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중 나카마사 이치카의 인연랭크 : 100+@
"네? 저랑 말임까?"
선생은 곧 트리니티에서 실행될 샬레발 정기감사에 이치카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저보다 믿음직한 다른 분들도 많은텐데... 감사면 저희 부장님이나 하스미 선배랑 동행하는게 좀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이치카가 에둘러 거절의 의지를 표하지만, 선생님은 별 다른 말 없이 이번 감사에는 이치카와 동행 했으면 좋겠다고 콕 집어서 말했다.
"..."
잠시 이치카가 투명한 눈동자로 말 없이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러면 정말 못 참겠는데..."
선생이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시작한 이치카를 부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이치카가 대답한다.
"아, 죄송함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야 선생님의 부탁이면 거절할리 없잖슴까, 자, 가시죠."
그렇게 이치카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선생의 호위를 시작했다.
~~~
그러나 감사는 처음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
"저희는 저희가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딱히 외부인에게 제공할만한 자료는 없는 것 같네요. 돌아가세요."
티파티가 아닌 트리니티 외부의 어른이 감사를 요청하자 트리니티 동아리들은 제출 명령을 거부하기에 바빴다.
선생은 매번 한숨을 쉬며 나기사가 건네준 티파티 인장이 찍힌 권한대행서를 보여주기를 반복했다.
"이, 이건... 그냥 친구들이랑 간단히 디저트를 사먹은 정도인데..."
"흠... 그럼 분류를 회식이나 기타여비로 작성해야하는 것 아님까? 여기엔 분명 동아리 연구비로 적혀있지 말임다."
"그게..."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
선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 없이 처분란에 경고 1회와 동아리비 삭감을 적어내렸다.
"으으..."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부장을 두고 이치카와 선생은 부실을 떠났다.
"휴우... 예상은 했지만...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네요. 이거."
이치카와 선생은 마지막 목적지를 향하고 있으니,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고 거리를 오다니는 많은 학생들이 길게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임다, 조금만더 힘내면 됨다! 선생님!"
살짝 피곤함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밝게 웃으며 선생님을 향해 파이팅 하는 이치카.
어느새 이치카는 선생의 옆에 꼭 달라붙어 선생님을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며 둘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살짝의 죄책감을 느낀 선생이었지만...
결국 약속된 장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아앙? 싫어."
마지막 동아리의 부장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뭐, 티파티의 인장? 그게 진짠지 가짠지 어떻게 알아?"
빠직, 이치카의 이마에 핏줄이 돋는다.
떡하니 정의실현부 부원과 함께 감사를 왔는데, 생긴 것과 같이 머릿속도 불량해서 판단이 안서는건가?
하루 종일 계속된 업무로 예민해진 이치카가 겨우 화를 삼켰다.
선생은 당황해하며 이름조차 불분명한 동아리의 부장에게 설명을 계속했지만, 막상 설명을 듣는 부장은 핸드폰을 하면서 선생의 말에 대꾸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저기, 부장님. 이야기를 듣는게 좋지 않겠슴까?"
"앙?"
참다 못한 이치카가 입을 열자, 부장의 시선이 그제서야 핸드폰에서 앞을 향한다.
"..."
부장은 삐딱한 눈으로 잠시 선생의 몸을 흘겨보더니, 피식 코웃음쳤다.
"맘대로 하쇼. 동아리 비를 깎던, 말던. 잘가쇼!"
"뭐야, 아직도 안갔어?"
이번엔 부장과 비슷한 모양의 마스크를 낀 다른 불량배가 걸어나온다.
그 불량배 역시 선생을 보곤 피식 코웃음 치더니 잘가라고 대충 손을 흔든다.
선생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추후 강제로 집행하거나, 심할경우 동아리가 폐쇄될 수도 있다고 덤덤히 전했다.
동아리 부장은 처음엔 또 시작이냐는 듯 지루한 표정으로 듣더니, 동아리 폐쇄라는 단어가 나오자 눈을 부릅떴다.
"그쪽이 뭔데 폐쇄하니 마니, 결정하는겨? 니 뭐 돼? 생긴건 기생오라비 마냥 생겨가지곤..."
"저기, 말씀 가려서 해주셨슴 좋겠슴다."
