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순애 #나구사
원본 by レ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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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3>
<1>
새로운 앞치마를 살까, 하고 생각한다.
찢어진 것도 아니고, 애착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끈 부분이 조금 바래기 시작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급하게 마련한 앞치마였지 싶었다.
매일의 냄새와 온도를 머금어, 정신 차려 보니 이곳에 산 시간 그 자체의 색을 띠고 있다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가능하다면 더 깨끗한 것을 두르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아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 그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일 것이다.
뚜껑을 살짝 들어 올리자, 김이 둥실 뺨에 닿는다.
육수 향이 피어오르며, 방 안 공기를 천천히 채워 갔다.
맛을 보니, 아주 살짝 싱거운 기분이다.
간장을 조금만 더 넣자.
두 사람 모두 간이 센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여기는 신중하게.
……음, 맛있다. 나, 얼굴만이 장점인 건 아니게 되었을지도.
‘슬슬 됐으려나…….’
시계를 본다.
어느새 벌써 30분이나 지나 있었고, 심장 부근에서 미세한 긴장이 한 번 튀었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그릇을 늘어놓고, 젓가락 위치를 미세 조정한다.
한겨울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쌀쌀한 계절.
이런 날에는 따뜻한 전골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방석을 깔고, 코타츠를 켜고─── 준비 완료.
“다녀왔어~.”
타이밍이 완벽하다. 미리 연락을 받았지만.
“어서 와, 선생님.”
“나구사, 늦어서 미안해.”
신발을 벗는 소리가 드문드문 이어지고,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매일 보는 광경일 텐데, 이 순간만큼은 신기하게 가슴이 설렌다.
“밥, 다 됐어. 목욕물은 금방 데울 수 있고. 어느 쪽으로 할래?”
신혼 삼택 미만.
선생님은 망설이는 기색 없이 살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뺨이 살짝 빨갛게 되어 있어, 바깥바람에 노출되었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밥을 먹을까. 오늘은 전골이라고 했지?”
“응. 채소가 마침 싸서. 앉아서 기다려 줘.”
선생님은 말한 대로 코타츠에 천천히 자리 잡았다.
그 움직임에는 밖에서 쌓인 피로가 조금 섞여 있어, 가슴속이 슬며시 시큰거린다.
샬레에서 도보 20분, DU 지구 교외.
허름한 아파트 이상, 2LDK 미만의 작은 세계에서 나는 선생님과 동거하고 있었다.
“냄새 좋다.”
부엌으로 향한 시선은, 어딘가 안심한 사람의 것이다.
배가 고파 긴장되어 있던 어깨가 풀려가는── 그런 변화가 멀리서도 느껴진다.
오늘 점심은 적게 먹었을까.
“별 건 아니지만…… 몸이 따뜻해질 거야.”
“나구사가 만들어 준 시점에서 별 거야.”
스스럼없이 말하는 통에 대답하려던 말문이 막혔다.
익숙해졌을 텐데, 이런 한마디는 치사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쁜 채다.
전골을 살짝 데우면서 코타츠 위에 냄비 받침을 준비한다.
뚜껑을 옆으로 밀자, 부드러운 김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무, 배추, 고기, 두부.
버섯은 넣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의 약속이었다.
맛은 있는데 선생님이 식감을 꺼린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고마워. 그럼, 잘 먹겠습니다.”
코타츠 위에서 서로의 젓가락이 자연스럽게 가지런해진다.
선생님은 김에 눈을 가늘게 뜨며 무를 하나 살짝 입에 가져갔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제는 그저 선생님의 정해진 반응을 기다릴 뿐이다.
“음, 맛있어! 나구사는 요리 잘하는구나.”
역시. 대답을 대신하여 나는 미소 지었다.
국자를 담그자, 식재료들이 물속에서 둥실 흔들리고, 두부의 모서리가 희미하게 비쳤다.
그릇에 담으니 퐁 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울리고, 아주 조금 둥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훗.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라, 안 부끄러워하네. 내성 생겼어?”
라며 선생님은 아쉽다는 얼굴을 한다.
