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
"드디어 내일..."
트리니티 기숙사의 다락방에서 나는 눈앞의 물건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2월 13일 21시 13분. 세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2월 14일이라는 내일을 맞이하기까지는.
밸런타인. 사랑에 빠진 소녀라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연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날. 이 날 용기를 내어 멋지게 상대의 마음을 떨어뜨려 연인이 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의중의 사람에게 차여 실연을 당해 베개를 적신 사람도 분명 적지 않을 터.
"내일......?"
다시 한번 눈앞의 물건을 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아까의 혼잣말이 조용히 사라진 것과 달리 내 심장은 쿵쾅거릴 정도로 울리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해왔었다. 당일에 전달할 과자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혼자 주방에 섰다. 만드는 법 같은 건 몰라서 과자 레시피 책도 샀지만 몇 번이나 실패했다. 과자 만드는 게 취미인 나기쨩에게 도움을 청하려고도 했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만든 물건을 건네주고 싶어서 며칠이고 며칠이고 실수를 반복했고, 겨우 오늘에서야 납득할 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귀여운 포장도 했고 나머지는 내일 주기만 하면 끝. 준비는 완벽하다. 단 한가지. 내 마음만 빼고.
"내일 건네는 거야...? 이걸... 선생님에게...?"
내 눈앞의 물건. 즉 하트 모양의 초콜릿은 책상 위에서 기이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나를 계속 압박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우물쭈물하고 있을 건가요?"
"좀 더 포장해서 말해줄래?"
내 맞은편에 앉아 꽤 그럴듯한 모습으로 홍차를 마시는 나기쨩이 그렇게 말했다.
2월 14일 15시 30분. 밸런타인 당일. 나는 아직도 선생님께 초콜릿을 전달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오늘 트리니티에 와 있는건 미리 알고 있었다. 샬레 당번 날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 일정을 물어보았으니까.
운이 좋았는지 시스터후드나 구호기사단 같은 조직의 일 같은걸로 트리니티에서의 용무가 우연히 오늘날 밀집해 있었다. 아마 선생님은 오늘 꽤 늦은 시간까지 트리니티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초콜릿을 줄 기회는 아직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초콜릿을 전달할 기회는 있었을 텐데요."
"화... 확실히 있었지만, 바쁠때 주는건 좋지 않으려나 해서..."
"미카씨가 그 초코에 얼마만큼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해도 초코를 건네는 행위는 그렇게 시간을 끄는게 아닐겁니다. 어쨌든 선생님은 오늘 계속 바쁘실테니 미룰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왕이면 일이 끝난 후에 천천히...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통금시간, 잊지 않으셨겠죠?"
선생님의 일이 끝날 때쯤이면 통금시간은 지났을 겁니다. 나기쨩이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선생님의 일이 끝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나기쨩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나도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알고 있어요. 아침부터 초콜릿을 주기 위해 선생님 뒤를 따라다녔다는 걸."
"자... 잠깐,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설마 진짜 따라다녔던 건가요? 지금 건 조금 떠본것 뿐입니다만."
"나기쨩!!!"
물론 나도 주려고 했다. 그것도 아침 일찍 부터. 그러나 주지 못했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 아무래도 다리가 움츠러들었으니까. 그때 뇌리를 스치는 것은 언제나 나쁜 망상. 받아주지 않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은 내 용기를 쉽게 능가했다.
게다가... 아직 초콜릿을 주지 못한 것은 분명 이 초코가 하트모양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어디선가 초콜릿 사올까... 딱 봐도 의리로 보이는 거."
"......정말 그걸로 괜찮은가요? 며칠 전부터 열심히 만든 미카씨의 마음이 가득 담긴 초코잖아요."
"괜찮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하트가 아파..."
진심 초콜릿이니 모양은 당연히 하트잖아. 나의 단순한 그 생각은 지금의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밸런타인데이에 하트 초콜릿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여러 사람이 오늘이라는 날 울고 웃었지.
