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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핫산) 사랑과 나기사와 티파티 ~나기의 해변 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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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5229227

공백 제외 13454자

――――

「여기가…」

창문 너머로는 빌딩 숲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선생님의 집무실은 상당히 고층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D.U. 지구 중심가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트리니티 테라스에서와는 또 다른 풍경이 나에게는 조금 무서웠다.

「다시 한번, 샬레에 온 걸 환영해. 키리후지 나기사」

선생님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스스럼없는 투로 그렇게 말했다. 어디에나 있는 업무용 의자인데도 선생님이 앉아 있으면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자신이 앉을 의자를 생각하며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무슨 곤란한 일이 있으면 나나 유우카에게 물어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유우카 씨는 선생님 의자 바로 앞에 있는 책상에 자리 잡았다.

아무래도 그곳이 그녀의 지정석인 모양이다.

그녀는 거기에 앉자마자, 아까보다 자신감과 위엄을 지닌 것처럼 내 눈에 비쳤다.

「연방수사부의 부장대리, 하야세 유우카입니다. 일단은… 최고참입니다. 여기서는 소속이나 학년의 구분이 없으니 그 점을 유의해 주세요, 나기사 학생회장님!」

「네」

권위나 학년 서열 등이 엄격한 트리니티에 비하면 밀레니엄은 실력 위주의 학풍이 강하다.

그 점은 샬레와의 친화성이 높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학년이 나와 같은 3학년인 하스미 씨도 유우카 씨를 한 눈에 보는 듯하다.

하야세 유우카 씨는 샬레의 실질적인 학생회장이다.

그리고는 하야세 학생회장은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었다.

샬레에서의 업무, 당번의 역할 -얼마간의 보수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업무 내용 등, 이야기는 다양했다.

학생회장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갓 입학한 신입생 같은 마음이 들어, 어쩐지 이상했다.

마치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것 같은, 오래전 잊고 있었던 감각.

「…!」

그때, 내 머릿속에 퇴색된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펄럭이는 깃발 색.

양을 받아 순백으로 빛나는 학원.

교장을 등지고 서 있는 세 학생회장들.

고요함 속에서 기대와 불안에 흔들리는 나의 마음, 옆에는 소꿉친구가 앉아 지루한 듯 몸을 흔들고 있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다.

수천 명의 학생들 앞에서 축사를 말하던 당시 티파티 호스트의 모습이 유우카 씨의 모습과 겹쳐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우아하고 세련되며 품격 넘치는 몸가짐, 당당한 목소리, 선율처럼 아름다운 말을 짜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떠올리고 스스로에게 부과된 책무를 생각했다.

나는… 과연 역대 학생회장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을까?

「―나기사? 괜찮아?」

「아, …네. 죄송합니다,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배려하는 듯한 말에 정신을 차리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얼버무렸다.

유우카 씨는 나의 해명에 납득한 듯 이야기를 재개했지만,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할은 선생님의 보조입니다. 선생님은 키보토스의 인기 스타니까요, 늘 바쁜 일에 파묻혀 계세요」

그렇게 말하며 유우카 씨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선생님에게 던졌다.

그녀 나름의 비꼬는 말이겠지. 선생님은 시선을 회피하며 얼버무리듯 웃었다.

「응. 유우카한테 늘 도움받고 있어」

「보시다시피 늘 이런 식이라…. 반성도 안 해요」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하는 유우카 씨는 마치 몇 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 지낸 것 같았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애매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옆에 서 있던 하스미 씨는 옅게 웃고 있었다.

「그만큼 유우카가 의지가 되는 거겠죠. 그렇죠, 선생님」

「응」

「하아… 정말이지」

「……」

하스미 씨의 말에 대한 대답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선생님의 그 말에는 친애가 배어 나온다.

그것에 대한 유우카 씨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우카 씨는 역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하지 않다.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하는 모습에, 나는 풋풋함까지 느꼈다.

친애, 신뢰, 우정.

그곳에 있는 감정에, 나는 당황했다.

「―나기사」

「네, 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이름을 불려 당황해 버린다.

선생님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렇게 그는 옅게 웃어 보였다.

「오늘은 소소하지만 나기사 환영회야. 샬레 일은 없어」

「네…?」

그 말에 더욱 당황스러워진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나기사 학생회장」

그렇게 말하며 웃는 유우카 씨는 힘차게 공간 투영으로 통신을 열었다.

