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방금까지 누워 있던 침대 위가 흥건하게 얼룩져있었다. 등에서 기분나쁘게 끈적거리는 것들은 아마도 자신의 땀일 것이고, 잠옷마저도 불쾌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젖어버렸을 것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코가 천천히 창 밖을 내다본다. 아직 어둠은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이제서야 자정 즈음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 그녀는 악몽을 꾸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하아."
입에서 내뱉은 한숨. 폐에 가득 찼던 공기가 빠져나가는 느낌. 여전히 두근거리는 심장. 창 밖 어딘가에서 찌르르거리는 귀뚜라미 소리조차도, 채 진정되지 않은 자신의 고동소리에 비하면 티끌만큼의 소음도 되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알아채지도 못했을 정도의 그 소음이, 지금은 자신의 고막을 찢어발길 정도의 고통같이 느껴지고 만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온다. 바닥을 내딛는 두 다리가 연신 후들거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대로 힘없이 썩은 고목마냥 쓰러져버릴 뻔했다.
간신히 두 다리로 바닥을 내딛은 그녀가 천천히 냉장고로 향한다. 차가운 냉수라도 마셔야 터질듯한 가슴이 진정될 모양이었고, 그렇지 않았다간 오늘은 잠을 청할 수 없을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 반쯤 차 있는, 시릴 정도로 차가운 2리터짜리 페트병을 집어든다. 이 정도가 아니면 안된다. 과할 정도로 차가운 냉수는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따위 사실은 아무 짝에도 의미가 없었다.
뚜껑을 연다. 컵을 쓰고자 하는 생각조차도 사치스럽다. 그대로 페트병 속의 '생명수' 를 몸 안으로 밀어넣는다. 속이 이리저리 찢겨나갈 것처럼 차가운 그것이 입을 지나고 목구멍을 넘어서 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더니, 이내 몸 구석구석으로 번져나가는 것까지도 느껴진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눈 앞만은 이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짜증나.)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런 주인의 텐션에 물들어버렸는지, 침대의 메트리스도 깊숙히 숨어들었다가 잔잔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부풀어오르고, 이내 도중에 그만둬버렸다.
뭐라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짜증이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온다. 비가 내리기 직전의 그 습하고 꿉꿉할 때의 짜증이,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집에 두고 온 물건이 떠올랐을 때의 짜증이, 집에 가기 직전에야 뜬금없이 닥쳐 온 일거리를 마주할 때의 짜증이, 그러한 것들보다 두 배는 더 큰 짜증이 아코를 푹푹 찔러 온다.
물을 마셔도 진정이 되질 않고, 일부러 깊게 한숨을 내뱉어 봐도 진정이 되질 않는다. 이대로면 동이 틀 때까지 잠은커녕, 해가 뜬 뒤에도 스트레스 가득한 채 일을 하게 될 터이다.
아코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근한 보금자리일 이 곳이 지금은 마치 외딴 감옥의 으슥한 독방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 곳에 머물렀다간 미쳐버릴 것이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외투를 집어들어 잠옷 위에 그대로 대충 걸친다. 이 시간의 밖은 쌀쌀하다. 자켓을 걸치는 것은, 어쨌든 감기에 걸려버려서야 선도부의 모두에게 짐덩어리가 될 뿐이기에. 그 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잠옷을 갈아입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 *
가로등 불빛이 야심한 도로가를 비추고 있다.
항상 북적일 터였던 D.U. 시라토리 구의 도로는 차 한 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막만이 흘렀고, 가끔 [ 빈차 ] 표시등을 띄운 택시 몇 대만이 행여 손님이 되어주지 않을까, 정처없이 걷는 아코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가 이내 멀리 떠나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문득 아코가 발걸음을 멈췄다. 스산하게 스치우던 새벽녘의 밤바람도 때맞춰 발걸음을 멈춘다.
켜진 불빛이 없는 건물들, 텅 빈 도로, 더욱 으슥한 인도. 규칙적으로 한 방울의 빛들을 내뱉는 가로등들, 오늘따라 하나도 보이지 않는 별들, 흐릿한 구름 속에 숨어 거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달.
(......뭐하고 있는거지, 나.)
아코가 옆에 놓인 가드레일에 대충 걸터앉는다. 차도로부터 사람들을 지킬 터인 가드레일이, 지금은 그저 아코의 간이 의자가 되어버렸다. 허나 아코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별 의미 없었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와 버린 걸까.)