설령 울게 된다고 해도... 그렇더라도 나는 그 의미를 전하고 싶어서 하트 초콜릿을 만들었다. 이 마음을 전하는데 오늘보다 안성맞춤인 날은 그다지 없으니까. 그런데도 전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은 겁만 먹고 선생님께 다가가기조차 주저하고 만다. 선생님을 쏘아맞히기 위해 만든 이 하트 초콜릿은 나에게 그 특별한 의미를 생생하게 전해와 나를 이렇게나 두렵게 만든다.
"나 같은 문제아가 이런 걸주면... 선생님도 곤란해지겠지..."
그리고 나는 적당한 이유를 대어 이 초콜릿을 주지 못한 변명을 만든다. 주지 못하는 것은 겁이 많아서가 아니다. 선생님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손에 든 초코에 눈을 향했다가 이내 돌렸다. 하트의 위력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긴 학생에게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받는다는 건 선생님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도 있겠네요."
"역시 그렇겠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시판되는 초콜릿을..."
"그러나, 곤란하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늘정도는."
"나기쨩...?"
뜻밖의 말이 나기쨩의 입에서 나왔다. 곤란하게 해도 괜찮다니. 평소 나기쨩이라면 절대 말하지 않을텐데.
"미카씨도 그 초콜릿이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건 싫겠죠?"
"...절대 싫어."
"그럼 역시 넘겨드려야죠. 오늘은 밸런타인이니까 그 하트 초콜릿으로 선생님을 곤란하게 해도 분명 용서받을 거예요."
사실은 이 초코를 주고 싶다. 의리 초콜릿을 선생님께 드려도 난 분명 만족할 수 없겠지. 하지만 겁이 많은 내가 내 발은 멈춘다. 심장을 뛰게하고 땀을 뿜게 만들고 강제로 나쁜 망상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역시 초콜릿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고 주지 못하면 분명 나는 후회하게 될 거다.
다시 손에 든 초콜릿을 본다. 이 하트 초콜릿이 나를 겁먹게 만들었어. 애초부터 나는 겁이 많았지. 아무렇지 않은 날에 선생님 앞에 서는 것만으로 평소의 나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될 정도로.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문제아라는 사실뿐.
"뭐, 미카씨는 밸런타인뿐만 아니라 항상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만."
"줄 수 있을까...?"
"줄 수 있어요. 장난을 좋아하는 문제아인 미카씨라면."
하트 초코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은 내가 평소처럼 선생님을 곤란하게 할 뿐. 그리고 곤란하게 해도 밸런타인이라는 오늘의 면죄부가 있다.
겁이 많은 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 앞에 서면 다리는 떨리고, 분명 말도 잘 나오지 않겠지. 게다가 딱히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닌데. 오히려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선생님에게 문제아로서의 나를 보여주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하지만 이 초코를 주지 못하는 것만은 싫으니까.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은 이 하트 초콜릿에 맡기고 지금만 의도적으로 문제아인 나를 꺼낸다.
"고마워, 나기쨩. 지금이라면 왠지 건넬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다행이군요."
겁이 많은 내가 하트 초콜릿을 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하지만 언젠가 초콜릿에 맡긴 이 마음을 말로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저는 이쯤에서. 지금부터 선생님께 초콜릿을 드리러 가야 하니까요."
"에!? 나기쨩도 선생님에게 초콜릿 주는거야!?"
"물론이죠. 선생님께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 보여준다. 분홍색 상자에 하늘색 리본이 새겨진 귀여운 케이스. 맹점이었어. 하지만 확실히 나기쨩도 선생님과는 사이좋고 초콜릿을 주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진심... 일까? 상자 안의 초콜릿이 어떤건지는 알 수 없다.
"그 초콜릿은 수제? 모양은? 별님? 클로버? 아니면..."
"미카씨."
연달아 질문하는 나를 한마디로 제압한 뒤 나기쨩은 검지를 입가에 대고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비밀입니다."
"초콜릿을 도둑맞았다고!?"
