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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핫산) 책벌레의 매장법 Part 2(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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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VL #드라마 #시미코 #아츠코

원본 by Rubbish Box

이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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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5>

~ <3>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선생은 들고 있던 가방을 열어 그저께 옮겨 적은 메모지를 꺼냈다.

보기 편하도록 종이를 180도 돌려놓자, 연두색 리본을 살랑거리며 자그마한 머리 하나가 쑥 들이밀어졌다.

“…꽤 오래된 표기법이네요.”

“역시 그렇게 보여?”

“네. 원래는 〈U〉로 발음해야 하는 곳에 알파벳 〈V〉 자가 쓰였어요.”

“응? 그래?”

“제법 헷갈리죠……. 아마 선생님의 라틴어 사전에도 범례 쪽에 해설이 적혀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규칙성의 존재에 선생은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만약 스스로 사전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중요한 힌트를 줄곧 놓쳤을 터였다.

“그나저나 이건 어디서 보셨나요?”

그 질문에 선생은 찰나의 망설임을 품었다.

과거 벌어졌던 에덴조약 조인식에서의 참극.

그 실행범이었던 학생들과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사실에 대해 시미코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선생으로선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 혼란의 한복판 속에서도 시미코는 공포와 원망에 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태 수습을 위해 발 벗고 뛰던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샬레의 일원이었다.

선생은 학생의 그 현명함을 믿고, 경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츠코의 사진을 보여주기로 했다.

“흠흠, 그렇군요, 과연.”

예상대로 시미코는 스쿼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따지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앳된 가르마가 좌우로 갸웃거릴 때마다 단정하게 관리된 은은한 향기가 머리 위의 선생을 감싸 안았다.

“VICTORA MELLE DVLCIOR QVIESCE IN PACE…….”

사진과 메모지를 번갈아 살피며 시미코는 무척이나 유려한 발음으로 속삭이듯 읊조렸다.

“‘꿀같이 부드러웠던 빅토라는 여기에 평화로이 잠들다.’”

“!?”

“…대략 이런 느낌일까요? 의역이지만요.”

“시미코, 설마…….”

“에헤헤. 사실 입학했을 무렵에 다국어 과목으로 이수했었거든요.”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이는 시미코를 선생은 놀라움과 감탄이 섞인 눈길로 바라보았다.

“확증은 없지만, 내용이라면 석판 생김새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가요.”

“지, 진짜로!?”

“네. 이 사진 속 석판은 아마 타불라 안사타일 거예요.”

“어? 타, 타브? 뭐?”

“손잡이 달린 명판, '타불라 안사타'요.

묘비명 같은 걸 새겨 가공한 특수한 석판을 말해요.”

“…그렇다는 건, 다시 말해서.”

“네.

오디세이아 교외 구역이라면 아마 오래된 무덤의 일부 아닐까요?

적어도 천수백 년 이상은 된 물건이겠네요.”

선생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뜯게 했던 의문을 시미코는 너무나도 손쉽게 해결해 나갔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시미코! 최고야! 천재야!”

“아, 알겠으니까요! 서, 선생님, 지, 진정하세요!”

순수한 존경으로 가득 찬 어른의 두 손이 어린 학생의 양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규율과 체면만 아니었다면 선생은 아무런 사심 없이 와락 껴안아 버리고 싶었을 정도였다.

“고마워.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흑흑…….”

“그, 그 정도로요?”

“응. 오전부터 단서 하나 없이 여기 중앙도서관에서 내내 뒤적였거든.”

“듣고 보니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사실 라틴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전혀 안 나오더라.

그래서 하트 문양이나 새 그림처럼 문외한도 알기 쉬울 법한 것만 붙들고 매달리다가, 훌쩍.”

“음…새요?”

“응. 이 왼쪽 구석에 있는―”

“…흡, 후훗.”

“시미코?”

“아하하하하하하하!”

봄볕 같은 웃음소리가 선생의 고막에 따스하게 녹아들었다.

