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5자
약간의 피폐 요소 포함
감상에 주의
…그날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한 하루였습니다.
“야, 미유. 이쪽 텐트 다시 세워야 하니까 밧줄 좀 갖다 줘.”
“...응. 바로 갖다줄게.”
“모에! 땡땡이만 치지 말고 좀 도와!”
“에이~. 나는 카메라 작동 점검하느라 바빠. 사키 너라면 알아서 잘할 수 있잖아?”
“그러더니 아까 전부터 꼼짝도 안 하고 있잖아!”
“아니, 꼭 필요한 작업이라서.”
“너 말야… 미야코!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나 참… 소란스럽네요.”
사키가 부르는 소리에 비품 점검을 하던 손을 멈추고 텐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햇볕이 뜨겁게 느껴질 만큼 맑습니다.
코우사기 공원에서 캠핑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몇 달째. 이 생활에도 제법 익숙해졌는데 오히려 좀 너무 많이 익숙해졌을 정도입니다. 좀 더 부대로서 통솔이 되어야 할 텐데요…
“사키, 이 말뚝을 다시 박는 건가요?”
“응? 어. 요즘 들어서 좀 느슨해진 것 같길래.”
뺨에 한 줄기 땀이 흐릅니다. 안 될 일입니다. 이 정도 가지고 땀을 흘리다니.
“야, 너 괜찮아 미야코?”
“...뭐가요?”
“뭐냐니, 얼굴이 새빨간데?”
“...딱히 문제 없는데요?”
“아니, 그렇게 뜸 들이는 시점에서 이상하잖아? 이마 좀 내밀어 봐.”
“뭐, 뭐 하는 거예요. 괜찮아요, 그만하세요!”
“잠시 체온만 좀 재는 거야! 빨리 이마를…”
격렬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서둘러 주위를 둘러봅니다. 맑고 깨끗해야 할 공원이 불바다로 변해 있었습니다.
적의 습격…? 그런데 누가? 아니, 일단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사키! 모에! 미유! 무사해요!? 어서 응답을…”
절규.
눈앞에 천천히 펼쳐지는 저 붉은 것은 불일까요? 아니, 그게 아닙니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저 그을린 철모가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아아…”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절망감이 천천히 저를 덮쳐왔습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전신의 감각이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지직, 귀에 거슬리는 라디오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습니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오늘부로 키보토스는 끝입니다.’
“...읏!?”
조명 때문에 저는 눈을 떴습니다. 새하얀 벽과 서류가 놓인 선반. 이곳은 샬레 수면실일까요? 블라인드를 올리자 밤하늘에 우뚝 솟은 고층빌딩의 숲이 불빛을 받아 물결 치듯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옵니다.
“아, 일어났어? 미야코.”
“선생님…”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와 마시다 만 커피가 담긴 컵.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이 말을 건넵니다.
“아직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그런, 가요.”
“응. 열 좀 재 볼래?”
선생님에게 체온계를 건네받아 측정을 합니다. 삐빅 소리와 함께 측정이 끝났습니다.
37.8℃.
“아직 안 내렸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 무리하면 안 돼. 소파에 앉아.”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소파에 앉습니다. 소파의 서늘한 촉감이 조금 편안합니다.
“잠깐 있어봐, 약 가져올게.”
“선생님… 그, 다들 어디 있나요?”
“응…?”
선생님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바로 대답하셨습니다.
“다들 평소랑 똑같아. 미야코를 부탁한다면서 다시 돌아갔어.”
그 말을 듣고 조금 안도했습니다. 역시 악몽이었나 봅니다. 저도 피곤하다는 거겠죠… 잠시 후 선생님께서 약과 물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자, 푹 쉬고 얼른 건강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줘야지.”
“죄송해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사과하지 않아도 돼. 이런 것도 선생님의 업무 중에 하나니까.”
빙글 돌아 다시 업무로 돌아가려는 선생님. 저는 알약 몇 개와 물을 한번에 삼킵니다.
“그럼 조금만 더 쉬러 가겠습니다.”
“응, 잘 자. 미야코.”
저는 수면실로 돌아와 눈을 감았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악몽을 좀 꿨을 뿐입니다. 분명 이번에는…
그렇게 제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
“RABBIT 1, 듣고 있어? 어이.”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에 저는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거리는 어두웠고, 자욱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며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교차로에는 불타는 차량들 때문에 심각한 교통 정체가 일어났고, 고함소리와 울음소리로 사방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니~. 또 졸아?”
“...미야코 쨩.”
“핫.”
헬기 안에서 모에…RABBIT 3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정면에는 RABBIT 4, 미유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RABBIT 3. 잠시 정신이 딴 곳에 팔려서요.”