17시 33분. 트리니티 공원에서 나는 어딘가 새파란 얼굴을 한 선생님에게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시간은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 나는 나기쨩이 선생님께 초콜릿을 전하러 간 후, 조금 시간을 두고 나도 선생님께 초콜릿을 건네기 위해 일어섰다. 오늘 선생님의 스케줄은 다 머리에 들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건네줄 때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실제로 바로 발견됐다.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장소와는 거리가 멀어서 놀랐지만 선생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 공원은 초콜릿을 건네기엔 안성맞춤이라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심호흡 후 나는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와! 선생님 오랜만☆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야?"
"!...미카."
"에, 정말 무슨 일 있어?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이미지대로 초콜릿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걸었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저 일하느라 피곤했을 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얼굴을 선생님은 하고 있었다.
"뭔가 곤란한 일이야? 괜찮다면 얘기해줘. 나는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몇 초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 뒤 선생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물고는 다시 소리내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 때문에 트리니티 여기저기에 갔었는데, 오늘은 밸런타인이잖아. 고맙게도 여러사람에게 초콜릿을 받았어."
이런 시간이면 시스터후드나 구호기사단과는 만났을 테고, 그 아이들에게 초코를 받았으려나. 어쩌면 보충수업부나 정의실현부 아이들에게도 받았을지 몰라.
"나기사와 세이아에게서도 받았어. 자랑은 아니지만 양손으로는 들 수 없어서 봉지를 몇개 받아서 그 안에 초코를 넣었거든."
와―오... 이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은 거 같네. 뭐. 그것도 그렇겠지. 선생님은 엄청 상냥하고 멋있는걸. 분명 내가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받고 있을 거야.
혹시 선생님의 곤란한 일이라는게...
"초콜릿을 너무 많이 받아서 어떻게 할까 망설여지는거야? 얘길 들어보니 많이 받은 거 같은데."
분명 혼자 먹기는 힘든 양이겠지. 매일 롤케이크를 먹던 나는 알아. 물려.
"하하, 확실히 좀 어떻게 할지 고민은 했지만 그거랑은 달라. 실은... 다음 일 때문에 이 근방을 걷고 있을 때... 절도를 당했어."
"엑... 절도? 선생님 다치지않았어...?"
"나는 말이지. 하지만 소중한 물건을 도둑맞고 만거야."
"소중한 물건?"
"모두가 준.... 초콜릿이 든 봉투를 도둑맞고 말았어."
"초콜릿을 도둑맞았다고!?"
초콜릿을 많이 받고 어쩌고 할 때가 아니었다. 그 초콜릿이 누군가에 의해 도둑맞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상냥한 선생님이다. 학생이 준 초콜릿을 도둑맞았다면 분명 엄청 마음앓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게 선생님의 책임이 아니더라도.
"범인은 2인조에 헬멧을 쓰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찾았지만 결국 찾지못해서 말이야. 그렇게 벤치에서 늘어져 있을 때 미카가 온 거야."
선생님은 힘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선생님을 빤히 바라본다.
그 새파래진 얼굴에, 평소의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다정한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곤란하게만 하는 나라면 모른체 했을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에게 이런 얼굴을 하게 한 상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선생님을 향해 말을 꺼냈다.
"항상 선생님의 도움만 받았었지."
"......미카?"
"그러니 이제 내 차례. 날 믿어줘, 선생님. 초콜릿은 꼭 오늘 안에 내가 되찾아 줄게."
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진게 보인다. 놀랐으려나? 나는 선생님이 곤란하면 언제든지 도우러 올게.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선생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고마워, 미카. 나도 우울한 채로 있을 수는 없겠지. 같이 초콜릿을 되찾자!"
"협력 play네☆"
순간, 선생님의 핸드폰에 착신이 들어오고 선생님이 핸드폰을 집어든다.
"하스미?"
하스미쨩. 분명히 정의실현부의 부부장...
"미안, 전화 좀 받을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스미입니다.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실까요?」
"응, 무슨 일이야?"
「실은 조금 전부터 정의실현부에 다수의 신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어떤 신고?"
