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백 제외 15987자
예전부터 생각만 했던 내용이었는데 미카 생일 기념으로 소설로 한편 올리려고 쓰다보니 계속 늘어나서 어느샌가 미카 생일 다 지나서 완성됨
기본적으로 순애 드라마임 피폐 걱정 안 해도됨
재밌으면 개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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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을 바라보자 순백의 신부가 있었다.
머리를 감싼 하얀 베일과 머리에 씌워진 티아라.
치마폭이 넓은 공주님 같은 벨 라인의 드레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자신마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까부터 기껏 드라이한 머리끝을 베베 꼬고 있었다.
계속 부웅 뜬 기분을 현실로 끌고 내려온 건 한 노크 소리였다.
“미카, 그러다가 머리 망가지겠어요.”
“아, 세이아 짱!”
치마 단을 들고 대기실의 입구에 선 세이아 짱에게 다가갔다.
“뭐야 뭐야? 이런 가죽점퍼는? 좀 더 귀여운 거 입고 오지☆ 세이아 짱도 꾸미면 훨씬 이쁜데.”
“후훗, 제가 진정으로 꾸미면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가 퇴색될걸요? 그리고 저 혼자만 온 게 아니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세이아 짱이 가리킨 뒤쪽을 보자 귀부인 차림의 베이지골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나기 짱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날아갔다. 물리적으로 말이다.
“나~ 기~ 짱~! 회사일 바쁘다면서 못 올 거처럼 말했잖아☆!”
“미카 씨의 하나뿐인 날인데 제가 오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아무튼! 둘 다 잘 왔어☆ 오는 길 차 막히진 않았고? 여기 식사 진짜 맛있다~? 맛없으면 갑자기 식장이 터질 수가 있다면서 선생님⋯ 아참, 이게 입에서 안 떨어지네. 우리 남편이⋯.”
그렇게 둘과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이아 짱은 요즘 세계여행처럼 곳곳의 드라이브 코스를 탐방 중이고 나기 짱은 졸업 후 바로 사업을 시작하더니 요즘은 바빠서 이야기할 시간도 닿지 않았다.
오랜만에 세 명이서 모인 절친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도 찍다가 이윽고 기다리던 본식이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버진로드를 따라 걸어가자 저 너머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사랑해 마지않는, 어떨 때는 꿈속에서도 본 적 있는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손에 쥔 부케에 힘이 들어갔다.
‘아, 정말 나⋯ 선생님이랑⋯.’
뭔가 눈물이 터질 거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이 기쁨에 겨우면 눈물이 터진다는데 진짜구나.
감정의 물결에 둥둥 떠다니고 있을 때 주례자가 내 차례를 불렀다.
“신부 미소노 미카 양은 남편의 옆을 지키며 힘들어도, 슬퍼도 언제나 함께하며 이겨내고 사랑과 함께 행복을 채워나갈 것을 맹세하십니까?”
얼른 대답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기에 나는 최고의 미소로 대답했다.
“네!”
축포의 소리와 함께 맹세의 키스가 이루어진다. 세상에 모든 소리가 지금 우리 둘을 축하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퇴장행렬을 팔짱을 낀 채 걷다가 신랑 측 하객석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울고 있었다.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 느껴졌다. 저 애도 선생님을 좋아했나 보다. 예전에 내가 사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기 짱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행복해질 것이다.
미안해. 이름 모를 어떤 누군가.
아마 너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많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너희들의 몫까지.
응! 분명히 그 누구보다 행복한 공주님이 될 거니까☆!
* * *
“그래서⋯ 오늘도 저녁은 같이 못 먹는 거야?”
[미안해.]
“으응⋯. 아니야 미안하기는 당신 바쁜걸 누가 모른다고? 혹시 도시락이라도 싸갈까? 간 김에 빨랫감도 챙겨서 해 다 줄게.”
[아니야, 힘들게 그럴 필요 없어.]
“응⋯⋯ 알았어.”
전화가 끊기며 부엌을 바라보자 식어버린 냄비가 눈에 띄었다.
오늘은 뭔가 꿈자리가 좋아서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식은 냄비를 다시 데워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음⋯⋯ 역시 맛있어. 그래 누가 했는데?
텅 비어버린 집이 유난히 쓸쓸했다.
어떻게 하겠는가? 바쁜 사람인 걸 알았고 가끔씩 들러 야식이라도 전해주면 미안하다면서 일이 남아있는 게 보이는데도 억지로 퇴근해서는 집에서도 일하는 사람이다.
책임감도 강한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날 위험한데도 자신의 앞에 서서 지켜준 것 아닌가?
그래도⋯ 그래도⋯.
“역시 너무 사람이 바쁘잖아!!”
“미카, 공공장소에서는 그렇게 크게 말하면 안 돼요.”
카페에서 크게 투덜대고 있자 맞은편에 앉은 세이아 짱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기껏 결혼했는데!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는데! 집에 안 돌아오는 건 인생의 절반이 손해라고!”
“뭔가요? 이 수준 낮은 화법은. 제 앞에서 이상한 귀여운 척하지 마세요. 순간 손에 든 차를 부을뻔했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심심하시면 저하고 같이 드라이브라도 다니자니까요? 이번에 바닷가 근처 드라이브 코스가 아주 절경이었는데.”
“뿌뿝! 완전 아웃이야! 세이아 짱 운전실력 엄청 난폭하잖아☆? 시내에서 달리면 발키리한테 딱지 끊기는 게 일상이고!”
“어머, 그것도 인생의 묘미랍니다?”
세이아 짱이 이번에 간 여행지나 캠핑일화를 얘기하는 동안 딸기스무디를 쪽쪽 빨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낮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세이아 짱뿐이고.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에서 최소한의 활력이 필요하니까.
“그러면 직장이라도 구해보는 게 어때요?”
“뭐~? 나 돈 많은데☆.”
“아직 어리네요 미카. 원래 일이란 건 말이에요? 돈 많은 사람이 할 때가 가장 재밌는 법이에요.”