“에… 이제부터 중요한 작전인데 괜찮겠어?”
“문제 없습니다. 예정대로면 10분 만에 끝날 임무니까요.”
“...응. 예정대로 된다면 금방 끝날 거야.”
“그렇지. 지원은 최대한 해 줄 테니까. 후딱 끝내자? 둘 다?”
“무슨 소리예요 RABBIT 3, 세 명을 착각한 거죠?”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미야코, 너…”
“...미야코 쨩… 이제 사키 쨩은…”
“엣, 그야… 선생님은…”
“RABBIT 1, 그만하고 현실을 좀 직시해.”
모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알잖아? 이제 없다고, 사키는.”
“아, 아아…”
머릿속을 스친 것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철모. 그리고 땅바닥에 퍼져나가던 붉은색.
“우리가 이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그런 광경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될 거야.”
“미야코 쨩…”
그랬습니다. 저희가 이곳에 있는 이유. 착각하고 있던 사람은 저였습니다.
“죄송합니다, RABBIT 3.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이제 곧 목표 지점이죠. RABBIT 4, 하강할 준비는요?”
“...응. 이제 됐어.”
“좋~아, 그럼 작전 개시… 뭐야, 설마 아니지?”
“RABBIT 3?”
“위험해! 너희 둘 즉시 하강해! 대공 미사일이야!! 방금 전까지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20초도 안 남았어!”
““!!?””
곧바로 저와 미유는 헬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곧이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방금 전까지 있었던 헬기가 불빛에 휩싸였습니다.
“RABBIT 3!! 응답하세요! RABBIT 3!!!”
서둘러 낙하산을 펼치고 저희 둘은 하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연기 속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 …으엣! 웁! 쿨럭!!!”
“RABBIT 4!! 무슨 일이에요! RABBIT 4!?”
지지직거리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미안, 미야코, 미유… 이거 방법이 없네. 사키 좀… 만나고 올게.”
“모에! 어서 낙하산을 펴요!!”
“...무리야…”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거리의 비명소리. 토사물로 입가를 적신 미유는 말했습니다.
“RABBIT 4, 무슨 말이라도 좀…”
“...이미 떨어지고 있어.”
그 한 마디에 저는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유는 스나이퍼로서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하늘에서 떨어지던 선생님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만큼 눈썰미가 뛰어납니다. 그런 그녀가 본 것, 그것은 바로… 불타오르는…
“싫어…”
“...미야코 쨩?”
“싫어어어어어어!!!”
도저히 끝나지 않는 도시의 인간찬가 위로, 저의 절규가 하늘에 울려 퍼졌습니다.
~~~
“...미야코 쨩!!”
“여기…는.”
저는 또 다시 수면실에 있었습니다.
“미유…”
“...열이 너무 높아… 기다려, 수건 가져올게.”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땀을 흘렸습니다.
“...기다렸지. 미야코 쨩.”
미유는 축축해진 제 몸을 천천히, 정성스레 닦아 주었습니다.
“...이 정도면 되려나.”
“미유…”
“...꺄앗!?”
어두운 방 안에서 어느새 저는 미유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미야코 쨩?”
“가지… 말아요.”
“...으음.”
“부탁이에요…”
…한동안 미유는 당황한 기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 미야코 쨩.”
미유의 작은 손이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습니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잖아.”
손에 있던 알약을 입에 던져 넣고 물과 함께 단숨에 삼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미유는… 계속 같이 있어 줄 거죠?”
“...응. 여기 잘 있을게… 잘 자, 미야코 쨩.”
이번에야말로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세상이 서서히 어둠에 휩싸이고, 제 의식은 또 다시 가라앉아 갑니다. 의식이 가라앉는 그 순간 멀리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방금… 그게 사실이야?”
“네…”
“곧장 이쪽으로…”
~~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창밖에서 새들이 날아오릅니다. 거리 이곳저곳에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된 지 얼마나 오래 지났을까요?
키보토스가 정말 끝났다는 것. 단지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둘만, 남아버렸네.”
저격소총을 들고 미유는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샬레도 작전계통도 붕괴되었지만 저희는 원래 있던 샬레 건물을 거점으로 삼고 지금도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누구와?
폭도?
전차?
미사일?
아니,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둘이서 살아남는 것… 그것만이 동료들을 잃은 제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미유만은… 이 아이만큼은 죽게 만들어서는 안 돼.
“RABBIT 4, 또 적습이 옵니다.”
“...응.”
열기에 휩싸인 듯한 감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끼는 총을 들고 기둥 그늘에 숨어 총을 발사합니다. 괜찮아. 오늘만 넘기면 일단…
왜?
