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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헨나의 외딴곳, 해가 질 때면 이곳을 비스듬한 주홍빛이 복도를 가득 메운다. 잊힌 장소인 구 교사.
그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먼지가 쌓인 채 다만 썩어갈 나날만을 기다리는 책들과 사물함, 책상들이 가득하다.
이런 인적 없는 곳이 늘 그러하듯 불량아들이 은신처로 쓰던 날이 길었지만,
이젠 그것도 옛이야기가 되어 이제는 한 사람을 빼면 찾는 이 없는 외롭지만 고요한 장소가 되었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게헨나의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처럼 말이다. 히나의 목적지는 이 교사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세월에 묻혀 수풀이 우거진 피아노실이었다.
"... 음."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피아노실에서 가볍게 연습하는 것은 이제 이 선도부장의 즐거운 일과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오늘은 이미 손님이 있었던 모양이다. 히나는 피아노실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조금 놀랐다.
자신만의 장소가 알려졌다는 거부감과 동시에 작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떠드는 소리도 아니고, 총성도 아닌 피아노의 음색이 들려온다는 사실은 낯선 손님이 적어도 불청객은 아니라는 증명이니까.
피아노실로 가까워질수록 선율은 더욱 선명해졌다.
"굉장하네..."
적어도 초보자의 솜씨는 아니었다. 연주되는 악곡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즉흥적인 센스에서 나오는 기교와 그것을 전혀 해치지 않는 기본기 덕에,
조금만 들어보아도 가히 숙련된 사람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히나는 곧 닫혀있는 피아노실의 문에 기대어 연주가 한 곡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 긴 곡이 아니었는지 피아노 소리는 곧 사그라 들었다. 히나는 교실 안에 있을 낯선 이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멋진 연주였어..."
작은 박수를 치며 들어간 히나는 하지만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피아노 앞의 의자에 앉아있던 것은 스케반도, 선도부도, 심지어는 만마전도 아닌
이형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기괴한 마네킹 머리가 두 개, 그마저도 해지고 부서져 기괴한 인상을 주는 자가 있었다.
그가 입은 옷은 찢어지고 해진 것들을 간신히 꿰매어 그 의복의 기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군. 감히 정적인 장소를 침범한 무례를 용서해 주게."
"..."
히나가 경계하고 있음을 짐작한다는 듯, 마네킹은 해칠의도가 없음을 드러내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일어서 돌아보았다.
유달리 기울어져있는 한쪽 머리를 바라보며 히나는 적개심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 선생님에게 들은 적이 있어. 게마트리아의 일원. 마네킹의 모습을 한채 어려운 말을 잔뜩 쏟아내곤 예술이라는 이름의 골칫거리를 풀어놓는 자. 마에스트로."
"... 그 뜨거운 갈채에 감사한다고 전해주게."
히나가 전한 신랄한 평가에도 마에스트로는 개의치 않고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히나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그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총을 손에 쥔 채 교실 한가운데 그를 빙 도는 모양으로 걸었다.
"게헨나엔… 이 교실엔 무슨 일이지?"
"예술가는 늘 영감을 찾아 헤매지. 귀하도 이 처량하고도 부드러운 피아노실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찾지 않았던가?"
"... 스스로 연주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제 악보를 연주하지 못하는 작곡가가 어디 있겠는가? 아…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트리니티에선, 당신의 예술품 덕분에 퍽 고생했었어."
"그 작품들을 그토록 난잡하고 폭력적이게 사용한 것은 내가 아니다. 그렇지만 적절치 않은 방식으로 폐를 끼치게 된 것에는 사과하지."
적절한 방식이었다면 폐를 끼칠 셈이었나 하고 히나는 조금 불만스럽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히나의 가시 돋친 말들에도 마에스트로는 개의치 않고 부드럽게 받아넘긴다. 슬슬 선도부장도 이 이형의 존재가 어떤 적의나 악의를 가지고 이곳에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 교실을 떠도는 가운데, 마에스트로가 먼저 정적을 깼다.
"오늘 이곳에 찾아온 것은, 그대가 이 세계에 선사해 준 예술에 대해, 갈채를 전해주고자 하는 연유였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건반을 거닐었건만 놀라게 해 버렸군."
"... 별로 놀라진 않았어. 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연주회에 대한 갈채라면… 이미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충분히 받았어."
히나의 기억은 잠시 연주회에서의 시간을 맴돌았다. 선도부와, 게헨나의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제 연주를 듣고 칭찬하는 것에 히나는 감사함과 약간의 불쾌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에스트로는 피아노의 표면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었다.
"이 교실은 원래, 영원토록 잊혀갈 작품이었다. 골콩트가 읽었다면 좋아할 쌉싸름한 이야기이었지."
마에스트로는 피아노로부터 떨어져 교실의 옛 잔해들에 다가간다. 그곳에 남아있던 옛사람들의 메모를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피아노를 사랑했지만, 사랑했던 시간만을 놓아두고 떠나간 이의 이야기고 예술이었다. 제 연주를 예술로 남기는 것이 아닌, 예술과 함께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고… 찾아올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관객을 기다리는… 피네 없는 악보이고 마침표 없는 소설이었다."
마에스트로는 히나를 돌아본다. 히나는 그의 말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눈을 감고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그 작품을 그대가 찾아냈다. 그리고 그대가 그 이의 하나뿐인 관객이 되어주었다."
"관객이라."