지금 시미코의 표정에선 제적 도서들의 운명을 근심하던 쓸쓸함 따위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화가 돌고 돌아 어느덧 그녀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 준 듯했다.

“어? 어??”

“아뇨, 죄송해요. 후후훗. 그냥 좀 우스워서요…….”

“나, 나도 모르게 또 바보 같은 소리 한 거야?”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요. 이거 새가 아니라 물병이에요.”

“엥?”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선생은 무심코 아츠코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실제로 신기하게도 인상이 180도 달라 보였다.

지금까지 볏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손잡이로, 눈알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주둥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그림은 확실히 물병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한 최소한의 특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말씀 듣고 보니 왠지 새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후훗.”

잠시 숨을 고른 시미코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본관 뒷문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커다란 도록 한 권을 들고 돌아왔다.

역시 트리니티의 학생은 얕볼 수 없다.

우이에 필적하는 속도로 책을 찾아내는 솜씨도 감탄스러웠지만,

이 거대한 시설을 불과 몇 분 만에 왕복하는 기동력은 가히 전투기의 스크램블 발진에 맞먹었다.

트리니티 중앙도서관의 예절만큼은 절대 어기지 말아야겠다고 선생은 굳게 다짐했다.

“이 물병은 '레프리제리움'이라고 하는데요, 오디세이아 교외 구역의 고대 묘비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티프예요.

…여기에 자세히 나와 있네요.”

시미코는 선생의 옆에 앉아 관내에서 들고 온 묵직한 양장본을 펼쳐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양면 두 페이지에는 아츠코 일행이 발견한 석판과 흡사한 형태의 명판들이 빼곡히 실려 있었다.

선생이 새로 착각했던 물병 또한 함께 표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비문학 및 금석학에 관한 제설과 연구 동향』이라는 제목의 도감에는 온갖 시대의 비문에 얽힌 다채로운 지식이 지역별로 해설되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장정의 이 책은 사진이 곁들여진 깔끔한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초심자라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시원한 안식', 즉 이 계열의 명판에는 심리적인 치유를 연상시키는 소재들이 주로 쓰였다고 해요.”

“바다나 강 같은 물 느낌 나는 것뿐만 아니라 초원이나 정원 같은 것도 있구나.”

“보아하니 물병은 사후세계에서 고인의 갈증을 달래준다, 대략 그런 염원을 담은 것 같아요.”

시미코는 말을 이어가면서도 가슴 포켓에 꽂아두었던 수첩과 펜을 꺼내 일사천리로 필기를 시작했다.

종이 위에는 도감 속 방대한 내용 중 핵심 정보들만이 쏙쏙 추려져 적혀 내려갔다.

“그나저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하트 문양’도 엄밀히는 조금 다른데요.”

“어, 그래……?”

익숙한 속도로 펜을 굴리던 단정한 옆얼굴이 홱 돌아섰다.

그 총명한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던 선생은 불시에 시미코와 눈이 마주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 마크, 실은 문장부호예요.

흥미롭게도 한 문장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찍혀 있거든요.

문법적으로는 불필요할 정도로요.”

“헤, 헤에…….”

“말하자면 장식용인 셈이죠.

식물이 모티프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건 아마 나뭇잎이나 열매일 거예요.”

시미코의 식견이 미치는 범위는 비단 다국어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1학년이라는 신분임에도 트리니티 중앙도서관의 모든 장서를 완벽히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독보적인 재능은 사서로서의 자질을 만개시켰다.

시미코는 이미 상대의 의문에 가장 적절하고 타당한 도서를 순식간에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압도적인 지식량이 밑바탕 되지 않는다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묘기였다.

선생은 고뇌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우수한 학생에게 과연 자신은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시미코를 향한 존경이 깊어질수록, 그 감정은 자괴감 섞인 미련으로 뒤바뀌어 갔다.

“그렇긴 해도 확실히 하트 쪽이 더 귀여워서 전 마음에 들어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소녀의 곁에서 선생은 홀로 속앓이를 삼켰다.

