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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하늘 아래 나는 홀로 귀로에 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꼬박꼬박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순응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변화된 생활 습관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의식한 적이 없었다.

야근이 많고 휴일이 거의 없는 점과 의식주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쾌적한 일터 겸 거주공간인 샬레,

이 두가지로부터 도출되는 선택지는 정착지에서의 노동이다.

샬레에서 일을 하고,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하고, 일이 일단락되면 수면실에서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면 다시 집무실에서 일을 한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활 사이클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에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그저 잠만 자기 위해 돌아가는 집의 존재 의의 따위는 아예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샬레를 나와 일부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나,

그렇게 하는 것이 편리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 등이 있었던 것은 1개월 정도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없어져, 일부러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샬레와 집을 왕복하는 의미는 없어졌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다.

버릇 같은 것이다.

한번 몸에 밴 생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은 꽤 싸늘해서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옴을 느끼게 하는 추위다.

이런 날은 혼자서 냄비요리라도 해 먹을까 생각해, 슈퍼에 들러 식재료를 여러가지 사 왔다.

고기와 두부, 배추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추위에서 도망치듯 아파트 입구로 달려갔다.

난방 같은 것은 켜져 있지 않지만, 바람에 직접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꽤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냥 갈까라고도 생각했지만 일단 우편함을 확인해 둔다.

자신에게 온 우편물은 모두 샬레에 오도록 해 놨기 때문에, 우편함에 들어 있는 것은 광고나 공사의 소식뿐이다.

그것들을 긁어내듯 정리해서, 공동 우편함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전단지 폐기용의 빈 상자에 던져 넣었다.

보안 패널에 카드를 대면 짧은 전자음과 함께 자동 잠금이 해제돼 조용히 문이 열렸다.

두 개의 엘리베이터 중 한쪽이 1층에 있어서 그대로 부드럽게 올라타 꼭대기 층인 15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정적과 잠깐 동안의 부유감이 찾아온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고 있는 동안의 고요함과 한가한 시간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고독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의 피부가 그리운 느낌과도 비슷한, 곁에 다른 사람의 온기를 갖고 싶어지는 감각이 있다.

오늘처럼 추운 날은 특히.

순간 몸이 무거워지고 문이 열린다.

한 발짝 밖으로 나가자 공용 복도를 누비는 바람이 사정없이 살갗을 찌른다.

갑자기 바깥 경치가 눈에 띄었다.

해는 완전히 지고, 저녁노을로 희미하게 붉은빛이 남는 하늘에 회색빛 구름이 걸려 있다.

아직 저녁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대지만 이미 바깥은 제법 어두컴컴하고 형형한 빌딩의 불빛이 휘황하게 빛나고 있다.

샬레의 높이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15층에서 보이는 경치를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이 높이라면 시선을 막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는데, 키보토스에서는 같은 높이, 그 이상의 건물들이 나무숲처럼 늘어서 있다.

익숙함이란 무서운 것이다.

공용 복도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조명 덕분에 희미하게 밝다.

같은 간격으로 늘어선 램프가 만드는 빛의 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복도 건너편으로 길게 뻗어 있다.

복도의 끝……즉, 모서리 방 앞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릎을 감싸 안은 듯 웅크려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특징적인 검은색 세일러복에 긴 머리와 날개,

붉은 완장과 옆에 걸린 총으로 보아 그게 누구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이치카?"

"아."

발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눈앞에서 말을 걸고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동요한 듯한 표정을 짓자, 시선을 이쪽에 유지한 채, 목만 꾸벅 움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심까."

"열쇠는 돌려받았을 텐데."

"맨션의 방범장치 같은 건 제겐 없는 거나 마찬가짐다. 헤헤......아, 지금은 기분 나빴겠슴다. 죄송합니다."

