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L #첩보
원본 by トマ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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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9>
<1>
“─뭐라고? 미안 유우카, 못 들었어.”
인생에서 일어나는 골칫거리의 대부분은 악의나 간계가 아니라 오해와 태만에서 비롯된다.
“정말이지…….”
등 뒤에서 당번인 유우카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출근 시 호위 로테이션에 대해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요.
특정 학생에게 당번이 집중되는 현 상황은 불공평한 게 아니냐면서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때의 실수는 답변에 앞서 숙고를 게을리한 태만이었다.
비록 업무에 파묻혀 있었다고 해도, 선생이라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지금 이대로도 딱히 불편하진 않은데…….
음, 뭔가 실수하면 교체하는 걸로 하는 건 어때?
깜빡하고 지각했다거나, 나를 호위하는 데 실패했다거나 하는 경우에.”
“애초에 실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그보다 선생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 뭐가?”
유우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그제야 뒤를 돌아본 나에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게시판? 어디 보자─”
선생님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스레 Part 1452
221. 이름 없는 학생 (밀레니엄)
선생님 만나고 싶으면 총력전밖에 없다니까.
출근길 호위도 로테이션 고정된 지 꽤 됐고…….
223. kotama0105 (밀레니엄)
속보: 출근 시 호위에 실패하면 멤버 교체하겠다는 말씀 하심.
226. 이름 없는 학생 (게헨나)
>223 ㄹㅇ????????
227. 이름 없는 학생 (트리니티)
>223 신-강-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28. 이름 없는 학생 (밀레니엄)
>223 즉 실패하게 만들면 된다는 거네 (명안)
229. 이름 없는 학생 (아비도스)
출근 루트 파악 완료
231. 이름 없는 학생 (게헨나)
축제다아아아아아아!!!
스마트폰 화면을 본다.
이해가 안 돼서 유우카의 얼굴을 본다.
음, 음, 오늘도 귀엽네.
다시 한번 스마트폰 화면을 본다.
그러니까 이게.
“이게 뭐야.”
“보시는 그대로예요. 난리가 나겠네요, 이건.”
유우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일주일에 세 번은 듣는 소리라 잘 안다.
“아니 기다려봐 유우카 양, 애초에 이 스레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왜 내가 한 말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건데?
아니, 올린 애가 누군지 짐작은 가지만!
이런 게시판이 있으면 진작 알려줬어야지!?”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칠 문제가 아니잖아!?”
유우카는 스마트폰 화면을 슥 닫더니─댓글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검지를 딱 세우고 설명하는 자세에 들어갔다.
나도 서둘러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 상태의 유우카의 말을 가로막으면 아주 크게 혼나기 때문이다.
“아시겠어요?”
“넵.”
“내뱉은 말은 어쩔 수 없죠. 시급히 대응책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응책? 아까 그 스레에 글을 써서 부정한다거나?”
유우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간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겠죠.
그게 아니라, 내일 출근 시 선생님의 호위를 긴급히 증강해야 합니다.”
“…습격당할 거라 생각해?”
“틀림없이요.”
“우와아…….”
키보토스의 학생들은 착한 아이들이지만, 폭력 행위에 대한 허들이 다소, 아니 현저히 낮다.
무슨 일이 있으면 총부터 꺼내 드는 것이다.
총알 한 방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몸으로서는 하루하루가 전전긍긍이다.
“내일은 연차를─”
“안 됩니다.”
단호하다. 유우카는 단호하다.
애초에 샬레에 연차 제도 따위는 없지만 말이다.
린에게 연차 쓰고 싶다고 부탁했을 때도 코웃음만 샀었고.
“아무튼, 저는 추가 호위 인력을 수배할게요.
선생님은 평소처럼 일을 끝내두세요.
가능하다면 내일 분량까지 미리 손대 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렇게 유우카는 집무실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긴 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와, 불길해라.
<2>
키보토스에서 깨어난 이후, 생텀 타워 근처에 있는 타워 맨션에 살고 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안녕, 유우카.”
유우카와 아침 인사를 나눈다.
시간은 아침 7시, 장소는 타워 맨션의 지하 주차장이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유우카의 옷차림에는 흐트러짐이 전혀 없다.
“그래서 뒤에 있는 게 오늘 지원군이야?”
유우카의 등 뒤에는 검은색 차량 9대와 다수의 무장 로봇이 늘어서 있었다.
아주 삼엄한 분위기다.
“네, 뭐, 그중 일부예요.
세미나가 보유한 경비 로봇을 빌려왔습니다.
엔지니어부 제품이라 성능은 보장되어 있어요.”
유우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어제오늘 사이에 이 정도 규모의 무장 군세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꽤 무서운 일이다.
잊기 쉽지만, 이 아이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
“─뭔가 실례되는 생각 하지 않으셨나요?”
“안 했는데요?”
“음…뭐, 됐어요. 설명 계속할게요.
저쪽 차량 행렬은 요인 수송용으로 개발된 것으로, 호위 인원이 탑승할 분량과 미끼를 포함해 9대를 준비했습니다.
3대씩 3개 루트로 나뉘어 샬레로 향할 거예요.”
유우카는 검은 차량 행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언뜻 보기에는 세단 타입의 고급차처럼 보이지만, 주요 부위에 장갑이 덧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차량들도 엔지니어부 제품이죠.”
“호오.”
진짜 뭐든지 다 만드는구나, 엔지니어부.
“타입 VI 방탄 성능을 갖추고 있어서 전차포가 직격해도 견디는 게 가능합니다…차량은요.”