「이오리, 시작할게!」

【알겠어】

투영된 트윈 테일 소녀가 짧게 대답한다.

그러자, 쾅 하고 집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뒤돌아보았다.

마침 큰 케이크를 운반하는 두 명의 게헨나 학생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긴 테이블과 식기 등 다양한 것을 든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집무실에 케이크와 환영 물건이 놓인 파티석이 완성되었다.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던 유우카 씨가 케이크를 운반해 온 학생 두 명과 앞치마 차림의 여학생을 데리고 이쪽으로 왔다.

「소개할게요, 나기사 학생회장. 이번 환영회를 담당하는 게헨나 삼인방입니다」

「나는 시로미 이오리. 게헨나 선도부 소속, 2학년이야. 잘 부탁해」

「같은 게헨나 소속, 아카시 준코야」

「급양부의 후우카야. 이번에는 트리니티 학생회장이 온다고 해서 기합을 넣어 만들었어!」

성실해 보이는 분, 조금 삐딱한 태도의 분, 그리고 요리사 분.

게헨나 학생들을 환영회 전면에 세운 것은 분명 선생님의 취향일 것이다. 멀리서 이쪽 모습을 살피는 선생님을 나는 최대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트리니티 종합학원, 티파티의 키리후지 나기사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렇게 인사하자, 이오리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뒷걸음질 쳤다.

「엥, 진짜 트리니티 학생회장이야…?」

그 반응에 나는 당황했다.

진실이고 거짓이고가 있는 건가요…?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흐음. 역시 트리니티 학생회장님이네. 아가씨 느낌이야」

그렇게 말하며 준코 씨는 기분 좋은 미소로 악수를 청해 온다.

「오늘은 추천 홍차를 가져왔어! 글뤼와인 티라고 하는데, 게헨나에서는 이게 제일 맛있거든!」

「어머, 로네펠트인가요? 저도 소문으로 들어서—」

「맞아 맞아! 로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는지, 준코 씨는 빙글빙글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오리 씨는 감탄한 듯 준코 씨를 바라보았다.

「헤에. 그렇구나」

「이오리 몰라? 안 돼, 제대로 알고 홍보해야지!」

「선도부는 커피파라 말이지」

「준코는 미식연구회 소속이랍니다. 그래서 맛있는 것에 대해 잘 아는 거예요」

유우카 씨가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운 듯 그렇게 설명을 덧붙이자, 나는 놀랐다.

미식연구회!

게헨나에 존재하는 1급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이렇게 천진난만한 소녀가 그런 과격파의 일원이라니….

「선도부와 미식연구회는 앙숙 사이라고 들었는데요…?」

말을 고르며 그렇게 묻자, 이오리 씨와 준코 씨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 응. 일단, 그렇긴 해」

「하루나가 너무 과하게 해서 어쩔 수 없지」

「네?」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놀랐다. 나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고서인지, 이오리 씨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나랑 준코는 소꿉친구니까. 뭐, 애증관계라고 할까」

「벌써 10년 넘게 사귀는 사이야. 평소에는 입장상 적대할 때도 있지만. 하지만, 원래부터 친구 사이니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

소꿉친구.

친구.

그 말에, 미카 씨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좋아, 그럼 자를게. 이오리는 홍차 좀 부탁해」

「아, 잠깐, 준코가 직접 해!」

「이오리.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스미 씨가 편안한 목소리로 이오리 씨를 부르자 나는 다시 놀라 버린다.

트리니티의 정의실현부와 게헨나의 선도부라고 하면, 정말이지 물과 기름이라고 불릴 정도의 사이이다. 적어도 나는 양측의 좋은 관계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게헨나에 적의를 품고 있는 하스미 씨가 말이다.

「응? 그럼 후우카 돕는 거 도와줄래? …그쪽이 하스미는 더 기쁘잖아?」

그런데도, 이오리 씨는 나의 그런 선입견을 날려버릴 정도의 미소로 하스미 씨에게 그렇게 답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하스미 씨를 바라보자, 세상에—웃고 있다.

그것은… 분노가 한 바퀴 돌아버렸다는 뜻일까요…?

에덴조약 전에 골치 아픈 일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하스미 씨를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급양부의 후우카 씨에게 말을 걸었다.

「후우카 씨. 이번 신작은 무엇인가요?」

무슨…

그 웃음은 뭔가요!

