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
데카그라마톤 파트 3 스포일러
1 / 2전지――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런 짧은 말만으로는 나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천재라는 표현은 나에게 어울리는 형용사지만 너무 흔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뛰어넘는 「초천재」 라는 단어는 아주 훌륭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것들은 모두 나의 일부를 표현한 것일 뿐이다.
박명.
청초계.
미목수려.
규방의 규수.
희대의 미소녀.
구름 위에 피는 높은 절벽위의 꽃.
작약(芍薬)처럼 단아하고.
그 가련함은 모란과도 같으며.
―― 흰 백+합처럼 아름답다.
그런 내면과 외모.
내가 안고 있는 병약한 태생.
해커로서의 유례없는 재치와 그에 따른 실적.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이 자랑하는 초천재 청초계 병약 미소녀 해커.
그게 나 ―― 아케보시 히마리.
"어라, 수고가 많으셔요,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샬레의 집무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놀란 얼굴의 선생님을 영접한다.
"환영의 박수는 없나요? 이렇게, 짝짝짝 이런 식의."
"오늘은 제대로 입장할 수 있었네."
"당연하죠. 하레의 프로텍트는 우수하지만... 같은 수는 두 번이나 통하지 않아요."
"해커끼리의 승부는 큰일이구나."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의자를 당겼다.
나는 스르륵 선생님 쪽으로 다가가서 무릎에 놓여 있던 종이 뭉치를 집어 든다.
"오늘은 지난번 조사 임무 보고서도 가지고 왔어요."
"고마워. 저번에도 대사건이었지."
"그렇네요. 하지만 에이미가 열심히 해줬으니까요."
나와 샬레 선생님의 관계는, 함께 불가사의를 쫓는 규명자다.
선생님은 보고서의 첫 장을 훑어보더니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
그걸 놓칠 내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얼버무리듯 웃으며 보고서를 옆에 놓았다.
"나중에 제대로 읽을게. 히마리는 뭔가 마실래――?"
"―― 이쪽으로 와주세요, 선생님."
나는 그렇게 말하고 등에 감추고 있던 캔을 꺼내 선생님께 내밀었다.
그것은 집무실에 오기 전 자판기에서 구입한 요괴 MAX. 뇌를 혹사하는 우리 같은 인간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음료다.
나에게 앞서 음료를 권했던 선생님은 온화한 얼굴로 받아주었다.
"고마워, 히마리."
"별거 아니에요. 어쨌든 선생님에게 필요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가슴을 펴자 선생님은 키득키득 웃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살 수 있었네."
"뭣... 저를 우습게 보시는 건가요!"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 방문 때 나는 자판기 구입에 애를 먹고 말았다. 화가 치밀어오른 내가 자판기 시스템에 침입하려고 한 순간, 사태를 파악한 선생님이 황급히 달려와 무사히 넘어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않나요.
밀레니엄에서는 터치패널이니까!
"아, 아까도 말했지만 두 번째는 제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어요. 천재니까요. 당연하죠!"
"그건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또 치히로에게 혼날 테니까."
"......"
나는 침묵한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런 일로 시스템에 해킹하려고 하지 마!』
치쨩의 엄한 어조가 떠오른다.
확실히 천재 미소녀 해커가 짜증 내며 충동적으로 해킹하려 했다는 건 이미지 훼손이 될 수도 있다.
역시 치짱.
때로는 쓴소리조차 마다하지 않는 자세, 매우 의지가 됩니다.
"후후... 저는 친구를 타고났으니까요."
"...그런가, 좋은 일이네."
선생님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삼킨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좋게 자신 몫의 캔을 옆구리에서 꺼낸 뒤 작게 헛기침을 했다. 살며시 시선이 향해오는 것을 느끼고 나서, 나는 곁눈질로 선생님을 보았다.
"그......"
"응."
"으음, 그러니까..."
표정, 몸짓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었는데도 나는 거기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이 나오지 않는 사이, 시선이 미아가 되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군침을 삼키고 겨우 평소의 상태를 되찾았다.
"저는 병약 미소녀 해커이기에, 이런 걸 여는 게 서툴러서..."