“안은? 저기, 안은 어떻게 되는데?”
충격 때문에 기분 좋게 쉐이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선생님은 그게 걱정이야.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유우카는 생긋 웃었다. 괜찮단다. 다행이다아.
“뭐, 대단하다는 건 알겠어.
근데 유우카, 이 정도 규모로 이동하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미끼 차량이 있다고는 해도, 대놓고 노려 달라고 광고하는 꼴인 것 같은데.”
“그렇네요.”
“아니, 그렇네요가 아니라…….”
내가 이 맨션에 살고 있다는 것도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일 테고, 맨션 출입구는 당연히 감시당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차량 행렬이 줄줄이 나오면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중요 인물이 안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우리 전력을 보고 포기해 준다면 좋겠지만, 귀여운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용감한 아이들뿐이라 선생님은 기뻐.
하지만 가끔은 물러서는 법도 배우자꾸나.
하지만 나의 불안과는 대조적으로 유우카는 자신만만한 모양이었다.
“문제없습니다. 전부 계산 범위 내예요, 선생님. 우후후후후…….”
아, 또 나쁜 표정 짓는다.
그 표정, 실패 플래그니까 하지 말라고─
<3a>
키보토스 어딘가의 지극히 평범한 잡상인 빌딩에 악명 높은 흥신소 68의 사무실이 있다.
햇살이 잘 드는 한쪽 구석에 리쿠하치마 아루의 집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네.”
아루가 느닷없이 던진 한마디에 같은 흥신소 멤버인 무츠키가 관심을 보였다.
“뭔데~?”
“이거야.”
아루가 손에 든 단말기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가 된 선생님 스레가 띄워져 있었다.
“어디 보자……. 흐음, 그렇구나아.”
단말기 화면을 바라보던 무츠키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아루 짱, 드디어 선생님을 담가버리는 거야?”
“하앗!?”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하루카가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저, 저기, 아루 님. 선생님은 소중하지만, 아루 님의 명령이라면 저, 저는.”
“안 담가!?”
“아, 그, 그런 건가요. 다행이다…….”
이어 마지막 멤버인 카요코가 들어왔다.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는, 앞으로 겪게 될 고생을 예상하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사장?”
아루는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한 몸을 추스른 뒤, 흥신소 식구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며 말했다.
신조차 두렵지 않다는 듯 비장의 멋진 표정을 지으며.
“샬레의 호위도, 거기에 달려드는 잡것들도, 양쪽 다 걷어차고 선생님을 가로챌 수 있는 건 진정한 아웃로인 우리 말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흥신소 68의 멤버들은 사장의 말에 그저 미소로 화답했다.
─말보다는 행동을. 그것이 아웃로의 방식이다.
<3b>
게헨나 선도부가 자랑하는 최강 전력, 소라사키 히나는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그 때문에 선도부원들이 모인 집무실은 몹시 무거운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
“저기…부장님?”
치나츠가 조심스럽게 히나에게 물었다.
“…왜?”
“신경 쓰이신다면 직접 확인하러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확인? 뭘?”
“선생님 말이에요. 어제부터 화제가 돼서─”
“필요 없어.”
히나의 얼어붙을 듯한 시선에 치나츠는 실내 온도가 한 단계 더 내려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선도부는 기능 부전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치료 담당인 자신의 사명이다.
치나츠는 의무감으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하지만─”
“끈질겨. 샬레의 문제는 샬레에서 해결해야 해.
요청이 없는 한 선도부가 개입할 명분은 없어.
애초에 아직 화제만 됐을 뿐 실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지금 있는 업무에 매진해야 해.
게헨나 학생이 연루된다면 모를까─”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행정관 아코가 끼어들었다.
히나의 말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게헨나에 그리 많지 않다.
치나츠는 구세주를 보는 눈빛으로 아코를 바라보았다.
“흥신소가 움직인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흥신소가?”
“아마 습격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그렇구나…….”
히나는 잠시 손바닥을 내려다보더니,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렇다면 우리 관할이네.”
의욕 넘치는 히나의 말을 듣고 치나츠는 실내의 중압감이 마침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의무감과 솔직함의 공존에 대해 생각에 잠겼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철학자란 때로 침묵을 귀하게 여기는 법이니까.
<3c>
선생이 거주하는 타워 맨션에서 떨어진 빌딩 숲 사이로 어떤 통신이 오가고 있었다.
고도로 암호화된 무선 통신을 해독할 수 있었다면, 소녀들의 시끌벅적한 대화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는 피치 6, 응답하라.』
『여기는 메이지 2. 잘 들립니다, 모모이.』
『앗! 아리스! 기껏 콜사인 정했는데!』
『언니…이거 이름 가리는 의미가 있어……?』
『이 회선은 코타마 선배라도 도청할 수 없을 테니까, 그냥 평소대로 불러도 괜찮아.』
『거봐, 하레 선배도 그렇게 말하─』
『에이, 그래도 이쪽이 더 멋있잖아!』
『모모이! 차가 나왔습니다! 많이 있습니다!』
『진짜!? 좋았어, 그럼 다들 작전대로 가는 거야! 하나 둘!』
『상황 개시!』
『에너미, 콘택트!』
『…어, 뭐? 뭐 정했었나?』
『너희들, 손발이 안 맞네…….』
─밀레니엄의 두뇌 하레와 굴지의 트러블 메이커인 게임개발부 콤비가 암호의 베일에 싸인 채 남몰래 움직이기 시작한다.
