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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우시오 노아가 죽어가는 선생과 작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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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솔직히 말하면 말이야."

침대에 앉아 천천히 숨을 내쉬던 선생이, 무심한 듯 빛나는 별들을 막연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 최후라고 하면...뭐랄까, 현장에서 장렬히 총에 맞는다거나, 아니면 과로로 쓰러져서 그대로 눈을 감는다거나...그럴 줄 알았어."

"어머, 과로인 건 정답이라구요?"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내던 노아가 평소대로의 미소를 지어보인다. 전혀 웃어보이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마당에도 선생에게만큼은 엉망인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라고, 우시오 노아는 생각하고 있다.

그가 키보토스에 부임한 것도 꽤나 지난 이야기. 그는 끝모를 놀라움을 자아내며 온갖 사건사고들을 해결해왔고, 우시오 노아는 가깝던 멀던 항상 그의 곁에 있어 왔다. 수백 페이지의 소설책 속 문구를 외우는 일처럼, 접수된 특허 신청서의 발명에 어딘가 중복되는 것이 있는지 검토하는 것처럼, 선생의 행동 하나하나를 읽어내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선생은 항상 억지웃음을 지을 때에는 눈이 웃지 않는다. 선생은 제법 정직한 사람이라, 진지한 거짓말을 할 때에는 숨을 들이쉬는 것보다 내쉬는 것이 조금 더 길다. 선생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때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두 번 움찔거린다. 선생은 초조할 때마다 3초 혹은 5초에 한 번씩 마른침을 삼킨다. 이 모든 것이 선생에 대해 알게 해 주는 요소들이었고, 이것을 알아채는 것은 노아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그녀의 생각처럼, 선생은 그녀가 애써 웃음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노아는 언제나 생글생글 미소지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만, 어째서인지 얼굴의 낯빛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썩 기분이 좋을 때는 윤기가 흐를 정도로 화사한 느낌을 안겨 주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달이 뜨지 않은 밤마냥 어딘가 어두워보이는 느낌이다. 그녀는 언제나의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마 착잡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다 서로를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척, 지금의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마치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그 위태로운 평화가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과로는 좋지 않아요. 쇠약해진 몸은 합병증을 불러오고, 이전의 부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건 트리니티 학원의 구호기사단 학생분이 이번 분기에만 452번 말씀드렸던 사실이죠?"

"...세리나, 생각보다 입이 꽤 아팠겠는걸."

"후훗, 단순히 제가 들은 횟수만이지만요."

선생이 분홍빛의 그 수호천사를 떠올린다. 세리나에겐 원체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자신이 이렇게 되고 난 이후부턴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을 전혀 보지 못 한 참이다.

선생이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본다. 이젠 그저 메말라버린 가죽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조금 어루만지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자신의 손에선, 어느덧 그 어느 향수로도 지울 수 없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그 죽음의 냄새는 너무나도 고약해서, 잊고 있었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금방이라도 끄집어 내어진다.

홀로 외근 중 과로로 인한 실신. 운나쁘게 먼저 쓰러져버린 머리와 그로 인한 부상. 비 내리는 심야 도로변에 몇 시간이고 방치되어버린 데에서 온 독감. 그로 인해 쇠약해진 몸에 닥쳐 온 수많은 합병증.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건강이 무너져버린 이후 걷잡을 수 없게 약화된 신체 기능.

이것이 히무로 세나에게서 들은 자신의 당시 상태였다. 평소와 같이 무뚝뚝하려 들지만 명백히 떨리던 목소리의 그녀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게 쇠약해져가던 선생에게 결국 진단을 내려주었다.

시한부.

적어도, 키보토스의 현재 의학으로는 몸의 약화를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온갖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그의 상태 호전을 위해 처절할 정도로 매달렸다. 밀레니엄의 엔지니어부는 인간에게 생기와 영양을 강제 주입하는 기계의 개발을 시도했다. 산해경의 야쿠시 사야는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내기 위해 잠적했다. 게헨나의 응급의학부와 트리니티의 구호기사단은 최적의 치료법이나 약품의 연구를 위해 손을 잡았다. 아비도스의 대책위원회는 혹시나 모를 치료 단서를 얻기 위해 카이저 그룹의 계열사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습격했다.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선생을 위해 음지 양지 가릴 것 없이 두문불출하며 매달렸으나, 그 모든 시도들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결말로 귀결될 뿐이었다.

