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에 누군가 급하게 휘갈겨쓴 낙서를 보는 하네카와 하스미의 미간에는 작은 주름이 졌다.
“어쩌다 이런 말도 안되는 소문이…”
소문의 시작은 트리니티의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정의실현부와 구호기사단이 모두 모인 그 자리, 나타나지 않은 단 한 사람이 있었다.
이치카
하스미는 그날 이치카의 부재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든 찾아서 데려 왔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런 일도…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크리스마스 성야에 블랙마켓에서 누군가와 있는 정의실현부 부원을 봤다는 목격담이었다. 그 작은 소문은 멈추지 않고 결국에는 홀로 파티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치카가 다른 남자들과 추잡한 크리스마스 난교를 벌였다는 루머로까지 이어져 빠르게 퍼져나가고 말았다.
기품을 강조하는 트리니티에서 이런 일탈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곧이어 평소 정의실현부의 강압적인 방식에 불만을 지니던 학생들이 이를 문제삼아 티파티에게까지 책임과 당사자인 이치카의 처벌(퇴학)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스미는 근거없는 중상모략이라 여겨 무대응으로 일괄했지만 정의실현부가 이런 학원적 소요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거나, 소문이 사실이기 때문에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기던 반-정의실현부 세력에게 하스미의 무시는 기름을 붓는 꼴이 되어 버렸다.
한편, 에덴조약 사건 이후로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티파티로서는 이를 그들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현재 유일하게 대외 활동이 가능한 학생회장, 키리후지 나기사는 이런 일을 용납할 인물이 아니었으며 용납하지도 않았다.
티파티의 해명을 요구하러 갔던 반-정의실현부 세력의 대표 7인이 나기사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과 문전박대를 당했단 소문이 퍼지며 그들은 티파티의 권위주의적 압제를 거부하는 저항 세력이라 자신들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나기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트리니티 내에서 티파티의 권력은 아직 건재하며 그에 도전하는 자에겐 비참한 최후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공고히 보이고자 했다.
츠루기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소위 ‘저항 세력’과 정의실현부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나 조만간 일어날 것임은 자명해 보였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론은 저들의 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정의실현부를 향한 흉흉한 분위기가 이를 증명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불쾌한 수근거림과 비아냥, 부실 앞에 버려진 쓰레기, 정의실현부는 당장 해산하라는 쪽지들, 며칠 전에는 야간 순찰을 도는 부원들에게 어디선가 돌맹이가 날라와 다칠 뻔 했다. 그리고 오늘은…
“하스미 선배, 괜찮으세요?”
하스미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대성당의 오래된 흰 돌벽에 피처럼 붉은 페인트로 쓰인 글씨가 정오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정의실현부에는 걸레가 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시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스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마시로. 그것보다 지금 이치카는 어디 있나요?”
“선배…그게…이치카 선배는 오늘도 몸이 좋지 않아서 결석한다고...”
“하아…알겠습니다. 이만 돌아가죠, 마시로.”
이치카는 7인의 대표가 나기사에게 쫓겨난 그 날 이후로 쭉 병결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치카를 만나야 한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실려 저 멀리 광장에서 저항 활동에 학생들의 참가를 독려하는 선동가들의 광기어린 연설이 들려왔다.
돌아가는 하스미의 어깨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댓글 9
빨리 다음편!!!!!!!

헬리니티답네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 안 온다고? 이치카 너 대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