군웅할거, 각자의 속셈이 뒤섞이는 키보토스에서 장대한 싸움의 서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4>
아침의 키보토스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샬레에서 발효된 피난 권고로 인근 주민들은 모두 대피한 상태다.
키보토스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는 모모이! 하레, 상황은 어때?”
게임개발부 시나리오 담당, 사이바 모모이는 무전기를 향해 그렇게 외쳤다.
수신기에 연결된 고양이 귀 모양 헤드폰에서 하레의 졸린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역시 콜사인은 관뒀구나…….』
“그야 머리 아프니까…아니, 그건 됐고!”
『선생님 맨션에서 나온 9대의 차는 3방향으로 나뉘어 이동 중이야.
틴팅이 짙어서 누가 탔는지는 확인이 안 돼.』
선생님을 가로챈다─
모모이 일행이 꾸민 이번 작전에서 하레에게는 오퍼레이터로서 협력을 의뢰했다.
멤버는 모모이, 미도리, 아리스, 하레 네 명.
유즈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단호히 거절하고 동아리실을 지키기로 했다.
“그럼 선생님이 어디 탔는지 모른다는 거야? 망했잖아!?”
『어, 언니…무전기에 대고 소리 지르지 마…….』
『랜덤 인카운터네요. 전부 쓰러뜨리는 건 어떨까요?』
아리스의 살벌한 제안이 들려왔다.
쓰러뜨리면 안 되지, 라고 모모이는 마음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해.
…아, 첫 번째 그룹이 교전을 시작한 모양이야. 벌써 습격당했네.』
“에에에에에!? 우리 늦은 거야!?”
『언니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하지만 이대로라면 다른 사람한테 뺏길 것 같아……. 하레 선배, 어떻게 하죠?』
『자자. 조금만 더 대기해 줘.』
선수를 뺏겼는데도 하레는 느긋했다.
해킹한 가로등 카메라의 영상을 한가롭게 실황 중계하고 있다.
『습격범 인원수가 꽤 되는데…아, 한꺼번에 날아갔다.
저건 세미나가 애지중지하는 골리앗인가?
습격 포인트를 예측해서 미리 복병으로 숨겨뒀나 보네. 유우카, 제법인데.』
총성과 폭발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키보토스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냉혹한 산술사…아니, 적을 칭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어떻게 할 건데!?”
『미안 미안, 슬슬 정답을 알려줄게.』
『정답, 인가요?』
하레의 조금 으스대는 듯한 설명이 들려온다.
『자, 사실 어젯밤에 세미나 시스템을 해킹했거든.
유우카가 제출한 장비 대여 신청서를 훔쳐봤지.
그 신청서에 따르면 유우카가 준비한 차량은 전부 10대야.』
모모이는 조금 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맨션에서 나온 차량 행렬은 분명 9대였지? 그렇다는 건…….”
『그래. 선생님은 어느 차에 타고 있는가.
답은 ‘어느 차도 아니다’야.
먼저 출발한 9대는 전부 미끼야.
진짜는 마지막에 남은 한 대지.』
“하레 대단해!”
『후후후. 뭐, 별거 아니야.』
하레의 추측에 무전기가 들썩였다.
『미끼에 대한 습격이 꽤 요란해졌으니까. 아마 슬슬─』
『─나왔습니다! 주차장에서 마지막 한 대!』
아리스가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택배용 작은 노란색 트럭입니다!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빙고. 위장되어 있지만 틀림없이 그거야.
타이어가 가라앉은 정도를 보니 일반 경트럭으로는 불가능한 무게라는 걸 알 수 있어.
장갑판이 달려 있네.』
“선생님이 탄 차……!”
이것으로 그 유우카의 허를 찔렀다고 생각하며 모모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디 보자, 분명 이렇게 하면 엔진이…….”
밀레니엄 자율주행 트레일러.
적재량 10톤의 대형 트레일러 운전석에 모모이가 쏙 들어가 있었다.
지금쯤 미도리도 같은 모델의 트레일러에 타고 있을 것이다.
“여기를 이렇게 해서 수동 조작으로 전환하고.”
키보토스에서 차량 운전에는 면허가 필요하지만, 자율주행 차량에 관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게임으로 이미지 트레이닝했으니까! 낙승이지~”
모모이가 악셀을 밟자 거대한 머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레~? 타이밍은?”
『모모이는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며 직진해. 앞으로 10초. 안전벨트 맸지?』
“완벽해! 재밌어지는데!”
트레일러가 나아간다.
향하는 곳은 하레가 정한 습격 지점, 킬 존이다.
“셋, 둘, 하나─”
교차로에 진입함과 동시에 모모이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콰아앙!!”
트레일러 옆구리에 충격.
목표인 노란 트럭이 교차로를 가로막은 모모이의 트레일러를 들이받은 것이다.
“미도리!”
『이쪽도 막았어!』
골목 반대편을 미도리의 트레일러가 차단했다. 이것으로 노란 트럭은 도망갈 곳을 잃었다.
“아리스! 해치워!”
새장 속에 갇힌 꼴이 된 골목, 그 옆 건물에서 거대한 레일건을 짊어진 아리스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악을 쳐부수는 정의의 일격…사라져라! 밸런스 붕괴!!』
─풀 차지 일격이 트럭의 차체를 관통했다.
“아니, 선생님을 날려버리면 안 되지─!?”
