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M #히나 #드라마
원본 by レ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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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레의 문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열렸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서성이던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만 같았다.
복도와의 온도 차이가 뺨에 아려왔다.
우선 공조 설비의 낮은 구동 음이 나를 맞이했고, 집무실 안으로 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조용한 방이었기에 그 목소리는 유독 크게 울리며 내 귀에 되돌아왔다.
“선생님, 수고가 많아.”
“아, 왔구나. 편한 데 앉아.”
선생님은 익숙하다는 듯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곧장 수중의 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선생님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의자를 당겨 앉자, 선생님의 오른편에서 은은하게 남아있는 커피 향이 풍겨왔다.
선생님의 책상 주변에는 의자가 잔뜩 있어서 어디든 앉아도 좋았지만, 나는 바로 옆자리를 선택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라는 적당한 핑계를 마음속으로 대두면서.
“커피, 더 마실래?”
컵에 남은 양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시야 한구석으로 포착하고, 생각난 김에 묻는다는 어조로 말을 건넸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그래도 돼? 그럼 부탁할─”
“아, 아니면.”
“응?”
온화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홍차나 우롱차, 어쩌면 콜라가 더 좋았으려나?”
“커피면 충분해!”
“…그래.”
떠보기, 실패.
아무래도 내 의도가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런 사람인걸.
우쭐해하지 말자고 마음 깊이 새겨둔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입꼬리가 풀려버리고 마니까.
혼자였던 나의 내면을 채우듯 띠링, 하고 정적만이 감돌던 공간에 단말기의 알림음이 울렸다.
그 소리가 의미하는 것.
─누군가가 선생님을 부르고 있다.
“…….”
가만히 옆얼굴을 바라보니, 선생님은 여전히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다.
자신을 향한 시선도, 감정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한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늘 그랬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딘가 조금 둔한 구석이 있을 뿐.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소중한 순간만큼은 정확하게 알아채고,
마음 한구석에 뚫려버린 구멍에 놀라울 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다정한 말을 건네준다.
“선생님, 그건 무시해도 괜찮아?”
의미 없이 컵을 만지작거렸다.
출렁이는 액체가 파도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어쩐지 흥미로웠다.
딱히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아니다.
기다렸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둘이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근래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쯤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커피를 내밀었다.
단말기 쪽은 보지 않으려 애쓰는 통에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고마워. 그런데 그건 무슨 뜻이야?”
“그 단말기.”
“아, 알림 소리 말이야?”
선생님은 구석에 놓여 있던 단말기로 시선을 돌려 화면을 슬쩍 확인하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중요한 건 알림음을 다르게 해뒀거든─”
띠링, 다시 한번 울리는 소리.
이번에는 과연 선생님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요즘 부쩍 잦네.”
“그래? 뭐, 예전보다는.”
“전에는 아무도 부탁 같은 거 안 했었는데.”
“치사하게 옛날얘기를 꺼내기야?”
가볍게 웃어넘기는 모습에 나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웃으면서도, 아아, 또 시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감정을 곱씹는 것도, 소화하는 것도.
모든 것을 순수하게 넘길 수 없게 되어 숨이 막혀왔다.
선생님의 옆얼굴이 다시금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기억해? 선생님. 여기 처음 오셨을 때는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었잖아.”
마가 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뿐일까.
어쨌든 좋은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지만, 입술 사이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은 그런 심술궂은 말이었다.
“그랬었지, 그런 일도 있었네.”
둔한 사람이니까 나의 그늘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옛일을 회상하는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건 기억하고 있구나.
“어느샌가 여기저기서 불려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것 같네.”
“…뭐, 예전보다는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겸손이 섞여 있었고, 어디까지나 온화했다.
나에 대해서는 가볍고 쉽게 칭찬해 주면서 자신에게는 늘 저런 식이다.
“일정을 맞춰주는 건 원래 선생님 쪽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쪽인가 하면 내가 맞춰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어.”
“바빠서 미안해.”
“아니야, 선생님 잘못이 아닌걸.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의지해 주는 건 좋은 일이야, 분명.”
좋은 일.
그저 떠오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입 밖에 냈다.
가슴 깊은 곳에 묘한 앙금을 남겨둔 채로.
“…그렇구나.”
“오랜만이네, 이렇게 둘만 남은 건.”
나는 내가 앉은 의자를 슬며시 선생님 쪽으로 당겼다.
“그러네, 나도 왠지 기뻐.”