저에게는 언제나 미소만 보여주더니!

「후우카 씨는 게헨나의 급양부 부장이에요. 샬레에 오면 언제나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는데… 하아」

그렇게 말하며 하야세 학생회장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는 그런 그녀의 천박한 고민을 헤아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 하스미 씨가 게헨나 학생들에게 저런…」

「에? 아아… 하스미 부부장도 후우카 씨의 과자를 먹고 나서는 늘 그런 식이에요」

유우카 씨의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면서, 나는 눈앞에서 태연하게 몰래 집어먹고 있는 하스미 씨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정의실현부 부부장이 몰래 집어먹고 있다.

게다가… 게헨나 학생이 만든 과자를!

내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대항심이 솟아올랐다.

트리니티로 돌아가면 하스미 씨에게 차를 제안하자.

그렇게 기쁘게 과자를 먹는다면, 티파티 호스트의 이름을 걸고 내 과자도 먹어줘야 한다.

「—나기사의 입부에 건배!」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자, 방 안의 모두가 일제히 따라 했다.

나는 박수와 환영의 말에 작게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그곳에 모인 것은 정말 다양하고 다채로운 학생들이었다.

선생님은 환영회의 중심으로 게헨나 학생들을 기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외에 다른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삼대 학원뿐 아니라 산해경이나 백귀야행, 선생님의 이름을 키보토스 전체에 알린 폐교 문제의 무대인 아비도스 학생도 있었다.

모두가 소속에 상관없이 화기애애하고 있음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기사, 이거 한 번 먹어봐?」

「아, 네…. 감사합니다」

앞치마 차림의 후우카 씨가 상냥한 미소로 그렇게 말하며 파이를 건네 온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감사의 뜻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우카 씨의 솜씨는 정말 훌륭합니다. 어떤 것도 아주 맛있어요」

그것은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게헨나 학원의 학생들은 이 분이 급양부 부장인 것을 더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틀림없이 후우카 씨의 존재는 게헨나의 식생활을 좋게 만들고 있다.

나의 칭찬에 후우카 씨는 뺨을 물들이며 수줍어했다.

「영광이네. 과자의 성지인 트리니티 학생회장이 그렇게 말해주다니, 정말 기뻐」

트리니티 종합학원은 스위츠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학생회가 티파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차는 트리니티 학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이 때문에 당연히 차와 함께 곁들이는 과자 제조 분야가 고도로 발달해왔다.

「후우카 씨는 겸손하시네요. 이렇게 훌륭한 파이를 굽는 분인데도」

나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반죽 만들기는 정말 훌륭하다.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레시피를 여쭤봐도 될까요? 사실 가을을 위해 신작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물론! 어… 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그렇게, 나 나름대로 그 자리를 즐겼다.

내가 순수하게 즐기는 것을 선생님은 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이 어딘가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딘가 삐딱하게 환영회를 바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쯤에는 많이 부드러워지고 말았다.

「―나기사 씨, 환영해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졌을 때, 나는 기뻤던 것 같다.

아, 내가 여기에 있어도 좋다고 인정받은 것 같았다. 학생회장이나 티파티의 호스트, 나기사 님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냥 키리후지 나기사로서.

「내 거야!」

「안~돼! 내~거~야!」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체리 파이를 두고 이오리 씨와 준코 씨가 격렬한 접시 뺏기 싸움을 시작했다. 주변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웃고 있다.

나도 기분 좋은 감각에 휩싸여 바라보고 있었지만, 점차 마음이 차가워진다.

두 사람은 소꿉친구라고 했다.

선도부와 미식연구회. 단속하는 자와 테러리스트의 일원.

그럼에도 두 사람의 우정에는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도 그렇게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마저도 의심했을 나인데.

「―하지만, 원래부터 친구니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

준코 씨의 솔직한 웃음이 스쳐 지나간다.

홍차가 혀끝에 쓰게 남았다.

「…………」

내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야세 학생회장의 중재로 두 사람은 체리 파이를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오리 씨가 자신에게 나눠진 파이를 준코 씨에게 내밀었다.

수줍어하는 이오리 씨 앞에서 준코 씨는 기쁜 듯이 두 번째 조각을 입에 넣고 지극한 행복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후우카 씨가 어디선가 나타나 대신할 케이크를 이오리 씨에게 건넸다.