『그보다 이거 완전히 우리가 악당 같은데…….』
『크리티컬 히트, 입니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열을 식히는 레일건을 짊어진 채 아리스가 엣헴 하고 가슴을 펴 보였다.
하레의 감탄한 듯하면서도 반쯤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음, 엔진 블록을 깔끔하게 관통했네…….
카탈로그상으로는 최고 등급 방탄이었을 텐데. 』
모모이는 트레일러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지면에 옆으로 쓰러진 트럭으로 다가갔다.
미도리와 아리스도 합류했다.
“트럭이 꿈쩍도 안 하네.”
“맞는 순간 붕 떠서 세 바퀴 돌았으니까…….”
“대답이 없다. 그냥 시체─”
“아리스, 불길한 소리 하지 마!?”
세 사람은 뒷부분으로 돌아가 뒷문을 잡았다.
“선생님~? 살아있어~?”
“아, 여는 거 무서운데…….”
“됐으니까 연다~ 하나 둘!”
열린 문 안에는─
“!?”
─함박웃음을 짓는 유우카가 있었다.
“튀─”
“어딜 가니?”
순식간에 발길을 돌려 달아나려던 쌍둥이의 뒷덜미를 유우카가 낚아챘다.
“이, 이거 놔─!”
“아와와와와.”
“너희들, 참 잘도 해줬구나……. 어떻게 이런 무모한 짓을…머리 부딪혔잖아…….”
트럭에는 유우카와 로봇들밖에 타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모이 일행은 보기 좋게 함정에 빠진 것이다.
회전하는 트럭 안에서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유우카였지만, 발버둥 치는 쌍둥이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아리스가 무전기에 매달렸다.
“하레! 메이데이! 메이데이!
트럭을 열었더니 유우카가 드롭됐습니다!
선생님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지만 무전기에서 돌아온 것은 소란과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의기소침해진 하레의 목소리였다.
『아리스…얘들아…미안해.
유우카 쪽이 한 수 위였던 모양이야…….
이쪽 위치도 들킨 것 같아.
지금 세미나 보안 부대가 문 앞까지 왔어. 잠그긴 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하레! 하레!?”
『미안…정말 미안해…….
나는 마지막 에너지 드링크를 즐기려고 해.
부디 너희에게 행운이 있기를. …안녕. 통신 종료─』
“하레─!?”
믿었던 무전기는 침묵했다.
공포에 떠는 아리스를 향해 양손에 쌍둥이를 대롱대롱 매단 유우카가 한 걸음씩 다가갔다.
“아리스 짱, 걱정하지 마?
너도 이 아이들도 전부 한꺼번에 반성실에 처넣어 줄 테니까, 외롭지는 않을 거야.
후후, 후후후후…듬뿍 벌을 줄 테니까 각오하─”
<5>
“우와아…….”
별동대로서 지상에 남은 유우카의 영상을 나는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했다.
조용히 닫기.
“지상은 난리가 난 모양이네요, 주인님.”
“그러게 말이야.”
어깨를 으쓱하는 나에게 아카네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차에 안 타길 정말 잘했어, 진짜로.”
유우카에게 지상을 달리는 차량 행렬이 전부 미끼라는 말을 들은 후, 진짜 호위 팀과 합류해 맨션과 직결된 지하철에 올라타 있었다.
참고로 임시 편성으로 전세 낸 열차다. 호화롭네.
덧붙여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의 이동 수단은 뭐였냐면.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짧은 시간이었다고는 하나, 주인님을 악기 케이스에 넣어서 운반하다니.”
“아니야.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 그런 거.”
“그러신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아카네는 본래 호위 팀의 일원이다.
부드러운 태도의 착한 아이지만, 천장을 뚫고 등장했던 첫인상이 너무 강렬하다.
어떤 의미로는 유우카 이상으로 화나게 하고 싶지 않은 상대다.
“……? 앞으로 10분 정도면 도착하니, 느긋하게 쉬어주세요.”
“고마워, 아카네.”
열차는 샬레에서 가장 가까운 역을 향해 순조롭게 달리고 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소란과는 무관하다.
영상을 통해 보는 전쟁 따위, 결국 게임 같은 법이다.
이렇게 되면 평소 출근길과 다를 게 없다.
따분해진 나는 임시로 호위에 참가한 또 다른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순조롭네, 카요코…….”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에게는 용서해야만 하는 거짓말이 있다. 바로 아이의 거짓말이다.』
아이란 모름지기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존재이며, 어른이란 그것을 용서하는 존재다.
설령 그것이 순도 100%의 악의로 내뱉은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내면의 실패 또한 마땅히 용서받아야 한다.
“선생님, 좀 흔들리니까 앉는 게 좋아.”
“응? 알았어, 카요코.”
“그리고 손잡이 꼭 잡고.”
“네, 네……. 왠지 엄마 같네.”
카요코는 다가가기 힘든 외모와는 달리 아주 착한 아이다.
“…그런데 카요코, 왜 그렇게 계속 시계를 봐?”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거든, 선생님.”
“왜 나보고 앉으라고 한 거야?”
“열차가 갑자기 멈추면 위험하니까.”
아카네는 어디론가 연락을 주고받는 중인지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왜 비상 정지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어?”
“…도중에 내리고 싶어서.”
누르지 마라? 절대 누르면 안 된다?
“…미안해, 선생님.”
카요코는 미안하다는 듯 미소 짓더니 버튼을 꾹 눌렀다.
굉음 같은 경보음과 함께 급브레이크가 걸리며─
열차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배신이라니 한 건 하셨군요, 카요코 씨.”