오늘 밤은 꼼짝없이 시미코 생각밖에 안 날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쉼 없이 움직이던 손이 마침내 멈췄다.

“…대충 이 정도겠네요. 혹시 몰라서 필요할 것 같은 부분만 몇 장으로 추려두었어요.”

“고마워, 시미코…….”

시미코는 쑥스러운 기색으로 뜯어낸 메모지 몇 장을 선생에게 건넸다.

그곳에는 석판의 정체와 더불어 도상의 내용이 상세하게 풀이된 요약들이 단정한 필체로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1 / 3

“어쩐지 미안하네. 끝까지 도움만 받아서.”

“아니에요. 선생님께선 저뿐만 아니라 키보토스 전역의 평화를 지켜주고 계시잖아요.”

도록을 탁 덮은 시미코는 일어서며 뻐근하게 굳은 몸을 기지개로 활짝 폈다.

그 반동으로 스커트가 허벅지 위까지 펄럭이자 선생은 화들짝 놀라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에서 눈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실례할게요.”

“남은 작업은 이제 괜찮은 거야?”

“수업이 없는 시간대마다 손이 비는 도서부원끼리 분담하고 있거든요.

전 이제 5교시 수업이 있어서요.”

전해 듣기로는 소형 트럭에 짐을 싣는 작업은 방과 후에 부원들이 총출동해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소각장으로의 운반은 적재가 끝나는 대로 위탁업체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트럭은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일단 운반 작업은 학원 측이 지정한 단골 업체가 맡는다고는 하지만,

이 엄청난 양의 도서를 단 한 대로 전부 옮긴다는 그림이 선생으로선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이윽고 두어 마디 대화를 더 나눈 뒤, 시미코는 빈 카트를 밀며 본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던 선생은 학생이 뒷문을 열려던 찰나 무심코 불러 세웠다.

“시미코!”

“네에-”

“그, 저기…앞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선생은 위축되어 있었다.

도움만 받는 처지에 과연 시미코의 곁을 지켜줄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무리 작고 초라할지라도 선생은 학생에게 또 다른 안식처가 되어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의무감이기 이전에 선생 자신이 품은 이상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상담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연락해 줘!”

그 말을 들은 시미코는 신뢰가 묻어나는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막 말씀하시다간 정말로 잔뜩 응석 부릴지도 몰라요! 저도 모르니까요-!”

뒷문이 닫히는 소리에 이어 찾아온 것은 적막이 아니었다.

주위의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싱그러운 잎사귀를 비벼댔다.

저 멀리 일과의 끝을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 틈새로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선생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비밀의 뒤뜰을 나섰다.

두 손에는 폐기 처분 직전 건져낸 사전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

<4>

이튿날 아침, 제적 도서를 운반하던 트럭이 산길 커브에서 사고를 일으켰다.

원인은 야생동물의 난입이었다.

차량은 규정 속도를 준수하고 있었으나, 급커브를 돌던 찰나 길을 건너던 여우 모녀와 불운하게 마주치고 말았다.

돌발 상황에 당황한 운전수는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무심코 핸들을 꺾어 회피하려 했다.

속도를 유지한 차체는 내리막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전복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피해 상황은 다행히 화물차 한 대의 완파 수준에 그쳤다.

운전석의 안드로이드가 경상을 입었을 뿐, 사망자를 비롯한 중대한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운반되던 제적 도서들은 비극을 맞았다.

과적에 가까웠던 물량이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복된 충격으로 로프가 맥없이 뜯겨나갔고, 적재물의 태반이 일대에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지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커브 바깥쪽의 지형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였다.

수많은 책들이 낭떠러지 아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선생이 시미코에게 소식을 접했을 때, 사고가 발생한 지는 이미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죄송해요, 벌써부터 말씀에 기대게 되어서…….》

《괜찮아. 지금은 일단 어디 있는지 위치만 알려줘.》

도와달라는 막연한 메시지로 시작된 대화창에 곧바로 위치 정보가 전송되었다.

