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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이."
"뭐 해, 나츠."
아가씨들이 다니는 대형 명문학원, 트리니티에도 여느 키보토스와 마찬가지로 여름이 찾아왔다.
하복을 입은 제각기의 아가씨들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산을 들고 무리 지어 다니거나,
혹은 그 와중에도 품위 없게 옷을 펄럭이며 그늘로 서둘러 가는 학생무리도 보인다.
그리고 저명한 건축가가 지었을 법한 거대한 학교 건물들의 그늘 아래에
방과후 디저트 부, 통칭 방디부의 일원들이 무언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츠를 둘러싸고 있다.
"아니~ 저 자판기…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서~"
"자판기?"
나츠의 말에 카즈사는 그 시선을 따라 그늘진 벽면의 자판기로 향한다. 평범한 자판기였다.
청량한 트리니티의 건물색에 걸맞게 흰색, 상아색, 하늘색이 어우러진 모던한 자판기다.
"... 이상하네."
단지, 그 자판기 옆에 똑같은 모양의 자판기가 하나 더 붙어있는 것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카즈사의 멍한 중얼거림에 요시미도 끼어들어 자판기를 바라본다.
"정말이네… 이렇게 똑같은 자판기를 두 개나 이어 붙여 놓진 않지 않나?"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곳엔 두어 개씩 두기도 하지만..."
고민하는 듯, 카즈사는 중얼거렸다. 나츠는 자판기 주변의 더 깊은 그림자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숙인다.
"자세히 보면 뭔가 일렁~일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이 느낌 알 것 같아!"
손뼉을 짝 치며 아이리가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조금 부끄럽다는 듯 고개 숙이며 아이리는 말을 꺼냈다.
"아, 그… 옛~날에 선생님이랑 같이 버려진 유원지에 있던… 쥐? 같은 괴물을 상대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껴졌던 일렁임이나 느낌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오~ 그렇게 말하면 나도 비슷한 걸~ 음…! 그 수상하게 거대한 페로로인형을 상대할 때도 이런 느낌을…!"
나츠와 아이리의 말에 카즈사와 요시미는 서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판기로 다가간다.
그리고 요시미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이! 이거! 하늘 빨개졌을 때! 그 시꺼멓고 새하얀 그 괴물들! 그거랑 같은 느낌이잖아! 위험해!"
"요시미. 어휘력 구려."
"그렇게 말하는 넌 뭔지도 몰랐잖아!"
"알았으면 너보단 설명 잘했을 걸?"
"!@$!!"
"자자… 싸우지 말고… 일단 정의실현부랑 샬레에 신고를…? 어라? 나츠쨩?"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자판기의 배출구에 나츠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꺼내진 것은…
"우유의 시간~"
"미쳤어? 무슨 위험이 있을 줄 알고?"
"내 직감이 말하기를… 이것은 Joke. 몸에 해로울 일은 Zero."
나츠는 의기양양하게 우유팩을 번쩍 들고는 빨대를 콕하고 꽂았다.
경악한 카즈사와 요시미가 말리려고 달려들지만 나츠는 요리조리 피한다.
"이렇게~ 간단히~ 피했습니다~"
"너까지 우자와한테 물들지 말란 말이야! 그런 녀석은 하나로 족해!"
마침내 고지를 차지한다. 밑에서 헉헉대는 카즈사를 내버려 두고 나츠는 한숨에 우유를 쭈욱 들이킨다.
"이 맛은!"
나츠의 동공이 커진다. 주변 아이들의 침을 삼키는 소리와, 우유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린다.
"치, 치즈 우유야..."
나츠는 털썩 쓰러진다.
"느끼해… 마치 썩은 우유와도 같아… 아니, 썩은 것이었던가? 게다가 미지근해…
유토리 나츠의 기묘한 모험은 여기서 일단락..."
"그러게 이상한 걸 함부로 주워 먹으면..."
카즈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쉰다.
쓰러진 나츠를 일으키려 다가가지만, 나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번쩍이는 눈으로 모두를 바라본다.
"우리 빵디부의 친구들이여… 오늘은 청춘을 빛내보지 않겠는가?"
"빵디부라 말하는 거 그만둬! 나츠까지 선생님한테 옮은 거야?"
"귀여운 어감이고. 좋지 아니한가?"