“미안하게 됐네. 이것도 일이라서.”
아카네는 예상치 못한 정지에 중심을 잃은 모양인지, 그 틈을 타 카요코가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선생님도 미안.”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카요코.”
선생님도 나이가 있으니 깜짝 파티는 적당히 좀 해줬으면 좋겠다.
“슬슬 데리러 올 때가 됐는데.”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멈춰 선 열차 문이 억지로 비틀어 열리고 세 명의 학생이 들어왔다.
“안녕, 선생님! 흥신소 68이야!! 선생님을 납치하러 왔어!!!”
긴 코트를 휘날리며 우는 아이도 그친다는 흥신소 68의 사장이 당당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루. 무츠키랑 하루카도 왔구나.”
“안녕안녕~”
“아, 안녕하세요…죄송합니다아……!”
트로이의 목마인가. 내통자가 있다면 더미도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
“…자, 선생님. 여기서부터 샬레까지 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에스코트를 받아주시겠어?”
“오케이. 뭐, 이 상황이니 기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네.”
아루의 손을 잡고 지하철 선로로 내려간다.
선로 위를 걷는 거, 이것도 나름 로망이지.
스탠 바이 미 같다.
“어라, 카요코는 안 와?”
뒤를 돌아보니 차 안에는 카요코가 아카네에게 총을 겨눈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카네 씨를 자유롭게 놔둘 순 없으니까. 난 조금 더 여기 남을게.”
무섭긴 하지, 저 메이드.
“나중에 봐, 선생님. 사장님, 선생님을 부탁해.”
“…그래. 퇴근 시간 되면 바로 돌아오렴. 흥신소는 서비스 잔업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웃로로서 좀 그렇지 않아? 아루?”
“블랙 기업이랑 아웃로는 다른 거야…….”
만약을 위해 한마디 남기려고 아카네 쪽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듯하면서도 조금은 살벌한, 그런 표정이 돌아왔다.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응, 다녀올게, 아카네. 그리고 하나 더─”
“네, 말씀하세요.”
“너무 무리하게 대하진 말아 줘.”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님.”
아카네의 미소를 뒤로 하고 지하철에 등을 돌렸다.
조명이 환한 차 안과는 달리, 터널 안은 거의 암흑에 잠겨 있다.
망설임 없이 심연으로 나아가는 아루 일행을 따라 나도 발을 내디뎠다.
설령 죽음의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학생들과 함께니까.
선생님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스레 Part1629
589. 이름 없는 학생 (트리니티)
선생님 어디야??????
590. 이름 없는 학생 (아비도스)
>589 행방불명. 차량은 전부 가짜였다나 봐~
591. 이름 없는 학생 (밀레니엄)
습격한 애들 눈물 쏙 빠졌겠네.
냉혹한 산술사 진짜 냉혹하다 (웃음)
592. 이름 없는 학생 (밀레니엄)
그러니까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했잖아…….
594. kotama0105 (밀레니엄)
도청기 전부 제거당했어……. 다시 잔뜩 붙일 거야.
598. 이름 없는 학생 (백귀야행)
선생님이 아직 샬레에 안 오시는데,
여기 다들 뭐 아는 거 있어?
599. 이름 없는 학생 (밀레니엄)
>598 어? 실화냐?
600. 이름 없는 학생 (레드윈터)
>598 옆에서 채간 녀석이라도 있나?
601. 이름 없는 학생 (게헨나)
우리 선도부장이 대부대 끌고 출동했는데…….
602. 이름 없는 학생 (트리니티)
트리니티 부대도 나갔어요.
자경단에는 작전 상세 내용이 안 내려왔지만,
게헨나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6>
크게 자란 나무는 땅속에 그만큼의 뿌리를 내리는 법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본질은 얼굴이나 복장 같은 겉모습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신조, 긍지, 그리고 애정.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후후후. 모든 게 순조롭네.”
“여,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아루가 순조로울 때는 보통 나중에 큰 게 오던데~”
“그러지 마……. 그보다 직함 제대로 불러줘, 무츠키 실장.”
흥신소 68.
키보토스 최고의 아웃로를 자처하는 그녀들 또한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매력을 품고 있다.
“사이 좋네, 너희들.”
“그치~?”
무츠키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늘고 긴 눈매가 소악마 같은 느낌을 주는 미소녀다.
안구 정화, 안구 정화.
“항상 일할 때도 이런 느낌이야?”
“음~ 꼭 그렇지는 않으려나~? 평소에는 좀 더 각 잡혀 있다고?”
“그래? 오늘은 여유로운가 보네?”
“그렇다기보다 말이지~ 크후훗.”
무츠키는 의미심장하게 웃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 팔에 매달려 왔다.
“무, 무츠키 양…?”
“봐봐, 오늘은 선생님이랑 같이 있잖아~ 우리 모두 조금은 들떠 있다고? 후훗.”
오오오? 귀, 귀여워어.
그런 기쁜 말을 들으면 선생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버리는데 말이지.
“너희들!? 똑바로 안 걸으면 넘어진다!?”
“쳇, 알았어, 아루.”
팔에 느껴지던 무게감이 슥 멀어진다.
윽, 아쉬워라…….
아니 아니, 나는 선생이다, 선생이다……. 후우.
“…그런데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것 같은데, 지하도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뭐, 예전 의뢰 때문에 지겹도록 드나들었거든.”
방금 나무와 뿌리의 비유는 도시에도 해당된다.