맥없이 웃으며 가볍게 말을 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며 자기 완결을 하니까, 이쪽도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이치카는 어색한 듯 눈을 돌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연락해 줬더라면 오늘은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아, 아니요! 우연히 근처에서 임무가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갈까 생각했을 뿐이라!"

"얼마나 기다렸어?"

"뭐, 10분이나 15분임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로, 전혀."

이쪽의 말에 이치카는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

목소리는 날카롭고, 말도 꽤 빠르다.

눈은 조급하게 움직이며, 얼굴은 굳어버려 억지웃음이라는 걸 알아도 몹시 어색하다.

양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들며 의사를 표시하는 모습은 거동이 수상하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사실은?"

"네? 아...그게..."

같은 텐션으로 받아넘길까 한순간 망설였단 걸, 시간이 멈춘 것처럼 딱 굳어진 미소에서 왠지 상상할 수 있었다.

마치 설교를 듣는 아이처럼 서서히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들바들 희미하게 몸을 떨며 대답했다.

"……3시간 정도...임까."

말 대신 한숨이 나왔다.

그녀의 거짓말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한 불쾌감 때문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지만, 연락도 안 하고 장시간 밖과 다름없는 장소에서 가만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에 대한 어이없음 때문이다.

그 원인의 일부… 아니, 거의 전부가 자신에게 있는 것을 고려하면, 쉽게 그녀의 행동을 탓할 수도 없지만.

"앗, 스, 스토커 같아서 기분 나쁘시겠슴다! 죄송합니다, 바로 돌아갈 테니까요."

"잠깐만."

한숨과 침묵을 참지 못했는지 이치카는 억지로 붙여놓은 듯한 미소로 한층 더 빠르게 입을 움직이고는

힘껏 총을 움켜쥐고 일어나 자리를 뜨려 했다.

순간적으로 그 팔을 잡아 붙들며 만류했다.

"그런 생각 안 하니까. 일단 진정해. 나는 이치카가 감기 걸릴까봐 걱정 되는것뿐이야. 괜찮으니까, 심호흡하고 진정해. 알겠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이치카에게, 애써 상냥하고, 온화하게, 무서워하는 작은 동물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한다.

지금의 그녀는 유리 세공품보다 여리다.

다행히 이치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해졌다.

"뭐, 모처럼 왔는데 커피라도 마시고 가. 추웠지?"

"…네"

이치카는 작게 대답하고는 다른 팔로 눈가를 문질렀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을 연다.

문을 활짝 열고 턱짓으로 안으로 들어가게 재촉했다.

몸을 움츠리고 쭈뼛쭈뼛 걷는 이치카를 향해 자신의 코와 귀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한다.

"?"

"코끝이랑 귀가 새빨개."

"……헤헤."

손으로 가볍게 두 귀를 누르면서 이치카는 비로소 얼굴이 환해졌다.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거실에 있는 이치카를 시야 한구석에 두었다.

잠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안절부절못하는 듯 두리번거리며 살풍경한 방을 둘러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정됐어?"

"…네. 죄송합니다. 폐를 끼쳐서……"

2인분의 커피를 내려 각설탕이 든 작은 병과 함께 테이블로 옮긴다.

이치카는 원래 펴고 있던 등을 더욱 빳빳하게 펴고 표정에 긴장된 빛을 띠었다.

"감사합니다."

"설탕 넣을래?"

"…아뇨, 이대로."

"어라, 안 넣게 된 거야?"

"그렇군요… 네. 지금은 넣지 않습니다. 그게...그 날 이후 블랙인 채로 마시게 되어서……

처음에는 써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마시다가 그 편이 익숙해져서. 네, 지금은 설탕 없이도…네."

이치카가 눈을 내리깔고 쓴웃음을 짓는다.

할 말을 찾지 못해 아주 조금 말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어색함을 속이듯 아직 뜨거운 커피를 잔뜩 들이켰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처럼 가장해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는 놀랐어. 그렇게 추운 날씨에 혼자서 3시간이라니…….무슨 일이야?"