취직이라⋯ 뭔가 업무란 건 나기 짱이 하는 모습만 보았으니까 딱히 관심사가 아니지만 매일 집에만 있는 것도 뭔가 그렇고⋯.
“근데 내가 바빠져도 괜찮아? 이렇게 세이아 짱하고 느긋하게 카페에 있는 날도 없어질 텐데.”
“후훗, 이래 봬도 저에게는 약 100명의 친우가 있답니다. 인간관계가 한정적인 미카하고는 천지차이죠.”
“아! 또 나왔다. 세이아 짱의 무시발언!”
사소한 투닥거림을 벌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
수신자의 이름을 보자 나는 달가운 마음으로 바로 전화를 받았고 금세 짐을 챙겨 일어났다.
“세이아 짱 그럼 난 바빠서 가볼게!”
앉아서 손을 흔드는 세이아 짱을 뒤로 한채 나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얼마만의 데이트인가? 준비할 것도 있고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정말 행복해!
* * *
“그래서 세이아 짱이⋯⋯.”
“세이아는 요즘도 잘 지내는 모양이네.”
데이트 장소는 고급진 레스토랑이었다. 요즘 들어 계속 바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로맨틱한 곳도 예약해 두고 세심하다니까?
메인디쉬가 나오고 얼마 안 가 웨이터가 와인을 하나 건넸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와인 말고 다른 걸로 주세요. 미카는 마실래?”
“응? 아니 나도 당신이 안 마시면 안 마실래.”
술보다는 대화가 더 하고 싶은 모양인지 선생님은 술을 거부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음주도 별로 안 했지?
계속 대화를 하다 보니 세이아 짱이 말한 취직에 대해서 말이 나왔다.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괜찮겠네. 미카는 뭐든지 열심히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해.”
“에헤헤, 그렇게 띄워주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부담스럽잖아~☆.”
부끄러운 마음에 나이프의 칼질이 빨라졌다. 솔직히 여기서는 남한테 보여주기 싫다던지 그런 소유욕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끝내 디저트까지 다 먹고 자리를 일어나려 할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내 것이 아닌 선생님의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한테 허락을 구하는 듯 이쪽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업무 연락이잖아?”
“미안해 미카. 아마 별일 아닐 거야.”
그렇게 밖으로 연락을 받으러가서는 20분정도의 통화를 마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미안해 미카.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봐야 할 거 같아. 일단 택시 부를 테니까 혼자 돌아갈 수 있지?”
“어⋯⋯ 으응. 괜찮아!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봐?”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복귀하는 선생님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분명 봄이 다 되었는데 추운 느낌은 왜 드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두꺼운 코트를 입을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데이트로 잔뜩 행복함을 만끽했으니까.
* * *
“자, 우리 팀 신입인 미카 씨! 다들 어려워하는 거 도와주면서 이번 달 실적 잘 맞춰봐요?”
“안녕하세요. 미소노 미카라고 합니다.”
짝짝짝.
환영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이아 짱의 제안대로 얼마 안 가 나는 일자리를 구했다. 물론 면접이 아니라 나기 짱의 추천으로 일명 낙하산이다.
‘네?! 미카 씨가 취직이요? 일단 지금 계열사 중에 자리가⋯⋯.’
‘잠깐 나기 짱! 아직 이력서도 안 써봤는데 무슨 친구 인맥으로 취업이야~!! 그런 건 남들에게 미움받기 최단 루트라고!’
‘괜찮아요.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은 사직서 내고 나가면 돼요.’
‘아아아아~ 진짜 난 몰라~!!’
그 결과 일단은 신입 사원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나기 짱이 골라준 일이라서 그런지 일은 의외로 잘 맞았다.
평소에도 꾸미기를 좋아한 덕분에 브랜드 관련 업무에서 어려움은 크지 않았고 엑셀이나 서류 관련은 힘들긴 했지만 어찌어찌 적응할 수 있었다.
“와~ 미카 씨 힘 세네요?”
“진짜 진짜! 예전에 운동 좀 하셨나?”
“아하하, 그 정도는 아니고⋯.”
트리니티였으면 다들 뭐라고 했을 거 같은데⋯⋯.
인간관계도 양호하다. 같이 점심 먹을 사람정도는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완전 안 힘든 건 아니다.
“으음~!! 퇴근 완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 바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아, 씻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상품 관련 견적 맞추고, 이벤트 기획 보고서 쓰고, 무거운 거 들 때 사람들이 부르고.
그렇게 일하다 보니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고 아아아~! 나기 짱이나 선생님은 이런 거보다 엄청 일하니까 힘들겠지? 난 분파장 시절에도 딱히 이렇게 일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그치~? 이거보다 훨씬 일이 힘드니까 선생님도 이렇게 못 돌아오는 거지?
일이 잘되는 건 행복한데 뭔가 허한 감정만이 남았다.
* * *
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났다.
“미카 씨. 이번 플젝 미카 씨가 해보는 거 어때?”
“제가요? 잘할 수 있을지⋯⋯.”
“그럼~ 미카 씨 잘하잖아?”
“그렇다면야⋯⋯.”
확실히 일을 계속하자 어느 정도 요령이 붙었다. 사내생활도 재밌고 주말마다 세이아 짱이나 나기 짱도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근황 보고 할 정도는 만나고 있다.
결혼생활도⋯⋯ 뭐 이 정도면 완벽하다. 나도 바쁘고 선생님도 바쁘니 얼굴 마주칠 시간이 없어도 서로 사랑하는 건 그대로이지 않나?
그러니까 분명히 우리 둘 다 행복하지 않은가?
책에서나 보던 하루 종일 꽁냥되는 것도 항상 분홍빛인 세상이 어디 있겠어~?
[미안해.]
“응, 또 늦는 거지? 나도 아무래도 일 때문에 바쁠 거 같아서 저녁은 밖에서 먹으려고.”
그렇게 통화를 끊으며 식탁에 있는 먹은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는 밖에서 먹는다고 했지만 유독 요즘 집이 썰렁한 느낌을 계속 받아서 나라도 집에서 있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약간 폐가 같다고 해야 하나☆?
분명 청소는 제대로 하고 있는데 말이다.
쏴아아ㅡ.