왜 저는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무슨 근거가 있어서?
천장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습니다.
“이런…!”
무너진 천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제 눈 앞으로 떨어집니다.
“...RABBIT 1! 괜찮아!?”
무전으로 들려오는 미유의 목소리.
“RABBIT 4, 저는 괜찮습니다. 어서 지점을 바꿔야…”
“꺄아아아아!!”
“미유!?”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미유의 비명소리. 저는 재빨리 방을 뛰쳐나와 미유가 있을 지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설마 그 은밀함이 특기인 미유의 위치가 역탐지당하다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발걸음이 무겁고, 장비가 납덩어리 같습니다. 사실은 버려두고서라도 미유를 도와주러 가야 하는데… 순간 시야가 흔들립니다.
“윽!”
제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몇 초 뒤였습니다. 발치에는 상비하고 있던 알약과 탄약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안 돼, 이런 곳에 쓰러져 있을 수는 없어. 나는… 지금 당장 미유를…! 힘껏 문을 열었습니다.
“아, 아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앞에 있던 적 병사에게 재빨리 발포. 머리를 관통한 뒤 돌아서서 옆에서 달려드는 병사의 두개골에 총탄을 박아넣습니다.
“잘도! 잘도 미유를!!”
몇 발이나 박아넣었는가. 이제는 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바닥에는 새빨갛게 물든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미유! 미유! 대답하세요!”
“...미안해… 미야코 쨩.”
사라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힘겹게 미유가 말을 내뱉습니다.
“말하지 마요! 바로 처치할 테니까!!”
응급 치료 키트, 치료 키트는 어딨지!? 왜 가지고 있지 않지… 혹시 아까 넘어졌을 때?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유의 눈에서는 빛이 점점 사라져 갑니다.
“싫어… 싫어… 미유! 제발! 죽지 마!”
“미.. 야코… 쨔…”
그 이상 그녀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방을 나왔습니다.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걷습니다. 숨은 계속 가쁘게 몰아쉬는 채로. 열기에 휩싸여서.
아아, 분명 샬레에서 자고 있었던 그쪽이… 그쪽이 꿈이었던 거겠죠.
~
숨을 몰아쉬며 저는 도시 밖으로 걸어왔습니다. 작은 언덕 위에 익숙한 정장을 입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미야코…?”
“선… 생님.”
가장 싫어했고, 가장 좋아했던 당신의 모습.
아아, 계셨군요.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미야코, 정신 차려.”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괜찮잖아.”
“모두… 모두 다 없어져 버렸어요.”
“그, 그게 무슨…”
“어째서… 어째서 옆에 안 계셨나요…?”
격한 감정이, 열기가, 이제는 더 이상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야코…?”
“선생님만 있었으면! 아무도! 아무도 죽지 않았을 텐데!!”
“크억!?”
“이런 눈을 의심해야만 하는 현실을! 보지 않아도 됐는데!”
“미야코, 그만…”
손을 거둘 수 없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이 이상 무언가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다. 손에 전해지는 감촉은 몹시도 생생하다.
그야… 나는… 선생님의… 목을…!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정신 차려, 이 멍청아!!!”
“스톱! 스토옵!!!”
“안 돼! 미야코 쨩!!!”
차가운 물의 감촉이 얼굴에 닿았습니다. 옆에는 저와 함께 흠뻑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미유의 머리카락이라는 사실을 잠시 뒤 깨달았습니다.
왼쪽에는 숨을 몰아쉬는 모에. 오른쪽에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빈 양동이를 들고 있는 사키. 저를 껴안은 채 억누르려 하는 미유.
그리고 그 너머에는 목에 제 손자국이 남은 선생님.
“깜짝 놀란 것이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작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쥐 귀가 달린 낯선 소녀가 뒤에서 나타났습니다. 익숙한 밝은 조명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키보토스의 야경. 저는 비로소 제가 샬레 집무실에서 선생님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
“원래는 선생이 일이 너무 많아서 잠을 잘 못 잔다길래, 꿈을 쉽게 꿀 수 있도록 준비한 약이었던 것이다.”
제가 진정이 되자 야쿠시 사야라는 이름의 소녀는 제가 감기약과 함께 복용한 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먹어버려서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거네…”
“먹는 사람이 선생이든 학생이든… 다른 약과 같이 먹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발열이 있을 때, 맞지?”
담담하게 추측한 바를 말하는 사키.
“맞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먹어버리게 되면… 약효가 역전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야코 쨩이 그렇게…”
“아마 잠들기 전에 열이 내리지 않으니까 여러 번 먹었을 것이다. 약효가 강한 약이다 보니 그만큼 꿈도…”
“으음, 근데 좀 궁금하네. 미야코가 그렇게 될 만한 꿈이라니 대체 뭔 내용이야?”