"…어떻게 해도 만나고 싶어져서,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저, 참을 수 없어서,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연락을 주지 그랬어."

"……거부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내가? 이치카가 오는 것을?"

"…네."

"안 해, 그런 거. 분명 거리를 두자고는 했지만 거절하겠다는 건 아니야. 하물며 이치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다행...입니다."

안도의 표정을 짓는 이치카의 눈 밑에는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공용 복도에서도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선명하게 붙은 다크서클.

"잠은 잘 자고 있어? 눈 주변이 엄청나."

"네. 아…아니요, 요즘은…그렇죠, 별로."

"잠이 안 와?"

"잠을...못 잠다."

이치카의 대답에는 말을 찾고 또 찾으며 고르는 듯한 신중함이 보인다.

이전의 이치카는 밝고 쾌활하며, 즐거운 듯이 웃는 아이였다.

지금의 이치카는 어딘가 어둡고 비굴하며,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이...안색을 살피는 듯이,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억지 웃음이 눈에 띈다.

나 때문에.

"그날부터?"

"…네"

"계속?"

"……그렇네요. 침대에 누우면 여러가지 생각이 나서, 멋대로 눈물이 나더니 멈출 수 없게 되어…….그래서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정신을 잃는다는 느낌으로… 네, 쭉 그런 식임다.아! 선생님을 탓하는건 아님다!?

전부……제가 나쁘니까..."

이치카는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얼버무린 뒤 시선을 테이블에 떨어뜨리고 사그라드는 듯한 목소리로 자책했다.

"아니, 내 책임이야. 정말 면목이 없어. 그렇게 내쳤던 건 너무 무책임했지. 좀 더 이치카와 제대로 마주했어야 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그렇지, 않슴다…….냉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저를 다시 바라보면서 제가 비정상적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솔직히, 나는 이치카가 무서웠다.

나날이 늘어가는 나에 대한 집착과 내 주위에 대한 분명한 증오와 공격성이.

그것이 그녀가 타고난 성격인지 아니면 내가 심어버린 광기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의 얄팍한 욕심과 어리석은 판단이

불러온 결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는 무책임하게도, 그것이 곧 정당한 판단인 양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으며 화면상의 대화만으로 관계의 정지를 요구했다.

내게는 이대로 이치카의 흉포성을 억누를 자신도 없었고, 얼굴을 맞대고 그녀를 설득할 용기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겠지, 라는 어설픈 생각으로 그런 비열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그게 이치카의 대답이었다.

놀랄 정도로 산뜻하게 고민이 해결된 것에 나는 완전히 맥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공포로부터의 해방감과 동시에 묘한 외로움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광기마저 느끼게 할 정도의 집착에 매료되어 있지 않았던가.

사랑스러울 정도로 올바르고, 껴안고 싶어질 정도의 건강함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일상은 평범함을 되찾았지만 그 이후로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허무감에 시달리게 됐다.

스스로 손을 놓고 싶었던 이 관계의 기분 좋음에, 나도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응?"

"그,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릅니다만……다시 시작한다든지…할 수 없겠슴까?"

"어?"

이치카는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수업 중에 문제를 풀어보라고 호명된 학생이 실수를 두려워해 자신 없는 대답을 툭툭 중얼거리는 듯한 그런 말투.

한편, 나에게 있어서는 바라지도 않는 제안이었다.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다는 등, 상대의 기분도 생각하지 않고 내팽개쳐 놓고는,

역시 외로우니까 꼬였던 걸 다시 풀자는 것은 멋쩍기 짝이 없다.

그런 조그만 자존심을 버리는 것조차 망설이고 있었으니까.

이치카는 몸을 부르르 떨며 거절의 말로부터 몸을 지키려는 듯 어깨를 바짝 움츠리고 있다.

떨리면서도 면전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이치카의 모습이, 나의 치졸함을 한층 더 각인시킨다.