그것을 하스미 씨가 부럽게 바라보고 있고, 이오리 씨가 「안 줄 거야!」하고 소리를 높인다—.

분명, 선생님은 이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정작 선생님은 북적이는 분위기에서 조금 떨어져 서 있다.

그 분위기와 선생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하야세 학생회장인 것 같다.

그는 그렇게,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어릴 적 읽었던 경전 이야기와 닮아 있는 듯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빵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라」

「나기사. 잠깐 시간 있어?」

환영회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참에, 선생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의자를 든 선도부 두 분과 하스미 씨를 먼저 가게 하고, 나는 사교적인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무엇을 말씀하시려고요?」

「너에게 주고 싶은 게 있어」

「…네?」

무엇인가 못을 박힐까 싶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허를 찔렸다.

선생님은 리본으로 묶인 작은 꾸러미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백일초 씨앗이야」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백일초

그것은—나의(7월 4일의) 탄생화.

「네 취미가 정원 손질이라는 걸 살짝 들었어」

「……」

이 정보의 출처는 미카 씨임에 틀림없다. 선생님은 내가 취미를 체스라고 말한 것을 진심으로 믿지 않은 듯했다.

나의 내면을 꿰뚫어 본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불쾌했다.

그래서 나는 내밀어진 그 씨앗을 받지 않고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내일부터는 합숙이시군요. 보충수업부 분들의 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응.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할 생각이야」

「모두들 퇴학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 주세요」

뻔뻔한 말이라고 나 역시 속으로 조소했다.

선생님은 하나의 말에 불과하다.

이 사람은 결과적으로 배신자를 밝혀내줄 것이다.

키보토스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녀와 우리 착한 학생들을 저울질할 때, 그는 그녀를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배신자가 누군지 밝혀낼 것이다.

이번 합숙에서 선생님은 쓰레기통 속에서 쓰레기를 찾아낼 것이다.

「선생님께서 오늘 저를 샬레로 부르신 이유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

「저는 배신자를 찾아내어 『에덴조약』에 서명할 것입니다」

얕보지 마세요, 선생님.

저 또한 이상가니까요.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화해라는 이 꿈을 저는—

「나기사. 너 우라와 하나코라고 알아?」

「…네?」

선생님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렇게 나에게 호소해 온다.

「그 아이는 아주 섬세한 아이야. 겉보기와는 다르게 주변을 아주 많이 신경 쓰고 있지. 코하루는 조금 특이한 면이 있지만, 근본은 성실하고 착한 아이야. 아즈사는 아주 향상심이 있는 학생이야.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지」

「그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요.

나는 그녀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색해서, 나는 눈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말로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려고 한다.

「히후미는 아주 곧은 아이야. 너무 곧아서, 때로는 목적이 수단을 앞지를 때도 있지. 하지만, 곧아. 정말」

그렇겠죠, 라고 인정해버릴 뻔한 것을 꾹 참았다.

「―하지만, 선생님」

나는 학생회장의 얼굴을 하고 선생님을 마주본다.

샬레에서 학생회장 행세를 하는 학생과는 다른… 책임과 역사가 있는 직책을 맡은 사람으로서.

「하나코 씨는 의도적으로 퇴학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녀가 말입니다. 아즈사 씨는 애초에 신원이 모호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숨을 쉬고는, 나는 선생님을 노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히후미 씨가 곧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악에 물든 곧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암시장으로 몰아넣고, 지하 조직 건설로 이끌고 있다고 한다면? 물론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그런 모호한 심증을 근거로 할 수는 없습니다」

코하루 씨를 제외한 이 세 사람은 각자 의심스럽다.

「오늘 하스미 모습 보고도 그래?」

「그녀가 스위츠를 좋아하는 것은 알았습니다. 다만… 그뿐입니다」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에게 꿰뚫어 보였음이 틀림없다.

그는 처음으로 깊은 실망감을 띠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알 것 같네」

「무엇입니까?」

「나기사. 너는 의심병이라는 어둠 속에 있어」

「대체, 무슨 얘기를…?」

핵심을 찔린 것 같았다.

흔들리는 감정에, 다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더욱 확신을 굳힌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어」

「…………」

「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선생님은 자신의 감정 고조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날 것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나에게는 생생하고 신기하고… 무거웠다.

그는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 화는 나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너를, 거기서 꺼내줄게」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나는 분명 마뜩찮은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감정이 목소리에 실려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숨길 이유도 없겠지.