"안 좋아! 완전! 완전 안 좋아!"
요시미가 버럭버럭 화를 내지만 나츠는 개의치 않고 그 눈을 번쩍인다.
거기에는 분명 호기심도 있겠지만…
"자기 혼자 당할 순 없다는 거겠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쿄야마 카즈사여.
우리는 이 이상현상의 첫 번째 발견자로서… 그 규칙과 원인, 패턴을 파악해야만 한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디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폴짝 내려왔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며 손을 붕붕 흔든다.
"그럼… 누구부터 시작할 건가?"
"완전 즐기고 있구만! 우리가 골탕 먹는 게 보고 싶은 거지?!"
요시미가 버럭버럭 화를 내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아이리가 열심히 달래 보는 와중, 카즈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요시미와 아이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뭐… 아까 보니까 치즈 우유정도면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괜찮지 않을까?"
"상한걸 수도 있잖아? 탈 나면 어쩌려고?!"
"쫄?"
"… 하아?"
둘은 물러서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는 와중, 아이리는 홀린 듯이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자판기로 다가간다.
"그럼 나부터 해도 될까? 여기…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음료가 있어서…!"
아이리는 수줍게 '민트초코맛우유'를 가리킨다.
서로를 째려보던 요시미와 카즈사는 질렸다는 듯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리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배출구에 들어간 아이리의 손에 '민트초코맛우유'가 쥐어진다.
"아이리… 괜찮은 거 맞지? 지금 나츠는 언뜻 보기에 괜찮아 보이지만… 나중에 화장실에서 못 나올 수도 있다고?"
"아이리...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아무리 민트초코라도! 물러서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카즈사와 요시미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아이리 곁에 달라붙어 아이리를 말려본다. 그러나 늦었다.
이미 아이리는 감미로운 표정으로 뚜껑을 열고 민트초코맛우유를 들이켜고 있었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까진 이해하겠지만 민트초코우유는 조금..."
"아, 아이리?! 괜찮은거 맞아?"
아이리의 주변에서 퍼져나가는 상쾌한 냄새에 카즈사는 귀를 뾰족 세우며 주춤주춤 물러난다.
한팩을 다 들이킨 아이리가 상쾌한 얼굴을 한채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아이리?! 아이리! 역시 마시게 두는 게 아니었는데!"
"이건 민트초코에 대한 모욕이야..."
"뭐?"
"요시미쨩, 민트초코맛이 아니라…. 민트맛 우유였어… 입안에 상쾌함이 가득… 마치 치약을 들이킨 기분..."
눈을 감은 아이리가 입술에 살짝 우유를 머금 거는 싸늘해진다. 요시미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붕붕 앞뒤로 흔들어보지만 소용은 없었다.
"뭐… 민초 싫어하는 녀석들에게는 똑같은 맛이겠지만…
다음은 네 차례야. 요시미."
"하아? 왜 내가 다음인데?"
"저번에 마카롱 사줬잖아. 그 값을 치러야지."
"으으…!"
여유 부리며 막대사탕을 한입 무는 카즈사를 째려본들, 요시미가 반론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결국 요시미는 구시렁대며 자판기에 다가간다.
"... 몇 번을 봐도 음침한 자판기네. 마치 헤일로가 달려있는 듯한 느낌도 들어…"
"이제 보니 사용설명서도 있네. 읽어봐 요시미."
"... 읽을 수 없는 글자지만."
트리니티에서 배우는 고어와 닮아있지만 조금 달랐다. 읽을 수 없는 그 설명서에는 뭔가 수상쩍은 머리 두 개 달린 마네킹의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수상한 제품을 광고하듯 엄지를 척 세우고 있다.
"자 어서, 미지의 디저트에 한 발 내디뎌, 그 청춘을 쥐는 거다."
조금 떨어진 곳, 벤치에 리타이어 한 아이리를 눕힌 나츠가 응원한다는 듯 읊조렸다.
요시미는 구시렁대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 투입했다.
정확히는, 투입하려고 했다. 조금 조급했는지, 동전은 요시미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부터 미끄러져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거, 거짓말이지?! 이간 음모야! 조작이라고!"
동전은 다행히 구르지 않고 바닥에 눕힌 채였을 텐데. 마치 자력에 이끌리듯 쏙 하고 미끄러져 자판기의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이 불량 자판기가!"