하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나는 쭈뼛거리는 상태로 선생님에게 캔을 내밀며 시선이 헤매고 있음을 자각한다.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걸까요?
나는 고동이 경종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뚜껑을 열 수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맡겨줘."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더니 일어서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양손으로 감싸듯이 들고 선생님께 건네니 선생님의 손이 살짝 닿았다.
"앗..."
그때 나는 장갑을 낀 채로 있는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선생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자. 열었어."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캔을 들이대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선생님을 돌아볼 수 없었다.
"......"
"히마리?"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받아들이고 나는 내 안쪽으로 의식을 돌린다.
이 감각은 도대체 뭘까요?
그것을 분석할 사이도 없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이야말로. 일부러 사다 줘서 고마워."
선생님이 전하는 감사의 말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등을 돌리고 책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후후. 더 칭찬해주셔도 괜찮다구요?"
이럴 때면 언제나 마키의 쾌활함이 부러웠다.
나는 좀 더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었다.
"밀레니엄이 자랑하는 초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로부터 음료를 하사받는 경험은 좀처럼 없으니까 말이죠."
"그러네... 이렇게 같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도 그렇고"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캔을 들어 보였다.
"그렇죠, 선생님은 행운의 소유자네요."
나도 그것을 따라 입가에 옮긴다.
그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바로 눈을 돌리는 것은 실례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나는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뭘까.
기쁨?
초조함?
부끄러움?
멍한 듯한 고양감.
계속 이런 시간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속에서 솟아오르는, 어디까지고 깊은 온기.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내가 모르는 감정.
그 미지를 알고 싶어서 나는 여기 - 샬레에 와 있다.
"역시 달콤하네."
그렇게 말하며 웃는 선생님의 얼굴.
익숙해져 있을 요괴 MAX인데 전혀 다른 음료인 것처럼 ―― 혀에 남는 그 달콤함은 가슴 언저리에서 사랑스러움으로 변해간다.
그것은 카페인 이상으로 내 고동을 울린다.
"정말 그렇네요."
그 말에 담긴 언령은 분명 도착하지 않았겠지.
왜냐하면 진짜 그 감정은 달콤했으니까.
설마 감정에 맛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알게 됨으로써 나에게는 세상이 넓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오늘의 일을 시작할까요?"
연방수사동아리 샬레의 당번 학생으로서 선생님과 함께 보내는 하루.
오늘의 내 운세는 최고다.
키 아이템은 에너지 드링크.
신경 쓰이는 상대와는 시선을 맞추는 것이 좋다.
오늘의 점은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지."
선생님은 캔을 놓고 눈앞에 놓여 있는 디스플레이를 부팅했다. 그리고 내 쪽을 보며 온화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해, 히마리."
"후훗... 네."
신뢰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충족감.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복받치는 고양감. 단지 가까이 붙어 함께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
그 감정의 이름을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선생님과 에이미와 함께 불가사의를 쫓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비도스 사막에서 시작해 카이저 PMC로, 그리고 잊힌 모든 것이 흘러 들어가는 폐허에 이르는 여정. 실마리를 잡기 위해, 진실로부터 풀려나와 흘러넘친 단 하나를 포착하기 위한 움직임――
나는 잠 속에 있었다.
렘수면과 논렘수면의 틈새.
졸음 속에서 지금까지의 기억이 쫓아온다.
생각은 각성 상태에 있는 자의식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하에서, 사람은 항상 정보를 접하고, 데이터로서 축적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항상 떠올리고 있다.
특히 유례없는 지성을 가진 나로 말하자면 잠든 사이에도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잠이란 나에게 정적 속에서 생각만을 약속해주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절대적 존재를 사칭하는 인공지능.
예언자라 불리는 자율적 존재.
신에 이르러 신을 창조하려는 증명이론――
밀려오는 탁류를 본다.
폭발 너머로 사라지는 자판기.
에이미에게 안겨 연구 시설을 뒤로하고 도망칠 때의 흐릿한 시야.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 예언자를 통해 예언한다――』
합성 음성의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되새겨진다.
이 얼마나 엉터리같은 존재인가.
