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우정 #리오 #아리스
원본 by レ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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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4>
<1>
겨울 하늘은 푸르게 맑았다.
가로수의 잎은 완전히 떨어지고, 보도에는 빛을 반사하는 마른 포석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사람 통행이 많은 곳에 온 것은 얼마 만일까.
“……이제 곧이네.”
예정표를 확인할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가슴속이 술렁거린다.
[아리스와 쇼핑]
우선순위가 높은 사항.
그렇게 판단하고 빨간 글씨로 쓴 것이 이제 와서 역효과라는 것을 깨닫는다.
치밀한 시뮬레이션을 거듭한 지금도 불안의 씨앗은 떨쳐낼 수 없다.
“..........후우.”
가슴에 손을 얹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사전에 구성한 시뮬레이션을 따라 적절한 대응을 취한다.
그저 그것뿐.
정말로 그것뿐이다.
“……단지, 쇼핑.”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뇐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다.
심박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다.
일도 아니다.
전투도 아니다.
단순한 사적인 용건.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럴 터인데.
‘어째서, 이렇게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걸까.’
쇼핑의 흐름은 이미 예상했다.
아리스의 기호도 구매 경향도 파악하고 있다.
이동 루트도, 휴식 타이밍도, 예상되는 대화 패턴도, 모두 시뮬레이션 완료인데.
“...........”
이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이렇게까지 신중하게 준비했음에도 가슴속이 술렁이는 걸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네.’
다시 한번 숨을 고른다.
지금은 그저 일정을 소화하면 된다.
“.......시간이야.”
의식을 전환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 찰나.
―멀리서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빰빠카빰! 아리스는 리오 선배를 발견했다!”
얼굴을 들자, 아리스가 이쪽을 향해 양손을 흔들고 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여전히 그녀의 무기는 눈에 띄었다.
“리오 선배!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으, 으응…… 오늘은 나에게 맡기렴.”
함께 쇼핑 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거창한 연출을 하는 것이 그녀답다면 그녀답다.
큰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지금부터 심부름한다고 광고를 하고 있다.
“오늘은 무엇을 살 거니?”
“네! 아리스는 심부름 퀘스트를 수주했습니다. 이것이 이번 미션입니다!”
큰 가방에서 작은 종이 조각 하나.
부원 중 누군가가 건네준 것인지, 거기에는 목록으로 장보기 리스트가 적혀 있다.
……이 내용이라면 예상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서쪽 출구 쪽 루트가 가장 효율적이겠네. 바로 가자.”
“네!”
<2>
투박한 자동문을 빠져나가자 따뜻한 공기가 피부를 스친다.
야외의 차가운 공기와는 달리 실내는 밝고, 활기가 넘쳤다.
‘……사람이 많네.’
주말 탓인지 건물 안에는 수많은 쇼핑객이 오가고 있다.
가족 단위, 학생들, 커플.
각자 목적의 가게로 향하며 발 빠르게 걷는다.
그 소란 속에서 유난히 즐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단해요! 여기는 대형 던전의 로비네요!”
옆을 보니, 아리스가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던전?’
“음…… 그러니까, 거점이라는 뜻일까?”
“맞아요! 여기에는 무기점, 포션점, 아이템 상점이 모두 갖춰져 있어요! 거점으로서 완벽합니다!”
“그, 그렇구나…….”
가리킨 방향에는 옷, 화장품, 잡화 등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서 있다.
모든 것을 게임으로 바꿔버리는 것에 맞추는 것은 아직 익숙지 않다.
“그러면 먼저 첫 번째 목적지, 식자재 조달! 퀘스트 스타트!”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는 의기양양하게 걷기 시작했다.
널찍한 식품 매장에는 다양한 식자재가 정돈되어 있다.
작은 용사는 손에 든 쇼핑 리스트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은…… 양파, 당근, 감자! 이것들을 획득합니다!”
“평범한 장보기네.”
“스튜를 만들 거래요!”
“과연. 겨울에 먹기 딱 좋겠지.”
쇼핑 카트를 들고, 필요한 채소들을 넣어간다.
이런 계획대로 진행해야 할 과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어 솔직히 살았다.
‘…..이렇게 평범하게 장을 보는 일조차, 얼마 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갖출 수 있는 것은 모두 인터넷 쇼핑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그립게 느껴진다.