"진정해. 요시미. 고작 200엔이잖아."
"고작? 고작!? 우리 방디부의 활동에는 200엔은커녕 10엔조차 소중히 해야 한다고! 지출이 많으니까!"
"결국 요시미도 방디 부라 하는구나..."
카즈사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요시미는 씩씩대며 안쪽 주머니에서 작고 귀여운 동전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힘이 너무 들어갔던 것일까, 팡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열린 동전지갑은 그대로 내용물을 흩뿌렸다.
요시미의 미간을 멋지게 때린 동전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흩어지더니,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자판기 근처의 배수구에 모조리 빨려 들어가 버렸다.
"오~ 요시미의 잔고가 후드득~"
"닥쳐! 나츠!!!"
요시미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자판기를 향해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우습다는 듯, 카즈사는 엎드려 있는 요시미를 지나쳐 자판기로 다가갔다.
"그러게 침착하게 했으면 이럴 일도 없잖아."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자판기의 리더기에 가져다 댄다. 좀처럼 쉽게 인식해주지 않았지만,
신중한 움직임 끝에 카드를 무사히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 카즈사는 그 귀를 팔랑거리며 요시미를 향해 우쭐댔다.
"이걸로 이벤트는 무사히 지나쳤고. 뭘 마셔볼까나."
카즈사는 여유 있는 손놀림으로 빨간 콜라캔을 선택했다.
덜컹! 시원한 소리와 함께 배출구로부터 익숙한 색상과 모양의 콜라 캔이 나왔다.
그 차가운 감촉에 더위가 약간 가신 듯 카즈사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부활동은, 내 승리이려나."
"승리는 뭐야. 승리는. 그보다 이거, 경쟁요소 있었어?"
"무사히 마시는 사람한테 다음 디저트 선택권~"
"뭐야?! 나는 몰랐는데? 나츠? 아이리? 우리 이런 거 정한 적 없잖아?"
나츠에게 따지러 뛰어가는 요시미를 내버려 두고 카즈사는 콜라캔을 얼굴에서 멀찍이 두고 조심스럽게 딴다. 필시… 캔을 따자마자 핏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즈사의 귀가 뒤로 납작하게 접힌다.
'퐁.'
"좋아… 클리어."
카즈사는 보란 듯이 캔을 찰랑찰랑 흔든다.
나츠에게 다가가던 요시미도, 벤치에 앉아있는 나츠도, 나츠에게 무릎베개를 한채 누워있던 아이리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때, 아이리가 놀란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소리 없는 상쾌함 뿐이었다.
누가 막을 새도 없이 콜라가 카즈사의 입 안으로 넘어간다.
"... 달달하네."
담백한 중얼거림. 그리고 카즈사는 먹던 캔을 내던지고 총구를 들어 올려 자판기를 향해 조준한다.
"이딴 쓰레기를 내게 주고서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오~ 카스팔루그 부활~"
카즈사가 자판기를 향해 총탄세례를 퍼붓는 사이, 데구루루 굴러온 캔을 요시미가 주웠다.
"... 단팥죽 콜라? 어째서 이런 게 존재하는 거야..."
"그것은 마치 딸기 찹쌀떡과도 같고, 말차 라떼와도 같은 이색 조합. 오묘하도다."
열린 캔의 틈새로부터 찐득한 액체가 부글거리는 탄산을 머금은 채 뚝뚝 떨어진다.
이따금 동그란 떡이 늘어진 채 툭툭 떨어져 지면에서 부서진다.
아무리 이색이라고 해도 이건 도전이 아니라 콜라에 대한 횡포와도 같다.
"어, 어서. 카즈사쨩을 말려야 되는 거 아닐까? 저거 정말 위험한 자판기인가 같아!"
아이리의 다급한 중얼거림에 모두 눈치챈다.
이렇게나 총탄을 퍼부었는데 자판기는 흔들리며 흠집만 날뿐, 전혀 망가지지 않았다.
그때, 자판기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나더니. 덜컹, 하고 멈췄다.
"캭?!"
엄청난 기세로 안에서 탄산 캔이 배출구로 떨어지더니 놀라운 각도와 속도로 카즈사를 향해 날아가 명중.