단 한 번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신을 칭하기까지 이른 인공지능. 그럼에도 압도적인 존재를 앞에 둔 상황에서 자기 존재의 증명을 다시 한다는 유연성마저 가지고 있다니.
『그 여로 끝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마지막?』
과거의 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종처럼 가볍고 감로처럼 달콤한 울림.
거기서부터, 기억이 뒤섞여 간다.
에이미가 외치는 소리가, 폭발음이, 다가오는 탁류의 빛이――
세상이 암전하고 빛으로 가득 차 뒤집힌다.
달려가는 에이미의 거친 숨결.
하지만 거기 있는 것은 ―― 우리뿐.
선생님이 없어.
에이미!
선생님은 어딘가요!?
꿈속의 내가 그렇게 외친다.
에이미의 팔에서 벗어난 나는 추태를 보이며 땅에 엎어져 버린다. 자력으로 설 수 없다는 것보다 선생님의 안부가 걱정돼 나는 곧바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때 선생님의 신발이 보였다.
올려다본 그곳에는 무표정하게 서 있는 선생님이 있다.
그러나 ―― 그것은 선생님이 아닌, 이형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끝없는 공포를 느꼈다.
『해커 소녀여... 네 추측에는 한 가지 잘못이 있다.』
선생님의 얼굴을 한 데카그라마톤이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고한다.
나는 반쯤 미쳐 총을 집어 들고는 선생님의 외형을 한 그것에 총구를 들이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은 내 귀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마치 진공에서 외치듯 무음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오직 데카그라마톤의 목소리만이 울린다.
『지금, 너희 앞에 있는 이 육체야말로 유일한 나다――』
틀려!
넌 선생님이 아니야!
그런 증명 같은 거, 나는 절대 인정하지 않아.
『――나 이외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카그라마톤이 선생님의 목소리로 그렇게 들이댄다.
마침내 나는 방아쇠를 당기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의, 선생님은... 너와 같은... 존재가... 아니야...!"
"히마리! 히마리? 괜찮아?"
"나는... 당신은... 그런..."
몽롱한 의식 속에서 무거운 눈꺼풀을 뜬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무거운 팔을 움직여 안대를 벗었다.
"...여기는...?"
"괜찮아? 히마리?"
"...선생님.
시야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반쯤 움직이지 않는 뇌에 어떻게든 혈액을 돌게 하려고 나는 무거운 머리를 흔들었다.
어둠 속을 계속 방황한 듯한, 가라앉은 기분.
땀으로 피부에 옷이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안대를 벗자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보는 것이 초현상특무부 부실의 천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꿈을... 꾸고 있었군요..."
평소처럼 말했을 터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쿵쾅거림이 멈추지 않는 심장에 손을 얹으며 눈을 감는다.
"...읏."
진정하세요, 히마리.
저건 그냥 꿈.
고찰할 가치도 없는 그저 비전일 뿐이니까.
"가위눌리고 있는 것 같아서 억지로 깨웠어. 미안해."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본다.
데카그라마톤의 목소리가 아닌 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안심했다.
"......그랬나요. 아뇨, 오히려 감사합니다."
"응. 자, 이거 써. 물 좀 가져올게."
"...네."
평소 같으면 떠올릴 프레이즈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께 젖은 손수건을 받자마자 뺨에 갖다 댔다.
싸늘한 냉기에 안도감을 느끼다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답지 않다. 하지만 그 정도로 나는 뜨겁게 감정이 고조되었고, 마음속은 동요하고 있었다.
"......"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너무 서둘렀다고 반성한다. 인공지능 같은 것에... 농락당한 자신이 분해서, 거기에만 너무 자원을 할애해 버린 거다.
"기다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돌아왔다.
선생님은 나에게 물이 든 머그잔을 집어 주더니 손을 포개어 주셨다.
"진정했어?"
"...네. 덕분에."
꿈과 현실이 천천히 떠나간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떨쳐버리고 현실의 선생님에게 비로소 웃음을 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무리 제가 모든 사건에 정통하였다고 해도 악몽의 고찰까지 나아갈 일은 없으니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셔."