키리후지 나기사는 트리니티 학생답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오랫동안 전부터 누군가에게 쏟아붓고 싶었던 감정을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당신)이 증명해 보세요!」

나의 방식이 틀렸다면, 달리 취해야 할 선택지가 있다면.

「—우리들의 에덴을」

가능할 리가 없다.

속으로는 그렇게 비웃는다.

책임 없는 곳에서의 소꿉놀이는 지겹습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나기사!」

목소리가 따라온다.

그가 다가오자, 나도 걸음을 재촉했다.

「맹세할게」

「…!」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계약은― 이 키보토스에서 가장 신성한 "약속".

그것을 선생님은… 나에게 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를 절대로 구해낼 거야!」

「…………」

그것은 절규 같았다.

우리밖에 없는 복도에 선생님의 말이 울려 퍼졌다.

그 잔향이 귓가에서 멀어졌음에도,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되새겼다.

「그러니…」

선생님의 사라지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겨우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받치듯 나를 올려다보는 선생님의 모습이 있었고, 내 감정은 요동쳤다. 진지한 표정의 선생님이 나에게 작은 꾸러미를 내밀고 있다.

그것은 백일초 씨앗.

「이걸 너에게」

「…네」

결국 나는 그 씨앗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안도했다는 얼굴로 천천히 일어서며 조금씩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서, 선생님!?」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온 유우카 씨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동요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목례했다.

당신은 마치, 기사 같군요.

동화 속에서 공주를 구해내는 멋진 기사.

「――제2차 학력 시험 결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샬레)이니까.

나는 현실로 돌아갔다.

황혼 무렵.

선룸에서 몇 번째나 되는 실내 장식을 정돈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볼 새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또 늘처럼 지각이군요.

「얏호~! 나기 쨩! 왔어, 왔어!」

밝은 목소리가 문을 열었다.

곧이어 정의실현부의 호위대――오늘은 나카마사 이치카 씨다――와 함께 미카 씨가 들어왔다.

그녀는 안내해주고 의자까지 당겨준 이치카 씨의 존재 따위는 없는 듯, 얼굴조차 보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나는 이치카 씨에게 죄송하다고 얼굴을 향하지만, 그녀는 늘 그렇듯 옅게 웃으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기 쨩~ 무슨 일이야? 일부러 호출까지 하고~」

이치카 씨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미카 씨가 그렇게 심술궂은 말을 내뱉었다.

나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으려 어깨를 으쓱하며 받아넘겼다.

「……별일 없으신 듯해서 다행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미카 씨는 그렇게 말하며 바로 과자에 손을 뻗었다.

잠시 나오려던 말도 그녀의 「맛있어~!」라는 진심으로 행복한 목소리에 금방 애매모호해져 버렸다.

나는 예전부터 미카 씨의 그런 감정 표현에 약했다.

「이거 맛있네! 처음 먹어봐~ 누구의 신작이야?」

「접니다.」

미카 씨가 이런 건 백번도 더 알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신나하는 소꿉친구의 순진한 웃음소리에 쓴웃음을 숨기지 않고 그렇게 대답한다.

「얼마 전에 샬레에 갔을 때 레시피를 배워왔어요.」

「헤에~」

그건 후우카 씨에게 배운 호박 파이였다.

레시피를 알게 된 이상 자신도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게 제과를 즐기는 사람의 본능이다.

바로 오늘의 다과회에 맞춰 도전했던 것이다.

「근데, 호박은 아직 수확 안 했잖아?」

「네. 그래서 밀레니엄의 원예부에서 호박을 샀죠.」

샬레에 갔던 답례 겸 유우카 씨에게 연락했을 때 은근슬쩍 호박에 대해 물어보자, 「아마, 원예부에 있을 거야」라고 답이 온 것이다.

「와우. 역시 밀레니엄이네.」

「저도 놀랐어요. 제철인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요.」

밀레니엄 원예부가 자랑하는 전 기후 전천후 실내 재배 기술…… 이것만으로도 샬레에서 하야세 학생회장과 친분을 얻은 가치가 있다.

거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하고 직선적으로 말하는 빅 시스터와 비교하면, 유우카 씨는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내 얼굴에서 뭔가 읽어낸 건지 미카 씨는 능글맞게 웃었다.