게헨나에서 D.U. 시라토리 구까지. 흔히들 전철을 권유하는 거리이니만큼 족히 한 시간 반, 혹은 두 시간 정도는 걸었을 것이다.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자처럼, 사람 하나 없는 거리를 무작정 걸어다니는 자신의 모습은 뭇 한심해보였다. 어린 아이처럼 악몽을 꾸고, 그것에 잠 못 이루고, 무작정 집을 나와 발 닿는 대로 멍하니 걸어다니기까지. 선도부에 악감정을 가진 이가 봤다면 훌륭한 가십거리가 될 것이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아코 자신이기까지 하니, 온갖 조롱을 선물하기에 이것보다 좋은 상대는 없으리라.
아코가 반쯤 초점잃은 두 눈동자로 몇 걸음 떨어진 가로등을 바라본다. 강렬한 불빛에 이끌리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그 흔한 날벌레들조차도, 이번 밤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
가로등에 머물던 시선이 옮겨 간 것은, 이질적으로 빛나고 있는 한 건물의 유리창이었다. 그 건물은 밤이 내려앉은 이 근방에선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있었고, 그녀는 곧 그 건물이 무엇인지, 대관절 무엇 때문에 불이 켜져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아직도 일하시는걸까.)
어쩌면 D.U. 시라토리 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을 건물, 샬레 오피스. 그 건물의 유리창이 흑빛 속의 등대처럼 빛나고 있다. 구설수도 많고 가끔 애들보다 더 애들스러울 때도 있지만, 종종 놀라운 면을 보여주는 선생은 이 시간까지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불을 켜두고 그대로 잠든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그는 학생들이 없는 곳에선 누구보다도 진중한 사람이었고, 아마 일을 하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아코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가드레일에서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목적지를 정한 것이다.
* * *
샬레 사무실. 선생의 일터. 낮 모습 그대로 불이 켜져 있는 그 곳에서 여전히 컴퓨터와 씨름하는 선생이 있다.
제 시간에 잠을 청한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이니 오늘은 자신이 끝까지 돕겠다 ] 라던 유우카도 간신히 돌려보냈다. 선생은 그렇게 이 시간까지 컴퓨터를, 그리고 태산같은 서류 더미들을 붙잡고 있었다.
시계를 보는 것은 포기했다. 어차피 다시 창 밖이 밝아져 올 때까지 이 일들을 끝내지 못 할 것임이 분명한 마당에, 지금의 시각을 확인하는 행위가 세상에서 제일 쓰잘데기없는 행위라는 것은 매화원의 네 살배기 꼬맹이도 알 것임이 확실했다. 그 점을 모를 정도로 선생은 어리석지 않았다.
[ ♫- ♪♬♩- ]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샬레 건물 1층 현관과 자동 연결된 모니터와, 그에 맞게 특정된 멜로디. 당번 일로 찾아온 학생이라면 학생증을 태그한 뒤 자연스럽게 들어 올 일이었고, 그렇지 않다는 건 지금의 방문자는 적어도 외부인이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랬을 터였지만, 모니터 너머의 얼굴은 그 결론이 오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익숙한 얼굴은 자리에 앉아있던 선생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아코?"
선생이 모니터 옆의 버튼을 누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부스스하고 정돈되지 않은 푸른 머릿결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먹구름같은 눈동자까지. 모든 것이 방문자 자신이 아마우 아코라고 떠벌리고 있지만, 그녀가 이런 초췌한 몰골로 이 시간에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이변이다.
[ ...만나러 왔어요, 선생님. ]
"아니, 대체 무슨......"
아코가 태연자약하게, 아니, 많은 것을 내려놓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고싶은 말들은 넘쳐나지만, 그것을 들을만한 말로 바꿔 출력해내기엔 선생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마치 명절 연휴 고속도로 휴게소의 출구처럼, 꽉 막힌 채 어느것도 꺼낼 수가 없었다.
모니터 너머의 몰골. 초췌한 눈빛. 힘없는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생각을 더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아코 역시 자신이 벌여놓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뭔가에 홀린듯 샬레까지 와 버렸고, 마치 자신의 머리가 아닌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음에도, 선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머리가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물론 인제사 돌기 시작한 머리는, 아직 예열조차 제대로 못 한 자동차마냥 삐걱거리기만 하고 있다.