"네, 네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그렇게 재촉당하자 나는 조금 움찔했다. 선생님은 내가 머그컵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손을 얹으며 내가 물을 마시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그것에 부끄러움보다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요즘 히마리에게 부담만 주고 있네. 요전에는 데카그라마톤 후 바로 호드에 대응했었고... 미안."
"어머. 선생님이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선생님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걸요."
"하지만..."
"악몽에 가위눌려 초췌한 모습이라니, 박명의 미소녀다움이 나왔겠죠?"
내가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이자 가라앉아 있던 선생님도 미소지었다.
"...그러네. 병약함이 느껴져."
"후후. 선생님도 알게 되셨군요."
선생님의 그런 배려가 고마웠다.
"――그래서,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물을 다 마시고 진정되자, 나는 선생님께 그렇게 물어보았다.
모모톡 이력을 살펴봤지만 선생님의 착신은 없었다.
말하자면 선생님은 드물게도 약속 없이 이 방까지 와 계셨던 거다.
"응. 조금 궁금한 게 있었지만, 다음에 할게."
"? 그런가요?"
"그것보다 히마리. 이후에 조금 어울려주지않을래?"
"네. 문제없어요. 졸음도 깨고 싶은 참이고."
여기서 파고들어도 오늘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라 생각한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내 대답에 선생님은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어디로?"
"산책하러 가자."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밖으로 초대했다.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 밖으로 나온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자챙 너머로 본 오랜만의 하늘은 푸르고 낮고 어디까지나 이어져 간다.
"기분 전환하기 딱 좋은 날씨네."
선생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다.
나를 향한 배려심을 느껴서, 조금 낯간지러웠다.
"네. 정말로."
밖에 나가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조금 전까지 꾸었던 꿈의 광경이 점차 희미해진다.
한쪽에는 온화한 표정의 선생님이 있다.
거기에 악몽의 그림자는 없다.
"그 모자, 잘 어울리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 박명의 병약 미소녀에게 외출 아이템이라고 하면 밀짚모자로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거야...?"
아무래도 선생님에게는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이상적인 상황을 위해선 흰색 원피스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굳이 옷을 갈아입어 선생님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었다.
"네. 그도 그럴 것이, 잘 어울리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챙에 손을 댄 채 선생님에게 곁눈질했다.
"정말이네."
"후훗."
내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선생님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전에 밀레니엄에서는 어딜 가나 리오에게 보여진다고 말했었지."
지나가는 드론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을 은신처로 초대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 리오의 악취미적인 산물이죠."
빅 시스터는 언제나 보고 있다.――
우리의 움직임을 데이터로써 축적, 분석, 계산... 산출한다. 그것들을 수치화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률로서, 별의별 사건에 연역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합리적인 통제를 위해서.
"학원의 모든 것을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안해져 버리니까요."
통계와 그에 의해 도출되는 예측에 의해 이 학원은 통제되고 있다.
그것은 학원 내부의 평온을 유지하거나 범죄의 발생을 억제하는 데는 틀림없이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나는 항상 납득할 수 없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숫자가 아니다.
"리오는 모두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구나."
"......"
선생님이 그런 말로 해석하니, 나는 왠지 석연치 않았다.
너무 리오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기에.
리오의 그것은 상냥함 치고는 차갑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나는 그 근본적인 부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올바름까지는 의심하지 않는다.
"리오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에요. 밀레니엄 학생회장으로서 자신의 역할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초현상특무부를 만든 것도 그렇고요."
악몽이 떠올라서 조금 마음이 아프다.
이 키보토스의 수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기분 나쁜 태동.
데카그라마톤 ―― 신의 증명을 사칭하는 인공지능과 예언자들의 무리.
그 미지의 현상을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초현상특무부 부장인 나의 몫이다. 진리의 수호... 를 내세우는 내가, 지금, 그 이상으로 임해야 할 것.
"히마리는 리오를 싫어하면서, 어째서 초현상특무부의 부장을 맡은 거야?"
뭔가를 눈치챘는지 선생님이 은근히 화제를 돌렸다.