「나기 쨩이 샬레에 입부했다는 소리 들었을 땐 어떻게 되려나 싶었는데…… 과자가 맛있어지는 거라면 선생님께 감사해야겠네!」

「걱정하셨던 건가요?」

뚜껑을 덮어두었던 차의 숙성 상태를 살피며 그렇게 말을 건넨다.

미카 씨는 파이에 정신이 팔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부스러기가 스르륵 소리도 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나기 쨩 선생님 싫어하잖아?」

「…………」

침묵. 사그락사그락, 미카 씨가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부스러기는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순식간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주전자를 들어 천천히 차를 따랐다.

「……그렇게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말없이 있는 버릇, 안 변하네.」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미카 씨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진지한 이야기를 농담 속에 담아 말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버릇이다.

서로의 속내를 떠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네. 싫어해요.」

「그렇구나.」

홍차를 다 따르고 미카 씨에게 내밀고는 나도 내 컵 앞에 앉았다.

「왜 저를 샬레에 입부시키셨는지――」

선생님의 생각은 샬레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샬레에서 나에게 학원의 벽을 넘은 교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밀레니엄이 정리하고, 게헨나가 만들고, 트리니티가 둘러싼――샬레에서만이 볼 수 있는 광경을.

선생님에게는 아마 악의 같은 것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 소속을 넘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

「저에 대한 간접적인 비난일지도 모르겠네요. 보충수업부를 만든 저에 대한」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갈 곳 없는 감정에 마음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자각 이상으로, 선생님에 대한 짜증과 반감을 품고 있다.

그것이, 이렇게 말로 해나갈수록 자신의 감정으로 떠올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홍차를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이걸로 할 일은 했으니 이제――」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미카 씨는 컵을 들고 입가에 쓴웃음을 띠었다.

「선생님, 의외로 끈질긴 사람일 것 같아. 어른이고…… 아, 이거 맛있다.」

그렇게 말하며 미카 씨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컵을 내려놓고 옆에 두었던 홍차 캔을 집었다.

「로네펠트입니다.」

「…… 아.」

갑자기 미카 씨는 말을 잃고, 그 차의 수면만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나도 조금 긴장감을 느껴, 컵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저녁놀의 잔광이 커튼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게헨나 브랜드네.」

이윽고 미카 씨가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 입맛에 안 맞으셨나요?」

「아니, 나기 쨩이 따라주는 차는 맛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미카 씨는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뺨을 괴는 예의 바르지 않은 몸짓이었지만, 어쩐지 미카 씨는 그림 같았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밤으로 떨어지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밤 두 번째 학력 시험 장소가 게헨나라고 들었어.」

「…………」

「합숙, 다들 열심히 했다고? 제대로 시험만 볼 수 있다면 합격할 수도 있을 거야. ……뭐, 하나코 짱은 의욕 제로겠지만.」

「제가 방해라도 할까봐요?」

「당연하지. 나기 쨩은 합격하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절대 그렇게 할 거야.」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컵의 수면 너머로 서로의 모습을 본다.

필리우스와 파테르의 수장의 가면을 쓰고, 소꿉친구에게 말을 걸지만, 그 어느 것도 엇갈린다.

그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미카 씨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미카 씨. 선생님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나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카 씨가 움찔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말을 던졌다.

「이 타이밍에 선생님과 접촉하다니, 미카 씨 답지 않습니다.」

「…………」

나는 알고 있다.

미소노 미카는 거짓말을 할 때 완벽하게 해낸다.

이렇게 들통나는 짓을 하고 있을 때는 무언가를 숨기려 할 때이다.

미소노 미카는 죄책감이 있을 때 이렇게 된다.

「미카 씨. 뭔가 알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

내 말을 들은 미카 씨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순간, 나와 미카 씨는 분명하게 마주보았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둘 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가 그 순간만큼은 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침을 삼키고 미카 씨의 말을 기다렸다.

주위가 어두웠다.

이미 밤이었다.

밤의 장막이 미카 씨의 눈에 드리워졌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라, 나는.」

조용히, 어딘가 체념적인 목소리로, 미카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아 쨩처럼 똑똑한 것도 아니고, 나기 쨩처럼 교활한 것도 아니야. 단순무식한 나는 아무것도 몰라.」

「…………」

거짓말이다.

그렇게 직감한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생각할 뿐, 말로 나오지 않았다.