매일 맛있다고 말해준다면, 아무리 나라도 믿어버리는 법이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자, 위태롭게 흔들리던 두부가 부서졌다.
입에 머금으니 스르륵 형태를 잃듯이 녹아내려서, ‘조금 더 있다가 먹을걸’ 하고 생각했다.
“지나친 겸손은 실례일까 싶어서.”
“드디어 자각해 줬네. 맞아. 나구사의 요리는 정말 맛있어. 그러니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거야.”
김 너머로, 뿌듯해하는 미소가 하나.
이 웃음에 나는 기대기만 하고 있다.
칭찬하며 키우기 외의 것을 지난 몇 년간 경험하지 못한 탓에, 분명 스트레스 내성은 바닥났을 것이다.
이런 걸 온실 속의 화초라고 부르는 걸까.
“그건 그렇고…… 정말 집에서 괜찮았던 거야? 모처럼의 생일인데…….”
미안하다는 듯이 선생님은 나에게 묻는다.
그래. 오늘은 나의 생일.
고료 나구사, 스물두 살의 기념일이다.
선생님은 한 달 전부터 일정을 비우려 했지만, 내가 “집에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바람에, 오늘의 일정은 자연스레 이렇게 되었다.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몇 번이나 “정말 그걸로 괜찮아?”라고 확인하는 통에, 나도 후반에는 점점 고집을 부렸던 것을 기억한다.
“응. 집에서 이렇게 있는 게 더 마음 편하고…… 성대한 파티는 재작년에 했고.”
그때 터진 폭죽 소리와 그 위력에 놀라 자빠질 뻔했던 선생님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딱히 싫지는 않지만, 매년 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나 스스로 결론이 났다.
“나구사가 그렇다면야……. 하지만, 초밥 정도는 시켜 먹어도 괜찮았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국자로 무심하게 건더기를 담는다.
육수가 작게 춤을 추며 고기가 흔들거렸다.
그 섬세한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미소를 짓는다.
“초밥도 좋지만……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을 것 같아.”
선생님이 나를 신경 써주고, 하지만 길에 어긋나지 않도록 이것저것 생각해 주었던 그 시절.
그때도 기뻤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충족됨을 알게 된 듯한, 바라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적어진 듯한.
그것은 분명 타협이나 포기가 아니라, 단지 여기에 있는 소박한 풍경이 정말로 소중한 “당연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훗. 나구사, 변했네.”
“음…… 나쁜 의미는 아니, 지?”
“천만에. 좋은 의미로, 안심이 돼.”
선생님은 그릇으로 손을 덥히듯 감싸안으며, 살짝 쑥스러운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 붉어진 기운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남긴 것인지, 아니면 방금 그 말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지금의 나구사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러운 모습이구나 싶어서. 기뻐, 정말로.”
너무나 상냥하게 말하는 통에 가슴 깊은 곳에 파문이 퍼졌다.
전골이 조용히 보글, 소리를 낸다.
“후훗……. 벌써, 4년이나 같이 있었으니까.”
시간의 흐름.
나는 두부를 하나 떠서 입에 넣었다.
이번에는 육수의 감칠맛이 혀에 퍼지며,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구사, 이제 거의 다 먹었네. 먼저 목욕하고 와.”
선생님은 코타츠에서 한 손을 꺼내며, 누구보다 다정한 노랫소리처럼 그렇게 말했다.
설거지는 평소처럼 선생님이 할 생각일 것이다.
“응, 고마워.”
“천천히 해도 돼. 나는 느긋하게 치울 테니까.”
그 목소리는 따뜻한 담요처럼 감싸는 듯했다.
거부할 이유 같은 건 처음부터 하나도 없었다.
젓가락을 놓고, 무릎 위의 방석을 살짝 밀고 일어선다.
복도로 나오니 방의 따뜻함이 등 뒤에서 살며시 멀어지고, 세면대의 싸늘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옷을 개고, 세탁 바구니에 살짝 넣는다.
묶었던 머리를 풀자, 어깨에 무게가 떨어져 편안했다.
급탕 버튼을 누르자, 쏴아 하고 욕조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덧붙여 말하면―문은 잠그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게다가 잠금을 걸어두면, 처음부터 거절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후우.........”