지도 앱을 통해 표시된 아이콘은 사고 현장 바로 아래, 비탈길을 내려간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 선생은 즉시 업무를 접어두고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도서위원회가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당일 오전 9시가 막 지난 무렵이었다.

트리니티에 연락이 닿았을 때에는 이미 발키리가 현장에 출동해 있었다.

한편 일련의 사후처리에 대해서는 운반을 위탁받았던 운송업체 측이 책임을 도맡는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된 상태였다.

따라서 본래대로라면 이번 일에 도서위원회가 발 벗고 나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시미코의 직감은 오직 한 지점만을 강렬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업체 측은 결코 제적 도서들의 뒷수습을 완벽하게 해주지 않을 것이다.

도로 위에 나뒹구는, 눈에 뻔히 보이는 범위 내에서만 대충 책을 회수하고 치울 게 분명했다.

―따라서 이는 전부 시미코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선생은 핸들을 매만지며 눈앞의 빨간불에 애를 태웠다.

비상 상황일 때는 늘 이랬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신호에 걸리는 횟수는 늘어나고 신호등 색이 바뀌기까지의 시간도 하염없이 길어진다.

사고가 난 산은 종합학원 별관의 합숙소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보충수업부의 임시 고문을 맡았던 시절 선생은 수영장 가에서 그 능선을 몇 번이고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험난한 시련을 마주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았던 네 사람.

남을 믿지 못했던 가련한 학생.

합숙소가 있는 별관 주변을 밥 먹듯이 드나들었던 선생은 기억 속에 각인된 풍경을 나침반 삼아 샛길로 질주했다.

머지않아 목적지인 산길에 당도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이미 시미코의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아이콘이 깜빡이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가까이 차를 대고 싶었지만, 급경사를 내려갈 장비까지 갖추고 있을 리 만무했다.

선생은 일단 차를 갓길에 세운 뒤 걸어서 내려갈 수 있을 법한 곳을 물색했다.

다행히 비탈 아래로 진입할 만한 틈을 발견하자 차를 몰고 가 주차한 뒤 두 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장되지 않은 야생의 산길은 상상 이상으로 험악했다.

지면은 놀라울 정도로 무르고 푹푹 발이 빠졌으며, 깊게 패인 굴곡은 걷기에 불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갈과 나뭇가지 부스러기들이 신발 안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선생은 등산화를 챙겨오지 않은 안일함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발걸음을 방해하는 찝찝한 불쾌감은 멘탈을 착실하게 갉아먹었다.

게다가 아무리 기를 쓰고 걸어도 어째 거리는 당최 좁혀지지 않았다.

최대한 완만한 지형을 골라 걷고 있는데도 이동 속도는 제자리걸음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산의 적막을 찢어발기며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번쩍 깬 날카로운 긴장감이 선생의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발 디딜 곳조차 마땅찮은 험로를 내달리며 선생의 뇌리에는 줄곧 최악의 상황만이 스쳐 지나갔다.

곰, 멧돼지, 늑대.

그런 맹수들에게 습격당하는 시미코의 모습…아니, 학생들의 신체 스펙을 생각하면 용맹하게 맞서는 그림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디 하나 다쳤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한가하게 숨을 고를 여유 따윈 없었다.

그렇게 발버둥 치는 사이, 두 번째 총성이 고막을 때렸다.

아까보다 소리가 훨씬 가깝다.

시미코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확신한 선생은 앞길을 가로막는 비탈을 다급하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솟은 언덕을 오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허둥지둥 서두르던 선생은 얼마 못 가 비탈 중턱의 낙엽 더미에 발이 푹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가파른 경사 덕에 반사적으로 짚은 두 팔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선생은 자세를 고쳐 잡는 대신 그대로 네 발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서툰 발놀림보다는 이쪽이 훨씬 빠르고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시야가 확 트임과 동시에, 세 번째 총성이 바로 눈앞에서 작렬했다.

“시ㅡ미ㅡ코ㅡ!”