성장한 도시 또한 땅속에 뿌리를, 즉 지하 구조를 갖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지하철, 상하수도, 전력이나 통신 케이블 같은 인프라와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한 통로들이다.
키보토스의 지하 또한 그런 구조체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도 그런 지하 통로의 일부였다.
“흥신소는 하수구 청소 같은 것도 하는구나……. 고생이 많네…….”
“아니거든!? 사람 찾기야, 사람 찾기!”
지하에서?
“여기는 게헨나와 트리니티 사이에 낀 곳이야.
겉으로는 평화롭게 지내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엄청나게 싸우잖아?
그래서 봐봐, 드러낼 수 없는 일을 하는 녀석들이 여기를 통과하거나 도망쳐 들어오거든.”
“그런 사람들을 안내해 주거나, 도와주거나, 잡아내거나 하지~ 꽤 짭짤한 돈벌이가 됐어~”
“그렇구나.”
현상금 사냥꾼 같은 건가.
흥신소도 평소에 뭘 하는지 수수께끼였는데, 들어보니 꽤 즐거워 보인다.
“그래서?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그건 말이지~”
무츠키가 손짓으로 부르기에 살짝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다.
“이대로 말이야~ 선생님을 지하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서~”
어?
“키보토스의 밑바닥,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도와주러 올 수 없는 방에 선생님을 가둬버리고~”
어어?
“우리 넷이서 번갈아 가며 돌봐주면서~ 매일매일 하루 종일, 질릴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선생님이랑 놀아버릴까~ 해서.”
어어어어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아야!”
뒤를 돌아본 아루가 무츠키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귓속말이 종료되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야.
출구를 나가서 조금만 걸으면 샬레 건물이 나와. 거기까지 가면 풀어줄게, 선생님.”
“그, 그래…….”
“우후후…….
선생님이 행방불명이라 지금쯤 난리가 났겠지.
샬레의 호위 녀석들도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을 거야.
그때 우리가 선생님을 데리고 당당하게 나타나는 거지.
분해하는 다른 습격범들, 처벌이 두려워 떠는 호위들, 그런 오합지졸들 앞에서 우리 흥신소 68이 드높게 승전보를 울리는 거야……!
완벽해! 완벽한 계획이야……!”
“아, 아루 님. 정말 멋지십니다……!”
하루카가 짝짝짝 박수를 치기에 나도 따라 했다. 짝짝짝.
“…일단 선생님은 인질인데, 참 여유롭네…….”
아루가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총알만 날아오지 않는다면야 뭐……. 익숙해져 버린 게 슬프네.
<6>
한참을 나아간 뒤, 갑자기 선두에 서 있던 하루카가 멈춰 섰다.
“아루 님…….”
“…뭐,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어둑어둑한 터널 저편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소리는 한 명분, 짧은 보폭으로 보아 작은 체구, 하지만 아마도 중장비…입니다.”
“하아…….”
아루는 한숨을 내쉬며 뱉어내듯 말했다.
“…히나.”
게헨나 학원 귀신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
문제아 천지인 게헨나를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다스리는 여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자그마한 체구와 폭신폭신한 은발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 취급하며 쓰다듬으려 드니 엄청난 표정을 지었던 게 기억난다.
즉, 아웃로인 흥신소에게는 천적이다.
“어떡할 거야, 아루?”
무츠키의 질문에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아루가 말했다.
“하루카. 샛길을 이용해서 선생님을 출구까지 안내해.”
“…네.”
“무츠키. 미안하지만 나랑 같이 가줘야겠어. 정면으로 뚫는다.”
“오케이~ 아루. 맡겨만 줘.”
아루와 무츠키가 각자의 총을 겨눴다.
“싸우려는 거야?”
“그래.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고 받아주는 게 흥신소 68의 모토니까.”
“그래? 꽤 자주 도망쳤던 것 같은데…….”
“무츠키 시끄러워!”
아루는 자신의 총에 새겨진 꽃 문양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선생님. 아쉽지만 우린 여기서 작별이야.”
“응…납치당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심해.”
“후후후. 선생님은 여전하네. 걱정 마,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게~ 뭐, 선도부장 상대하는 건 익숙하니까.”
“든든하네, 흥신소 68은.”
아루와 무츠키는 싱긋 미소 짓더니, 나와 하루카를 남겨두고 통로 저편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의 붉은 헤일로가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더 강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하루카와 어둑한 지하 통로를 나아갔다.
길은 어느샌가 완만한 오르막길이 되어 있었다.
“…….”
서로 대화는 없었다.
발소리와 간헐적인 총성만이 들려오는 소리의 전부였다.
엄폐물이 적고 직선적인 지하 터널은 히나에게 매우 유리한 전장이다.
그녀가 특기로 하는 총알 비를 퍼붓는 전법을 구사한다면, 침착하게 조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가갈 수도 없을 것이다.
아루와 무츠키는 고전할지도 모른다.
“…….”
하루카는 주위를 경계하면서도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깨물고 있다.
남겨두고 온 두 사람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 마음이 아플 정도로 전해져 왔다.
“…빛이다.”
하루카가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보이는 빛이 출구예요.
아마 선도부가 기다리고 있겠죠.
그녀들은 선생님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그러니까, 그러니까…….”
“알고 있어, 하루카.”
불안해서 시선을 두지 못하는 하루카에게 미소 지어 주었다.
“어서 가봐.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난 이제 괜찮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흥신소의 활약은 모두에게 잘 전해줄게.”
“네…네!”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하루카는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달려갔다.