선생의 몸은, 이제는 되돌릴 수 없었다.

"...선생님. 이상한 생각 하고 계시죠?"

노아가 앉아있던 선생에게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건넨다. 행여나 쇠약해진 그에게 영향이 갈까, 컵을 두 개 겹쳐 최대한 뜨겁지 않게끔.

"아니, 뭐......그냥. 그래도 내 학생들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선생이 노아에게서 커피를 받아든다. 손가락 끄트머리끼리 닿았을 뿐이지만, 선생의 손가락에서는 마치 겨울까지 떨어지지 않은 낙엽의 감촉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메말라버려 수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살짝 만지는 것만으로도 바스라져버리는 겨울 낙엽의 느낌. 그것은 노아의 기억 속의 손과는 아예 다른 것이었다. 겨울 낙엽처럼 메말라버린 손가락과 크고 따뜻하며 생기있는 손가락. 그 두 가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되어, 노아의 가슴 한 켠에 또 하나의 생채기를 낸다.

이제는 더 이상 상처입을 곳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한 몸이 망가지더라도......내 학생들을 지켜냈잖아."

선생이 천천히 종이컵에 입을 댄다. 자신은 제법 손에 힘을 주고 있지만, 종이컵 안쪽의 연갈빛 수면은 잔잔하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선생이 입을 떼고 나서도, 종이컵 안의 내용물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그가 옆의 테이블에 종이컵을 내려놓는 동안, 위태로운 그의 손은 기특하게도 종이컵을 놓치지 않아 주었다.

종이컵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이제 그만 눕고 싶다는 뜻. 그가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우시오 노아는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곧바로 능숙하게 선생을 눕혔다.

혼자서는 눕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선생의 몸이 이미 망가져있었기에.

"...선생님은, 정말 그걸로 만족하시나요?"

"응."

노아의 질문에 선생은 즉답했다.

"책임을 지기 때문에 어른이니까. 나는 어른이고."

노아는 여전히 선생의 손목을 바라본다. 늦겨울의 죽어버린 나뭇가지마냥 메말라버린 손목. 분명 사이즈에 맞췄을 터였으나 이젠 반절 이상이 남아 헐렁거리는 환자복. 그것이 정말 이 남자가 원하던 삶이었을까.

"......걱정하지 마렴, 노아. 나는 최고의 삶을 살았어."

선생은 그런 노아의 마음이라도 읽어버린 듯, 생기없는 목소리로 애써 웃음지었다.

"분명 내가 살던 세계도 아닌 곳이고,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을 했지만, 그래도 난 너희들의 선생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행복했어."

"...거짓말."

노아가 작은 목소리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반대를 표한다.

"...서기는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해요. 자신이 기록하는 사실에는 일언반구의 사견이 들어가선 안됩니다. 기록의 중립성을 저해하는 행위는 서기로서 반드시 지양해야해요."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노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녀는 이제 웃지 않는다.

"...그러니, 선생님. 이건 세미나 서기 우시오 노아가 아니라, 당신의 학생인 우시오 노아로서의 의견......아니, 주장입니다."

아무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위태로웠던 평화를, 노아는 자신의 손으로 깨부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 선생님께선 지금 거짓말을 하고 계세요.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생명보다 고귀한 것은 없어요. 뭐가 어른이고 책임인가요. 자신의 몸마저 이렇게 망쳐놓아야만 질 수 있는 책임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책임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것조차도 완벽한 게 아니에요. 선생님께선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저지르셨어요. 더 이상 학생들의 손을 잡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에요. 학생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시는 거라구요."

적막만이 흐르던 병실을, 조곤조곤한 그녀의 목소리가 가득 채워나간다. 아주 작은 한 켠의 떨림과 함께.

"유우카 쨩은 더 이상 선생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지 않아요. 더 이상 완벽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더 이상 확실한 목소리를 내지도 않아요. 유우카 쨩은 이제 더 이상 생기넘치는 미소를 지어주지 않아요. 매일 아침 8시 정각에 하던 아침 전화도 하지 않고, 아침 9시 13분마다 하던 선생님 영수증 검토도 더 이상 하지 않고, 10시 35분마다 나가던 동아리 순회도 더 이상 하지 않고, 하루에 25번 이상 하던 선생님의 식습관 고민 이야기도 더 이상 하지 않아요. 유우카 쨩은 더 이상......버텨 낼 수 없어요."