“우와아앗!? …선생님?”

수풀 속에서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선생의 기괴한 몰골에 시미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친 숨을 씩씩 몰아쉬며 엉금엉금 기어 나온 선생의 눈앞에는, 긴 머리를 미들 포니테일로 묶어 올린 실루엣이 우뚝 서 있었다.

학원 지정 체육복을 입은 그 자태는 총열에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돌격소총을 능숙하게 겨누고 있었다.

“까, 깜짝 놀랐잖아요. 엉뚱하게 야생동물이라도 유인해 버린 줄 알았어요.”

“시, 시미코…쏘지 마…….”

“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이건 그, 그런 게 아니라요!”

눈물범벅으로 두 손을 번쩍 든 선생의 미간에 본의 아니게 총구가 겨눠져 있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시미코가 화들짝 놀라며 총을 등 뒤로 감췄다.

격발의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아무래도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책을 쏴서 떨어뜨리려던 모양이었다.

시미코가 가리킨 곳을 올려다보니, 몇 권의 도서가 활짝 펼쳐진 채 나뭇가지에 얽혀 있었다.

똑같은 꼴이 된 책들은 다른 큰 나무들에도 여럿 걸려 있었다.

떨어진 진원지를 찾으려 하늘을 둘러보던 시선은 나무 바로 옆에 우뚝 솟은 수직 절벽에 닿았다.

그 꼭대기에는 사고의 흔적인지 살짝 찌그러진 가드레일이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추락하던 제적 도서들을 우연히도 울창한 나뭇가지들이 받아내 준 것이 틀림없었다.

시미코는 그걸 총알로 털어내 회수하려던 참이었다.

키보토스 학생들이 종종 보여주는 이런 대담함에 선생은 새삼 식은땀을 흘렸다.

“부근에 도착하시면 연락이라도 한 통 주실 줄 알았는데. 제가 불러놓고 정말 죄송해요…….”

“아냐 아냐, 전혀! 완전 멀쩡해! 그것보다 지금 상황은 어때?”

“그게, 저기…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아서요.”

“아…….”

시미코가 눈짓한 곳에는 다소 자그마한 방수포가 깔려 있었다.

그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방대한 책들을 목격한 선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간단히 말해, 추락한 책의 권수는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선생은 출발 전 차 안에 굴러다니던 짐들을 전부 꺼내두고 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헛수고였다.

시트 위에 펼쳐진 제적 도서들의 부피는 일반 승용차 따위에 도저히 다 들어갈 만한 물량이 아니었다.

“어쩌죠. 원래는 선생님께 운반을 부탁드릴 계획이었는데.”

“응. 나도 기껏해야 수십 권 정도일 줄 알았거든…….”

“연락드렸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만큼 심각한 권수라는 걸 알게 돼서요…….”

즉, 여기에 모아둔 책들을 전부 운반하려면 차도와 숲속을 수없이 오가야 한다는 뜻이다.

험난한 길을 감안하면 도저히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작업량이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누군가 추가로 이쪽을 찾아올 예정은……?”

“아니요.

저쪽 정리는 거의 다 끝났을 텐데, 선생님 말고는 여기까지 와 주신 분이 없었어요.”

“…….”

“역시 굴러떨어진 책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나 봐요.”

“달리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은 없을까?”

“…일단, 도서부 아이들이라면 아마도요.”

“알겠어. 우선 몇 명한테 도와달라고 해볼까?”

“아, 잠깐만요―”

“?”

스마트폰을 꺼내 든 선생을 시미코가 다급히 말렸다.

말을 잇기 전에 그녀는 어딘가 우물쭈물하는 기색이었다.

“그…죄송해요.

실은, 지금 이렇게 회수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요.”

“어…왜?”

“제멋대로 하는 일인걸요. 게다가…….”

난처해하던 시미코의 표정이 점차 그늘진 기색으로 물들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의 컨디션이 무너져 내리는 신호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위기감을 느낀 선생이 달래주려 입을 떼려던 찰나, 시미코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

저 같은 사람의 이기적인 고집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아요.”