그때, 문득 아리스가 멈춰 섰다.
“…..으음.”
“왜 그러니?”
“당근, 무엇을 고를지가 문제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카로틴의 무리.
모두를 정밀하게 조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크기와 신선도를 보고, 적절한 것을 고르면―.”
“으으음…… 이건 어려운데요…….”
아리스는 꼼짝하지 않고 당근을 노려본다.
그녀에게 있어 이것들은 강적인 것일까.
뭐, 어느 것도 움직이지는 않지만.
“크고 모양이 가지런한 것을 고르면 돼.”
“과연! 그럼, 리오 선배에게 선정을 맡기겠습니다! 아리스는 감정 스킬이 부족해요!”
“……단지 채소 고르기일 뿐인데?”
큰소리를 치며 진열대에 눈을 돌려 당근의 상태를 재빨리 스캔한다.
색, 모양, 신선도, 표면의 질감.
장기 보존을 고려한다면 수분을 적당히 머금은 것,
조리의 용이성을 생각한다면 크기와 모양도 중요하다.
‘……이 정도가 최적이겠군.’
이론상 가장 좋은 상태의 당근을 손에 들고, 카트에 넣는다.
아리스는 감탄한 듯 손뼉을 쳤다.
“역시 리오 선배! 아이템 관리가 능숙합니다!”
“그, 그래…… 고마워…….”
무심코 말이 막힌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합리적인 최적의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을 터.
그런데도 아리스는 마치―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칭찬해 준다.
“........윽.”
칭찬받는 경험이 희박했던 탓일까.
단순히 나의 행동을 긍정해 주었기 때문일까.
‘……기뻐.’
자각한 순간 희미한 불편함이 가슴속에 남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잘 표현할 수가 없다.
“…..다음 것을 찾자.”
감정을 전환하듯이 다음 목적지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는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리스트를 확인하며 걷기 시작했다.
<3>
식자재 쇼핑을 마치고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잡화점이었다.
실내에는 일용품이나 문구류, 작은 인테리어 잡화가 늘어서 있다.
“다음 미션은…… 아!”
문득, 아리스가 멈춰 섰다.
시선이 향한 곳은 목적지와는 다른 가게.
“리오 선배, 저것 좀 보세요!”
“.......?”
아리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작은 열쇠고리 코너.
동물이나 로봇을 본뜬 디자인의 것들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이거, 선생님께 선물하지 않을래요?”
“선생에게?”
“맞아요! 저번에 선생님이 ‘최근 열쇠고리를 잃어버렸다’라고 말했어요!”
기록 로그를 검색하니, 확실히 그런 대화를 하였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그럼 사자’고 바로 발상하는 것이 아리스답다고 해야 할까.
‘시간은….. 문제없겠지.’
“그럼, 골라보자. 어떤 게 좋을까?”
“글쎄요…… 으으음…….”
아리스는 하나하나 손에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르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는 것을 통계상 알고 있다.
아리스가 고민하는 동안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거나, 후보를 좁히는 등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는데…….
“…..맞아요!”
갑자기 아리스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본다.
그 얼굴은 어딘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는 리오 선배가 골라주세요!”
“.......에?”
그 말에, 시야가 한꺼번에 안개에 휩싸인다.
내가…. 고르라고……?
“에, 저기……. 그건…….”
식은땀이 주르륵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계산이나 판단은 특기지만, 이런 류의 센스는 자신이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감성이 이해받기 어렵다는 것은 데이터가 이미 보여주고 있고…….
선생이라면 이해해 주겠지만,
아리스 앞에서 고르는 것은 아직 용기가 필요하다고 할까, 시기상조라고 할까,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까…….
“무엇을 고를 거예요? 아, 아직 안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
눈앞의 진열대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열쇠고리들이 늘어서 있다.
심플한 것, 추상적인 것, 혀를 내민 이상한 하마 같은 것.
모두 개성이 있고, 선생의 취향과 기호를 고려해도 무엇이 최적인지는 순식간에 판단할 수 없다.
“.......글쎄.”
하지만 아리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그녀의 사전에는 ‘네’와 ‘아니요’는 있어도, ‘고르지 않는다’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무언가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 설령,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이건, 어떨까.”
미세하게 손끝이 땀으로 젖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를 집어 든다.