선생이 세미나의 회계이자 사실상 자신의 매니저 역할을 하던 하야세 유우카를 떠올린다. 노아의 말대로, 언제나 완벽을 부르짖던 그녀는 더 이상 완벽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코유키 쨩도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아요.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 중 6시간 이상을 선생님과의 모모톡을 다시 읽는 데에만 쓰고 있어요. 코유키 쨩과 유우카 쨩을 망가뜨린 건 누구인가요. 저인가요? 아니면 무기력함만 가득 차 있는 밀레니엄인가요? 끔찍하리만치 고요해져버린 키보토스인가요? 아뇨, 선생님 때문이에요. 자신의 몸을 단 1도 생각하지 않다가 모든 걸 망쳐버린 선생님 때문이라구요."

언젠가는 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렇게 어이없게 찾아 올 것이라곤 생각치 않았다.

"어른이시라면 책임을 지셨어야죠. 저희의 삶에 이렇게나 깊게 들어오셔놓고는 맘대로 망가져버리시면 어쩌라는 말씀이죠? 어른이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이별도 마음대로 정하실 권리가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무책임한 어른의 행동입니다. 언제나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습관처럼 내뱉으신 그 말씀의 횟수만 옮겨 적어도, 제 수첩을 100개도 넘게 써야 할 정도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이게 맞나요?"

그는 책임졌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우시오 노아는 선생의 습관을 완벽히 기록해 그를 보좌하고 케어했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시오 노아 자신의 잘못인가? 아니, 이 모든 것은 자신의 눈 앞에 누운 채 연신 불규칙한 호흡을 내뱉는 이 남자의 잘못이다.

"...특정한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는 경우가 많아요. 설령 그것이 문자로 남기는 기록이라고 할 지라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무언가 사실의 변형이 일어나는 경우가요.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전혀 그렇지 않을 텐데요. 선생님의 이런 말라버린 모습을, 저희가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우리에게 깊게 박혀버렸으면서? 저희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기록으로 남아서, 죽을 때까지 저희를 괴롭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서,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저희를 옭아맬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그렇기에 노아는 서기로서의 자신을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언제나 놓지 않았던 자신의 직무이자 책임이지만, 자신의 선생이 책임을 저버린 이상, 자신도 잠시 책임을 내려놔도 좋을 터이다.

"...선생님께서, 제 여유를 무너뜨리고 싶다고 하셨던 적이 있었죠. 기억나시나요? 저를 관찰해서 무언가 허점을 잡아내겠다고 하시다가 결국 항복하셨던 일이요."

선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던 때가 있었지. 노아의 말을 들으니 어렴풋이 기억났다. 선생이 건진 사실은 딱 하나 뿐이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 그랬던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선, 제가 지금도 여유로워 보이시나요?"

선생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님이 이기셨어요. 저, 지금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다구요."

선생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웃지 않는 그녀의 뺨을 타고, 자그마한 눈물 하나가 천천히 흘러내린다.

"서기로서 수많은 일을 기록해 왔습니다만...지금만큼 자극적이고, 씁쓸하고, 충격적이면서, 고통스러웠던 기록은 없었어요. 즐거웠던 메모장의 마지막 장이 이렇게 끔찍할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어요. 서기에게 있어선 기록할 앞으로의 사실을 예측하는 것은 안 될 말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결말도 가능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구요.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이성과 합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요. 우리가...제 가슴이 이렇게 쓰라린 건 다 선생님 때문이라구요."

선생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노아의 손으로 가져간다.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손을,

"...안돼요."

노아는 피해버렸다.

"...잡지 마세요. 아직 안돼요."

죽음의 냄새가 한가득 풍겨져오는 그 손을 잡아버리면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다. 자신은 그 손을 잡을 수 없다.

"노아."

메말라버린 목소리가 노아의 뇌리로 파고든다. 그는 뻗었던 손을 뒤집어서, 그 손을 맞잡아 줄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돼요. 더 이상 선생님의 기억을 늘리기 싫어요."

"노아."

"그만, 그만 두세요. 저,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요. 이젠 진짜 한계라구요. 이젠 기억으로 고통받기 싫어요."

"...노아."