샤워기 수도꼭지를 튼다.
온도가 적당해지자, 물이 어깨에 떨어지는 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김이 피어오르고, 시야 끝이 하얗게 흐려진다.
수분을 머금은 머리카락이 무거워지고,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등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손에 거품을 조금 묻혀 두피를 주무르니 샴푸가 거품을 일으켜, 낮에 봤던 뭉게구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문득, 욕조에 물이 고이는 소리가 바뀐다.
낮은 울림에서 차오르는 부드러운 소리로.
분명 선생님이 설거지를 시작했을 것이다.
“.........후훗.”
생각건대, 동거라는 형태는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누구와 시종일관 붙어 있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집 어딘가에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의 세계는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욕실의 수도꼭지와 선생님이 사용하는 부엌의 수도꼭지.
동시에 물을 틀면 수압이 약해진다.
단지 그것뿐인 현상인데─── 그것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아아, 지금 선생님은 접시를 헹구고 계시겠구나.
물방울이 튀어, 살짝 눈썹을 찌푸리고 계시겠지.
어려운 기름때에, 분명 작게 한숨을 쉬셨을 것이다.
“……기쁘다.”
고인 수면에 살며시 발을 넣는다.
은근하게 열이 피부를 어루만지고, 무릎, 허벅지, 허리로, 중력이 천천히 풀려나간다.
어깨까지 몸을 담그자, 따뜻한 물이 나를 받아들이듯이 패이고, 그 틈을 메우듯이 흘러 들어왔다.
손바닥을 물속에서 팔랑팔랑 흔든다.
물살을 손가락으로 가르는 그 감촉은, 어딘가 사람의 온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덕분에 빛마저도 부드럽다.
세상이 이렇게나 둥글게 보인다면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괜찮겠다, 라고 살짝 생각하게 된다.
동거란 누군가의 기척의 형태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짜 넣는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채워져 버리는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행위일 것이다.
죄가 깊다. 아아, 죄가 깊다.
왜냐하면, 이렇게 받고 있는데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테니.
“.......슬슬, 나가야겠네.”
수면을 밀어내듯이 손을 얹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다리로 발로 미끄러져 내리고, 수건에 감싸였을 때의 온도 차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머리를 가볍게 짜니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작은 별처럼 반짝인다.
흐려진 거울을 살짝 손등으로 닦아내자, 뺨이 은은하게 붉게 물든 자신이 비쳤다.
“후훗....... 나, 변한 것 같아.”
물론, 좋은 의미로.
다정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 깨달음을 가슴속에 살짝 간직하며, 나는 세면대에서 평소의 스킨 케어를 시작했다.
이제 유일한 장점은 아니게 되었지만 되도록 꼼꼼하게, 조금 비싼 로션을 사용했다.
<2>
머리를 충분히 말리고 세면실을 나선다.
거실로 향하자, 모퉁이를 돌기 직전에 작게 사각거리는 종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조명이 꺼진 방 안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선생님?”
순간── 대답 대신, 포근하고 따뜻한 빛이 켜진다.
천장에 매달린 금은색 가랜드가 그 빛을 반사하여 은은하게 반짝였다.
“어서 와, 나구사. 음…… 그, 이런 느낌으로 어때?”
거실 한가운데쯤에 선생님이 서 있었다.
손에는, 아직 남은 장식품이 하나.
테이블에는 작은 종이 가방이 놓여 있고, 벽에는 선생님이 불어 넣었을 풍선이 조용히 떠 있다.
【생일 축하해】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수수할 정도로 꾸밈이 없다.
하지만─── 이 고요함이, 나를 위해 선택되었다고 생각하니, 호흡이 따뜻해진다.
가슴이 풀어지며 은근하게 눈물이 솟아났다.
“……정말, 좋아. 이거…… 전부, 선생님이?”
“응. 나구사가 목욕하는 사이에 서둘러서.
사실은 더 많이 준비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런 걸 좋아할까 싶어서.”
“……정말 좋아해.”