“자…혼자가 되어버렸네.”
흥신소에게 승산이 생길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세 명 모두 폭발물을 이용한 교란과 화력을 주특기로 하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붕괴 위험이 있는 지하도에서는 그녀들의 강점을 살릴 수 없다.
“…….”
…못 쓰겠지? 설마 쓰지는 않겠지?
아무리 불꽃놀이 같은 삶을 사는 그녀들이라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무모하진…아, 제어 장치인 카요코가 없잖아.
망했다. 빨리 도망가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출구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길은 어둡고 넘어질 위험도 머릿속을 스치지만, 여기서 발을 멈출 수는 없다.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 살기 위해서.
“언제까지 붙어 있을 거야! 빨리 비켜!! 이 변태!!!”
“아얏!?”
선도부 소속 학생, 이오리에게 걷어차였다.
“겨우 기어 나왔나 싶더니 왜 부딪히고 난리야, 정말…….”
“아야야…이오리가 정면에 서 있어서 그래.
계속 어두운 곳에 있다가 나와서 눈이 부셨단 말이야.”
“그보다 왜 그렇게 뛰어온 거야?”
“나도 사정이 좀 있어서 말이지……. 목숨 걸고 뛰었다고.”
“하아……?”
이오리는 의아한 얼굴로 내가 튀어나온 지하도 입구를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잖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하도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한 상태 그대로다. 기우였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보다 부장은? 같이 있었던 거 아냐?”
“히나는 흥신소 애들이 발을 묶어두고 있어.”
“역시 그 녀석들인가, 포기를 모른다니까…….”
괜찮을까, 그 애들. 히나, 가끔 가차 없단 말이지.
“자, 우리를 따라와. 샬레까지 호위할 테니까.”
“네, 네.”
거리에는 선도부의 대부대가 늘어서 있었다.
이오리의 말에 따르면 여기 있는 부대가 전부가 아니라, 몇 개로 나뉘어 여러 지하도 출구를 지키고 있다는 모양이다.
“이 근처는 트리니티랑도 가까워서 부대 전개 위치에 신경 좀 썼어.
뭐, 덕분에 선생님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후후, 트리니티 녀석들, 저기서 분해하며 손가락만 빨고 있겠지…….”
이오리도 표정이 사악하네.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플래그가 선다고.
유우카를 봐.
아리스한테 맞아서 차째로 날아갔을 때, 누르면 삑삑 소리 나는 닭 인형 같은 비명을 질렀으니까.
건너편에는 트리니티의 대부대가 전개해 있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게헨나 부대와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다.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사이가 나쁜 건 유명해서 그냥 마주 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서로를 향해 매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작은 계기만 생겨도 총격전으로 번질 것 같다.
여기가 최전방인가.
…응? 작은 계기? 그러고 보니 지하에는.
“저, 저기 이오리. 분위기가 험악한데 설마 총격전 같은 게 벌어지진 않겠지?”
“뭐야? 선생님, 무서워? 다들 예민해져 있긴 하지만 이런 건 늘 있는 일이야. 그렇게 쉽게 폭발하진 않는다고.”
“그, 그렇겠지! 웬만한 일이 없는 한 전쟁까지는 안 가겠지!”
“그렇다니까……. 호들갑은, 선생님도 참. 정말 이런 일로 한심하─”
그 순간, 우리 발밑을 강렬한 충격이 덮쳤다.
<7>
우연이라는 압제로부터의 해방은 예로부터 인류가 갈망해 마지않던 꿈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운명이나 천명, 혹은 법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다─일어날 법한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지하에 폭발녀들이 모이면 폭발이 일어나는 법이다.
“─! ─생님! 일어나, 선생님!!”
일그러졌던 시야가 고정되자, 걱정스럽게 들여다보는 이오리와 눈이 마주쳤다.
“이오리? 나는……?”
“넘어져서 머리를 좀 부딪친 것뿐이야.
가만히 있으면 금방 나아. …정말이지, 방금 그건 뭐야. 지진인가?”
이오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보니, 거리는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지하 구조물이 붕괴하면서 곳곳의 지면이 함몰되어 있었다.
장소에 따라서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을 정도다.
주변에는 기울어진 빌딩이 몇 채나 보였다.
“우와아…….”
“…선생님,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어?”
“…….”
“야! 눈 피하지 마!! 아는 거 있으면 다 불어!!!”
이오리에게 멱살을 잡혀 흔들렸지만, 입은 열지 않기로 했다.
아직 그 애들 탓이라고 결정된 건 아니니까.
국지적인 지진일 수도 있고, 비나 군이 쑥 하고 안녕? 한 걸지도 모르지.
히나나 아루 일행은 괜찮을까. 괜찮겠지, 그 애들 끈질기니까.
“그, 그것보다 이오리, 저쪽은 그냥 둬도 돼?”
“저쪽? 저쪽이라니……?”
숙적과 마주하며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던 선도부원들은 갑자기 발밑이 무너져 내리자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대혼란에 빠졌다.
흙먼지에 섞여 거리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이 들려온다.
“이게 뭐야! 트리니티의 공격이야!?”
“그쪽 세 명 떨어졌어!”
“이오리 선배 어디 계세요!?”
“갱도 전술인가!?”
“반격이다!!”
주변은 보복을 외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아마 트리니티 측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야! 너희들 진정! 발포는 자제해!”
당황한 이오리가 주변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소음과 흙먼지에 뒤덮인 상황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만 간다.