물소리와 함께 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가 울린다.
달그락. 달그락.
자기 그릇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계속 울린다.
쏴아아ㅡ!
물소리도.
위이잉~!
무슨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도.
깔깔깔!
그냥 적적해서 틀어둔 티비로 들리는, 날 비웃는 거 같은 소리도.
달그락. 달그락.
다시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쨍그랑ㅡ!
그리고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바닥에 깨져 수많은 파편으로 흩어진 접시 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아⋯⋯. 이거 혼수로 산거였지?’
깨진 접시조각을 줍다가 생각났다. 분명 같이 산 그릇. 살 때도 집에 들여놓을 때도 분명 함께 그리고 같이 쓰는 상상을 많이 했다.
집도 그렇다. 나 혼자만의 썰렁한 공간이 아닌 둘만의 공간이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나 혼자만 지키고 있는 걸까?
눈물이 나올 거 같다. 안돼, 울면 안 돼.
행복하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과 결혼했잖아? 누구보다 행복해져야 하잖아?
결혼식에서 울던 하얀 머리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기 짱이 처음 교제 사실을 말했을 때 자신에게 원망하던 것도 생각난다.
샬레에 들렀을 때 본 눈물을 훔치며 달려가던 푸른 양갈래 머리의 누군가도 생각난다.
그렇게 남들이 원하던 인기남을 차지했으니 그 애들 몫까지 행복해져야 하잖아? 불행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망설임이 이내 접시 조각 하나가 되어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아팟.”
아프다. 찔린 손가락을 살짝 누르자 피가 방울져 나온다.
약간의 비눗기 있는 물 때문에 더욱 쓰라리다.
그래, 이렇게 아프다면 울어도 되지 않을까?
울면서 소리치면 바로 내 왕자님이 달려와주지 않을까?
조금은 귀찮게 조금은 어린애처럼 조금은 질척이게 굴어도 되지 않을까?
부부잖아? 사랑하는 사이잖아?
그래, 학생 때처럼 떼쓰고 조금 속이면 날 위해서 달려와줄 테니까. 바빠도 힘들어도 달려와줄 테니까.
아아, 인정하자.
나, 지금 하나도 안 행복해.
* * *
법원을 나오자 하늘이 눈부시게 밝았다.
안타깝게도 이혼서류를 제출하고 나온 날이었다.
누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더라? 나였나? 선생님? 모르겠다. 이럴 때는 자기 탓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마 내 탓일 테니까.
“저기, 아직 점심시간이니까 어떻게 밥이라도⋯.”
삐리릭ㅡ!
“네, 샬레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저기 미안하지만 미카 밥은 다음에⋯.”
그제야 뭘 잘못 말한 게 떠올랐는지 선생님의 몸이 굳었다. 그렇다, 우리에게 다음은 없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끝이 났지만 뭐 둘의 인생까지 끝난 거는 아니니까. 선생님은 샬레의 어른으로 나는 그냥 미소노 미카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저 마지막 기억만은 편하도록 웃는 얼굴로 보내주자.
“응, 잘 가.”
그렇게 떠나가는 전 남편의 등이 보였다.
잡고 싶다. 분명히 난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와 함께 있고 싶고 그와 함께 살고 싶다. 침대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면 볼 수 있는 얼굴이 그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
기다릴 자신이, 이런 생활을 계속 버틸 자신이 없다. 더 잘 해낼 자신이 없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더 짜내기에는 무감각해진 모양이니까.
막 가을이 다가오던 시기 우리 부부의 생활은 끝을 맞이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바로 영영 얼굴도 못 보는 그런 건 아니었다. 아무리 안 머물렀어도 몇 년간 살았던 집이라서 짐을 가지러 오는 순간의 선생님을 몇 번 마주치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일에 파묻혀서 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만나기 껄끄러워 일에 파묻힌 거처럼 선생님도 설마 샬레에 불륜녀라도 숨겨두고 집에 늦게까지 안 들어오던 게 아니었을까?
아니 아니, 그런 생각은 안 하기로 했잖아. 오히려 도시락이나 야식 챙겨가면 누구보다 환영해 주고 주변에 쌓인 서류만 봐도 시간이 왜 안 나는지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우울증인가?
그렇다고 친구를 만날 기분조차 안 든다. 분명 만나면 하소연할게 뻔하지 않나? 나기 짱에게도 세이아 짱에게도 이런 우울하고 뒷 맛이 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럴수록 딴생각 못하게 좀 더 행복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때 바닷가에서도 행복해질 거라고 선생님한테 말⋯⋯ 했었지.
“하아⋯⋯.”
깊은 숨소리와 함께 허핍한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정신 나간 거 같았다.
* * *
“미카 씨 이렇게 그만둬도 괜찮아? 잘하고 있었는데. 우리라면 앞으로 키리후지 그룹에서 화장품 최고 계열사로 발돋움⋯!”
“아, 그게 좀 힘들어서요.”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문득 일을 계속하면서 느낀 게 이게 도피가 아니었나 싶었다.
집에서 물건을 가지러 오는 전 남편도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열쇠마저 두고 간다며 메모 남기고 간 것이 마지막 연락이었다.
딱딱한 어조의 메모를 보자 상관없어야 하는데⋯⋯ 이건 좀 상처받았다.
나기 짱도 일을 그만둔 사실을 금방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미카 씨! 갑자기 그만두시고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 이혼했어.”
“⋯⋯네?”
이혼한 지 한 반년 지났나? 이제는 괜찮았다. 아니, 무감각 해졌다.
나기 짱과 꽤나 진솔한 대화를 나눈 거는 아니지만 몇 가지 문답이 오갔다.
‘선생님이 무슨 바람이라도 피운 거예요?’
‘그럴 사람 아닌 거 뻔히 알면서~.’
‘그러면 고부 갈등이라거나?’
‘설마~☆.’
‘그렇다면 대체 왜?’
‘그냥, 이런 일도 있는 거니까.’
평생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나기 짱한테도 세이아 짱에게도 털어놓았다.