“짐작일 뿐이지만, 아마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전부 다 잃는 수준으로 경험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굉장히 안 좋은… 내용이었다는 말이네.”
“...그래서 미야코 쨩이 선생님을…?”
연이어 동료를 잃은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런 꿈을 반복해서 꾸다 보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질 만도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초췌해진 나머지 저는 선생님을… 방금 전 광경이 떠올랐는지 미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정말 미안한 것이다.”
야쿠시 사야 씨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사야 씨.”
“하지만…”
“원래 약의 용법과 용량을 착각한 사람은 저예요.”
“잠깐만, 미야코. 그렇다면 책임은 나한테 있어.”
선생님은 저와 사야 씨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가 약의 용법을 제대로 읽어봤더라면 미야코가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니 이건 내 책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는 선생님께…”
“미야코, 아이들을… 소중한 학생을 상처 입혔다는 결과로 이어진 이상 그건 어른인 내 책임이야. 지금이라도 당장 선생 직책을…”
“무,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는 자리를 쾅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분명 그 약은 선생님을 위해 준비된 약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약을 먹고 싶다고 희망한 것은 어디까지나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까지 지겠다는 말을 들으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마지막으로 본 장면. 선생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감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선생님이 직책을 내려놓는다고요? 그런 짓을 하시면 이번에는 제가 선생님을 죽여서라도 막을 거라구요!?”
“아니~.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 아냐?”
딴지를 거는 모에. 그럼에도 제 말은 멈출 줄을 모릅니다.
“제가 얼마나 끔찍한 꿈을 꿨는데요…! 모두… 모두 다 없어져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키, 모에, 미유, 소중한 동네 사람들. 그리고… 선생님.
제 마음이 산산조각 나기에는 아무리 꿈이라지만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이미 열이 나고 있었지만 다시금 뜨거워졌습니다.
아… 분명히 지금 제 모습은 몹시도 볼품없고, 너무나도 어린애 같겠죠. 몸에 힘이 빠진 나머지 저는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부탁이니까… 다들 없어지지 말아요…! 사키랑 매일 다투기만 해도 좋으니까요…! 모에는 맨날 이상한 표정 지어도 상관없어요…! 훌쩍… 미유는, 계속 벌벌 떨고만 있어도 괜찮으니까…! 없어지지 마요! 우와아아앙!”
정말 부끄러워서 어쩔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하아… 우리 소대장이 이렇게 어린애였을 줄이야… 뭔가 좀 울컥하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눈가에 눈물 맺혔는데?”
“아니, 뭐래 바보야… 이건 아까 전에 양동이에 담은 물이라고…! 그러는 모에 너야말로 울고 있잖아!”
“아닌데요~. 꽃가루 알레르기인데요~.”
“이 방에 공기청정기 돌아가는데 증상이 그렇게 나올 리가 없잖아!”
“...괜찮아, 옳지 미야코 쨩… 무서웠지… 이제 괜찮으니까… 응?”
꼬옥… 안아주는 이 감각.
“하여간에 손이 많이 가는 소대장이라니까.”
“미야코랑 미유, 이렇게 보니까 어느 쪽이 언니인지 모르겠네~.”
“...지금만큼은 언니여도, 괜찮은데?”
한동안 우리 네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
“그래서, 보기 좋게 이렇게 됐나.”
샬레 수면실에는 사키, 모에, 미유 세 사람이 사이좋게 자고 있습니다.
…저만 빼고 모두 열이 나는 상태로.
“나 참, 다들 평소에 컨디션 관리가 허술한 거 아닌가요?”
“네가 할 말이냐고!”
“누가 할 소린데!?”
“...미야코 쨩, 너무해.”
저는 선생님 쪽을 돌아보며 부탁했습니다.
“죄송해요. 저 세 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야코도 컨디션이 돌아왔다지만 무리하면 안 돼?”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선생님.
“...흔적이 남았네요.”
“괜찮아. 좀 지나면 사라질 거니까.”
선생님의 목에는 제 손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라 하셨지만 역시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복도로 나오자 키보토스의 도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날 꿈에서 보았던 그 참혹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분명 제 악몽에 불과했을 겁니다.
불타 사라지는 도시의 잔해들도,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는 저도.
잃기 두려웠던 제 공포가 만들어 낸 악몽.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꿈.
장착한 헤드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미안해.’
저는 살짝 웃으며 중얼거리듯 대답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키보토스의 평화는, RABBIT 1이 지키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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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개맛있노
목 안부러진게 정말 다행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