"참내, 넌 가만..."
동아리 부장이 넌 뭐냐는 듯 이치카의 눈동자를 확인하곤 잠시 말을 멈췄다.
"...히 있어. 이야기에... 끼, 끼지 말고."
- 꿀꺽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끝마친 부장이 침을 꼴깍 삼킨다.
"아무튼 안된다면 안돼. 나중에 티파티를 불러 오던가! 그 잘나신 얼굴들 직접 와서 가져가라 해. 안줘!"
결국 선생님은 동아리 강제 집행 동의서를 꺼내 부장에게 건넸다.
강제 집행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동의서는 형식적인 전달일 뿐, 이 동의서를 건네는 의미는 티파티와 정의실현부가 곧 들이닥칠 예정이라는 선고였다.
"하... 싸가지가..."
부장은 동의서를 보곤 이를 갈더니, 자리에서 일어서 부실 한쪽에 놓인 선반으로 향했다.
- 달칵
- 쪼르르르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투명한 유리컵에 담은 부장은, 컵을 들고 선생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 촤악!
"이제 됐냐? 이게 내 대답이야. 볼일 다 봤으니 꺼져! 재수없게시리..."
- 뚝... 뚝...
눈을 감은 선생의 머리에선 시원한 물이 머릿결과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며 와이셔츠를 적시고 있었다.
다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선생님을 노려보는 부장.
그 뒤로 불량한 부원이 킥킥 입을 가리고 웃는다.
"어쭈, 아직도 안가?"
완고한 부장의 태도에 선생은 한숨을 푹 쉬고선, 쏟아진 물에 적셔진 서류더미를 가방에 쑤셔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치카, 가자.』
"..."
『이치카?』
- 뚜벅, 뚜벅
이치카의 구두가 부실의 바닥을 울린다.
"뭐야?"
이치카의 발걸음은 소파에 앉아있는 부장의 옆에서 멈춰섰다.
- 스윽, 슥
"지금 해보자는 거여?"
잠시 자신의 소매를 걷고 장갑을 고쳐쥔 이치카가, 손을 뻗었다.
- 꽈악
"읏...! 뭐야...! 안놔!?"
순식간에 부장의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붙잡은 이치카.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두피가 말려 올라가 부장의 얼굴이 고통에 찡그려진다.
"악!! 놔! 아파!! 놓으라...!"
『이치카... 잠...!』
선생이 말릴 틈도 없이, 이치카의 오른팔과 어깨가 뒤로 꺾이며 올라간다.
"야!! 부장님한테서 그 손 ㄸ...!"
- 짜아아악!!!
순식간에 휘둘러진 팔이 엄청난 소리를 만들었다.
"...꺽..."
잠깐 흔들린 부장의 얼굴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입술이 터지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 이 미친년이...!!!!"
깜짝 놀란 부원이 이치카에게 달려들어보지만...
곧바로 테이블에서 유리잔을 낚아챈 이치카가 부원의 머리를 조준한다.
- 휙, 퍼억!!
"카학...!!!"
- 쿠당탕!
이치카가 전력으로 던진 유리잔에 맞아 쓰러지는 부원.
- 쨍그랑!!!
뒤이어 튕겨져 하늘을 날던 유리잔이 바닥에 닿자 세차게 깨져버린다.
이치카는 쓰러지는 부원을 확인하지도 않고 머리채가 붙잡힌 부장을 내려다본다.
그리곤 공포에 찬 눈으로 입을 뻐끔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부원을 노려보더니...
- 휙
말 없이 다시 팔을 들어올린다.
- 짜아아아악!!!
"...켁, 쿨럭..."
어딘가 잘못 맞았는지, 살짝 뒤틀린 코의 모양과 피가 철철 흐르는 코와 입술.
얻어맞은 왼뺨은 본래의 색을 잃고 어두운 푸른색이 짙게 물들여 있었다.
『이치카...! 그만해!!!』
선생이 소리를 지르며 이치카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치카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선생을 돌아본다.
껌뻑, 껌뻑, 선생을 보며 몇번 눈을 깜빡인 이치카는 손에 힘을 풀었다.