“그만해! 그만하라니까! 부장님한테 진짜 혼난단 말이야……!”
이오리의 바람도 허망하게, 전장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아…….”
그것이 어느 진영에서 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메아리에 섞인 총성의 발신지를 추적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혹은 고의가 아니라 단순히 오발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하에 있는 누군가가 쏜 것일지도.
“…….”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먼저 쏜 건, 상대방이다…라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8>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선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것이다.
총에 맞으면 죽으니까.
“혼날 거야…진짜 혼날 거야…….”
머리 위에서는 이오리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그녀는 서 있는 상태라 바닥에 누운 내 자세가 예전의 그 거시기한 상황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신변의 안전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다.
무죄입니다, 무죄.
거리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머리끝까지 피가 솟구친 양측 진영이 맹렬하게 납탄을 주고받고 있다.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고 총성은 끊이지 않으며, 도처에서 폭염이 번쩍인다.
이렇게 되면 이제 탄약을 다 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반 침하로 붕괴 직전이던 일대는 전투의 여파로 숨통이 끊어지고 있었다.
기울어져 가던 빌딩에 포탄이 직격하고, 견디지 못한 빌딩이 옆 건물을 물귀신처럼 끌어안으며 무너져 내린다.
그로 인해 발생한 분진이 전장의 시야를 더욱 악화시키고, 사태 수습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아아, 샬레로 돌아가고 싶다…….
아카네가 타준 차를 마시고 싶어.
유우카의 잔소리도 듣고 싶어.
직장이 이렇게까지 그리워진 건 처음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내 탓인가. 괴롭다.
“이오리, 이오리.”
“혼날 거야…혼날 거야…….”
“나 갈게, 괜찮지?”
“혼날 거야…….”
“괜찮은 거지? 그럼 안녕, 힘내…….”
이 지경이 된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니 이건 결코 책임 회피가 아니다.
아니라고.
바닥에 엎드린 채 포복전진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고속 포복전진을 마스터한 후로는 편의점 점원인 소라를 사사사삭 쫓아다니며 놀아주기도 했다.
나중에 유우카한테 엄청 혼났지만.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
게헨나 학생들은 전투에 몰두하느라 등 뒤를 빠져나가는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가끔 근처 바닥에 구멍을 내는 눈먼 총알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며 아스팔트 위를 나아간다.
그렇게 살금살금 전장에서 멀어지려던 찰나, 갑자기 옷을 붙잡혀 어딘가로 끌려 들어갔다.
“우왁!? 시로코?”
“안녕, 선생님.”
나를 붙잡은 건 아비도스 학생인 시로코였다.
그녀와 만난 건 내가 키보토스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으로, 내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고 함께 여러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던 사이다.
“우연이네,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야?”
“샬레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는데 계속 안 오길래 직접 찾으러 왔어.”
요란한 소리가 났으니 분명 멀리까지 들렸겠지.
하지만 얘야, 다음부터는 총성이나 폭발음이 들리면 멀리 떨어지도록 하자.
이번엔 덕분에 살았지만 말이야.
“…갈까?”
“응, 선생님.”
시로코와 둘이 아무도 없는 시가지를 걸어갔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리운 샬레 건물이 있다.
“있지, 시로코…….”
“응, 선생님?”
“선생님, 이제 그냥 샬레에서 살려고 해...”
“…? 그렇구나.”
─출퇴근은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9>
며칠 뒤.
그 사건의 뒷수습─
밀레니엄에서 빌린 장비 손실에 대한 배상, 지하철 지연 보상, 지하 시설 붕괴 책임 문제, 시가지 구역 괴멸에 따른 경제적 손실 등등─
이 겨우 마무리될 무렵.
어느 나른한 오후의 샬레 집무실에서 나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건 정말 좋네, 유우카. 시간을 훨씬 알차게 쓰는 기분이야.”
“하아,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아서 저로서는 사양하고 싶은 방식입니다만.”
나는 거처를 샬레 빌딩 내의 거주구로 옮겼다.
원래 비어 있던 건물이라 빈방은 차고 넘쳤다.
청소하는 데 꽤나 애를 먹긴 했지만 말이다.
“그 덕분에 새로운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요.”
“새로운 문제?”
유우카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학생들이 보낸 샬레 시설 거주 신청서예요.”
“그래? 방은 많으니까 허가해 주면 되잖아?”
“숫자가 너무 많아요. 시설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한다고요.
복도에서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선생님, 직접 골라주시겠어요?”
유우카에게 받은 서류를 팔랑팔랑 넘겨보았다.
낯익은 얼굴, 낯선 얼굴.
키보토스에는 이렇게 많은 학생이 있구나 싶어 새삼스럽게 감탄이 나왔다.
“음, 고르라고 해도.”
“선생님. 부디 신중하게─”
고르는 기준, 기준.
샬레 업무에서 중요한 게 뭐라고 하면.
“─강한 순서대로 정하면 되지 않을까?”
전투 임무 같은 게 많으니까.
그렇게 유우카에게 말하려던 찰나, 그녀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
“…앗.”
이제는 배틀 로열인가?
“죄송합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면 시간을 되돌리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야말로 신의 섭리일지니─.
Fin.
댓글 15
입이 방정이지
강한순서대로ㅋㅋㅋ 바로 피튀기는 대해적시대
쿠로코 펜트하우스 가냐
좆밥학생들도 거주시켜줘 ㅠㅠ
“─강한 순서대로 정하면 되지 않을까?” 이거 보자마자 함박웃음 지어졌음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