둘이서 다시 선생님 쟁탈전 같은 걸 벌여도 좋을 거 같았다. 전 아내로 연애하는 둘한테 아는 척하는 것도 뭔가 재밌을 거 같고☆.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고 나기 짱과 세이아 짱 둘은 그저 날 안아줬다.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정말 오랜만에 다시 울었다.
* * *
“미카, 거기 있는 폴대 좀 줄래요?”
“응! 알았어☆.”
텐트 치는 세이아 짱의 옆에서 보조하며 시키는 대로 거치대 같은 걸 조립했다.
“으음⋯⋯ 이런 것도 나 혼자서 해보고 싶은데.”
“안 돼요. 저번에 그랬다가 미카가 텐트 부숴버려서 조그마한 일인용 텐트에서 둘이서 낑껴잤던거 기억 안 나요?”
“그건 초보였으니까! 이젠 세이아 짱하고 여러 번 다니면서 익숙해졌으니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꽤나 큰 다인용 텐트가 완성되었다. 이후 텐트 옆에 조용히 끓어오른 주전자와 함께 둘이서 조그마한 티파티를 차렸다.
“근데 왜 코코아야? 찻잎도 가져왔으면서.”
“원래 캠핑에는 코코아와 군고구마가 제격인 법이죠. 그리고 이젠 티파티도 아닌데 굳이 찻잎만 고수하는 건 나기사 같지 않나요?”
“아하하☆ 그치? 나기 짱은 지금도 티타임이 중요하다면서 회사에도 티타임 휴식을 만들어놨더라?”
최근에는 세이아 짱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있다. 운전이 난폭한 문제도 내가 대신 운전하는 걸로 해결하니 세이아 짱은 ‘오오, 운전셔틀이 드디어 생겼군요. 나기사처럼 맨날 기사가 운전해 주는 부르주아와는 달라서 좋네요.’ 같은 반응을 보였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캠프파이어의 소리. 보글보글 코펠 속 크림수프의 소리.
한적하다. 조용하다. 둘만의 대화 소리도 넓은 공간에서 순식간에 울렸다가 금방 흩어졌다.
이런 낭만도 좋은 거지.
조용히 세상 밖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가 밤이 되면 별을 보고 있었을 때였다.
띠리링ㅡ!
전화벨 소리에 핸드폰을 바라보자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하는 느낌에 받아보자. 어느 여성의 목소리였다.
[○○○ 선생님 보호자 되실까요?]
“네? 갑자기 그런 거는 왜⋯.”
[여긴 시라토라구 종합병원 응급실인데요. 수술 관련으로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서 그런데 지금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적어도 주변에 보호자 대리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수술?! 다쳤어요? 어디요!”
[네? 일단 골절상이랑⋯.]
“일단 바로 갈게요. 어디라고요?”
[시라토리구 종합병원⋯⋯.]
“네, 바로 갈게요! 일단 바로 수술 동의는 하니까⋯.”
먼저 잠든 세이아 짱의 텐트로 쳐들어가자 몽롱한 세이아 짱이 눈을 반개한 채 물었다.
“미카, 갑자기 무슨⋯.”
“미안 세이아 짱! 일단 차키 좀 빌릴게.”
“네? 그러면 저는 어떻게 돌아가라고.”
“세이아 짱이면 2주 정도는 조난당해도 살아남을 수 있잖아! 못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나기 짱에게 연락해 알았지!”
“잠깐 미카! 일단 무슨 상황인지 말은 해줘야⋯⋯ 가버렸군요.”
어두운 밤길을 헤드라이트만 의지한 채 최고속력으로 밟았다. 딱지 끊으라면 끊어보라지? 벌금 낼 돈은 있어.
그렇게 한 2시간 정도 내내 달리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늦지는 않았겠지? 왜 하필 오늘 그렇게 멀리까지 가버려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술실 쪽으로 가자 이미 다 끝나고 회복실에 올라갔다가 지금 일반 병실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라는 마음과 지금 여기 내가 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미 발은 움직였고 손은 병실의 문을 열고 있었다. 조금의 심호흡 후 문을 열자 환자복 차림의 선생님이 눈에 띄었다.
“⋯⋯미카?”
“뭐야, 멀쩡하네?”
뭐야, 멀쩡하네? 왜 이딴 말을 했을까? 알량한 자존심? 아니면 긴장 끝에 뭔가 자기 암시가 필요했던 걸까?
조금 어색한 얼굴 마주 보기만 하는 걸 이어가다가 다시 말을 꺼낸 건 선생님 쪽이었다.
“그게⋯ 일부러 와준 거지? 미안해.”
그 말에 주변에 의자 하나를 끌어와 옆에 앉으며 물었다.
“어디서 어떻게 다친 거야?”
“샬레에서 계단 오르다가 잠깐 눈 감았다가 떴더니 여기더라. 아하하! 이런 일도 있는 거지 뭐.”
“놀랐잖아⋯⋯ 수술이라기에 큰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해서 다행이야. 근데 다른 보호자 없어? 뭐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이라던지. 올 사람도 없는 거야?”
“응? 있을 리가 없잖아?”
당연한 걸 말하듯이 말하는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그 모습에 물은 자신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아무 말고 못하고 조금 어색하게 있다 보니 이후 올라온 의사에게 4주 정도의 입원기간을 전해 듣고 옆에서 병수발 하겠다면서 나섰다.
“미카, 그럴 필요 없어. 일도 있을 텐데 그냥 수속만 밟고 가주기만 하면 되는데.”
“응? 일은 걱정 마 그만 둔지도 꽤 됐으니까. 게다가 그런 몸으로 어떻게 혼자 있을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며 부러져서 깁스한 팔다리를 가리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과로에 골절상에 지금 완전 중환자인 거 알아☆? 그런 환자는 얌전히 쉬면서 도움 받으면 되는 거야. 아니면 혹시 볼 거 다 본 사이면서 부끄러운 거?”
“윽, 장난치지 마.”
“아하하~☆ 뭐야, 진짜 부끄러운 거야?”
계속 장난을 쳤다.
조금이라도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어서 옆에서 떨어지기 싫어서 일부러 옆에 남았다.