관객이라는 말은 조금 부족하다. 히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 피아노실에 찾아와 주었다. 이미 이 교실에 흐르던 노래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녀는 이 자그마한 장소에 제 마음과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단지 관객이 되어준 것만이 아니었지. 멋진 합주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공연이었으니 필시 그 피아니스트도 만족했을 것이다. 맑은 하늘에 어울리는, 훌륭한 합주곡이었다. 하여, 갈채를 감히 전하고자 한다."
마에스트로는 그 손을 움직여 메마르지만 열심히 박수를 쳤다. 이형의 존재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것은 다소 기이한 경험일 것이리라. 히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 갈채를 잠자코 받았다. 박수소리가 작아지자 히나는 묘한 눈빛으로 갈채에 대한 답변을 해주었다.
"... 갈채는 고마워. 내 모자란 연주를 즐겨주었다면, 감히 감사를 전하지 않는 것은 무례겠지. 하지만..."
여전히 경계심을 품고 있던 히나의 눈은 이제 명백한 불만의 빛을 품은 채 눈앞의 마네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나와… 그 사람의 그 '작품'이라는 것에 구태여 입을 추가로 놀리는 것은 네가 말하는 '예술'과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이건 둘만의 이야기였고, 나만의 마음이었어. 관객은 나 하나로 족했고, 평가받지 않아도 예술은 예술이었어. 당신처럼 기품 있는 말주변이 없어서 전하고 싶은 걸 제대로 전달했을지는 모르겠네."
'그리고, 내가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던 사람은 너가 아니라 그 사람이야.'
마지막 마음만은 삼킨채 히나는 점잖고, 하지만 날이 서있는 말을 전했다. 마에스트로는 잠자코 창문을 바라본 채 가만 서있었다. 그러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히나에게로 걸어간다. 그 행동에 히나의 몸이 조금 경직되었지만 이미 내린 총구를 다시 올리지는 않았다. 총구를 올리지 않은 선택은 옳았다. 마에스트로는 그대로 히나를 지나 교실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히나를 등진채 마에스트로는 사과의 뜻을 전했다.
"내 주제넘은 짓을 했군. 뜻밖의 좋은 예술을 만나, 조금 들떴던 모양이야. 사과하지."
"음. 그래.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야.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사과하는 줄을 모르거든."
히나의 악담에 마에스트로는 약간 히나를 돌아보았다.
"선도부장이란 자리도 필시 고달프겠지. 나도… 도통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났었기에 그 고충은 이해하네."
히나는 그 중얼거림에 담긴 감정에 약간 공감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굳어있던 표정이 약간 풀렸다. 불평을 늘여놓을 만한 기운을 회복한 히나는 마에스트로가 열심히 만들어 선사해 주신 인공 천사들을 생각하며 한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꼬았다.
"고충을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저질러 놓은 무례들에 대해 좀 더 사과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무례라니. 귀하의 힘 앞에선 이제 내가 빚은 천사는 이젠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는데. 내 작품은 이제 무례의 축에도 못 끼지 않는가."
"관객의 평가에 말 많은 예술가는 사랑받기 힘들 텐데."
"허."
아무리 적의와 악의를 내비치지 않았다고 해도, 이형의 존재와 이렇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여간내기가 아니다. 과연 검은 양복이 탐내던 그 사막의 신비와 견줄만한 존재이다.
"그래도, 귀하가 보여준 예술에 대해선, 감사의 뜻을 담아 작은 선물을 전해놓았으니. 그걸로 마음이 풀렸으면 좋겠군. 이만 실례하지. 선생에게 안부 전해주게."
그 말을 남긴 채 마에스트로는 소리 없이 교실을 떠났다. 조심스레 히나가 그 문을 열어 복도를 보았을 때는 이미 기척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진정으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히나는 그제야 속에 담아두었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장황하게 설명해 놓고 뻔뻔하게 도망치는 것은 문제아들의 특징일까."
온천개발부, 미식연구회, 만마전… 익숙한 얼굴들이 히나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히나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선생님. 그… 게마트리아라는 조직의 존재를 만났어. 아… 마네킹처럼 생긴, 응. 마에스트로가 맞을 거야. 별일은 없었고… 선생님 말대로 어렵고 복잡한 말을 늘여놓고는 가버렸어. 응… 그러면 저녁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할게. 늘 고마워."
전화는 끊어지고 히나는 그제야 한껏 부드러워진 표정을 지으며 손에 쥐인 화면을 바라보았다. 열린 창문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뺨을 간질이는 바람의 방향을 돌아본 히나는 그제야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조금 늦어졌지만…"
히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왼손을 건반에, 오른손을 건반에, 발을 페달에.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발가락의 끝으로 가볍게 힘을 주자 익숙하고도 선명한 선율이 피아노로부터 흘러나왔다.
"음… 정말 작은 선물이네."
조금 고집이 강했던 댐퍼 페달이 부드러워진 것을 느끼며, 히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연주를 계속해나갔다.
자유롭고, 선명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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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섭유저라서 이제야 소야곡의 스토리를 다 보았는데 히나가 너무 장하고 좋았다
그리고 예로니무스를 때려잡는 드히나가 너무 기특했어
예술이라는 교집합 아래, 기묘하게 마에스트로와 이번 이벤스가 어울리는 것 같아 끄적여본 소설이야.
재밌게 읽어주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
댓글 22
'무례라니. 귀하의 힘 앞에선 이제 내가 빚은 천사는 이젠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는데. 내 작품은 이제 무례의 축에도 못 끼지 않는가' 이거 드히나가 이번 총력전 씹어먹는 걸 은유하는 건가 싶었는데 후기 보니까 그게 맞았구낰ㅋㅋㅋㅋ

드히나는 예로니무스를 찢어요

귀하의 힘 앞에서 이제 내가 빚은 천사는 이젠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한다 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예붕아...

의외로 얘네 둘이 대화 티키타가 좀 될 지도?
히나가 침착해서 누구나와도 잘 얘기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