기억이 겹쳐져간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선생의 모습 옆으로, 눈 앞에서 죽음과 가까워지는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싫어요. 그만 두세요. 제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그 죽어가는 목소리로 기억에 남지 말라구요."

"......노아."

선생의 두 모습이 하나로 겹쳐진다. 자신이 기록해왔던 선생의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그만 하세요! 제발!! 제발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마세요, 제발!!!!"

노아가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는다. 건강한 선생의 모습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머릿속에, 피폐하게 죽어가는 선생의 기억이 자꾸 들어온다. 그 무게는 너무나도 무겁고, 그 기억은 너무나도 쓰라리다. 뇌를 끄집어내고 싶을 정도의 기억을, 그녀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만 하는 기억이, 죽을 때까지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노아."

침대 위에 걸터진 손 위로, 거칠고 메마른 감촉이 느껴진다. 감아버린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피해버렸다간, 그와 아주 이별해버릴 것만 같았다.

"노아가 틀리는 건 처음 보는걸. 미안하지만 진심이야. 난 행복했어."

선생의 숨이 이전보다도 더욱 불규칙해졌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지만, 이미 그 소리를 들어버린 머리가 제멋대로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가 내뱉던 숨 하나하나까지 떠올리고, 지금의 모습과 대비시켜, 그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 숨소리 하나하나마저도, 그녀 자신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물론 내 몸 하나 지켜내지 못 한 건 맞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올 수도 없었단다. 너희들을 지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각오했거든. 그것이 어떤 방법이라고 할 지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지라도."

어른의 카드.

그것이 선생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이 사단의 원인이었다.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여러 번 사용한 카드의 대가를 치를 시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자신이 이렇게 죽는 것은 당연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런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괜찮아. 너희들은 이제 더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니까."

선생이 노아의 손을 천천히 잡는다. 눈 앞에서 제 감정에 휩쓸려가는 학생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하지만, 얼굴을 보여주겠니?"

위태롭지만 부드럽고, 메말랐지만 따뜻한 목소리가 노아를 감싼다.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왔을 그 상냥함이 오늘따라 너무나 무섭다. 우시오 노아가 얼굴을 들 수 없는 이유였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없어져버릴 것 같았기에. 마치 유리창에 적은 글이 아침이 되며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어서, 노아. 내게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아. 나도 노아와의 기억을 가져가고 싶어. 다시 한 번 노아를......관찰하고 싶어."

고개를 든다.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뜬다. 죽어가는 사람보다도 더욱 부들거리는 두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선생의 모습이 너무 흐릿하게 보여, 소매로 눈가를 연신 비빈다. 금방 다시 흐릿해져버릴지라도, 그럼에도 선생을 바라본다.

겨울 고목처럼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선생은, 일말의 후회조차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저 학생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가겠다는 듯, 너무나도 명확하고 올곧은 눈빛 속에 다른 것이 들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씻을 수 없는 죄악감일 터이다.

"...그 때 썼던 시의 구절."

젖어있는 목소리가 병실에 나지막히 울려 퍼진다.

"선생님이 궁금해하셨던 그 구절."

그녀의 상기에, 선생 역시 그녀와의 기억에 도달한다.

정기 면담이 취소되었던 그 날. 세미나 회의실 창문에 새겼던 그 문구. 아침 햇살과 함께 순간의 기억으로만 남아버린 그 구절.

"마음에만 남겨달라고 부탁드렸던 그 구절. 선생님께선 그 날 이후로 그 구절의 뜻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저 역시 그 구절을 단 한 번도 글로 적어본 적은 없구요."

노아가 품 속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다.

"선생님이 제 모습을 마지막으로 관찰하시겠다면...저도 선생님께 마지막 기억을 남기고 싶어요. 중립적인 서기로서가 아닌......선생님의 학생인, 우시오 노아로서."

종이에 스치우는 펜의 소리. 그녀가 단 한 번도 글로 써내려간 적 없는 구절. 선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그녀는 그 구절을 적어 내려간다.

"...지금 이 현실을 기록해야만 한다면...이 문구가 고정될 현실이 바로 지금인 것 같네요. [ 이방인 ] 이라는 옛 시의 첫 구절입니다."

그녀의 펜이 멈추고, 그 구절은 기록이 되었고, 마지막 순간에서야 선생에게 보여지게 되었다. 아침 햇살이 뜨면 지워지는 기록이 아닌,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될, 고정된 현실로.