이미 이혼까지 한 사이면서 이런 거는 해선 안 되는 걸까?
최소한 다른 누군가가 생길 때까지는 옆에서 내 자리라고 주장해도 되지 않을까?
병수발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폐 끼치기 싫다며 도움을 거절하은 모습을 보며 오히려 괜히 내가 있겠다 한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는 일은 과일 깎아주는 정도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으음⋯ 소변통정도는 비워줄 각오로 있겠다 한 거였는데.
“미카, 이 원한은 잊지 않을 거예요.”
“아, 정말 세이아 짱 내가 미안하다니까! 긴급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잖아!”
“정말, 갑자기 세이아 씨가 구조요청이라면서 전화할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선생님은 괜찮으신 거죠?”
나한테 투덜거리러 오는 세이아 짱과 나기 짱처럼 병문안을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둘만 이었다.
병원에서 하루 종일 있는다는 건 꽤나 지루한 일이었다. 전자기기도 업무 불가라는 말에 다 빼앗겨서 멍하니 허공만 봐야 하는 사람이면 더욱이 그렇다.
그 시간을 우리 둘은 대화로 채워나갔다.
지난 1년간 어떻게 지냈는가? 같은 시시콜콜한 근황보고를 이어갔지만 남은 입원기간 동안에는 턱없이 부족한 거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몇 년간의 결혼 생활 시절의 추억.
신혼여행 시절 사진을 찾거나, 옛날에 해줬던 요리를 말하거나, 그 외에도 별일 없는 일상 속에서의 이야기.
“그때 미카가 그 케이크 맛있다고 했던 시내의 카페 있잖아. 거기 자리가 이번에 게임센터로 바뀌었더라?”
“카페?”
“그 있잖아. 시내에서 좀 더 넘어가면 있던 좀 넓었던 거기말이야.”
지도까지 찾아가며 위치를 말해줘서야 어디인지 기억해 냈다.
“뭐야~☆ 이런 것도 기억하는 거야?”
“그냥, 기억에 남더라고.”
찾다 보니 그 시절의 추억이 여러 곳에 남아있던걸 알았다. 추억 하나하나를 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우리 결혼생활에 불행한 이야기만 있진 않았구나.’
둘 다 서로에게 잘 맞는 단짝이 아니었을까?
그걸 생각하자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다. 내가 좀 더 잘했다면 더 많이 지금도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일부러 옆에서 자리 차지하는 것도 민폐같이 느껴졌다.
“미카 괜찮아?”
“응? 그럼 그럼 괜찮아. 완전 팔팔해☆ 그러고 보니 그때 말이야.”
조금 나쁜 생각이 떠올랐지만 여기서는 그런 걸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이미 끝난 관계라도 행복한 추억정도는 남겨도 되지 않겠어?
마지막은 행복하게 끝내는 게 더 좋으니까. 응, 분명히.
그렇게 입원기간 동안 서로에게 남은 걸 정리하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마침내 퇴원의 날이 밝았다.
“이제, 이 정도면 퇴원하셔도 되겠네요. 아직은 완전히 붙은 거는 아니지만 회복경과가 좋아서 통원치료 하셔도 되겠어요.”
의사의 퇴원 소식에 다음날 짐을 정리해 나오자 밝은 햇살이 비췄다.
입구에서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으며 기지개를 켜는 선생님이 보였다.
“퇴원한 게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병원밥만 먹다 보니 완전 물리잖아.”
“뭐야~☆ 애도 아니면서 반찬투정하는 거야? 근데 나도 맛없긴 했어. 삼시세끼 롤케이크 먹는 거보다 더 심한 거 같다니까?”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이따가 같이 저녁이라도 먹지 않을래?”
“⋯⋯어라? 갑자기?”
“일단 한 번은 돌아갔다가 나와야겠지만 그래도 퇴원 첫날이라서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나도 미카도 병원밥에 질렸으니 좋은 거라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어⋯⋯ 응, 좋아! 그러면 저녁에 어디로 가면 될까?”
그렇게 약속을 잡고 나서 잠시 집에 돌아와 꾸미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데이트다. 그것도 근 1년 만에 말이다. 계속 꾸미다 보니 머리 속이 여러 가지로 꽉 찼다. 마치 첫 데이트 시절처럼 말이다.
애프터 신청을 해도 되려나? 식당은 꽤 편한 곳으로 잡았으니 화장은 진하지 않게 해야겠지☆?
아! 약속시간까지 촉박하잖아!
서둘러 준비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생님은 도착하지 않았다.
‘대충 20분쯤 지난 건가?’
갑자기 일을 처리하다 보니 늦는 거겠지. 이런 경우는 예전에도 있어봤기에 일단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더 지나자 드디어 숨을 헐떡이며 약속 장소에 도착한 선생님이 보였다.
뛰어 왔는지 땀이 났으며 무릎에 손을 올린 채 고개만 들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고는 한참 내가 어디 있는지 찾는 거 같았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찾더니 고개를 떨구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이어지더니 창문 밖으로 울리는 전화를 손에 쥔 선생님이 보였다. 확인하고는 금방 전화를 받는 모습도.
[저기⋯⋯, 당신 어디 가는 거야?]
[아, 미안해 미카 너무 늦어서 가버린 거지? 식사는 다음으로⋯⋯.]
[고개 좀 돌려볼 수 있을까? 아니 아니, 그쪽 말고 반대로 응, 그쪽으로. 혹시 거기 카페 보여?]
그리고는 날 금방 찾았는지 눈이 마주쳤다. 거기에 내가 손을 흔들었다.
카페를 나가 둘이서 마주 섰다. 나보다 큰 키의 남자가 계속 안절부절못한 상태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뭔가 할 말 없어?”
“아, 응. 미안해 미카.”
아, 또 다. 그놈의 미안해 소리다. 어째서일까? 평소에도 예전에도 수없이 들어온 소리였는데 갑자기 마음 깊은 곳을 확 긁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뭐가 미안한데?”
“그야 미카하고 약속해 놓고 늦기나 하고.”
“그거⋯⋯ 혹시 일부러 늦은 거야?”
