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헤어지자, 하나코."
"네?"
트리니티의 어느 노상 카페. 그곳에서 선생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여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다.
"갑자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는..."
"너같은 건 질렸어, 지금까지도 진심을 전혀 털어놓지 않는 주제에. 음료 값은 아까 계산해뒀으니까, 붙잡지 마."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생의 손목을, 하나코가 붙잡는다.
"자, 잠시만요! 이대로 떠나지 말아주세요! 저는..."
"너는 뭐? 너보다 나은 여자가 없는 줄 알아? 키보토스에 널린 게 여자애들이라고."
이렇게나 아름다운 날인데. 하나코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진다.
"하지만 선생님, 아시잖아요! 전 이미 선생님의 아이도...!"
"지우든 기르든, 그건 마음대로 해. 왜, 양육비라도 보내줘?"
인간의 탈을 쓰고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을 남긴 선생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하나코는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흐느꼈다.
"안돼, 안돼... 선생, 니임..."
이 뱃속에 당신과의 사랑의 결실이 있는데, 누구보다 자랑스런 어머니가 되겠노라 다짐했는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하나코는 눈물을 흘렸다.
"흑, 흐으윽, 으흑..."
"... 보, 여보...?"
"으흐윽... 어라?"
하나코가 눈을 뜨니, 거기엔 잠옷을 입은 선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보, 무슨 일 있어? 자다가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리길래..."
"선... 생님...?"
틀림없다. 선생이다. 하나코의 인생을 몇 번이나 바꿔준 은인이, 그녀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선생이라... 당신한텐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네. 그래, 우리 하나코 어린이~! 선생님이 뽀뽀해줄까?"
"푸흡... 아하핫! 뭐예요, 그게. 당신도 참."
꿈 속에서와 달리 너무나 해맑은 그이의 모습을 보니, 하나코는 울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무서운 꿈이라도 꿨나 보구나. 하지만 괜찮아, 내가 여기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이도."
"아... 네, 그랬었죠. 이 뱃속에..."
선생은 하나코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법 부풀어오른 배에는, 조그만 분홍빛 헤일로가 떠 있었다.
그 자그만 생명은, 이 세상과 만날 생각에 신이 난 듯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분명 행복한 날만 가득 있을거야. 당신과 함께니까."
"네... 분명 그럴거예요."
하나코는 선생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껏 그가 한 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이 사람과 함께라면, 틀림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왜인지, 하나코의 불안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임신성 당뇨도 나타나지 않고, 초음파 검사에서도 아주 건강한 아이가 보이네요. 안정기에 무사히 접어드셨군요?"
산부인과에서의 정기검진은 금방 끝났다. 하나코는 검사 결과를 들으며 안도하였다.
"다행이네요... 사실은 요즘 악몽을 자주 꾸어서, 아이한테 악영향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지라..."
"악몽 말입니까? 임신 중 우울은 임산부에게 종종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호르몬 변화에 의한 일이죠."
"그런... 가요?"
"우울증이 의심될 경우엔 정신과에 가보시는 것도 좋지만... 부인의 경우엔 증세가 심한 것 같진 않으니,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도움을 받으시는 게 나을 듯 하군요.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털이 북슬북슬한 시바견 수인 원장은, 하나코를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조금 긴장이 풀린 하나코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술담배는 절대 안되니까 항상 명심하시고요?"
"고맙습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하나코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 정문으로 향했다.
"후우..."
잠깐을 걷는데도 꽤 지친 하나코는,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혼자서 움직이는 건 무리네요..."
옛날과는 너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하나코는 조금 서글퍼졌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이가 자신을 두고 떠난다면.
그때 하나코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를 붙잡으러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하나코, 하나코? 왜 그래?"
"어? 아아, 미안해요, 아즈사 쨩. 잠깐 지쳐서..."
그것은 하나코를 병원까지 차로 데려다 준, 보충부 시절의 친구 아즈사였다.
"어서 가자, 슬슬 점심 때니까. 근처에 히후미가 알려준 레스토랑이 있어."
"어머, 히후미 쨩의 추천이요? 기대되는데요?"
하나코를 부축해서 차에 태운 아즈사는, 곧 시동을 걸고 병원을 나섰다.
"검진 결과는 어떻대? 혹시 어딘가 안 좋다던가..."
"아뇨, 원장님도 무척 건강한 아이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나저나 죄송해요, 바쁠텐데 불러서..."
"별거 아냐, 선생님이 바빠서 나한테 부탁한 거니까."
"네... 그렇죠, 그이는 바쁘니까."
선생은 언제나 아이들을 위해 힘썼다. 그게 어른의 의무라면서.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 너는 뭐? 너보다 나은 여자가 없는 줄 알아? 키보토스에 널린 게 여자애들이라고.