[ 일단 들어오렴. 들어와서 얘기하자. 아니, 내가 나갈- ]
철커덕,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 불이 꺼진 채 비상구 표시등의 초록 불빛만 은은하던 1층 홀이 조명으로 밝아진다. 쓸쓸히 자신의 일에 열중이던 샬레 전체가 때아닌 학생 맞이로 분주해진 모습이었다. 아코의 머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상태가 되자, 이윽고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저질렀네.
유리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선다. 쓸쓸함이라는 이름의 적막은 전등 속에 숨어 호시탐탐 아코 자신을 노리는 느낌이었다. 수없이 다녔을 장소였음에도 오늘은 유독 쓸쓸하고, 음산하고, 공포스러웠다. 환해진 주변도 그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머리가 조금씩 돌기 시작하자, 잊고 있었던 모든 감정들이 일시에 몰아쳐온다. 순식간에 자신을 짓누르는 기괴한 공포에 저도 모르게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만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한다. 채 10미터도 되지 않을 그 길이 마치 마라톤처럼, 힌놈 화산의 아래서 정상을 보는 것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 저 너머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스쳐지나간 공기마저도 금방 뒤돌아 자신을 해코지라도 할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쾌하게 느껴졌다.
하기사, 자신이 매일 잠들고 일어나는 방마저도 감옥같이 느껴져 뛰쳐나온 마당이다. 샬레랍시고 평온해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코 자신이 혼란스러움조차 감내하며 이 곳에 온 건-
"아코, 괜찮아?!"
자신의 양팔을 붙잡는 커다란 온기와 따스한 목소리. 아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은겨울의 눈폭풍보다 더하게 얼어있던 마음마저도 금세 녹여버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제법 우스웠다. 항상 기세등등하게 짓궂은 장난을 치던 그 얼굴은 근심과 우려, 당혹감이 한데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평소 이런 상황이었다면, 아코 역시 질세라 의기양양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해 보이며 맞불을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의 그녀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그런 그의 얼굴보다 몇 배는 더욱 엉망진창인 표정인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 * * *
샬레 사무실의 소파에 앉은 채로, 아코는 그저 손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는 선생을 보자마자 안도감과 죄책감, 여전한 불안이 한데 뒤섞여 혼란해졌다. 고맙게도 선생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선택은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자, 선물받은 홍차야. 조금은 안정될거야."
"......아, 감사합니다."
선생이 자그마한 찻잔을 아코의 앞에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의 홍차는 은은한 연붉은빛을 띤 채, 모락모락 김을 내뱉고 있었다.
홍차라. 영 그와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키보토스 최고의 유명인이니만큼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접하더라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홍차 역시 아마도 트리니티에서 선물받았겠지. 그렇다 해도, 자신의 모교와 트리니티 사이의 정치적 분쟁 따위는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선생이 지금 자신에게 이 홍차를 대접해줬다는 것.
대접받은 것을 받지 않는 것도 무례한 행위. 아코가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찻잔을 든다.
따뜻하다. 찻잔의 손잡이도, 목을 타고 내려가 은은하게 퍼지는 차도, 그리고 이런 자신을 받아 준 눈 앞의 남자도.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마음이 가벼워진다. 홍차 때문인지, 아니면 눈 앞의 남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악몽을 꿨어요."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운을 떼 버렸는지도 모른다.
"저는 제 욕에 대해선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어차피 그래봤자 답도 없는 쓰레기들의 발버둥일 뿐이고, 저는 선도부의 선임행정관이고, 뭣보다 저에겐 부장님이 있으니까요. 말뿐만이 아니라 트리니티마냥 음습하게 괴롭히는 것들도 있지만, 그 정도에 굴해서야......그런 녀석들과 다를 게 없잖아요."
선생은 그런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기 시작한다.
"......그치만......저도, 저도 사람이라구요......"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어떻게 말해야 최대한 덜 비참해보일까. 머리는 그것을 행하기 위해 잔뜩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은 필터링조차 되지 않은 말을 되는대로 내뱉고 있었다.