“어?”
“일부러 늦은 거 아니잖아? 나도 알고 있어⋯⋯ 바쁜 거 힘든 거. 그래서 이해하려 했어⋯⋯ 그래야 행복하니까. 그래야 우리가 불행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당신한테서 미안해 소리는 더 이상 듣기 싫어. 우리가 노력한 게 전부 좀 더 잘할 수 있었다는 거처럼 들리잖아⋯⋯.”
눈물이 나온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근데 멈추지 않고 계속 하소연이나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갑자기 왜? 이런 상황에서? 그냥 사이좋게 밥 먹고 바이바이 하면 되는 거잖아? 그걸 못 참고 왜⋯⋯.
“좀 대답 좀 해봐!!”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선생님 쪽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놀랐다. 지금까지 나한테 화를 낸 적이 있었나?
“미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그야 미카가 소중하니까. 그렇잖아? 나기사와 세이아가 미카를 잘 부탁한다면서 우는 얼굴로 말할 때 결심했어. 그 애들 몫만큼 미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근데⋯⋯ 근데! 일을 포기하지 못했어⋯⋯. 미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어. 그래서 이럴 바에 미카를 놔주는 편이 몇 배는 낫겠다 싶어서 이혼했어. 미안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어 이게 내 최선이니까! 근데 그러면 내가 뭘 했어야 했던 거야? 미안하기만 한데 뭘 어째야 했던 건데?”
나에게 묻는다. 알고는 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더 큰 사람인 거. 두 가지의 선택지를 주면 세 번째 선택지를 선택해서 두 가지 모두 얻어가는 욕심쟁이면서, 희망을 얘기해 놓고 그 희망을 위해 자신은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자기희생적인 사람인 거.
하지만 이런 면모는 알지 못했다. 언제나 나보다 앞서서 내 존재를 긍정해 주고 꼭 필요할 때 나타나던 왕자님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은 어떻게 했어야 했냐고. 다른 애들의 몫만큼 널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자신은 잘못됐냐고.
처음으로 나약한 모습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거기서 뭐라고 답했어야 했는데.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 * *
“하아⋯⋯.”
거실 소파에 앉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내가 어떻게 돌아온 거지?
모르겠다. 머리 속이 복잡하기만하다.
지금까지 나만 노력한 거라 생각했던 현실이 부정당했다. 선생님 쪽도 노력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한 번도 실감하지 못했기에, 그냥 나보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니까 잘해주는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도 고민에 빠져있었다. 자신의 행복보다 내 행복을 더 원했고 일에 지쳐가면서도 내 미소만을 위해 달려왔던 거다.
지금까지의 허황된 생각이 전부 날아가고 그동안 그 사람이 해준 것들이 생각났다.
빨래 같은 거 시키기 싫어서 매일 코인세탁소에서 자기 빨랫감을 세탁하고.
기념일 때는 무조건 데이트하려고 노력하고.
매일매일 전화 한 통이라도 하려고 하고.
늦는 거 같아서 야식으로 도시락이라도 가지고 찾아가면 같이 도시락을 먹고는 위험하다면서 같이 퇴근하고.
모든 게⋯⋯ 모든 게 상냥했다. 그는 날 사랑했고 나도 그를 사랑했다. 근데 그것만으로 사람 마음이란 게 만족하지 못했고 하지 못한 거나 해주지 못한 거로 촘촘히 미안함만 쌓였다.
“아, 진짜 또 왜 우는 건데.”
눈물이 나온다. 과거의 행복함을 기억할수록 내 자신이 미웠다.
이젠 오지 않을 미래인데도 바라는 자신이.
후회뿐인 과거를 생각하며 다시 그 과거가 오기를 바라는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걸 후회하는 자신이 미워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감정이 있었다.
역시⋯⋯ 역시⋯⋯.
‘나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이혼 같은 거 하기 싫었어.
자신 없다는 핑계로 도망치는 동안에도 마음이 편한 적 한 번도 없었어.
세이아 짱하고 놀러 다니는 것도 재미없었어.
내가 옆자리에 없다고 다른 여자가 붙어있는 것도 보기 싫어. 정말 싫어.
최소한만이라도 사과하고 싶어. 미안하다고 나 아직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행동에 브레이크 따위는 없었다. 사실 브레이크를 걸기도 전에 전화 단축키 1번을 길게 누르자 전화가 갔다.
[남편♡]
그리고 괜히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에 반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의 소음이 들려오는 걸 보면 아직 바깥인 거 같았다.
“저, 저기⋯⋯ 선생님?”
오랜만에 입 밖으로 낸 호칭이었다. 결혼한 이후로는 당신, 남편, 자기 등 많은 호칭으로 바꿔 불렀었는데 지금 이 순간 튀어나온 건 아주 오래전 쓰던 호칭이었다.
하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 호칭에는 많은 의미가 있으니까.
“저기, 아직 바깥이야?”
[⋯⋯⋯응, 아직 바깥이야.]
“추울 텐데⋯⋯ 괜찮아? 이제 가을이라서 밤바람이 셀 텐데.”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목소리에 억울함이 담긴 느낌이었다. 이제는 다 포기한 느낌의 자포자기.
말해줘야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당신도 포기하지 말라고 근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 속이 하얗게 질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눈에 들어온 건 부엌에 오랫동안 방치된 한 냄비였다.
“바, 밥 안 먹었지!”
[⋯⋯그렇지?]
“그러면 지금 집으로 올래? 밥이라도 먹고 가 춥잖아? 할 얘기도 있고⋯⋯ 올 수 있어?”
[⋯⋯⋯갈게.]
그 말에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서둘러 냉장고부터 열었다.
“아으⋯⋯ 이건 저번에 캠핑 갔을 때 남은 거랑 이건 나기 짱이 준 디저트⋯⋯ 으엑?! 이건 뭐야!”
냉장고 상태가 난장판이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식사를 마련하려고 찾아봐도 좋은 게 없고 그나마 있는 게 캠핑 때 남은 카레 재료들이었다.
“쌀이⋯⋯ 앗, 쌀도 없잖아! 그러면 밥은 그냥 즉석밥으로 때워야⋯⋯.”