그 말은 어딘가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힘없이 내리깐 눈동자는 한곳을 응시하는 듯하면서도, 그저 텅 빈 허공만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선생은 학생의 '광기'를 이해했다.

2 / 3

“지금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이상한 거잖아요.

분명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에요.

버려질 책 따위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다니―”

사실은 여기에 불려 온 시점에서 눈치채야 했다.

제적 도서는 이미 손을 떠난 상태였다.

하지만 시미코는 그것들이 소각되는 순간까지도 그 앞날을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심리는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선생은 이러한 행동 원리를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야 했다.

시미코의 마음은 그 어떤 도서부원보다도 섬세하고 예민했다.

어쩌면 우이보다도 훨씬 더, 버려지는 책들에게 집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녀는 그 감정을 '광기'라 이름 붙이고, 그저 끝없이 부정해 온 것이다.

시미코는 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애정은 상궤를 벗어나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향해 그녀가 내린 낙인이었다.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하거나 비웃기라도 한 거야?”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시미코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그녀의 독백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학생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선생은 직감했다.

시미코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 집착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활자뿐만이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향한 애정, 비블리오필리아.

해결책은 간단했다.

용기를 내어 털어놓으면 된다.

분명 시미코의 주변에는…적어도 도서부라는 울타리 안에는 시미코의 유별난 애정을 헐뜯을 사람은 없다.

있을 리가 없다.

만에 하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고서관의 마술사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의 형태를 결코 차별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선생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어찌 되었든 선생으로서 시미코가 품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이 자리에서 털어내 주어야만 했다.

“…죄송해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요. 방금 한 말은 부디 잊어주세요.”

어느샌가 시미코의 얼굴에는 익숙하고 부드러운 웃음이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쁨이 아니었다.

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학생 특유의, 애써 짓는 괴로움의 미소였다.

선생은 고민했다.

처음에는 며칠에 나누어 운반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소 비효율적이긴 해도 둘이 작업을 끝내기에는 그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 저녁부터 다음 주에 걸쳐 줄곧 비 예보가 내려져 있었다.

시미코의 본능이 그것을 용납할 리 만무했다.

다음으로 선생은 소인원으로 조작 가능한 운반용 장비나 중장비를 빌려줄 만한 학생들의 얼굴을 몇 명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지금 연락해 봐야 늦는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직접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비추는 나뭇잎 사이 햇살의 색채가 머지않아 황혼이 찾아올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선생은 학생의 곁에 다가서기 위해 광기에는 광기로 대응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럼 말이야. 차라리 묻어버릴까?”

“―네?”

너무나 엉뚱한 발상에 시미코의 사고가 일시 정지했다.

“그러니까, 묻어주자는 거지. 매장해 주는 거야.”

“…….”

“어차피 오늘 밤부터 비도 오고, 옮길 방법도 없잖아.

그 결말이 소각 처분이냐, 아니면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딱 그 정도의 차이뿐인 거 아닐까?”

선생의 발상은 마치 나사가 하나 빠진 것만 같았다.

책을 매장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애니미즘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광인의 기행이나 다름없었다.

온전한 감각을 가진 인간이 태연하게 해낼 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손가락질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산림이라는 공간에 제삼자의 시선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오직 선생과 학생, 두 사람뿐.

두 사람이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전부 둘만의 가치관으로 정당화된다.

둘이서 정한 그 자리만의 상식은 이제 누구에게도 부정당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시미코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이 광기는 온전한 상식으로 탈바꿈한다.

“…좋은, 생각이네요.”

영리한 학생은 마침내 선생의 의도를 이해했다.

시미코는 깨달았다.

눈앞의 어른은 방금 학생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스스로가 광기라며 부정하던 이 주체할 수 없이 성가신 감정을 온전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 일처럼 절박하게 이해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해 주었다.

그 다정함은 겁먹은 등을 가만히 밀어주는 것만 같았다.

“괜찮으시다면, 저도 거들어도 될까요?”