"맞으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이 나고, 힘들면 주저앉고 싶고, 헛소문을 들으면 화가 나는 사람인걸요. 수없이 들려오는 욕들이 언제까지 이어지는지도 모른 채로 닥쳐오는데, 언제까지 모른척하고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알고 있다. [ 히나의 개 ] 라는 비아냥은 양반일 수준으로, 아코 자신은 제법 많은 이들의 욕받이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뒤틀린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학교 특성 상 다수와 적대할 수밖에 없는 선도부라는, 그런 선도부의 선임행정관이라는 포지션 때문일 수도 있고, 선도부장 히나에 대한 집착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음껏 무시했고 귀를 닫았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어차피 쓰레기들의 발버둥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까짓거 졸업해버리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가끔 악몽을 꿔요. 어두컴컴한 칠흑 속에 저만 서 있고,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욕을 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고, 음습한 따돌림을 가해요. 사소한 실수 때문에, 오해 때문에 지금까지 일궈 온 것들이 다 무너지고, 그나마 절 이해해주던 몇 없던 주변 사람들도......선도부 간부들도 기어이 제 욕을 해요. 그게 언어적이 되든......물리적이 되든요. 그리고...그리고 가끔, 부장님마저도 절 비난하는......"
아코의 두 손이 부르르 떨린다. 정말, 아주 정말 가끔이지만, 히나마저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경우가 있었다. 꿈이라는 걸 알지만, 그건 아마우 아코라는 고등학생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자신이 꿋꿋하게 버텨내는 원동력이 자신을 힐난하는 그 모습은, 제 눈을 뽑아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었다.
".......오늘 꾼 꿈이 그랬어요. 부장님마저도 절 욕했어요. 어둠 속 저편에서 절 욕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이오리도...치나츠도...다 거기 있었어요. 부장님도......부장님도요......"
아군이라고 믿어왔던 사람들의 자신을 욕하는 목소리. 그것은 세상에 있어선 안될 재앙과도 같았다. 설령 그것이 단순한 꿈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은 두 번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끔찍한 무언가였다. 아코 자신은 그런 지옥을 경험하기 싫다. 버텨내는 것도 싫다.
그런데 그런 지옥을, 그녀는 밤 중 몇 번이나 겪여왔다. 뒤틀렸다는 평가를 받는 그녀의 성격은, 그렇기에 점점 더 뒤틀려왔는지도 모른다.
"...무서워요. 어디까지가 꿈일까요. 언제까지 꿈일 뿐일까요. 정말로 꿈으로 그치는 걸까요? 이러다가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전 어떻게 되는 걸까요? 꿈은 깰 수라도 있지만, 현실에선...현실에선 어떻게 해야하는걸까요."
무섭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그 감정이 세상 무엇보다 무서웠다. 히나가 자신을 떠나는 것. 소중한 사람이 떠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부장님이 안 계시면...버틸 수 없어요."
아마우 아코는, 그저 상처받는 고등학생일 뿐이다.
"부장님이 계셔서 간신히 버티는 건데...그렇다면 졸업하면요? 어차피 소문은 쫙 퍼졌고, 졸업해도 같은 비난을 들으며 살게 될 건데, 졸업해서 부장님과 헤어지면요? 작전 중에 부장님이 잘못된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졸업해서 헤어지게 된다면......저는, 저는 혼자서 버틸 수 있나요? 저는 그 정도로 강할까요......?"
눈 앞이 조금씩 흐려진다. 이미 바닥에는 몇 방울 정도, 아마 자신이 흘렸을 눈물이 떨어져있었다.
알고 있다. 결국 언젠가는 헤어진다. 히나와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겠지. 그렇다면 자신은 혼자다. 지금처럼 히나가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힐난하는 야생에 혼자 던져진다. 꿈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현실에서 느껴야만 한다.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은 버텨낼 수 없다.
"......아코."
선생이 아코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너의 걱정에는 큰 오류가 있구나."
자신의 옆에 있는 이는 극악무도한 선임행정관이 아닌, '히나의 개' 도 아닌, 그저 상처받고 지친 여린 고등학생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꼭 혼자 버텨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거란다."
선생이 숨을 고른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고민. 어른이 되어가는 고민. 아코는 그 기로에서 울고 있었다.
"꼭 힘든걸 억누르고, 감내하고, 혼자 이겨낸다고 어른이 되는건 아니야. 힘들 때는 상담도 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과 만나 푸념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뒷담화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며 나이를 먹는 게 어른이란다."
많은 아이들이 오해하는 점. 그것은 어른이 무조건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는 존재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이겨내는 사람은 없다.