그 가면을 벗기고 싶은데, 그것을 드러내버리면 나도 그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나는 발을 떼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나의 속내를 꿰뚫어 본 것처럼, 미카 씨가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아는 건 나기 쨩이 열심히 악역을 하고 있다는 것뿐일까. 속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하다는 거 알고 있어? 근데…… 그걸 의무감으로 감추고 있어.」

「…………」

「봐. 또 정색하고 말없어.」

이번에는 내가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뇌리에 히후미 씨의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가서, 나는 무심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사정이라고 뿌리치려 하는 나에게 미카 씨가 소꿉친구의 목소리로 말을 건다.

「나기 쨩. 그렇게 냉혹한 학생회장인 척하고, 그 후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에덴조약이 무사히 체결된다 해도, 그래서 나기 쨩은 행복할까?」

「……논점이 이상하군요. 에덴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저희의 숙원이자 의무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도, 영원히 계속되어 온 원한의 반복을――」

「――세이아 쨩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윽」

그 이름에 심장이 욱신거렸다.

「그렇구나…… 응, 그렇겠지.」

미카 씨의 눈을 통해 본 나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는 분명 괴로움과 피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미카 씨는 애처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네?」

왜 미카 씨가 사과하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금방 얼버무리는 듯 웃으며 과자에 손을 뻗었다.

「나 대신 나기 쨩에게 악역을 시키고 있어서 그래.」

「대신이라고 해도……」

그것이 티파티의 주최자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역할이다.

오래된 세월이라고 해야 할 긴 시간에 걸쳐 쌓여온 증오와 불신의 누적을 여기서 끊어낸다.

더 이상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제가 짊어져야 할 일이니까요.」

결코 강한 척하는 것도,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내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은, 오래된 인연의 소꿉친구.

세이아 씨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잃게 된다면…… 나는 견딜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미카 씨, 뭔가 아는 게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도대체 누가 배후에 있는지 밝히기 위해서라도!」

설령 그 답이 히후미 씨일지라도…… 나는 받아들이겠다.

그 말을 들은 미카 씨는 쓸쓸하게 웃었다.

「나기 쨩은 아직 낙원의 신화를 믿는구나.」

낙원.

경전에 이야기된 태초의 동산.

신과 맺은 계약을 깬 후로, 그 낙원에서 쫓겨났다고 전해진다.

「트리니티와 게헨나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트리니티(저희)도 그랬던 것처럼.」

예전에 반목했던 파테르과 필리우스와 상투스가 합쳐진 것처럼, 분명 트리니티와 게헨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 조상들이 체현한 삼위일체의 이상.

「누군가가 낙원의 계약을 어지럽히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트리니티의 학생들을 꼬드기는 자가 있습니다. 저는…… 저는 그 뱀을,」

「뱀을?」

「죽여야만 합니다.」

입에 담는 것조차도 끔찍하다.

그 죄악감과 두려움에 마음이 막혀온다.

「상대는 헤일로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살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겠죠. 저에게는 그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드시, 반드시……」

결의를 입에 담았을 텐데, 마지막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 아리우스 역할은 보충수업부인 거네.」

「그건」

그 말이 날카롭게 박혔다.

옛날 아리우스와 화합을 얘기했던 것은…… 미카 씨였다.

「트리니티, 게헨나, 그리고 밀레니엄까지. 나기 쨩, 오늘 티파티는 대단하네. 키보토스 세 학원까지 더해서 낙원을 만들려 하다니.」

게헨나 브랜드의 차와.

밀레니엄 산 재료로 만든 과자.

대접하는 것은 트리니티의 학생회장.

미카 씨가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의미에 퍼뜩 깨달았다.

「역시, 나기 쨩은 악역에는 안 맞는 것 같아. 보충수업부에게 심한 짓을 하거나, 매정하게 말을 하더라도, 그런 어린애 같은 이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시야의 한쪽 구석에, 쿠키를 능숙하게 굴리는 손이 보였다. 미카 씨는 이내 그것을 입가에 던져 넣은 모양이었다.

「근데, 조금 안심했어.」

「네?」

「역시 나기 쨩은 옛날이랑 하나도 안 변했네. 나 오늘 여기 불릴 때, 드디어 나기 쨩에게 혼나는 건가~ 하고 각오하고 왔었거든.」

「제 집이 설교 방이라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평소 말투로 돌아온 미카 씨에게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

그러나 내가 본 것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컵을 기울이는 소꿉친구의 얼굴이었다.