하나코는 두려웠다. 아이를 가지고 추해진 자신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은 이 키보토스라는 곳이.
어쩌면 선생은 이미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을까, 늘 그것이 불안했다.
"아, 도착했어. 여기야."
"어머, 금방 도착했네요?"
하나코가 상념에 잠긴 동안, 아즈사는 익숙하게 차를 레스토랑 뒤편의 주차장에 대 놓았다.
차창 너머로 하나코가 본 것은, D.U 한복판에 있다고 믿기 힘든 온화한 분위기의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우와... 정말 예쁜 가게네요. 히후미 쨩과 코하루 쨩도 왔으면 좋았을텐데..."
"히후미는 나기사와 식사 약속이 잡혀있고, 코하루는 정의실현부의 백업을 위해 그리로 갔다는 모양이야. 아쉽지만, 두 사람은 나중에 데려오자."
"네, 그게 좋겠네요."
아즈사의 손을 잡고 차에 내린 하나코는, 곧 가게에 들어섰다. 안은 사람이 꽤 붐볐지만, 운좋게도 두 사람은 풍광이 좋은 창가 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나코는 뭘 먹고 싶어? 난 히후미가 크림 파스타를 추천해줘서, 그걸 먹으려는데?"
"어머나~, 하얀 크림이 잔~뜩 올라간 파스타요?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만..."
메뉴판을 훑어보던 하나코는, 어떤 메뉴에 시선이 꽂혔다.
"햄버그 스테이크... 좋네요, 이걸로 하죠."
"햄버그? 의외네, 하나코는 이런 기름진 음식을 즐기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예전이랑은 입맛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혼자 케이크 한 판을 다 먹어버린 적도 있답니다? 아무래도, 이런 몸이니까요."
하나코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희미하지만 분홍빛으로 반짝이는 헤일로는,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헤에... 그, 있잖아, 하나코. 혹시..."
"만져보고 싶나요? 괜찮아요, 아즈사 쨩이라면."
"정말? 그래도 돼?"
인형을 처음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인 아즈사는, 곧 몸을 앞으로 쭉 빼서 하나코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흐읏♡, 조금 더 상냥하게..."
"아, 미안해. 이렇게 하면 괜찮으려나..."
하나코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아즈사의 눈빛에는 순수한 경탄이 가득했다. 마치 뱃속의 아이가 자기 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굉장해...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구나."
"네... 정말이지 그 말대로예요."
그렇게 아즈사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한참동안 하나코의 배를 쓰다듬었다.
"후아... 정말 훌륭한 식사였어요."
"응, 파스타도 딱 맞게 익었고, 소스도 훌륭했어. 하나코는?"
"저도 이렇게 맛있는 햄버그는 처음 먹어봤어요~. 자르자마자 육즙이 가득해서, 입안이 잔뜩 젖어버렸네요♡."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느긋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잡담을 나눴다.
"만족했다니 다행이야, 하나코. 오늘의 하나코는 왠지... 우울해보였거든."
"어라? 제가요?"
식후 음료로 주문한 생과일 주스를 마시던 하나코는, 아즈사의 말에 흠칫했다.
순수한 품성과는 별개로 눈치가 무척 빠른 아즈사다. 당연히 그녀의 이상을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하나코와는 벌써 2년을 알고 지냈으니까... 그래서 알 수 있어, 하나코의 눈에 슬픔이 가득한 걸."
주문한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홀짝인 아즈사는, 그 빛나는 눈동자로 하나코를 응시했다.
"그러니 알려줄래? 하나코의 걱정거리가 뭔지...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 역시, 아즈사 쨩에게 거짓말하는 건 무리네요."
하나코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순수한 소녀와 시선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은, 그녀에겐 무리였으니까.
그 시야의 끝에는 조그마한 헤일로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엄마를 위로하려는 아이처럼.
"아즈사 쨩... 사실 저는, 아직도 두려워요. 엄마가 된다는 것도, 그리고... 그이가 절 한결같이 사랑해줄지도."
"선생님 말이야? 하지만..."
아즈사는 뭔가 말하려 했지만, 하나코가 입술로 치켜올린 손가락 때문에 저지당했다.
"알아요, 그이라면 절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두려워요. 이곳에는, 저같은 여자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은걸요."
하나코는 레스토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소녀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아이를 가지고 나서 피부도 머릿결도 상해버린 자신과는 너무나 비교됐다.
"전... 과연 그이에게 어울리는 여자인지, 솔직히 지금도 확신이 없어요."
"하나코..."
너무나 좋은 날인데,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나코의 눈가는 자꾸만 축축해져갔다.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을 아즈사가 닦아주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 하나코. 이렇게나 힘든데, 난 하나도 몰랐구나..."