말하는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선생님은 잠시 눈을 크게 떴지만, 그렇다고 당황하지 않고 살며시 다가와 나의 뺨에 손을 댔다.
부드럽고, 티끌 없는 손끝.
눈물 자국을 다정하게 따라 그리듯이,
그때와 변함없이, 접촉하는 방식 하나로 ‘알고 있다’고 나에게 가르쳐 준다.
“나구사. 괜찮아.”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이라기보다, 그저 사실을 살며시 쓰다듬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그 순간에 새로운 눈물이 또 한 방울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초조한 기색 없이, 그 물방울마저 보석을 다루듯이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기뻐서 그래…… 정말로.”
“응……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선생님은 한 박자의 침묵 후, 곤란한 듯, 하지만 어딘가 기쁜 듯이 웃었다.
처음에는, 더 초조해했었는데.
분명 이제는, 전부 이해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괜찮아. 진정했어.”
“정말? 잘됐다. 그럼…….”
선생님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종이 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몸짓이 어딘가 쑥스러워하면서도,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배어 있었다.
“선물…… 열어줬으면 좋겠어.”
“엣…… 지금?”
“물론이지. 오늘은 나구사 생일이니까.”
선생님은 종이 가방을 살며시 들어 올려 나의 눈앞에 내밀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리본에 손가락을 걸어 천천히 풀었다.
종이 가방을 열자, 안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가 하나.
포장지를 하나하나 천천히 벗겨내니, 마치 내 심장 박동마저 조용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종이를 제거하고, 상자의 뚜껑에 손가락을 댄다.
“앗…….”
소리가 자연스레 새어 나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까지 공유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납득. 기쁜 오산.
옅은 아이보리색으로 짜인─새로운 앞치마.
손에 드니 생각했던 것보다 가벼웠지만, 가슴속은 채워지듯이 묵직하게 무거워진다.
“마음에 들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선생님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눈꺼풀 안쪽으로 불꽃이 튈 것 같은 충격이 달렸고, 두개골 내부에서 행복의 홍수가 굉음을 내며 흘러나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했던 소원이, 살며시 형태가 되어 눈앞에 있다.
그것이─어찌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나는 앞치마를 가슴에 안은 채, 깊이,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내일부터, 이거 쓸게.”
“응. 잘 어울릴 거야, 정말.”
말도, 표정도, 전부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듯한 밤이었다.
가슴에 안은 옷감에서 아직 조금 새것 냄새가 났고, 그 향이 훅 하고 코에 닿는 순간 다시 눈물이 고이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는다.
기쁨이, 눈앞에 안착해 있으니까.
“사실은 케이크도 있는데. 오늘은 푹 쉬고 싶지? 내일 먹을까?”
“응. 내일이 좋아. 아마 오늘, 맛을 못 느낄 것 같아…….”
스스로 말하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눈가를 부드럽게 했다.
나는 먼저 이불에 들어가 기다리기로 하고 침실로 향했다.
“응. 금방 갈게.”
선생님은 말하고 나서, 아직 어딘가 아쉬운 듯 나와 앞치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정말 선물을 반겨주는 걸까, 라고 마지막 확인을 하는 듯 했다.
정말 기뻤는데도 조금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져, 나는 굳이 앞치마를 정성껏 접어서 살며시 상자 안에 되돌려 넣었다.
말로는 부족한 이 기분은 행동으로 말하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욕실로 향했다.
복도의 등이 가늘고 길게 뻗으며 옆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물소리가 들려, 나는 그 울림을 등에 업고 침실로 갔다.
“후...”
침실의 공기는 한층 더 조용하고, 수면처럼 차갑고 차분하다.
발을 이불에 밀어 넣고, 아직 차가운 이불에 체온을 나누어 준다.
나는 체온이 낮아서 그런지 이불이 따뜻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이 싫지는 않지만, 역시 혼자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가슴 속이 조금 허전하다.
‘선생님,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면 방 전체가 천천히 숨을 쉬듯 바깥 세상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멀리서 울리는 샤워 소리가 나의 심장 박동과 겹칠 때마다, 아직 꿈이 아니라는 실감을 안겨 주었다.