[ Qui aimes-tu le mieux, homme énigmatique, dis ]

"...그대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같은 사람이여. 말해다오."

노아는 수첩을 선생에게 보인다. 언제나 마음 속으로만 되뇌이던 문구를, 그녀가 입 밖으로 꺼내 놓았다.

"저는 서기입니다. 모든 것을 기록으로, 글로 남깁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수수께끼같은 사람이여. 노아가 다시 한 번 중얼거리듯 내뱉는다.

"......누구를, 가장 사랑하시나요?"

글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종이와 펜으로 써내려가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다. 예술이랍시고 길이길이 기억되는 작품들은 청자가 해석하기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정작 화자의 정확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되겠는가.

화자에게 있어, 어쨌든 우리는 이방인이며, 우리에게 있어 화자 역시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다른 이방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아니기에. 마치 다른 사람의 글처럼.

그것이 글의 한계다. 글을 다루는 자신이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은 썩 우스운 꼴이지만, 글을 다루는 자신이기에 그러한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통감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눈 앞에서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수수께끼같은 이방인에게 마침내 질문을 던진다.

이방인의 삶 마지막 순간이기에. 이 시간이 지나면 그 이방인 역시 그저 글로써만 존재할 뿐이기에.

"......나는-"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 흘러가는 구름을..."

그렇지만, 그 이방인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다.

"저기...저 찬란한 구름을..."

그는 이방인이어야만 한다.

"이건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구요."

서기 우시오 노아에게 있어서 고정될 현실은, 인생을 송두리 째 흔들어버릴 굳어진 취향은 존재해선 안되는 법이니까.

"이 시의 화자는 그 어느 고정된 것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족, 친구, 조국, 미인, 돈, 그 어느 것도요. 화자는 구름의 우연과도 같은 매력을, 흘러가버릴 뿐인 그 매력을 사랑했지요."

그렇기에, 우시오 노아는 다시금 모든 현실들을 흘려보내버린다. 서기 우시오 노아로 다시 돌아간다.

"후훗,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을 당혹스럽게 하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라고.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미소를 짓는 노아가 덧붙인다.

"...선생님의 마지막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었어요."

노아가 침대 위로 쓰러지고, 노아의 팔을 끌었던 선생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너무나도 잔잔하고, 너무나도 메말라버린 온기가 노아를 감싼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은 점차 잦아들어가는 숨소리와 함께, 끌어안은 노아를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다.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이, 이토록 멋지고 매력적이라는 걸, 그 화자도 알았던 걸까?"

선생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고마워, 노아. 너는 내게 찬란한 구름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야. 나는 행복했단다."

노아의 시선이 흐릿해진다.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벅차오른다. 그동안 미처 글로 전하지 못한 응어리가 끓어 오른다. 자그마한 구멍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려버리듯, 한 번 넘치기 시작한 감정은 소용돌이가 되어 넘쳐흐른다.

"...선생님...선생님......돌아가시면 안돼요......!"

노아는 질문을 끝맺지 못했다. 선생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글로 미처 전하지 못한 감정은, 말 한 마디에 끓어넘쳐 흘러버려, 이내 어딘가로 흘러가버린다.

"죽으시면 안돼요...싫어......싫어요! 저희를......저를 버리고 가지 말아줘요......!! 선생님......! 선생님......!!"

이방인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찬란한 구름처럼, 아침해가 뜨면 사라지는 창문 속 글자처럼, 그렇게 떠나갈 뿐이다. 그 후에 남을 것은, 떠나간 이방인의 품 속에서 서럽게 울어버리는 한 여자 아이일 뿐이었다.

유성이 떨어진다. 그 유성은 두 가지 빛으로 빛나던 그 때와는 달리, 유독 차갑게 식어버린 채로 길 잃은 이방인처럼 외로이 떨어진다.

그리고 유성은, 달빛을 가려버린 밤구름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이내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밤은, 유독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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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로는 처음 글써보는거라 좀 어려웠다

선생이 천천히 죽어간다면 마지막을 지키는 건 노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듬

노아가 좋아한다는 시가 생각보다 좋은 시더라

찾아보고 되게 감탄함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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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3.09.21창작

소설) 우시오 노아가 죽어가는 선생과 작별하는 이야기

#우시오 노아#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23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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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DC
데스/모이네스!작가
게시물 51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3.09.21 23:53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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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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