카즈사는 하늘을 날아 멋지게 쓰러졌다.
쓰러진 그녀의 곁에 데구루루 굴러가는 캔과 함께 카즈사는 탄산범벅이 되어 리타이어 했다.
"카즈사쨩!"
카즈사를 수습하러 벤치에서 일어난 아이리가 달려갔다.
다행히 작은 화단에 안착해 머리는 다치지 않은 듯했다.
"어라, 디저트부의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 떠들썩해 보이네."
그때, 남겨진 요시미와 나츠를 향해 보충수업부 일행이 다가왔다.
"Here comes new challengers!"
"….?"
나츠의 영문모를 말에 아즈사 뒤에 있던 코하루는 날개를 팔락거리며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곧 온갖 손동작을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나츠를 두고 요시미는 한숨을 내쉰다.
"나츠, 아무리 그래도… 우리 부활동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
"좋아.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주의야."
아즈사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그 뒤를 따라 하나코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판기로 걸어간다.
"이건 꽤나 재밌어 보이네요☆"
하나코는 자판기에 붙어있는 설명서를 보고는 그녀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트리니티 남동부 지역의 희소 고어네요… 아직도 연구가 이어지는 분야라 정규 교육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데… 아무래도 고상한 분의 장난인가 보네요… 어디 읽어볼까요."
"아하하… 하나코쨩은 역시 대단하네요."
"음~ 자판기의 상징?... 의미? 그 편리함의 숭고성… 하지만 이면의 공포… 미메시스…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불편. 사건… 이건 '해프닝'이라는 뜻인 걸까요? 음… 어렵네요."
"하나코도 읽을 수 없는 거야?"
"저도 잘 모르는 고어이거니와… 원체 문장들이 장황체로 쓰여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보면 되는 거지?"
"뭐.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럼 일단 저부터… 에잇♥"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바라보는 코하루 옆에서 하나코는 자판기로부터 탄산수를 꺼낸다.
그리고 그 뚜껑을 팍 하고 열자...
"아앙♥"
탄산수가 그 좁은 구멍으로부터 촉하고 뿜어져 나와 하나코를 덮쳤다. 하나코는 과장된 동작으로 놀라며 쓰러진다. 윗옷이 다 탄산수로 범벅이 된 하나코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다 젖어버렸네요♡ 끈적해라… 약간 비리기도 한 것 같고♡"
"탄산수가 비릴리가 없잖아! 이건 고의지! 일부러야! 사형이야! 야한 건 사형!"
탄산수표면에 그려진 레몬을 가리키며 코하루는 늘 그렇듯 삐약거렸다.
황륜대제 때 이미 익히 알려진 명성이었지만 그걸 실물로 보게 된 방디부 일원들은 약간 경악했다.
요시미가 홍당무가 되어 입을 가린 채 중얼거린다.
"태연하게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네..."
"잘 봐둬! 이건 분명 평범한 자판기! 평범한 탄산수가 나왔는데 하나코가 일부러! 그런 거니까! 내가 증명할게!"
그렇게 소리치며 코하루는 동전을 휙휙 넣고는 조그마한 비타민 음료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의아하게 느낀 코하루는 배출구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음? 무언가가 있어..."
코하루는 자그마한 띠부실 같은 무언가를 꺼낸다. 작고 네모난 그것은 둥근 모양의 납작한 물건을 포장한 듯 생긴…
"어라? 비타민이네요? 아니면..."
검지를 치켜세워 설명하려는 하나코의 얼굴에 그 물건을 내던지고는 코하루는 완전히 붉은 병아리가 된 채 부들거리며 총탄과 수류탄을 자판기에 퍼부었다.
"야한 건 사형! 사형! 처형! 척결! 꺄악?!"
텅! 핑크색 탄산 캔이 또다시 멋진 각도로 날아와 코하루를 날려버렸다. 아이리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카즈사의 옆에 안착한다. 하늘이 빙빙 도는 듯 코하루는 머리를 느리게 흔들었다.
"이런 간호가 필요하겠네요. 제 젖은 무릎베개라도…"
"코하루까지 전선에서 이탈하다니. 과연… 소대하나를 전멸시킨 신무기라는 건가."