"문제의식의 전제를 공유할 수 있었기에 ―― 그게 전부입니다. 저희는 일절 의견이 일치한 적이 없으니 정말 드문 일이죠."
이 키보토스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
그것이 리오와 내가 합의할 수 있었던 전제였다.
베리타스가 학적 데이터를 조작함으로써 밀레니엄에 학적을 두게 된 텐도 아리스의 존재 또한 우리의 흥미를 끌었다.
그것은 재액을 가져오는 이형의 존재인가.
아니면 우의를 맺을 수 있는 서로 다른 영혼의 형태일까.
우리는 지금, 함께 밀레니엄이 직면한 미래의 난제를 다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가."
"뭔가 함축된 의미가 느껴지는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올려다보자 선생님은 가볍게 미소지었다.
"둘 다 책임감이 강하구나 해서."
"당연하죠. 어쨌든 저는 밀레니엄 제일의 미소녀 해커니까요!"
"하하하. 그러네."
"선생님. 드론이 신경 쓰인다면 해킹할까요?"
공간투영으로 화면을 띄우려고 하자 선생님은 키득키득 웃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자."
"그렇지만...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거 아닐까요?"
적어도 나는 진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베리타스의 방도 초현상특무부의 방도 아닌 저 은신처가 필요했을 정도로.
힘을 뺀 내가 있을 수 있는 장소가.
"보고 있다는 것은, 보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그건, 어떤...?"
선생님의 말뜻은 잘 알 수 없었다.
그 후 한동안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이윽고 스터디 에어리어를 벗어나 학생들의 모습도 드문 나무숲에서 선생님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쯤에서 할까?"
"헤?"
"햇볕을 쬐는 거야."
선생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곳은 길에서 나무들을 향해 완만한 경사가 있는 아담한 언덕 같은 지형을 하고 있었다. 하늘로 뻗은 가지와 잎이 그 잔디밭에 아늑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확실히 볕을 쬐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하지만..."
"괜찮아, 히마리."
주저하는 내 쪽으로 선생님은 손을 뻗고 몸을 기댄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당황하여 허둥지둥 손을 움직였다.
"조, 조금 가까워요, 선생님...!"
"자, 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그러니까, 거리감이...!"
귓가에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당황해 나는 평소의 평정을 좀처럼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을 붙잡고 휠체어에서 내리는 일은 여러 번 겪었을 텐데, 왠지 오늘은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럼 안아 올릴게."
마지못해 나는 선생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게 등을 굽혔다. 그러나 그 결과 나는 선생님의 몸에 더 의지하게 되어 몹시 동요했다.
선생님의 냄새가 난다――
그런 당연한 사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히마리는 가볍네."
"ㅊ, 처... 천사니까요!"
그렇게 말한 나를 선생님은 다정하게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다.
그 눈동자를 나는 계속 들여다보고 싶었다.
"천천히 내릴게."
그러나 선생님의 품에 안기는 것도 한순간이었고, 내 몸은 땅에 놓였다. 선생님 자신도 그 자리에 앉아 내 머리를 그 무릎 위에 맡겨주셨다.
그리고 나는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2 / 2하늘이 떨어진다――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뒹군 채 올려다보는 하늘은 넓었다.
태양에 비추어진 땅은 아늑하고 따뜻하며 나를 느긋하게 감싸준다. 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지나간다.
머리 위에 걸린 가지와 잎의 녹색.
창공을 달리는 새들의 그림자.
멀고도 가까이 들린다, 학생들의 목소리.
하늘의 푸른색은 쪽빛보다 깊고, 청옥보다 푸른색을 띠고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 눈부셔서 왼손을 눈가에 대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함이 그곳에 있었다.
"...조용하네요."
"그러네. 키보토스치고는 드물게."
올려다본 선생님의 옆모습은 편안한 미소였다.
"......"
나는 처음으로 그런 선생님의 얼굴을 본 듯했다.
"시끌벅적한 것도 좋지만."
보충하듯 그렇게 말한 얼굴은 여느 때의 선생님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몇 번 심호흡했다.
초목의 냄새에 섞여 희미하게 선생님의 냄새가 난다.