「네. 헬멧을 쓴 2인조에 초콜릿을 도둑맞았다는 신고가 수십 건 정도...」
"!? 초콜릿을...!"
초콜릿...? 하스미쨩과 통화중인 선생님에게서 신경쓰이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선생님이 나를 쳐다본다. 틀림없다. 전화의 내용은 분명 이번 건에 관한 얘기.
선생님께 스피커로 해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선생님으로 양해의 신호와 하스미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선생님께 초코를 드렸을 때는 이미 초콜릿을 많이 받으셨기에 혹시 선생님도 그 피해를 입지 않으셨나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렇구나... 나 말고도 초콜릿을 도둑맞은 사람이 많다니..."
「나 말고도 라는 건... 선생님도 초콜릿을!? 용서할 수 없어요...!」
하스미쨩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정의심에서 오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하스미쨩도 초콜릿을 건넨 것 같다. 준 초콜릿이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도둑맞았다니, 내가 그 입장이라면 분명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겠지.
"범인이 있는 곳은 짐작가?"
「죄송합니다, 그건 아직...」
"그건 그렇고 범인은 초콜릿을 그렇게 모아서 어떻게 할 생각일까?"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 보았다. 스마트폰에서 의문을 띤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만, 누군가 있나요...?」
"어? 아아, 실은..."
"쨘~☆ 미소노 미카야!"
「미카님...!?」
어째서 선생님과 함께!? 그런 놀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은 선생님과 초콜릿을 되찾기 위해 협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범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나에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는걸☆"
「그, 그런 거였습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범인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고...」
아무래도 정의실현부 쪽에서도 범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헬멧을 쓰고 있으니 얼굴도 모르고...
"미카가 말한 거지만 확실히 범인은 초콜릿을 잔뜩 모아서 뭘 목적으로 하는 걸까?"
선생님이 아까 나의 의문을 다시금 말한다.
"얼굴을 모르니 모든 사건이 동일범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만약 두 사람뿐이라면 먹기에는 초콜릿이 너무 많아.
「피해자들에게 듣는 한 2인조의 외모 증언은 거의 일치합니다. 그래서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만... 그러나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대체...?」
"음, 뭐려나. 머리 쓰는 일은 잘 못하는데."
그래도 선생님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내가 탄 배니까 잘 못한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머리에서 연기가 날 뻔했을 때쯤, 문득 공원 입구 근처를 걷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그저 걷고 있을 뿐이었다. 손에 있는 물건을 들고 그저 걷고 있을 뿐. 그러나 그 어떤 물건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미카? 무슨 일 있어?"
"선생님, 저거!"
내 손가락 끝, 나와 선생님의 시선이 같은 곳으로 향한다. 선생님이 작게 소리를 흘린다. 역시 저건...
확인을 위해 선생님과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신가요!?」
"미안, 하스미. 나중에 또 연락할게!"
걷던 행인 앞을 가로막는다. 손에 쥔 물건을 가까이서 보고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분홍색 상자에 한르색 리본이 새겨진 귀여운 케이스. 틀림없다. 이건 나기쨩이 선생님께 드린 초코!
"뭐야 너희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선!"
"그 초콜릿! 대체 어디서 난거야!?"
"뭐!? 초콜릿?"
나기쨩이 만든 초콜릿을 가지고 있다는 건 2인조 중 한 명? 아니면 그 관계자? 어차피 초콜릿을 되찾으려면 이 사람에게 차분히 얘기를 들어야겠지만.
"그 초콜릿, 당신 거 아니지? 누구한테 받은 거야? 아니면 누구한테 뺏은 거야?"
"대체 뭐야 갑자기!? 이 초콜릿은 내 거야!"
"거짓말 하지마! 그 초콜릿을 가져도 되는건 당신이 아니야!"
"어째서 내가 가지면 안 된다는 건데! 제대로 돈 주고 샀어!!"
"샀다고...?"
받은 것도 뺏은 것도 아니고 샀어?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기쨩이 만든 초콜릿이 어딘가에서 팔리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샀다니... 어디서?"