일단 냄비에 재료를 때려 붇고 카레 냄새가 몰려오자 현관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나가자 선생님이 서있었다.
잔뜩 물 맞은 생쥐 꼴이었다. 뒤를 바라보자 바깥에서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밥이 되려면 멀었으니까라고 말하며 욕실로 밀어 넣고는 마저 식사를 준비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욕실에서 선생님이 나왔다.
“⋯⋯카레네.”
“으응⋯⋯ 카레야. 그래도 걱정 마! 최고의 솜씨로 준비했는걸!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배달이라도 시켜서⋯⋯.”
“아니야, 미카가 해준 거인걸.”
그렇게 둘이서 식탁에 앉아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즉석밥인 거 눈치채려나? 카레 루도 급하게 만드느라 살짝 태운 거 알려나?
조심스럽게 먹는 그 얼굴에 말을 걸었다.
“⋯⋯선생님은, 속은 거야.”
“푸흡⋯!!”
“어라?! 갑자기 사례 걸린 거야? 일단 여기 휴지! 휴지 있어! 그리고 물!”
“콜록콜록⋯⋯ 아니, 갑자기 속았다고 하니까.”
“아니, 카레가 죄다 즉석이라서⋯⋯.”
그러고는 둘 다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너나 할 거 없이 같이 말이 나왔다.
“저기, 미카 ㅁㅣ⋯⋯.”
“그 선생님 미ㅇ⋯⋯.”
둘이 같이 말이 나오는 바람에 같이 멈춰버렸다.
“미카 먼저⋯⋯.”
“아니, 선생님 먼저해도⋯⋯.”
둘이서 서로 차례를 양보했다. 먼저 하라는 말을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순간 얼굴을 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아하하! 뭐야 바보 같아~.”
“응, 그러게 말이야.”
나는 조심히 일어나 선생님의 손을 잡고 끌어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히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방금 전에 씻은 거 때문에 약간 물기가 남아서 축축했다.
“저기⋯⋯ 선생님, 아직도 나 사랑해?”
“⋯⋯응, 그 무엇과도 바꾸기 싫을 만큼.”
“그러면 말이야. 우리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잡고 있는 손을 깍지 끼며 더 단단하게 잡았다. 미쳤나 봐 이럴 때도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고.
한 번의 심호흡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도 선생님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잖아? 사랑하는 마음에 그런 거잖아? 그렇다면 미안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자.”
“그러면 뭐라고 해줬으면 좋겠어?”
“고마워라고 하자. 사랑해 줘서 고마워, 만나서 고마워,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자.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같이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야. 나는 지금 이렇게 와준 선생님이 너무너무 고마운걸? 그리고 지금까지 이걸 말하지 못한 게 너무너무 미안해.”
아아, 드디어 말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가만히 기댄 내 얼굴에 선생님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리고 입술에 조그마한 촉감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말했다.
“이젠 미안하다고 안 하기로 했잖아? 그래도⋯⋯ 미카가 그렇게 말해줘서 나도 고마워.”
손이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가슴에 올라간다. 선생님의 가슴도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내려치듯 빠르게 그리고 크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딱히 말하지는 않겠다.
원래 부부 사이는 조금 비밀스러운 게 좋은 것이다. 아마 코하루 짱이 들었으면 사형!!! 같은 소리를 했을 거 같고.
다만 원래 처음의 고비를 넘어가면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쉬운 법이라 말해두겠다.
⋯⋯그러니까 한두 번으로는 안 끝났다는 말이다.
* * *
“잠깐~!! 기다려~! 넥타이 매 줄게☆!”
“응? 이미 묶었는데?”
“그러면 이러면 되거든?”
손으로 넥타이를 풀어버리고는 다시 내가 매기 시작했다.
“이러면 시간만 더 걸리는데⋯⋯.”
볼을 잔뜩 부풀린 채 대답했다.
“어차피 오늘도 늦을 거 아니야? 그러면 이렇게 아침에라도 오래 붙잡아둬야지.”
“오늘은 일찍 올게⋯⋯.”
“으으으, 분명 이렇게 하면 됐는데?”
넥타이가 잘 매이지 않아 그냥 내 목에 걸어 매듭을 지었다. 그러자 바로 되어서 그 고리를 어깨를 걸쳐 선생님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정말로 일찍 올 거지?”
“당연하지!”
시원하게 웃으며 나가는 선생님을 배웅했다.
우리는 다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일어나고 밥을 먹을 때도 함께다.
물론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샬레의 일은 바쁘고 그걸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런 자잘한 불행보다 큰 행복만을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출근한 지 한참 지난 선생님의 도시락이 아직 부엌에 있는 거처럼 말이다.
“응☆, 가져다줘야겠네?”
두고 간 도시락을 들고 차를 움직여 샬레로 향했다.
낮의 샬레에 들르는 건 오랜만인지라 잠시 로비를 서성이며 구경하고 있었을 때였다.
“잠시만요. 여기는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인데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어떤 애가 날 세우더니 다가왔다. 복장을 보자 트리니티의 학생인 거 같았다. 그립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아, 이건 너무 아줌마 같았으려나?
그 애에게 도시락을 보여주며 말했다.
“샬레에 선생님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려나☆?”
“도시락⋯⋯ 그러면 어디 소속이실까요? 게헨나? 밀레니엄?”
“어⋯⋯ 그게.”
나 딱히 소속 같은 게 없는데. 아직은 이혼 상태라서 아내라고 하기에도 뭔가 이상하고.
조금 고민하고 있자 눈앞의 아이는 갑자기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라? 나, 큰일 나는 거야?
그러자 뒤에서 선생님이 다가왔다.
“수상한 사람 아니니까 걱정 마.”
“네? 그러면 일단 신원 사항이라도.”
“으음⋯⋯ 그러니까 마누라?”
“네, 넷?!”
아, 쟤 얼굴 빨개졌다. 뭔가 못 들을걸 들은 얼굴이길래 이쪽에서 좀 더 꽁냥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기야~♡ 여기 도시락 두고 가서 가지고 왔어! 내가 귀찮게 한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고마워.”