"이상한 기분이에요. 오래전부터 선생님과 이렇게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의 지금까지 생애에 있어서 선생님의 존재는 아직 조금밖에 새겨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옛날, 훨씬 어렸을 때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듯한 기분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잎의 초록색이라거나.
바람 부는 소리라거나.
눈부심 저편에 빛나는 태양이라거나――
어쨌든 나는 그것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착각마저 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뿐, 사람에게는 모두 잊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지."
선생님이 부드러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잊어버린 기억...?"
"물론 내가 히마리에게 이렇게 무릎을 베게 해주는 건 처음이지만 그에 가까운 추억은 있을지도 몰라. 그것이 같은 감정을 품게 되면서 불러일으키게 되는 거지."
"......"
"그러니까 잊은 게 아니야. 그저 평소에는 기억이 나지 않을 뿐."
"...후후. 선생님은 로맨티시스트시군요."
"그럴지도."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웃더니 내 뺨에 걸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집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내 옅은 색소의 머리카락을 빛에 비추었다.
내 시선의 끝에서, 선생님의 손가락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져 흩어지듯 흘러간다.
"아... 미안해, 머리카락 만져버렸네."
선생님이 정신을 차린 듯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떼자 나는 쿡쿡 웃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렇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에. 히마리를 쓰다듬는다고?"
선생님의 얼빠진 듯한 말투에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저, 저는 미소녀 천재 해커니까요! 그 실력이나 성과는 당연한 거지만... 그... 때로는 무조건적으로 칭찬받고 싶을 때도 있다고나 할까..."
마지막은 횡설수설해버려서 나는 엉뚱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선생님이 웃을 차례였다.
"때때로 히마리는 엄청 솔직해지네."
"...저도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는 있어요."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삐친 듯한 목소리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에이미에게는 하고 있으면서, 선생님은... 저에게는..."
초현상특무부의 후배는 뻔히 보일 정도로 직구승부인 부분이 있어서, 그건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었다. 그것은 분명 고지식할 정도로 올곧고, 그러면서도 주위의 감정에 신경 쓰지 않는 리오의 장점을 취한... 결과일 거다.
"그건 미안. 히마리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으음..."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것만으로 나의 삐친 감정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째서 인간은 이런 단순한 행위만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잠시 쓰다듬는 대로 맡기고 편안함에 눈을 감고 있었다.
정신을 놓으면 잠이 들 것 같다.
선생님의 느긋한 손의 감촉에 나는 차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 또한 나를 재우려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을 거라는 것을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을 타고 꽃향기가 났다.
"......?"
멍하니 실눈을 뜬다.
바라보는 끝에 군생한 흰 꽃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내가 잠깐 고개를 든 것을 알아차린 선생님이 그렇게 말을 걸어온다.
"저기... 꽃이 피어 있어요."
"...정말이네."
조금 떨어진 곳에 피어 있는 그 꽃들은 아늑한 양지 속에 있었다. 꽃들은 모두 태양을 향한 채 꽃잎을 활짝 열고 피어있다.
"무슨 꽃일까?"
"저건 헬리오트로프예요."
"좋은 향이 나네."
"네, 향수의 원료가 되는 꽃이니까요."
아마 그것은 원예부 학생이 심었거나 한 거겠지. 밀레니엄 학생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재로 보이거나 하는 경우는 흔하니까.
"태양을 향하는 꽃, 이라는 뜻의 이름이에요."
"역시 대단해, 히마리."
"후후. 더 칭찬해주셔도 좋다고요?"
꽃점에 대해 알아보고 있을 때 외운 것이 도움이 되어 나는 기뻤다.
"꽃말은."
"응."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정적이 내려온다.
그 언령은,우리 둘 사이에 조용히 스며들 듯 사라져 간다.
"히마리는 정말 뭐든지 알고 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머리를 빗으며 칭찬해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아니에요. 전지의 학위를 가진 저도 모르는 게 있어요."
"그게 뭐야?"
나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며 애틋하게 웃어 보였다.
"당신이에요. 선생님."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다.
헬리오트로프의 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To be co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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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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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너무 좋다..
당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