선생님이 그렇게 묻자 상대방은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꺼내 SNS의 어떤 게시물을 보여줬다.
""트리니티의 아가씨가 만든 초콜릿 팔아요?""
선생님과 무심코 목소리가 겹친다. 하지만 서로 그런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계속 보고 있었다. 뭐야 이 게시글은...?
"이건 대체..."
"아가씨가 만든 초콜릿을 원했으니까 이 계정에 접촉했고, 상대방이 지정한 장소에서 이 초콜릿을 샀어."
"살 때 헬멧을 쓴 2인조가 있었습니까?"
"헬멧? 아아... 확실히 둘 중 한명이 쓰고 있었지. 그리고 다른 한 명이 트리니티 아가씨."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본다. 아마 그 두사람이 헬멧을 쓰고 초콜릿을 빼앗아간 범인일 거다. 헬멧을 쓰지 않은 쪽은 그게 정말 트리니티 아가씨가 만든 초콜릿이라고 손님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 자리에 트리니티 아가씨가 없으면 손님들이 사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근데 트리니티에서 만든 초콜릿이 수요가 있나? 그냥 가게에서 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이거... 수요 있어?"
"있지."
우울한 눈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
"뭐, 이제 어떻게든 범인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네. 이 계정에 접촉해 초콜릿을 사겠다고 하면 상대방이 그 자리로 초대해 준다고 하니까."
선생님과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건 해결은 이제 눈앞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아저씨, 유감이지만 속았어. 그 초콜릿은 현장에 있던 트리니티 아가씨가 만든 게 아니니까."
"뭐!?"
사실 나기쨩이 만든 초콜릿이니 트리니티 아가씨가 만든 거긴 하지만...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게다가 그 초콜릿은 다른 사람에게 훔쳐서 조달한 거야."
"뭐라고!!?"
"그리고 아저씨가 지금 갖고 있는 초콜릿은 이쪽의 선생님이 어떤 사람에게 받은 초콜릿이야."
"그런 거였어!!?"
"그러니 부탁해. 그 초콜릿... 선생님에게 돌려주지 않을래? 대신 아저씨를 속인 범인은 우리가 꼭 잡을 테니."
"......"
아저씨가 침묵한다. 고민하고 있나? 하지만 그 초콜릿은 나기쨩의 선생님을 향한 마음이 담긴 소중한 물건이니까. 의리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먹혔다는 걸 알면 나기쨩은 분명 슬퍼하겠지.
긴 침묵. 하지만 다시 한 번 아저씨에게 부탁하려던 그 순간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2만이나 했는데..."
"생각보다 비싸네!?"
"벌써 몇 년째 초콜릿을 받지 못했어. 해마다 혹시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언제가 되더라도 결국은 받지 못했지."
아저씨가 말을 꺼냈다. 길어질 것 같은 예감.
"그럴 때 그 SNS 글을 본 거야. 트리니티 아가씨가 만든 초콜릿...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싶어졌어. 나는 트리니티에 다니는 기품있는 아가씨가 너무 좋았거든."
"하지만 그건 헛된 행위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어. 가게에서 파는 게 아닌 초콜릿에 돈을 쓰다니 말도 안 돼. 오늘이 밸런타인이라고 해도. 하지만 결국 나는 사겠다는 결정을 내렸지."
"초콜릿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건 아니야. 내가 아직 사랑은 모르지만 청춘을 구가할 수 있었을 때, 단 한번... 단 한번이지만 초콜릿을 받은 적이 있었어. 그때의 일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장면만이 아니라 당시 내 마음까지도."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그때를 재현해 보고 싶었어.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말았어. 그 아가씨 같은 아이에게서... 난 다시 한번 초콜릿을 받고 싶었어."
말이 끝나고 아저씨는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지만 분명 슬픈거겠지. 아저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초콜릿은 돌려주지. 이 초콜릿은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 같으니까."
"고마워, 아저씨!"
"감사합니다!"