이젠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풀밭에 쓰러진 두 사람과 그들을 간호하는 두 사람, 벤치에 앉아 응원하는 나츠와 옆에서 이젠 될 되로 되라는 식으로 응원하는 요시미. 우왕좌왕하는 히후미와 곳곳에 굴러다니는 캔들. 아, 지금 기어코 그 캔 중 하나를 밟고 히후미는 넘어지고 만다. 그런 소동의 한가운데에 아즈사는 자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세를 낮춘 채 다가간다.
"음, 수분 보충에 가장 효율적인 건..."
덜컹! 배출구로부터 생수병이 나온다.
침착하게 꺼낸 플라스틱 생수병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의 깊게 관찰한다.
곧 안전을 확신한 아즈사는 그 마개를 열고, 입을 댄다. 주변이 조용해진다.
한 모금, 두 모금, 물을 몇 번 정도 삼킨 아즈사는 병에서 입술을 떼고 나지막이 말했다.
"... 그리운 맛이야. 급속 행군 도중 수통에 있는 물을 마셨을 때와 똑같은 맛."
"... 우승자는 폭력의 얼음 마녀! 시라스 아즈사!"
나츠의 선포가 그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진다.
마침내 무사히 음료를 마시고 살아남은 도전자가 나왔다.
요시미와 나츠는 박수를 치며 아즈사에게 다가간다.
"도전자 아즈사.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오래된 수통의 철맛에 익숙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극한 생존 훈련도중에 빗물을 담아 끓여 마시던 경험덕일수도 있어."
뿌듯하다는 듯 아즈사는 날개를 팔락거리며 나츠의 즉석 인터뷰에 응해준다.
요시미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스트레칭하며 외쳤다.
"좋아! 우승자도 나왔겠다. 뒤풀이 하자! 보충수업부는 선호하는 디저트 있나?"
"생크림 가득한 종류라면 뭐든지♥"
"아하하… 무난하게 크레이프 같은 건 어떨까요? 이번에 페로로님이랑 콜라보를 하는 유명 브랜드가 있는데..."
"윽? 아야야… 머리야… 뭐야? 보충수업부?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 무슨 일이… 디저트? 아... 나도 크레이프에 한표."
"페로로랑 콜라보? 분명 모모프렌즈도 있겠지? 나도 동의해. 히후미. 크레이프에 우승자도 한표 던질게."
"흘러넘치는 생크림… 야, 야한 건... 사형이야..."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7명의 개성만점 여학생들은 트리니티의 디저트 거리로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나츠만이 남아 흐뭇하게 쳐다보며 떨어진 캔들을 주워 담아 버리고 있다.
"이렇게… 디저트를 통해 또 하나의 인연이 생기고. 하나의 이야기가 생기고. 하나의 화학반응-
케미가 이 세상에 번쩍이고.
현대에 가득한 복제된 공산품. 레플리카. 자판기.
그 반복적이고 부여된 무의미를 가진 실재의 단편적인 복제에 불과한 이 미메시스조차도
활기찬 여학생들에게 있어선 거대한 의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나는 딸기 쇼콜라 크레이프가 먹고 싶구나."
나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따라 달려간다.
샬레에 신고해야 한다는 처음의 이야기는 완전히 까먹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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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경단 활동을 하니 목이 마르네요..."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좀 나아지실 텐데 말이죠."
"그렇지만! 포기 못합니다! 이 힘찬 외침이야 말로 우자와 레이사의 상징!
어라? 이런 외진 곳에 자판기가? 슈슈슉!"
"뭔가 수상하네요. 똑같은 자판기가 두 개나 붙어있다니..."
"으흐흠~ 레이사는 말차맛 라무네를~ 원한답니다!"
"…?"
"어라? 자판기님? 동전을 넣었는데?
저기요? 자판기님? 레이사의 동전! 먹었잖아요! 반응해 주세요?!
... 내 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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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자판기가 고장나서 미지근한 캔이 나오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쓰게된 소설입니다
빵디부와 보충수업부의 정말 혼란스럽고도 귀엽고 웃긴 모습이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밌게 읽어주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읽어주셔셔 감사합니다
댓글 17
맛있어…


자판기라길래 데카그라마톤이라도 부활한 줄 알았넼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데카그라마톤도 자판기였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에스트로 얼마나 할짓이 없었으면 자판기를 미메시스 시키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