"모든 걸 억지로 혼자 떠안을 필요도 없고, 그 사실로 마음쓰고 고통받을 필요도 없어. 어차피 욕 안 먹는 사람은 없으니까. 당장 나도 행실에 대한 말이 나오잖니?"
"......그건, 명백히 선생님 탓이잖아요."
"으음. 이 와중에도 정론인가."
선생이 그녀에게 보이지 않게 옅게 미소짓는다. 아코, 그녀는 조금씩, 그렇지만 확실하게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하여튼, 졸업한다고 혼자가 되는 것도 아니란다. 무슨 일을 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 키보토스에 있는 이상 만날 수 있어. 졸업하고서라도 히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 수틀리면 히나 옆집으로 이사를 가 버려도 돼. 요컨대, 헤어진다고 인연도 끝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한다고, 불안함을 떨칠 수 있을까요?"
"그럼. 선생님도 살아보면서 깨달았단다. 잠깐의 헤어짐은 의외로 별 거 아니었다는 걸."
선생이 아코의 물음에 긍정한다. 헤어짐은 잠깐이지만 인연은 영원하다. 마음이 맞는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 길이 있는 곳에 방법이 있고, 방법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리고 아코, 사실 너도 알고 있지? 히나는 너에게서 절대 등을 돌리지 않아. 그건 선생인 내가 보증할 수 있어. 아마 히나도 아코 너에게 제법 많이 의지하고 있을거야."
선생이 히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집무실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서류를 처리하며 지쳐가던 모습, 당번 업무 중 소담으로 아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모습, 그리고 언제나 아코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짜던 모습.
아코에게 히나가 필요한 것처럼, 히나에게도 아코가 필요하다. 아코가 상처받기 쉬운 고등학생인 것처럼, 히나도 결국엔 지치기 쉬운 고등학생일 뿐이었으니까.
"......정말 그럴까요?"
"히나도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선도부 생활을 끝내놓고 아코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미래를."
선생이 아코의 어깨 한 쪽을 아주 가볍게 잡는다. 그 손의 따스함이 어깨로부터 온몸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나도 여기 있잖니. 난 언제나 아코의 푸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선생님은......제가 졸업해도 계속 바쁘실 거잖아요. 키보토스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말씀을.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란다. 언제까지나 난 너의 선생이야."
아코가 마침내 고개를 든다. 선생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항상 그랬다. 미덥지 못하다가도 놀랍고, 총탄 한 발에 죽을 수도 있는 몸으로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자신의 돈과 시간을 희생해가며 학생들을 구하고, 투정을 부리면 몇 시간이고 들어주고, 고민이 있으면 기어코 답을 찾아내주는, 말 그대로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필시 자신이 위태로울 때라면, 그게 언제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의지가 되어 줄 것이다. 게헨나를 졸업하고 어딘가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아코 자신이 필요하다면 결국 히어로처럼 다가와 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선생님이었다.
믿을 수 있는.
언제까지나.
".....자고 갈게요."
"시간이 늦긴 했지. 좋아! 그럼 내 방을 쓰렴. 나는 휴게실에서-"
"-아뇨, 선생님도 방에서 주무세요. 같이 안 자면 악몽 꿀 것 같아요."
"...저기, 아코? 아무리 그래도 학생과 선생-"
"뭔가요. 설마 밤늦게 자신을 찾아온 학생에게 흑심이라도 품으실 생각인가요?"
"그건......아니지만......"
"그럼 같이 자요. 아니면 안 잘 거니까."
"으음......그럼 내가 바닥에서-"
"아뇨. 침대에서 같이 자요. 악몽 꿀 거에요?"
"그건 역시 안 ㄷ-"
"같이 자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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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썅마이웨이인 아코도 뭔가 앞날을 두려워하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음
그동안 주변에서 온갖 개쌍욕을 들어쳐먹어도 히나 생각에 버텼는데 졸업하면? 더 이상 히나랑 같이 있을 수 없다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써 보니까 나름 재밌게 쓴 듯
같이 자면서 아무 일도 없었음
아마도?
ㅅㅂ 시작하고 거의 3달 지났고 렙도 76렙 됐는데 왜 아직도 아코가 없을까
아니 시발 거의 150을 썼다니까? 근데 아직 아코가 없는게 씨발 말이되나
댓글 41
아코애껴요 ㅠㅠ
근데 뭐가 없다고?

더 줘

마싯네 더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