나기쨩의 초콜릿은 돌려받았어 이제 남은 건 모두에게 초콜릿을 빼앗은 범인들을 잡는 것 뿐.
"선생님! 저 계정에 바로 메시지 보내보자."
"응, ...잠깐, 나 이 SNS 안하는데."
"그렇구나, 그럼 내가... 아, 그래도 내꺼면 여자아이의 계정이라고 들킬지도... 의심하려나?"
"어쩔 수 없지. 일단 내가 새로 계정을 만들어서..."
"내가 연락할까?"
"아저씨?"
일의 경과를 지켜보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굳이 새로 계정을 만들지 않더라도 내가 다시 연락하면 돼. 초콜릿이 하나 더 필요해졌다고 하면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가 여고생 같은 타법으로 재빨리 문자를 입력해나간다.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상대방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까와 같은 장소인가. 이 근처에 철거 예정인 작은 빌딩이 있는 거 알고 있나?"
"나 알아!"
"거기서 녀석들한테 초콜릿을 샀어."
"여기서 걸어서 15분 거리네. 의외로 가까이 숨어 있던 모양이야."
"장소는 알겠어. 갈까, 미카?"
"응! 앗, 아저씨!"
범인에게 향하기 전 아저씨에게 건네주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이거 줄게☆"
"이건... 사탕?"
"우연히 갖고 있었어! 마음이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받아줘!"
"아... 고마워."
아저씨에게 작별을 고하고 선생님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선생님께 초코를 건네기로 했는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곧 줄 수 있을거야. 범인들을 잡은 그 다음에.
"자 그럼, 슬슬 그 아저씨가 올 때가 됐군."
"정말로 바보지. 속은 줄도 모르고 하나 더 갖고 싶어졌다니. 뭐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손님이 안오니 고맙지만."
"그러게. 야, 이제 좀 비싼값을 받아보자고."
"십만으로 해버릴까?"
"괜찮네! 그 동정같은 아저씨라면 살 지도 모르지!"
"꽤 즐거워 보이네?"
"!!!? 누구야!!"
검은 헬멧은 쓴 녀석과 트리니티 제복을 입은 두 사람. 이 둘이 모두에게서 초콜릿을 빼앗아 아저씨를 속인 장본인일거다.
"네놈은 누구야!! 초콜릿을 사러 온 손님이 아니지!"
"모두에게 빼앗은 초콜릿은 어디 있어?"
"무시하지마! 질문하는 건 이ㅉ..."
타타탕
헬멧을 향해 사격. 헬멧에 금이 간다.
"악!? 이자식!?"
"질문에 대답해. 뺏은 초코는 어쨌어?"
"누가 가르쳐 줄까 보냐! 이자식 이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사정을 안 이상..."
"이제 됐어."
총을 겨누고 임전 태세에 들어간다. 애초에 내가 심문하는 거 자체가 잘못이었어. 그런 일은 정의실현부에 맡기면 그만이야.
"당신들이 빼앗아 팔아치운 건 그냥 초콜릿이 아니야."
"뭐?"
"의리든 진심이든 상관없이 만든 사람의 마음이 담긴 특별한 초콜릿이야."
"무슨 말을..."
"그런 초콜릿을 이용해 돈벌이를 한 당신들은 용서할 수 없어. 사실 당신들을 제압하는 건 정의실현부의 일이겠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내가... 천벌을 내릴게."
총성과 단말마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이 중에 선생님이 받은 초콜릿이 있습니까?"
하스미쨩이 선생님께 묻는다. 빌딩에 돌입하기 전에 정의실현부에는 연락을 해두었다. 범인 제압은 그녀들에게 맡겨도 됐지만 도착하기 전에 내가 혼자서 제멋대로 돌입했다. 선생님에겐 빌딩 앞에서 정의실현부를 맞이해달라고 하고. 선생님이 말하길 찾아온 정의실현부 멤버들은 모두 살기등등했다는 모양이야.
