어. 오늘이나 내일즈음 올 걸?"
"뭐야, 그럼 학교에 아무도 없어?"
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모모이의 목소리에서 김이 팍 새 버린다. 선생의 행방을 시원하게 알려줄 이 하나가 없다니, 밀레니엄도 갈 데까지 가 버린 것인가.
"어? 아니야! 코타마 선배는 알 것 같은--"
"--샬레에 설치했던 도청기 얘기라면 포기해. 일주일 전 쯤에 선생님이랑 같이 다 제거했으니까."
치히로가 별 문제 아니라는 듯 모모이를 가로막았다.
모모이는 '이제 선생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라며 비밀스럽고 기세등등하게 얘기했었던 코타마를 바라보았고, 코타마는 시무룩해진 채로 시선을 피했다. 아마 선생과 치히로 두 사람에게 합동 꾸지람이라도 들은 모양이다.
"...너도 공범이었어, 모모이?"
"아, 아냐! 난 모르는 일이야!"
그리고 모모이는 도청범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물론 코타마가 귀띔해줬을 때까지만 해도 신나서 꺄륵거렸지만, 뭐, 어쨌든 본인이 설치한 건 아니었잖아?
"여하튼, 지금으로선 딱히 선생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어."
"그......런가요..."
치히로가 내어놓은 결론에, 미도리의 어깨가 티가 날 정도로 추욱 처졌다.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던 치히로마저 선생의 행방을 모르니, 힘이 빠지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선생님이 신작 게임 데모 버전 테스트해주기로 했는데......"
모모이도 약간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친다. 그녀의 그 말이 치히로를 또 한 번 의아하게 만들었다.
"뭐야. 약속까지 해 두고 연락이 끊긴 거야?"
"으응...바쁘면 바쁘다고 따로 알려줬었는데, 답장도 없이 이런 적은 처음이야."
"이상하네. 사실 나도 답장 못 받았거든."
치히로의 말에, 모모이와 미도리 뿐만이 아닌 코타마와 하레, 마키까지 고개를 돌린다.
"선배까지?"
"응. 조만간 캠핑이나 한 번 더 갈까 싶어서 어제 의향을 물어봤거든. 근데 아직도 모모톡 답장이 없어서."
베리타스 부원들의 표정이 영 애매모호해져버린 것은 구태여 입에 올리지 않기로 하자.
"확실히 이상하네. 선생님이 이 정도까지 연락이 없을 사람이 아닌데......"
"뭔 일 생긴 거 아냐? 선생님이 이 정도로 전화를 안 받을 리는 없잖아."
마키는 보기 드문 걱정 어린 시선으로 치히로를 바라본다. 무의식 중에 '부부장이라면 뭔가 방법을 찾을 지도 모른다' 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도청기를 빼지 말았어야......"
"아냐. 그건 아니야."
오토세 코타마는 일주일 전이 사무치도록 한스러운 모양이었다. 도청을 들켜 모든 도청기를 철수시킨 것이 이토록 답답한 결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물론 치히로가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다. '화이트 해커론' 을 들이미는 그녀가 세상 그 어떤 장벽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하레 선배, 뭐해?"
"...아, 그냥 조금..."
모모이의 목소리에 모두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던 하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마가리 하레는 자신의 컴퓨터를 조작하여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의문을 표하는 모모이 쪽을 쳐다보는 대신 대답만으로 대응 중이었다.
"모모이 말대로면......유우카도 뭔가 이상해서. 유우카의 위치를 찾아보면......실마리가 잡힐까?"
"......방법이 있어?"
"혹시 몰라서...유우카 휴대폰에 위치 추적 장치를 심어놨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아뿔싸.
자연스럽게 술술 대답하던 하레가 일순간 입과 손 모두 멈춰세웠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했다.
방법이 있냐고 물어 본 것이 치히로였고, 그런 치히로에게 '유우카의 휴대폰을 해킹해서 위치 추적 기능을 심었다' 라는 것을 자진납세한 꼴이었으니.
"그......치히로 선배, 이건 그게......"
"......일단 해. 대신 나중에 얘기 좀 하자?"
"으으......내가 왜 그랬을까......"
멈춰있던 하레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인다만, 그 손가락의 주인은 닥쳐 올 미래에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코타마 선배. 도청기도 선배가 얘기했지? 신나서 얘기하다가 치히로 선배한테 들킨 거 아냐?"
그 모습에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모모이가 코타마를 나지막히 추궁한다.
저 꼴을 보아하니 우연히 걸렸을 리는 없고, 아마도 치히로가 던진 낚싯줄을 보기 좋게 시원스레 물었지 않았을까 싶었기에.
코타마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슬쩍 모모이의 눈길을 피한다.
"......알 만하네."
"아, 나왔어."
사이즈 나온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모모이를 뒤로 한 채, 하레가 모니터에 현시된 지도를 자세히 확인한다.
"......D.U.의 종합병원이야."
"종합병원? 이 아침부터?"
"유우카가 왜 D.U.의 종합병원에......"
치히로의 얼굴이 점차 굳어간다.
약속도 파토낸 뒤 연락이 끊긴 선생. 굳은 표정의 유우카. 이른 아침부터 D.U.시라토리 구의 종합병원을 찾은 유우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가 보는 게 좋겠어."
치히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느낌이 안 좋아.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방문을 결정지으며 휴대폰을 꺼내던 치히로는, 때마침 수신된 문자를 보고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치히로 뿐만이 아니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던 미도리도.
컴퓨터 앞에 휴대폰을 내려뒀던 하레도.
문자를 확인한 사람마다, 그 자리 그 행동 그대로 멈춰서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겠네."
"...이게 뭐야......?"
한 톤 낮아진 치히로의 목소리에 뒤이어, 치히로의 휴대폰을 힐끔 보던 마키가 저도 모르게 실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잠시 후 선생님과 관련된 담화가 있으니, 전 학생들은 필히 시청바랍니다......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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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닥칠 거대한 폭풍의 서막
정신없이 흘러갈 하루의 시작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로하와 저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유우카
극소수만 알고 있던 선생의 상황을 공개하기로 의결한 것까진 좋은데, 이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이제부턴 전적으로 린의 추진력과 모두의 판단에 좌우될 거라고 생각해
요새 배차가 글쓰기 힘들게 나와서 늦어진다
당장 오늘만 해도 갑자기 진주로 날아와서......그냥 그러려니 하고 천천히 즐겨줘
어쨌든 승객 태우고 다니는 일이라 틈틈히 잠을 안 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비 엄청 많이 오네
다들 별 문제 없이 무탈히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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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핵폭발까지 5... 4... 3...
폭풍전야
다음화빨리보고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