"아, 아니에요, 아즈사 쨩! 오히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제가 나쁜걸요."
손수건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아즈사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으음... 저기, 하나코.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아즈사는 창밖을 보며 자신의 지난 날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말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난 혼자였어. 물론 내가 태어난 걸 축복한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분들의 얼굴도 모르니까."
"네? 아즈사 쨩, 무슨 이야기를..."
하나코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아즈사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아리우스에서 생활할 때는, 분명히 아프고 슬픈 일도 많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원망한 적은 없었어. 스쿼드의 동료들과 만났고, 선생님과 보충수업부를 만났고, 그리고... 그 아이도 만나게 될 거니까."
"아즈사 쨩..."
누가 먼저였는진 모르겠다. 그저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아마 그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소중한 인연을 쌓고, 추억을 쌓고, 사랑을 쌓아가겠지. 그러니까 하나코."
아즈사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나코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런 아이를 품은 자신을, 조금 더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돼. 너는 그 아이의 엄마니까."
"그치만... 그래도 두려운걸요. 전 그이에게..."
"그것도 무서워할 것 없어. 정 두렵다면... 그래, 직접 부딪혀보는 건 어때?"
"네?"
아즈사는 잠시 눈을 감고, 그날을 떠올렸다.
- 저도 아즈사 쨩한테 갈 수 있어요...!! 이렇게 닿을 수 있다구요...!!
"사람은... 사람은 너무나 연약해. 먼저 다가와주지 않으면, 의심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지. 그리고 그건... 어쩌면 선생님도 다르지 않을거야. 어른이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인걸."
"먼저 다가서길 원한다, 라는 건가요? 그 사람이..."
아즈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빛을 담은듯한 그녀의 눈빛은, 소중한 친구를 보듬는듯했다.
"하나코라면 답을 찾을 수 있을거야. 내게 하나코는, 가장 지혜로운 친구인걸."
"아즈사 쨩... 고마워요, 제 어리광을 받아줘서."
그렇게나 어리숙해보이던 소녀였는데, 아즈사는 어느 새 어른이 되어 있었구나.
하나코는 가슴 한켠이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녀왔습니다~. 후아암..."
오늘도 야근을 한 것인지, 선생은 꽤 늦은 시간에 자택에 귀가했다.
"어머, 오셨어요? 정말~, 너무 늦잖아요."
"미안미안, 일거리가 좀 밀려서."
거실에 있던 하나코는,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선생을 맞이했다. 볼멘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목욕물 받아놨으니까, 어서 씻고 나오세요. 내일도 바쁘다고 했으니까, 씻고 일찍 자야되죠?"
"오,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마워, 그럼 들어갈게~!"
겉옷을 대충 벗어둔 선생은, 밝게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아, 하나코는 자꾸 웃음이 났다.
그리고 욕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하나코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네, 할 수밖에 없겠죠."
각오는 되었다. 아즈사가 손을 잡아줬으니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하겠다고. 그녀는 마음을 먹었다.
"여보, 나 다 씻었어~... 여보? 어딨어?"
목욕을 마친 선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나코를 찾았다. 분명 좀 전까지 거실에 있었는데, 왜인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자러 들어갔나... 여보! 여보, 자?"
조심스럽게 안방의 문을 연 선생.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후훗... 다 씻으셨나요, 여보?♡"
수영복을 입고 침대에 걸터앉은 하나코였다.
"... 꿈인가."
"현실이랍니다? 옛날엔 이런 모습으로 트리니티를 돌아다녔는데, 그립네요~."
선생은 꽤나 충격을 받은듯했다. 그럴만도 했다. 요염한 붉은빛 비키니와 헤일로가 떠 있는 볼록 튀어나온 배. 그 둘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했다.
"여, 여보. 이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선생은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곧 입을 닫았다. 하나코의 표정이, 너무나 서글펐기 때문이다.
"사실은 알고 있어요... 아이를 가지고 난 후로, 제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걸요. 피부도 예전같지 않고, 머릿결도 상했어요. 그리고..."
하나코는 손을 등 뒤로 해, 수영복의 끈을 풀었다. 가슴이 그대로 흘러넘쳤다.
"꽤나 보기 흉해졌죠? 제멋대로 커져버리고, 끝쪽의 색깔도 까매지고... 그러니 이 질투 많은 여자에게 말해주세요."
침대에서 일어난 하나코는 한 걸음 두 걸음, 선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그 귀에 속삭였다.
"저는 아직도, 당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가요? 아니면, 이미 당신의 마음은 더 젊고 아름다운 아이에게 넘어갔나요?"
선생은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럴수록 하나코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그리고 곧 그 불안이, '이 관계가 끝나버릴지도 모르는데,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로 바뀌어갈 때.