빼앗겼던 초콜릿은 다행히 초콜릿을 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빼앗긴 초콜릿의 대부분이 그 빌딩의 한 방에 놓여 있었다. 범인들이 쓰던 SNS에는 산 사람들과의 대화도 남아 있다. 그것을 추적하면 팔린 초콜릿도 돌아올지 모른다. 이미 먹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초콜릿을 품에 안은 선생님이 이쪽으로 왔다.
"고마워. 미카 덕분에 빼앗긴 초콜릿을 되찾을 수 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마치 자신의 아이를 보는 듯한 얼굴로 초콜릿을 내려다보았다. 선생님에게 초콜릿을 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네. 주기를 잘했다고 생각할거야. 분명히. .......그건 그렇고 초콜릿 많구나☆
"정말 많이 받았네. 게다가 그게 전부도 아니지?"
"응. 저쪽에도 또 있어."
"아하하☆ 배탈나는거 아니야?"
"부정하기 힘드네. 그래도 전부 먹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이 웃는다. 선생님께 초콜릿을 전달할 예정이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갔지만 선생님이 얼마나 초콜릿을 아끼는 지 알 수 있었으니 뭐 나쁜 일만 있는건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네.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하스미쨩 일행은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시야 범위 내에 사람은 있지만 아무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는데, 지금이라면 줄 수 있을까?
"저기, 선생님. 이렇게 많이 받았잖아. 이제 와서 초콜릿 하나 늘어도 괜찮겠지?"
"어?"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장이 뛴다. 시끄럽네. 초콜릿을 어떻게 줄지 고민했었는데 벌써 다 까먹어버렸잖아.
"선생님을 위해 직접 만든 거야. 그...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받아줄거지...?"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초콜릿을 내민다. 제발 빨리 받아줘! 긴장으로 몸이 떨리는 걸 참으면서 그렇게 기도한다. 손에서 무게가 사라졌다.
"고마워. 미카. 너무 기뻐."
"처, 처음 만들어봐서 맛은 별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대로... 만들었으니까..."
"응. 저기, 미카. 지금 여기서 먹어도 될까?"
"에!?"
그, 그건 예상밖이라고 할까.... 하트 초콜릿을 눈앞에서 보이는 건 부끄럽다. 그래도 이왕이면 감상같은것도 직접 듣고싶고...
"부... 부디..."
승낙했다.
부스럭거리며 선생님이 포장을 연다. 내 하트가 아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해 가슴을 억누른다. 하트가 선생님 앞에 드러난다.
"헤에! 정말 처음이야? 잘 만들었는데."
하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왠지 억울한데.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하트의 위력이 선생님에겐 얼굴빛 하나 바꿀 수 없는 거였다니...
하지만 이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야. 왠지 모르게 선생님이 하트 초콜릿으로 허둥대는 이미지는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응! 엄청 맛있어, 미카!"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기쁜 듯이 초콜릿을 먹고 있다.
뭘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초콜릿을 전달할 수 있어서 그런걸까?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하트 초콜릿도 이제 거의 선생님의 뱃속에. 밸런타인이라는 이 날, 내가 긴장할 일은 이제 없어. 하지만... 하트의 위력이 불발로 끝난 아쉬움은 있다.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역시 멋있어.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분명 선생님은 멋있겠지. 하지만 그런 얼굴을 조금 무너뜨려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 예상하고 있어도 내 하트에 수줍어하는 얼굴도 보고 싶고.
지금이라면 딱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을 거 같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선생님, 통금시간이니까 나 이만 갈게!"
"알았어. 다시한번 초콜릿 고마워. 맛있었어."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그럼 선생님, 바이바이!"
"응, 다음에 봐."
선생님께 등을 돌리며 걷고 걷고 걷다가, 휙 돌아섰다.
"저기, 선생님."
"응?"
"좋아해."
"뭐?"
선생님의 놀란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앞을 향해 걸어가고, 달렸다.
일회성의 용기. 나는 지금 분명 얼굴이 빨개졌겠지. 그래도 괜찮아. 그렇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으니까. 하트의 위력이 선생님의 얼굴을 붉혔다는 걸.
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댓글 19


오 달달해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