“오케이!☆”

시미코의 대답을 들은 선생은 곧바로 파란 방수포를 향해 내달렸다.

시미코가 기운이 남은 김에 함께 회수해 두었던 업체의 삽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학생의 표정은 어느새 한 점 흐림 없이 활짝 개어 있었다.

<5> 에필로그

매장식은 생각 외로 수월하게 끝났다.

선생이 땅에 구덩이를 파는 동안, 시미코는 미처 다 수거하지 못한 책들을 그러모았다.

시미코가 애용하는 SCAR-H를 단발로 쏘아 책을 떨어뜨리는 곁에서 선생은 기를 쓰고 구덩이를 파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의 흙이 부드러워 작업은 순조로웠다.

올 때는 그렇게나 발목을 잡던 지형이 이제 와서는 아군이 되어준 것 같아 선생은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대략적인 정리를 마친 뒤, 방수포에서 책을 옮기는 작업은 함께 진행했다.

넓게 파인 땅의 웅덩이로 소임을 다한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땅속에 책이 정갈하게 늘어서는 그 광경은 묘한 숭고함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흙을 덮기 직전, 시미코는 책들 위에 조용히 손을 얹고 들릴 듯 말 듯 몇 마디를 속삭였다.

폐기 처분 트럭을 배웅할 때마다 늘 빼놓지 않던 작별 인사라고 했다.

그 말의 내용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선생은 왠지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바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뭐 쓰는 거야?”

“아, 이거요?”

선생이 파냈던 흙을 도로 다 메워갈 무렵, 시미코는 어디선가 주머니칼을 꺼내 무언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질문할 겸 선생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시미코가 깎아내던 각목의 표면에는 'STTL'이라는 알파벳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Sit tivi terra levis.”

“?”

“'대지가, 그대 위에서 가볍기를.'”

그것은 책벌레가 바치는 소박한 추도의 말이었다.

시미코가 읊은 언어는 발음으로 미루어 보아 라틴어가 분명했다.

글자를 다 새기고 톱밥을 후 불어 털어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선생은 그 작업의 의도를 이해했다.

“헤에…참 예쁜 말이네.”

“어제 선생님께서 찾아보시던 묘비명에서 영감을 얻어 떠올려 봤어요.

보세요.

이런 식으로 각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새기는 거예요.”

짧은 문장이 새겨진 목재는 책들을 묻어둔 대지에 깊숙이 꽂혔다.

그 즉석 묘비는 땅속에 잠든 책들을 기리기에는 충분히 어엿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응. 완벽해~”

“이렇게 보니까, 정말 사람 무덤 같네요.”

“어쩌면 책이나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 농담이지만.”

“그렇네요. 정말 꼭 맞는 비유 같아요.”

“응?”

“도서를 제적하는 데에는요, 시설 전체의 수장 공간을 확보한다는 또 다른 목적도 있거든요.”

“그렇구나. 그러니까…세대교체, 같은 건가?”

“네.

매년 늘어나는 아이들을 가능한 한 많이 품어주기 위해 나이 든 책들은 남몰래 떠나가는 거예요.”

그것은 거대한 순환이었다.

생명이 새로운 싹을 틔워 미래로 이어가듯, 책 또한 비슷한 메커니즘을 통해 그 총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수명을 다한 인간의 죽음이 그러하듯,

제적을 통한 책의 죽음 역시 이 세계에 다채로운 색을 입히고 문자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귀중한 과정이었다.

트리니티에 없는 책은 키보토스에도 없다.

그 소문이 상징하는 기대와 신뢰는 분명, 매일같이 반복되는 방대한 취사선택을 통해 지탱되는 것이다.

도서관이라는 세계에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는 생각보다 인간의 삶과 퍽 닮아 있는, 지식의 번영을 위한 숭고한 영위였다.

“그러니까 더더욱, 경의를 표해야만 해요.

한때 우리의 눈을 뜨이게 해준 위대한 지식의 거인들을 기리며…….”