검은 메탈 플레이트에 작게 톱니바퀴 문양이 새겨진 디자인.
좋게 말하면 심플. 나쁘게 말하면 흔한 것.
내가 내린 답은―
“그럼 이걸로 할게요!”
즉시 결정되어 버렸다.
“……괜찮겠니?”
“네!”
아리스는 놀라울 만큼 태연하게 그것을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하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무심코 물었다.
“내가 고른 거야. 솔직히, 이런 건 자신 없는데…….”
“괜찮습니다!”
뒤돌아본 아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아무런 의심 없이 똑바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강함.
고른 물건의 가치보다 그것을 고른 마음을 존중하는 다정함.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렇, 네.”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아리스의 뒤를 따른다.
“리오 선배! 포인트 카드는 가지고 계세요?”
“……없단다.”
“그럼, 아리스가 대신 포인트를 모을게요!”
활기차게 선언하며 아리스는 계산을 마친다.
그 사소한 대화조차 그녀에게는 게임의 일부인 것일 거다.
“……후후.”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장보기를 재개하자.”
“네! 미션 재개입니다!”
조금 부러워져 손을 뻗으려다가 억누른다.
지금은 그저 그녀와의 쇼핑을 누리자.
오늘 하루는 매우 짧고, 매우 소중한 것이니까.
<4>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친다.
실내의 따뜻함에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지, 아주 조금 추위가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장보기 리스트는 이미 채워져 있었다.
“…..벌써 저녁이네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문득 고개를 든다.
하늘은 주황색으로 물들고, 멀리 있는 건물의 윤곽을 희미하게 번지게 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발밑에 겹치며 해가 기울고 있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시간이 이렇게나 빠른 것이었을까.
문득, 아리스가 이쪽을 올려다본다.
“리오 선배. 오늘 고맙습니다.”
그 얼굴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새삼스럽게 고맙다는 할 이유가 없음을 나조차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리스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리오 선배와 처음으로 모험을 하고, 여러 가지를 사고…….”
평소의 미소와는 확연히 다른 쓴웃음.
아리스에게 이런 얼굴을 하게 만든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무리하게는 말씀 안 드릴게요.
지금부터는 그냥 아리스의 투정이니까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나도 아니었다.
그녀의 말을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이라도 괜찮아요.
또….. 아리스와 외출해 주시겠어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삐걱거렸다.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문이, 천천히 열리는 듯한.
줄곧 생각했던 문제에 답을 찾은 듯한.
“........응.”
―나는 아직, 나를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저지른 일도, 그 결과도.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할 만큼 나는 능숙하지 못하다.
분명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내가 먼저 권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조금, 일지 모르지만.
이 아이를 위해서 힘을 쥐어짠다.
“또, 초대해 주겠니?”
“…..네!!!”
서투른 나를 필요로 해 준다면.
내 옆에 서는 것을 네가 바란다면.
나는 그것에 응하고 싶다.
“오늘은 이미 늦었어.
AMAS를 붙여줄 테니, 제대로 밀레니엄으로 돌아가야 해.”
“싫어요!”
……에?
“모험은 돌아갈 때까지가 모험이에요!
리오 선배와 함께 돌아가지 않으면 퀘스트 클리어가 안 돼요!”
빙긋 웃는 아리스의 표정은 한없이 순진했다.
그것이 왠지 모르게 가슴속을 묘하게 간지럽힌다.
“에, 에엣….!?”
기쁨 반, 쑥스러움 반.
그리고, 그녀가 지은 웃는 얼굴에 대한 달성감.
“어, 어쩔 수 없네……. 정문까지만이야?”
“빰빠카빰! 아리스는 리오 선배를 설득했다!”
주황색으로 물든 거리를 둘이 나아간다.
이것이 설령 비합리적인 선택일지라도.
비효율적이고, 결과적으로 보면 의미 없는 일일지라도.
이런 날도 가끔은 나쁘지 않다.
To Be Continued : Part 2 코하루와 하나코
댓글 6

빨리 더 안써오면 큰결심해버릴거임
리오의 합리적인 계획이 마이페이스적인 아리스로 무너지는 전개인줄알았는데 뭔가 소소한일상같은 이야기도 괜찮네

기계같은 인간이랑 인간같은 기계의 조합은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