이불 속에서 무릎을 감싸듯 둥글어지면 살짝 따뜻한 공기가 몸 주위에 감기고, 그 온도 차가 내 감각을 날카롭게 한다.
물소리가 점차 멈추고, 잠시 기다리자 이윽고 방문이 열렸다.
“……나구사?”
조심스럽고, 아주 조금 망설임이 섞인 목소리.
귀에 익은 그 상냥함이 가슴속을 흔든다.
“깨어 있어, 선생님.”
자연스러운 대답은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선생님이 이불에 들어오자, 포근하게 목욕 후의 라벤더 향이 흘러든다.
“아…또 머리 안 말렸구나.”
“깨우면 미안하니까…들켰어?”
선생님은 장난을 들킨 아이처럼 겸연쩍어했다.
그래서야 나무랄 수도 없다.
나는 몸을 뒤척이듯 돌려 선생님에게 기댔다.
“감기 걸린다니까.”
“나구사에게 빨리 오고 싶어서…… 미안해?”
또 치사한 표정이다.
선생님의 몸은 아직 열기를 띠고 있어, 이불 속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나의 손발은 완전히 그 온기에 천천히 감싸이고, 방금까지의 고독한 겨울 기운이 조용히 녹아내린다.
“따뜻해…….”
“나구사가 차가운 거야. 자, 이리 와.”
가슴 앞에서 이불이 포근하게 들리고, 포개지는 체온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간다.
선생님의 심장 박동.
조용하고, 온화하며, 아주 조금 나의 것보다 빠르다.
호흡이 하나로 맞춰진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천천히, 천천히.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밤의 빛이 멀어져 의식이 깊은 숲으로 걷기 시작한다.
“선……생님.......”
그것은 더 이상 말이 아닌, 닿고 싶은 음절의 나열.
선생님은 아주 조금 몸을 가까이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준다.
“……잘 자. 나구사.”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한 그 목소리에 포개져 있던 손끝에서 힘이 빠져 조용하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갔다.
온도가 있는 잠.
차가움이 없는 잠.
세상의 모든 것이 둥글어져, 나는 깊고 깊은 바다로 떨어졌다.
자나 깨나 꿈만 같다니 나는 참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3>
이 집에는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빨래가 잘 마르는 것.
바람이 잘 통한다는 것은 생활의 쾌적함을 지탱해 준다.
예를 들면, 저녁이 되면 주방에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것.
요리 중에 자연스럽게 해가 눈에 들어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근처에 새가 살고 있다는 것.
자연의 자명종은 놀라울 정도로 질이 좋다.
전자음처럼 억지스럽지는 않지만 꿈을 흐트러뜨릴 정도로는 존재감이 있어, 「곧 아침이 올 거야」라고 말해준다.
그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나는 눈을 뜨기 전부터 부드러운 세계의 경계에 홀로, 가만히 떠올랐다.
“음.........”
졸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머릿속에서, 옆에 잠들어 있던 사람의 부재를 확인한다.
평소와 같은 아침.
특별한 것이 없어 오히려 특별해지는 아침.
나는 이불에서 살며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문득 발목을 냉기가 스쳐, 어느 정도 정신이 든다.
“나구사, 좋은 아침.”
이미 졸음을 녹여냈을 따뜻한 아침의 목소리.
선생님은 이쪽을 돌아보며, 눈가에 다정한 이완을 남긴 채 미소 지었다.
“……좋은 냄새. 뭐 만들고 있어?”
“평소처럼, 프렌치토스트. 설탕은?”
“하나만 넣을까.”
“알겠어―.”
주전자 보온 스위치를 끄고, 선생님은 선반에서 병을 꺼낸다.
안에는 깊은 색깔의 원두가 가득 들어 있는데, 나는 그 차이를 잘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원두를 계량스푼으로 떠서 컵에 떨어뜨리자, 가벼운 모래비 같은 소리가 난다.
그라인더 뚜껑이 닫히고, 그륵 하고 낮은 소리가 나자, 아아, 아침이구나 하고 비로소 실감했다.
“이 원두는 어제랑 달라?”