그녀의 의존에 편승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인간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차갑게 내치는 것이 정답일까.

"저는 다시 예전처럼 선생님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건……"

"안 됨까?"

"안 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뭐임까?"

테이블 끝을 살피던 이치카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방어 자세였던 자세가 약간 앞으로 숙여져 목소리 톤이 약간 낮아진다.

의심스러운 무언가를 캐물을 때의 음색에 조금 가깝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뭐냐고 물어도 나도 모르겠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다. 말로서 할 수 없는 것이다.

머리로는 희미하게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을 해독해 인간의 언어로서 출력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까지 숙제로 내보내도 아마 마치지 못할 거다.

"제가 부담스러운 여자라서 그런 검까?"

"아니……"

부정하기는 했지만 거칠게 표현하면 바로 그대로여서 그 뒷말을 잇지 못한다.

조금 전까지 쓸데없이 비굴하고 나약했던 이치카가 이제는 완전히 임전 태세에 들어갔다.

"……나 때문에 이치카가 불안정해져 버리니까. 그 책임을 질 수는 없어."

"……읏."

아픈 곳을 찔렸다는 식으로 이치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겠슴다."라고 힘없이 중얼거리고, 이치카는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반듯한 콧날 밑에서 붉은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잠깐의 침묵을 거쳐 고개를 숙인 채 이치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착각하고 있었어요."

"?"

"처음에는, 아주 잠깐 선생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어요. 선생님이, 아무것도 아닌 나를, 나만을 봐주는 그 시간…….

그 시간만큼은 선생님의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고, 그것만으로 마음이 채워졌거든요.

정말로 거짓말이 아님다!"

서서히, 이치카의 목소리가 상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여자친구가 되면서, 선생님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해지면서, 점점 그 고마움이 사라져 갔습니다.

선생님의 옆에 있는 것은 제 특권이라고, 나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려서…….그런 사고에 물들고 나서는

선생님과 사이가 좋은 학생들이 모두 제가 있을 곳을 위협하는 적으로 보이게 된 거예요. 진심으로 미웠슴다.

때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무엇보다 선생님을 빼앗긴다는 상상을 할 때마다 불안에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그래서, 그래서...그런 식으로 선생님에게 제 마음을

강요하는 짓을 해 버려서...선생님은 저만의 선생님이 아닌데."

이치카가 흠칫흠칫 고개를 들었다.

눈꺼풀 가장자리에 머문 물방울이 하늘하늘 힘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 멋대로 우쭐대지 않겠슴다. 불안한 것도 선생님을 믿고 참겠습니다. 속박도 하지 않을게요.

부담스러운 여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한번 더 기회를 주세요."

"하지만-"

"부탁드림다! 선생님 취향의 여자가 되겠습니다! 싫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 고칠게요!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나 심하게 거리를 뒀는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다시 이치카가 고개를 숙인다.

긴 검은 머리가 커튼처럼 이치카의 표정을 가렸다.

테이블에 뚝뚝 저마다 다른 크기의 물방울이 떨어진다.

목에서 짜내는 듯한 괴로운 목소리로, 이치카가 말을 잇는다.

"…… 좋아합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언제,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어도 선생님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기분 나쁘실까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단념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있어 전부이고, 사는 의미 그 자체예요."

"……"

"사랑합니다. 곁에 있게 해주세요. 지금 선생님의 마음이 식었다고 해도, 절대로 되돌려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부탁드립니다……"

이치카의 앞에는 이제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몸을 떠는 작은 동물과도 같은 이치카의 모습은 오늘 막 만났을 때와 같았다.

……그녀의 마음에 응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은 결국 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이치카가 선언한 대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형태로 언젠가 한계를 맞이하고,

또다른 방향으로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정이나 욕심에 얽매여, 또 최악의 인간으로 전락할 생각은 없다……라고는 해도, 여기서 차갑게 거절할 정도로

비정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치카의 마음은 알았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치카의 기분은 솔직하게 기뻐. 고마워."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전과 같은 관계로 되돌리는 것은 어렵지. 서로 말이야."