시미코는 기도를 올리듯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 단정한 기도의 자태는 학원이 신봉하는 종파의 숨결을 새삼 실감케 할 만큼 정숙했다.

선생은 시미코를 따라 살며시 두 손을 모았다.

설령 이 행위가 부질없는 짓이었다 해도, 적어도 시미코의 기도만큼은 온전히 그들에게 닿았기를.

선생과 학생의 긴 하루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차로 바래다주는 귀갓길, 시미코는 피로가 몰려왔는지 조수석에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런 따스한 풍경도 잠시, 기울어진 해의 여운은 짧았고 사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마침내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부지 앞을 지날 무렵에는 보슬보슬 가랑비마저 흩날리기 시작했다.

시미코의 집 앞에 도착한 선생은 그녀를 깨우려다 스마트폰의 알림을 알아차렸다.

모모톡을 열어보니 어느새 우이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와일드헌트에서의 소동은 무사히 해결된 모양이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선생은 시미코의 활약상을 소상히 전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타닥타닥 가상 키보드를 두드리며 선생은 다시금 조수석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시미코는 밝고 사교적으로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방이 있었다.

언젠가 그녀에게도 진정한 이해자가 필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자의 역할을 선생은 우이에게 맡겨보고 싶어졌다.

바통을 터치하듯 아츠코에게서 알림이 뜬 것은 딱 우이에게 메시지를 보낸 찰나의 순간이었다.

지체 없이 대화방을 열자, 새로운 사진이 한 장 도착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멀리 산맥을 마주한 황혼 녘의 웅대한 황야를 배경으로 허공을 향해 꽃을 바치는 미사키의 뒷모습이 역광 속에 담겨 있었다.

《어제는 고마웠어, 선생님. 큰 도움이 됐어.》

《아냐, 별말을. 사실 난 딱히 한 것도 없는걸.》

《그래도 설마 이틀 만에 알아봐 줄 줄은 몰랐어.

그, 트리니티의 시미코라는 사람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줄래?》

《물론이지. 잊지 않고 전해줄게.》

어제저녁, 선생에게서 석판의 정체에 대해 전해 들은 아츠코는 주운 물건을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멋대로 가져왔던 것에 대한 사죄도 겸해 스쿼드는 출발을 하루 미루고 소박한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고 한다.

그냥 팔아넘길 생각이었던 히요리는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수긍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지금 딱 헌화하던 참이야.

미사키가 서 있는 게 꽤 그림이 되길래 몰래 한 장 찍었어》

선생은 살짝 놀랐다.

스쿼드 아이들도 이쪽과 거의 같은 타이밍에 조의를 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에 어딘가 우연이라는 이름의 신비로운 인과를 느끼게 된다.

《어떡할래? 선생님도 빅토라 씨한테 남기고 싶은 말 있어?》

그것은 아츠코다운 장난기였다.

별 생각 없이 던진 가벼운 물음이었을 것이다.

《으~음, 그러게. 그럼 말이지―》

하지만 선생은 진지하게 답해주고 싶었다.

조금 전, 책들을 애도하는 기묘한 장례에 함께했던 것은 어쩌면 지금 작별의 인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시미코와 함께했던 그 잊지 못할 아카이브를 무언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어주고 싶었다.

S T L L.

선생은 그 네 글자를 화면에 입력했다.

고개를 갸웃거릴 아츠코를 위해 선생은 묘비명의 전체 문장을 함께 덧붙여 보내주기로 했다.

―Sit tivi terra levis.

―대지가, 그대 위에서 가볍기를.

3 / 3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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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9일 전번역

소설 핫산) 책벌레의 매장법 Part 2(完)

#소설
좋아요 0댓글 2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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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
Rubbish Box작가
게시물 2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10.18 23:01
조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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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나
ㅇDC
ㅇㅇ19일 전

이것은 귀한 시미코 소설

ㅇDC
ㅇㅇ29일 전

좋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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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핫산) 책벌레의 매장법
RRubbish Box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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