“응. 오늘은 깊게 볶은 것. 나구사 생일 다음 날이니까, 좀 사치 부려도 괜찮을까 싶어서.”
선생님이 뜨거운 물을 내리자, 분말 표면이 부풀어 올랐다.
주문에 걸린 것처럼 향이 한순간에 퍼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 좋았다.
보기만 해서는 맛의 차이 같은 건 모르는데, 선생님은 항상 거기를 가만히 바라보니, 왠지 중요한 장면이겠구나 싶다.
“평소보다 냄새가 진하네.”
“그렇지. 아침은 이 정도 향이 있어야 좋을 것 같아서.”
선생님은 작게 웃으면서 가는 물줄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계속 붓는다.
나에게는 그저 뜨거운 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선생님의 손길은 묘하게 신중해서 하나의 의식 같았다.
드리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톡, 톡 리듬을 새긴다.
평소보다 느리고, 평소보다 정성스럽다.
나만을 위해 우려낸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르게 기쁘다.
“오래 기다렸지. 뜨거우니까 조심해.”
김이 피어오르는 컵이 내 앞에 놓인다.
다시 잠들어 버릴 것 같은 다정한 향인데, 확실히 눈을 뜨게 하는 효력이 있으니 신기하다.
정신 차려 보니, 테이블 위가 온통 아침의 색으로 가득 차 있다.
평소의 샐러드에 어제 미리 차갑게 해 둔 오렌지.
주역은 평소의 빵과 잼이 아닌 갓 구운 프렌치토스트.
표면이 은은하게 노릇해져 있고, 달걀이 스며든 부드러운 부분에서 달콤한 향이 포근하게 피어오른다.
아침은 선생님, 밤은 나.
선생님은 양식, 나는 일식― 정해진 흐름이다.
“음........ 맛있다.”
“다행이다. 오늘은 말이야, 설탕을 좀 더 넣었어.”
“생일 기념?”
“그런 거지.”
여백이 많은 대화를 배경으로, 커피를 한 모금.
단맛과 쓴맛이 층을 이루어 혀 위에 떨어지고, 거기에 오렌지의 산미를 더하니 입안은 이미 댄스 파티다.
예전부터 선생님이 요리를 잘한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매일 아침 함께 식탁에 앉게 되면서 그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 듯하다.
정성스럽고, 화려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어디 가?”
“음, 밀레니엄이랑 트리니티일까.”
“그럼 돌아오는 길에, 레드 와인 좀 사다 줄래? 오늘은 회를 먹을까 해서.”
“알았어. 가게에서 다시 연락할게.”
선생님이 토스트 접시를 살짝 당기고, 메모 끝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렇게 대답한다.
점점 세상이 시작되는 이 순간은 항상 가슴속이 살짝 뭉클해진다.
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아침이.
두 바늘에 새겨지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오늘 좀 춥다고 하니까. 조심해서 가.”
선생님을 따라 현관까지 배웅한다.
선생님은 웃으며, 아주 한순간만 선생님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응, 고마워. 나구사도 조심해.”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똑, 하고 작은 거품이 터졌다.
―아,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선생님? 넥타이, 구부러졌어.”
“어, 정말?”
“응, 자........”
단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
아주 조금 용기가 필요한, 아이 같은 응석.
거리가 가까워진다.
서로 마주 본다.
넥타이는 물론—전혀 구부러지지 않았다.
음.
“……에, 하.......”
한순간. 정말 한순간.
그럼에도 충분했다.
생일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후훗........ 다녀오세요, 당신.”
하고, 말해본다.
심장의 고동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면서.
상상보다 훨씬 부끄러웠던 기분을 한구석에 두고.
나는 원래 이런 연기에 능숙하다.
“.......다녀올게, 나구사.”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붉어진 것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문이 덜컥 선생님을 집어삼키고, 미회수된 열기가 감돈 채 고요함이 방으로 돌아온다.
나는 소파로 뛰어들었다.
말을 하는 입술, 음식을 먹는 입술.
나만의 것이 아닌 그 입술에 질투하는 것은 분명 머지않겠다고 생각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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