"... 하나코."
"네? 어, 잠깐... 꺄악!"
선생은 그대로 하나코를 밀쳐,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 모양새가, 마치 선생이 하나코를 덮치는 모습처럼 되어버렸다.
"여, 여보? 왠지 눈빛이 무서운데..."
"... 미안해, 하나코. 당신이 불안해하지 않게, 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이 남자는 어째서 사과하는걸까. 오해한 건 나인데. 하나코는 그런 의문에 빠졌다.
"하지만 난 당당히 말할 수 있어. 이 세상의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특히... 나의 아이를 품어준 당신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그 얘기는..."
선생의 손은 하나코의 골반으로 향했다. 수영복 끈이, 그 손에 걸려 풀어졌다.
"그러니까 하나코, 오늘 밤은... 함께해줄 수 있을까?"
"... 상냥하게, 부탁드릴게요..."
그가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아직도 날 원한다는 걸 알았는데.
그 상황이 왠지 처녀이던 시절보다 부끄러워져서, 하나코는 선생의 눈을 피하며 답했다.
그런 일이 있고 몇 년이 지났을까.
하나코는 지금, 그림책을 펼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 그렇게 알라딘은 나쁜 마법사를 물리쳤지만, 결국 소원 3개를 모두 써버린 알라딘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어요."
"진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아이를 상대로, 하나코는 조금 장난기가 동했다.
"후훗, 글쎄요~? 어떻게 됐을 것 같나요?"
"으엑! 엄마는 심술쟁이~! 들려줘, 들려줘!"
살짝 주먹쥔 손으로 자기 어깨를 콩콩 두드리는 그 아이가, 하나코의 눈엔 너무나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정말~. 알겠어요.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말이죠... 하지만 공주님은 착하고 용감한 알라딘의 모습에 반해서,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떤가요?"
"응! 재밌었어! 있지, 엄마, 하나만 더 읽어주면 안돼?"
"안돼요~, 내일은 소풍가는 날이잖아요? 어서 자야죠?"
"치이... 알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하나코는, 아이 방의 수면등을 꺼주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있지, 엄마.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어떤 건가요, 우리 딸?"
아이의 질문에, 하나코는 몸을 돌려 다시 방에 들어왔다.
"엄마한테 아빠는 말야, 알라딘같은 사람이야?"
"아빠... 말인가요?"
"응! 용감한 왕자님!"
하나코는 고민하듯 턱을 몇 번 매만지다, 아이에게 답해주었다.
"글쎄요... 굳이 따지면, 알라딘은 엄마라고 생각해요."
"어? 엄마가?"
아이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눈치였지만, 하나코는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네. 사실 엄마는, 우리 딸이 태어나기 전엔 엄~청 거짓말쟁이였거든요."
"엄마가?"
"그럼요. 그런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해준 사람이 아빠니까, 어쩌면 아빠가 공주님 아닐까요?"
"에~, 그게 뭐야? 이상해!"
아이는 실망한듯 했지만 상관없었다. 하나코는 아이에게 솔직한 감상을 말했을 뿐이니까.
"그럼 우리 딸, 이제 진짜 잘 자요?"
"네~. 엄마도 잘 자..."
방금까지의 활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이는 금방 잠들었다. 하나코는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나코는 아직도, 아즈사가 해줬던 말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 아마 그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소중한 인연을 쌓고, 추억을 쌓고, 사랑을 쌓아가겠지.
"네... 분명 그럴거예요, 아즈사 쨩. 그이와... 저의 아이인걸요."
하나코는 소망했다. 그녀의 아이가 자신이 봐왔던 만큼, 그러나 그것보다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기를.
"무서워질 때면 언제나 엄마한테 기대도 괜찮아요. 우리 딸이 엄마의 세상을 이해할 때까지, 엄마는 우리 딸의 세상을 지켜볼 테니까."
그렇게 아이는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는 아이가 된다.
*****
하나코가 너무 좋아서 벌써 하나코 소설만 세 번째입니다.
원래는 하나코와 딸의 일상같은 작품을 생각했는데, 예전에 요런 짤을 봤던 게 생각나 노선을 살짝 틀었습니다.
일상물 소설은... 언젠가 써오지 않을까요? 아무튼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3
대 즈 사
미숙해보이던 아이가 어느 순간 훌쩍 커서 남을 이끌어주는거 최고지 않나요...
@OGIAD



하나코소설 더써와!!!
여유가 생기면 본작이랑 같은 설정으로 일상물이라도 써볼까 싶긴해요...
아스나나 리오 순애 소설도 가능한가요
둘다 매력적인 캐릭터라 플롯만 좀 구상해봐야될듯
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