- 풀썩
머리채가 풀린 부장의 몸이 소파에 쓰러지고, 선생이 다급히 하늘에 손을 휘젓는다.
『NG! NG!! 빨리 구호기사단 불러!! 빨리!!』
"...선생님?"
『이런...! 학생, 학생...! 괜찮아!? 학생!!』
선생은 우뚝 서있는 이치카를 내버려두고 불량 동아리 부장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하?"
순간 이치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 쿠당탕탕!!
- 벌컥!!
곧이어 부실의 문 앞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부실의 문이 힘차게 열린다.
"서, 선생님...!!!"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어두운 피부의 학생이 허겁지겁 부실로 들어오다 이치카와 눈이 마주친다.
"아, 그..."
『시논! 빨리!! 구호기사단 불렀어!?』
"아, 네!! 곧 도착한다고...!"
『윽... 상태가 너무 안좋아! 이치카! 혹시 근처에서 구급상자...』
"..."
습관적으로 이치카를 부른 선생이 말을 멈춘다. 이치카 역시 말 없이 선생을 쳐다본다.
"..."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에 시논이 어색하게 몸을 움직인다.
"어..."
이치카는 카메라를 든 시논의 팔에 껴있는 팻말을 보고 나서야 그제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몰래카메라 성공! 】
"...하!"
짧게 헛웃음을 내뱉은 이치카가 이마를 쓸어올린다.
『이치카, 미안. 정말 미안하구나.』
선생이 이치카에게 뒤늦게 사과를 건네보지만...
"..."
- 뚜벅, 뚜벅
이치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부실을 걸어나갔다.
"어... 어떡해요, 선생님...!? 완전 야마나간거 같은데요, 저 학생?!?"
『이런걸 해서는 안됐는데... 어제로 돌아가고 싶네... 젠장...!』
입술을 깨물은 선생은, 일단은 눈 앞의 학생을 처치하는데 전념했다.
~~~
"어라, 이치카. 오랜만이네요?"
정의실현부의 부부장 하네카와 하스미가 이치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틀의 병가를 내고 학교를 쉰 이치카이기에, 하스미에겐 주말을 합쳐 4일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 네. 오랜만임다. 선배."
"음... 전보다 확실히 표정이 밝아보여서 좋네요. 걱정하던 일은 잘 해결됐나요?"
"하하, 그렇게 티났슴까?"
"그럼요, 제 생각이지만, 지금의 이치카는 정의실현부에서 봤던 모습 중에서 제일 기운넘쳐 보이는걸요?"
"후훗... 그렇슴까?"
이치카는 입을 가리고 미소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하스미는 마지막으로 본 이치카가 굉장히 기분이 안좋아 보였기에, 이치카를 남들보다 일찍 귀가시켰던 보람을 느꼈다.
"그럼, 자리를 비웠던 시간만큼 힘내보겠슴다!"
파이팅을 외치며 이치카가 떠나가고...
몇 분 뒤, 예정대로 선생이 차를 타고 트리니티에 찾아왔다.
"앗, 선생... 서, 선생님?!?!"
하스미는 인사를 하다말고 경악하며 선생님에게 뛰어간다.
"선생님!! 괘, 괜찮으세요?!!?"
차에서 내린 선생은 떨리는 몸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노인과 같은 힘 없는 모습에 하스미가 재빨리 부축한다.
『웁...』
하스미가 달라붙자 입을 가리고 구역질을 시작하는 선생.
하스미는 화들짝 놀라며 선생에게서 떨어진다.
"엣... 에에!??"
『콜록... 미, 미안해, 하스미... 잠시 떨어져줄래...』
선생의 말에 실시간으로 가슴이 찢어지기 시작하는 하스미.
울먹이는 하스미에게 선생이 재빨리 말을 덧붙인다.
『아, 아니야... 하스미가 싫어서 그런건 절대 아니야... 그냥... 오늘은 '여'학생들과 거리를 둬야할 것 같구나... 그래...』
선생은 하스미에게 사과한 뒤,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트리니티 교정으로 들어갔다.
"대체 무슨일이..."
어안이 벙벙한 하스미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선생의 목에 덕지덕지 잔뜩 붙어있던 반창고들과, 무언가에 물린듯 탱탱 부어오른 선생의 두툼한 입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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