“이대로, 아무도 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말을 뱉고 나서 아주 잠깐 숨을 멈추었다. 조금 지나쳤다.
“…농담이야.”
동생이 태어난 첫째 아이는 이런 기분일까.
이토록 비참하게, 너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일찍 만났을 뿐이라고 선고를 받는 듯한 기분일까.
선생님은 가만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어떻게든 가늠해 보려는 눈치였다.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서둘러 그 천칭을 기울이기로 했다.
“농담이라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잖아?”
컵을 들어 올렸다.
마시기에는 아직 뜨거웠지만, 무엇이든 입에 담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꿀꺽, 삼켰다.
분명 설탕이 들지 않았을 텐데 달았다.
어리광 섞인 말을 삼켜 숨긴 탓이다.
나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그도 마찬가지일 테니, 지금의 느낌을 전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안 뜨거워?”
“괜찮아.”
가볍게 기침을 한 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은 아주 잠깐 생각에 잠겼지만, 그 이상은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다정하면서도 일정 선 이상은 넘어오지 않는다.
그런 점이 역시 비겁했다.
띠링.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소리.
“오늘 당번 업무는 뭐야? 나를 불렀다는 건…피해 보고서 정리 같은 거?”
“아하하…정답이야.
가벼운 시위가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데이터는 와 있으니까 남은 건 서류로 옮겨 적는 작업이야.”
“확인. 그럼, 이거 절반은 내가 가져갈게.”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더미를 푹 덜어냈다.
단순한 사무 작업.
아무리 학생들이 늘어났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니까.
오늘만큼은 선생님이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살았어, 고마워.”
“괜찮아. 이거 끝나면 그쪽 일도 도와줄 테니까.”
그것으로 대화는 끊겼다.
내가 펜을 움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선생님 역시 자신의 업무로 의식을 돌린 모양이었다.
한 줄을 쓰고, 다음 줄로 넘어가고, 다시 쓰고.
서류를 넘기고, 쓰고, 또 새로 넘기고.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여기서는 유독 크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간간이 끼어드는 그 알림 소리가 나는 줄곧 신경 쓰였다.
“…….”
“…….”
띠링.
띠링, 띠링.
“저기, 선생─”
띠링.
“응,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이지 않는 걸까.
이제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걸까.
문득 시선을 던지자, 선생님은 거침없이 펜을 굴리고 있었다.
곁에 둔 단말기는 끊임없이 울어대고 있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모니터와 서류를 번갈아 확인하고 있었다.
나 역시 소음에는 익숙한 편이다.
일일이 신경을 썼다간 게헨나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어차피 사소한 말썽일 테니 오히려 신경을 끄는 요령을 배우는 편이 빠르다.
하지만─
“…선생님. 이건 그냥 잡담인데.”
“응, 뭔데?”
“그…요즘, 잠은 제대로 자고 있어?”
선생님의 그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웠고.
선생님이 눈가의 그늘을 감추는 방식은 조금 서툴렀다.
대체 얼마큼의 소음을 흘려보내야 저렇게 무뎌질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아하하…들켰나? 그게 말이야, 가끔 수면 시간이 짧아서.”
가끔.
선생님의 기준을 알 수 없어 사고가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가 대체 언제 잠드는지,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업무가 너무 많은 거야? 그렇다면 언제든─”
“앗, 그런 게 아니라. 가끔 대화가 길어질 때가 있어서 그래.”
“…대화가 길어져?”
나도 모르게 되뇌고 있었다.
선생님은 난처한 듯, 그러면서도 어딘가 기쁜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응. 밤에는 위험하다고 타이르는데도, 다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더라고.”
그제야 겨우 시선이 머물렀다.
재촉하듯 분홍빛 알림이 잇달아 떠오르고 있었고, 선생님은 익숙한 습관처럼 화면을 옆으로, 또 옆으로 넘겨 나갔다.
“업무 중에는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그래서, 밤에?”
“응, 그런 셈이지.”
다시 한번, 띠링.
선생님은 눈길도 주지 않고 또다시 뒤로 미뤄둔다.
“다정하네.”
“평범한 거야.”
이야기를 들어달라거나.
다음에 같이 놀러 가자거나.
그 가벼운 소리 하나하나마다 누군가가 있고, 마음이 담겨 있으며, 메시지를 보낸 뒤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더 깊은 말을 골라가며 그 마음과 똑같은 무게를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평범, 이라.”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누군가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이렇게 소리가 울린다.