"......으."

"하지만."

"……?"

"그것만큼, 이대로 관계를 끝내는 건 나도 싫다고 생각해."

"!"

"그러니까 천천히 시간을 두고 거리를 되돌리는 게 어떨까. 갑자기 연인스러운 일 같은 건 어렵겠지만,

처음처럼 서로 다시금 알아가야 하겠지만, 둘이서 가장 좋은 거리감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 네, 그래도 상관없슴다! 다시 선생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이치카의 표정에, 드디어 빛이 돌아왔다.

눈가에서 뺨을 타고 흐른 눈물 자국이 방안 조명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 뭠까?"

"저녁 아직 안 먹었겠지? 모처럼인데, 먹고 가지 않을래? 오늘도 그만 식재료를 두 명분 사 버렸어."

"……!"

"이치카는 내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이렇게 둘이서 다시 출발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이거든."

이치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용솟음치는 여러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일어섰다.

"……저기!"

"왜 그래?"

"껴안아도 되겠슴까?"

"응?"

"……앗. 그, 그랬슴다……연인스러운 일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죠. 죄송합니다, 뛸 듯이 기뻐서 저도 모르게. 이런 점이 안 되는 거겠죠! 조심하지 않으면, 아하하……"

이치카는 자신의 실언을 알아차리자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얼버무렸다.

이쪽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모습은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감정은 지금까지 여러 번 품었던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이치카가 처음으로 의존해 주었을 때, 독점욕을 불태우며 속박해 왔을 때, 불안정해져 울면서 매달려 왔을 때……

나는 분명히 이와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사랑스러움과 우월감과 몸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열.

거기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주뼛주뼛 어색하게 웃는 이치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니, 괜찮아. 우리 둘의 재출발이니까 이 정도는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그럼 말씀대로...가겠슴다."

팔 안에 담긴 이치카의 체구는 놀라울 정도로 가녀렸다.

하지만 가늚 속에 확실한 온기와 부드러움이 있다.

부서질 것 같을 정도로 가벼운데, 안을 때마다 그 존재의 크기를 실감한다.

코에 이치카가 뿌리고 있던 향수나 샴푸의 다양한 냄새가 닿아, 무심코 도취될 것 같다.

페로몬이라고 할까, 자주 이런 짙은 향에 노출됐으면서 그 무렵의 나는 냉정했구나, 라고 희한하게 생각했다.

아니, 정말 냉정했을까?

"…이치카, 만족했어?"

"조……금만, 더…이대……로……"

"알았어, 그럼 조금만 더."

"하아......"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이치카가, '후웁' 하고 거친 심호흡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감각으로 전해진다.

내 말에 호응하듯 움찔거리며 허리가 꿈틀댄다.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서 있다기보다는 내게 체중 전부를 맡기고 기대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우으......"

조금씩 떨리는 이치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더니, 흐릿한 신음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이치카에게서 피어오르는 향이 한층 짙어졌다.

꿈틀꿈틀 등골이 떨리고 마그마처럼 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나는 다시 인간성의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질 것 같다.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506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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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6.16번역

소설번역) 이치카의 미련

#나카마사 이치카#소설
좋아요 0댓글 6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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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
blac1203작가
게시물 38개
XDC
Xerxes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5.06.16 21:24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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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나
ㅇDC
ㅇㅇ125.06.16

아 무서워

ㅇDC
ㅇㅇ225.06.16

미슐랭 3스타

ㅇDC
ㅇㅇ325.06.16
디시콘
ㅇDC
ㅇㅇ425.06.17

흔한것 같으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성이야

ㅇDC
ㅇㅇ525.06.17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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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친가에 상견례 하러가는 학생들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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