말투만은 언제나처럼 밑도 끝도 없이 밝아서, 거리낌 없이 들린다.

그런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여기는 필리우스 세력권…… 이른바 나기 쨩의 뜰이잖아. 거기에 파테르 학생회장이 불리는 의미, 나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

「……어머. 그렇게 사려 깊은 말을 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우리는 소꿉친구이며, 각자의 세력을 대표하는 학생회장이다.

미카 씨가 정치가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더라도, 그 정도의 정치적 감수성은 있다.

「테라스가 아니니까. 일부러 나기 쨩 집으로 지정하는 건 정말 위험하지 않아? 만약 내가 배신자였다면 어쩔 생각이었어?」

「그때는 시끄러운 입을 롤케이크로 막을 뿐이겠죠.」

내가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보이자, 미카 씨도 우스운 듯 웃었다.

「아하하! 나기 쨩 답네.」

결국 미카 씨는 끝까지 뭔가를 숨긴 채였다.

그녀를 배웅하러 정원에 나갔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래?」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주머니에 다시 넣어서 그를 무시했다.

2차 학력 시험은 예정대로 오늘 밤늦게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기 쨩, 선생님한테 미움받겠네.」

「이제 와서요. 이미 미움받고 있겠죠.」

쓴웃음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미카 씨는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 밤은 예쁜 달빛이었고, 초여름의 바람이 상쾌하게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언제 와도 정성스럽네~」

「그렇게 신경 못 쓰고 있었는데 말이죠.」

미카 씨에게 칭찬받는 것은 기뻤지만, 속으로는 송구스러운 마음이었다.

반년 이상 계속되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정원을 가꾸는 데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다과회를 위해 최소한의 손질은 했지만, 그것도 대문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정돈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라, 이건?」

배웅 차량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미카 씨가 발걸음을 멈췄다.

막 씨를 심은 평평한 화단을 보았을 때, 죄책감과 비슷한 부끄러움에 가슴이 조여왔다.

「백일초입니다. …… 얼마 전, 선생님께 씨를 받았습니다.」

받은 씨앗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너무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미카 씨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

「꽃말은?」

「색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 의미를 지닌 꽃이기도 합니다.」

「무슨 색깔 꽃이 피려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카 씨가 그렇게 말했다.

「글쎄요.」

「저기, 어떤 의미가 있는데?」

「――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포함해서 백일초 씨앗을 보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씨앗을 받고 나서 꽃말을 찾아본 나는, 묘한 납득감을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아이러니한 경고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또 다른 건?」

별들을 올려다본 채로, 미카 씨가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물었다.

「빨간색이라면 『행복』.」

「응.」

「보라색에는 『추억』의 의미가 있습니다.」

「헤에.」

「비슷한 의미로는 주황색이 있습니다. 『옛 시절의 좋았던 시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분홍색은?」

「분홍색 백일초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무의식중에 미카 씨의 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녀의 옆 얼굴은 여전히 밤하늘의 심오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보는 것을 보려 하고, 별들 너머를 바라보았다.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백일초의 꽃말은 마치 우리 이야기 같았다.

세이아가 살아 있었던 것은 진작에 아주 먼 옛날이었고, 나는 그 과거에 있었을 행복을 찾고 있다.

그로부터 이미 백일 이상 지났다.

그 백합 꽃은…… 이제 만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흰색은――」

그렇게 말하려다, 나는 나에게 향해 있는 시선을 알아차렸다.

밤 그림자 속에 서 있는 미카 씨가,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말이 길을 잃어버렸다.

「미, 미카 씨……?」

「…………윽」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미카 씨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소매로 눈가를 닦고, 미카 씨가 뒤돌아보지 않고 말을 걸어온다.

「괜찮아, 나기 쨩.」

「네……?」

「나기 쨩은 안 죽어. 내가…… 내가 말이야, 너를 지킬 거니까.」

그 말을 남겨두고, 미카 씨는 재빨리 정원을 나서서, 차에 뛰어들었다.

멍하니 있던 내가 달려가려 했을 때는, 미카 씨를 태운 차는 진작에 저쪽으로 가버린 뒤였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면서, 나는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침내 밤의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

미카 씨.

저는 당신을, 단 한 명의 소꿉친구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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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7.11번역

소설핫산) 사랑과 나기사와 티파티 ~나기의 해변 편~ (2)

#키리후지 나기사#티파티#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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