그렇기에 이렇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선생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응, 뭐든 말해봐.”
선생님은 분명 모르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느라.
사방이 온통 사람들로 둘러싸여서.
팔방미인 노릇을 하느라 온몸이 꽉 조여드는 상태라는 것을.
그런 건 전혀─좋은 일이 아니야.
“지금 당장, 자러 가.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지, 지금? 하지만 일이 아직…….”
“이쪽은 벌써 끝났어. 선생님 몫도 내가 할 테니까.”
반쯤 강제로 서류를 빼앗아 버리자, 선생님은 허무할 정도로 할 일이 없어졌다.
갈 곳을 잃은 펜이 허공을 맴돌다가 이내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거절할 명분은 없지만, 완전히 납득하지도 못한 듯한 표정.
그 얼굴은 역시나 둔해서 나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을 리 만무했다.
“잠 제대로 못 잔 거 맞잖아.”
“조금뿐이라니까. 히나에게 전부 맡기는 건 좀…….”
“거짓말. 뭐든 들어준다고 했으면서.”
“아니, 그건…확실히 말하긴 했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말꼬리를 잡힌 탓인지 선생님은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 틈을 타 컵마저 빼앗아 가자, 선생님은 그제야 내가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억지로 무리를 거듭하는 이 사람에게는, 억지스러운 요구를 하는 편이 가장 빠른 법이다.
“압수야?”
“응. 깨어나면 다시 끓여줄 테니까.”
“…히나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지─?”
“곁에 누워 있어 주길 바란다고? 생각보다 대담하네.”
선생님은 다시금 신음 섞인 소리를 냈다.
오늘은 참 만만치 않네, 하는 소리를 나직하게 흘리며 그는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유만이라도 들어도 될까?”
빼앗긴 컵과 다시 쌓아 올린 서류 더미.
그 두 가지를 번갈아 비교하듯 바라보며 그는 나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이유를─상세히 설명하기에는 오늘은 여러모로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선생님과의 시간을 가볍게 여긴다고 느끼면 곤란하다.
짧고, 간결하게,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말.
그래. 예컨대 이 말이라면 전해지려나.
“선생님이 나에게 쉬라고 말하는 이유와 같아.”
“…졌네, 정말. 거절할 수가 없잖아.”
드디어 꺾여준 모양이었다.
수줍게 미소 짓는 당신은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습 그대로여서.
이런 행동을 나 말고 또 누가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딱 한 시간만이야. 그만큼 지나면 깨워줘도 좋으니까.”
조건을 덧붙이는 부분이 역시 선생님다웠다.
확실하게 단락을 짓고, 당연히 돌아온다는 전제하에 아주 조금만 손을 놓는다.
그 작은 쉼표 덕분에 구원받아 온 것은 아마도 내 쪽이었을 것이다.
“응.”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의 약속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선생님의 시간을 맡아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선생님이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딱 중간 정도였다.
“히나.”
그렇게 이름을 부른다.
조용해진 샬레 안으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소복이 내려앉았다.
“고마워.”
“아니야, 나야말로.”
짧은 인사를 끝으로 그는 방을 나섰다.
문이 닫혔다.
공조 장치의 낮은 구동 음과 종이가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방안에 남았다.
띠링.
뒤늦게 다시 울리는 소리 하나.
조금 전까지였다면 몇 번째인지 세고 있었을 소리.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지금은 더 이상 셀 필요가 없으니까.
“한 시간, 이라.”
펜을 쥐었다.
한 줄을 쓰고, 다음 줄로.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모습을 멍하니 눈으로 좇았다.
글자가 형태를 갖추어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잡생각을 가라앉힐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모톡을 열었다.
즐겨찾기에 등록된 그 사람을 선택하자 전자의 기억이 유려하게 떠올랐다.
형식적인 절차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보내두기로 하자.
[잘 자.]
띠리링.
“…띠리링?”
그 단말기로 시선을 빼앗겼다.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싶어질 만큼,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워질 만큼,
그런 다정한 소리가 파도가 되어 고스란히 고막을 뒤흔들었다.
찰나의 순간, 인지가 늦어졌다.
뒤늦게 이해가 따라붙었다.
‘중요한 건 알림음을 다르게─’
“…후훗.”
아아, 정말이지.
겨우 이런 사소한 걸로.
Fin.
댓글 5
와 양 많다....

달아
방심하고 읽다가 마지막에 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