“에헤헷, 그러면 학생, 우리는 올라가 볼게 다음에 또 봐~”
“아앗 네! 좋은 시간 되세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채 꼭 들러붙자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아는 애야?”
“으음⋯ 트리니티 소속이라는 거 말고는 모르겠는데? 게다가 지금 트리니티라면 아마 내가 있을 때는 아마 중등부 소속이었을 테고. 근데 당번이야?”
“그렇지? 아무래도 당번으로 오면 우수할 애들이 많아서 업무가 금방 해결되니까.”
“헤에~ 일찍 온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나 봐?”
업무 층에 도착하자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도시락을 펴 같이 점심을 먹었다.
“으음, 뭐지? 간이 이상한 느낌인데.”
“어? 간이 이상해 어디가?”
“아니 좀 쉰내라고 해야 하나? 조금 음식 냄새가 고약한⋯⋯.”
“어?”
“에?”
“자, 잠깐 그러니까 그거⋯⋯.”
“아무래도 설마 아니 아니⋯⋯.”
그리고 그날 저녁에 바로 이유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와ㅡ오.”
큰 행복만 보고 살겠다고 했는데 진짜 큰 행복이 와버렸네.
* * *
Epilog.
쾅!
술집의 한 구석에서 술병이 식탁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와 함께 취객처럼 고성방가가 울린다.
“미카 씨도 선생님도 너무 정조가 없잖아요!!”
“나기사, 맨 속으로 술 마시면 내일 일은 어떻게 하게요. 조금 안주라도 먹으면서⋯⋯.”
“몰라요! 제가 대표인데 왜 전무님들 보다 제가 더 바쁜 건데요! 아무것도 몰라요! 저 이제 일 안 할 거예요! 나머지는 맘대로 하라든지 알아서 하라고 해요!”
고성방가를 하고 있는 키리후지 나기사와 유라조노 세이아. 둘만의 티⋯⋯ 아니, 알코올파티가 개최되었다.
미소노 미카? 그 호적 파내고는 몇 달 동안 자기 귀찮게 하더니 쓰윽하고 다시 호적 쓰는 배신자하고는 할 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세이아는 나온 마른안주를 하나 씹어먹으면서 눈앞의 술주정 부리는 아가씨(과거형)를 바라보았다. 이게 올해의 기업인으로 칼럼 나온 사람이라니 경제는 끝났군요.
“보통 남성이 이혼 후 재혼을 결심하는 기간이 3~4년이라고 했는데 1년 좀 됐다고 둘이서 엉겨 붙고, 너무 문란하다고요! 미카 씨도 너무하잖아요! 내 맘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뭐, 과도기에 일어난 해프닝으로 치부하죠. 그 바보커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느낌으로 보고 있자고요. 오, 여기 계란말이 맛있네요. 종업원 씨, 여기 명란젓 하나하고 계란말이 하나 주세요.”
“아니, 그럼 세이아 씨는 아무 아쉬움이 없는 거예요? 저만해도 이렇게 속이 쓰린데.”
“으음,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죠. 사랑 같은걸 뭐 돈과 권력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중세 시대 영주도 아니고 초야권을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술 한 모금 들이키자 알코올 퍼진다. 조금의 용기가 생긴다.
“좋아하니까. 행복하길 바라는 거죠. 미카가 허구한 날 남자는 30대부터라면서 감금하고 가정폭력을 휘두르면 모를까. 저렇게 서로를 아껴주는 부부를 갈라놓는 거는 보기 싫네요.”
행복한 둘의 이야기가 그런 뒷맛이 쓴 이야기로 끝나는 것도 싫었고 그렇다고 그 이야기에 난입해 맘대로 주물러 이상한 장르로 만들기도 싫다.
이 이야기의 장르는 휴먼드라마 로맨스 정도로 끝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쓰린 속을 채우기 위해 나기사가 안주를 집어먹는 게 보였다. 고급 빈티지 와인이 아닌 평범한 주류를 마시는 모습도 보자 가끔씩 노포를 끌고 다닌 보람이 있다.
“하아⋯⋯ 이쪽도 진짜 진짜 사랑하는데.”
그리고 하소연을 하는 건 이 테이블만이 아니었다.
“노아~ 왜 선생님은⋯⋯.”
“아코, 괜찮아. 내가 모자란 탓에 선생님이 선택하지 않은 거뿐인걸.”
하얀 머리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과 그의 부하로 보이는 테이블 하나.
파란 머리와 하얀 머리의 절친해 보이는 둘의 테이블.
그리고 이 쪽 두 명의 알코올파티 테이블.
그렇게 세 테이블이 눈을 마주쳤다. 오다가다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서 그런지 이쪽은 나기사가 나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키리후지 나기사라고⋯⋯.”
“소라사키 히나야.”
“하야세 유우카라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 게 영락없는 사회인의 인사법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저 두 테이블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모양이니까. 잘된 일이다. 나기사의 술주정을 혼자 받아낼 자신이 없었는데 말이다.
배신자 고릴라가 있었으면 억지로 둘러업고 자리를 파할 수 있었겠지만 자기는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일단 다가오는 선거가⋯⋯.”
“일단 중혼 통과를 위해서는 민심도 어느 정도⋯⋯.”
“그렇다면 일단 후원부터 시작할까?”
가만히 마시며 듣다가 뭔가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깐만 여기서 정치 떡밥을?
그리고 이 쪽으로 나기사가 다가왔다.
“세이아 씨! 저번에 하나코 씨가 하원 의원 선거 나간다고 하셨죠!”
“네? 아니 분명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면 됐습니다! 일단 연락처부터 건네주세요! 하나코 씨를 필두로 정치 쪽으로 가죠! 목표는 중혼 합법화로!”
그렇게 의기투합된 3명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미카,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그렇게 애틋하게만은 끝나지 않을 거 같네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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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개추후감상

달달

서로 미안해 하다가 고마워로 바뀌고 분위기 좋아지는게 미식이네요
그거 하나보고 쓴거라 누가 보고 맘에 들어할까 기대했는데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